출애굽기 20장 십계명
Tolle Rege/출애굽기
2011-05-28 16:23:20
하나님과 이스라엘 공동체의 첫 대면에서 십계명이 주어진다. 이것은 본격적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율례와 법도가 주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19장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이 주신 3가지 중대한 메시지를 전달받고 수납하였으므로 그 기초위에 이 십계명이 주어지는 것이다. 십계명은 하나님이 주신 중대한 3가지 메시지의 두번째인 하나님의 말씀, 즉 하나님의 언약의 구체적인 내용에 해당하는 것이고 이스라엘 백성은 이것에 순종함을 통하여 이 땅과 역사 가운데 하나님나라를 이루어 가야하는 사명을 갖게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 계명을 주시기에 앞서 이 계명을 주시는 하나님이 누구이신지 즉 명령하시는 하나님과 이스라엘이 어떤 관계에 있는지를 먼저 말씀하심으로써 이 계명의 의미를 분명히 가르쳐 주신다. 사실 이 말씀은 이미 모세를 통하여 앞서 전달한 3가지 중대 메시지의 첫째 부분에서도 말씀하신 것이지만 다시금 여기서 반복하여 강조되고 있다.
먼저 "나는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니라" 는 말씀은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으신 여호와라는 선언이다. 이것은 이스라엘 역사상 대대로 반복하여 선포되는 위대한 신언공식인 것이다.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모든 말씀과 행동은 바로 이 위대한 신언공식에 기초한 것이다. 즉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으신 여호와의 자격으로서 이스라엘에게 말씀하시고 행동하시는 것이다. 그 다음에 " 나는 너를 애굽 땅 종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내었다" 는 말씀은 하나님의 언약적 행동을 표현한다. 즉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으신 여호와이시기 때문에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오해하여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하여 내셨기 때문에 비로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가 되었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이 말씀의 내적구조는 언약관계의 선언이 앞서고 그 기초하에 일어난 언약적 행동으로 서로 상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다음에 이어지는 구체적인 계명들은 이제 이런 하나님 앞아서 이스라엘이 어떻게 언약적인 반응을 하며 살 것인가하는 하나님의 언약적 요구로 이해되어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나라는 이스라엘이 이런 언약적 요구에 순종함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것이다.
첫번째 3가지 계명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공동체의 관계를 규율하는 계명이고 그 다음 안식일 계명이 있고 이어서 6가지 계명은 이스라엘 공공체내의 상호관계를 규율하는 계명이다. 이렇게 보면 십계명은 첫번째 3가지 계명에서 출발하여 안식일 계명을 거쳐서 나머지 6가지 계명으로 나아가는 내적인 구조로 이해할 수 있다면 이것을 우리는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정립을 통하여 참된 안식과 해방을 누리며, 이미 누린 인식과 해방을 가지고 사람들에게 나아가 인간 상호간의 바르고 풍성한 사회를 이루게 된다는 의미로 해석해 볼 수 있지 않을까? 1계명이 자신들과 언약을 맺으신 하나님을 향한 가장 근본적인 이스라엘의 언약적 반응으로 요구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그러나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문제가 되었던 것이 바로 이 계명에 대한 불순종이었다. 이 계명이 지켜지지 않을 때 나머지 다른 계명을 준수하는 것은 불가능할 뿐 아니라 무의미한 것이었다. 2계명과 3계명은 1계명과 연결되는 것으로서 하나님에 대한 바른 신관의 정립을 요구하는 것이다. 하나님외에는 다른 신이 없다면 그 유일하신 하나님을 어떻게 섬겨야 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하나님을 형상화하지 말것과 하나님의 이름인 여호와를 함부로 부르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이 두 계명은 단적으로 하나님에 대한 정당한 태도가 언약백성에게 중대한 일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4계명은 이렇게 법도와 율례가 공적인 형태로 주어지기 이전에 이미 16장에서 최초의 규례로서 시험적으로 제시되었던것이지만 이제 여기서 더욱 구체적으로 주어진다. 여기서 주목할 만한 점은 안식일에 자신만 일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네 아들이나 딸이나 남종이나 여종이나 가축이나 객이라도 일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으로서 안식일 계명이 공동체적으로 준수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안식일 계명을 지켜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이 제 7일에 안식하셨기 때문이라는 것인데 이것은 이 계명이 단순한 실용적 목적으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행동에 따라서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이스라엘도 동일하게 행해야 한다는 언약적 요구로 이 계명이 주어진 것임을 보여준다. 하나님이 창조를 마치시고 제7일에 안식하셨다는 것은 하나님의 창조목적이 이루어졌음을 암시하는 것이므로 여기서 나온 안식일 계명은 하나님나라의 궁극적인 완성의 모습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예표해 주는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이어지는 5,6,7,8,9,10 계명은 언약백성 상호간에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를 규율하는 법도이다. 그런데 이것이 단순한 인간 상호간의 도적적 의무가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이스라엘의 언약적 반응이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하나님과의 언약관계는 언액백성 상호간의 언약관계로 확장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하나님이 언약적 자비와 신실하심으로 이스라엘을 대하시듯이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행하여도 언약적 헌신과 성실함으로 대하여야 함을 물론이고 언약백성 상호간에도 동일한 언약적 사랑과 언약적 신실함으로 대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5,6,7,8,9,10 계명은 단순한 인간 윤리나 도덕이 아니라 하나님나라의 법도를 의미하는 것이다. 특이한 것은 5,6,7,8,9 계명은 구체적인 외적 행동을 규율하는데 반해 "탐내지 말라"는마지막 계명은 인간의 내적인 마음을 규율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앞선 5,6,7,8,9 계명도 단순한 외적 행동의 차원에 머무르는 것이 아님을 보여주는 것이다. 결국 하나님나라의 법은 외적 행동의 법이기 이전에 마음의 법이고 마음을 규을하는 법임을 알수 있다.
이렇게 하나님의 언약적 요구인 십계명이 이스라엘 공동체가 하나님을 대면한 가운데 직접 주어졌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은 더 이상 두려운 하나님과의 대면을 견딜 수 가 없었다. 그들은 우레와 번개와 나팔 소리와 산의 연기를 보고 떨었으며 죽을 것만 같았다, 그래서 그들은 모세에게 하나님이 더이상 직접 말씀하지지 말고 모세를 통하여 듣기를 간구하였다. 하나님과의 첫 만남의 경험을 통하여 이스라엘은 대대로 자기들에게 법도를 명하신 하나님이 얼마나 두려우신 분인가를 기억하게 된다. 그리고 이 두려움의 경험은 그들이 하나님에게 순종하도록 만들기 위한 것이었다. 이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간구를 받아들여 모세에게 말씀을 하시는데 그 내용은 역시 법도와 율례에 대한 것으로서 이미 주신 십계명을 구체적으로 적용하는 세부법을 주시는 것이었다. 20장에서는 먼저 2계명과 관련된 세부법이 주어지는데 그것은 은이나 금으로 신상을 만들지 말며 제단을 다듬은 돌로 쌓지 말 것이며 층계로 제단에 오르지 말라는 것이었다. 이것은 장차 가나안을 정복하고 살 이스라엘이게 가나안의 이방신을 섬기는 풍습을 따르지 말것을 경계하려는 목적으로 주어졌을 것이다.
追記 2011.8.13 월
하나님과 이스라엘이 언약을 맺을 때 주어진 십계명은 그 구조도 매우 언약적이다. 먼저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하신 언약적 행동이 언급되는데 그것은 이스라엘을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내신 것이다. 그 다음에 이어지는 명령들은 하나님의 이런 언약적 행동에 대한 이스라엘의 언약적 반응으로서 요구된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십계명의 전체 구조는 하나님과 이스라엘간의 언약적 주고받음이라고 볼 수 있고 십계명의 계명들은 단순한 도덕 윤리적인 성격을 갖는 것이 아니라 언약적인 반응의 성격을 갖게 되는 것이다. 십계명의 구조에 대한 이런 시각하에서 우리는 먼저이스라엘에게 행하신 하나님의 언약적 행동의 본질은 무엇인가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뒤이어 나오는 이스라엘에게 요구되는 행동강령은 하나님의 언약적 행동에 대한 언약적 반응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언약적 행동은 이스라엘에게 자유와 해방을 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은 자신들에게 자유와 해방을 주신 하나님을 늘 기억하고 존경하여야 하며 하나님이 주신 자유와 해방을 감사하고 누리며 그것을 빼앗기지 않도록 주의하여야 한다. 이런 시각에서 우리는 이스라엘에게 요구된 각 계명들의 의미를 해명할 수 있을 것이다.
1 계명
먼저 가장 근본적인 언약적 반응으로 요구되는 것은 하나님의 언약적 유일성을 인정하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자신들을 애굽에서 구원하신 하나님이 온 세상에서 유일하신 하나님이시며 다른 신은 없다는 진리를 수납하여야 한다. 이것이 이스라엘이 취해야 할 가장 근본적인 태도인데 이것은 외적인 행동 이전에 마음의 차원이며 신관의 문제인 것이다. 바른 신관을 가지는 것이 첫번째로 요구되는 언약적 반응이며 하나님을 세계의 유일하신 주인으로 인정하는 것이 모든 계명의 출발점이므로 이스라엘은 여호와 앞에 다른 신을 두지 말아야 한다. 이것을 행하지 않는다면 언약자체가 부정되기 때문에 이스라엘이 취해야 할 가장 언약적인 반응인 것이다. 그 다음에 이어지는 언약적 요구들은 사실상 이 근본적인 계명의 구체적인 전개로서, 구체적으로 2,3 계명은 하나님을 향하여 그리고 4계명은 자신을 향하여 마지막으로 5,6,7,8,9,10 계명은 다른 사람을 향하여 하나님의 언약적 유일성을 지키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2 계명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 절하거나 섬기지 말라는 명령은 이방의 잡신들로 부터 하나님의 언약적 유일성을 수호하기 위한 계명인 것이다. 하나님을 섬기는 방식을 이방신을 섬기는 방식과 엄격히 구별함으로써 하나님의 언약적 유일성을 지키기 위한 것이다.
3계명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부르지 말라는 계명도 이방신들의 이름을 부르듯이 함부로 부르지 못하게 함으로써 여호와를 이방신들과 구별된 유일하신 하나님으로 인정하게 하려는 것이다.
4 계명
하나님이 천지를 지으시고 제 칠일에 안식하신 것 처럼 이스라엘도 체 칠일에 아무 일도 하지말고 쉬어야 한다. 인간은 일을 해야만 생존을 유지할 수 있는데 일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자신의 생존을 하나님께 맡기는 행동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안식일 계명은 자신이 자신의 주인됨을 포기하고 하나님이 자신의 주인됨을 인정하는 행동인 것이므로 여호와 앞에 다른 신을 두지말라는 첫 계명의 구체적인 실천인 것이다.
5 계명
부모는 하나님이 세우신 유일하신 인간의 권위이다. 그러므로 이 권위를 인정하는 것은 유일하신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의 간접적인 표현인 것이다. 부모의 권위의 출처는 부모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므로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주인되심을 부정하는 언약적 배반의 행위인 것이다.그래서 부모를 거역하는 죄는 예외없이 죽음의 형벌로 다스려진 것이다.
6 계명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진 사람을 죽이는 것은 하나님의 형상에 대한 범죄이며 생명의 주이신 하나님의 유일성을 부인하는 행동인 것이다. 그러나 모든 살인이 동등한 형벌로 다스려진 것은 아니라 그 의도가 예민하게 고려되었다.
7 계명
간음은 결혼 상대에 대한 언약적 배반의 행위일 뿐만 아니라 언약적으로 신실하신 하나님에 대한 멸시의 행동이다. 하나님이 만드신 제도인 결혼을 파괴하는 것은 여호와 앞에 자기의 욕망을 하나님으로 세운 행동인 것이다. 그래서 간음은 예외없이 죽음의 형벌로 다스려졌다.
8계명
도둑질은 탐심의 문제인데 성경은 탐심은 곧 우상숭배라고 하였다. 이는 모든 우상 숭배의 근원이 탐심에서 나옴을 지적한 것이다. 즉 탐심을 만족시키기 위한 종교적 고안이 우상숭배인 것이다. 그러므로 도둑질은 우상숭배이며 하나님의 주 되심을 부인하는 언약적 배신행위로 간주되는 것이다.
9계명
오늘도 그렇지만 타인의 증언을 증시하는 고대 근동의 재판에서 그 공정성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행동이었다. 이것은 하나님의 공의를 굽히는 일이며 하나님의 명예를 더럽히는 행동인 것이다. 거짓증언을 한다는 것은 단순히 거짓말의 문제가 아니라 거짓을 미워하시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므로 하나님의 주인되심을 부인하는 언약적 배신행위인 것이다.
10계명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라는 명령은 십계명의 정신이 단순히 외적인 행동을 요구하는 것만이 아니라 마음의 근본적인 태도임을 가르치는 것 같다. 예를 들면 이웃의 아내에 대한 탐심은 간음의 문제와 관련되며 이웃의 소유를 탐내는 것은 도적질의 근원이 될 것이다. 여호와가 이스라엘의 유일하신 주가 되심을 인정하는 것은 외적인 행동으로 나타나야 할 뿐 아니라 마음에 새겨져야 하기 때문이다.
追記 2011.8.24 목
십계명의 서언은 하나님이 누구이시며 이스라엘은 누구인가에 대한 선언이다. 그것은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왕이시며 이스라엘은 그의 백성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어지는 십계명은 왕이 자기 백성에게 내리는 통치의 근본법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이 근본법의 첫번째로 하나님외에 다른 신을 네게 두지 말라는 요구가 나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다. 즉 이스라엘은 하나님외에 다른 것을 왕으로 섬겨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왕되심을 인정하는 것이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그 다음에 우상을 만들지 말라는 것이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부르지 말라는 요구 역시 왕이신 하나님을 왕답게 섬겨야 한다는 것을 가르키는 것이다. 안식일 계명 역시 자기의 삶 자체를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탁함으로써 하나님을 왕으로 인정하라는 것이 아닌가? 부모 공경의 계명은 하나님이 주신 천부적인 권위에 순종함을 통하여 하나님의 왕 되심을 드러내라는 것이다. 이어지는 살인, 간음 도적질을 금하는 계명은 하나님의 왕되심이 정당한 인간관계를 통하여 드러나야 한다는 것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탐심을 금하는 마무리 계명은 인간은 외적인 모습만이 아니라 진정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통치에 순종함으로써 하나님의 왕되심을 드러내라는 것이 아닐까? 이렇게 보면 하나님의 왕 되심을 인정하고 드러내라는 것이 십계명의 법정신이라고 볼 수 있고 그러므로 순종하는 삶과 법적인 행동을 통하여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하나님나라가 임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추기] 2011. 12. 4 주일
루터가 말한대로 율법의 부정적 기능인 죄를 깨닫게 해주는 측면에서 십계명을 바라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십계명이 부정적인 명령으로 이루어져 있는 점도 이런 측면에서 십계명을 생각해보게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십계명을 인간이 가지고 있는 죄의 성격을 적나나하게 지적하고 있다는 차원에서 숙고해 보자는 의미이다.
우선 제1계명은 인간 죄악의 가장 근본뿌리가 하나님 아닌 것을 하나님으로 섬기는 것임을 지적하고 있으며 2계명은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 여전히 자기중심적으로 하나님을 섬기려는 인간의 죄악된 성향을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 3계명은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부적절한 태도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일 것이다. 하나님에 대한 진정한 경외심이 결여된 채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하나님을 망령되이 일컫는 것이며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대접하지 않는 행위인 것이다. 결국 1,2,3 계명은 인간 죄악의 근본이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않고 자신이 스스로 하나님의 자리에 앉으려고 하는 것임을 계시하고 있다. 이것이 인간 역사에서 진정으로 해결된 적이 없으며 인간의 모든 문제의 원인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는 인간에게는 아무런 희망도 없으며 인간 존재의 의미도 없는 것이다. 문제는 인간은 스스로 이것을 해결할 능력이 없다는 것이고 그래서 하나님은 이 문제를 직접 해결하시기로 작정하셨는데 그것이 바로 구약에서 준비된 메시야로서 신약에서 오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이신 것이다.
이어지는 안식일 계명부터는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않고 스스로 하나님이 되려는 인간 죄악이 구체적인 삶의 현장에서 어떻게 나타나는가 하는 것을 보여준다. 다시 말하면 1,2.3 계명이 인간 죄악의 뿌리라면 4계명이후는 그 뿌리에서 나온 구체적인 열매가 어떤 것인지를 보여준다. 그렇다면 4계명이후의 열매를 맺고 있는 자는 그 죄악의 근본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채 있다는 강력한 증거가 될 것이다. 4계명은 안식을 누리지 못하는 인간의 실존을 보여준다. 인간은 스스로 자신이 하나님이 되고 자신 삶의 주인이 되려고 하는데 그 결과는 몸과 마음에 안식이 없다는 것이다. 끊임 없는 생존의 고투와 삶의 현실에대한 근심과 걱정가운데 편할 날이 없게 되는 것이다. 그야말로 이 생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으로 숨이 막혀가는 인간 역사의 현실이 바로 이것이다.
부모를 공경하라는 명령 그리고 여기에 덧붙여진 축복은 인간에게 부모에 대한 불공경의 성향이 강하게 내재하고 있음을 고발하는 것이며 인간이 하나님의 축복을 상실하는 주된 이유가 되고 있음을 지적한 것이다. 동양의 유가에서 강조된 효의 사상은 이것에 대한 반증이 될 것이다. 부모 공경의 명령은 부모로 대표되는 정당한 권위에 대한 순종의 명령으로 확장될 수 있는데 인간 죄악은 정당한 권위에 대한 불순종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이것은 아마도 가장 정당한 권위이신 하나님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 인간에게 너무도 당연하게 나타나는 죄악의 현실일 것이다.
살인하지 말라는 단호한 명령은 아담과 하와의 범죄이후 즉각적으로 나타난 현상이 아담과 하와간의 관계의 깨어짐이었고 이러한 인간관계의 깨어짐은 그 후대의 가인에 이르러 최초의 살인 사건으로 나타난다. 결국 가인의 살인은 지독한 자기 중심성에 기인한 삐뚤어진 분노와 증오심때문이었다. 이러한 분노는 결국 자신이 스스로 하나님이 되려는 인간에게 나타나지 않을 수 없는 왜곡된 감정인 것이다. 자신이 인정되지 못하고 자신의 생각과 판단이 성취되지 못할 때 인간은 자신의 문제를 성찰하기 보다는 다른 인간을 미워하고 분노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가인이 아벨을 죽인 이유였다. 그래서 예수님은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한 자라고 살인죄의 본질이 증오심임을 지적하신 것이다.
간음 행위는 최초의 범죄이후 깨어진 인간 관계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남녀간의 정당한 관계를 벗어난 관계는 간음이라는 죄악으로 나타나는데 이것은 특별히 합법적인 부부관계를 벗어난 성적 관계로 표현되는 것이다. 이것은 남녀간의 성적 관계가 욕망과 쾌락의 수단으로 전락된 것이며 남녀간의 법적인 언약관계를 파괴하는 배신행위인 것이다. 그래서 구약 성경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떠나고 언약을 배신하는 행위를 남편을 버리고 간음하는 여인으로 자주 비유한 것이다. 간음의 행위는 결국 스스로 하나님이 되려는 인간이 자기 중심적인 인간관계를 추구하는 현상인 것이다.
사실 도둑질처럼 인간 삶에서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죄악도 드물 것이다. 그것은 다른 사람의 것을 적극적으로 탈취하는 행동으로 부터 시작하여 남을 속이거나 유혹하는 행위에 이르기까지 하나님 대신 재물을 하나님으로 섬기는 인간에게 부하려고 하는 인간의 욕망은 다양한 방식의 도둑질을 자행하는 것이다. 도둑질은 워낙 인간 사회에 보편화되다 보니 이 죄악은 상당부분 합법성을 가장하고 정당화되기 까지 한다. 특히 가진 자가 가난한 자를 이용하는 행동이나 권력자가 권력없는 자를 압제하여 빼앗는 행동 그리고 지식층이 무지한 자를 속이는 행동 등 이런 모든 것이 재물을 신으로 섬기는 인간 죄악의 뿌리에서 나오는 것이다.
거짓 증거는 단순히 거짓말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특별히 법정에서 진실을 가리는 거짓 증언을 하는 행동을 가리키는 것이다. 거짓 증언의 심각성은 그것이 잘못된 판결을 유도한다는데 있다. 결국 거짓 증언은 재판을 굽게 만드는 죄악이며 사회의 공의를 무너뜨리는 공적인 죄악인 것이다. 진실을 가리고 사실을 왜곡하는 이러한 거짓 증언은 결국 최초의 거짓말을 한 자, 거짓의 아비 사단의 가장 현저한 속성이다. 하나님을 떠나 스스로 하나님이 되려고 하는 인간에게 이런 사단적 속성이 나타나는 것인 불가피한 현상일 것이다.
탐심을 금지하는 계명은 인간 가운데 탐심의 문제가 깊이 내재된 심각한 죄악임을 지적하는 것이다.남의 소유를 탐내는 것은 앞에서 지적된 도둑질의 죄악과 관련된 것일 수 있는데 여기서 다시 중복적으로 탐심을 거론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리고 특별히 십계명이 탐심을 지적하는 계명으로 마무리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우선 탐심을 금지하는 계명은 앞의 도둑질을 금지하는 계명과는 다른 것임을 알아야 한다. 물론 탐심이 도둑질의 원인이 될 수 있지만 탐심은 도둑질만이 아니라 4계명이후에 나타난 모든 죄악의 원인이 되는 것이다. 도적질은 물론이고 안식이 없는 것, 정당한 권위를 부정하는 것, 간음을 하는 것, 그리고 거짓 증거를 하는 것 이 모든 죄악의 뿌리가 탐심인 것이다. 그리고 모든 탐심 곧 욕망의 뿌리는 자신이 스스로 하나님이 되려는 인간 죄악인 것이다. 그러므로 탐심을 지적하는 계명은 탐심이 인간 모든 죄악의 뿌리이며 이것은 긍극적으로 인간이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않고 스스로 하나님 노릇하려고 하는데서 발생하는 것임을 지적하는 것이다.
출애굽기 20장
닥치고 성경/출애굽기
2019-10-13 19:04:51
출애굽기 20장
하나님이 두려운 위엄으로 시내산에 강림하신 이유는 이스라엘을 만나 그들과 언약을 맺기 위해서였다. 이전에 하나님은 모세에게 자신을 이스라엘의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소개하셨지만 이제 하나님은 자신을 이스라엘을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이스라엘을 하나님 여호와라고 소개하신다. 출애굽의 역사를 생생하게 체험한 이스라엘은 이제 자신들의 조상의 하나님이 바로 자신들을 애굽에서 건져내신 하나님이심을 알게 된 것이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출애굽사건을 통해서 자신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하신 약속을 지키신 것이며 또한 자신의 언약적 신실하심을 충만하게 드러내신 것이다. 출애굽 사건은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언약적 행동이었다. 그러므로 이어지는 십계명은 하나님의 언약적 신실하심에 대한 이스라엘의 언약적 신실함을 요구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하나님이 그렇게 신실하게 언약을 지켜 행하셨으므로 이제 이스라엘도 그에 합당한 언약적 신실함으로 응답할 책임이 있게 된 것이다. 사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건져내신 목적은 그들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백성으로 살게 하시려는 것이었다. 그러한 삶의 준칙으로서 이제 십계명이 주어지는 것이며 또한 그러한 삶이 펼쳐질 공간으로서 가나안 땅이 약속된 것이다. 그러니까 아담의 범죄와 그로 인한 노아의 홍수 사건이후에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씨와 땅의 약속을 하신 것은 아브라함의 후손들이 약속의 땅에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삶을 살게 하려는 것이었고 그들을 통하여 장차 세계 만민이 하나님의 복을 받게 하려는 것이었다. 아담이 불순종함으로 이루지 못했던 것을 이제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후손인 이스라엘의 순종을 통하여 이루시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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