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뇌, 영혼, 신 -말콤 지브스
2018-01-19 01:01:49
1. 마음과 뇌의 관계에 대한 연구들은 때때로 신앙에 위협을 가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 가운데 어떤 연구들은 충분히 신앙을 배제하며 인간과 사회를 설명가능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신경과학 연구를 활용하여 신의 존재를 증명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있거나 혹은 종교적 관념은 진화론적 뇌 발달 과정에서 남겨진 찌꺼기에 불과하다고 주장하는 무신론자들도 있다. 한 가지 명심해야 할 사실은 마음이라는 개념이 인지신경과학자들의 관점과 성경의 관점과 다르다는 점이다. 전자는 마음을 정신생물학적 통일체의 심리적 측면으로 보지만 성경에서 보는 마음의 의미는 하나의 태도 혹은 공유된 태도와 신념의 집합에 더 가깝다.
2. 마음과 뇌를 연결하려는 노력은 오래전 부터 시작되었다. 그리스 철학자 엠페도클레스는 마음이 심장과 가까운 위치에 있다고 생각하여 마음을 의미하는 그리스어 영혼을 심장에서 찾을 수 있다고 말했는데 이를 "심혈관설"이라 부른다. 비슷한 시기에 알크마이온은 정신 기능이 뇌에서 이루어진다고 생각했는데 이를 "뇌수설"이라 한다. 시리아의 주교 네메시우스는 정신 기능을 감각과 상상, 사고와 판단, 기억, 이렇게 세 가지로 구분하고 긱 기능이 뇌의 서로 다른 뇌실에서 나온다는 "뇌실설:을 주장했다. 1960-70년대에는 신경 심리학이 큰 지지를 받았다. ct, pet, fMRI 가 등장하면서 놔구조를 자세하게 파악하게 되었고 뇌의 변화에 따른 정신작용의 변화를 분석하면서 신경심리학이 발전하기 시작했다. 인지신경심리학자들은 뇌를 정보처리체계로 보고 이들은 별개의 정보처리 구성요소들이 인지적 과제들을 수행한다고 여긴며 인간의 대뇌피질이 기능,조직적으로 분화되어 있다고주장한다. 지브스는 마음과 뇌를 하나의 복잡힌 시스템의 두 가지 측면으로 본다. 그는 로저 스페리의 견해에 동의하는데, 로저 스페리는 상보적 관계에 있는 마음과 뇌는 "상의하달(마음이 뇌에 미치는 영향)과 하의 상달(뇌가 마음에 미치는 영향)이 모두 가능하며 똑같이 중요하다고 보았다. 즉 스페리는 정신적 측면과 신경,생물적 측면을 동시에 중시한다. 결론적으로 인간은 심리 생물학적 통일체라는 것, 그리고 인간의 뇌와 몸의 물리적 차원에서 벌어지는 일과 정신활동 사이에는 "상호의존성"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3. 신경심리학의 연구결과들은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없다고 말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있음을 주장하는 이론에는 크게 두 부류가 있다. 첫째는 "양립주의자"인데 이들은 결정론과 자유의지가 양립가능하다고 보는 입장이다. 둘째는 "자유의지론자"인데 이들은 외가 기능할 때 비결정성을 띠게 되는데 이것이 자유의지를 발현시킨다고 본다. 이들은 이 비결정성을 설명하기 위해 물리학에서 거론되는 하이젠베르크늬 불확정성 개념을 차용한다. 마음과 뇌 사이의 관련성이 아무리 강하더라도 자유의지를 논할 수 있는 근거는 마음과 뇌의 관계에서 도입되는 두 가지 개념인 창발성(emergence)과 상의하달이다. 창발성과 상의하달은 비슷한 면이 많은데 이 개념은 생각, 믿음, 기억과 같은 패턴들이 저차원의 신경 생리적 영역에 미치는 영향을 설명해주는데 유용하다.
4. 벤저민 리벳의 실험은 자유의지 신화를 무너뜨렸다고 볼 수 없다. 손가락을 구부리는 것 같은 도덕적으로 중립적이고 단순한 결정의 타이밍과 뇌 작용의 관계를 연구한 리벳의 실험은 자유의지나 도덕적 책임의 문제와 실질적 관련성이 없다. 전통적인 심신이원론적 견해는 뇌와 마음을 별개로 보는 반면에 심신일원론은 마음을 뇌의 부산물로 본다. 지브스는 마음과 뇌를 단일한 실체의 두 양상으로 보는 이중양상 일원론(dual aspect monism)의 입장이다. Michael Gazzaniga는 산경과학은 자유의지와 같은 거시적 수준의 현상을 미시적 수준의 설명으로 담아내려는 경향을 버려야 한다고 지적한다. 그는 교통상황을 이해하기 위해 자동차 부품을 들여다보는 경우가 없는 것 처럼 우리가 이해하려는 것은 다른 층위에 있는 구조라고 말한다. 두 층위(물리적 층위와 심리적 층위)에서 이루어지는 설명을 모두 다루어야만 복잡하고 체계적인 시스템 전체를 설명할 수 있다. 한 층위에서만 행동을 분석하면 그 층위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한 진실은 알 수 있을지 몰라도 인간 행동에 대한 온전한 진실을 다 알 수는 없다. 인간의 모든 행동은 어느 층위에서는 분명생물학적이지만 생물학적 설명으로 복잡한 행동을 단순하고 단일하게 기술할 수 있거나, 분자 단위의 설명이 인간 행동을 이해하기 위한 분석수준으로 유일하거나 최선일 수 없다. 마음과 행동에 내재하는 메커니즘은 생물학적 접근법이나 사회적 접근법 중 어느 하나로는 온전히 설명될 수 없으며 다층적이고 통합적인 분석이 필요하다.
5. 존 에클레스는 마음과 뇌의 긴밀한 연관성을 인정하면서도 인간에서는 몸과 뇌가 상호작용을 하게 하는 비물질적인 영혼이 있다고 믿는다. 이런 견해는 기독교의 역사에서 오랫동안 확고하게 자리잡았다. 그러나 대부분의 신경과학자들은 뇌라는 물리적 세계와 마음의 심적 세계가 관련되어 있음을 부인하는 끈질긴 이원론을 반대한다. 과거 그리스도인들은 인간이 동물 이상의 존재라는 증거가 인간에게만 영혼이 있다는 점이라고 생각하고 영혼은 인간의 고유한 특성이며 영혼은 죽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과거에는 하나님의 형상을 인간이 가진 불멸의 영혼을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하기도 하였지만 오늘날 앤서니 티슬턴은 하나님을 형상은 무엇보다 하나님을 대표하라는 부르심으로, 톰 라이트는 하나님의 형상은 왕같은 제사장으로 소명이라고 말한다. 창세기 2장7절(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에 대한 전통적인 해석은 하나님이 흙이라는 물리적 물질 안에 비물리적인 영적 본질을 부여했다고 보고 영혼은 인간이 죽을 때 몸을 떠나 영적 영역에서 살다가 마지막 날 죽은 자들이 부활할 때 몸과 다시 합쳐진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여기서 생령이라고 번역된 네페쉬는 영혼이란 의미가 아니라 그저 그 자체가 살아있는 존재( a living being)라는 의미다. 그래서 네페쉬라는 말은 동물에게도 사용된다. 창세기의 문맥에서 인간은 무형의 영적 실체를 보유함으로써 나머지 피조 세계와 구별되는 존재가 아니다. 인간 존재를 내적 본질이 아닌 물리적 존재로 보는 창세기는 내세에 전반적으로 무관심한 구약성경의 흐름과 잘 들어맞는다. 물론 신약성경은 구약과 달리 사람을 물리적 몸(소마)과 비물리적 영혼(프쉬케)로 구성된다고 보았지만 (요약자주: 이것은 구약시대와 다른 신약시대의 인지환경이란 관점으로 볼 수 있다.)
6. 심령연구는 죽은 사람들과 접촉에 초점을 맞추며 초심리학은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어내거나 마음으로 벽을 투시하거나 미래를 예언하는 사람들의 존재 여부를 다룬다. 그러나 그런 현상들의 존재는 매우 회의적이다. 만일 초감각적 지각이 진짜라면 인간의 마음과 뇌가 통합된 전체의 두 양상이라는 널리 받아들여진 과학적 이해도 뒤집어질 것이다. 임사체험이 영혼의 존재를 입증한다는 주장도 있지만 측두엽 간질이 있는 사람들도 임사체험과 유사한 신비 체험을 했다는 내용이 보고된 바도 있고 산소가 부족할 경우도 임사체험과 비슷한 터널환상을 본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한 연구자는 임사체험을 뇌의 환각반응으로 이해하는 것이 낫다는 결론을 내렸다. 임사체험을 묘사하는 환상들은 각 사람이 속한 문화에 따라 그 내용이 달라진다,. 이는 뇌의 특정부위가 작용한 결과 발생하는 경험을 해석하는 방식은 우리가 속한 전통이나 신념에 많이 의존함을 보여준다. 예를 들면 티베트 불교 명상가는 시공을 초월한 채 구별된 자아감을 상실하는 것 같은 체험을 했는데 그리스도인들은 그런 체험을 전통적으로 하나님과의 신비한 연합으로 여긴 반면에 불교도들은 그런 체험을 인격적인 관계와는 무관한 열반으로 이해했다. 이는 그런 체험을 이해하는 방식이 뇌의 특정 영역의 구체적인 활동과 각 사람이 갖고 있는 전제에 의존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유체이탈 체험도 비물질적인 영혼의 존재에 대한 증거가 될 수 없다. 헨리 에릭손의 최근 연구는 마약을 쓰거나 뇌에 전기 자극을 주지 않고도 건강한 사람이 유체이탈을 경험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 경우에 그런 경험들은 흔히 간질이나 뇌졸증 같은 뇌기능에 문제가 생긴 경우와 관련이 있다. 유체이탈 경험이 일어날 때 뇌의 어떤 부위가 주로 활성화되는지도 밝혀졌는데, 그 부위는 바로 측두엽과 두정엽의 경계 부위였다. 구약성경에는 엔돌의 마녀가 죽은 사무엘을 다시 불러올리는 장면이 등장하는데 이 사건이 비물질적이고 불멸하는 영혼의 존재를 증명한다고 보는 이들은 엔돌에 정말 사무엘의 영혼이 나타났으며 이는 과학이 주장하는 일원론적 인간관이 오류이며 비성경적이라고 말한다. 이 본문과 관련하여 에즈버리 신학교 구약교수인 빌 아놀드는 이 본문을 해석할 때 주석적 문제를 검토하기 전에 지금까지의 해석사를 먼저 살펴 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이 본문이 육신을 떠난 인간 영혼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소생한 육신으로 보는게 본문의 취지에 더 가깝다고 말한다. 나아가 그는 이 본문은 구약의 규범적 종교(영혼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이스라엘 종교를 의미)가 인정하지 않았지만 가나안 사람들과 일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남아있던 관습과 종교적 관행을 보여준다고 결론을 내린다. 아놀드 교수의 견해에 의하면 결국 이 본문은 육체적 소생 개념의 사례를 제시하기는 하지만 히브리 성서의 다른 자료들이 그렇듯이 기독교 인간론의 문제를 확정할 만한 결정적인 단서를 제시하지 않는다.
'서재'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구약과 신약의 관계- 김근주 (0) | 2023.05.16 |
---|---|
구약성경의 핵심 개념 -송제근 (1) | 2023.05.16 |
복음의 공공성- 김근주 (0) | 2023.05.14 |
고대 우주론을 반영하는 창세기 1장 - 존H 월튼 (0) | 2023.05.14 |
복음주의자들은 세계종교로부터 배울 수 있는가? -제럴드 멕더모트 (0) | 2023.05.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