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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킬더: 문화의 열쇠는 그리스도- 헨리 반틸

스킬더: 문화의 열쇠는 그리스도- 헨리 반틸

2019-06-03 19:56:31


1. 클라스 스킬더(1890-1952)는 아브라함 카이퍼 이래 개혁주의 진영에서 최대의 문화 신학자다. 그는 일반은총 교리에 있어 카이퍼와 다른 입장을 취하여 일반명령(문화명령) 교리로 대신했다. 스킬더는 하나님과 역사를 동일시하는 헤겔에 반대하여 하나님과 피조물이 구별되어 있음을 강조한다. 그런가 하면 스킬더는 키엘케골, 바르트 ,브룬너, 틸리히 등에 대해 적지않게 비판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나님과 사람, 영원과 시간 사이에 어떻게 할 수 없는 대립이 존재한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스킬더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분리는 언제나 깊은 결합의 기초 위에 있으며 후자가 전자를 결정짓고 상관한다고 주장한다. 스킬더에게 있어 하나님과 자연, 하나님과 역사, 하나님과 피조물, 은총과 자연 사이에 대립관계는 존재하지 않으며, 다만 죄와 은총, 그리스도와 적그리스도 사이에 대립이 있을 뿐이다. 스킬더는 그리스도가 역사의 중심에 서 있으며 그를 높이는데 역사의 의의가 있다고 주장한다. 창조와 섭리 안에서 계속되는 하나님의 사역없이는 그리스도의 성육신은 역사와 아무런 관계가 없어질 것이다. 역사는 그리스도 안에서 이뤄지는 하나님의 구속 사업을 위한 배경이기에 하나님은 역사와 자연을 정죄하지 않으시고 그리스도를 통하여 다만 죄를 정죄하며 구원을 통하여 자연과 역사를 본래의 목적으로 회복시키신다. 스킬더는 이것이 문화의 비결이라고 강조한다.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하여 죄의 진노를 대신 져주시는 제2의 아담이며 아담에게 주신 문화적 사명을 대신 성취시키는 분이시다.

 

2. 기독인은 그리스도의 기름부음에 동참하는 자이기 때문에 문화와 관계해야 함은 불가피한 일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는 아담의 합법적인 후계자로 선포되었으며 아담이 실패한 일, 즉 만드신 세계를 통하여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리는 일을 친히 감당하시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는 어떤 새로운 것을 가지고 오신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있었던 것을 회복시키고 하나님이 처음 계획하신 것을 실제로 성취시키기 위해 오셨다. 창조시에 아담에게 주어졌던 문화사명은 사람이 하나님을 섬기는 길이요 참된 종교며 원래적인 우주의 질서였다. 스킬더는 이 우주의 질서 안에서 위임을 받았다는 사명감이 문화의 성질을 결정짓는다고 말한다. 인간은 하나님이 지으신 세계를 개발하고 잠재되어 있는 것을 결실하게 함으로 창조주 하나님의 동역자로 부름을 받았다. 창조세계는 완성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인간은 문화활동을 통하여 그것을 발전시키고 개발해야 했다. 그러나 죄는 분리를 가져왔고, 하나님과 사람, 사람과 자연, 사람과 사람, 종교와 문화의 관계가 단절되었다. 우주의 조화가 깨지고 인간은 보편타당한 정신을 상실함으로, 우주의 통일된 질서와 참된 목적을 알지 못하게 되었다. 하지만 죄는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소멸시키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창조질서는 행위계약에서 나타난 모든 인간의 일반적 의무이기 때문이다.

 

3. 스킬더가 정의한 문화관을 죤 프린트는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 문화는 전 인류가 계속적으로 생산해야 할 개발활동의 집성을 위한 조직적 노력이다. 전 인류는 창조세계에 잠재하는 힘을 발견하고, 역사 과정에서 이 잠재력이 나타나도록 개개의 자연법에 따라서 그것을 발전시키고. 멀고 가까운 모든 것을 하나님의 계시된 진리의 규범에 순응케 함으로 자유케 하여, 예배적 인간에게 유용한 재물이 되고 그 결과 그것들을 가진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영원토록 영광을 돌리도록 해야 한다."  스킬더는 죄 많은 세상에 현존하는 문화현상 자체를 일반은총에 돌려서는 안된다고 말하며, 일반은총을 성령의 보편적인 역사로 생각하는 것에 대해 의문을 제시한다. 그는 죄의 억제는 시간에 고유하게 있는 것이며 죄의 억제가 멎을 때 시간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는 일반은총을 올바르게 표현하려면 일반저주(진노)를 함께 말하지 않을 수 없다고 강조한다. 스킬더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현 문화 위에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문화를 올려놓을 수 없다고 말한다. 스킬더는 타락후 시간의 연장에는 은총이 포함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하늘과 지옥의 수를 다 채우기 위해 시간을 연장시키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스킬더는 단순한 시간의 연장은 축복도 저주도 아니고 다만 역사가 진행되고 문화가 개발될 수 있는 기초일 뿐이며, 자연의 발달은 은총이 아니고 자연적인 과정의 일부분이라고 말한다. 그것은 창조시에 하나님이 인간에게 부여하신 능력의 결과다. 인간에게 부여된 문화적 본능이 에덴동산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 되었지만 타락후에는 인간중심이 되어 자기에게 영광을 돌리게 되었다.

 

4. 스킬더는 시간내의 자연은 성질상 운동과 발전을 내포한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구상하고 실천하는 것은 역사 과정의 부분이며, 문화는 모든 역사의 전제다. 그러므로 순수한 시간의 연장이나 단순한 문화활동을 하나님의 은총으로 생각하는 것을 큰 잘못이라고 말한다.먹고 마시고 출산하는 그 자체에는 은총도 저주도 없다. 그러나 믿음 안에서 하나님의 영원한 안식을 준비하는 일로서의 먹고 마시고 출산하는 것은 은혜의 증거다. 그러나 모든 사람에게 미치는 보편은총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믿음없이 먹고 마시고 출산하는 모든 불신앙의 문화는 저주의 대상이다. 왜냐하면 타락후 자연뿐만 아니라 자연의 사용, 즉 문화현상에 있어서도 대립이 불가피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모든 시간을 하나님의 안식을 준비하는 문화활동을 위하여 인간을 불렀다는 사명감으로 우주를 바라보아야 한다. 스킬더는 기독인은 중생받지 않은 자들의 문화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고 만족해서는 안되며, 세속문화가 차려놓은 진수성찬에 손을 대는 대식가가 되어서도 안된다고 말한다. 스킬더는 저주를 받아 마땅하지만 아직도 아름다운 자연, 음악, 연극과 텔레비 등 좋은 것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문화의 문제를 지나치게 좁게 제약하는 것이며, 이는 창조시에 인간이 문화사명을 부여받았다는 사실을 보지 못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5. 스킬더는 일반은총이란 말을 거부할 뿐만 아니라 신자들이 불신자와 공유하고 있다는 공동영역이라는 관념까지도 반대한다. 그 이유는 만일 문화 영역을 일반은총의 영역이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세상과 교회의 두 양립하는 세력 사이에 하나의 중립지역을 만드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스킬더는 우리가 말할수 있는 최선의 것은 우리가 세상이라는 하나의 공동작업장을 가진다는 것일 뿐, 공동의 문화를 가질 수는 없다고 말한다. 문화적 사명이나 문화적 충동은 모든 인간에게 있는 공통적인 현상이다. 오늘날도 자연은 하나지만 자연의 사용은 이중적이다. 분야는 하나지만 그 발전은 두 종류이고, 문화의 자극은 하나지만 그 노력은 두 가지다. 문화를 일반은총의 원리에서 설명하는 카이퍼나 그의 제자들의 사상에 반대하여 스킬더는 그리스도를 문화의 열쇠와 실마리로 삼는다. 스킬더는 인간을 참된 종교와 문화로 돌리기 위해서는 두 가지 일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한다. 첫째는 죄에 대한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과 진노가 가라앉아야 하며, 둘째 하나님이 요구하신 순종이 이뤄져야 한다. 그리스도는 인간을 구원하는 구속자로서 그리고 하나님의 공의를 완성하는 자로서 역사 세계에 들어오셨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세상의 구원자요 앞날의 문화를 성취시키는 보증자이시다. 인간의 조상인 아담의 마음 속에 심겨졌던 문화적 과업은 이제 둘째 아담에게 옮겨졌다. 이제는 그리스도의 말씀과 영이 이 창조시에 받은 과업을 새롭게 된 인간의 마음속에 다시 아로새기고 있다. 카이퍼는 교회가 일반은총에 의존함으로써 세상에서 발붙일 곳을 찾는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스킬더는 입장을 달리하여 하나님이 교회를 모으시는 한, 세상은 회개할 기회를 갖는다고 말한다. 스킬더는 그리스도는 참되고 온전한 인간을 만듦으로 문화를 회복한다고 말한다. 스킬더에게 기독교의 존재는 단지 종교의 혁신뿐만 아니라 역사의 문화적 개혁이기도 하다. 스킬더는 그리스도가 문화를 새롭게 하고 인간을 완전하게 함으로 인간이 이 세상에서 다시 문화적 사명을 수행하게 할 수 있음을 강조한다. 그러므로 엄밀하게 말하면 적극적이고 창조적인 문화건설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데서만 이뤄진다. 스킬더에 의하면 하나님이 없는 문화는 결코 완성되거나 성취되지 않으며 문화적 무기력의 괴물은 점점 확대되어가며, 그 결과는 도구를 사랑하게 되고 영화를 위한 영화, 예술을 위한 예술을 만들어 낸다.

 

6. 스킬더는 그리스도 안에서 진정으로 건전하고도 궁극적인 진리를 지향하는 조화된 문화체제가 출현한다고 말한다. 하나님은 그의 특별은총을 통해 죽은 자를 살리시며 하나님의 사람으로 하여금 모든 착한 행실을 하기에 합당한 자로 완전하게 하신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만이 참된 문화의 원천이며, 개개인을 함께 묶는 교제를 갖게 하며, 목적론적으로 문화를 형성하는데 없어서는 안될 공동체를 이룩하기 때문이다. 엄밀하게 말해서 문화만의 문화는 없다. 순수한 이성이 없는 것처럼 순수한 문화도 없다. 비록 본성은 하나지만 인간의 문화활동은 둘이다. 죄와 저주의 결과로 두 가지 성질이 존재하며, 우리는 이 양자의 대립과 갈등을 인정해야 한다. 세속화된 비극만이 연출되는 죄 많은 세상에서는 인류의 근본유대가 끊어지고, 죄인들은 모두가 종파주의자요 분리주의자이기 때문에 조각난 문화만이 이뤄질 뿐이다. 그런가 하면 기독인 역시 세상의 핍박과 무지 때문에 단편적인 문화를 이룰 뿐이다. 스킬더는 이와 같은 기독인의 단편적인 문화활동의 성격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소홀히 해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스킬더는 인류 사회에서 신비로운 그리스도의 지체로서 하나의 공동체를 구성하는 것이 기독교 문화라고 말한다. 스킬더는 문화의 문제를 일반은총으로 말하는 것은 무비판적 태도라고 지적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단순히 땅을 개발하고 정복하도록 허락되었을 뿐만 아니라 명령되었기 때문이다. 스킬더는 본성의 빛과 그 사용을 구별지으려 한데 반해, 카이퍼는 그렇게 하지 않고 문화사명이 문화 허락으로 좁혀졌다고 생각했고 그 결과 문화적 낙관주의에 떨어질 위험이 있다. 왜냐하면 자연은 인간이 임의대로 하도록 주어진 것이 아니고 하나님을 섬기는데 사용되도록 주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문화활동에서 우리의 가능(MAY)은 당위(MUST)가 되어야 한다. 능력과 취미가 규범을 결정지어서는 안된다. 교회는 천박하게 변장된 문화의 센터가 될 수 없고, 간접적인 문화의 최대 세력이 되어야 한다. 더욱이 기독교 문화에 있어서는 인간은 다만 그리스도와 공동체가 되는데서만 가치가 있다. 기독교 문화철학자는 문화 낙관주의에 취하거나 문화적 금욕주의로 떨어지지 않도록 보다 문화사명을 생각해야 한다. 기독인은 그리스도와 더불어 선지자, 제사장, 왕직을 가진 자임을 의식해야 하며, 계시된 말씀의 빛 아래서 살아야 한다. 왜냐하면 자연은 말씀의 조명을 받지 않는 한 아무것도 가르쳐 주지 못하고 하나의 수수께끼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꼭 알아야 하는 것은 문화적 종말이다. 왜냐하면 세상은 이미 하나님의 동산이 아니고 일해야 할 장소이며 싸워야 할 투기장이며 건설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7. 스킬더는 문화의 과정을 종말론적 교육면에서 그 가치를 평가하며, 하나님의 동역자로서 인간의 보잘 것 없는 일들이 마지막 심판의 날, 불속에 타 없어진 후에도 그 정신적인 가치는 남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문화의 참된 가치는 예술작품이나 현대적인 발명에 있는 것이 아니고 긴장의 과정을 통하여 그리스도를 위하여 적그리스도와 싸울 전쟁터를 마련하는데 있다. 이 점에 있어서 스킬더는 열국의 영광이 새 예루살렘에 들어간다는 카이퍼의 주장을 거부한다. 스킬더의 역사 철학에 있어서 중요한 사상은 극적 시점에 대한 사상인데, 거기에는 새 나라의 일들이 종말론적인 대심판에서 뿐만 아니라 이미 창조의 시대에 맞아 들여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하늘은 하나님의 세계이지만 우리가 만일 그것을 전적으로 다른 세계로 본다면, 역사의 중심에서 목적을 통제하고 태초로부터 있어 온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올바로 알지 못하는 것이 된다. 스킬더는 하나님의 섭리의 진행이 역사구조 안에 구현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하늘 나라의 완전성과 무결성에 따라 창조되어져야 하는 인간의 완전성은 하나의 새로운 창조가 아니라 단순히 순화되고 새롭게 되며 완전하게 되는 창조라고 생각한다. 세상을 저주의 대상으로 보는 반 루러는 세상을 하나님의 자기 영광을 위한 도구로 보는 스킬더의 기본 전제에 반대한다. 반 루러는 키에케골과 바르트의 영향을 받아서 단순히 하나님과 죄 사이 뿐만 아니라 하나님과 세상 사이에 대립관계를 유지하려고 한다. 또한 반 루러는 스킬더가 구속론을 문화적 이론과 동일시했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스킬더가 종교를 문화로, 특별은총을 계속적인 창조로 본 것은 아니다.스킬더가 모든 종교를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문화적 봉사를 회복하는데 있다는 인상을 조성한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로 하여금 종교는 하나님을 떠난 영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일상생활 가운데서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데 있는 것임을 알게한 것은 확실히 그의 공적이다.

 

8. 만일에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근본적 관계가 계약을 맺은 언약 관계로 해석하는 스킬더의 주장이 옳다고 한다면, 인간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 앞에 그 직위를 회복할 때, 인간이 모든 문화활동 영역에서 하나님과 동역자가 되는 궁극적 목적에 모자람이 없을 것이다. 인류의 문화를 일반은총에 기초하여 설명한 카이퍼를 스킬더가 반대한 것은 마땅히 칭찬을 받아야 한다. 일반은총이 없으면 세상은 즉각 추상과 사색으로 망해버릴 것이라고 하는 것이 카이퍼의 특징적인 사상이라고 말한 스킬더의 지적은 옳다. 그러나 파국적인 종말에 의하여 세계가 완전한 단계로 들어간다고 스킬더가 결론지은 것은 일반은총 없이는 세상이 떠나가 버릴 것이라고 걸론지은 카이퍼와 마찬가지로 사변적이다.  나아가 스킬더가 전 피조물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인정하면서도 선택받지 않은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은총을 부정한 것은 추상적인 사색에 너무 치중한 탓이다. 한편 스킬더가 일반은총 영역을 신자와 불신자 사이에 중립적인 활동 분야를 제공하는 것이라고 경고한 것은 칭찬할만한 일이다. 카이퍼는 하나님의 일반은총이 없다면 세상은 멸망할 것처럼 말하지만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죄인을 구원하고 세상을 지키므로 스스로를 영화롭게 하는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이 역사의 동기가 되고 인간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형상이 인간의 존재 근거이며 인간성의 일부가 된다고 믿는다면 그때는 일반은총 영역에 대한 사상은 무의미하게 될 것이다. 카이퍼의 일반은총은 문화적 낙관주의자들에 의하여 세상과의 대립관계를 해소하기 위하여 흔히 쓰여지기 때문에 아주 위험한 사상이다. 볼렌호븐이 지적한대로 사람이 일반은총의 세계에 살면서 동시에 특별은총의 세계에 산다는 은총의 이중성을 생각하는 것은 커다란 위험이다. 이것은 말하자면 은총과 자연에 대한 로마카톨릭적 입장으로 되돌아가는 것과 마찬가지가 된다. 결론적으로 스킬더는 문화를 에덴동산에서 부여된 사명에서부터 비롯된 것이라는 그의 관점을 밝힘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에 크나큰 공헌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