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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

아브라함 카이퍼" 일반은총과 그리스도 왕직의 신학자- 헨리 반틸

아브라함 카이퍼" 일반은총과 그리스도 왕직의 신학자- 헨리 반틸

2019-06-02 20:58:27


   카이퍼는 스스로 자신을 칼빈의 충실한 모방자로 믿고 있었다. 그는 영광을 받으신 그리스도의 왕직과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신앙고백에서 충실하게 칼빈을 따르려 하였다. 카이퍼는 칼빈주의 변증가로서 카톨릭, 재세례파, 인문주의 신학에 반대하여 그리스도의 주권을 문화영역에서 확립하고 그의 영적 동지로 하여금 재세례파의 고립주의에서 자유롭게 하려고 했다. 카이퍼는 하나님의 일반은총 없이는 어떤 문화도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다. 왜냐하면 세계는 죄로 인하여 하나님의 일반은총이 저지하지 않는다면 사멸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카이퍼는 창조물에 대한 하나님의 위대하신 법칙이 일반은총을 통해 이뤄지기 때문에 일반은총이야 말로 인간문화의 근본이 된다고 말한다. 그는 일반은총은 영적이거나 재창조적이지 않고 물질적이며 시간적이며 비록 구원의 힘이 없고 이 세상 생활에 국한된 것이기는 하나 그 근원은 세상의 중보자 되시는 그리스도라고 말한다. 카이퍼는 피조세계를 발전시키고 역사와 문화를 가능하게 하는 독자적 역할이 일반은총에 속한 것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인간의 전적타락을 부인하는 것이 아니고, 비록 하나님의 제약 아래 있기는 하지만 인간생활에 존재하는 가능한 일의 실재성을 인정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일반은총의 활동을  통하여 죄와 죄의 무서운 결과가 제어되기 때문이다. 일반은총은 인간의 행위나 반동에 구애됨이 없이 언제나 동일하게 계속적으로 활동한다. 이런 점에서 카이퍼는 문화적 낙관주의자라는 평을 받게 되며 종말론적 기대를 흐리게 하기도 한다. 그러나 카이퍼는 일반은총은 비록 죄를 억제하고 하나님의 저주를 연기되게 하지만 역사의 연장은 결국 지옥으로 인도할 뿐이며, 따라서 일반은총은 특수은총을 떠나서 아무 소용도 없다고 주장한다.

 

  카이퍼는 일반은총은 소극적으로 죄와 죄의 결과를 억제하지만  적극적인 활동면도 있다고 말한다. 그것은 문화 형성자로서 역사에서 작용하는 힘으로서 기능이다. 카이퍼는 일반은총 제1권에서 죄를 억제하는 것으로서의 일반은총의 본질을 논했으며 제2권에서는 일반은총의 진보적인 면을 논하였다. 인간역사는 하나님의 영원하신 작정에 따라 하나님의 자기 영광을 위하여 걸어가고 있는 것인데, 여기서 일반은총은 하나님의 영원한 작정 가운데 포함된다. 이것 없이는 역사 과정은 무의미하게 된다. 왜냐하면 구원으로 이르게 하는 특별은총은 그것이 작용할 기초가 있어야하기 때문이다. 공허한 곳에서 특별은총은 작용하지 못한다. 세상은 지속되어야 하고 인간은 출생되어야 하며 역사는 진보를 보여주어야 한다. 이 모든 일들이 이뤄지기 위하여 일반은총이 필요하게 된다. 문명, 개화, 발전, 진보는 사탄에게서 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만 계속적인 인류의 발전은 집약적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보여주는 것이 된다. 문화는 자연속에 뿌리 박은 하나님의 일반은총의 선물이다. 이 은총은 신자에게나 불신자에게나 다같이 주어지는 공통적 은총이다. 그러므로 자연인은 어떤 영적인 선을 행할 수없다 할지라도, 일반은총의 덕으로 시민으로서의 정의를 수행하며 도덕적 선을 행할 수 있다. 카이퍼는 인간은 타락으로 인하여 문화의 기초가 되는 자연을 다스리는 능력을 상실했지만 일반은총을 통해 자연을 지배하는 능력이 회복되며 이로 인하여 하나님의 형상의 영광이 나타나고 그 나타난 열매는 영원한 나라에 들어간다고 말한다. 카이퍼는 문화 전반에 걸친 보편적인 인간의 발달은 영원까지 지속되며 죄의 결과를 감소한다고 확신했다.

 

  일반은총의 효능 가운데 한 가지는 그것이 특별은총으로 하여금 활동할 수 있는 기초를 마련하여 주는 것이다. 일반은총은 필요한 환경을 조성함으로 성령이 모든 육체에 부어지고 교회로 하여금 선교 사역을 할 수 있게 한다. 이와 같이 하여 이방세계와 불신세계가 다같이 문화적 활동을 통하여 간접적으로 교회에 이바지 한다. 비록 일반은총이 특별은총의 길을 촉진케 하기는 하나 카이퍼의 이런 주장은 좀 지나치게 현실주의적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이는 문화가 종종 신앙의 원수가 되어왔고 심지어 불신앙을 조장해온 사실을 간과한 듯이 보이기 때문이다. 카이퍼는 이런 비판에 대해 그것은 문화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을 반대하는 자들이 일반은총을 오용하는데서 오는 현상이라고 말한다. 카이퍼는 문화를 교회의 지배에서 자유케하려고 몹시 관심을 가졌다. 그는 사회가 교회의 지배를 받던 중세기의 종교사회 체계로 복귀하기를 원치 않았다. 특별은총이 어떻게 일반은총에 작용하는가의 문제에 있어서 카이퍼는 하나님의 피조세계를 개발하고 유지함으로 문화를 발전시키는 일반은총의 독자적인 목적을 전제한다. 그러나 특별은총은 일반은총에 대하여 직간접으로 영향을 미친다. 카이퍼는 간접적으로 기독교 신앙은 생을 번영하게 하며 말씀과 교회의 출현은 일반생활을 강화하고 풍요롭게 하고 고상하게 한다고 믿었다. 그 한 예로서 카이퍼는 서구의 지배로 말미암아 식민지 주민들이 특별은총의 은택을 입은 바 있다고 말한다. 카이퍼는 심지어 기독교에 뿌리를 받은 서구 문명만이 참된 문명이라고까지 말한다. 그가 보기에 일반은총의 능력에 자유를 주고 죄와 악마의 사슬에서 풀어주며 노예에서 해방시켜 주는 것은 기독교 신앙이다. 이 점에 있어서 카이퍼는 기독교를 옹호하여 세계사는 기독교 신앙이 문화에 대하여 가치가 있었는가 아니면 무용지물이었는가를 보여준다고 주장했다. 

 

   카이퍼는 특별은총은 적극적이며 동시에 소극적이라고 말한다. 그것은 문화영역에서 신앙을 위하여, 그리고 불신앙에 대항하여 싸움과 동시에 어거스틴이 하나님나라와 이 세상과를 구별하여 말한 정신계와 물질계, 새로운 인간과 하나님을 대적하는 인간과를 구별한다. 카이퍼에게 있어 이 새 인간성은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며 일반은총의 영역에서 하나님의 창조의 섭리를 수행할 수 있도록 작용하는 유기체로서의 교회였다. 특별은총은 비록 영젹인 기원과 목표를 지향하기는 하나 인간 전체속에 침투하며 역사한다. 증생받은 사람은 마음뿐만 아니라 인간 삶의 모든 영역에서 변화를 받는다. 이와같이 천국은 다만 말세론적으로 대심판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서도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카이퍼는 일반은총의 영역에서 왕을 위하여 공통의 문화를 성취하는 것이 개인적 또는 조직화된 통일체적 유기체로서의 교회의 기능이라고 말한다. 여기에 이 세상에서 교회가 말씀을 전하고 복음화 운동을 하는 활동과는 달리 기독교의 전투적 성질이 있는 것이다. 중생받은 사람은 모든 문화활동, 사회관계, 공공조직체에 있어서, 왕을 위하여 살아야 한다. 결혼, 가정, 교육기관, 국가, 사회 전반은 기독교적 원리에 따라 조직되어야 한다. 이것은 창조를 무시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을 위하여 그의 위대하신 창조의 원 목적에 이바지할 수 있도록 피조물이 회복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카이퍼는 세상의 나라들이 일반은총의 선물을 사용하여 하늘나라에 반대하는 힘을 증가시켰다고 확신했다. 그는 그리스도인들이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려면 조직화된 힘으로 세상과 대결해야 한다고 결론짓는다. 칼빈주의자들은 사회내에서의 자유로운 조직을 통하여 노동, 산업, 교육, 과학, 예술, 정치의 각 영역에서 반 기독교적인  정신을 가진 조직체에 반대하는 조직체를 구성해야 한다. 카이퍼는 세상조직과 구별되는 조직을 가지지 않고서는 기독인이 사회에서 성공적으로 활동하며 그리스도를 증거할 방법이 없음을 확신한다. 그는 이것을 교회와 학교 다음으로 사회의 지도권을 잡을 수 있는 세째가는 기구라고 불렀다. 카이퍼는  이세상에서 독립된 조직체는 기독인을 세상 밖으로 나가게 한다는 생각을 거부했다. 왜냐하면 그는 언제나 기독인은 세상 안에 있으나 세상의 것은 아니라는 이중적 관계를 의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기독인은 사회 안에서 삼중적인 사명이 있다. 그것은 조직화된 교회의 구성원으로 생활하는 것과 그리스도의 지체의 한 부분으로서 사회 안에서 생활하는 것 그리고 전체의 복지를 추구하여 불신자들과 공동활동에 참여하는 것이다. 죄가 인간의 모든 영역을 어느정도 부패케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것이 하나님의 좋은 선물을 합법적으로 사용할 수 없게 하였다고는 생각할 수 없다.

 

   카이퍼는 헤겔의 일원론적 정신철학과 자연주의의 진화론적 물질주의에 반대하여 하나의 문화철학을 수립하려고 노력하였다. 역사를 가능하게 하고 인간의 문화적 산출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일반은총이다. 동시에 일반은총은 특별은총의 전제가 되며 킬빈주의 문화가 발전할 수 있는 환경과 조건이 된다. 우리는 카이퍼가 주장한 일반은총의 교리를 불신자의 중립적 문화관을 무비판적으로 숭상하는 근거로 악용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카이퍼는 일반은총을 그리스도의 왕권 아래 두었기 때문이다. 그에게 있어서 일반은총이란 중생받은 성도들이 그리스도를 위하여 문화적 활동을 할 수 있게 하는 환경이었다. 카이퍼에게 그리스도의 왕권은 현존하는 실체였다. 그러나 특별은총을 영원한 구원으로 결실케 하는 예외적인 것으로, 그리고 인간의 문화활동은 일반은총을 통하여 나타난다고 한 카이퍼의 주장에 대해서는 반대가 일어나고 있다. 물론 그가 고대의 노스틱주의자들이나 현대의 바르트주의자들처럼 구원받은 영혼과 버림받은 세상 사람 사이에 대립관계를 설정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영적 특별은혜의 영역과 현세적이며 가시적인 일반은총의 영역 사이에는 일종의 극단적인 이원론이 개재되어 있다. 이런 양극단적인 요소 때문에 카이퍼는 일반은총이 창조의 중보자로서의 그리스도 안에서 기원되었으며, 한편 특별 은총은 구속의 중보자로서의 그리스도에게 돌려야 한다고 말했다. 카이퍼는 처음에는 재세례파와 로마교회 교회정부의 위험을 피하기 위해 일반은총을 특별은총에서 독자적인 것으로 구별하기도 하였지만 나중에는 이 양자가 서로 밀접하게 관계하며 작용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카이퍼가 일반은총보다는 특별은총을 더 강조했지만, 일반은총 없이는 하나님의 진노 때문에 세상이 혼란 상태로 될 것이며 인간이 범죄했을 때 육과 영이 다같이 멸망할 것이라고 주장한 것은 그가 성경이 말하는 것보다 일반은총을 더 강조했다는 인상을 받게 한다. 카이퍼가 창세기 2장에 근거하여 일반은총 없이는 인간은 하나님의 진노로 인해 살 수가 없다고 주장한 것은 위험한 생각이다. 일반은총이 그가 말하는 것처럼 세상을 존속하게 한다는 생각은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 안에 있는 은총을 구별할 수 있겠는가?  이는 실로 자연계와 영계를 갈라놓은 노스틱주의의 잔재가 카이퍼에게 남아있다고 하겠다. 베레마는 카이퍼의 두 은총 사이에 있는 극단적 이원론은 그의 창조론에 기인하고 있다고 말한다. 즉 사물에는 로고스 안에 있는 영원한 것의 본질과 창조로 말미암은 물질적 존재가 있다는 것이다. 카이퍼는 이것을 그의 인류학에서 죄에 물들지 않는 존재와 그리고 하나님의 의지와의 일치가 요청되는 윤리적 영역에서 하나님과 유사한 본체론적 관계에 올려놓음으로 자신의 입장을 주장했다. 인간에 대한 이런 존재와 본질의 이원성은 그의 창조설과 일치하는 것이며, 따라서 두 가지 종류의 은총이 요구된다. 이런 구별은 자연과 은총의 이원론적 구별과도 일치한다. 결과적으로 카이퍼의 주장에는 여러가지 교정이 제시되고 있다. 드그라후나 도예베르트 같은 카이퍼의 제자들까지도 일반은총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상실된 세상에 내리시는 하나님의 특별은총의 일부임을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