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85편에 대한 설교
2017-08-01 15:18:50
2017년 7월 23일 주일
시편 85편에 대한 설교( 2017년 7월 22일)
여러분 지금 시인은 하나님에게 용서를 구하고 있습니다. 4절에서 시인은 하나님에게 얼굴을 돌이키시고 분노를 거두시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분노하심으로 이스라엘이 보기 싫어 그 얼굴을 돌리셨습니다. 그래서 시인은 하나님이 다시 얼굴을 이스라엘에게 향하시고 분노를 거두어 주시길 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시인은 이런 용서의 기도에 앞서 1-3절에서 과거에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시어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오게 하신 일을 먼저 회고하고 있습니다. 시인은 그 때 여호와께서 당신의 백성의 죄악을 사하시고 주의 진노를 거두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그런데 왜 시인은 지금 죄의 용서를 구하면서 과거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오게 하신 주님의 은혜를 회고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시인이 자신이 죄의 용서를 구하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기억하기 위함입니다. 시인은 과거에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면서 여호와라는 부름으로 기도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에게 여호와라는 이름은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으시고 그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을 지칭하는 하나님의 이름입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은 단순히 창조주 하나님이기 이전에 이스라엘의 역사 가운데 나타나셔서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으신 하나님이시며 그 언약에 언제나 신실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시인은 지금 그런 하나님을 부르면서 기도를 시작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을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오게 하시고 주의 백성의 죄악을 사하시고 주의 진노를 거두신 과거의 일은 바로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이 베푸신 언약의 행동이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시인은 과거의 일을 회고함으로써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에게 호소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5절에서 시인은 주께서 이스라엘에게 영원히 노하시며 대대에 진노하시지 않으시는 분이심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6절에서 시인은 주께서 이스라엘을 다시 살리심으로 주의 백성이 주를 기뻐하도록 하실 분이심을 믿고 있습니다. 이렇게 시인은 하나님의 언약적 신실하심에 호소를 한 후에 그러므로 지금도 주의 인자하심, 주의 구원을 보여 달라는 요구로 기도를 마치고 있습니다. 여기서 주의 인자하심, 주의 구원이란 결국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이 행하실 언약적 행동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시인의 기도는 대단히 전략적입니다. 시인은 과거에 행하신 하나님의 언약적 자비를 하나님이 기억하시길 구한 후에 그 자비에 근거하여 또 다시 자비를 베푸시길 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어찌 보면 이런 기도는 좀 염치없어 보이기도 하지 않습니까? 하지만 시인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그리고 누구이신지를 잘 알기에 이런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시인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언약적 신실하심에 의지하여 하나님은 결코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않는 분이심을 알기에 커다란 확신을 가지고 이런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시인의 이런 기도는 하나님과 이스라엘이 맺은 언약에 근거하지 않고는 이해하기 어려운 기도입니다. 하나님은 언약이 신실하신 분이시기에,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기에 이런 기도가 가능한 것입니다.
여러분 그런데 8절부터 마지막까지는 기도가 아니라 설교로 보입니다. 왜 기도를 하다가 갑자기 설교로 바뀌는 것일까요? 이것은 이 시가 개인시가 아니라 시인이 이스라엘 공동체의 제사장이나 왕일 경우라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시인은 공동체의 지도자로서 백성들을 대표하여 1-7절에서 하나님에게 기도를 한 후에 이제는 백성들을 향하여 8-13절에서 설교를 하는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그래서 시인의 설교는 앞서 시인이 하나님께 드린 기도와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습니다. 시인은 8절에서 하나님이 자기 백성들에게 화평을 말씀하실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는 물론 자기가 앞에서 한 기도를 하나님이 들으신 후에 주의 인자하심과 주의 구원을 보이실 것이란 의미입니다. 시인은 하나님이 자기 기도를 들으시고 그 분노를 돌이키심으로 이스라엘과 다시 화목하실 것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8절에서 시인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다시 어리석은 데로 돌아가서 죄를 짓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죄를 용서하시는 분이지만 동시에 죄를 미워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죄를 용서하셨다면 그것은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는 엄중한 요구를 포함한 용서라고 보아야 합니다. 죄의 용서를 악용하여 다시 죄를 짓는 일은 다시 어리석은 데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것은 참으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지 못하는 어리석은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시인은 하나님이 화평의 말씀을 하실 것이므로 다시 어리석은 데로 돌아가지 말라고 경고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9절에서 시인은 하나님의 구원은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 가까우며 하나님의 영광은 주를 경외하는 자들의 땅에 머문다고 말합니다. 여러분 이 말은 하나님의 구원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은 반드시 그 구원을 받은 자들에게 또 그 영광의 임재를 본 자들에게 반드시 하나님을 경외할 것을 요구한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언약에 신실하신 분이시므로 구원을 베푸시고 자기 백성에서 영광으로 임하시지만 동시에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에게도 동일한 언약적 신실함을 요구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 곧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자기 백성에게 자비를 베푸시고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 이것을 가리켜 시인은 10절에서 인애와 진리가 만나고 의와 화평이 서로 입 맞춘다고 표현하고 있으며, 그리고 11절에서 진리가 땅에서 솟아나고 의는 하늘에서 굽어본다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될 때 시인은 12절에서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좋은 것을 주심으로 이스라엘이 거하는 땅이 그 산물을 낼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의, 곧 하나님의 언약적 신실함이 항상 주의 앞장을 서며 주가 가시는 길을 닦을 것이라고 노래합니다. 이 말은 하나님이 항상 이스라엘에게 언약적 신실함으로 대하실 것이란 의미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은 언약에 신실하신 분이시며 동시에 자기 백성에게도 언약에 신실함을 요구하시는 분이심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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