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 20장 베냐민 지파의 궤멸
Tolle Rege/사사기
2011-07-02 15:49:32
이스라엘 역사상 전무후무한 사건이 일어나는데 그것은 공동체 내전으로 한 지파가 거의 궤멸되는 위기가 발생한 것이다. 레위인이 잘라서 보낸 첩의 시체를 보고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가 분개하여 일어났고 그들은 베냐민 기브아에 가서 그 무리가 이스라엘에게 망령된 일을 행한대로 징계하기로 작정하였다. 이스라엘 모든 지파가 합심하여 기브아 성읍을 치려고 모인 것이다. 베냐민이 저지른 악행에 대하여 이것을 공동체 전체의 문제로 규정하고 이를 징계하려고 한 것은 일견 정당해 보인다. 그러나 그들은 과연 그런 악행을 징계할 자격이 있을 만큼 자유로운가 하는 문제가 대두된다. 악행의 징계는 단순한 윤리적인 문제가 아니라 언약공동체인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율법에 의거한 판단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보다 더 중한 율법을 다 어기고 하나님을 배반하여 이방신을 섬기고 있는 이스라엘 전 공동체가 이 문제를 징계하기에 앞서서 이런 괴이한 일이 일어난 근본적인 원인이 자신들이 하나님을 떠나고 율법을 버렸기 때문인 것임을 먼저 인정하고 회개를 한 이후에 율법에 따라 베냐민을 징계했어야 하지 않을까? 모두가 율법을 버린 마당에 누가 무엇을 근거로 베냐민을 판단할 수 있단 말인가. 모두가 자기 소견이 왕이 되어버린 시대에 누가 누구를 판단하고 징계한단 말인가?
이스라엘 지파들이 베냐민에게 너희중에 생긴 이 악행이 어찌됨이냐는 질문은 정당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이 사건의 표피적인 원인에만 집중하고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보다 근본적인 원인을 안다면 이 악행이 어찌됨이냐고 묻는 자신들도 그 악행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악행의 문제는 단순히 기브아의 불량배를 죽이거나 아니면 베냐민 지파 전체를 죽인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닌 것이다. 이 사건을 통하여 이스라엘 공동체 전체는 하나님 앞에 울며 회개해야 했는데 그 기회를 놓치고 마는 것이다. 기브아의 불량배를 넘기라는 이스라엘 지파의 요구를 거절하고 베냐민은 도리어 이스라엘 자손과 싸우려고 나옴에 따라 이제 공동체 내전은 피할 수 없게되었다. 악행을 회개하고 돌이키지 않는 이런 베냐민의 태도를 보면 그 악행의 문제가 단순히 기브아 거민 중 불량배만의 소행이 아닌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이 원하신 것은 공동체 내전이 아니라 이 사건을 통하서 이스라엘이 자신들의 타락상을 보고 회개하기를 원하신 것이지 무력으로 베냐민을 죽이라는 것이 아니었다. 우리중에 누가 먼저 올라가서 베냐민 자손과 싸우리이까? 라는 질문에 유다가 먼저 가라는 여호와의 말씀이 이 공동체 내전을 승인한 것으로 볼 수 없다. 왜냐하면 베냐민과의 두번의 전투에서 이스라엘 지파가 패배한 것을 보면 하나님은 베냐민을 이스라엘 지파의 손에 넘겨주시길 원치 않으신 것 같다. 하나님은 올라가서 치는 것을 막지는 않으셨지만 언약공동체의 내전을 마음 아파하신 것이다. 두번의 패배이후에 이스라엘 지파가 벧엘에 이르러 울며 여호와 앞에 앉아서 금식하고 번제와 화목제를 여호와 앞에 드렸다는 기록을 하면서 사사기 기자는 무엇을 생각하였을까? 정작 울어야 할 것을 울지 아니하고 정작 회개하고 금식해야 할 것은 하지 아니하고 정작 드려야 할 제사는 드리지 아니하는 이스라엘 지파들의 모습,,, 겨우 자기들의 패배에 울고 자기들의 패배를 슬퍼하며 금식하며 제사를 드리는 이스라엘의 모습에 사사기 기자는 아마도 절망하지 않았을까?
결국 마지 못하여 하나님은 베냐민지파를 이스라엘 지파의 손에 넘겨주시고 베냐민 지파는 거의 궤멸을 당한다. 칼을 빼는 용사 이만 오천명이 엎드러졌고 온 성읍과 가축과 만나는 자 모두가 죽음을 당하고 불살라 졌다. 겨우 육백명이 광야로 도망가 림몬 바위에 숨어서 지내는 신세가 되었다. 언약공동체 12지파중에 한 지파가 사라지는 위기를 맞은 것이다.
[추기] 2013. 3. 25
레위인 첩의 죽음으로 발단된 사건은 공동체 내전으로 확대되어 결국 베냐민 지파가 거의 궤멸당하는 비참한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표면적으로 보면 이 사건은 베냐민의 비류들의 악행 그리고 그 비류들을 처벌하지 않은 베냐민 지파의 어리석음으로 일어난 것 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버리고 자기 소견대로 행한 것이 이 사건의 뿌리이다. 우선 레위인만 보아도 성전을 섬기는 일로 거룩히 구별된 지파에 속한 자가 첩을 얻은 것이나 첩이 음행을 했는데도 사랑하여 찾으러 간 일 모두 하나님의 법을 버리고 자기 소견을 따라서 행한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첩의 죽음에 원한을 품고 첩의 시체를 잘라 이스라엘 열두지파에게 보낸 엽기적인 소행도 레위인으로서는 해서는 안되는 일이었다. 이 레위인은 첩의 죽음을 복수하겠다는 일념만 있었지 왜 그런 끔찍한 일이 자신에게 일어났는지 생각해 보지 않은 것이니 이것 역시 자기 소견대로 행한 것이었다.
그 다음에 베냐민을 징벌하겠다고 군대를 소집한 이스라엘 열두지파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그들은 이 문제에 대하여 어찌할 것인지 먼저 하나님께 여쭈어야 했는데 그러지 않고 자기들 소견대로 베냐민을 징벌하겠다고 작정을 하고 나중에 형식적으로 누가 먼저 올라가서 베냐민을 칠 것인가를 하나님께 물어본 것이다. 베냐민의 악행은 물론 자명한 것이지만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섬기며 자기 소견을 따라 사는 이스라엘 열두지파가 베냐민을 정죄할 위치에 있지 않았다. 그들은 이 사건을 놓고 하나님께 묻고 공동체 전체의 죄악을 먼저 회개하였어야 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지파의 연합군이 두번이나 베냐민에게 패배하게 하심으로써 그들이 베냐민을 징벌하는 것을 원치않으신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두번이나 패배한 것의 원인이 베냐민의 강함에 있지 않고 자신들의 죄악에 있음을 깨달았어야 했다.
레위인의 첩을 욕보이고 죽인 비류들을 내놓으라는 이스라엘 지파들의 요구를 거절하고 내전을 불사하겠다느 베냐민의 태도야 말로 자기 소견대로 행하는 전형일 것이다. 그들은 두번이나 자신들이 대승을 거둔 것이 자기들의 강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베냐민 치기를 원치 않으셨기 때문인 것을 모르고 오히려 교만해졌다. 결국 하나님은 교만하고 무도한 베냐민을 이스라엘 지파들의 손에 붙이셨고 베냐민은 패배의 수준울 넘어 지파의 모든 용사들이 전멸을 당하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공동체 내전으로 번진 이 사건에 등징한 모든 사람들의 공통점은 한결같이 하나님의 법을 버리고 자기 소견대로 행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법을 순종하려는 마음이 없기 때문에 자기 소견대로 행한 것이다. 이 사건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는 하나님의 법을 순종할 수 없다는 하나님나라의 엄중한 진리를 명백히 보여준다.
사사기 20장
닥치고 성경/사사기
2019-10-31 23:04:14
사사기 20장
이 일을 처리하게 위해 이스라엘 공동체는 미스바에 모였고 기브아 사람이 이스라엘 안에서 저지른 이 악행을 처벌하기로 의견이 모아졌다.그러나 이들은 이 사건의 본질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하고 있다. 이 사건의 본질은 이스라엘 공동체 전체가 하나님을 떠나 자기 소견에 옳은대로 행하는데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바알과 아스다롯을 섬겼고 가나안족들과 섞여서 살았다. 그런 결과로 발생한 일이 바로 이 사건이었다. 그렇다면 이 문제는 단지 기브아의 불량배 몇을 처단하는 일로 해결될 수 없다. 이 사건을 통하여 이스라엘은 이 사건의 본질이 무엇이며 자신들의 문제가 무엇인지를 깊이 생각하고 이 문제를 놓고 하나님 앞에 회개하며 나아가야 했다. 그 길만이 이 사건을 바르게 처리하는 방법이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그렇지 않고 이 사건을 기브아의 불량배 몇을 처단하는 방식으로 해결하려고 했다. 기브아의 불량배를 처벌하는 일에 베냐민 자손들 협조하지 않고 오히려 싸우려고 나온 일은 이 사건이 불량배 몇명에게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베냐만 지파 나아가 이스라엘 공동체 전체에 관련된 문제임을 잘 보여준다. 베냐민 지파의 저항으로 결국 이스라엘 공동체는 심각한 내전 위기에 봉착하고 말았다. 이제 이스라엘은 공동체 내전을 피할 수 없게 되었고 이때 비로서 하나님에게 묻는다. 그 물음은 우리 가운데 누가 먼저 올라가서 베냐민 지파와 싸워야 하는 질문이었다. 사실 이 질문은 불필요한 질문이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은 이미 싸우기로 결정하였고 그렇다면 누가 먼저 싸우느냐는 스스로 결정하면 될이다. 주님은 이 헛된 질문에 유다 지파가 먼저 올라가라고 대답하신다. 그러나 첫 전투에서 이스라엘 연합군은 패배했고 그들은 주님 앞에서 날이 저물도록 목놓아 울면서 "우리가 다시 가서 우리의 동기 베냐민 자손과 싸워도 되겠읍니까?" 라고 물었다. 주님은 올라가서 싸우라고 하신다. 그러나 두번째 전투에서도 이스라엘 연합군은 패배하고 만다. 그러자 이스라엘 자손은 다시 목놓아 울면서 우리가 또다시 올라가서 우리의 동기 베냐민 자손과 싸워도 되겠습니까?:라고 묻는다. 그러자 주님은 올라가라 내일은 틀림없이 내가 그들을 너희 손에 넘겨주겠다고 대답하신다. 이 장면은 하나님이 공동체 내전을 원치 않으셨기에 망설이고 계심을 암시한다. 이스라엘 자손은 이미 싸우기로 결정하고 그 다음에 어느 지파가 먼저 올아갈 것인지를 물을 일이 아니라 먼저 베냐민 지파와 싸워야 할 것인지 여부를 먼저 물었어야 했다. 아니 질문 이전에 그들은 이 사건의 근본적인 문제가 기브아의 불량배들이나 베냐민 지파에만 있지 않고 이스라엘 전체에 있음을 인식하고 돌이켜야 했다. 결국 이 사건을 처리하는데 있어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뜻을 구하기 보다는 자기들이 소견에 옳은대로 판단하고 행동하였으며 그 결과는 비참한 공동체 내전이었다. 공동체 내전으로 베냐민 지파는 궤멸되고 말았다. 하나님은 공동체 내전을 원치 않으셨고 망설이시다가 마지 못해 베냐만 지파를 이스라엘에게 넘겨주셨다. 그러니 하나님이 베냐민이 궤멸되기를 원하실릴가 없다. 그러나 이스라엘 사람들은 베냐민 지파의 성읍에서 사람이나 가축이나 할 것 없이 닥치는 대로 다 죽이고 성읍도 불살랐다.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구하는 대신 자기 소견에 옳은대로 행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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