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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

예수와 하나님의 승리(3/3)- 톰 라이트

3부 예수의 목적과 신념들[11장 예수와 이스라엘]

N.T. 라이트/JVG

2015-06-17 22:58:30


예수와 하나님의 승리

제3부 예수의 목적들과 신념들

제11장 예수와 이스라엘: 메시야직의 의미

 

1. 서론

 

  제3부에서는 예수가 자신이 행한 예언자적 하나님나라 선포의 세 가지 중심적인 측면들을(포로귀환, 악의 패배, 시온으로 야훼의 돌아오심) 자신에게 적용하였음을 논증하려고 한다. 먼저 11장에서 예수는 자신을 포로생활에서 귀환한 참된 이스라엘로 보았다는 점을 먼저 논증할 것이다. 이어서 예수는 마침내 야훼께서 자기 백성을 회복하시는데 사용하였던 왕, 메시야였음을 논증할 것이다. 이 주장과 관련하여 다음 세 가지를 미리 언급하고자 한다. 

 

  첫째로 예수의 세계 속에서 메시아라는 말은 신적인 또는 신과 유사한 존재를 가리키는 말이 아니었다. 브레데는 이점을 간과하고 메시야, 인자, 하나님의 아들을 모두 대동소이한 것으로 간주하고, 이것들은 초대교회가 예수를 신적인 존재로 믿게 된 것과 상응한다고 전제하였다. 브레데의 견해는 불트만 그리고 20세기 아주 영향력 있는 신약학자들 다수가 추종하였다. 

 

  둘째로, 복음서에 나타난 신학적 사고의 원천이 예수 자신이라는 생각을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 지난 50년 동안 학계의 큰 소득은 학자들이 복음서의 저자들이 단순한 연대기 기술자들이거나 필사자들이 아니라 신학자들이었음을 깨달은 것이다. 그들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유대 성서의 이야기를 완성시키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행하셨던 일, 그리고 예수에 대한 충성된 삶으로 부르심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인 자신들이 이룬 공동체의 과제들과 문제점들에 대하여 깊이 있고 창조적으로 사고한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학자들은 복음서의 이런 신학적 사고의 원천이 예수 자신임을 말하는 것을 주저해 왔다. 그래서 복음서의 신학적 사고를 복음서 기자의 신학으로 간주함으로써 예수를 자기가 하고자 하던 일들을 철저하게 숙고하지 못한 본능적이고 단순한 사람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볼 때 이런 예수상은 완전히 뒤집어져야 한다. 복음서의 기자들이 창조적이고 지적인 저술가이자 신학자였다면 이들 배후에 있는 무언가 좀 더 크고 독창적이며 포착하기 어려운 존재가 있다는 것을 가설로 내세우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게 할 때 예수를 독자적으로 사고하고 성찰한 창조적이며 독창적인 신학자로 인정할 날이 언젠가는 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셋째, 그러므로 예수가 개시하고 있었던 역사적 사건들 속에서 예수가 자신의 역할을 어떤 식으로 이해했는지를 묻는 것은 불가능한 시도가 아니다. 왜냐하면 과거의 한 인물이 지닌 소명의식 또는 비전을 연구하는 것은 심리학에 관하여 탐구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를 탐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질문은 다른 역사적 문제와 동일한 방식으로 제기되고 연구될 수 있다. 어떤 목적들, 목표들, 동기들, 신념들이 예수로 하여금 그런 길을 걷게 만든 것인가?  이런 질문에 대하여 답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은 가설을 제시하고자 한다. 예수는 하나님나라와 관련된 세 가지 주제들(포로귀환, 악의 패배, 시온으로 야훼의 돌아오심)을 선포할 뿐만 아니라 자신의 행위로써 직접 보여주고 구현하는 것이 자신의 과제라고 믿었다. 11장은 첫 번째 주제, 즉 예수는 자신이 포로생활로부터의 이스라엘의 귀환을 구현하고 있고 상징하고 있다고 믿었다는 것을 논증하려고 한다.

 

2. 유대교와 초기 기독교에서의 메시아직

 

(1) 예수 당시의 유대세계에서의 메시아직

 

  예수 당시 유대교에는 메시아에 관한 어떤 특정한 그림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래서 당시의 왕적 또는 메시아적 운동들은 개략적인 개념 안에서 상당한 정도의 자유와 융통성을 가지고 있었다. 하스모네 왕조와 헤롯 왕조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있는 왕권의 실제적인 모델을 제공해 주었지만, 유대교에서 장차 도래할 왕에 관한 생각들은 이런 의심스런 왕조들을 대체할 하나님의 참된 왕적 인물에 대한 기대였다. 따라서 메시아와 관련된 유대인들의 가장 일반적인 관념은 ‘유대인의 왕’이었다고 보아야 한다. 예수 당시에 유대인의 왕이라는 호칭을 주장하였고 그런 주장을 뒷받침할 실제적인 권력을 가진 인물은 바로 헤롯이었다.

 

  예수 당시에 메시아적 운동들의 공통점은 이스라엘의 오랜 역사가 마침내 하나님이 정하신 목표에 도달할 것이라는 기대였는데 이것이 메시아적 인물의 출현을 위한 역사적 배경을 이루고 있었다. 오랫동안의 포로 생활 속에서 현재의 악한 시대의 갱신과 회복, 새로운 출애굽, 포로귀환이라는 다가올 새 시대에 대한 기대가 있었다. 왕에 대한 소망은 이런 배경 속에서 나타났고 장차 오실 왕은 야훼의 이러한 위대한 갱신을 이룰 야훼의 대리인으로 생각되었다. 유대인들의 메시아 대망에 대한 통일된 그림은 없었지만 메시아 대망이 왕과 관련된 의미를 가진 것은 분명했고, 이 왕은 유대민족의 해방이라는 열망의 구심점이었다.

 

   왕과 관련된 의미를 가진 상징들 중에서는 성전이 그 중심을 차지하고 있었다. 다윗은 성전을 지을 생각을 가졌고 그 아들 솔로몬은 성전을 지었다. 포로기 이전의 위대한 왕이었던 히스기야와 요시야는 성전을 정화하고 회복하였다. 포로기 이후에는 성전재건이 왕적 직무를 가진 이스라엘 지도자의 중요한 소임이었다. 유다 마카베오는 성전을 정결케 함으로 100년에 걸친 하스모네 왕조를 창건하였다. 바르 코크바는 성전 재건을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 성전과 왕권은 이런 식으로 긴밀하게 보조를 같이 하였다, 또한 왕은 이스라엘의 싸움을 싸워야 할 자였다. 다윗의 진정한 후계자는 이스라엘의 원수들을 물리침으로 다윗의 주권을 얻게 될 것이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대적에 의해 처형된 메시아는 참된 메시아가 아니었다. 

 

  이런 식으로 성전재건과 전쟁에서의 승리는 왕적 소명의 중심 상징이었다. 주후1세기에는 이러한 어느 정도 확고한  내용을 중심으로 여러 가지 서로 다른 메시아 운동들이 명멸하였고, 그러한 운동들 기저에 있는 이야기, 중심 상징들, 실천들은 성서의 예언이라는 관점에서 표현되었다. 또 이 시기에 나온 몇몇 본문들은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왕에 관하여 말하고 있는데 쿰란 문서를 비롯하여 이 시기의 여러 분파들에서 메시야가 하나님의 아들로 호칭되었다. “하나님의 아들” 이라는 호칭 역시 주후1세기에 이스라엘의 대표자로서 왕을 지칭하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야훼의 아들이었고 이스라엘의 대표로서 이스라엘을 회복하기 위하여 오실 왕도 이 호칭을 공유하게 될 것이다.

 

(2) 초기 기독교에서의 메시아직

 

   그러나 나사렛 예수는 성전을 재건하지도 정화하지도 않았고 로마인들에 대항하는 성공적인 혁명을 이끌지도 않았다. 그러므로 예수는 메시아에 대한 유대인들의 기대에는 전혀 미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를 추종하던 자들의 공동체는 이주 이른 시기부터 예수를 메시아로 여겼다. 그렇다면 예수의 추종자들에게 “크리스토스”(메시아)라는 호칭은 정확히 무엇을 의미했던 것인가? 바울과 초기의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를 참된 메시아라고 믿었고 그런 믿음을 그리스도인을 나타내는 중심 표지로 여겼다. 처음에 누가 무슨 이유로 크리스토스라는 단어를 예수에게 붙었을까? 매우 초기의 기독교 공동체가 매우 유대적이었다고 한다면, 무엇이 그 공동체로 하여금 크리스토스라는 호칭을 예수에게 그토록 확고하게 돌림으로써 이 단어가 메시아라는 원래의 의미를 상실해 버렸던 때조차도 이 호칭이 확고하게 굳어지게 했던 것인가? 

 

  주후1세기에 어떤 운동을 메시아적이라고 선포하는 것은 로마당국과 헤롯 왕조로부터 고초를 자처하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의 초기 제자들은 이 단어와 이 주제를 고수하였다. 그렇다면 왜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고초를 겪을 수 있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예수를 그런 식으로 ‘크리스토스’라고 불렀던 것인가? 백성들이 메시아에게 기대했던 일들을 예수가 전혀 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들은 왜 그 단어에 집착했던 것인가?  메시아가 없는 메시아 운동은 극히 이례적인 것이다. 메시아라고 했던 인물이 실패한 혁명 지도자로서 죽음을 맞이했기 때문에 더욱 그러했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메시아 운동을 위해 그 호칭에 집착한 것이라면, 왜 그들은 예수의 형제 중에서 다른 메시아를 선택하지 않았을까? 

 

   통상적으로 제시되는 견해는 예수가 메시아라는 주장이 나오게 된 계기는 예수의 부활사건이라는 것이다. 부활사건 이전에는 예수의 운동은 메시아적이지 않았지만 부활사건이 이 운동을 메시아적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가설은 이 문제에 대한 제대로 된 설명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 가설에 따르면 예수의 제자들이 예수를 메시아로 생각하지 않았는데 그가 부활을 했기 때문에 그가 메시아가 할 것이라고 기대했던 일들을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메시아라고 결론을 내린 것이 되기 때문이다. 부활로 말미암아 제자들이 예수의 십자가 처형의 의미를 재평가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메시아적 의미가 제자들에게 어떤 식으로든 부활사건 이전에 이미 존재하지 않았다면 예수의 부활에 메시야적 의미를 부여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이런 논거 때문에 학자들은 점점 예수의 삶과 죽음에 메시아적으로 여겨질 수밖에 없었던 그 무엇이 존재했다는 결론으로 되돌아가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이러한 논거는 복음서에 나오는 모든 메시아적 내용들을 초대교회의 창작물로 단정하는 학자들의 주장을 무력하게 만든다. 예수가 백성들이 기대했던 메시아와 달랐다면, 그리고 초기 기독교 운동이 메시아 운동과 달랐다면, 왜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핵심에 빗나가 있고 위험스러울 정도로 오도할 수 있는 “크리스토스”라는 호칭을 만들어 낸 것인가? 

 

  이중적 유사성과 이중적 상이성이라는 판별 기준은 이 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이 된다. 공관 복음서의 예수상은 오직 유대적 배경 속에서, 그리고 그 변형으로서 의미가 있으며 또한 예수를 메시아로 선포한 초대교회의 예수상은 복음서의 예수상을 전제할 때만 의미를 갖게 된다.(이중적 유사성) 그러나 공관 복음서에 나오는 예수상은 유대적 배경과도 상당히 다를 뿐만 아니라 그 내용이나 묘사의 기조가 초대교회의 배경과도 상당히 다르다.(이중적 상이성) 복음서에서 예수의 메시아직은 신비의 후광에 둘러싸여 있지만 초기 기독교에서 예수의 메시아직은 공공연하게 선포되었다. 복음서의 예수상은 한편으로는 유대교와, 다른 한편으로는 초대교회와 연속적이기도 하고 불연속적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메시아라는 개념은 어떻게 해서 유대교에서 초기 기독교로 넘어가게 된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위한 가장 단순한 가설은 예수 자신이 그 교량 역할을 했다고 보는 것이다.

 

3. 예수와 왕권: 예루살렘에서의 사건들

 

(1) 서론

 

   예수의 메시야직과 관련하여 중요한 것은 예수의 사역 및 유대인들의 메시아 신앙의 다양한 흐름들을 특징짓는 실천, 이야기들, 상징들에 그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이러한 점들에 대한 논의는 지난 한 세대동안 학계에서는 십자가에 붙여진 명패와 성전이라는 두 가지 초점으로 압축되었다. 십자가에 붙여진 명패대로 예수는  유대인의 왕으로 죽었는데 이것은 당시에 메시아로 자처한 사람들을 처형하는 통상적인 방식이었다. 여기서 쟁점은 누가, 왜 그런 죄목을 예수에게 붙이기로 생각했는가 하는 것인데 이에 대한 주된 대답은 예수의 성전행위가 그의 죽음의 직접적인 원인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의 성전행위는 어떤 식으로 메시아적 행위로 인식되었고 또 그렇게 의도된 것인가? 그리고 결국 예수의 죄목은 어떤 식으로 그의 과제를 반영하고 있는 것인가? 

 

(2) 성전 행위

 

   복음서 이야기들 속에서 예수의 성전행위는 가장 분명한 메시아적 실천의 행위이다. 그것은 단순히 종교가 아니라 왕권에 대해서, 그리고 정결이 아니라 심판에 대해서 말한 것이었다. 이 시기에 고위제사장들이 성전을 사실상 장악하고 있었지만 백성들은 성서의 모범에 따르면 진정한 다윗 가문의 왕이 성전의 통치자라고 믿었다. 예수의 성전행위는 성전에 대한 자신이 지닌 모종의 권세를 주장한 것이었다. 예수 당시의 문화 속에서 예수가 나귀를 타고 감람산을 내려와 기드론 골짜기를 건너 성전 산에 이른 것은 그 어떤 말보다도 강력하게 자신이 왕이라는 주장을 한 것이었다. 복음서가 이 대목에서 스가랴서를 간접 인용한 것은 이 점을 분명히 보여준다. 이른바 이 승리의 입성은 분명히 메시아적 행동이었고, 이것은 마침내 참된 왕이 오신 것에 대해 하나님을 찬양하는 유대인 무리들의 반응을 충분히 설명해준다. 

 

  이어진 예수의 성전행위도 마찬가지로 왕적인 행위였다. 성전에 대하여 궁극적인 권세를 지닌 이는 왕이었고 왕은 성전의 개혁자, 성전을 재건하는 자였다. 예수의 성전행위는 가장 중심적인 상징인 성전에 대한 심판과 재구성을 목적으로 한 것이기 때문에 이 사건 전체는 예수가 명시적으로 메시야적 주장을 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그리고 예수의 성전 행위는 이 사건 자체의 상징적 실천 그리고 그것이 상기시키는 서사세계에 속하는 것이었다. 예수의 이런 행위는 여러 가지 면에서 하스모네 제사장 가문의 후예였던 대재사장 가문에게 위협적이었는데 이것은 그 행위가 필연적으로 왕적 의미들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었다.

 

(3) 왕과 관련된 수수께끼 같은 말씀들

 

 (a) 성전의 멸망과 재건

 

   성전의 파괴와 재건에 관한 예수의 수수께끼 같은 설명 역시 왕적인 주장이었다. 그것은 다윗의 아들 솔로몬이나 유다 마카베오와 그의 형제들이 했던 일과 유사한 것으로서 자신이 왕적 지위를 가진 인물임을 주장한 것이었다.

 

 (b) 이 산에게 말하라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마가 11:23, 마태 21:21) 저자는 이 산에 대한 말씀은 예수의 행위가 성전의 전복을 의미하는 것이며 또한 예수 자신이  참된 성전을 세울 기름부음 받은 자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수수께끼 같은 이 말씀 속에서 예수는 현재의 성전을 참된 성전과 반대되는 것으로 보고 있고 따라서 현재의 성전은 참된 성전의 재건을 위하여 파괴될 것이며 예수 자신은 재건된 참 성전의 모퉁잇돌이 되도록 기름부음 받은 자임을 암시하고 있다.

 

 (c) 세례 요한

 

    성전 사건 직후에 예수는 두 가지 질문을 받는데, 그것은 무슨 권세로 이 일을 하는가? 그리고 누가 그런 권세를 주었는가라는 질문이었다. 이것은 분명히 메시아직에 관련된 질문이었다. 예수의 성전행위는 분명히 그가 메시아처럼 행동하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예수는 이 질문에 대해 세례요한에 관한 수수께끼 같은 말로 대답하는데 그 취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세례요한의 질문에 대한 예수의 대답의 의미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옥에 갇힌 세례요한이 예수가 과연 자신이 기다려 온 그 메시아인지 물었을 때 예수는 이사야서를 인용하여 간접적으로 대답했지만 그 내용은 분명히 자신이 메시아라는 대답이었다. 예수는 자신이 메시아라는 것을 공개적으로 말할 수 없는 처지에 있었지만 이 대답은 그들이 볼 눈이 있다면 지금이 바로 메시아 시대임을 알 것이라는 의미였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의 질문에 대한 예수의 대답은 비록 암호적인 것이었지만 매우 분명히 자신이 메시아임을 밝힌 것이었다. 세례요한은 가장 위대한 예언자이며 메시아의 길을 예비하는 마지막 예언자라는 예수의 말은 예수 자신이 바로 세례요한과 이스라엘이 열망하던 바로 그런 인물임을 암시한 것이었다. 세례요한이 엘리야라면 이것은 명확하게 예수가 메시아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의 질문에 대한 예수의 대답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첫째로, 예수는 자신이 세례요한의 진정한 계승자라고 암묵적으로 주장하고 있었고 그래서 요한의 세례를 받은 예수는 자신의 사역을 세례요한의 사역의 연속이지 성취로 보았다. 세례요한이 하늘의 보내심을 받은 마지막 예언자였다면 그 다음에는 왕이 온다. 그러므로 예수는 자신이 메시아의 권세로 성전에서 그런 행위를 했다고 대답한 것이었다. 둘째로, 예수는 요한에게서 세례를 받았을 때 성령이 임하면서 기름부음을 받았다. 그러므로 예수는 야훼께서 요한의 세례를 통하여 자신에게 권세를 주었기 때문에, 그 권세를 가지고 그런 행위를 성전에서 한 것이라고 대답한 것이다.

 

 (d) 악한 농부들에 대한 비유

 

   악한 농부들에 관한 예수의 비유는 예수가 자신의 성전행위로 인해 벌어질 결과에 대한 설명으로 본다. 이 비유에서 마지막 사신이후에 아들이 오는데, 그렇다면 이 비유는 마지막 예언자로 온 세례요한 다음에 온 예수 자신이 메시아라는 주장을 함의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이 비유는 심판에서 절정에 달하는 이스라엘에 관한 이야기이다. 예수는 이 비유에서 이사야서의 반영을 통하여 이사야 시대와 마찬가지로 성전은 그 당시에도 예언자들의 규탄 대상이었고 궁극적으로 하나님에 의해 파괴될 것임을 주장하면서 자신의 성전행위를 정당화하는 근거로 제시한다. 결국 주인은 자신이 보낸 자들이 모두 거부당한 것을 알고 농부들을 멸하고 포도원을 다른 자들에게 줄 것이다. 이것은 아주 자연스럽게 장차 있을 예루살렘의 멸망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예수의 성전행위는 장차 다가올 메시아적 심판의 상징이었다. 이렇게 이 비유는 이스라엘의 예언자 전통을 활용했고, 그 전통을 절정에 이르게 하는 좀 더 큰 서사적 틀을 제공하고 있다.

 

  이 비유는 아들과 돌에 관한 작은 수수께끼 같은 말씀으로 마무리되는데 이것은 시편118편 22-23절을 인용한 것이었다. 여기서 인용된 시편은 순례자들이 성전에 올라가면서 부르던 노래인데 이것은 예수의 성전행위와 잘 부합된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돌이라는 개념은 종말론적 성전 개념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여기서 예수가 돌의 이미지를 야훼 백성의 새로운 공동체로 해석된 새 성전의 건설과 관련하여 사용한 것이 분명하다. 또한 버려진 돌이 모퉁잇돌이 된다는 것은 문맥상으로 예수의 메시아직에 대한 암호 같은 단언과 그의 성전행위에 대한 추가적인 설명으로 의도되었다고 본다. 그 다음에 대적자들을 부수는 돌은 다니엘서에서 가져온 대목인데 이 대목은 적어도 주후1세기에는 메시아 및 그를 통해 세워질 하나님나라를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되었다. 그렇다면 돌은 메시아와 종말론적 성전에 관해 말할 뿐 아니라 야훼의 백성을 억압하였던 나라들에 대한 메시아의 승리를 가리킨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이 대목은 예언에 대한 이러한 다시 읽기를 통해 현재의 성전과 현재의 체제를 악한 왕국의 일부로 간주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비유에서 거부된 종들에 대한 예언적 이야기는 거부된 아들에서 그 절정에 달한다. 그 아들은 건축자들에 의해 버려진 돌이었지만 새롭게 세워질 건물에서 가장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 메시아적 돌이다. 아들을 반대하는 자들은 성전을 포함한 그들의 체제가 망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나 아들의 나라는 굳게 세워질 것이다. 이러한 그림 전체는 예수가 성전에서 무엇을 행하였고, 왜 행하였는가에 대한 추가적이고 풍부한 해설을 제공해 준다.

 

 (e) 가이사에게 바치는 세금

 

    그렇다면 예수가 암묵적으로 주장하는 자신의 왕권과 가이사의 통치와는 어떤 관계에 있는 것인가? 예수의 성전행위는 이런 질문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었다. 그러므로 로마에 세금을 내는 문제는 예수의 성전행위와 무관한 질문이 아니었다. 마찬가지로 예수의 대답도 그런 질문을 교묘하게 피해나간 것으로 읽어서는 안 된다. 그 질문과 대답의 주제는 세금과 성전, 가이사와 하나님이었다. 예수의 대답은 비록 암묵적이었지만 하나님과 가이사라는 양자택일식의 선택을 거부하고 그 근본적인 대안으로서 자신의 하나님나라 과제를 보여주었다. 마카베오왕조 이래 야훼와 토라에 대한 열심은 곧 이교도들과 싸우는 혁명을 의미하였는데, 예수의 암호 같은 대답은 바로 이러한 잘못된 열심을 전복하는 것이었다. 

 

   예수의 대답은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라고 한 것도 아니고 혁명을 하라고 한 것도 아니었다. 누구도 이 말씀이 혁명적이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예수가 세금을 바치는 것을 금지했다고 말할 수도 없다.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는 말은 이스라엘 전승 전체에 걸쳐서 있는 시편과 예언에 반영되어 있는 한 분 참 하나님을 예배하라는 부르심을 상기시킨다. 그러나 예수가 신성모독적인 형상이 새겨진 동전을 눈앞에 두고 있는 맥락에서 보면, 이 말은 가이사가 스스로에게 돌렸던 신적인 영광을 야훼에게 바쳐야 한다는 의미로 보아야 한다. 그러므로 이 말은 초연한 경건으로 부르심이 아니라 이교사상을 배척하고 참된 하나님을 섬기라는 요구였다. 이 말씀은 단순히 이교사상에 대한 암호화된 항의가 아니라 이교사상과 야합하고 있는 유대인들에 대한 항의였다. 왜냐하면 예수는 유대인들의 추구하는 혁명을 그러한 야합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예수는 진정한 혁명의 길, 진정한 하나님나라 운동은 유대인들이 통상적으로 생각하는 것과는 판이하게 다른 방식으로 일어날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는 자신을 진정한 하나님나라 운동을 이끄는 참된 메시아라고 보았다. 그러므로 야훼에 대한 이스라엘의 진정한 반응은 혁명이 아니라 예수를 인정하고 그가 제시하는 하나님나라 과제를 따르는 것이었다. 진정한 혁명은 세금을 바치지 않고 폭력적인 대결을 벌이는 것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하나님에 대한 전적인 순종과 그 하나님을 닮은 것으로 이루어진다. 예수는 이스라엘이 야훼의 사랑을 온 세상에 비춤으로써 이루어질 진정한 혁명으로 사람들을 부르고 있었다. 달리 말하면 예수는 두 세기 이전의 유다 마카베오 운동이나 이십년 전의 갈릴리 사람 유다의 방식과는 판이하게 다른 방식으로 하나님나라를 임하게 할 자신의 왕적인 운동을 따르라고 요청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가 보기에 야훼와 토라의 이름으로 가이사를 뒤엎으려던 혁명가들은 가이사와 동일한 무기를 사용하는 자들이었으며, 로마와 타협하는 성전의 권력자들과 마찬가지로 타협주의자들이었다. 그러므로 예수의 경구는 그의 하나님나라 가르침과 마찬가지로 하나님나라에 대한 통속적인 견해를 초월하는 것이었고 가이사의 신성모독적인 주장과 성전의 성직자들의 타협적인 태도들 그리고 혁명가들의 열심을 모두 전복시키는 것이었다. 예수는 이 양자들 보다 더 높은 것을 주장하고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드리라는 것이었다. 이러한 맥락 속에서 예수의 성전행위는 암묵적인 왕적 주장으로서 의도되었고 또한 그렇게 사람들에게 인식되었다.

 

 (f) 다윗의 주와 다윗의 아들

 

    시편 110편을 인용한 다윗의 주와 다윗의 아들에 관한 예수의 반문 역시 일관되게 메시아와 성전이라는 주제와 관련된다. 이 반문에 나타난 예수의 의도는 무엇인가? 일부 학자들은 동일한 사람이 다윗의 주이면서 동시에 아들이 될 수 없기 때문에  이 본문에서 예수는 메시아가 다윗의 아들임을 부정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메시아가 다윗의 아들이라는 것은 사무엘하 7장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유대전승에서 너무도 분명하기 때문에 예수가 이것을 부인하려고 시도했을 것으로 보기는 힘들다. 다른 학자들은 이 반문을 전사로서의 왕에 대한 당시의 기대들에 반대되는 방식으로 다윗의 아들 됨의 의미를 근본적으로 재평가한 것으로 이해한다. 그러나 이 반문에서 인용된 시편110편은 너무도 분명하게 메시아는 이스라엘의 원수와 전쟁을 벌려 승리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 반문은 다른 메시아적 수수께끼 같은 말씀들 모두와 마찬가지로 예수의 성전행위가 다윗적인 왕권을 주장하는 것임을 설명한다고 보아야 한다. 인용된 시편에서 왕은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은 영원한 제사장이라고 말하는데 이는 왕이 현재의 대제사장 체제를 지양하게 될 것을 의미한다. 또한 이 시편은 메시아의 즉위 장면을 포함하고 있는데 이는 그렇게 왕으로 즉위한 메시아가 야훼의 원수들의 파국을 선언할 심판자임을 의미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 반문은 예수가 자신이 성전행위를 통해서 나타낸 왕적 주장, 즉, 자신의 권세의 원천, 자신의 주권적인 예언적 심판행위에 대한 근거를 설명한 것이다. 예수는 이 반문을 제기함으로써 자신이 다윗의 아들로서만 아니라 좀 더 구체적으로 다윗의 주로서 성전에 대한 권세를 가지고 있다는 주장을 내비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다시금 메시아와 성전의 견고한 연관관계를 보게 된다.

 

 (g) 왕과 관련된 수수께끼 같은 말씀들

 

  이러한 여섯 개의 왕과 관련된 수수께서 같은 말씀들은 오직 예수의 사역 속에서만 의미를 가지는 것들이다. 마가가 명시적이기 보다는 함축적인 것으로 남겨두고자 했던 몇 가지 주제들이 있었는데 예수의 메시아직은 그런 것들 중의 하나가 아니었다. 마가는 예수가 메시아라는 진술을 약화시킬 필요도 의도도 없었다. 오히려 마가복음의 절정은 베드로가 예수를 메시아라고 고백하는 장면, 그리고 가야바의 입에서도 예수가 메시아라고 나오는 말이었다. 예수의 십자가 처형 장면도 예수가 메시아라는 주제에 의해 지배되고 있다. 더구나 마태와 누가에서 예수가 메시아라는 것은 비밀에 부쳐야 할 문제가 아니라 송축해야 할 문제였다. 초대교회 또한 예수의 메시아적 지위를 다양한 방식으로 송축하고 선포하였다. 이렇게 볼 때, 예수의 왕과 관련된 수수께끼 같은 말씀들이 역사적 의미를 지니게 되는 유일한 시기는 예수의 십자가 처형과 부활 이전의 시기임이 분명하다. 이런 수수께끼 같은 말씀들은 주후1세기 유대교 내에서 의미를 가지며, 초기 교회를 위한 배경의 일부로 이해될 수 있지만 부활 사건 이후에는 수수께끼로서의 의미가 없어진다. 다시 말하면 부활 사건 이후에는 그 말씀들이 수수께끼 같은 형태를 취할 이유가 없어진다.

 

(4) 성전, 메시야, 인자

 

 (a) 멸망 받을 성전, 신원 받을 예수

 

   예루살렘 및 성전에 대한 예수의 예언자적 경고들(8장) 성전에 대한 그의 예언자적 행위(9장), 이 두 가지가 서로 결합될 때 일어나는 일이 바로 마가복음 13장과 그 병행문들이다. 여기서 예수의 성전행위는 그의 메시아직이란 관점에서 설명되고 있다. 성전과 예수의 메시아직은 아주 밀접하게 결합되어 있기 때문에 성전의 파괴는 예언자 및 메시아로서 예수 자신의 신원과 결부되어 있다. 성전 파괴에 대한 예수의 예언이 실현될 때, 그 사건은 예수가 진정으로 성전에 대한 권세를 가진 메시아였다는 것을 증거하게 될 것이다. 마가복음 13장에는 성전이 이교도들의 손에 의해 파괴되고 버려질 것이고 그래서 주기적인 희생 제사들이 끝나게 될 것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므로 희생 제사를 일시적으로 중단시킨 예수의 성전행위는 성전의 실제적인 파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 것이었다.

 

  마가복음 13장에는 인자에 관한 묵시론적 언어가 등장하는데 이것과 관련하여 다음 두 가지를 언급하고자 한다. 첫째로, 이것은 시공간적 우주의 붕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시공간의 세계 내에서의 경천동지할 만한 우주적이고 중요한 사건이 일어날 것을 가리킨 것이다. 이러한 묵시론적인 저작들은 망상적이거나 이원론적인 세계관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성서적, 특히 예언적 유산을 창조적으로 재사용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묵시사상의 내용들은 예수의 예언자적 맥락과 아주 잘 부합하며 예수가 선포해야 했던 끔찍한 메시지를 나타내기 위한 적절한 도구 역할을 하였다. 우리는 예수나 마가에게 시공간의 우주가 곧 종말을 맞는다거나 초월적인 존재가 구름을 타고 땅으로 내려올 것이라는 암시를 전혀 발견할 수 없다.

 

   둘째로, 다니엘서 7장에 나오는 인자라는 인물이 주후1세기의 다양한 유대인 집단들에 의해 어떻게 인식되었는지를 아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다니엘서의 인자라는 인물은 원래 배경에서는 반드시 메시아적 인물은 아니었지만 예수 당시의 일부 유대인들은 다니엘서의 인자를 메시아로 인식했고 나아가 다니엘서 2,7,9장은 모두 합쳐져서 유대인들에게 혁명을 정당화하는 메시아적 예언을 제공해주었다. 이런 맥락을 전제한다면 마가복음 13장의 사고의 흐름은 의미를 가지게 되며 메시아와 관련된 증거들과 밀접하게 부합된다. 그것은 마치 다니엘서 7장과 9장의 결합이 예수의 성전 강화의 주된 주제의 일부를 제공해 주는 것 같다. 예수의 성전 강화가 지닌 분명한 함의는 성전파괴와 메시아로서 예수 자신의 신원이 어떤 식으로든 결합되어 있다는 것이다. 예수는 자신을 이스라엘의 참된 백성과 동일시하였고, 성전을 자기에게 대항한 이스라엘의 주류와 동일시하였다.

 

   묵시사상의 언어와 암호화된 인자라는 어구를 주후1세기 하나님나라를 열망하는 유대인들의 격동의 세계 속에서 제대로 읽는다면, 문자 그대로 구름을 타고 이 땅에 재림하실 하늘의 인자라는 거짓된 사변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주후1세기 역사에서 다니엘서는 이스라엘의 참된 대표자(들)가 이교도들의 손에 고난을 겪은 후에 신원 받게 될 것을 말하는 혁명적인 하나님나라를 가리키는 본문으로 인식되었다. 예수는 이런 맥락에서 하나님나라를 선포하는 자신의 예언자적 사역의 일환으로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성도들 즉 ‘인자 같은 이’라는 이미지를 사용하였는데 이는 예수가 스스로 자신을 이스라엘의 소명과 운명을 요약해 가진 인물로 여겼음을 의미한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진정한 포로귀환은 예수 안에서 예수를 통하여 일어날 것이고, 이미 일어나고 있었다. 예수는 바로 이스라엘의 메시아였다. 

 

   그러므로 인자는 단지 ‘나’를 의미하는 완곡어법이란 버미스의 주장을 수용할 필요가 없다. 예수는 다니엘서 7장에 대한 주후1세기의 인식을 바탕으로 자기가 메시아적 신원을 받을 것을 지칭하기 위하여 인자라는 말을 재사용하였다고 보아야 한다. 또한 브레데 이후로 인자라는 어구는 성육신 신학 혹은 삼위일체 신학과 관련된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전제하에 예수가 스스로를 인자라고 지칭했을 가능성이 없다고 주장되어 왔다. 주후1세기에 다니엘서와 연관된 인자라는 어구는 야훼께서 이교도들을 물리치실 때 사용하실 기름부음 받은 왕을 지칭한 것이라고 이해한다면 이런 주장 역시 거부되어야 한다.

 

   문학적 표상을 사회학적 혹은 형이상학적 표상과 동일시하면 안 된다. 문학적 차원에서 다니엘서 7장의 인자 같은 이는 지극히 높은 성도들을 표상하며 묵시론적 이미지를 통하여 그들에게 짐승들 위로 높아지게 될 참된 인간들이라는 지위를 부여한다. 그러므로 이 본문을 예수 당시의 고난 받는 유대인들이 읽었을 때 인자는 기름부음 받은 메시아와 동일시되었으며 그 메시아는 이스라엘을 대신하여 이스라엘의 싸움을 싸울 자로서 참된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자였다. 이와는 달리 다니엘서 7장의 묵시문학의 언어는 형이상학적 표상을 나타낼 수도 있다. 그래서 옛적부터 계신 이가 짐승들에 맞선 인자를 신원하는 천상의 실체는 이교도들에 의해 고난 받고 있는 이스라엘이 장차 하나님에 의해 신원 받게 될 것이라는 지상의 실체와 상응한다. 그러므로 주후1세기 유대인들이 이스라엘의 인간 지도자를 천상의 초월적인 존재로 이해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범주상의 오류이다.

 

   기독교 이전 시기의 유대교에서 인자에 대한 언급은 극히 드물고 더구나 인자라는 이미지를 성전에 대항하는 것으로 사용한 전례는 없다. 또한 초대교회가 다니엘서에 대한 이런 다시 읽기를 만들어냈을 가능성을  극히 적다. 따라서 인자에 대한 이런 용법이 가장 잘 부합하는 유일한 역사적 배경은 예수의 사역이다. 또한 우리는 예수가 성서에 대한 읽기나 이미지 사용에서 창조적이고 독창적이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예수가 성전 강화에서 다니엘서 7장을 다시 사용한 것은 마가복음 12장에 나오는 축소판과 나란히 서있는 대규모의 메시아적 수수께끼를 이룬다. 그것은 다시 한 번 예수의 성전행위의 의미를 강조하면서 그의 하나님나라 선포의 세 가지 주된 의미들 중 하나였던 포로귀환이 예수가 구현할 소명임을 새롭고 극적인 방식으로 말하고 있다.

 

 (b) 재판받는 예수

 

   마가복음 14장과 그 병행문들에 나오는 재판 이야기는 여러 가지 근거 위에서 그 역사성이 비판을 받아왔다. 그러나 이런 비판들은 그 자체로 많은 문제점들을 안고 있으며 재판 이야기는 가야바 앞에서 이루어진 심문 내용에 초점을 맞추어 접근해야 한다. 후대의 많은 신학적 요소들이 배어있는 것 같은 재판 이야기를 역사적으로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이것을 위한 역사적 토대는 다음 두 가지가 될 것이다. 첫째는 예수는 성전에 대한 권세를 가지고 있던 왕이며 성전이 파괴되고 그의 예언이 실현됨으로써 마침내 신원을 받게 될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둘째는 예수는 메시아를 참칭한 자로서 처형되었다.

 

   그러므로 역사가는 예루살렘에서의 예수의 메시아적 행위들과 말씀들로부터 어떤 단계를 거쳐서 그는 메시아적 죽음에 이르게 된 것인가를 질문해야 한다. 복음서 기자들은 이 질문에 대하여 세 단계의 설명을 해준다. 첫째 로마인들은 예수를 메시아를 참칭하는, 가이사의 질서에 대한 위협 인물로 보았다. 둘째, 로마인들이 예수를 이렇게 본 것은 유대 당국자들이 예수를 그런 식을 고소하였기 때문이다. 셋째, 유대 당국자들이 그런 고소를 한 것은 예수가 메시아처럼 행동하였고 그런 죄목을 인정하였기 때문이다. 

 

   예수가 메시아처럼 행동하고 말했다는 것은 이미 자세히 논증하였으므로 여기서는 예수에 대한 심문의 내용들을 살펴보면서 그 심문이 네 단계에 걸쳐 진행되었음을 다음과 같이 논증하고자 한다. 첫째는 성전에 관한 심문이었는데 이 때 증인들은 예수가 자기 손으로 성전을 헐겠다고 말하고 성전을 삼일 안에 다시 짓겠다고 주장했다고 고소한다. 이런 고소는 상당한 정도의 진실이 담겨있지만 동시에 아주 왜곡된 내용들과 뒤섞여 있기 때문에 장황한 설명이 필요했을 것이고 예수가 이런 고소 앞에서 침묵했다는 것은 이해할만한 일이다. 

 

   두 번째는 메시아직에 관한 심문이었다. 대제사장이 이 질문을 두 번째로 던진 것은 극히 자연스런 일이다. 왜냐하면 예수가 성전에 대한 권세를 주장한 것이라면 그 자연스런 함의는 자신이 메시아임을 주장한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는 두 번째 심문에 긍정하는 대답을 하면서 동시에 자신이 신원을 받게 될 것도 예언한다. 마침내 예수는 자신이 행위 및 말에 의한 수수께끼들을 통해서 암묵적으로 주장했던 것을 공개적으로 인정한 것이다. 더 이상 오해될 수 없는 때에 예수는 다니엘서 7장의 이야기를 자신이 개정한 판본으로 다시 말함으로써 자신이 하나님의 참된 백성의 대표자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므로 예수는 가야바가 시공간적 우주의 종말을 목격할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의 십자가 사건 이후에 일어날 놀랍고 중대한 사건을 목격할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것은 예수의 부활을 주장하는 무리들의 출현 그리고 로마와의 결정적인 충돌을 향해 급속히 전개될 사건들이었다. 이 모든 일들이 일어날 때 가야바는 예수의 주장이 옳다는 것을 인정하게 될 것이며, 예수는 신원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러니까 예수는 가야바의 두 번째 심문에서 자신이 메시야, 이스라엘의 참된 대표자, 계약의 하나님이 그의 나라를 세우기 위해 준비한 인물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이러한 폭발력을 지닌 진술들이 함의하는 것 중에 가야바가 분명히 놓치지 않고 있는 것은 예수의 말이 사실이라면 가야바와 그가 대표하는 체제는 하나님을 대적하고 이스라엘을 압제하는 악의 세력의 일부이며 야훼가 자기 백성을 신원하실 때 심판을 받게 된다는 점이었다.

 

   그런데 두 번째 심문의 대답에 대해 가야바가 신성모독이라고 고소한 것은 역사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누가복음에는 이 구절이 없지만 마태와 마가는 예수가 장차 자신이 신원될 것이라고 말하자 가야바가 신성모독이라고 소리쳤다고 분명하게 말한다. 가야바가 신성모독이라는 죄목을 거론한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해 볼 수 있다.  첫째 예수가 성전 및 기름부음을 받은 대제사장을 대항하였기 때문이다. 결국 예수는 자신이 성전과 대제사장을 대체할 것이라고 주장한 것이니 이는 하나님을 대적한 신성모독 죄에 해당하는 것이다. 둘째는 예수가 자신이 높이 들임을 받아 야훼의 우편에 앉게 된다는 주장을 하였기 때문이다. 야훼 옆의 보좌에 앉는다는 것은 그 자체가 왕적인 지위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예수의 대답은 야훼가 다윗을 통하여 이스라엘을 다스렸듯이 야훼는 이제 메시아인 자신을 통해서 세상을 다스리실 것이라고 주장한 것이었다. 이런 주장은 엄청난 것이었고 가야바가 보기에는 신성모독을 범한 죄였다.

 

  가야바의 심문의 배후에는 예수가 이스라엘을 어그러진 길로 인도하는 거짓 예언자라는 의심이 깔려있었다. 재판 이야기의 장면 전체는 너무도 뚜렷하게 메시아적인데 이는 예수는 자신의 왕적 주장을 함축한 행위들 및 말씀들로 인해 재판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자신이 장차 신원을 받게 될 것이라는 예수의 주장 자체가 메시아적이다. 예수의 메시아적 주장은 자신이 신원 받고 왕의 보좌로 높이 들릴 때에 이것이 악의 전복이며 이스라엘의 진정한 포로귀환이 될 것이라는 주장을 함의한다. 이런 식으로 재판 장면은 예수의 하나님나라 선포의 핵심요소들을 결합하고 있고 이 모든 것들의 초점을 예수에게 두고 있다. 심문 장면 전체는 예수의 성전행위와 그에 뒤이은 수수께끼 같은 말씀들, 그리고 성전 강화를 통해 나타난 예수의 메시아적 주장들을 확증해 주고 절정에 올려놓는다. 따라서 유대 당국자들은 예수의 행위로부터 추론한 죄목을 심문을 통해서 확인하였고 이 죄목으로 예수를 로마 당국자들에게 고소하였으며 그 결과 예수는 메시아를 참칭한 자로 로마에 의해 처형당한 것이 분명하다. 이렇게 가야바의 심문으로부터 로마에 의한 예수의 죽음에 이르기까지 메시아라는 단어를 표제로 한 분명하고도 자연스러운 하나의 흐름이 존재하는 것이 분명하다. 그러므로  예수가 스스로를 메시아라고 생각했다는 것은 확고한 역사적 토대를 가지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4. 예수의 예언자적 사역의 비밀인 메시아직

 

(1) 가이사랴 빌립보

 

   공관복음서는 모두 예수가 아직 갈릴리에서 활동 중일 때부터 제자들이 예수를 메시아로 여기게 되었다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특히 예루살렘으로 여행을 의미있게 해준다. 제자들이 예수를 즉위를 앞둔 왕으로 여겼다면 그 자연스런 결론은 그가 다윗 이래 이스라엘 왕들의 도성이었던 예루살렘으로 가는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예수를 그런 식으로 보게 만든 것인가? 가이사랴 빌립보의 대화를 보면 제자들은 메시아직에 관한 모종의 견해를 가지고 있었고 예수가 거기에 부합한다고 느꼈던 것 같다. 이 때 예수가 자신이 메시아임을 비밀에 부치라고 말한 것을 예수가 스스로 자신의 메시아직을 부정한 것이나 혹은 초대교회가 예수를 메시아로 보게 된 교묘한 설명으로 이해하면 안 된다. 예수의 비밀유지 명령은 예수의 하나님나라 운동이 신속하게 잘못된 부류의 주목을 끌게 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예수는 자신의 메시아직에 대한 몇몇 재정의를 염두에 두고 있었지만 이 시점에서는 제자들이 사용한 메시아라는 호칭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만약 예수가 그 호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예수의 성전행위 및 그것을 둘러싼 수수께끼 같은 말씀들은 설명할 수 없게 되었을 것이다.

 

(2) 초기 사역에서의 메시야적 실천

 

   하나님나라를 선포하는 것과 관련된 예수의 행위는 메시아적인 것으로 의도되었고 또한 그렇게 인식되었을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 예수의 하나님나라 선포 전체는 예수가 그 나라는 자신이 있는 곳에 현존하며 자신을 통해서 활동한다고 믿었음을 보여준다. 예수는 이스라엘의 운명이 자신의 삶 속에서 성취에 도달하고 있다는 것, 자신이 이스라엘이 싸워야 할 싸움을 싸워야 한다는 것, 그리고 자신을 중심으로 이스라엘을 재편하고 새로운 정체성을 부여해야 한다는 것을 믿었다. 그러므로 한 분 하나님 외에는 어떤 왕도 없다는 이스라엘의 열망은 성취되어 가고 있었고 이스라엘이 그 성취를 발견할 수 있는 길은 예수를 따르라는 부르심에 있었다. 역사적으로 이해할 때, 이러한 선포는 그 선포자 자신이 이스라엘의 대표자인 왕이라고 주장하고 있다는 분명한 가능성을 열어준다. 그래서 예수가 하나님나라를 선포했고 교회는 예수를 선포했다는 주장은 시대착오적인 오도이다. 예수의 하나님나라 선포의 양식과 방식은 선포와 초대 그리고 경고 속에 기독론, 즉 자신이 메시아라는 암묵적 주장이 언제나 있었음이 분명하다. 예수는 계속해서 메시아적 행위들을 하였고 그런 행위들을 암묵적인 말로 뒷받침하였다. 여기서 하나님나라의 역설적 성취를 보게 된다. 그것은 하나님나라는 현존하고 메시아도 현존하지만 그 어느 것도 백성들이 예상하던 것과는 달랐다는 것이다. 예수의 하나님나라 선포는 선포자 자신이 하나님나라를 가져오는 자였을 가능성을 열어 놓는다. 그러므로 예루살렘에서의 행위들만이 아니고 예수의 치유사역, 축귀사역, 제자를 부르신 일, 잔치 이야기들 등은 모두 예수가 자신의 사역 전체에 걸쳐 메시아직을 의식적으로 수행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3) 초기 사역에서의 메시야적 말씀들

 

  메시아적 말씀들의 첫 번째 범주는 아주 두드러지는데 그것은 예수가 자신의 사역을 자주 목자의 사역, 특히 잃어버린 양을 찾으러 나선 목자에 비유한 것이다. 이것은 구약성서에 나오는 중요한 왕적 주제들을 연상시킨다. 구약성서에서 목자는 이스라엘의 왕적 직무에 대한 비유였다. 그러므로 예수가 사용한 목자 이미지는 메시아적 역할과 기대를 연상시키는 유대적 배경 속에서 이해될 수 있다. 초대교회가 이런 이미지를 자신의 선포의 주된 주제로 다루지 않았다는 사실은 이러한 용법이 예수 자신에게로 소급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또한 이것은 예수가 암묵적인 메시아 실천에 수반되었던 암호 같은 말씀들 속에서 스스로를 메시아라고 주장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탄탄한 역사적 토대에 서있다. 예수는 이스라엘의 참된 왕이 와서 그의 양떼를 찾을 것이라는 구체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었고, 이 이야기는 포로생활과 지도자들의 실정에 의해 고통 받고 있는 이스라엘이 마침내 회복될 것을 말하는 하나님나라 선포의 초점이었다.

 

  이와 동일한 결론은 예수가 논란이 된 자신의 행위를 설명한 두 개의 암호 같은 말씀들에서도 고찰된다. 예수는 그 설명에서 왕과 관련된 전승을 상기시키고 있다. 첫 번째는 예수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이삭을 자른 일에 관한 논쟁인데, 여기서 예수는 다윗의 예를 가지고 자신이 다윗과 비슷한 상황 속에 있음을 이야기함으로써 자신이 왕적 메시아임을 암묵적으로 주장하였다. 둘째는. 예수가 자신을 솔로몬과 비교하여 솔로몬보다 더 크다고 주장한 것이다. 성전을 지었던 솔로몬은 분명히 메시아적 모형이다. 그러므로 예수는 자신이 참된 메시아이며 종말론적인 성전을 지울 자이며, 자신을 통해서 다윗의 나라가 회복될 것을 주장한 것이다. 또한 이 말씀의 맥락은 열방들이 메시아에게 와서 복종할 것을 말함으로써 하나님나라를 통해서 전 세계적인 회복이 이루어질 것을 암시한 것이다. 이로써 분명한 것은 예수가 자신의 사역을 메시아적인 것으로 인식한 것은 예루살렘에 당도해서 갑작스럽게 시작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예수의 공생애 전체에 걸친 실천과 이야기들은 그가 사역 초기부터 자신의 메시아적 소명을 인식하였음을 보여준다.

 

(4) 처음부터 메시야 사역이었는가?

 

   복음서들은 모두 예수의 공생애 사역의 실천, 상징들, 이야기들, 가르침들 배후에 있는 소명 기사를 제공해 준다. 물론 이런 기사를 역사적으로 재구성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그러나 우리가 제시한 가설들이 역사적 개연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라면 예수의 소명의 뿌리를 추적하는 일은 의미가 있다. 예수가 세례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았다는 것, 그리고 예수가 메시아적 권세를 행사하는 것과 관련하여 도전을 받았을 때 요한의 세례를 다시 언급한 것, 이 두 가지 복음서의 전승은 요한의 세례를 예수의 메시아적 소명이라는 관점에서 보고 있다. 그렇다면 예수가 이스라엘의 메시아로 활동하도록 부르심을 받은 것 또는 그런 소명에 대한 예수의 인식을 출발점은 바로 요한에게 세례를 받던 때였을 것으로 보아야 한다. 예수가 요한에게 세례를 받을 때 들려온 목소리의 배후에 있는 시편2:7과 이사야42:1은 이 메시아적 소명이 바로 세례의 의미임을 보여준다. 이 본문이 부활사건 이후의 교회의 성찰에 의해 영향을 받았다고 할지라도, 역사적으로 세례 시에 예수가 메시아적 소명을 인식하게 되었다는 것을 부정할 근거는 전혀 없다. 

 

(5) 예언자적/메시야적 사역

 

   따라서 예수의 선포의 모든 흐름들은 외적인 지향성과 내적인 지향성을 모두 갖고 있다. 예수의 메시지는 이스라엘의 계약의 하나님이 예수 자신의 사역 속에서 행하고 계신다는 이야기였다. 예수가 있는 곳에 하나님나라는 이미 현존하고 있었고 하나님나라의 현존은 바로 예수가 거기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예수와의 교제로 초대되는 것은 곧 하나님나라 속으로 초대되는 것이었다. 이스라엘은 예수를 중심으로 재구성되고 있었고, 예수의 말씀 속에서 죄 사함과 치유를 발견할 수 있었다. 예수가 제공한 초대와 환영, 그리고 그것이 반대자들에게 불러일으켰던 분노는 오직 예수가 자신이 이스라엘을 대표하고 있다고 주장하였다고 할 때만 의미를 갖게 된다.

 

  예언자로서 예수는 제자들을 불러 모았고 그들을 갱신된 이스라엘 포로에서 귀환한 야훼의 백성으로 간주하였다. 그러므로 예수는 자신을 이스라엘 자체, 이스라엘의 대표자, 자신 속에서 이스라엘의 운명을 절정에 도달하게 하는 자, 곧 메시아라고 생각했음이 분명하다. 예수의 모든 행위들, 메시지, 경고, 초대, 환영은 이런 토대에서만 의미를 지닌다.

 

5. 결론: 예수와 포로생활로부터의 귀환

 

   예수는 자신이 야훼의 백성, 포로생활로부터 돌아온 백성, 갱신된 계약의 백성, 죄 사함을 받은 백성의 초점이라고 믿었다. 그리고 예수는 자신이 토라의 참된 해석자, 성전의 참된 건축자, 지혜의 참된 대변자였다고 주장했다. 예수의 이런 모든 주장은 놀라운 것이었지만, 그렇다고 예수가 하스모네 왕가나 헤롯 왕가와 같은 세속적 왕권을 주장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예수의 추종자들은 예수의 주장을 그런 세속적 왕권의 견지에서 보았고 예수도 그런 죄목으로 처형되었다. 예수의 주장은 당시의 대중적인 메시아적 기대를 가져다가 예수 자신의 하나님나라 과제를 중심으로 재정의한 메시아직에 대한 주장이었다.

 

  예수가 주장한 메시아직은 당국자들로 하여금 그를 처형하게 한 것, 제자들이 그의 부활을 메시아로서 예수를 재확인해준 것이라고 믿은 것과 충분히 유사하지만 동시에 당국자들이나 제자들이 예수에 대해 생각하던 것과는 상당히 다른 메시아직이었다. 이렇게 예수가 재정의한 메시아직 개념은 그의 하나님나라 실천(5장), 그의 하나님나라 이야기들(6,7,8장), 그의 하나님나라 상징들(9장)과 일치하며 또한 하나님나라와 관련된 핵심 질문들(10장)에 대한 중심적 대답이었다. 예수의 메시아직은 아무도 생각지 못한 방식으로 이스라엘의 운명을 성취하는 것이었다. 예수는 포로생활의 종결, 계약의 갱신, 죄 사함을 위하여 야훼의 백성의 대표자로 온 메시아였다. 

 
 
3부 예수의 목적과 신념들[12장 예수의 십자가 처형의 이유들]

N.T. 라이트/JVG

2015-06-17 22:59:15


예수와 하나님의 승리

제3부 예수의 목적들과 신념들

제12장 예수의 십자가 처형의 이유들

 

1. 서론

 

   예수는 왜 죽었는가? 로마 당국자들은 왜 예수를 처형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한 것인가? 유대 당국자들은 왜 예수를 죽이기 위해 로마인들에게 넘겨주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 것인가? 예수가 자신의 죽음에 대하여 가진 의도는 무엇이었는가? 왜 주후1세기의 일부 유대인들(초기 그리스도인들)은 메시아를 자처한 이 인물의 죽음을 “그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렸으니” 라는 견지에서 평가한 것인가? 이 문제와 관련하여 신학과 정치를 분리하는 것은 대단히 해로운 것이며 역사의 예수와 신앙의 예수를 구분하였던 예전의 구별법은 이 문제를 오도한다. 또한 이야기들과 사건들이 훨씬 후대에 미친 영향들을 연구함으로써 역사를 재구성하려는 시도도 경계해야 한다. 특히 예수의 죽음의 문제는 예수의 전체적인 과제의 끝부분에 부가된 것이 아니라 적어도 이 둘이(신학과 정치) 실제로 통합되어 발생한 결과이다. 예수의 죽음과 관련된 삼중적인 질문(로마인들, 유대 지도자들, 예수의 의도들)에 접근할 때 우리는 이 문제의 양 끝에 있는 확고한 준거점에서 시작해야 한다. 그것은 하나님나라를 선포한 예언자로서의 예수와 메시아를 참칭한 자로서의 예수의 죽음이다. 

 

2. 로마인들이 제시한 죄목

 

   십자가형은 로마세계 전역에서 강력한 하나의 상징으로서 최대의 모욕과 수치를 안겨다 주는 그런 형벌이었다. 십자가형은 로마와 가이사의 절대 권력을 냉혹하고 잔인하게 역설하는 것이었다. 예수는 로마에 대항한 반역자로서 처형되었고 당시 예루살렘에서의 그에 대한 일반적인 인상은 그가 메시아를 자처하다가 실패하고 처형된 사람들의 부류였을 것이다. 그러나 빌라도나 유대 제사장들은 모두 예수가 그런 죄를 범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고 볼 만한 근거가 있다. 물론 예수의 하나님나라 선포는 청중들에게 모종의 혁명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었을 것이다. 야훼가 마침내 왕이 되신다면 가이사를 비롯한 수많은 통치자들의 권력은 상대화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는 말씀과 실천을 통해서 하나님나라를 재정의했기 때문에 청중들은 그가 당시에 메시아를 자칭하던 실패한 혁명가들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빌라도에 대한 필로의 묘사에 의하면 빌라도는 유대인들의 기를 꺾기위하여 그들이 원하는 것을 가능한 거부하려는 동시에 자신의 유대 통치에 대한 소식이 티베리우스에게 새어 나갈까 두려워하는 인물이었다. 빌라도가 손을 씻는 저 유명한 장면은 자신의 완전한 권한 안에 있던 일에 대해 책임을 회피하려는 공허하고 경멸스런 상징이었다. 빌라도가 예수의 사형을 거부한 것은 그가 예수를 선하고 의롭다고 생각했기 때문이 아니라 유대의 고위 제사장들이 원하는 것과 반대되는 것을 행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물론 복음서 전승에 따르면 빌라도는 예수가 통상적인 유대 혁명가가 아님을 알아차렸고 이것은 빌라도가 유대 제사장들의 요청을 거부할 빌미를 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빌라도는 거부하는데 실패하고 말았다. 왜냐하면 유대 지도자들은 빌라도에게 이 반란자 유대인의 왕을 처형하지 않는다면 가이사에게 충성하지 않는 것이라고 협박했기 때문이었다. 역사적으로, 정치적으로, 감정적으로 이런 일련의 과정은 완벽하게 의미가 통한다.

 

3. 유대인들이 제시한 죄목

 

  이 주제를 두 개의 외적인 준거점에서 시작하여 재판 기사를 향해 나아가는 방향으로 논증하고자 한다. 그것은 예수의 성전행위와 빌라도 앞에서의 재판이다. 예수의 성전행위는 곧바로 메시아직에 관한 질문으로 이어졌다. 메시아직에 대한 예수의 명확한 주장은 별 어려움 없이 빌라도에게 예수의 죄목으로 적용될 수 있었다. 그러나 예수를 빌라도에게 고소한 유대법정은 예수가 갈릴리 유다와 같은 폭력적 혁명가로서 메시아를 참칭한 자가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만약  예수가 그런 방식으로 메시아를 참칭한 자로 간주했다면 그 추종자들을 함께 체포했을 것이다. 사실 유대법정도 빌라도도 예수가 자신들에게 실제적인 위협을 주었다고 생각할 수 없었다. 예수의 운동은 그런 폭력적 혁명운동이 아니었고 아무도 그런 운동이라고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유대 당국자들은 예수를 제거하기로 결심한 것인가?

 

   후대의 유대교 전승은 예수가 이스라엘을 어그러진 길로 유혹하고 인도했기 때문에 죽임을 당했다고 말한다. 이 전승은 예수가 유대교 율법에서 사형으로 처벌할 수 있는 범죄를 범하였기 때문에 죽임을 당했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렇다면 왜 그들은 예수가 백성들을 어그러진 길로 인도한다고 생각한 것일까? 예수는 당시 유대교의 가장 중심적이고 소중한 상징들을 배제하고 그것들을 예수 자신에 대한 충성으로 대체한 과제들을 제시했다. 사람들이 보기에 예수는 토라와 성전에 반대하여 말하고 행동하였으며 말과 모범과 권능의 행위들을 통하여 사람들을 그런 길로 이끌고 있는 것 같았다. 그들은 예수를 이스라엘을 어그러진 길로 이끌기 위하여 기사와 이적들을 행하는 거짓 예언자로 보았던 것이다. 바로 이것이 가야바의 심문의 진정한 배후였다.

 

   예수를 심문하는 가야바의 표면적 관심은 로마에 대항하여 반란을 이끄는 자였다. 왜냐하면 이것이 발라도 앞에서 먹혀들어갈 수 있는 죄목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 배후에는 예수가 율법에 의하면, 사형에 해당하는 범죄를 저질렀다는 유대법정의 결정이 있었다. 사실 일반 백성들은 예수가 빌라도가 체포해서 사형을 집행할 만한 그런 폭력적 혁명가이기를 원했을 것이다. 만일 예수가 그런 부류의 혁명가였는데 유대지도자들이 그를 빌라도에게 넘겨주었다면 그것은 오히려 폭동을 촉진시키는 결과를 낳았을 것이다. 백성들의 반로마적 폭동은 유대지도자들이 정말 피하고 싶었던 사태였기 때문에 예수가 폭력적 혁명가였다는 설명은 역사적 맥락에 부합되지 않는다. 유대법정은 예수를 이스라엘을 어그러진 길로 유혹하는 거짓 예언자라고 판단했고 그래서 헤롯과 로마인들은 예수를 메시아를 참칭한 자이며 예언자 노릇하는 자라고 조롱한 것이다.

 

   유대율법을 진지하게 지켰던 사람들은 당시에 통용되던 과제들과 토라 해석이라는 견지에게 볼 때 예수가 이스라엘을 어그러진 길로 인도한다는 결론을 내리지 않을 수 없었다. 예수는 표적들을 행하고 있었고 내버려 두면 백성들은 그를 좇아 어그러진 길로 가게 될 것이다. 성전 그리고 민족의 삶 자체가 위기에 처해있다. 이런 것들이 예수의 심문 배후에 있는 진정한 쟁점이었다. 그래서 유대법정은 성전과 토라를 반대하는 자, 거짓 예언자라는 죄목으로 예수를 심문한 것이다. 이 심문에서 예수는 죄목들을 모두 인정할 뿐 아니라 자기가 장차 신원될 것이라고 예언하는 신성모독죄를 추가함으로써 결코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들었다. 

 

   유대 당국자들이 예수를 사형 죄에 해당하는 죄목으로 빌라도에게 넘긴 이유는 다음과 같다. 유대 당국자들은 예수를 이스라엘을 어그러진 길로 인도하는 거짓 예언자로 보았다. 특히 그들은 예수의 성전행위가 민족의 삶뿐 아니라 유대교의 중심상징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했다. 비록 예수는 조직화된 군사적 혁명을 이끌지 않았지만 그들은 메시아를 참칭하는 예수가 중대한 혁명 활동의 구심점이 될 것을 우려하였다. 결국 그들은 예수를 성전과 민족에 대한 로마의 진노를 불러일으킬 행동을 할 수 있는 위험스러운 정치적 인물로 보았다. 유대 당국자들에게 예수는 이스라엘을 어그러진 길로 인도하는 거짓 예언자이자 신성모독을 행한 자였으며 자신들에게는 위험스런 정치적 골칫거리였다. 이 모든 것 때문에 유대 당국자들은 예수를 죽여야 했고 그래서 예수를 정치적 선동자로 포장해 빌라도에게 넘겨준 것이다.

 

4. 예수의 의도: 핵심 상징

 

(1) 서론

 

   예수는 자신이 죽었던 그런 방식으로 죽고자 의도했던 것인가? 만약 그렇다면 왜 그러했는가? 슈바이처는 예수의 전기들을 예수가 사역하기 위하여 예루살렘에 갔다고 본 전기들과 예수가 죽기 위하여 예루살렘에 갔다고 본 전기들의 두 부류로 나누면서 후자의 길을 강력하게 옹호했다. 이 주제를 다루기 위해서는 고립적인 말씀들을 연구하기 전에 예수의 실천, 이야기, 상징에서 시작해야 한다.

 

(2) 최후의 만찬: 상징과 의미

 

 (a) 서론

 

  예수가 제자들과 함께 한 마지막 식사는 의도적인 이중적 드라마였다고 볼 수 있다. 이 유월절 식사는 뒤로는 역사적 출애굽을 돌아보고 앞으로는 미래의 위대한 새로운 출애굽, 곧 포로귀환을 내다보면서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에 대하여 이야기한 것이었다. 예수는 이 위대한 이야기를 자신의 삶과 다가올 죽음에 관한 이야기와 융합시킴으로써 자신이 이 위대한 이야기의 구경꾼이 아니라 이 이야기의 중심인물임을 드러내었다.

 

 (b) 최후의 만찬과 유월절

 

   물론 이것은 최후의 만찬이 이런저런 의미에서 유월절 식사였다는 것을 전제한다. 그 날짜와 관련하여 그것이 정말 유월절 식사였는지는 논란이 있지만 그것이 일종의 유월절 식사였다는 것이 상당히 확실하다. 지금까지 살펴본 예수의 과제 및 통상적인 활동방식을 고려한다면 예수가 유월절 절기를 공식적으로 정해진 날에 기념했을 것이라고 상정할 이유는 전혀 없다. 왜냐하면 성서의 규례에 따르면 어쩔 수 없는 경우에는 유월절은 규정된 것과 다른 때에 지키는 것이 허용되었고 예수가 자기 앞에 닥친 문제를 고려할 때 유월절을 다른 때에 지킬 충분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예수가 자신의 사역 전체에 걸쳐서 동시대인들의 상징 세계를 자신의 삶과 사명을 중심으로 재조직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예수가 하루 일찍 유월절 식사를 특별하게 준비했다는 것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이제까지 탐구의 흐름들은 예수가 이 식사를 유월절의 상징체계 및 그것이 역사와 소망이라는 관점에서 의미하는 모든 것을 자신과 자신에게 다가올 운명과 결부시키는 적절한 방식으로 보았다는 것을 암시해준다.

 

   그렇다면 유월절 식사로서의 예수의 최후의 만찬은 무슨 이야기를 말해주는가? 당연히 이 식사는 유대인들의 모든 유월절 식사와 마찬가지로 출애굽에 대해 말하고 있다. 주후1세기 유대인들에게 출애굽은 포로생활로부터 귀환, 위대한 계약의 갱신, 죄 사함, 야훼께서 돌아오심을 의미하는 이야기였다. 그것은 절정에 도달해 있던 이스라엘을 위한 야훼의 기이한 구원에 관한 이야기였다. 나아가 이 식사는 예수 자신의 하나님나라 운동의 절정을 보여주는 것으로서 주후1세기 유대인들이 기다리는 새로운 출애굽이 예수 자신 안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였다. 예수가 이 전통적인 식사에 부여하였던 새로운 의미는 이 식사를 예수의 성전행위와 연결시킬 때 드러나게 된다. 예수의 성전행위와 예수의 유월절 식사는 모두 예수를 중심으로 기이하고 새롭게 그려진 이스라엘의 운명이 예기치 않게 성취될 것을 보여주는 예언자적 상징이었다.

 

   그렇다면 예수는 유월절을 희생제물인 어린 양을 꼭 필요로 했던 통상적인 유대의 연례적인 절기로 지킨 것이 아니었다고 볼 수 있고 이런 관점에서는 예수가 정해진 날에 유월절을 기념하지 않는 것이 어쩌면 당연했다고까지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예수가 하나님나라가 곧 동터올 것을 믿었다면 예수는 식사의 상징성을 효과적으로 드러내기 위하여 형식은 유지했겠지만 통상적인 유월절 식사와는 구별했을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 예수의 유월절 식사의 상징적 및 서사적 의미를 규명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성전행위와 연결시켜야 하는데 그 연결점은 예수가 성전 체제와 자신의 임박한 죽음을 대비시킨 것이다. 이런 가설의 타당성은 예수가 유대인들의 기대와 소망에 대한 전승 전체를 의도적으로 자기 자신에게 통합시켰다는 증거로부터 분명하게 드러난다. 예수는 자신을 메시아, 위대한 하나님의 해방 행위의 주인공으로 보았고 그래서 이스라엘의 삶과 소망의 중심을 이루고 있던 상징들을 모두 자신을 중심으로 다시 그린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의 유월절 식사는 고립된 독립적인 사건이 아니라 예수의 전체적인 삶과 과제, 그리고 임박한 죽음에서 그 의미를 획득한다. 유월절 식사는 예수가 자신의 임박한 죽음에 자신이 믿었던 의미를 부여하기 위하여 선택한 방식이었다. 떡과 포도주와 관련된 예수의 행위들은 히브리 성서에 나오는 예언자들의 상징 행위들과 동일한 방식으로 보아야 한다. 예수는 이와 동일한 방식으로 식사에서의 행위들을 통해 이 식사 전체의 의미를 강화시키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예수가 자신의 전 사역을 통해 선포해 왔던 하나님나라 과제는 이제 마침내 그 궁극적인 목적지에 거의 도달해 가고 있었다. 그러므로 예수는 유월절 식사를 통해 과거의 출애굽을 되돌아보고 자신의 죽음을 통해 곧 도래할 새로운 출애굽, 곧 자신이 선포한 하나님나라를 상징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

 

 (c) 상징에서 말씀으로

 

   유월절 식사의 행위 속에 내재한 상징과 암묵적인 이야기가 이 식사의 일차적인 의미를 만들어 낸다면 거기에 더해진 말씀들은 그 의미의 세부적인 내용들을 드러낸다. 예수가 유월절 식사를 자신과 관련시켜 재해석하면서 한 말씀들은, 예수가 곧 일어날 하나님나라 사건들이 출애굽에서 시작된 이스라엘 역사의 절정이라고 주장한 것으로 이해되었을 것이다. 떡을 자신의 몸과 동일시한 예수의 말씀은 자신이 죽을 것과 자신의 죽음이 제자들을 위한 생명의 근원이 될 것임을 예언적으로 보여준 것이었다. 잔을 자신의 피와 동일시한 예수의 말씀은 예수의 다가올 죽음이 계약의 갱신, 즉 이스라엘이 그토록 열망해 왔던 포로생활부터의 귀환을 가져올 것임을 예언적으로 보여준 것이었다.

 

   최후의 만찬에서의 예수의 이런 행위들과 말씀들은 그의 예루살렘 입성과 성전행위들과의 밀접한 관련 속에서 보아야 한다. 예수가 유월절 식사의 잔을 자신의 죽음이란 관점에서 말하면서 계약의 갱신을 암시하고자 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특히 마태복음은 이 잔이 ‘죄 사함을 위한 것’이라는 어구를 첨가했는데, 주후1세기 유대인들의 맥락에서 계약의 갱신이나 죄 사함은 매우 구체적인 기대 즉 포로생활로부터 구원을 의미했다. 그러므로 마태는 예수의 죽음이 추상적인 속죄를 가져온다고 말한 것이 아니라 예수의 죽음이 야훼의 백성을 그들의 포로생활이라는 곤경으로부터 구원해 내는 수단이 될 것이라고 말한 것이다. 

 

   공관복음서들은 모두 유월절 식사가 하나님나라가 도래하기 전에 제자들과의 마지막 식사라고 한 예수의 말씀을 포함한다. 이런 말씀들은 예수의 사역이 지닌 종말론적이고 묵시론적인 배경을 전제할 때만 의미를 가진다. 누가복음과 바울서신들은 이 식사를 예수 자신을 기념하는 방식으로 계속해서 지키라는 예수의 명령을 포함하고 있는데, 그것은 예수가 이미 성취한 메시아적 행위를 기념하라는 의도였을 것이다. 이 모든 것은 예수가 실제로 자신이 곧 죽을 것이고 자신의 죽음이 하나님나라의 목적을 성취하는 종말론적 계획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했을 때만 의미를 갖게 된다.

 

 (d) 결론

 

   대부분의 학자들은 예수가 죽기 전날 밤에 최후의 식사를 하였고 이것은 적어도 유월절 주간에 일어났다는데 동의한다. 이런 강력한 합의에 근거해서 이 식사는 매우 강력한 상징성을 내포하고 있었고 이스라엘의 가장 영향력 있는 이야기들 중 하나를 다시 말한 것을 포함하고 있다고 논증하였다. 그리고 이 식사에서 상징적 행위에 첨가된 말씀들은 비록 개략적이지만 예수가 자신이 곧 죽을 것이며, 자신의 죽음은 이스라엘에 대한 야훼의 구속이라는 더 큰 이야기 속에서 보아야 한다는 것을 의도했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결론적으로 예수는 이 식사를 통해서 다음 두 가지를 주장하였다고 볼 수 있다. 첫째로, 예수는 자신의 죽음이 출애굽을 배경으로 지금까지 진행되어 왔던 이스라엘 이야기의 바로 그 중심이며 절정이라고 주장하였다. 둘째로, 예수는 이 식사에 참여한 제자들이 갱신된 계약의 백성, 죄 사함을 받은 백성, 포로귀환을 경험한 백성, 곧 참된 종말론적 이스라엘이라고 주장하였다.

 

5. 예수의 의도: 말씀들과 상징

 

(1) 서론

 

   예수는 이스라엘 역사를 그 목표지점으로 도달하게 해 줄 운동으로서 하나님나라에 관한 이야기를 하였다.(6장,7장,8장) 예수의 예언자적 상징적 실천은 끊임없이 이러한 방향을 보여주었다.(5장,9장) 그렇다면 그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예수는 생각했던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한 두 가지 강력한 단서는 예수가 세계관의 질문들과 관련하여 암묵적으로 제시했던 대답들(10장)과 제자들에게 들려주었던 이야기들(7장)이다. 여기서 예수는 모종의 싸움을 내다보고 있었다는 것이 드러나는데 그것은 메시아적 과제의 일부로써 하나님나라가 도래하기 위하여 꼭 이루어져야 할 것 중의 하나였다. 그러나 그 싸움의 대상은 이방의 점령군이 아니라 그들 배후에서 야훼의 백성을 하수인으로 삼아서 이교도의 길을 가게하고 야훼의 나라를 무력과 군사력으로 이루려던 고소하는 자 사탄이었다. 예수는 이스라엘 전통의 수호자로 자처한 유대 통치자들과의 충돌을 그런 싸움의 일부로 인식하였던 것으로 보인다.(9장) 예수는 그런 충돌을 하나님나라를 가져와야 할 자신의 소명과 이스라엘을 어그러진 길로 인도하려는 유대 통치자들과의 대결로 보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가 한 이야기들, 행동으로 보여준 상징들은 종교적 정치적 체제의 정적인 혹은 무시간적 지표들이 아니라 진정한 원수와의 싸움이었고 그 위대한 사건을 지향한 것이었다.

 

   그렇다면 그러한 싸움의 방식은 어떤 것이었을까?  제자들에게 들려준 하나님나라 이야기들(7장)에서 예수는 기이한 종류의 혁명을 촉구하였다. 그것은 군사적이고 무력적인 싸움을 통해서가 아니라 원수를 사랑하고 핍박하는 자들을 위해 기도하는 방식을 통하여 이스라엘이 세상의 빛이 되는 이중적 혁명의 촉구였다. 예수는 당시의 인습적인 가짜 지혜와 반대되는 참되고 전복적인 지혜를 제시하였고 그러한 전복적 지혜의 중심에는 자신이 들려주는 하나님나라 이야기 속에 참여하라는 부르심이 있었다. 이렇게 예수는 제자들에게 온 세상을 위한 이스라엘이 되는 구체적인 길을 제시하면서 그 길을 자신의 소명으로, 자신을 통해 도래할 하나님나라에 대한 신념으로 삼았다. 그래서 예수는 다른 쪽 뺨을 돌려대고, 십리를 더 가주며, 결국은 십자가를 짐으로써 세상을 비추는 빛이 되고, 이 땅의 소금이 되고자 하였다. 예수가 악과 싸우는 방식은 그의 하나님나라 선포의 철저한 전복적 성격과 부합하는 방식이었다. 예수는 악이 그에게 최악의 것을(곧 십자가의 처형) 행하도록 허용함으로써 악을 패배시킬 것이며 그리하여 자신 속에 갱신된 이스라엘을 구현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유월절 식사에서 보여준 예수의 행위는 이스라엘의 상징 세계에 대한 그의 재구성의 절정이었으며 그의 사역, 그의 하나님나라 이야기, 그의 예언자적 실천, 전체로부터 그 의미를 획득하게 된다.

 

(2) 십자가에 관한 수수께끼 같은 말씀들

 

 (a) 거부당한 아들

 

   예수의 성전행위에 신학적인 의미를 부여해준 이야기는 악한 농부의 비유이다. 이 비유가 지닌 예언적, 서사적 상징성은 성전에 대한 예수의 도전이 결국 이스라엘 전통의 수호자들이 야훼로부터 온 그의 메시지에 응답하기를 거부했기 때문에 그의 죽음을 가져올 것이라는 예수의 인식을 보여준다. 

 

 (b) 가장 큰 계명

 

   야훼 사랑과 이웃 사랑이 모든 번제들과 희생제물보다 더 중요하다는 서기관의 대답에 대한 예수의 긍정은 야훼에 대한 사랑과 이웃에 대한 사랑을 핵심으로 한 예수의 하나님나라 과제는 희생제사 제도가 더 이상 불필요하게 될 것임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이 둘은 성전행위의 의미와 만찬행위의 의미를 암시해주는데 전자가 성전에 대한 심판의 행위였다면 후자는 성전의 대체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c) 매장을 위해 기름부음

 

   복음서들은 모두 한 여자가 예수에게 기름을 부은 사건을 기록하고 있다. 이 사건에서 나타난 예수의 말씀은 그 여자의 행위에 아주 중대한 상징적 가치를 부여해주었다. 예수는 온 세상에 복음이 전해지는 곳마다 이 여자가 행한 일을 기념하라고 말한다. 이 말씀은 그 자체로는 이상한 암시일일 뿐이지만, 성전과 다락방에서 보여준 상징행위들의 맥락 속에서 이 말씀은 장차 일어날 일에 대한 예수의 인식을 보여주는 기능을 한다. 

 

 (d) 푸른 나무와 마른 나무

 

   누가복음 23장에 나오는 푸른 나무와 마른 나무의 이야기는 예수가 제시한 평화의 길을 거부하고 로마와 대결의 길을 선택한 예루살렘에게 일어날 마지막 경고로 보인다. 호세아 10:8로부터 가져온 인용문은 예수의 동시대인들에게 모든 점에서 부합된다. 예수가 예루살렘의 여자들에게 경고한 심판은 예루살렘 도성이 참된 왕인 예수와 참된 평화의 길인 그의 메시지를 거부한 결과로 임하게 될 황폐화였다. 로마인들의 손에 의한 예수의 죽음은 예수를 거부했던 이스라엘에게 닥칠 운명을 보여주는 가장 분명한 표지였다. 예수는 이스라엘이 회개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군사적 민족주의를 추구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하였다. 예수는 무죄였고 그의 동시대 유대인들은 유죄였던 바로 그런 죄목(군사적 민족주의)으로 로마가 예수를 정죄했다면 실제로 그런 죄를(군사적 민족주의) 범한 유대인들을 로마는 틀림없이 정죄할 것이다. 예수가 푸른 나무라면 이스라엘은 마른 나무였다.

 

   이 말씀은 어둡고 수수께끼 같은 방식으로 예수가 자신의 죽음을 민족의 운명과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이해했음을 보여준다. 예수는 평화의 길을 제시했으나 이스라엘은 거부하였고 예수는 이스라엘에게 거부당한 왕으로 죽은 것이었다. 이렇게 예수는 이스라엘의 고난을 스스로 짊어진 이스라엘의 대표자, 곧 왕으로 죽었다. 그렇지만 그의 죽음에 의해 이스라엘이 심판을 면할 것이라는 암시는 전혀 나오지 않는다. 성전과 민족위에 임할 하나님의 심판, 이교 세력들의 손에 의한 끔찍한 초토화라는 심판을 선포한 후에, 예수는 지금 이스라엘 민족에 앞서서 반역한 백성들에게 임할 하나님의 심판을 상징하는 그런 형벌을 받으러 가고 있었다. 로마가 자신에게 대항하여 반역을 선동하지 않았던 한 혁명가에게 이렇게 하였다면 로마에 대항하여 반기를 든 이스라엘에게는 어떻게 하겠는가! 

 

 (e) 암탉과 병아리들

 

   예수의 중심적인 상징행위들과 관련해야만 이해될 수 있는 또 하나의 수수께끼 같은 말씀이 마태 23장과 누가 13장에 나오는 암탉과 병아리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의 그림은 통상적으로 히브리 성서에서 이스라엘 자손이 야훼의 날개 아래 피난처를 삼는 것을 암시한다. 이런 이미지는 예수가 예루살렘에 임할 운명을 자신이 겪게 될 것이며 이스라엘은 그런 운명을 모면하기를 원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 수수께끼 같은 말씀은 이스라엘에게 그 기회가 있었으나 무산되고 말았다는 것을 아주 분명하게 보여준다. 또한 이 비유는 이스라엘이 예수가 제시한 피난처를 구하고 발견하는데 실패한 것에 대한 예수의 절망과 특히 성전에 대한 심판이란 주제를 결합시킨다. 

 

  이 이야기에서 다음과 같은 의미를 추론해볼 수 있다. 예수는 자신이 평범한 순례자로서 예루살렘에 온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참된 성전 건축자로 보았다. 야훼께서 버린 현재의 성전은 예수의 평화의 메시지, 예수가 제시한 길을 거부함으로써 멸망의 위협아래 놓여 있었다. 그러므로 유일한 해결책은 예수를 참된 건축자로 인정하고 그를 영접함으로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실제로 모퉁이 돌이 되게 하는 것이었다. 이런 식으로 이 수수께끼 같은 말씀은 메시아적인 말씀들과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고, 메시아의 소명은 스스로 이스라엘의 운명을 짊어짐으로써 예루살렘을 다가올 멸망으로부터 구하는 것을 포함하고 있다.

 

 (f) 세례와 잔

 

   세례와 잔에 대한 말씀( 눅12:49-50, 막10:38-40)은 예수는 자신의 메시아적 사역의 일부로서, 오직 은유로만 온전하게 묘사될 수 있었던 사건을 통해, 하나님나라를 위한 싸움을 종결지을 소명을 알고 있었음을 암시한다. 여기에서 세례와 관련된 은유는 예수의 공생애 사역이 그것이 시작되었던 방식으로 끝날 것임을 내다보는 것 같다. 요한의 세례가 출애굽을 상기시켰고, 자신의 운명을 지시하는 예수의 중심적이고 최종적인 상징행위가 출애굽을 다시 한 번 상기시켰다고 한다면, 이 은유가 앞으로 예수가 겪게 될 운명에 대한 암시로써 그리고 그 운명에 출애굽과 같은 의미를 부여한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잔에 대한 은유도 여기 문맥에서는 예수의 제자들에 대한 경고, 그리고 이스라엘에게 예언된 고난을 짊어져야 할 예수의 기이한 운명을 보여준다. 예수는 자신이 고난을 받고 죽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예수는 일련의 이미지들을 통하여 자신의 죽음이 하나님이 주신 운명일 뿐 아니라 자신의 사역과 이스라엘의 운명을 한데 묶은 소명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g) 수수께끼 같은 말씀들의 진정성

 

   예수의 성전행위 이후에 등장한 메시아적인 수수께끼 같은 말들은 그것들의 형태 자체가 원래 예수에게서 나왔다는 것을 보여주는 강력한 지표다. 왜냐하면 초대교회는 예수의 메시아직에 관해 말하기를 꺼려하지 않았고 수수께끼 같은 말씀들을 통해 말하고자 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런 수수께끼 같은 말씀들이 속할 수 있는 유일한 지점은 바로 예수의 사역 자체이다. 예수의 죽음의 의미를 지시해 주는 수수께끼 같은 말씀들도 마찬가지이다. 초대교회는 예수의 죽음에 관한 풍부하고 다양한 해석을 발전시키기를 꺼려하지 않았다. 최초의 그리스도인들은 예수의 죽음을 수수께끼 같은 말을 통해서 할 필요가 없었다. 또한 이런 수수께끼 같은 말씀들은 바울 서신에서 분명하게 보이는 초기의 속죄신학의 단초들로부터도 자유롭다. 이 수수께끼 같은 말씀들은 예수의 다가올 비극적 죽음에 관해서만 말할 뿐, 그것으로 인하여 얻어질 구속에 관해서는 전혀 말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 말씀들은 후대의 역사를 예언으로 둔갑시킨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수수께끼 같은 이 말씀들은 초기 기독교의 속죄신학에 대해 말하고 있지 않지만, 예수의 중심적 상징행위를 둘러싼 이런 말씀들이 속죄신학을 발전시킬 수 있는 모판을 제공했을 가능성은 대단히 높다.

 

(3) 수난 예고들

 

   그동안 수난예고는 예수의 사고의 특징적인 그 무엇을 반영한 것이 아니라 초기 기독교의 변증학과 속죄신학을 반영한 사후예언들로 치부되어 왔다. 그러나 지금까지 살펴본 수수께끼 같은 말씀들은 예수의 소명을 수난예고들과 아주 잘 부합하는 구체적인 형태로 보여 준다.

 

6. 예수의 의도: 유대교의 종말론적 구속

 

(1) 서론

 

   예수가 이스라엘의 대표자로서 자신의 고난과 죽음을 통해서 하나님나라가 오게 될 것이라고 인식했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다시 제2성전 시대 유대교의 복잡다단한 배경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그리고 이야기와 상징에 의해 생성되고 지탱되는 실천 그리고 세계관과 관련된 질문으로 돌아가야 한다.

 

(2) 지배적인 이야기: 포로생활과 회복

 

   주후1세기 유대인들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범주는 현재의 악한 시대인 포로생활과 다가올 새 시대의 회복이라는 범주였다. 그리고 주후1세기 유대교에서 포로생활은 아직 끝나지 않은 것이었다. 이사야를 비롯한 여러 예언자들이 약속했던 때는 아직 오지 않았고 빌라도와 헤롯 그리고 가야바가 통치하고 있는 한, 하나님나라는 아직 온 것이 아니었다. 이교도들의 압제가 현재의 악한 시대의 표징이라면 다가올 새 시대의 표징은 야훼가 자기 백성들을 신원하심으로 성취될 자유와 평화였다. 이 시대에 포로생활로부터 귀환과 죄 사함은 동일한 의미였다. 이방의 통치아래 있는 한 이스라엘은 아직 죄 사함을 받은 것이 아니었다. 포로생활로부터의 귀환에 대한 유대인들의 열망의 역사적이고 신학적인 주제는 물론 출애굽이었다. 제2성전 시대 유대교의 역사적, 정치적, 신학적 세계관에서 출애굽 이야기가 차지하고 있는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할 것이다.

 

(3) 첫 번째 부차적 줄거리: 메시야적 화들

 

   제2성전 시대 유대인들은 위대한 구원이 강렬한 고난을 통과해서 올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므로 고난은 묵시적인 드라마가 그 목표에 도달하는 수단이 될 것이었다. 슈바이처는 메시아적 화들에 관한 제2성전 시대의 기대를 예수가 살고 있던 시대 및 그 시대와 관련된 예수 자신의 소명에 대해 예수가 어떻게 인식하였는가에 대한 결정적 단서라고 보았다. 슈바이처의 이런 주장은 20세기 초의 신학적 감수성에 대한 도전이었고, 이후의 연구에서 많이 인용되거나 논의되지 않았지만, 여기에는 놓치지 말아야 할 역사적 통찰의 핵심이 자리 잡고 있다. 예수는 자신이 이스라엘이 오랫동안 기다려 왔던 야훼의 나라에 관한 드라마에 참여하고 있다고 믿었고 그러므로 그가 주후1세기의 믿음을 따라 하나님나라는 강렬한 고난의 시기를 통과하여 마침내 오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은 아주 당연한 것이다.

 

(4) 두 번째 부차적 줄거리: 특별한 또는 개인적 고난

 

   이스라엘 내에서 고난 받는 개인들의 가장 명백한 범주들은 예언자들이다. 예수 시대의 가장 위대한 예언자는 세례요한이었고 그를 자신의 선구자로 보았던 예수에게 그의 운명은 마음속에 깊이 새겨졌을 것이다. 히브리 성서와 유대문헌의 전승에는 고난 받는 의인에 대한 기사가 많이 있는데 이런 기사들을 관통하는 믿음은 첫째로 순교자들의 운명이 이스라엘 민족 전체의 운명과 결부되어 있다는 것이고, 둘째는 그 결과, 의인이 받는 고난은 이스라엘 민족이 받는 죄에 대한 징벌로서의 포로생활이란 주제를 계승하고 있다는 것이다. 셋째로, 이러한 대표성을 띤 고난은 구속의 역할을 수행한다는 것이다. 순교자들은 천상의 축복과 부활의 생명을 누릴 뿐 아니라 그들이 받은 고난은 민족 전체의 고난을 짊어지는 효과를  지니기 때문에 민족이 고난당하는 것을 면할 수 있게 한다. 이런 것은 주후1세기에 살았던 한 예언자이자 메시아로 자처한 예수가 자신의 소명을 형성하는데 결정적인 작용을 한 사상을 찾아내는 단서가 되기에 충분하다.

 

(5) 성서에 따라서

 

   다니엘서의 전승들은 마카베오 시대에 결정적으로 중요하였으며 또한 이교도들의 통치에 대항한 마카베오 혁명의 전통에 서있던 주후1세기 혁명가들에게 하나의 혁명 헌장으로 수용된 것은 분명하다. 이런 맥락에서 민족의 운명, 특히 성전의 운명과 순교자들의 운명간의 밀접한 연관관계를 발견하게 된다. 다니엘서는 민족의 운명과 순교자의 운명이 함께 결합되어 있다는 주후1세기의 사고방식에 대한 명백한 자료이다.

 

   제2성전 시대에 고난과 순교에 대한 이야기들의 중요한 성서적 배경은 이사야 40-55장에 등장하는 고난 받는 종이다. 이사야의 이 본문은 야훼께서 그의 백성을 포로생활에서 회복하고 위로하실 것이며 그들을 포로로 잡았던 이교도들을 심판하실 것이며 야훼는 친히 시온으로 돌아오셔서 왕으로 다스리실 것이라는 예언이다. 그러므로 종이라는 인물을 이런 하나님나라와 관련된 예언적 맥락과 분리시키는 것은 아주 잘못이다. 

 

    제2성전 시대 유대인들이 자신들의 끊임없는 가혹한 고난에 대해 의미를 찾고자 애쓸 때마다 이사야서는 그들에게 포로귀환과 하나님나라 도래에 대한 영광스런 소망을 제공해 주었을 것이다. 그러한 맥락에서 의인들의 현재의 고난은 야훼의 장기적인 목적들 속에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이해되었을 것이다. 이사야서의 종이라는 인물이 메시아적으로 해석되었다는 증거도 있지만 이러한 메시아적 해석이 유대교가 고난 받는 메시아에 관한 교리를 가지고 있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유대교에서는 이사야서에 나오는 야훼의 종을 이스라엘 또는 세상을 구속하기 위하여 고난 받고 죽는 메시아로 믿는 신앙은 존재하지 않았다. 이사야 본문은 여전히 포로생활을 계속함으로 이스라엘이 겪는 고난으로 이해되고 있었다.

 

  그러나 당시에 이사야 40-55장을 근거로 한 거시적이고 널리 퍼진 믿음이 있었는데 그것은 이스라엘의 현재의 고난은 하나님의 지속적인 목적 속에 자리 잡고 있으며 때가 되면 이런 화의 시기는 끝나고 하나님의 진노가 이스라엘을 압제하던 이방나라들에게 임할 것이라는 믿음이었다. 또한 이스라엘이 현재 받는 고난은 이스라엘의 죄와 관련이 있고 이 죄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또는 이스라엘의 의로운 대표자들이 징벌을 받고 있다는 것, 그리고 이런 고난과 징벌은 이스라엘이 마침내 죄 사함을 받고 포로생활이 끝나는 때를 앞당길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이런 믿음은 추상적인 논쟁으로 얻어진 것이 아니라 가난과 포로생활의 처참한 삶과 순교를 통해서 얻어진 믿음이었다. 다시 말하면 이것은 이스라엘의 고난은 단순히 야훼의 정하신 때에 구속받아야 할 그런 상태일 뿐 아니라 역설적으로 어떤 상황과 의미에서는 고난은 그러한 구속을 가져오는 수단의 일부이기도 했다는 믿음이었다.

 

(6) 결론 : 예수의 유대적 배경

 

   예수는 동시대인들이 이스라엘의 원수들을 대항한 대한 군사적 승리를 기대하고 있었던 바로 그 지점에서 전승에 대한 기존의 해석들에 도전하였다. 예수가 유대인들의 견해에 동조했는가 아니면 반대했는가라는 양자택일식 관점은 지양해야 한다. 복음서에서 증거하는 예수는 유대의 뿌리 깊은 전승을 재확인하는 동시에 그것을 자신의 비전과 소명을 중심으로 재정의하는 인물이다. 예수는 자신의 고난을 이스라엘의 고난과 동일시했지만 유대교에 바울의 속죄신학과 같은 판본은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 다만 현재의 악한 포로 시대를 어떻게 이해할 것이며 이 시대가 어떤 인물을 통해 끝날 것인지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가 있을 뿐이다. 여기서도 이중적 유사성과 상이성을 만나게 된다. 예수의 상징체계와 이야기는 유대세계 안에서만 의미를 가지지만(유사성) 그것들은 유대세계의 어두운 주제에 대한 나름대로의 기이하고 독특한 변형을 보여준다.(상이성) 또한 예수가 행하고 말했던 것은 초기 기독교가 그의 십자가 처형에 대해 말한 것과 상당히 다르지만(상이성), 초기 기독교의 속죄신학은 본질적으로 부활사건 이전의 예수에 대한 이해를 부활 사건 이후에 다시 성찰한 결과로 볼 때만 온전히 설명될 수 있다.(유사성)

 

7. 예수의 의도: 기이한 승리

 

(1) 서론

 

   예수는 성전행위와 만찬행위라는 두 가지 큰 상징적 행위를 통해서 자신의 사역을 통합했다. 만찬행위는 분명히 새로운 출애굽, 계약의 갱신, 죄 사함, 포로귀환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이런 상징적 행위를 중심으로 예수는 자신의 운명과 이스라엘의 운명이 서로 엮여 있음을 보여주는 수수께끼 같은 말을 했다. 이스라엘에게 임박한 멸망과 예수를 기다리고 있던 죽음은 서로 맞물려 있었다. 복음서에는 예수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면서 자신이 죽어야 하는 소명을 잘 알고 있었음을 아주 명시적으로 반복해서 보도한다. 예수의 수수께끼 같은 말씀들과 이야기들을 통해서 해석되는 상징적 행위를 제2성전 시대 유대교의 배경아래 본다면 그것이 초기 기독교의 속죄신학과 정확히 일치하지는 않더라도 강력한 역사성을 지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결론적으로 예수는 자신의 죽음을 소명이라고 스스로 믿었기 때문에 죽은 것이다.

 

   나는 슈바이처의 견해에는 동의하지만 브레데의 견해에는 단호하게 반대한다. 만일 브레데의 일관된 회의주의와 슈바이처의 일관된 종말론 중의 하나를 택하라면 나는 당연히 후자를 선택할 것이다. 예수는 성서가 제공해준 이야기 그리고 지금 그 절정에 달하고 있는 주도적인 이야기 속에서 살았고, 그 이야기를 활용했다. 이런 전제 위에서 예수는 당시의 유대적 세계관을 변형하여 자신의 사고방식을 구축하였다. 예수가 살았던 시간은 야훼와 이스라엘의 이야기가 그 목표지점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고 믿는 시대였으며, 또한 예수가 살았던 공간은 한 개인이 이스라엘의 운명, 즉 이스라엘의 포로상태를 짊어지도록 부름을 받았다고 믿는 것이 의미를 지녔던 세계였다. 주후1세기의 한 유대인이었던 예수는 야훼가 이스라엘의 고난을 짊어진 한 개인의 고난을 통해서 일하실 것이고, 그 고난은 구속적 의미를 가질 것이며 바로 그 개인이 자기 자신이라고 믿을 수 있었던 세계에서 살았다. 예수는 바로 그런 믿음 위에서 자신의 사고방식을 재구성했다. 내가 이렇게 일관된 종말론을 선택한 것은 단지 회의주의에 반대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학문적이고 역사적인 판단에 근거한 것이었다.

 

(2) 제안: 종말론과 십자가

 

   예수는 시공간으로 이루어진 우주의 종말을 기대하거나 선포한 것도 아니고 군사적 혁명이라는 통상적인 대안을 선택하지도 않았다. 도리어 예수는 진정으로 전복적인 혁명을 통해서 현재의 악한 시대가 종말을 고하며 성전이 무의미해진 가운데 재구성될 야훼의 백성을 선포하였다. 나는 이 세 가지 곧 진정한 혁명, 악한 시대의 종말, 야훼 백성의 재구성을 하나로 통합할 수 있는 가설을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예수는 자신이 행하고 말한 하나님나라에 관한 실천, 이야기, 상징체계 전체가 지닌 내적 논리에 따라서 야훼의 백성의 고난과 포로생활에 관한 제2성전 시대의 이야기를 새로운 형태로 다시 이야기 했다. 나아가 예수는 자기가 상징과 말씀으로 예루살렘 전체에 관하여 선포했던 운명을 상징적으로 겪게 될 소명을 깨닫고 그것을 실천으로 옮겼다. 예수는 이스라엘 역사가 그 초점에 도달했으며 이스라엘의 포로생활이 그 절정에 이르렀다고 믿었다. 예수는 자신이 이스라엘의 운명을 걸머졌으며, 그것을 그 초점으로 이끌어야 할 소명을 받은 메시아라고 믿었다. 예언자로서 예수는 엘리야, 예레미야, 에스겔과 같은 방식으로 이스라엘과 예루살렘 성전이 심판 아래 있음을 엄숙하게 선포한 마지막 예언자였고 사람들은 그를 죽이기로 모의하였다.

 

   마카베오 형제들이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와 야합한 유대인들을 이교도만큼 악한 자들이라고 규탄하였다면 예수는 가이사와 야합한 자들만이 아니라 군사력으로 가이사를 패배시키겠다고 하는 자들도 이교도만큼이나 악한 자라고 규탄하였다. 하나님나라에 대한 예수의 이야기 속에는, 예수를 유대인들의 신학적, 종말론적, 정치적 배경으로부터 구별하는 철저한 변화가 존재한다. 예수의 하나님나라 선포는 진정으로 유대적인 모든 하나님나라 선포들과 마찬가지로 이교 세계에 반대하는 한 분 참 하나님,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메시지였다. 그러나 유대의 다른 인물들과 달리 예수는 하나님나라의 길은 평화의 길, 사랑의 길, 십자가의 길이라고 선포하였다. 군사력으로 하나님나라의 싸움을 하려는 것은 이미 그 하나님나라를 상실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예수는 자신이 이스라엘을 대신하여 이 군사적인 싸움에서 패배하는 것이 이스라엘의 대표자로서 자신의 임무이자 소명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예수는 내부로 부터의 비판과 반대를 몸소 당함으로 이 소명을 짊어졌다. 그리고 예수는 야훼께서 자신을 신원하실 것이라고 믿었다. 예수의 이런  사고방식은 전적으로 유대적인 것이었다.

 

   이렇게 예수는 유대적인 틀 안에서 말하고 행동했지만 근본적으로 새로운 것이 두 가지가 있었다. 첫째로, 예수는 이교도들에 대한 민족주의적 승리를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본래적인 소명, 즉 세상의 빛이 되게 하려는 목적을 지닌 일을 선포하고 실천하였다. 예수는 이스라엘은 세상을 위한 창조주 하나님의 백성이 되도록 부르심을 받았다고 믿었다. 그러므로 예수가 자신의 죽음에 부여하는 해석은 이스라엘의 순교자들이 자신들의 죽음에 부여했던 의미, 즉 자신들이 이스라엘 민족으로 하여금 포로생활을 면하게 해주고 이교도들은 파멸케 한다는 그런 해석과 일치할 수 없었다. 오히려 예수의 상징적 행동은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의 경계들을 깨뜨리고, 낡은 가죽부대를 터트리는 이스라엘의 갱신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둘째로, 예수는 이스라엘이 이교사상과 야합했기 때문에 이스라엘에게 임하는 하나님의 진노를 스스로 짊어졌을 뿐 아니라 예수가 제시한 평화의 길을 거부했기 때문에 이스라엘에게 임하고 있던 진노도 스스로 짊어졌다. 예수는 이스라엘의 대표자로서 스스로 나아가서 그것을 짊어진 것이었다. 

 

   그러므로 관련된 모든 자료들의 의미가 통하는 길은 예수는 하나님나라 운동의 성격이 진정한 반역운동임을 밝히는 것이 자신의 소명이라고 믿었다는 가설이라고 나는 제안한다. 예수는 지난 500년 동안 이교도의 압제아래 겪어온 이스라엘의 운명과 그의 동시대인들이 스스로 뒤집어쓰려고 기를 쓰는 파멸을 짊어지기 위하여 나아간 것이다. 이스라엘의 순교자 전승은 이스라엘이 마침내 고난을 통과해서 신원에 이르게 될 것임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운명과 자신의 운명을 결합시키고 있는 예수의 수수께끼 같은 말씀들은 그가 이러한 순교자 전승을 상기시키며 직접 행동으로 실천하고자 했음을 강력하게 시사해준다. 이스라엘의 고난과 신원은 이스라엘의 역사와 세계의 역사가 마침내 그 위대한 전환점을 통과 할 때, 그리고 야훼의 나라가 임하고 그의 뜻이 하늘에서처럼 땅에서도 이루어 질 때, 단번에 절정에 달하는 유일무이한 사건이 될 것이다. 예수가 죽음을 앞두고 보여준 상징적 행위는 그가 이런 순간이 왔다고 믿었다는 것을 강력하게 시사해준다. 그 순간은 새로운 출애굽, 계약의 갱신, 죄 사람, 포로생활의 끝이 될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이스라엘은 자신이 섬김의 백성, 세상의 빛이 되어야 한다는 본래적인 소명을 이루게 될 것이다.  

 

(3) 십자가와 성서

 

  바로 이러한 이해 속에서만, 순교자 전승과 메시아적 화에 관한 전승 배후에 있는 성서의 패러다임들에 대한 예수의 언급들이 의미를 가지게 된다.. 예수가 성서를 아주 잘 알고 있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다니엘서 전체와 특히 7장, 스가랴서 9-14장, 중요한 몇몇 시편들, 이사야서 40-55장과 특히 52장 13절-53:12절, 이것들은 모두 포로생활과 회복, 고난과 신원, 예언자들의 약속을 따라서 야훼께서 온 세상의 왕이 되시는 방식에 관한 매우 거시적이고 시적인 풍부한 상징을 지닌 진술들이다. 이것들은 한데 합쳐져서 야훼가 악을 단번에 패배시킬 것이라는 것과, 그의 백성, 그의 종, 그의 메시아를 고난 이후에 신원하실 것이라는 것에 대해 말하고 있다. 이러한 본문들은 각각 하나님나라의 도래에 관한 것이며 악의 세력들의 근본적인 패배 그리고 이스라엘과 그 대표자의 신원에 관한 것이었다.

 

   예수는 특히 다니엘서를 그의 소명 전체를 위한 주제로 삼았다. 예수는 다니엘서가 마침내 야훼께서 네 번째 제국을 패배시키고 그의 고난 받는 백성을 신원하실 위대한 절정을 가리키고 있다고 이해하였다. 예수는 악한 제국이라는 개념을 현재의 예루살렘 체제에 투사하였고 자신과 자신의 운동을 신원 받을 백성으로 규정하였으며 이것은 그에게 메시아적 자기 이해를 제공하였다. 다니엘서 전체가 현재의 비참한 상황 속에서, 묵시론적 기대, 메시아적 소망, 신실한 이스라엘을 위한 신원과 같은, 예수의 소명 의식을 형성하는 프레임을 제공한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또한 스가랴서는 양의 고난을 왕적인 목자의 고난과 결부시킬 수 있는 배경과 맥락을 제공해 주었다. 예수의 만찬행위와 관련된 몇몇 수수께끼 같은 말씀들은 이스라엘의 고난과 메시아의 고난의 이러한 연관성을 보여준다.

 

   고난과 하나님나라에 관한 주제들은 시편에도 등장하는데 시편 전체는 지금까지 개략적으로 서술했던 예수의 사고방식, 목적들, 신념들과 잘 맞아떨어진다. 시편22편은 전반부의 비참한 상황을 통과하여 마침내 후반부의 신원, 회복, 부활로 나아오게 된 시편 기자의 외침이다. 다니엘서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시편에서도 고난을 구속적인 것이라고 명시적으로 얘기하지 않지만 그것은 마침내 하나님나라가 동터오는 그러한 기이한 과정의 일부이다. 이렇게 다니엘서, 스가랴서, 시편은 예수의 사고방식의 여러 요소들과 그의 소명에 대한 인식을 형성하는데 기여하였다. 구속적 고난은 명시적으로 언급되지 않지만 하나님나라는 의인들의 고난을 통해서 올 것이며 참된 왕은 백성의 고난에 동참할 것이다. 이사야 40-55장 역시 이스라엘의 고난과 메시아적 인물의 고난은 서로 결부되어 있다는 강력한 주장을 함의하고 있다.

 

   이사야 52장 7-12절은 예수의 사역 전체를 위한 주제였다. 그 예언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왕이 되실 것이고, 그 하나님이 바벨론을 물리치고 이스라엘을 포로생활에서 구하실 것이라고 시온에게 말하고 있다. 이러한 복음의 예언자적 선포는 예수가 말하고 이루고자 했던 모든 것에 대한 요약이다. 예수는 이사야서 40-55장 전체의 메시지와 아주 잘 부합하는 방식으로 말하고 행동함으로써 야훼의 나라를 선포하였다. 특히 하나님나라가 종의 사역 특히 종의 구속적 고난을 통해 이루어진다고 말하는 이 본문처럼, 예수의 상징과 말은 하나님나라가 자신이 이스라엘의 고난에 동참함을 통해서 성취된다는 예수의 의도를 보여준다. 그래서 예수는 이스라엘의 고난에 동참으로서 뿐 아니라, 이스라엘과 세상을 위한 하나님의 정하신 구속 계획의 핵심 행위로서 스스로 고난을 받기로 의도하였다. 결론적으로 이사야서 40-55장 전체는 예수의 하나님나라 선포의 주제였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의 사역을 추상적이고 무시간적인 신학체계에 대한 교훈이나 속죄신학이란 관점에서 이해할 것이 아니라, 악을 패배시키고 그의 백성을 포로생활에서 구원하며, 마침내 이스라엘의 죄를 사하시겠다는 야훼의 약속을 역사적이고 구체적으로 실천한 것으로 이해하여야 한다.

 

(4) 메시야적 과제

 

   메시아로 자처하는 사람은 두 가지 과제를 이루어야 하는데 그것은 성전을 정화하고 회복하는 일과 이스라엘의 원수들과 싸워서 이기는 일이었다. 예수는 자신의 임박한 죽음을 통해서 이 두 가지 과제를 이루고자 의도했다. 예수는 성전행위와 만찬행위를 통하여 성전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을 자신의 죽음을 통해서 이루고자 했음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달리 말하면 예수는 자신의 죽음을 어떤 의미에서 희생 제사로서 기능하도록 의도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뜻밖의 일도 아니며 후대 기독교 관점의 투영도 아니다. 예수가 자신에게 다가올 죽음을 희생제사라는 관점에서 보았다고 주장하는 것은 결코 증거들을 뛰어넘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첫 번째 과제(성전의 정화와 회복)와 관련하여 예수가 희생제사라는 상징으로 선택한 지배적 은유는 대속죄일이 아니라 유월절이었다. 유월절은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서 단 한 번의 해방의 순간이었고, 예수 당시에는 이스라엘의 미래를 열어 줄 단 한 번의 순간으로 기대되었던 절기였다. 예수는 마지막 위대한 상징들을 통해서 자신이 메시아로서 성전을 대신한 새로운 실체를 수립할 것을 함축적으로 보여주었다. 예수는 자신에게 다가올 죽음을 메시아적 과제의 한 핵심으로 보았던 것이다. 두 번째 과제(이스라엘의 원수들과 싸워서 이기는 일)와 관련해서는 예수는 자신이 싸워야 할 싸움을 동시대인들이 메시아에게 기대했던 그런 싸움이 아니라, 진정한 원수인 사탄과의 싸움이라고 재해석하였다. 예수는 가시적인 적대 세력들인 로마인들과 유대인들의 배후에 있는 어둠의 세력과의 싸움에 직면해 있었다. 예수는 한편으로 축사 사역과 치유사역을 통해서 다른 한편으로는 대적자들과의 논쟁을 통해서 이 싸움을 싸우고 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예수가 싸우는 싸움의 방식은 메시아로 자처하는 다른 자들과는 전혀 다른 전복적인 방식이었다. 예수는 제자들에게 자기 목숨을 구하고자 하는 자는 잃을 것이요 제 목숨을 잃는 자는 구할 것이라는 기이하고 전복적인 지혜를 가르쳤으며 이스라엘은 다른 쪽 뺨을 돌려대고 십리를 더 감으로써 이 땅에 소금과 빛이 되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제 예수는 바로 자신이 가르친 그런 지혜를 따라서 죽음을 맞이하고 있다. 그래서 예수는 이교도들의 모욕과 위협에 묵묵히 고난을 당하며 용서의 말을 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것은 순교자 전승에서도 놀랄만한 혁신으로서, 초기 기독교 사역에도 그대로 반영되었는데, 이는 그것이 실제로 역사적인 것일 때만 의미가 통한다. 그래서 가장 초기의 그리스도인들은 십자가 위에서 예수가 이룬 일을 악에 대한 결정적인 승리라고 보았다. 예수는 로마인들의 손에 죽는 것, 반역자들을 대신해서 반역자의 죽음을 죽는 것이 진정한 메시아적 싸움에서 승리하는 방식으로 믿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예수가 동시대인들에게 역설했던 이스라엘이 되는 길의 절정이었으며 자신의 운명을 이스라엘의 운명과 결부시키는 방식이었다.

 

   예수는 세상의 빛이 되고 평화의 길을 따르는데 실패한 이스라엘에게 심판, 곧 로마의 진노를 선포하였다. 이 심판은 로마와의 대결을 선택한 이스라엘에게 임한 필연적 결과였다. 그러나 순교자의 길은 민족의 고난을 짊어지는 것이며 왕적 목자의 길은 양떼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이었으며 종의 길은 민족의 포로생활을 스스로 짊어지는 것이었다. 그래서 메시아로 자처한 예수는 스스로를 이스라엘과 동일시하고 이스라엘에 앞서 가서 자신이 이스라엘 민족, 도성, 성전에 대해 선포했던 그 운명을 질어져야 했던 것이다. 예수가 공생애 사역 전체에  걸쳐 가난한 자들, 병든 자들, 죄인들과 가까이 했던 것들은 이 마지막 고난의 예비적인 행동이었다.

 

   예수는, 그의 고소자들은 유죄였지만 자신은 무죄였던 그런 죄목을 뒤집어쓰고 로마의 손에 죽임을 당했다. 예수는 신학적 진리에서만 아니리 역사상의 사실에서도 많은 사람의 죄를 짊어졌다. 이것은 예수가 진정한 원수에 대한 메시아의 승리를 어떻게 보았는지를 잘 보여준다. 예수는 부르심을 받은 그 모습이 되는 일에 실패한 이스라엘을 대신하여 행동하고 있었다. 예수는 스스로 세상의 빛이 되며 이 땅의 소금이 되는 길을 선택하였고 그 결과 그는 감추어질 수 없도록 언덕 위에 세워질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교도들을 패배시켜야 할 메시아가 이교도들의 손에 죽임을 당했다는 것은 그가 전혀 메시아가 아니라는 증거라고 보았다. 결국 십자가에 못 박힌 메시아를 따랐던 자들은 자신들이 실수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는 자신의 죽음을 통해 이스라엘 역사를 절정으로 이끌고자 했다. 야훼는 예수의 사역을 통해 악을 패배시키고 하나님나라를 도래케 하며 결국 이스라엘로 하여금 세상의 빛이 되게 하실 것이다. 이제 그의 사역을 통해서 야훼는 자신이 단순히 (이스라엘 민족을 위한)하나의 신이 아니라 (온 세상을 다스리는)하나님이심을 계시하실 것이다.

 

(5) 하나님의 승리

 

   그러므로 예수는 메시지를 선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죽기 위해서 예루살렘에 갔다는 슈바이처의 말이 옳았다. 예수는 자신이 선포한 메시아적 화들이 곧 이스라엘을 덮칠 것이고 자신이 그것을 홀로 짊어져야 한다고 믿었다. 예수는 성전과 다락방에서 자신의 사역과 과제 전체를 집약한 두 가지 상징을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첫 번째 상징(성전행위)을 통해 예수는 현 체제가 부패하고 완악하며 이제 심판의 때가 무르익었으며, 또한 온 세계의 하나님은 야훼께서는 메시아를 사용하여 이스라엘과 세상을 구원하실 것이라고 말했다. 두 번째 상징(만찬행위)을 통해 예수는 이것이 참된 출애굽이 일어나게 될 방식이며, 악이 패배하게 될 방식이며, 이스라엘이 죄 사함을 받는 방식이라고 말했다. 예수는 이런 상징들이 수반하고 그런 상징들을 설명해주는 행위들과 말씀으로 말미암아 자신이 이스라엘을 어그러진 길로 인도하는 거짓 예언자이며 메시아를 참칭하는 자로 유대인들에게 고소당할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는 것과, 그 결과 로마인들에게 넘겨져 처형될 것을 알고 있었음에 틀림없다.

 

   예수의 상징적 행위들과 이스라엘 이야기에 대한 다시 말하기 속에는 정치적 실용주의, 혁명적 모험, 순교의 영광에 대한 욕구를 뛰어넘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이스라엘과 세계, 이 둘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이 해야 할 역할에 대한 예수의 신학적 성찰이었다. 그는 깊은 소명의식 그리고 그가 하나님이라고 믿었던 이스라엘의 하나님에 대한 무한한 신뢰가 있었다. 그래서 자신이 이 길을 가고, 이 싸움을 싸운다면, 이스라엘의 포로생활이라는 긴 밤이 마침내 끝나고 이스라엘과 세계를 위한 새 날이 단번에 동터올 것이라는 확고한 믿음이 있었다. 예수는 자신이 신원을 받게 될 것이며 그것을 통해 세상을 구원하는 이스라엘의 소명이 성취될 것이라고 믿었다. 세상의 빛이 되어야 한다는 이러한 종의 소명은 예수의 신원 후에 등장한 제자들 속에서 실현될 것이다. 목자의 죽음은 야훼가 온 땅의 왕이 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며 인자의 신원은 악의 패배와 전 세계적인 하나님나라의 도래를 가져올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는 십자가를 짊어졌다. 가이사의 방식으로 가이사에 반대하는 자들에게 십자가는 패배와 수난의 상징이었지만 예수와 예수를 따르는 자들에게는 십자가는 하나님의 승리의 상징이었다.

 

(6) 결론

 

   지금까지 나는 처음 세 개의 질문(예수와 유대교의 상호작용, 예수의 전 사역에 걸친 목적들, 예수의 죽음의 이유들)에 대한 일련의 대답을 제시하면서 이것이 일련의 무작위적이거나 산재된 사건들이 아니라 통일된 역사적 전체를 대변하고 있다고 주장 했다. 장차 도래할 하나님나라에 대한 예수의 예언자적 믿음의 세 가지 요소들 중, 11장에서는 예수가 자신이 마침내 포로생활로부터 돌아오게 될 이스라엘의 초점이라고 믿었다는 것을 논증하였고 12장에서는 예수는 자신의 죽음이 악을 근본적으로 패배시키는 수단이라고 믿었음을 논증하였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한 가지는 예수는 시온으로의 야훼의 돌아오심에 관하여 무엇을 믿었는가라는 질문이다.

 

3부 예수의 목적과 신념들[13장 왕의 귀환]

N.T. 라이트/JVG

2015-06-17 22:59:54


예수와 하나님의 승리

제3부 예수의 목적들과 신념들

제13장 왕의 귀환

 

1. 서론

 

  지금까지 나는 처음 세 개의 질문(예수와 유대교의 상호작용, 예수의 전 사역에 걸친 목적들, 예수의 죽음의 이유들)에 대한 일련의 대답을 제시하였는데 이제 그 세 가지를 하나로 통합하여 지금까지와는 다른 시각을 통해서 보려고 한다. 예수는 자신을 야훼의 나라를 선포하고 개시시키는 예언자로, 자신을 이스라엘의 참된 메시아로 믿었다. 예수는 자신이 이교도의 손에 죽임을 당함으로 하나님나라가 도래하며 이사야서의 전령관의 메시지가 실현될 것이라고 믿었다. 예수의 전 사역을 통하여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왕이 되시고 바벨론은 패배당하고 이스라엘의 포로생활은 마침내 끝이 났다. 그런데 시온으로 야훼의 돌아오심에 대해 말하는 이사야서의 주제는 예수의 과제와 선포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는 것인가? 이 주제는 처음 세 개의 질문과 관련될 뿐 아니라 초기 기독교는 어떻게 시작되었고 왜 그런 형태를 취하게 되었는가라는 네 번째 질문을 제기한다. 이 네 번째 질문은 초대교회에 관한 질문일 뿐만 아니라 예수에 관한 질문이기도 하다. 특히 후대의 헬레니즘화된 기독교에서 뿐만 아니라 매우 초기의 유대적인 기독교에서 예수가 예배의 대상이 된 이유는 무엇인가? 이 질문은 예수의 기독론에 관한 것이다.

 

  나는 기독론의 문제를 예수의 상징적 행위들과 그 행위들을 설명하는 이야기들을 토대로 풀어나가고자 한다. 예수의 행위는 대부분 인간적인 견지에서 설명이 되지만 몇몇 부분들은 그가 신이었기 때문이라고 인정해야 하는 일들이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이것은 주후1세기 유대교의 세계에서는 전적으로 이질적인 형이상학이다. 예수가 신적 인물인지를 묻는 것이 아니라 예수의 목적과 신념이 관하여 묻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은 주후1세기 유대인으로서 예수가 행하고 말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던 그의 소명의식과 신념체계에 대한 질문이다. 달리 말하면 나의 의도는 예수가 살아있을 때의 초상, 그 자체로 의미가 통하고 또 앞에 놓인 증거들을 설명하는데도 의미가 있는 그런 예수의 초상을 완결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런 예수상은 유대교 및 초대교회와의 이중적 유사성 및 이중적 상이성이라는 수단을 통해 제시된 역사적 성찰이어야 한다. 새탐구는 예수의 목적과 신념이라는 주제 전체를 그들의 연구범위에서 배제했고, 제3의 탐구는 이런 주제를 탐구할 수 있다고 말했지만 대체로 그런 연구를 하지 않았다. 예수의 기독론에 관한 연구가 사양길에 접어든 이유는 예수의 칭호들에 관한 연구가 사양길에 접어든 것과 맥을 같이하며 오늘날에는 칭호들에 관한 연구는 탐구되어야 할 방법론이 아니라는 암묵적 합의가 존재한다.

 

   나는 9장과 10장에서 예수의 성전행위가 성전에 대한 야훼의 심판을 선포하고 자신을 메시아로 선언한 의도적인 상징으로 기능하고 있음을 논증하였다. 그리고 12장에서는 예수의 만찬행위는 자신이 이스라엘 민족과 성전에 대해 예고하였던 심판을 스스로 짊어짐으로써 악을 패배시키고 위대한 계약의 갱신, 새로운 출애굽을 이루려고 함을 보여주는 상징으로 기능하고 있음을 논증하였다. 이제 나는 예수의 이 두 가지 상징적 행위가 서로 결합되어 좀 더 큰 맥락 속에서 이해될 때 추가적인 단일한 상징 행위를 구성한다는 것을 논증하고자 한다. 예수는 하나님나라 도래의 이 세 번째이자 마지막 요소를 몸으로 구현하기 위하여 예루살렘으로 갔다. 예수는 야훼께서 시온으로 돌아오신다고 선포하는 것으로 끝내지 않고 그런 절정의 사건을 행동으로 보여주고 상징하고 인격화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2. 유대적 의미의 세계

 

(1) 야훼의 돌아오심에 관한 소망

 

    야훼의 돌아오심에 관한 제2성전기 유대인들의 소망은 그동안 제대로 주목되지 못했다. 이사야서에 대한 초기 유대교의 주석서인 이사야서 탈굼에는 하나님나라의 선포라는 주제와 하나님나라라는 어구 자체가 많이 등장하며, 그 속에는 마침내 야훼께서 시온으로 돌아오고 계신다는 지속적인 강조점이 발견된다. 야훼는 출애굽 때에 행하셨던 일을 다시 행하고, 자기 백성 가운데 거하기 위하여 시온으로 돌아오실 것이다. 이사야서, 에스겔서, 학개서, 스가랴서, 말라기서, 시편 등에 나타난 이런 주제들의 목록은 그 분포 범위와 규모면에서 상당히 인상적이며 이는 야훼의 돌아오심이라는 주제가 제2성전기 시대에 잘 알려졌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왔을 때 야훼께서 돌아오신다는 약속을 보여주는 사건들은 수반되지 않았다. 성전, 승리, 왕권은 여전히 서로 뒤엉켜져 있지만 그것들이 대표하고 있는 소망은 여전히 성취되지 않은 채로 남아 있었다. 그러므로 시온으로 야훼의 돌아오심에 대해 명확하게 언급하는 성서의 전승이 제2성전기에도 그대로 유지된 것은 별로 놀랄 일이 아니다. 제2성전 시대 유대인들 대부분이 과거의 왕정 시대처럼 야훼께서 돌아와서 예루살렘 성전에 거하시게 될 것을 소망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풍부한 증거들이 존재한다. 당시에 메시아에 대한 기대가 있었다고 해도 이것이 야훼의 돌아오심을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야훼의 돌아오심에 대한 표현 혹은 그에 수반되는 것으로 여겨졌다. 야훼의 돌아오심에 대한 소망은 물론 하나님나라 기대의 다른 두 종말론적 특징 즉 포로생활로부터 귀환 및 악의 패배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야훼께서 그의 백성을 찾아오신다면 그것은 이스라엘의 포로생활이 끝났고 악이 패배 당했으며 이스라엘의 죄악들이 사함을 받았다는 것을 의미하며 역으로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그것은 야훼께서 마침내 시온으로 돌아오고 계신다는 것을 보여주는 표징이 될 것이다. 그런데 야훼께서 역사 속에서 행하시되, 택하신 대리인을 통해서 행하실 것이라면 그 택함 받은 대리인은 어떤 인물인가?

 

(2) 하나님의 보좌에 동참함

 

   제2성전 시대 유대인들이 이스라엘의 총체적 구속의 일부로서 야훼께서 시온으로 돌아오실 것을 기대했다는 것은 역사적으로 확고한 토대에 서 있다. 이 시기의 몇몇 본문들은 야훼께서 역사 속에서 행하실 때, 야훼께서 선택할 대리인은 전대미문의 방식으로 신원되고 높임을 받으며 존귀를 얻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천사나 혹은 인간적인 한 존재의 높이들림과 하늘보좌에 앉는 것에 관해 말하는 유대교 본문들이 여러 시기에 걸쳐 다양한 범위로 존재하는데 이런 사변들은 아마도 에스겔1장과 다니엘7장 같은 몇몇 핵심본문에 대한 묵상이나 논의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다니엘서에 나오는 인물은 한 분 참 하나님의 왕적인 권능의 대표자인 반면에 에스겔 8장에 나오는 인물은 사람의 형상으로 묘사된 하나님으로 보아야 한다.

 

  다니엘서 7장13절을 “그가 옛적부터 계신 이에게(to) 왔다” 대신에 “그가 옛적부터 계신 이로서(as) 왔다”고 변역한 칠십인역은 인자를 옛적부터 계신 이의 화신으로 보고 있다. 달리 말하면  두 인물이 하늘에서 나란히 존재하고 있는 다니엘서 7장의 원래의 장면을 칠십인역은 대리인인 인자가 하나님의 형상과 인품을 스스로 취한 것으로 변경하였던 것이다. 에녹1서는 제2성전 시대 유대인들이 인자를 이런 식으로 읽었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준다. 그러나 제2성전기 유대인들은 이런 사변들이 유일신 사상에 반하는 것으로 여기지 않았다. 왜냐하면 유대인들이 유일신 사상의 핵심은 한 분 하나님의 내적 상태에 대한 분석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이교의 만신과 대비되는 참된 하나님으로 구별하고, 이원론적 사상체계들에 대항하여 창조와 구원이 하나임을 강조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위대한 랍비 아키바는 시몬 벤 코시바를 메시아로  규정하고 민수기 24장17절을 암시하는 바르 코크바(별의 아들이란 의미)란 이름을 그에게 붙여 주었다. 아키바는 다니엘서 7장9절에서 말하는 보좌들은 하나는 하나님을 위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영광스러운 메시아적 인물을 위한 것이라고 말했는데 그가 염두에 두고 있던 인물은 시몬 벤 코시바였다. 모든 시대의 위대한 랍비들 중 한 사람인 아키바가 시몬 벤 코시바를 이스라엘의 하나님과 보좌를 공유할 인물로 말했다는 것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 아키바는 바르 코크바가 메시아로서 하나님이 이교도들을 패배시키고 성전을 재건하기 위해 사용할 인물로 보았음을 분명하다. 그러므로 아키바에게 바르 코크바는 다니엘서의 “인자 같은 이”에 관한 예언이 성취된 인물이었다. 달리 말하면 아키바는 바르 코크바가 이스라엘의 한 분 참 하나님의 대리통치자가 될 것이며 그의 승리와 통치는 곧 하나님의 통치와 승리가 될 것이라고 믿었다.

 

   아키바의 이런 사고가 유대교의 유일신 사상을 포기한 것은 결코 아니다. 아키바는 바르 코크바의 메시아적 승리를 이교의 신들에 대한 한 분 참 하나님의 승리로 보았을 뿐이다. 제2성전 시대에 다양한 중보적 인물을 통한 이스라엘 하나님의 행위에 관한 아주 방대하고 복잡한 사변들이 있었는데 이 중에서 유대인들이 가졌던 주류의 시나리오는 에스겔서 1장의 병거환상의 발전물인 다니엘서 7장의 즉위장면을 이교도들에 대한 메시아의 지상적이고 군사적 승리로 보았다.

 

(3) 하나님과 하나님의 활동에 관한 상징들

  

   유대인들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하늘에 거하고 지상의 범주에 담겨지지 않는 초월적인 존재이지만 그분은 세계 내에서 끊임없이 활동하고 있으며 특히 이스라엘 역사 안에서 활동하고 있다는 지배적인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이 지배적인 신념을 다양한 상징들과 개념들을 사용하였는데 그것이 쉐키나, 토라, 지혜, 로고스, 성령과 같은 상징들이었다. 하나님의 임재는 성전에서 쉐키나를 통해 드러났으며, 하나님의 뜻은 토라를 통해 계시되었다. 하나님은 그의 지혜를 보내어 사람들을 인도하시며 하나님의 로고스는 우주 전체에서 활동하시는 참 한 분 하나님이시었다. 야훼의 영은 예언자들에게 영감을 불어넣었으며 메시아에게 능력을 부어주었다. 

 

   메시아는 하나님의 활동에 관해 말하는 이런 상징들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하나님의 영과 지혜를 수여받은 메시아는 성전을 정결케 하고 재건하며, 토라의 위대한 교사와 시행자가 될 것이며 위기에 직면해서는 로고스와 동일시 될 것이다. 이는 유대인들이 메시아를 신적인물로 믿었다는 의미가 아니라 메시아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대리자 혹은 섭정이 될 것이고, 그의 싸움을 싸우며 그의 백성을 회복하고 성전을 정결케 하고 재건함으로써 쉐키나가 다시금 그 안에 거하게 할 인물임을 의미하는 것이다. 아키바의 진술이 이런 메시아적 기대의 범주를 벗어나는 것은 아니다.

 

   유대교의 유일신 사상이 반대하는 것은 다음 두 가지였다. 첫째는 야훼는 피조세계 또는 이스라엘 속에 전적으로 부재하다는 부재지주 사상이다. 둘째는 야훼가 성전이나 토라 속에 남김없이 실제로 담겨져 있다는 이교적 사상이다. 그러므로 쉐키나, 토라, 호크마(지혜), 로고스, 성령이라는 상징 언어는 만유 전체에 대한 야훼의 주권 및 초월성과 동시에 야훼가 세계와 이스라엘의 역사에 직접적으로 개입하신다는 것을 단언하는 방식들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그것들은 초월적인 창조주 하나님이 피조세계와 이스라엘의 삶속에 인격적으로 임재해 계시고 행동하신다는 것을 의미하는 상징들이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행동이 비록 인간 대리인들을 통해서 이루어진다고 할지라도 그것들은 모두 야훼 자신의 사역일 수밖에 없었다.

 

3. 돌아옴과 높이들림에 관한 예수의 수수께끼 같은 말씀들

 

(1) 시온으로 돌아오시는 야훼에 관한 이야기

 

 (a) 서론

 

  나는 예수의 성전행위를 성전에 대한 야훼의 심판 그리고 자신의 메시아직에 관한 상징적 주장이라고 보았으며 예수의 만찬행위는 자신이 죽음을 통하여 이루려는 새로운 출애굽, 곧 포로생활로부터의 귀환을 상징한 것으로 보았다. 나아가 예수의 최후의 예루살렘 여행은 이 두 사건들로부터 파생되어 절정에 달한 야훼의 시온으로 돌아오심에 대한 상징으로 보아야 한다. 

 

   나는 예수가 자신의 예루살렘 여행과 관련하여 들려준 몇몇 이야기들을 살펴보기 위해 다음 두 가지 주장을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는 예수가 말한 “인자의 오심”이란 어구는 다니엘서의 의미로 엄격하게 해석되어야 한다. 즉 여기서 “오심”은 인자가 옛적부터 계신 이에게 “나아감을”을 의미하는 것이므로 “인자의 오심”은 인자가 하늘에서 땅으로 오는 것이 아니라 정반대로 땅에서 하늘로 나아가는 것으로 해석되어야 한다. 둘째, 예수는 “이스라엘에게 올 자”라는 통상적인 의미에서 장차 올 인물에 관해 말했다. 이 장차 올 인물은 야훼 자신이었고 예수는 야훼의 오심을 자신의 사역 및 장차 도래할 사역의 절정과 결부된 사건으로 생각하였다. 나의 이런 주장에 대한 일차적 증거는 하나님나라에 대한 예수의 단순한 선포에 있다. 왜냐하면 주후1세기 청중에게 그 선포는 그 자체로 야훼의 오심, 즉 시온으로 야훼의 돌아오심을 주된 주제로 삼고 있는 이사야서 40장과 52장의 본문을 상기시켰을 것이기 때문이다.

 

 (b) 달란트와 므나 이야기

 

   마태와 누가에 나오는 이 이야기의 배경은 한 왕 또는 주인의 출타와 돌아옴에 관한 것인데 그 주된 강조점은 주인이 없는 동안에 남아서 재산을 맡아 관리하게 된 종들의 책임 그리고 책임에 실패한 세 번째 종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 비유를 읽는 가장 좋은 방법은 공관복음서 모두에서 이 비유의 직접적인 배경이 된 예수의 예루살렘 여행이라는 관점에서 읽는 것이다.

 

   그렇다면 왕은 누구이고 종들은 누구인가? 주인과 종들이라는 대부분의 비유들 속에서 주인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나타내고 종들은 이스라엘 또는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이나 예언자들을 나타낸다. 유대적 용법에서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는 끊임없이 주인과 종들의 관계로 표현되었기 때문에 이 비유를 듣던 청중들은 분명히 그런 맥락에서 해석했을 것이다. 오랜 부재 후에 돌아오는 주인이라는 개념은 시온으로의 야훼의 돌아오심이란 맥락과 정확히 부합된다.

 

  그 동안 이 비유들은 통상적으로 예수의 “다시 오심”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되어 왔다. 물론 예수의 ‘다시 오심’이란 사상이 누가의 저작 가운데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중심적인 것도 아니고 누가복음이 아니라 사도행전에만 나온다. 예수의 임박한 죽음조차 파악하지 못했던 사람들에게 예수가 ‘다시 오심’을 설명하려고 했다는 것은 견강부회적 성격이 짙다. 그러므로 이 비유는 일차적으로 마태복음 24장과 그 병행문 속에 예고된 사건과 밀접한 연관 속에서 인자의 오심(즉, 신원)이란 견지에서 예수와 이스라엘의 운명 그리고 옛적부터 계신 이의 “오심” 및 “즉위”와 관련이 된다고 보아야 한다. 

 

  특히 누가복음에서 이 비유가 등장한 이유는 예수와 그의 제자들이 예루살렘에 가까이 왔고 제자들과 무리들은 다 같이 하나님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누가의 취지는 하나님나라의 도래 시기가 아니라 효과들에 관한 것이다. 하나님나라는 진실로 오고 있지만 그것은 이스라엘에게 축복이 아니라 심판을 가져온다는 것이다. 예수가 왕적인 방식으로 예루살렘에 입성하였고 눈물을 흘리며 예루살렘 성에 대한 심판을 선포하는 이야기가 이어서 나온 것을 보면 누가가 이것을 의도한 것이 분명하다. 야훼는 그의 백성을 찾아오고 계시지만 그들은 깨닫지 못한다. 그러므로 그들은 임박한 심판의 위험에 처해 있고 그 심판은 군사적 정복과 파멸이란 형태를 띠게 될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나라의 임박성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임박한 하나님나라가 가져올 심판에 대한 경고이다. 그러므로 이 비유는 다른 비유들과 마찬가지로 하나님나라를 철저하게 재정의하고 있다. 하나님나라는 시온으로 야훼가 돌아오심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 하나님나라는 바로 지금 오고 있다. 그러나 그 나라의 도래는 민족적 이스라엘에게 축복이 아니라 도리어 심판이 될 것이다.

 

   마태복음 역시 이 비유가 예수의 돌아오심을 가리킨다는 통상적인 해석을 지지하지 않는다. 마태복음 25장의 여러 다른 비유들은 교회를 남겨둔 채 멀리 떠난 예수가 오랜 공백 후에 다시 돌아오는 것에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니라 예루살렘과 현 지도자들에게 임박한 큰 심판에 대해 초점을 맞추고 있다. 물론 거기에 시간적인 공백이 나타나지만 그것은 예수가 멀리 떠났다 다시 돌아오는 시간 간격이 아니라 예수의 사역과 예루살렘 멸망 사이의 시간 간격이다. 이 시간 간격 동안에 제자들은 거짓 메시아들의 속임을 받거나 고난을 받는 시기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마태와 누가복음에서 주인이 신실치 못한 종을 심판하는 것은 야훼가 시온으로 돌아오실 때, 그것이 가져올 끔찍한 결과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읽는 것이 가장 정당하다.

 

  그렇다면 예수는 이 비유를 통해 무엇을 말하려고 했던 것인가? 무엇보다도 이 비유는 야훼께서 시온으로 돌아오실 때, 야훼는 그의 위임에 신실치 못한 자들을 심판하는 재판장으로 오실 것이라는 경고였다. 또한 이 비유는 야훼께서 시온으로 돌아오실 때가 임박하였음에 대한 경고였다. 그동안 하나님나라 도래의 지연을 보여주는 근거로 사용되었던 이 비유는 오히려 하나님나라의 임박성에 대한 경고로 보아야 한다. 이 비유는 청중들에게 그들이 주인이 곧 돌아올 때가 임박한 시기에 살고 있음을 강조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으며 이것은 예수의 공생애 사역 전체의 강조점과 부합한다. 이 비유를 이렇게 읽게 되면, 씨 뿌리는 비유, 청지기 비유, 악한 농부 비유들과도 그 취지와 맥락이 아주 잘 어울린다. 특히 누가복음은 이 비유를 악한 농부 비유와 결부시키고 있는데, 이야기의 서사문법상 주인의 오심은 악한 농부 비유에서 주인의 아들에 대한 거부와 결부되어 있다. 이 두 비유를 시온으로 야훼의 돌아오심에 관한 기대, 그리고 예수 자신의 사역과 선포를 배경으로 읽을 때, 이러한 연결 관계는 한층 밀접해 진다.  그러므로 야훼를 거부한 것은 예수를 거부하는 것으로 나타날 것이다.

 

    또한 이 비유의 의미는 예수의 성전행위와 완벽하게 부합된다. 예수는 그의 패역한 백성에 대한 야훼의 심판을 극적으로 또 상징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예루살렘에 갔고 성전에서 그런 행동을 했다. 그러므로 이 비유를 예수의 공생애 사역 속에서 특히 예수가 예루살렘에 간 것과 거기에서 그가 이룬 모든 것이라는 맥락 속에서 읽어야 한다. 또한 이 비유는 예루살렘으로 간 예수의 행위를 설명하는 핵심적인 이야기로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예수는 예루살렘 여행을 야훼의 시온으로 돌아오심에 대한 상징이자 구현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c) 야훼의 돌아오심에 관한 다른 이야기들

 

   누가복음 12장에는 동일한 주제에 관한 세 가지 이야기들이 나온다. 주인이 혼인잔치에 있는 동안 종들은 주인이 돌아올 것을 대비하여 등불을 켜놓고 자신의 일을 돌보아야 한다.(12장 35-38) 집을  지키는 사람은 도적이 어느 때에 침입하지 모르기 때문에 항상 깨어 있어야 한다.(12장 39-40) 종들을 관리하는 책임자는 종들을 적절하게 돌보아야 한다. 주인이 돌아오면 그의 일을 판단할 것이다.(12장 41-48) 이러한 짧은 비유들은 달란트, 므나 비유와 마찬가지로 시온으로의 야훼의 돌아오심이 임박했다는 것, 그리고 이스라엘이 준비되지 못했을 때 일어날 끔찍한 결과에 관한 추가적인 이야기로 보아야 한다. 이런 이야기들은 다니엘서의 인자의 오심의 의미와 일치한다. 다니엘서에서 보듯이 옛적부터 계신 이가 오셔서 그의 보좌에 좌정하고 그의 나라를 세우실 때에 인자와 같은 인물은 그에게로 나아간다.

 

  누가도 그의 독자들이 이 말씀들을 이런 식으로 이해할 것으로 생각했음이 분명하다. 누가복음의 이 대목에 이어 계속해서 등장하는 일련의 말씀들은 이런 맥락에서만 바르게 이해될 수 있다. 예수는 종들에게 돌아가는 주인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예루살렘을 향해 여행했다. 그러나 때와 징조를 읽지 못하는 자들, 회개치 않는 자들, 예수의 평화의 길과 화해의 길을 거부하는 자들은 재앙을 자초하게 될 것이다. 예수가 자신이 받아야 할 세례가 있다고 말한 것으로 보아 예수는 분명히 이 일이 예루살렘에서 이루어질 것을 내다보고 있었다. 예수는 자신의 예루살렘 여행을 통해 야훼가 시온으로 돌아오심을 선포하고 구현하고 있었다.

 

(2) 높이들림에 관한 수수께끼 같은 말씀들

 

   예수가 시온으로의 야훼의 돌아오심을 선포하고 상징하고 구현하고자 의도했다면, 신원과 높이들림에 관한 예수의 말씀들도 제2성전 유대인들의 사변이라는 맥락에서 해석되어야 한다. 예수는 가야바의 심문을 받을 때, 시편110편과 다니엘 7장을 인용하여 자신이 신원을 받고 메시아로서 야훼의 우편에 즉위할 것과 하늘구름을 타고 올 것이라고 예언하였다. 이것을 문자적으로 예수가 구름을 타고 땅으로 강림할 것이라고 본다면, 이것은 다니엘서 본문에 대한 심각한 오판이자 주후1세기의 맥락에 대한 오판이다. 가야바가 이 말을 듣고 옷을 찢으며 신성모독이라고 외친 이유는 예수가 자신이 메시아라고 주장했거나, 성전을 쳐서 말했거나,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주장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것은 예수가 성전행위와 성전 진술들을 통해 나타난 메시아직에 대한 주장과 함께, 그 주장을 신적 임재의 주된 특징인 이스라엘 하나님의 보좌를 메시아 또는 인자가 공유할 것이라는 제2성전 유대교의 전승을 연관시켰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예수의 재판 장면은 완전한 초점을 지니게 된다. 재판에서 현안이 되었던 것은 예수의 공생애 사역전체였다. 예수의 공생애 사역 전체는 예루살렘 여행에서 절정에 이르렀고, 성전 행위를 통해 폭발되었으며 만찬행위에서 진술되었다. 심문은 성전에 관한 문제로 시작되었고 예수의 대답은 성전에 대한 자신의 권세를 주장한 것이었다. 그래서 가야바는 예수에게 네가 메시아인가? 라고 물었고 예수는 자신이 메시아임을 시인하며 장차 신원을 받고 권능의 우편에 앉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렇게 일련의 사건들은 정확하게 하나의 전체로 통합되어 있다. 예수의 최후의 대답은 예루살렘 여행, 성전행위, 암묵적인 메시아적 주장들을 통합시킨 하나의 진술이었다. 그리고 이 진술은 이스라엘 하나님이 그의 백성과 함께 계실 장소가 성전이 아니라 예수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이 진술은 사회학적으로는 예루살렘에 대항하는 고도로 급진적인 갈릴리의 항변이었고, 정치적으로는 가야바의 권력 기반과 가이사와 빌라도의 권세에 대한 도전이었으며, 신학적으로는 진실이거나, 아니면 신성모독이었다. 

 

(3) 결론

 

   그러므로 결정적으로 중요한 두 본문(마가복음 12장 35-37절과 14장61-62절)을 각각 고립된 단위가 아니라 예수의 예루살렘 여행과 성전행위라는 맥락 그리고 제2성전 시대 유대교의 복합적이고 다면적인 세계 속에 둘 때, 그 역사적 취지를 의미있게 만드는 총체적 통일성을 발견하게 된다. 여기서도 다시금 이중적 유사성과 이중적 상이성이 적용되는데, 이런 그림은 오직 유대교 속에서만 의미를 가지지만(유사성) 유대교 내에서는 정확한 병행이 존재하지 않는다.(상이성) 또한 예수에 관한 초기 기독교의 견해들은 이런 그림의 발전으로 볼 때 의미를 지니게 되지만,(유사성) 초기 기독교의 견해가 이 입장을 그대로 반복하는 것은 아니다.(상이성)

 

4. 미리 암시된 소명

 

   예수는 자신의 행위들을 설명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 이야기를 했다. 그 이야기들은 주인과 종들, 아버지와 아들, 목자와 양에 관한 것이었다. 예수는 하나님나라의 초대, 환영, 도전, 부르심, 경고에 관한 말씀들과 그의 행위들을 해석하기 위하여 이런 이미지를 사용하였다. 그때 예수는 새로운 모세가 아니라 자신의 권세로 새로운 가르침을 베푸는 자로서 말했다. 이것은 예수가 토라를 부정한 것이 아니라 이제 토라를 백성들의 마음에 새기게 될 위대한 갱신의 때가 이르렀다는 종말론적인 주장을 한 것이었다. 예수는 율법이 지향하고 있었던 새 시대가 오면 모세의 율법은 이제 부적절해질 것이며 자신이 바로 그 새 시대를 개시시키고 있다고 말한 것이다. 예수는 자신이 성전이 지향했던 실체 혹은 성전에 대해 권세를 가진 자라고 주장하고 행동했듯이, 토라에 대해서도 자신이 토라를 대신하는 자 혹은 토라 자체에 대하여 권세를 지닌 자처럼 행동하고 말했다. 또한 예수는 자신이 하나님의 지혜를 대변하는 자인 것처럼 말했다. 그래서 예수는 자신이 솔로몬보다 더 큰 자라고 말했고, 지혜가 청중들을 초대한 것과 마찬가지로 청중들에게 자신에게 와서 지혜를 배움으로 안식을 얻으라고 초대하였다. 예수는 안식일 제도가 지향하고 있었던 종말론적 안식을 제시하였던 것이다. 이렇게 예수는 마치 하나님의 지혜가 했던 역할이 자신이 구현해야 할 역할인 것처럼 행동하고 말했다. 

 

   예수의 이런 말씀들은 예수의 예루살렘 여행이라는 좀 더 넓은 맥락과 극히 중요한 행위에 대한 예수의 다양한 설명과 자연스럽게 부합된다. 이것은 다시금 공관복음 전승이 외부에서 혹은 예수 시대 이후의 사람들의 예수상을 중심으로 만들어낸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예수의 공생애 사역이 그의 성전행위에 대한 고소로 끝났듯이, 그러한 고소는 예수의 사역 초창기에도 예수를 겨냥하고 있었다. 특히 예수가 죄 사함을 선포한 것은 그가 성전 제의 전체를 무시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었다. 예수를 통하여 시온으로의 야훼의 돌아오심이 일어난다면, 예수는 자신을 중심으로 이스라엘을 재구성하는 일, 즉 죄 사함 받은 자들, 포로생활에서 돌아온 자들, 한 분 참 하나님의 백성을 만들어 낼 권세와 권능을 가진 자인 것이다.

 

   예수의 초기 사역에서 다음 세 가지 내용들이 내적 통일성을 가지고 나타난다. 첫째로 예수는 오래 전에 약속된 시온으로의 야훼의 돌아오심을 상기시키기 위하여 상징적 행동을 했다. 둘째, 예수는 자신이 이스라엘의 한 분 참 하나님과 보좌를 공유하며, 이스라엘을 대신하여 고난과 신원을 받고 높이 들리며, 세상의 빛이 되어야 하는 이스라엘의 소명을 이룰 기이한 메시아적 인물이라고 보았다. 셋째 이러한 소명에 따라서, 예수는 자신의 사역 속에서 하나님의 임재와 행위들에 관한 중심 상징들인 성전, 토라, 지혜를 상기시키며 하나님나라를 선포하였다. 예수의 이러한 실천, 이야기들, 상징들, 세계관적 대답들은 한데 어우러져 예수의 중심적 신념을 보여준다. 예수는 야훼의 약속과 목적들이 자신을 통해서 성취되고 열매 맺게 된다는 신념에 따라서 행동하고 말했던 것이다.

 

    요아킴 예레미야스는 “아바” 즉 아빠로서의 이스라엘 하나님에 대한 예수의 체험을 예수의 사고방식과 자기 이해를 재구성하는 토대로 삼았다. 복음서의 오직 한 본문에만 등장하는 “아바”라는 표현을 가지고 이스라엘 하나님에 대한 예수의 체험과 가르침의 독특성에 관한 이론 전체를 구축하려는 예레미야스의 시도에는 동의하지 않지만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불렀던 예수의 표현이 예수의 기본적인 목적 및 신념과 관련이 있음은 인정한다. 이러한 ‘아바’라는 부름말은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아들로 불렀던 출애굽 뉘앙스를 상기시키기도 하고, 특별한 아들로서의 메시아, 아들로서의 이스라엘의 지위에 초점이 맞춰진 메시아를 지시하기도 한다. 예수는 자신이 새로운 출애굽을 구현함으로써 이스라엘의 운명을 절정에 올려놓게 될 메시아라고 믿었기 때문에 이런 신념과 일치하는 방식으로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며 제자들에게도 그렇게 기도하라고 가르쳤을 것이다. 예수가 자신이 아버지라고 불렀던 바로 그분과 특별한 친밀감을 느꼈다는 것은 복음서에 나타난 예수상의 나머지 모든 부분을 의미 있고 더 깊이 있게 해준다.

 

    예수는 하나님나라의 도래를 자신의 메시아직, 다가올 죽음, 그리고 예루살렘으로의 여행과 밀접하게 결부된 것으로 보았다. 예수는 자신을 통해 포로생활로부터의 귀환, 악의 패배, 야훼의 시온으로 돌아오심을 구현할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아들인 인자가 신원될 방식이며, 야훼께서 시온으로 돌아오실 방식이었으며, 하나님의 승리를 향한 길이 될 것이다. 

 

5. 결론

 

   예수는 야훼의 시온으로 돌아오심에 관한 전승, 그리고 어떤 인간 존재가 하나님의 보좌를 공유할 것이라는 전승들을 상기시켰다. 그리고 예수는 자신이 예루살렘 여행, 성전행위, 십자가 죽음을 통해서 이런 전승들을 직접 실천함으로써 야훼의 돌아오심을 구현하도록 부르심을 받았다고 믿었다. 그러므로 예수의 신념들은 장차 도래할 이스라엘의 하나님나라와 관련된 주후1세기 한 유대인이 가지고 있던 신념이었다. 예수의 신념은 유대교의 가르침에 기본적으로 충실한 것이었지만, 하나님나라가 자신의 사역을 통해서 오고 있다고 믿었던 주후1세기 한 유대인의 독특한 신념이었다. 그러므로 유대교의 전승과 제도들에 대한 예수의 도전은 전승 자체에 대한 반대가 아니라 전승의 참된 목적이 부패되고 왜곡된 것에 대한 내부로부터의 비판과 혁신이었다.

 

   예수의 신념은 유대인들의 가장 근본적인 신념인 유일신 사상, 선택사상, 그리고 종말사상으로 요약될 수 있다. 예수는 세상의 창조주, 이스라엘을 그의 백성으로 부르신 한 분 하나님을 믿었고 그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새로운 출애굽으로 인도하겠다고 약속하셨으며, 그 하나님의 임재는 성전, 토라, 지혜, 말씀, 성령으로 상징화되고 현실화되었다는 것을 믿었다. 예수는 주후1세기 유대적 유일신 사상을 믿는 유대인이었다. 또한 예수는 이스라엘이 세상의 빛이 되도록 부르심을 받았으며, 고난을 통해서 이 소명을 이루도록 부르심을 받은 한 분 창조주 하나님의 참된 백성이라는 것을 믿었다. 예수는 이스라엘의 소명에 대한 당시의 통상적인 해석들에 도전했지만 이스라엘의 특별한 소명에 대한 신앙을 소중한 간직했다. 예수는 주후1세기 유대적 선택사상을 믿은 한 유대인이었다. 나아가 예수는 포로생활로부터의 진정한 귀환, 악의 최종적인 패배, 시온으로 야훼의 돌아오심으로 이루어질 하나님나라가 장차 도래할 것을 믿었고 이런 유대적 소망을 자신의 사역의 주제로 삼았다. 예수는 주후1세기 유대적 종말사상을 믿은 한 유대인이었다. 

 

   그러나 예수는 유대인의 이런 신념들이 자신을 통해 이루어질 것이라고 믿었다는 점에서 동시대 유대인들과 달랐다. 예수는 이러한 신학과 기대 전체를 자신의 삶과 사역이라는 견지에서 해석하고 상징적으로 제시하는 것이 자신의 과제라고 믿었다.  예수의 소명의식에 대한 이런 이해는 복음서의 기독론에 대한 전통적인 진술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예수가 가진 소명의식은 예수가 이스라엘의 하나님과 자신의 관계에 대하여 모종의 초자연적 인식을 갖고 있었음을 의미하지 않는다. 예수의 예언자적 소명은 시온으로의 야훼의 돌아오심을 상징적으로 몸소 보여주는 것이었고 예수의 메시아적 소명은 성서의 예언대로 야훼가 자신을 위하여 유보해두었던 몇몇 과제들을 수행하는 것이었다. 예수는 야훼가 자신의 역할로 주장한 것을 메시아로서 감당해야 했으며 오직 야훼만이 이룰 수 있는 구원의 과제를 메시아로서 수행해야 했다.

 

   예수는 믿음에 붙잡히고, 기도 속에서 지탱되며, 대결 속에서 시험받고, 기도와 의심 속에서 고뇌하며 행위 속에서 수행된 인간적 소명을 의식하면서, 이스라엘과 세계를 위하여 오직 야훼만이 할 수 있었던 것을 자신이 해야 한다고 믿었다. 하나님 외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는 이스라엘의 메시아였다. 시온으로의 야훼의 돌아오심과 그것이 부각시키고 있는 성전 신학이 복음서 기독론에 대한 가장 심오한 열쇠들이자 단서들이다. 나사렛 예수가 자신이 삼위일체의 제2위라는 것을 알고 있다고 주장하는 사이비 정통신앙적 시도들을 거부해야 한다. 나사렛 예수는 자신의 소명을 인식하고 있었으며, 그 소명이란 이스라엘의 성서에서 야훼가 스스로 이루겠다고 약속하신 그것을 예수 자신이 몸소 실천해야 할 소명이었다. 예수는 자신이 아버지로 알고 불렀던 그분이 자신을 이스라엘 백성을 위한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되도록 부르셨다고 믿었다. 그래서 예수는 자기 자신 속에서 계약의 하나님의 돌아오심과 구속의 행위를 구현하고자 했다.

 

4부 결론[14장 결과들]

N.T. 라이트/JVG

2015-06-17 23:00:17


예수와 하나님의 승리

제4부 결론

제14장 결과들

 

    예수의 삶과 과제를 그 고유의 맥락에서 읽는다면 우리는 예수가 고대의 어떤 인물보다 더 뛰어난 인물임을 알게 될 것이다. 예수를 일차원적인 교사나 혁명가로 만들면 그는 우리가 본받을 수 있는 모델이 될 것이다. 그러나 예수를 한 분 참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고 그 나라를 스스로 구현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종말론적 예언자로 본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때 예수는 무엇인가를 이루려고 했다가 실패한 인물로 보일 것이다. 슈바이처는 이 문제점을 아주 잘 보았다. 사람들은 예수를 그의 역사적, 즉 종말론적이고 묵시론적인 맥락 속에 둔다면 그는 사람들과는 별 상관이 없는 인물이 된 위험이 있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예수의 가르침이 무시간적인 진리가 아니라 당시의 이스라엘을 향해 있는 상황적 교훈이 되기 때문이다. 이 보다 더 심각한 것은 예수를 묵시사상으로부터 구해내려는 생각으로, 예수는 하나님나라를 약속했지만, 그 나라는 결코 도래하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슈바이처 시대에는 예수를 무시간적 교사로 묶어 두려는 경건한 자들이, 현 시대에는 묵시론적 예언자로서의 예수를 거부하는 불경건한 자들이, 이런 주장을 하고 있다.

 

   슈바이처는 예수는 실패했지만 그의 인격 혹은 영은 해방되어 모든 시기와 장소에 걸쳐서 타당하게 되었고 현존하게 되었다고 주장하였다. 불트만은 예수의 인격은 미지의 것이지만 그의 가르침은 여전히 살아있다고 주장하였다. 슈바이처가 예수의 인격을 통해 얻었던 것을 불트만은 탈신화화를 통해 얻은 것이다. 불트만의 탈신화화된 예수도, 슈바이처의 문자적 종말론도 주후1세기의 역사적 맥락과는 무관하다. 슈바이처와 불트만의 주장 모두가 타당하지 않다. 예수는 야훼께서 온 세상의 왕이 되심으로 도래할 하나님나라를 몸소 실천하고 구현하려고 예루살렘에 갔는데, 거기서 예수가 모든 실패한 메시아들이 죽었던 방식으로 죽고 이야기가 거기서 끝났다면 예수는 실패한 인물이고 우리가 그에게서 배우거나 얻을 것은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이교도에 대항한 싸움에서 패배하고 이교도의 손에 죽임을 당한 메시아는 이스라엘을 속이는 자였다. 실패했지만 여전히 존경을 받았던 메시아라는 범주는 유대교에서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왜 사람들은 비극적인 기억으로서가 아니라 그 외의 다른 것으로 나사렛 예수에 대하여 계속해서 말한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분명한 대답은 예수는 죽은 자들로부터 부활하였다는 것이다. 우리가 부활을 어떤 식으로 이해하든지, 부활은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는 실현될 수 있었지만 실현되지 못한 꿈이 아닌, 실현된 그 무엇을 나타내고 있었다고 생각한 유일한 이유였다. 예수는 임박한 죽음과 그 죽음 후에 기대했던 자신의 신원을 악의 패배로 해석했다. 그러나 예수의 부활사건이후 이천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온 세상에는 악이 활보를 하고 다닌다. 그래서 기독교 전통은 종종 예수의 승리의 효력을 내세로 연기하거나 관념론적인 승리로 바꾸어 버리곤 했다. 그러나 이것은 예수가 이루신 일을 완전히 탈유대화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라고 기도했던 예수의 엄숙한 기도를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다. 

 

   주후1세기 그리스도인들은 예수의 부활과 마찬가지로 자신들의 부활에 관심을 가졌으며 악에 대한 예수의 승리를 그들이 살고 있던 실제 세계와 직접 결부된 일로 선포하고 송축하였다. 그들이 싸워야할 남은 싸움이 있었지만 실제적인 승리는 이미 이루어진 상태였다. 이것이 그들이 정사와 권세들의 시대가 끝났다고 선포한 근거였으며 그들의 주목할 만한 기쁨의 토대였다. 예수의 존재감은 예수의 부활에 대한 증언을 받아들이느냐 거부하느냐에 따른 근본적으로 달라진다. 하지만 그런 증언을 받아들인다고 하더라도 부활 이전의 예수에 대한 관점에 따라서 부활은 근본적으로 다른 것을 의미하게 된다. 정통신앙의 기독론처럼 예수를 가현설적 인물로 본다면 부활은 예수가 제시한 구원을 유효하게 하며 예수의 신성에 대한 입증이 될 것이다. 또는 예수를 무시간적인 진리의 교사로 본다면 그의 부활은 그가 제시한 강령을 시인해주는 것이 될 것이다. 그러나 예수가 하나님나라를 선포했고 그것을 위하여 죽은 종말론적 메시아였다면, 부활은 그의 하나님나라 과업이 성공했고 그가 재정의한 하나님나라가 옳았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 될 것이다. 이스라엘을 세상의 빛으로 부름을 받은 존재라고 믿었던 예수가 이스라엘을 위하여 한 일은 원칙적으로 온 세상을 위하여 한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가 그의 제자들을 이사야서에 나오는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 세상에 빛이 될 자들로 내다본 것은 그의 목적과 잘 부합된다. 예수의 제자들은 단순히 하나님나라 사상을 지닌 백성이 아니라 하나님나라의 과업을 지닌 백성이 될 것이었다. 이런 점에서 슈바이처는 옳았고 불트만은 틀렸다. 정통신앙을 자처하던 교회가 통상적으로 예수가 시온으로 야훼가 돌아오심에 관하여 말할 때 사용한 언어를 예수 자신의 재림에 대한 언급으로 이해한 것은 아이러니이다. 이런 오해 때문에 개신교의 몇몇 분파들은 예수의 성육신보다는 예수의 재림에 더 강렬하고 열성적인 믿음을 가지게 되었고, 이런 믿음은 예수가 실제로 신적 혹은 초자연적 존재였기 때문에 인간으로서의 그의 사역은 그가 제시한 구원과 별로 관련이 없다는 것을 확인해주는 기능을 했다.  이런 오해로 인해 정통교리를 거부하는 자들은 예수의 재림이 역사적 토대가 없다고 공격하였으며 또한 성육신 자체를 탐구하고자 했던 사람들은 성육신에 관한 중심적인 의미가 예수의 실제 역사를 중심으로 반복적으로 고찰되었다는 사실을 간과해 왔다.

   

  그동안 정통신학은 역사를 잊고 지내왔고 그 결과 계몽주의가 악당의 역할을 하도록 불러들였다. 계몽주의는 그동안 금지된 주제인 역사적 예수를 탐구하도록 부추겼고 역사 연구를 통해 성서와 교회의 주장이 허구임이 입증될 것을 기대했다. 그 결과 역사는 교회에서 쫓겨나 탕자처럼 짐을 꾸려서 먼 나라로 갔으며 가시나무와 엉겅퀴에 둘러싸인 채 쥐엄나무 열매를 먹는 신세가 되었다. 그러나 교회는 탕자(역사)도 여전히 큰아들(신학)과 마찬가지로 아버지(기독교)의 참 아들들 중 하나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라이마루스는 옳았고 멜란히톤은 틀렸다고 말한다. 멜란히톤처럼 예수의 역사가 실제로 일어난 것이 아니라 그것이 자신에게 의미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면서 기독교가 역사를 멀리할 때 엄청난 폐해를 가져온다. 라이마루스는 기독교를 파괴할 것이란 희망 속에 역사에 호소했지만, 오히려 그의 작업은 실제로는 기독교를 다시 한 번 지금까지 잊고 있었던 기독교의 뿌리들과 접촉하게 해주었고 그리하여 기독교라는 나무가 다시금 새로운 생명수에 접근할 수 있게 해주었다.  

 

    교회는 신학적 방어막을 치고 역사로부터 꽁무니를 빼거나 역사와 함께 가는 것을 거부해서는 안 된다. 주후1세기의 진정한 유대적 신학의 관점은 역사, 특히 주후1세기 유대교의 역사가 세상을 창조한 하나님이 심판과 구원의 사역을 하고 있는 영역이라는 것을 가르쳐 준다. 복음서들은 역사적 예수에 관하여 학자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말해주고 있다. 이런 결론을 회피하려는 몇몇 유형의 정통신앙은 자기 패배적이고 진실하지 못하다. 내가 지금까지 제시해 온 예수의 사고방식들, 목적들, 신념들에 관한 묘사는 그 직접적인 현존을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그런 하나님이 아니라, 자신의 영광을 환영과 경고, 상징과 이야기, 성전행위와 다락방 행위, 골고다 언덕에서 나타난 한낮의 어두움 속에서 기이하게 자신의 영광을 계시한 그런 하나님을 보여준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