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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

아브라함 카이퍼- 리처드 마우

아브라함 카이퍼- 리처드 마우

2019-05-25 16:17:51


 1. 카이퍼는 타락에도 불구하고 문화사명은 포기되지 않았다고 말한다. 다만 문화사명이 변화되었는데 이는 죄가 문화활동을 왜곡시키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타락이후에는 문화적 순종과 문화적 불순종의 두 갈래로 갈라졌다고 본다. 카이퍼에게 문화 자체는 악이 아니라 왜곡된 문화가 악이다. 그는 하나님이 회복된 문화를 보여주기 위해 이스라엘을 선택하신 것이라고 보고 구속은 곧 창조계획의 회복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으로서 구속받은 문화적 활동을 어떻게 할 것인가란 질문이 등장한다. 

 

  2. 카이퍼는 창조의 다양성을 강조하고 다양성의 압제를 반대한다. 그러나 그는 포스트모던식으로 분리된 다양성은 반대한다. 그는 창조질서는 다양한 형태의 문화영역들을 보여주며 각 영역들은 동일하게 각각의 문화사명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이에 근거하여 카이퍼는 각 영역들이 그것만의 고유한/분리된 성격을 가지고 있는데 이것을 영역주권이라 부른다. 예를 들면 가정, 기업, 예술, 대학, 국가가 그런 영역들인데 주목할 점은 카이퍼는 국가를 다양한 영역중의 하나로 보았다는 점이다. 그는 각각의 영역에서 권위는 각기 다른 목적들에 상응하는 다양한 유형으로 나타난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영역주권이론이 성경적인가?  카이퍼와 바빙크는 다양한 종으로 처음부터 지어진 창조로부터 각 창조물의 영역들을 유추하고 각 영역에서 법칙들과 관계들이 다르다고 주장하지만 성경적 근거가 명시적이지는 않다.

 

  3. 카이퍼는 정부의 역할은 이 영역들 사이에 분쟁을 조정하며 각자의 경계선을 존중하도록 강제하는 일, 각각의 영역안에서 강자에 맞서 약자를 보호하는 일, 그리고 국가의 정상적 통합과 유지를 위해 시민들의 재정적 부담을 강제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카이퍼는 사회주의를 반대했는데. 그는 가난한 자들이 부자들을 적으로 간주하고 싸우게 만드는 것은 사회주의의 오류라고 보았다. 그는 가난한 자와 부자의 마음에서 죄악의 뿌리를 잘라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는 빈곤해결을 위한 국가 주도의 복지정책을 반대하며 국가가 복지정책이 아니라 올바른 법을 제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그는 가난한 자들을 돕는 일은 국가주도가 아니라 각 영역내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말한다. 

 

 4. 카이퍼는 교회가 각 영역을 통제하고 영향력을 행사하는 중세모델도 반대하고 또한 교회의 영향력을 배제하는 세속주의 모델도 반대한다.  카이퍼는 이 두 모델이 모두 오류라고 본다. 중세모델은 하나님의 통치가 모든 영역에 인정되어야 한다는 점은 맞지만 교회가 하나님의 통치를 매개하는 위치에 있는 것이 오류라고 보았다. 세속주의 모델의 경우 영역들을 하나님의 통치에서 벗어나게 하고 기독교를 교회 영역에 제한시키려는 것이 오류로 보았다. 카이퍼는 제3의 길을 제시한다. 그래서 카이퍼는 대학이 교회와 정치권력으로부터 자유롭기를 바라며 대학 이름을 자유대학이라고 지었다.

 

 5. 카이퍼는 교회의 다형성을 선호하며 종교개혁이 이에 기여했다고 평가한다. 그는 교회가 모든 문화의 영역들을 뛰어넘는 권위를 가졌다고 보지않았다. 그는 이것이 중세교회의 실수이며 오류라고 주장한다. 그래서 카이퍼는 정치가로 진출하면서 목사직을 사임했다. 카이퍼는 하나님나라를 교회에 국한시키지 않고 모든 영역에 미치는 하나님의 통치로 이해했다. 그래서 교회는 하나님나라의 일부분일 뿐이고 교회와 하나님나라는 동일시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는 하나님나라는 각 영역에 있는 신앙공동체 전부를 포괄한다고 이해하고 그들은 각 영역에서 하나님께 순종하려고 모인 것이라고 말한다. 카이퍼는 문화활동을 개인적으로 간주하고 참여하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각 신앙공동체는 하나님이 다양한 문화영역에 두신 뜻을 순종해야 한다고 말한다. 

 

 7. 카이퍼의 대립과 일반은총:  카이퍼는 두 종류의 사람들(구속받은 자들과 구속받지 못한 사람들)이 존재하며 이는 필연적으로 두 종류의 삶과 삶의 의식 그리고 두 종류의 과학이 존재하게 한다고 말한다. 카이퍼는 칼빈주의 전통을 따라 계속해서 대립을 견지하면서도 구속받지 않은 사람의 문화기여를 긍정하는 일반은총을 제시함으로써 대립과 일반은총 사이의 긴장을 가져왔다. 그래서 재세례파는 카이퍼가 인간의 타락에 대해 일관성이 없다고 비판한다. 그러나 카이퍼는 칼빈의 전적 타락은 절대타락이 아닌 보편적인(죄가 인간의 모든 것이 영향을 미친다는 의미에서 보편적)타락이라고 말하며 구속받지 못한 사람 안에 있는 문화적 탁월성을 인정한다. 카이퍼는 칼빈의 전통을 이어받되 칼빈이 긍정적으로 평가한 부분을 일반은총으로 발전시켰다. 그러나 카이퍼가 말하는 일반은총이 선행은총(prevenient grace)과는 다르다. 카이퍼에게 일반총은 창조하신 문화의 설계를 완성으로 이끄는 하나님의 방법이다. 메노나이트가 창조보다는 타락을 강조한다면 카이퍼는 타락보다는 창조를 강조한다. 카이퍼는 죄악된 세상에서 문화는 타락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문화는 여전히 창조를 반영한다고 말한다. 리처드 니버는 카이퍼에 동의하면서 우리가 살고 있는 문화적 세상은 왜곡된 선이지만 그 자체가 악은 아니라고 말한다.

 

 7. 카이퍼는 그리스도의 통치를 연구한 중요한 신학자다. 예수는 구원자이시며 또한 왕이시다. 그리스도의 왕권은 거의 모든 기독교 신학체계에서 확인되는 주제이다. 카이퍼는 이 주제를 교회의 경계들을 훨씬 뛰어넘는 세상에서 기독교 공동체가 받은 소명으로 진지하게 다루었다.  그러나 카이퍼는 제도적 교회가 문화를 선도하는 역할을 하지 못하도록 제한했다. 그 대신에 그는 문화활동을 하는 특정 현장에서 신실한 제자가 되기 위해 함께 뭉치는 신자들의 모임을 구상했다. 그는 교회의 중대한 책임은 그리스도인들이 그들의 일상을 하나님나라의 활동으로 이해하도록 돕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예배공동체가 특정 직업들에 속한 사람들을 격려하고 지지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8. 공적인 활동무대에서 일하는 복음주의자들의 질문은 이것이다. 우리가 여전히 그리스도가 다시 오시기를 기다리는 이 시대 동안에 공적인 의를 증진시키려는 우리의 노력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우리는 주류문화를 감시하면서 가능한 그것에 관계하지 않으려고 노력할 것인가 아니면 우리가 그 문화를 장악하려고 노력할 것인가?  카이퍼는 궁극적인 승리는 메시아가 하시는 일이지 우리가 하는 일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는 그분의 운동을 고취할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라도 하기 위해 가능한 기회를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카이퍼는 다원주의를 승인했지만 세속주의를 승인한 것은 아니다. 카이퍼는 다원주의 사회에서 국가는 다양한 종교적 도덕적 관점에 대해 공명정대한 심판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카이퍼는 계몽주의를 반대했지만 이성을 반대한 것이 아니라 계몽주의 안에 있는 세속주의를 반대한 것이다. 카이퍼는 콘스탄틴주의도 반대한다. 이전 세대의 칼빈주의자들은 교회를 발전시키기 위해 정치권력을 이용했지만 카이퍼는 정치 권력과 거리를 두고 싶어했다. 문제는 크리스텐덤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종종 기독교인들이 공적인 삶과 관련되어 살아갈 수 있는 방법들을 지나치게 제한한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