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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

하나님의 아들의 부활(5/5)- 톰 라이트

5부 신앙,사건, 의미[18장 부활절과 역사]

N.T. 라이트/RSG

2015-09-17 01:32:21


하나님의 아들의 부활

제5부 신앙, 사건, 의미

제18장 부활절과 역사

 

1. 서론

 

   나사렛 예수가 죽은 자로부터 몸으로 부활했다는 것, 이 신앙은 그 증거들이 남아있는 거의 모든 초기 그리스도인들에 의해 받아들여졌다. 그리고 그 신앙은 그들의 특징적인 실천, 이야기, 상징의 중심에 있었다. 그것은 예수가 메시아와 주시라는 그들의 인식, 그리고 창조주 신이 오랫동안 기다려 왔던 새 시대를 개시했다는 그들의 주장,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들 자신의 장래의 부활에 대한 소망의 토대였다. 그렇다면 무엇이 그들에게 예수의 부활에 대한 이런 신앙을 불러일으킨 것인가? 완고한 역사가들과 멍청한 신학자들은 이 질문에 대답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정신을 차리고 용기를 내어서 계속 진행해 나가기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우리는 실제로 방법론 및 세계관과 관련된 큰 문제들에 직면해야 한다.

 

2. 빈 무덤과 만남들

 

   첫 번째 부활절에 관해 말할 때 역사적으로 확실한 것은 무덤이 비어 있었다는 것과 부활한 예수와 만남들이다. 제2성전 시대 유대교는 부활이란 개념을 제공해 주었지만 유대교의 부활 신앙 안에서의 기독교의 두드러지고 일관된 돌연변이들은 그런 신앙이 유대교로부터 자발적으로 생겼을 가능성을 배제한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에게 무엇이 이런 신앙을 생겨나게 했는지 묻는다면 그들은 당연히 예수의 무덤이 비었다는 것과 예수가 살아나서 사람들에게 나타난 것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빈 무덤 자체나 예수의 현현 사건들 각각이 초기 그리스도인들에게 부활 신앙을 발생시킬 수는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빈 무덤과 부활한 예수의 현현들을 함께 고려하면 그것은 이런 신앙의 출현에 대한 강력한 근거를 제공해준다. 예수의 무덤이 실제로 그가 처형당한 후 제 삼일에 비어 있었다는 것과 제자들이 부활한 예수를 실제로 만났다는 이야기는 역사적으로 대단히 개연성 있는 일이다. 그렇다면 이 두 가지 현상들에 대하여 어떤 설명이 제시될 수 있는가?  

 

  나는 필요조건과 충분조건이라는 도구들을 사용하여 이에 대한 논증을 하고자 한다. 필요조건은 어떤 결론에 도달하기 위하여 그것이 사실이지 않으면 안 되는 조건이며, 충분조건이란 그 조건이 충족된다면 반드시 어떤 결론에 도달하게 되는 조건이다. 몇 가지 유보조건들이 수반하기는 하지만 빈 무덤과 현현 사건의 결합은 초기 기독교 신앙의 출현을 위한 충분조건이자 필요조건이 된다. 예수와의 만남이 없는 상태에서 빈 무덤 자체가 부활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이교세계에 속한 누구도 해석하지 않았을 것이다. 다른 이례적인 사건들이 없는 가운데 무덤만 비어 있었다고 한다면 아무도 예수가 메시아라거나 세상의 주라고 말하지 않았을 것이고 아무도 하나님나라가 개시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특히 아무도 몸의 부활에 대한 유대교적 소망의 급진적이고 재형성된 견해를 그토록 신속하고 일관되게 발전시키지 않았을 것이다. 빈 무덤은 그 자체로는 이후에 나타난 증거들을 설명하기에 불충분하다. 결론적으로 빈 무덤 그 자체는 예수의 부활에 대한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을 설명하는데 충분조건으로서 기능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부활한 예수와의 만남들 그 자체도 다양한 방식으로 해석될 수 있었다. 그것은 환상일 수도 있고, 베드로를 보고 사람들이 그랬듯이 천사들의 방문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만남 그 자체로는 예수가 죽은 자로부터 부활했다는 신앙을 설명하는데 불충분한 조건이다. 

 

   복음서와 사도행전에서 현현 사건들은 그런 사건들을 통해서 사람들이 본 것이 빈 무덤을 남겨둔 실질적인 몸이라는 증거를 통해서 밑받침되어야 한다는 인식이 끊임없이 존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빈 무덤 또는 가시적인 현현 사건들은 그 자체로는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을 낳기에 충분하지 않다. 그리고 빈 무덤에 관한 이야기 또는 현현  사건들에 관한 이야기들이 다른 쪽에 대한 적어도 어느 정도의 암시 없이 단독적으로 초기 기독교 내에서 생성되었거나 유포되었을 가능성은 없다. 빈 무덤 이야기의 요지는 언제나 예수가 다시 살아났다는 것이었으며 현현 사건들에 관한 이야기의 요지는 언제나 나타난 예수는 몸과 관련해서 무덤 속에 있었던 시신과 연속성을 지니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빈 무덤 및 현현사건들은 단독으로는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을 낳기에 불충분하지만 그것들을 합쳐 놓으면 충분조건을 형성한다. 제2성전시대라는 맥락, 그리고 예수와 그의 선교 황동에 대한 제자들의 믿음을 종합해 볼 때, 빈 무덤과 현현 사건들의 결합은 기독교의 초기 신앙의 출현에 대한 충분한 설명이 된다.

 

   그러나 빈 무덤이 발견 된 후 예수가 실제로 즉시 나타났을 때, 모든 사람들이 믿은 것은 아니었다. 게다가 복음 메시지가 더 넓은 세상으로 퍼져나갔을 때, 빈 무덤과 현현 사건들에 대한 열정적임 목격자들의 증언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믿기를 거부하였다. 이것은 빈 무덤과 현현사건들이 결합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결국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의 출현을 위한 충분조건을 이루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빈 무덤을 발견하였고 부활한 예수를 본 사람들이 제2성전시대 유대인으로서 이전에 예수를 좇았고 그가 이스라엘의 메시아라는 것이 밝혀지기를 소망했던 자들이라고 한다면, 이러한 두 가지 증거는 그들로 하여금 예수가 즉은 자로부터 부활했다고 결론을 내리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다시 말하면 빈 무덤과 현현사건들은 그 이야기를 들은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부활 신앙에 이르게 하는 데는 충분조건이 되지 못하지만, 예수의 제자들로 시작되었던 공동체 안에서는 형성된 신앙을 위해서는 충분조건이었다. 이런 의미에서 빈 무덤과 현현사건들이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의 출현을 위한 필요조건이기도 한 것인지 물어야 한다. 고대의 유대 세계 및 이교세계에서 부활은 몸을 입는 것을 의미하였다. 그러므로 무덤이 비어있지 않았다면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빈 무덤은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의 출현을 위한 필요조건이라고 본다. 그렇다면 현현사건들은 어떤가? 부활 현현들은 빈 무덤의 발견에 대한 일종의 필수적인 보완으로 보인다. 그것은 빈 무덤을 충분조건으로 바꾸어주는 추가적인 요소를 제공해준다. 결론적으로 빈 무덤과 예수의 현현사건들의 결합은 그 자체가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의 출현을 위한 필요조건이자 충분조건인 일련의 상황들을 구성한다.

 

3. 두 경쟁적인 이론들

 

(1) 인지적 불협화 이론

 

   현현사건들을 설명하는 이론들 중 인지적 불협화 이론은 제자들이 “인지적 불협화”라는 신경 증세를 겪고 있었다는 이론이다. 심리학의 연구 분야에서 레온 페스팅거가 제시한 이 가설은 개인들 혹은 집단이 현실을 제대로 대처하는 데에 실패하고 그 대신에 그들의 내면 깊은 곳에 열망들과 일치하는 환상 속에서 살아가는 상태를 가리킨다. 이 이론에 따르면 제자들은 예수를 너무도 간절하게 믿고 싶었기 때문에, 그의 죽음이라는 사실을 정면으로 받아들이는 것 대신에 그가 살아있다고 주장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가설이 지니 결함들은 너무도 엄청난 것이기 때문에, 진지한 학자들조차 여전히 그것을 언급하고 있는 것은 참으로 당혹스러운 일이다. 이 가설의 진정한 문제점은 주후1세기 역사가라면 누구나 알 수 있는 것이었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기대하고 소망하고 기도하던 것이 무엇이든지간에 그것은 예수의 부활 이후에 그들이 일어났다고 말한 그런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들이 전혀 예상치 못했고 또 소망하지 않았던 그 무엇이 일어났고, 이것이 그들로 하여금 그것을 중심으로 자신들의 삶을 재구성하고 그들의 힘을 쏟을 방향을 재정립하게 만들었다. 그들은 자기들이 내내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하지 않았다. 반대로 그들은 실제로 그들이 잘못 생각했었다는 극적이고 반박할 수 없는 증거를 받아들였고, 그 증거를 중심으로 자신들의 삶을 재정립하였던 것이다.

 

(2) 새로운 은혜 체험

 

   도미니쿠스 수도회의 신학자인 쉘레벡스는 최초의 그리스도인들은 회심이라고 묘사될 수 있는 은혜와 죄 사함, 보는 것과 깨달음의 놀라운 체험을 가진 것이지 이것은 원래 빈 무덤이나 객관화된 방식으로 예수를 본 것과는 아무 상관이 없었지만, 어느 시점에서 특히 예수의 무덤을 방문하는 제의적 관습을 통해서 빈 무덤 이야기들은 원래의 연대기와는 아무 상관이 없고 은유적인 의미에서 신적 현존과 행위를 상기시키는 “제 삼일에”라는 모티프와 더불어 말해지기 시작했다고 주장한다. 그는 이런 전승이 점차 발전하면서 예수를 본 것에 대한 이야기들도 포함되게 되었고 지상의 예수의 말씀들도 부활한 예수의 입 속에 넣어졌다고 말한다. 쉘레벡스의 주장은 기독교 1세대에서 일어난 일은 초기의 기본적인 신앙과 체험이 나중에는 유대교적인 관념의 영향을 통해서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것에 관한 소박하고 문자적인 이야기들로 표현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신약성서 기자들이 실제로 말하고 있는 것을 뒤집어 놓는 것이다. 그는 적어도 일부 유대인들은 죽은 자로부터의 부활을 몸의 부활이란 의미로 사고했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온전한 종말론적 의미에서 부활은 몸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말한다.

 

   이런 견해는 독창적이고 교묘하지만 거의 모든 면에서 잘못되었음이 입증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쉘레벡스는 신약 성서 기자들의 증거들을 제대로 다루지 않았다. 그는 부활한 예수에 대한 체험들은 오직 이미 신자들이었던 사람들에게만 일어났다는 점을 반복해서 역설하지만 두 가지 다른 명백한 반증들, 즉 도마는 부활한 예수를 보고도 믿지 않았고 예수의 동생 야고보는 예수의 공생애 기간에 제자가 아니었을 가능성이 높지만 초대교회에서 중심적인 인물이 되었다는 반증을 논의하지 않는다. 쉘레벡스는 신약성서는 은혜와 은총 또는 예수 안에서 구원의 갱신된 수여가 이루어진 사건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사건들인지 명시적으로 말하지 않고 다만 놀라운 은혜의 사건으로서 이 사건의 성격만 말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가 부활 기사들이 액면 그대로 하나님의 은혜와 은총을 계시한 구체적인 사건들에 관한 기사를 제시하고 있음을 부정하는 것은 참으로 악한 것이다. 쉘레벡스의 전체적인 구성은 기독교 신학의 차원에서뿐  아니라 역사적 재구성의 차원에서도 잘못되고 오도된 것이다. 초기 기독교의 관습과 소망에 관한 역사적인 연구는 부활 신앙이 모든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지니고 있었던 것이었다는 결론을 내리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실제로 그들은 그것이 그들의 삶의 중심이라고 고백하였다. 결론적으로 ‘인지적 불협화’이론과 마찬가지로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심오한 종교적 체험을 가졌고 그 이후에 서서히 그 체험은 몸의 부활에 관한 언어로 잘못 성장해 갔다는 이론은 초기 기독교 신앙의 출현에 대한 올바른 설명을 하지 못한다.

 

4. 필요조건

 

    빈 무덤과 예수와의 만남들은 서로 결합되었을 때 초기 기독교 신앙의 출현을 위한 충분조건만이 아니라 필요조건도 제시해 준다. 역사가들이 지금까지 생각해 낼 수 있었던 그 어떤 다른 것도 우리 앞에 놓여 있는 그러한 현상들을 설명해 줄 수 있는 힘을 갖고 있지 못하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이 이미 지니고 있었던 신앙을 설명하기 위하여 빈 무덤과 부활한 예수와의 만남들 또는 본 것들을 만들어낸 것이 아니다. 그들은 이러한 두 가지 현상을 근거로 해서 그러한 신앙을 발전시켰다. 이런 종류의 일을 예상했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그 어떤 회심 체험도 그런 관념들을 생성해내지 못했을 것이다. 이와 다른 것을 주장하는 것은 역사학을 행하기를 중단하고 자신의 상상의 세계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고 계몽주의 이후의 세계관이 붕괴될 상황을 걱정하면서 그런 세계관을 견지하기 위하여 인지적 불협화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역사가들이 통상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그런 종류의 증거라는 관점에서 볼 때, 빈 무덤과 현현들의 결합은 초기 기독교 신앙을 생성한 바로 그것이었다는 주장은 충분히 타당한 것이다.

 

   이런 모든 이유들로 인하여 어느 교파에 속한 역사가이든 그들은 빈 무덤과 예수와의 만남들이 역사적 사건이라고 단언하는 것 외에 다른 선택을 할 수 없다. 그것들은 실제적인 사건들이었고 중요한 사건들이었으며 역사가들이 요구하는 통상적인 의미에서 입증 가능한 사건들이다. 역사가들은 그것들에 관해 쓸 수 있고 또한 써야 한다. 그러한 사건들이 없이는 초기 기독교를 설명해 낼 수 없다. 실제로 빈 무덤과 현현들이라는 시나리오는 이전에 예수에 관한 연구에서 방법론적인 모형으로 논증한 바 있는 이중적 유사성과 이중적 비유사성(한편으로는 유대교, 다른 한편으로는 초대교회)에 의해 보증된다. 이 이야기들은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제시한 것과 같은 설명과 더불어서 주후1세기 유대교 내에서 의미를 지니지만(유사성), 주후1세기 유대교 내에 속해 있었던 그 누구도 이와 같은 것을 예상하지 않았다(비유사성). 또한 이런 이야기들은 초기 기독교의 출현을 설명해 주지만(유사성), 초기 기독교의 신앙, 석의, 신학을 투사한 것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비유사성)

 

   역사적으로 안전한 결론은 무덤은 비어 있었고 여러 번에 걸친 만남들은 부활한 예수와 그의 제자들 간의 만남으로 일어났을 뿐 아니라 적어도 한 경우에는 예수와 이전의 그의 제자들이 아닌 사람들에게도 일어났다. 이러한 결론은 아우구스투스가 주후14년에 죽었다든가 예루살렘이 주후 70년에 멸망했다는 것과 같이 역사적 개연성에 있어서 거의 확실할 정도로 그런 사건들과 동일한 종류의 범주에 속한다. 우리가 이러한 결론을 어떤 외적이고 선험적인 신념들에 호소해서가 아니라 역사적인 논증을 따라서 얻어냈다는 것이 중요하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모두 예수가 복음서 이야기들과 같은 부활 기사처럼, 예수가 몸으로 부활했다고 믿었음을 전제할 때에만 그들의 폭넓은 신앙과 관습은 설명될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이 예수가 몸으로 부활했다는 사실을 믿은 이유는 무덤이 비어 있었고 그 후에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들이 예수 자신을 만났으며 예수가 몸으로 다시 살아났다는 것을 보여주는 온갖 증거들을 보았기 때문이다. 

 

5. 예수의 부활에 대한 역사적 도전

 

   예수가 부활했고, 이전과 동일하지만 뭔가 신비스러운 방식으로 변화된 몸을 지니고 있었다면 빈 무덤과 만남들이라는 두 가지 핵심적인 증거 단편들은 의미를 갖고 서로 꼭 들어맞게 된다. 인간의 모든 역사는 진정으로 죽은 사람은 다시 살아날 수 없다는 동일한 이야기를 한다. 그러나 예수의 부활에 대한 초기 기독교의 이야기는 죽은 자가 몸으로 다시 살아나는 일이 조만간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 아니고 최종적으로 그런 일이 일어났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어떤 특정한 사람이 이전에 그 누구도 상상치 못했던 이례적인 능력들을 소유할 수 있다는 이야기도 아니고,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믿은 신이 그들의 예상보다 더 굉장한 이적을 보여준 것이라고 말한 것도 아니다. 죽은 사람들은 통상적으로 다시 살아나지 못한다는 사실은 그 자체가 초기 기독교 신앙에 대한 반론이 아니라 그 일부이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예수에게 일어난 일이 이전에는 일어난 적이 결코 없는 정확히 새로운 일이었다고 역설하였다. 실제로 그것은 전혀 새로운 실존 양식이었고 새로운 창조의 시작이었다. 예수의 부활이 과거에도 유비가 없었고 지금도 유비가 없다는 사실은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주장에 대한 반론이 아니라 오히려 그러한 주장 자체의 일부이다.

 

   예수의 부활에 대한 역사적 도전은 단순히 일반적으로 세계관들 또는 구체적으로 초자연적인 것들과 관련이 있는 것이 아니라 죽음과 삶, 시간과 공간과 물질의 세계 및 그것과 거기에 존재하는 신 또는 하나님이라고 부를 수 있는 존재와의 관계에 대한 직접적인 문제와 관련되어 있다. 물론 여기에는 중립성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중립을 지키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은 단지 그들이 이 문제를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을 보여줄 뿐이다. 특히 계몽주의 이후의 역사가이기를 고집하는 사람들은 몇 가지 어려운 방법론적인 질문들을 던져야 한다. 계몽주의 역사관은 교회의 장엄한 교의적  주장들은 역사적 증거들에 대한 아무런 근거가 없고, 가차 없는 검증들에 의해 도전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예수의 몸의 부활에 대한 계몽주의의 반대는 계몽주의가 벌리는 지적, 문화적 주도권 싸움이다. 왜냐하면 부활신앙은 편안하고 안락하며 사회적 문화적으로 보수적인 형태의 기독교를 정당화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주후1세기에서와 마찬가지로 주후21세기에서도 사회적으로, 문화적으로, 정치적으로 가장 폭발력 있는 세력으로서 모더니즘적 인식론과 그것이 떠받치고 있는 사회적, 정치적, 문화적으로 봉인된 무덤들과 닫힌 문들을 뚫고 돌진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정신적인 것과 영적인 것을 사회적이며 문화적이며 정치적인 것과 구분하는 것은 계몽주의가 딛고 있는 가장 중요한 토대들 중의 하나로서, 그 자체가 예수의 부활이라는 질문에 의해서 도전을 받고 있다. 

 

   나사렛 예수가 죽은 자로부터 몸으로 부활했다는 말은 그러한 말을 최초로 한 사람들이 최소한으로 거기에 연루되지 않고는 결코 말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런 일이 일어났다면 그것은 그들에게 중요하며 그들에게 세상은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던 때와는 다른 세상이 된다. 따라서 그런 진술을 하는 사람은 이 다른 세상, 이 새롭게 보이는 담론, 상상력, 행위의 우주 속에서 삶을 살게 된다. 마찬가지로 어떤 사람이 나사렛 예수는 죽은 자로부터 몸으로 부활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도 지극히 자기연루적인 발언이다. 그런 진술은 보편적인 옛 이교적 세계관, 모더니즘적인 계몽주의 이후의 세계관, 그리고 이 두 가지의 변형이나 유사한 세계관들을 강화시킨다. 예수가 죽은 자로부터 부활하지 않았다고 믿는 것은 부활에 대한 믿음이 정통 기독교의 세계관에서 중심적인 요소인 것과는 달리, 그런 사람들의 세계관 속에서는 별로 중심적인 요소가 아니다. 그들에게 그것은 통상적으로 단순한 부차적인 결론이고 흔히 단순히 전제될 뿐이다. 

 

    계몽주의적인 역사 소설은 요한복음 20장에 나오는 도마의 입장에 서 왔다. 마찬가지로 신학의 몇몇 분파들도 예수의 온건한 책망을 강조하면서 당신이 증명을 필요로 한다면 그것은 당신이 아직 참된 신앙을 발견하지 못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대응해왔다. 그러나 18세기 계몽주의가 교의체계와 위계질서에 대하여 역사라는 잣대를 들이댄 것은 많은 우매함과 더불어 많은 지혜도 포함하고 있다. 만지거나 보는 것이 없이 앞으로 나아가는 복된 신앙은 결국 단순히 타계적인 실체들에 대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들을 수 있고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는 육신이 된 말씀에 대한 신앙과 믿음이다. 신앙은 역사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어야 한다는 관념은 이제 무덤 속으로 들어갈 때가 한참 지났다. 신앙에 관한 잘못된 관념들만이 아니라 그 밖의 다른 전제들도 도전을 받아야 한다. 과학적 설명과 관련하여 여전히 통용되고 있는 많은 잘못된 관념들이 있다. 역사뿐만 아니라 자연과학들도 구체적인 사실로부터의 연역과 특수로부터 일반으로의 귀납에 의해서 그리고 추정의 한 변형인 가장 좋은 설명으로의 추론에 의해서도 진행된다. 자연과학의 경우에는 추론들은 비슷한 사실들을 토대로 해서 만들어지는데 역사의 경우에는 이런 것들은 모두 원칙적으로 반복될 수 없는 것들에 대한 추론이다.

 

   부활논쟁에서 ‘미친 과학자’ 가설에 해당하는 것은 부활과 관련된 모든 것은(구체적으로는 복음서 기사들) 초대교회가 판이하게 다른 근거들 위에서 도달한 신학적, 석의적, 교회 정치적 결론들을 설명하고 정당화하고 옹호하는 작품들이라는 가설일 것이다. 그러나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제시한 설명, 즉 예수가 진정으로 죽은 자로부터 부활한 것에 대한 설명은 이러한 회의주의적 주장들보다 증거들의 총체를 더 잘 설명해 준다. 예수의 실제적인 몸의 부활은 분명히 무덤이 비어 있고 만남들이 일어날 수 있는 충분조건을 제공해준다. 일단 예수가 진정으로 부활했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면 초기 기독교의 모든 역사적인 퍼즐 조각들을 제자리를 찾게 된다. 나아가 예수의 몸의 부활은 이런 사건들에 대한 필요조건이다. 달리 말하면 예수가 몸으로 부활했다는 것 외의 다른 설명으로는 그런 것들을 설명해 낼 수 없으며, 다른 대안적인 설명을 찾으려는 시도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런 논증이 어떤 중립적인 관점이라는 견지에서 부활에 대한 증명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 논증은 예수의 몸의 부활외의 다른 설명들, 다른 세계관들에 대한 역사적인 도전이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세계관과 관련된 문제들에 직면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 어떤 중립적인 땅, 인식론적인 대양의 한 복판에 있는 그 어떤 섬도 존재하지 않는다. 나사렛 예수가 죽은 자로부터 부활했다고 말하는 것은 단순히 자기연루적(self-involving)인 진술일 뿐 아니라 자기헌신(self-committing)적인 진술이다. 우리는 지금 예수의 몸의 부활을 그 한복판에 놓으면 조각그림 맞추기를 완성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려하지 않는 자들에 대한 도전을 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 논증의 궁극적인 목적은 사실들 자체를 설명해 줄 뿐만 아니라 모든 증거들에 대한 대안적인 충분한 설명을 제시함으로써 예수의 몸의 부활이라는 주장을 필요조건으로 여겨지게 할 수 있는 대안적인 설명을 제시하는 것이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예수가 죽은 자로부터 부활했다고 말했을 때, 그들이 예수는 영적이고 육신적이지 않은 의미에서 살아있고 그들은 예수에게 주님으로서 충성을 바친다는 것을 의미했다는, 그런 통상적인 관념은 역사적으로 불가능하다. 만일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그런 것을 의미했다면, 그런 종류의 신앙은 제2성전 시대 유대교 세계 혹은 주후1세기 이교의 세계 속에서 그들이 예수를 메시아와 주로 환호한 이유 또는 그들 자신의 장래의 부활에 대한 그들의 신앙이 그런 형태를 띤 이유를 설명해 줄 수 없다. 그러므로 복음서들에 나오는 부활 기사들이 주후1세기 중반 또는 후반에 생겨난 기독교 신앙을 거꾸로 투사한 것이라는 널리 퍼진 견해는 옳지 않다. 물론 역사적 논증만으로 그 어떤 사람을 예수가 부활했다는 것을 믿게 할 수 없다. 그러나 역사적 논증은 다양한 종류의 회의주의자들이 숨어온 잡풀들을 제거하는데 아주 유용하다. 예수가 죽은 자로부터 몸으로 부활했다는 주장은 초기 기독교의 역사적 사실들을 설명해내는데 그 어떤 경쟁자로 물리칠 수 있는 막강한 힘을 소유하고 있다.

 

5부 신앙,사건, 의미[19장 하나님의 아들로서 부활한 예수]

N.T. 라이트/RSG

2015-09-17 01:33:10


하나님의 아들의 부활

제5부 신앙, 사건, 의미

제19장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부활한 예수

 

1. 세계관, 의미, 신학

 

   예수가 죽은 자로부터 부활했다고 했을 때, 그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물론 주후1세기 담론 속에서 이 말의 지시대상은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예수가 처형당한지 3일 후에 다시 살아났다고 주장한 사건이었다. 그렇다면 이 주장이 가리키는 사건이 더 폭넓은 세계에서 갖는 함의는 무엇인가? 또 이 주장은 어떤 큰 이야기들에 속해있으며 그런 이야기들은 어떠한 세계관을 구현하고 강화시키는가?

 

   그동안 예수의 부활이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었고 또한 현재도 그러하다는 신앙을 포함한 기독교 세계관 전체를 입증해주는 것이라고 전제되어 왔다. 이런 전제에 대한 반발로 주후1세기 역사를 연구하려던 사람들은 예수의 부활을 부정할 수밖에 없다고 느끼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다른 세계관 내에서는 최초의 그리스도인들이 예수의 부활에 부여한 의미와 상당히 다른 의미를 지닐 수 있다. 예를 들면  유대인 저술가 핀카스 라피네는 자신이 예수의 부활을 믿지만 그 부활이 예수가 메시아적이든 신적이든 “하나님의 아들”을 의미하지 않으며, 단지 예수가 위대한 선지자임을 의미할 뿐이라고 말한다. 이런 사실은 예수의 부활이 초기 그리스도인들에게 무엇을 의미했는지를 이해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함을 보여준다. 

 

   예수의 부활은 죽음 이후의 삶의 존재한다는 것이나 참된 실체는 물리적인 것이 아니라 영적인 것이라는 주장을 의미하지 않는다. 복음서의 부활 이야기들은 이런 것을 말하지 않지만 사람들은 복음서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기 보다는 자신들이 듣고 싶은 이야기를 들으려고 한다. 심지어 최근 학계에서는 예수의 부활이 정말 일어났다면 그것은 전능한 신의 독재적인 행동이고 예수에 대한 불공평한 편애이며 기적적인 간섭행위라는 주장도 등장했다. 그러니까 이들의 주장은 부활은 예수에게만 일어난 기적적인 특권일 뿐 나머지 모든 사람과는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은 보수적인 그리스도인들이 믿고 있는 대중적인 견해와 일치한다. 그것은 보수적인 그리스도인들은 자신들이 예수의 특권적인 신분을 공유하는 은총을 받은 소수이고 다른 인류와는 구별된 특별한 존재라는 생각이다.

 

   사람들은 종종 예수의 부활을 부도덕한 교리로 여긴다, 왜냐하면 그 교리는 다른 종교들에 대항하여 기독교를 정당화하며 전능한 신이라는 개념에 매달리는 승리주의적 교리인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신은 모든 사람을 동일하게 대우해야 하는데 예수만을 부활시킨 신은 대단한 비민주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부활 담론에서 핵심적 개념이었던 “대표로서의 예수” 라는 관념을 배제하고 있다. 예수의 부활을 믿는 자들이든 아니든, 문제는 그들이 예수의 부활을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믿고 선포했던 범주 안에서 해석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부활을 통해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었다는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진술이 의미했던 것, 특히 그 진술이 그들에게 “신” 또는 “하나님”이라는 단어에 어떤 내용을 부여하게 만들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2. “하나님의 아들”의 의미들

 

(1) 서론

 

   부활은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보여주었다는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진술은 그들에게 무엇을 의미했는가? 그리고 이 진술이 오늘날 가능한 의미들은 무엇인가? “하나님의 아들”은 초기 기독교에서 매우 유동적인 칭호였다. 유대적 세계에서 이 칭호는 일상적인 어구는 아니었지만 이스라엘 전체 혹은 왕이나 메시아를 가르치는 어구였고 로마세계에서는 특히 죽은 선황을 신격화한 현재의 황제를 의미했다. 이 두 의미의 세계는 여러 점에서 서로 닿아 있기는 하지만 날카로운 차이점을 가지고 있는데 특히 “신”, “하나님”이라는 단어의 지시대상과 의미에서 상당한  차이를 가지고 있었다.

 

   신의 문제는 제2성전 시대 유대인들의 삶의 핵심에 자리 잡고 있었는데 특히 그들은 이스라엘의 신인 야훼는 언제 어떻게 자신들을 구원하실 것인가? 라는 질문을 하고 있었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에게 예수의 부활은 제2성전기 유대인들의 이런 질문에 대한 예기치 않았지만 분명한 대답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리고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제2성전기 유대인들의 질문을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제기하였다. 신약성서의 풍부한 증거가 보여주듯이,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실천, 이야기, 상징에는 신의 문제가 항상 반영되어 있었다. 그들은 이스라엘의 신, 창조주 하나님, 자신을 이스라엘과 온 세상에 나사렛 예수를 통하여 알린 하나님에 관하여 말했다. 그들에게 예수의 부활은 하나님이 자신을 이스라엘과 온 세상에 알리신 방식이었다. 그래서 부활이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세웠다는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선언은 예수에 관해서 뿐 아니라 이스라엘 신에 관한 진술이었으며 또한 이스라엘뿐 아니라 이교세계에 대하여 참된 주에 대한 소식을 제시하기 위한 진술이었다.

 

(2) 부활과 메시아직

 

   예수의 부활이 제자들에게 열어준 최초의 의미들 중 하나는 이스라엘의 소망이 성취되었다는 것이었다. 예수가 자신의 공생애 기간에 선포한 약속의 때가 도래한 것이며 이스라엘의 신의 역사에 관한 이야기는 그 절정에 도달한 것이다. 그러므로 부활은 종말의 핵심적인 부분이었다. 그런데 이 일이 많은 사람들이 이스라엘의 메시아로 여겼던 한 사람에게 일어났다면, 이 일은 원칙적으로 이스라엘 전체에 대하여 일어났다는 것을 의미하였다. 예수는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유대인의 왕으로서, 메시아를 참칭하는 자로 처형되었는데 이스라엘의 신은 그를 다시 살리셨다. 그러므로 예수의 부활은 예수에 대한 하나님의 신원이며 예수가 유대인의 왕이며 메시아임을 입증한 하나님의 행위였다. 또한 이것은  분명히 이스라엘의 신이 이스라엘에 대한 자신의 약속들을 성취하는 방식이었다. 그래서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신”이 예수를 다시 살리셨다는 말을 반복해서 강조했고 그들이 의미하는 “신”은 이스라엘의 신 야훼였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에게 부활은 이스라엘의 신이 약속하신 것을 성취하셨고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을 하나님, 유일무이한 세상의 창조주이자 주권자라는 것을 보여준 표지였다.

 

   그래서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사무엘하 7장 또는 시편2편을 인용하여 예수를 다윗적인 의미에서의 “하나님의 아들”로 세웠다. 그들에게 예수의 부활은 예수가 메시아적인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 이스라엘의 종말론적 소망이 성취되었다는 것, 지금은 세상의 열방들이(예수의 부활을 통해 온 세상에 자신을 알린)이스라엘의 신에게 승복해야 할 때라는 것을 의미했다. 당시에 부활은 이런 의미로 해석되었기 때문에 다른 유대교 집단들이나 당국자들과의 대결로 치닫게 만들었다. 예수의 부활에 대한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이런 주장은 폭풍을 불러올 수밖에 없었고 실제 그렇게 되었다. 강경노선의 바리새인들이나 대부분 사두개인들이었던 고위 성직자들은 예수가 부활했다는 말이 함축하고 있는 의미에 대하여 경악을 금치 못했다. 왜냐하면 부활은 혁명적인 교리였고 새롭게 등장한 기독교 운동은 그들이 가장 염려했던 것이 실현된 것이기 때문이었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에게 부활 선포는 새 계약의 개시를 의미했다. 그들은 이스라엘이 예수를 통해 갱신되고 있으며 예수의 부활은 이스라엘이 새로운 정체성을 발견하도록 부르는 것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부활신앙은 초기 그리스도인들을 동료 유대인들과 구별시켰다. 물론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유대교를 반대한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참된 소망이 실현되었다고 주장한 사람들이었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부활한 예수를 메시아라는 의미에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주장한 것은 지극히 유대적인 주장이었고 그래서 그들의 주장을 거부하던 유대인들에게는 의심스럽게 보였을 것이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새 계약 신앙은 이스라엘의 신이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세우심으로 예수 안에서 마침내 악의 문제를 처리하였고, 계약의 약속들을 성취했다는 것을 의미했다. 유대적 세계관은 피조세계의 질서 자체를 악으로 보지 않았고, 인간의 죄와 부패가 피조 질서를 왜곡시켰고 궁극적으로 죽음을 불러왔다고 믿었다. 그러므로 죽음은 반창조적이고 반인간적이며 반신적인 원수로, 반드시 물리쳐야 할 악으로 여겨졌다. 그러므로 창조주 신이며 계약의 신인 이스라엘의 신이 물리쳐야 할 것은 바로 죽음 그 자체였다. 그러므로 제2성전 시대 유대교에서 부활은 죽음에 관한 재진술이 아니라 죽음의 패배를 의미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15장 20-28절은 메시아적 시편에 뿌리는 둔 메시아적 신학을 제시하면서,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창조주 신의 대리자가 되어서 세상에서 악을 제거하고 궁극적으로 죽음 자체를 제거하는 일을 수행했다고 말한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예수의 부활을 계약의 신이 악을 처리하겠다는 자신의 약속을 성취한 행위로 보았던 것이다.

 

(3) 부활과 세계의 주되심

 

    “하나님의 아들” 이라는 어구가 추후1세기 유대인들에게 메시아를 의미할 수 있었다면, 초기 기독교 세계에서 이 어구는 이교의 군주들. 특히 로마의 황제에게 적용되던 칭호였다. 신격화된 선왕의 자손으로서 새로운 황제를 공식적으로 지칭하던 “신의 아들”이라는 칭호는 로마에서 새롭게 등장한 공화정의 허구가 유지될 수 있게 해주었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사용한 “신의 아들”이란 어구는 이런 이교적인 용례와는 아무 상관이 없고 이 칭호의 뿌리는 철저하게 유대적인 것이었다. 하지만 헬라-로마 세계에서 예수에게 부여된 이 칭호가 매우 초기부터 로마 황제에 대한 도전으로 들렸을 것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유대적 사고의 긴 흐름은 이스라엘의 참된 왕을 세상의 참된 주로 보았다. 그래서 예수를 이스라엘의 메시아로 여겼던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그를 또한 이방세계의 참된 주로 여긴 것이다. 이렇게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예수에 대해 사용한 “하나님의 아들”이란 호칭에는 그가 온 세상의 참된 주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었다. 이것은 그들이 한적한 곳으로 물러나 있기를 거부하고 세상에 대한 주장을 개진한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아들”이란 호칭은 세상을 정사들과 권세들에 넘기는 것을 거부하는 것이며 그들조차도 지금 주가 된 메시아에게 복종해야 한다는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주장이었다. 

 

   “하나님의 아들”이란 호칭은 가이사와의 암묵적인 대결을 함축하는 것이며 나아가 창조주 신의 소유인 피조세계의 선함에 대한 긍정의 일부였다. 완전한 몸으로 부활한 예수의 부활은 이런 토대를 제공해준다. 완전한 몸으로 부활한 예수의 부활은 죄와 죽음에 대한 승리일 뿐 아니라 왜곡되어 왔던 시공과 물질적 우주에 대한 분명한 긍정이었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예수의 부활을 피조세계의 본질적인 선함을 재확인하고 새 창조의 최초이자 대표적인 행위를 통해 이제 새 창조 전체가 탄생할 수 있는 교두보를 시공과 물질로 이뤄진 현 세상에 구축하는 창조주 신의 행위로 보았다. 이런 맥락에서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부름으로써 암묵적으로  가이사가 아니라 다른 왕에게 충성하는 자들로 자처하였다. 

 

   예수가 죽은 자로부터 부활했다는 진술은 이렇게 반제국적인 세계관 내에서 그 의미를 얻는다는 점에서 사두개인들이 부활교리 특히 예수의 부활에 대한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선포를 정치적인 화약고로 여긴 것은 옳았다. 온전히 유대교적이고 초기 기독교적인 의미에서 부활은 피조세계가 중요하며 몸을 입은 인간들이 중요하다는 궁극적인 증거였다. 바로 이점이 부활교리가 언제나 불가피하게 정치적인 의미를 지닌 이유였으며 추후1세기에 사두개인들, 그리고 우리 시대의 계몽주의가 예수의 부활을 그토록 반대해 온 이유다. 그 어떤 독재자도 예수가 무덤을 남겨둔 채로 천국에 갔다는 말에 위협을 받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의 부활이라는 중심적이고 역동적인 사실을 도외시한 어떤 설교도 이 세상에 기독교적 도전을 제시하지 못할 것이다.

 

(4) 부활과 하나님의 문제

 

   예수의 부활이 가진 세 번째 의미는 신이라는 단어 자체가 가진 지시대상에 대한 것이다. 이것은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이교도에게만이 아니라 유대교에도 제기했던 문제들 중 가장 큰 문제였다. 한 분 참 신이 존재하고 그가 진정으로 세상의 창조주이며 이스라엘의 계약의 신이라면 이제 부활한 예수에 대해서는 무엇이라고 해야 하는가?  이 질문은 예수가 누구인가뿐 아니라 한 분 참 신이 누구인가를 이해하는데 필요한 질문이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예수의 부활을 신의 역사라고 말했고, 그러므로 신의 역사는 그들이 예수의 부활이란 사건을 보았던 의미의 격자망이었다. 이스라엘의 신이 예수를 죽은 자로부터 일으켰다는 사실은 예수가 행하고 말했던 모든 것을 이스라엘의 성서에 비추어볼 때 예수는 이 신의 유일무이한 “아들”이라는 놀라운 신앙을 초기 그리스인들로부터 이끌어 내었다. 그러므로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란 말을 통해서 의미했던 것은 예수가 단순히 이스라엘의 메시아라는 것도 아니고 예수가 가이사를 대체하는 권세자라는 것도 아니었다.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그들의 진술이 의미했던 것은 예수가 한 분 참 신의 인격적 화신이자 계시라는 것이었다. 

 

   초기 기독교에서 신조 형태의 정형문구로 표현되었던 이런 기독론은 매우 초기부터 이스라엘의 신과 예수를 모두 신적인 존재로서 아버지와 아들로 지칭하고 있었다. 그리고 주목할 만한 것은 이런 기독론을 논증하며 인용되는 구약 성서의 본문들은 모두 강력한 유일신론적 어조를 띠고 있다는 점이다. 바울은 예수를 하나님과 관련하여 아들이라고 말하며 또한 하나님을 예수와 관련하여 아버지라고 말하는데, 이런 본문들에서 예수의 부활이 언급되고 있다. 이러한 본문들에서 예수를 가리키는 “하나님의 아들”이란 말은 예수가 단순히 보냄을 받은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의 화신으로서 하나님의 보냄을 받은 자라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그러므로 예수의 부활은 예수가 메시아라는 의미에서만이 아니라, 또한 예수가 세상의 주라는 의미에서만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그 안에서 인격적으로 현존하게 된 그 분, 동시에 태초에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았던 사람들 중의 하나가 된 그 분이라는 의미에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선언한다.

 

  그러나 예수가 이런 의미에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은 그가 부활을 통해서 비로소 그렇게 되었다는 의미가 아니다. 바울서신의 본문들은 예수의 공생애, 죽음이 “하나님의 아들”의 사역으로 이해되어야 하고, 부활은 예수의 그런 사역이 그가 하나님의 아들임을 분명하게 선언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결론이 예수의 부활을 들은 모든 사람들에게 동일하게 도출되는 것이 아니다. 어떤 사람이 가진 세계관이 무엇이냐에 따라서 예수의 부활에서 도출되는 결론도 다를 것이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예수가 이전에는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었는데 부활을 기점으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다는 양자론적 견해를 가진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예수의 부활은 그 내적인 함의를 따라왔던 자들에게 진실이었던 그것을 분명하게 해준 사건이었다. 바울서신들은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부활을 나사렛 예수가 이런 의미에서 하나님의 아들이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세상의 창조주의 행위로 믿었음을 확고하게 진술하고 있다.

 

   이런 종류의 기독론은 유대교에서 완전히 전례가 없던 것은 아니었지만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예수의 부활에 부여하였던 그런 강조점과 두드러짐은 유대교의 그 어디에도 찾아 볼 수 없다. 신약성서의 기독론은 야훼의 아들이면서 야훼의 도구인 왕에 대한 메시아적 언어였다. 그것은 “다시 살아남”은 예수가 진정으로 온전하고 자기계시적이며 자기 화신적인 의미에서 하나님의 아들이었고 또한 언제나 그의 아들이었다는 것을 한 분 참 하나님이 공적으로 선포한 것이었다. 이것이 예수의 부활을 통해서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생성한 “하나님의 아들”에 관한 의미의 세계이다.

 

   예수의 부활 그리고 신의 아들에 대한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진술들은 물론 예수에 대한 인격적인 신앙을 보여주는 자기연루적인 것이었다. “예수가 죽은 자로부터 부활했다”는 진술은 바울에 의하면 신자들을 아브라함과 동일한 반열에 올려놓는 것이었다. 그 의미의 세계는 예수의 부활을 믿는 자들이 갱신된 계약의 가족을 형성한다는 함의를 포함한다. 이것이 바울이 말하는 이신칭의에 대한 의미의 일부이다. 바울에 의하면 부활신앙은 우상숭배에 대한 부정이다. 왜냐하면 부활신앙은 신의 고유한 능력과 영광을 우상이 아닌 창조주 하나님께 돌리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아들”의 세 번째 의미는 처음 두 개의 의미를 내버리는 것이 아니라 한 분 참 하나님이신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누구이신가라는 더 큰 그림 안에서 그것들을 통합한다. 신약성서는 하나님이 예수를 다시 살리실 때 도구로 사용하신 분이 하나님의 성령이라고 진술한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성령이 자신들안에 계시며 장차 자신들을 일으키실 분도 성령이라고 믿었다. 이렇게 창조주 하나님, 나사렛 예수, 하나님의 성령에 대한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진술로부터 이 세 분을 서로 차별되어 있지만 한 분 하나님에 대한 신비한 계시로 보게 된 후대의 신학이 흘러나왔다. 

 

   이와 같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에 대해 새롭게 출현한 이런 삼중적인 이해는 한편으로는 지고하고 무미건조한 이신론과 낮고 축축한 범신론 다른 한편으로는 만유재신론적인 신관을 막아준다. 이스라엘 하나님에 대한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이런 삼중적인 이해는 유대교의 뿌리를 포기하고 이교적인 언어와 사고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그들은 유대교의 중심적인 신앙중의 하나인 부활을 수용하고, 그것이 예수에게 일어난 사건에 비추어서 부활의 의미를 한층 더 깊이 이해함으로써 자신들의 신학을 발전시킨 것이다. 이것이 바로 초기 그리스도인들을 유대교 내의 메시아적 분파로 만든, 또 다른 왕이 있다는 소식을 가지고 가이사의 세계를 누비게 만든, 그리고 예수를 독생하신 하나님으로 고백하고 섬기게 만든, 바로 그것이었다. 그리고 이것이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예수의 부활에 관해 말하면서, 또한 하나님의 아들의 부활에 대해 말했던 이유였다. 

 

3. 태양을 향해 쏘기? 

 

    기독교 신앙은 언제나 요한이 표현하듯이 하나님의 아들이 자신의 장막을 친 곳이 바로 이 지상임을 분명하게 선언한다. 그리고 이 선언은 하나님이 예수를 죽은 자로부터 살리셨다는 신앙의 결과였다. 예수의 부활에 대한 초기의 그리스도인들의 진술은 부활이 아무리 경천동지할 만한 사건일지라도 여전히 지상적인 사건이었고, 반드시 지상적인 사건이어야만 했던 일에 관한 것이었다. 부활에 대한 진술은 단순한 속임수가 아니고 또한 진정한 문제를 피하는 것이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이 만든 세상 안에서의 하나님의 현존에 대해 말하는 방식이다. 역사가 중요한 것은 사람이 중요하기 때문이며 사람이 중요한 것은 창조가 중요하기 때문이고 창조가 중요한 것은 창조주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유대적 신앙에 의하면 창조주는 파조세계가 잘못되고 인간이 반역하는 것, 그 결과 발생한 가시들과 엉겅퀴들, 티끌과 죽음에 대해 너무도 슬퍼하였으며, 그의 세상, 그의 피조물, 그의 역사를, 그 비극적인 부패와 쇠함으로부터 건져낼 계획을 하였다. 신약성서에 나타난 나사렛 예수에 대한 이야기는 이 다중적인 문제에 대한 대답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나라가 도래해야 할 세계는 시간과 공간과 물질의 세계이며 불의와 압제, 제국과 십자가 처형의 세계이다. 이 세상은 하나님의 나라가 하늘에서와 마찬가지로 땅에서도 이루어져야 할 그런 곳이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 있는 고대와 현대의 헤롯들, 가이사들, 사두개인들이 부활의 모든 가능성을 배제하고자 애쓰는 것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독재자들, 권세자들이 이 세상을 무력으로 지배하기 위해서는 부활에 관한 온갖 소문들을 잠재워야한다. 왜냐하면 부활은 그들의 가장 큰 무기들인 죽음과 해체가 결국 전능하지 않다는 것을 함축하는 소문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만들었고 또 하나님이 여전히 슬퍼하는 대상은 바로 이 실제 세계이다. 예수의 부활은 기이한 이적이 아니라 이 실제 세계에 대한 새 창조의 이야기이다. 창조의 하나님, 공의의 하나님, 부활한 나사렛 예수 안에서 계시된 하나님은 바로 이 실제 세계를 요구하신다. 부활은 바로 이 실제 세계에 대한 이야기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