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는 어떻게 신이 되었나? -바트 어만
2017-01-10 12:52:56
시작하는 말- 기독교의 궁극적 질문에 대한 역사적 탐구
예수가 하나님이라는 사상은 예수의 죽음 직후 가장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지녔던 관점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들 초기 그리스도인들에게 예수는 하나님이라는 말이 무엇을 의미했느냐가 될 것이다.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고대에 사람들이 특정한 인간을 신이라고 여길 때 일반적 의미가 무엇인가를 알 필요가 있다. 고대에는 인간이면서 신적이라고 여겨진 사람은 이방인과 유대인을 가리지 않고 많았다. 고대인들에겐, 인간적 영역과 신적 영역이 거대한 틈으로 분리된 절대적 범주가 아니었다. 오히려 인간은 신과 서로 겹쳐질 수도 있고 실제로도 그러한 연속성을 지니는 실체였다. 고대세계에는 인간이 신성하다는 믿음을 가능하게 하는 두 가지 방식이 있었는데 이것은 그리스도교, 유대교, 이방계 자료에서 모두 입증된다. 첫째는 위대한 통치자나 거룩한 인간은 하나님이나 어떤 신의 행위로 신성하게 되거나 신성의 차원으로 고양될 수 있었다. 둘째는 본성상 또는 육화를 통해, 천사나 신들과 같은 신성한 존재는 영원히 또는 일반적으로는 일시적으로 인간이 될 수 있었다. 나는 마가복음이 전자의 방식으로 예수를 이해한다고 생각하며 요한복음은 둘째 방식으로 예수를 이해한다고 생각한다. 두 복음서는 모두 예수를 신성한 존재로 보지만 다른 방식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1~3장에서는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를 하나님이라고 부를 때 의미했던 바가 무엇인지 규명하기 위해 신과 인간이 교차하는 영역을 고대인들이 어떻게 이해했는지 먼저 고찰한다. 1장에서는 유대교와 그리스도교 밖의 그리스와 로마세계가 폭넓게 공유했던 관점을 논의하고 2장에서는 고대 유대교 세계에 존재했던 유사한 이해들을 검토한다. 이렇게 이방인과 유대인의 관점을 살펴본 다음, 3장에서는 예수가 자신을 하나님이라고 말했는가? 라는 문제에 초점을 둔다. 이렇게 이 책의 첫 세 장은 예수는 어떻게 하나님으로 여겨지게 되었는가라는 우리의 최종적 질문의 배경을 이룬다. 4~7장에서는 예수의 부활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룬다. 왜냐하면 예수가 신이 된 이유는 그가 죽음에서 부활했다는 제자들의 믿음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예수 부활 문제는 우리 논의에서 근본적 쟁점이 되는 부분이다. 만일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예수가 부활했음을 믿지 않았다면 그들은 예수가 다른 불운한 예언자들과 다르다고 여기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정말로 예수가 부활했다고 믿었으며 그 믿음은 모든 것을 변화시켰다. 역사적 관점에서 우리가 제기해야 하는 문제 는 우리는 부활에 관해 실제로 무엇을 알 수 있는가? 라는 질문이다. 예수가 매장되었고 빈 무덤이 발견되었다는 주장은 비교적 확실한 역사적 자료가 아님을 나는 4장에서 다루었다. 5장에서는 우리가 부활에 관해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을 다루었다. 예수의 제자들이 예수가 부활했음을 보았다는 주장은 증거가 분명하고 설득력이 있다. 나는 예수의 제자들이 환시체험이 기반을 둔 부활신앙을 통해 예수가 하늘로 고양되고 하나님의 아들로서 그분 오른편에 앉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6장에서는 현존하는 가장 초기 자료가 의미하는 고양이 무엇인지 탐구한다. 7장에서는 후대에 발전되고 유지되어 온 여러 기독론적 관점들을 다룬다. 이 관점에서 예수는 단순히 신성의 차원으로 고양된 인간(고양 기독론)일 뿐 아니라 지상에 인간으로 오기 전에 하나님과 함께 있던 선재하는 신성한 존재(육화 기독론)였다. 8~9장에서는 신약성서가 쓰인 이후 2-4세기에 살았던 그리스도인들이 기독론을 더욱 발전시켜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이단으로 비난받고, 또 다른 관점은 정통으로 수용된 역사를 살펴볼 것이다.
1장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신성한 인간들
그리스와 로마세계에서는 신성한 존재들을 인간으로 여길 수도 있었고 인간들도 신성하게 여길 수 있는 다양한 방식들이 존재했다. 오늘날 우리는 신의 영역과 인간의 영역이 연결될 수 없는 심연으로 분리되어 있다고 생각하지만 기독교 전통에서는 예수의 인격 안에서 신과 인간이 한 번 통합되었다. 기독교 전통의 이런 사상의 근저에는 신성과 인성의 간격을 절대적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인식하는 고대적 사고방식이 존재한다. 고대적 사고방식에서 인성과 신성은 하나의 수직적 연속체이며, 이 두 연속체는 때로는 높은 차원에서 때로는 낮은 차원에서 통합된다. 신성한 영역에 대한 고대세계의 이런 관점은 후대에 기독교로 인해 크게 변하게 되었다. 주후 4세기에 로마 제국이 이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하던 시기에 이르러 로마세계의 사상가들은 신의 영역과 인간 영역 사이에는 거대란 간격이 있다고 믿게 되었다. 이제 하나님은 저 위에 계신 전능하신 분이고 그분 홀로 하나님이다. 다른 신들은 없으며 신의 연속체도 없다. 예수는 결국 인간과 함께 여기 아래에 속하지 않고 하나님과 함께 저 위에 속한 존재로 여겨지게 되었다. 예수 자신이 하나님이었다. 그러나 다른 신들이 없고 신은 유일하다면 예수는 어떻게 신이 될 수 있었는가? 또한 예수는 어떻게, 어떤 의미에서 인간에서 신으로 옮겨가게 되었는가? 나는 어떤 의미에서? 를 강조하고 싶다. 이 문제를 논의할 대 사람들이 실수하는 것은 인간과 신의 영역 사이에 깊은 간격이 존재하는 4세기의 관점이 기독교 운동 초창기에 해당한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예수는 주로 4세기의 의미에서 하나님이 되었다. 그러나 이전 시기에 인간 영역과 신의 영역의 간격을 4세기적으로 이해하지 않던 사람들도 예수를 하나님으로 이해했다. 그래서 우리는 어떤 의미에서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를 하나님으로 생각했느냐를 고찰해야 한다. 만일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세계에서 신성한 영역이 절대성이 아니라 연속성을 가진다면 그리고 단일한 지점이 아니라 등급이 있는 피라미드라면 예수는 바로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으로 이해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 신약성서와 초기 기독교에 대한 지난 200년간 현대학문이 발견한 중요한 것은 예수 생전에는 그의 추종자들이 그를 하나님이 아니라 철저하게 교사, 랍비, 예언자와 같은 인간으로 이해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내가 강조하려는 것은 예수가 4세기적 의미의 신이 된 것은 사실상 하나의 발전이었다는 점이다.
2장 고대 유대교의 신성한 인간들
성서 전체를 통해 하나님의 유일성을 강조하는 유대인들에게 신성한 피라미드를 상상할 수 있을까? 이교 세계에서는 신성한 존재들이 일시적으로 인간이 되는 것뿐만 아니라 인간들이 신성해지는 것도 상상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이 오직 한 분뿐이라면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한가? 이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서 우리는 유대교적 일신론의 일반적 관점 두 가지를 알아야 한다. 첫째는 고대 이스라엘 사람 모두가 하나님은 오직 한 분뿐이라는 유일신론적 관점을 지녔던 것은 아니다. 십계명의 첫 계명은 다른 신들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라 단지 다른 신들에게 예배를 드리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학자들이 단일신론이라고 부른 관점으로서 유일신론이란 관점과는 구별된다. 유일신론은 실제로 신은 한 분뿐이라는 관점이지만 단일신론은 여러 다른 신들이 있지만 오직 한 신만 예배를 받아야 한다는 관점이다. 히브리 성경의 대부분은 이런 단일신론적 관점을 가졌다. 물론 예수 시대에 대다수 유대인들은 유일신론적 관점으로 이동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들이 신성한 영역 안에 다른 신성한 존재들이 있을 가능성을 배제한 것은 아니다. 궁극적 하나님과 동등하지는 않더라도 천상의 영역에 존재하는 신처럼 초인적 능력을 가진 존재들인 천사들이 있었다. 이들은 존재의 등급에서 인간보다 훨씬 강력하며 낮은 차원에 있는 신성한 존재들이다. 이 신성한 존재들은 위계의 등급에서 권력에 속하는 연속체 역할을 한다. 결국 유대교 안에도 신성한 존재와 신성한 권세에 속하는 연속체가 존재한다고 이해했으며 이것은 여러 면에서 이교의 신성한 존재들과 비슷하다. 우리는 유대교 안에서 일시적으로 인간이 된 신성한 존재들, 신성한 존재와 사멸할 존재의 결합으로 태어난 반신적 존재들, 그리고 신성하게 된 인간들을 볼 수 있다.
3장 예수는 자신을 하나님이라고 생각했나?
복음서들에 나오는 예수의 말씀과 행적을 그대로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역사상 예수를 이해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국면들 중 하나는 당시 많은 유대인들이 공유한 세계관, 곧 학자들이 묵시론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유대교 묵시론자들은 지상적 실재들의 의미를 이해하도록 하나님이 천상의 비밀을 계시했다고 믿는다. 그들은 이 시대를 지배하는 악의 세력을 물리치고 불행과 불의가 없는 선한 나라의 도래를 하나님이 이 고통의 세계에 곧 개입하리라 믿었다. 예수 시대의 유대교 자료들은 이러한 묵시론적 세계관을 충분히 입증한다. 유대교 묵시론자들은 이원론자들이었다. 그들은 선의 세력과 악의 세력이라는 두 근본 요소가 실재를 구성한다고 믿었다. 그들은 또한 현재 같은 악의 시대에서 상황이 개선될 가능성을 비관적으로 보았다. 그러나 그들은 상황이 가장 안 좋아졌을 때, 하나님이 위대한 심판으로 개입할 것이라고 믿었다. 그리고 도래할 심판은 그때 살아가는 사람들뿐 아니라 산자와 죽은 자 모두에게 영향을 미칠 것이다. 묵시론자들은 이 역사의 정점에 시대의 종말이 도래하고 죽은 자들이 부활할 것이라는 사상을 갖게 되었다. 공관복음은 임박한 종말과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예고하는 묵시론적 예언자의 모습으로 예수를 묘사한다. 사실 예수가 선포했던 메시지의 핵심은 묵시론적이었다.
1세기 유대교에서 메시아라는 용어에 대한 가장 일반적인 이해는 세상에 대한 천사적 심판관이나 권위있는 사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은 탁월한 이스라엘의 왕이다 이 메시아는 다윗의 계보를 잇는 왕국을 다시 세우고 이스라엘을 모든 민족이 부러워하는 위대하고 영광스러운 독립국가로 다시 만들 것이다. 미래의 메시아에 대해 이런 기대를 품었던 일부 유대인들은 정치적 견지에서 메시아를 이해했던 듯하다. 1세기 유대교의 이런 메시아 사상에 비추어 보면 예수는 메시아로 불리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를 설명하기 위해 가장 많이 사용한 호칭이 메시아, 곧 그리스도였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예수의 죽음과 부활 때문에 초기 추종자들이 예수를 메시아라고 결론을 내렸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1세기 유대인들은 미래의 메시아가 죽고 부활할 것이라고는 전혀 기대하지 않았다. 이것은 이제 문제를 제기한다. 만일 예수가 죄 때문에 죽고 부활했다는 믿음이 유대인에게 예수가 메시아라는 생각을 불러일으키지 못했다면 그리스도인들은 왜 예수를 메시아라고 선포한 것인가?
내 생각에 예수는 자신을 메시아라 불렀지만 하나님이라고 부르지는 않았다. 예수는 아주 독특하고 특별한 의미에서 자신을 메시아로 보았다. 메시아는 이스라엘 백성의 미래 통치자로 여겨졌지만 묵시론자로서 예수는 미래 왕국이 정치적 투쟁이나 군사력으로 이뤄지리라 생각하지 않았다. 나는 예수는 미래의 왕국은 모든 것을 심판하러 온 사람의 아들이 실현할 것이고 그 나라가 도래할 때 예수 자신은 그 나라의 왕이 될 것으로 믿었다고 본다. 예수는 바로 이런 의미에서 자신이 메시아라고 제자들에게 가르쳤음이 틀림없다. 이렇게 예수는 자신을 악한 시대의 종말을 예고한 예언자이자 다가올 미래의 이스라엘 왕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그는 자신을 하나님이라고 여겼는가? 요한복음에서 예수가 자신을 신성하다고 주장한 것은 사실이지만 역사적 전망에서 보자면 아 주장은 결코 역사적 예수에게 소급될 수 없다. 이 내용은 가장 후대에 쓰이고 가장 신학적으로 정향된 요한복음에만 나온다. 공관복음 어느 곳에서도 요한복음과 같은 고양된 주장을 발견할 수 없다. 복음서들 안에 여려 전승들은 예수의 역사적 삶에서 유래된 것이 아니라 예수의 탁월성을 사람들에게 확신시킴으로 그들을 개종시키려던 이야기꾼들의 윤색을 담고 있다. 예수의 탁월함에 대한 이 전승들은 비유사성의 기준을 통과할 수 없으며, 예수 부활 어떤 의미에서건 그를 신으로 이해한 사람들이 전한 예수 이야기들을 후대에 신앙적으로 확장시킨 것일 수 있다. 확실한 것은 예수의 공생활과 그의 선포가 그의 신성에 초점을 두지 않았고 그의 신성에 대한 것이 전혀 아니었다는 점이다. 예수의 직무와 선포는 자신의 신성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것, 하나님이 실현할 왕국에 대한 것, 그리고 곧 세상을 심판한 사람의 아들에 대한 것이었다. 예수는 자신이 하나님이 될 것이라 말하지 않았고 그는 도래할 하나님 나라의 왕이 될 것이라 믿었고 그렇게 가르쳤다.
4장 예수의 부활, 우리가 알 수 없는 것
예수를 특별한 존재로 만든 것은 그의 메시지가 아니라 그가 부활했다는 제자들의 주장이었다. 예수 부활에 대한 믿음은 모든 것을 분명하게 바꾸어 놓았다. 부활에 대한 믿음이 없었다면 예수는 유대교 역사 기록의 각주에 불과했을 것이다. 예수 추종자들이 예수가 하나님이었다고 주장하도록 이끈 것은 바로 부활 신앙이다. 부활 여부는 역사적으로 입증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역사가든 누구든 부활을 믿는다는 것은 그들의 신앙 때문이지 역사학적 연구 때문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부활을 믿지 않는 이들도 역사학을 토대로 부활이 사실이 아님을 입증할 수도 없다는 것도 분명하다. 예수 부활을 믿는냐 믿지 아느냐 문제는 신앙적 사안이지 역사적 지식과 관련된 문제가 아니다. 역사가들은 예수가 정말로 알려진 무덤에 묻혔는지, 그 무덤이 사흘 후에 빈 채로 발견되었는지 조사할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이 예수를 부활시켰고 하늘로 데려갔는지는 역사가가 결론짓지 못한다. 역사가는 그런 정보에 접근할 수 없으며, 그 결론은 모든 역사가가 공유하지 않는 신학적 전제들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사실 부활 이야기 전체는 하나의 전설이다. 매장과 빈 무덤 발견은 후대 그리스도인들이 부활이 실제로 일어났음을 다른 이들에게 설득하기 위해 꾸며낸 이야기들이다. 신약성서 복음서들은 외경 복음서들과 대조적으로 부활이 실제로 예수의 육체적 부활임을 강조했다. 그러므로 빈 무덤 전승은 부활이 단지 영의 문제가 아니라 육체와 관련된 사안임을 보여주는 작업이기도 하다.
5장 예수의 부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
예수의 일부 추종자들이 예수가 부활했다고 믿었다는 것은 역사적으로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것이 기독교가 시작된 방식이다. 예수의 제자들에게 예수는 불멸의 몸으로 다시 살아났고 하늘로 고양되어 그곳에서 전능한 하나님과 함께 살며 다스리는 분이었다. 나는 제자들을 부활 신앙으로 이끈 것은 다름 아닌 바로 환시였다고 생각한다. 종종 빈 무덤과 예수의 발현 등의 사건들이 결합되어 부활신앙을 이끌었다고 진술되지만 나는 빈 무덤은 부활신앙과 아무 관계가 없다고 본다. 역사가들이 예수 부활의 역사성을 증명하거나 반박할 수 없지만 예수의 일부 추종자들이 그의 부활을 믿었다는 것은 역사적으로 확실하고, 이 부활 신앙이 기독론의 전환점이 되었다. 부활에 대한 믿음과 더불어 모든 것이 바뀌었다. 하나님이 예수를 죽음에서 일으켰다고 제자들이 믿게 되었을 때, 그것은 유대교 전통에서 볼 수 있는 그런 부활이 아니었다. 예수가 다시 살아났지만 자기들 가운데 없다는 것을 안 제자들은 그가 하늘로 올라갔다고 결론을 내렸다. 제자들은 예수가 부활했을 때 그의 몸만 생명을 얻은 게 아니라 하나님은 그를 전대미문의 권위를 가진 신분으로 고양시켰다고 믿었다. 메시아 주님 하나님의 아들 사람의 아들이라는 고양된 칭호는 예수가 하나님이란 것을 암시한다. 그러나 초기에는 어떤 의미에서도 예수는 유일하고 전능한 하나님이 아니었다. 그는 신성한 지위로 고양되었고 다양한 의미에서 신이었다. 누군가 예수가 하나님이라고 주장할 때 우리는 어떤 의미에서 하나님인가를 묻는 것이 중요하다. 실제로 예수가 충만하고 완전한 의미에서 하나님이 되고 삼위의 두 번째 위격이며 성부와 동일 본질인 하나님이 되기까지는 긴 시간이 걸렸다.
6장 하나님의 아들이 된 예수
기독교의 가장 오래된 현존 자료는 바울서신들이다. 바울서신 중 가장 초기 저작은 예수의 죽음 이후 20년이 지난 50년경 기록된 데살로니가전서일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주후 50년 이전의 가장 초기의 자료는 없다. 가장 초기의 역사를 다룬 사도행전도 주후 80년경에나 기록되었다. 바울서신 이전의 가장 초기의 기독교를 연구하기 위해서 신약성서 안에 신경이나 찬가의 형태로 나타나는 구전 전승들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렇게 신약성서에서 문서 이전 전승들을 분리하는 이유는 바울 서신 이전의 가장 초기의 기독교인들이 무엇을 믿고 그리스도를 예배했는지를 이 전승들이 알려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전승들이 가진 관점은 예수의 추종자들이 예수가 부활했다고 처음 믿게 된 가장 초기의 관점을 표현한 것일 수 있다. 이 구전 전승들의 예수에 대한 관점은 일관되게 예수는 부활 때 하늘로 고양되었고 그 단계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된 것으로 말한다. 다시 말하면 이 관점에서 예수는 하늘에서 선재하는 존재로서 지상으로 파견된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다. 그는 지상 생애의 끝에 하나님의 아들로 고양되었고 그 다음에 신성한 존재가 되었다. 이러한 가장 초기 형태의 기독론을 저기독론(low Christology)라고 부른다. 이러한 문자 이전 전승에는 동정녀 탄생이라든가 선재하는 신적 존재라든가 하는 이야기가 없다. 때로 이런 관점을 입양 기독론(adoptionist Christology)이라 부른다. 왜냐하면 이 관점에서는 그리스도를 본성상 선재하는 신성한 존재로 보지 않기 때문이다. 이와 반대되는 입장이 고기독론(high Christology)인데, 이것은 그리스도가 지상에 사람으로 존재하기 이전에 이미 천상에 선재하던 신적인 존재였다는 관점이다. 후대 신학자들은 저기독론을 부적절하다고 여겼지만 기독교의 가장 초기 전승이 저기독론이었다는 점이 간과되어서는 안 된다. 저기독론은 비록 예수를 선재하던 신적 존재로 믿지 않았고 하나의 인간으로 ㅅ작된 존재이지만 부활 이후에 사람이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높은 지위로 예수가 고양되었다고 믿었다. 저기독론은 실제로 예수를 만물을 지었고 만백성을 심판할 전능한 하나님 다음의 지위까지 고양된 신적 존재로 믿었다. 그래서 나는 오해받기 쉬운 저기독론 대신에 고양기독론이란 용어를 사용하고자 한다. 로마제국의 맥락 안에서 형성된 고양 기독론은 열등한 기독론으로 간주되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당시에 로마제국에서 아들로 입양된다는 것은 아버지의 모든 신분과 권력을 전적으로 물려받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로마 세계에서는 친아들은 다소 우연적으로 간주되었고 덕성과 능력을 갖춘 입양된 아들에게 더 높은 지위를 주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따라서 가장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예수가 부활 때 하나님의 아들로 입양되었다고 말한 것은 정말로 예수에 대한 놀라운 어떤 것을 말한 것이다. 그것은 예수가 하나님에게 속한 모든 것을 물려받은 상속자가 되었으며 그는 만물의 창조주이자 통치자의 지위를 얻은 것을 의미했다. 그는 사실상 하나님이 된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이 예수에 대한 이렇게 말하기 시작한 시기가 로마황제들이 로마세계 안에서 신으로 숭배받기 시작한 때와 정확히 일치한다는 것은 대단히 주목할 만하다. 로마황제가 죽어서 신이 된 선대 황제의 아들로서 신의 아들이라면 예수는 유일하신 하나님의 아들이다. 황제가 위대한 왕이라면 예수는 세상의 유일한 왕이었다. 예수는 이렇게 고양된 지위로 말미암아 예배를 받았고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를 하나님처럼 경배했을 것이다. 래리 허타도는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유일신 사상을 저버리지 않으면서도 예수를 하나님으로 경배한 이유는 하나님이 예수를 신성한 지위로 고양시켜서 예수 경배를 허락했을 뿐 아니라 심지어 요청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다.
레이먼드 브라운은 가장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이 부활 때 예수를 신성한 지위로 고양시켰다고 믿었음에 동의하며 예수에 대한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관점들의 발전과정을 설명한다. 브라운은 복음서 전체를 통하여 이 관점의 연대기적 발전과정을 추측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부활 시에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다는 고양 기독론은 바울서신이나 사도행전의 문자 이전 전승에는 나오지만 복음서에는 나타나지 않는다. 마가복음은 예수가 세례 시에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다고 암시하는 듯 하며 마태와 누가복음은 예수가 태어났을 때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음을 암시하는 듯하다. 요한은 예수가 창조 이전부터 선재하는 하나님의 아들이었다고 명시적으로 말한다. 브라운은 이 복음서들의 연대기적 순서는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자신들의 기독론을 발전시켰는지 보여준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 연대기적 배열이 지닌 문제는 초기 기독론의 실제 연대기적 발전과정을 성찰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일부 그리스도인들은 바울서신 이전에 이미 예수를 선재하는 하나님의 아들로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기독론은 일직선을 따라 연대기적으로 발전하지 않았다. 다양한 지역, 다양한 공동체에 속했던 그리스도인들은 거의 초기부터 서로 다른 기독론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지만, 가장 현저하고 근본적인 기독론은 두 가지인데 그것이 바로 저기독론(고양기독론, 양자기독론)과 고기독론(선재기독론)이다.
7장 세상으로 내려온 예수
고기독론(선재 기독론 혹은 육화 기독론)은 천상의 하나님에게 귀환하기 전에 인간이 된 예수, 즉 선재하던 신성한 그리스도라는 입장을 유지한다. 여기서 예수는 신성한 상태로 고양된 인간이 아니라 자신을 일시적으로 낮추어 인간이 된 선재하는 천상적 존재다. 나는 가장 초기의 기독론은 고양 기독론이었는데 아주 빠르게 육화 기독론으로 변형되었다고 생각한다. 예수가 하늘로 고양되었다고 여겨진 후 얼마 지나지 않은 시기에 일부 제자들은 예수가 지상에 있는 동안에도 천상적 중재자로 보기 시작했다. 이 관점에 의하면 예수가 단지 그의 고양 때문이 아니라 본성상 천상적 중재자였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주 개연성이 있는 일이었다.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일 뿐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세상에 중재하는 천상의 천사적 존재였다. 예수를 이렇게 이해하면서 고양 그리스도론은 육화 그리스도론으로 변화되었다. 신약성서 안에는 초기의 예수 추종자들이 예수를 이런 방식으로 이해했다는 선명한 징후들이 있다. 예수는 천사 혹은 천사 같은 존재, 심지어 주님의, 천사로 생각되었고 탄생 전에도 존재했던 신성한 존재로 여겨지게 되었다. 여기서 더 나아가 후대의 저자들에게 예수는 단지 천사나 천사장이 아니라 천사보다 더 뛰어난 존재, 곧 세상에 오신 하나님으로 이해되었다.
나는 공관복음서와 바울서신은 서로 다른 기독론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공관복음서의 기독론이 고양 기독론이라면 바울서신의 기독론은 육화 기독론이라고 본다. 왜냐하면 바울은 예수를 인간이 된 천사로 이해했기 때문이다. 결정적인 본문인 갈4:14은 바울이 그리스도와 천사를 대비시킨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천사와 같다고 본 것이다. 바울은 그리스도를 주님의 천사로서 신성하고 선재하는 존재로 보았다. 그는 세상에 나타난 하나님의 현현으로서 하나님이라 불릴 수 있다. 그러나 바울에게 그리스도는 전능한 하나님이 아니라 천사와 같이 선재하는 신성한 존재였다. 그리스도는 신성한 존재이나 하나님과 완전히 같지는 않다는 말은 고대적 시각에서는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고대세계에서는 그리스-로마인이든 유대인이든 신적 영역과 인간 영역 사이에는 분리할 수 없는 간격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빌립보서 2장에 나타나는 문자 이전 전승의 시에 의하면 그리스도는 신성한 선재하는 존재인 천사로 출발했지만 하나님에 의해 지상 생애 이후 고양되었을 때 그는 더욱 신성한 존재로서 하나님과 같이 되었다. 빌립보서의 이 본문은 예수를 인간이 된 선재하는 신적 존재로 묘사할 뿐만 아니라 예수의 부활 때 그를 이전 보다 더욱 고양된 상태로 올렸다. 그러므로 이 본문은 육화적 관점과 고양적 관점을 결합시키는 과도기적 기독론을 제공한다. 후대 작가들은 예수를 세상에 오기 전부터 하나님과 동등한 존재로, 사실상 언제나 하나님과 같은 존재로 묘사하지만 이것은 원래 빌립보서 본문의 관점이 아니다.
바울서신에서 보듯이 만일 바울이 예수를 육화한 신적 존재로 보았다면 똑같은 관점이 후대 전승에서 나타난다고 해서 놀랄 일은 아니다. 이 관점은 요한복음에서 가장 선명하고 강력하게 출현한다. 공관복음서와 달리 요한복음에는 예수의 신적 능력과 권위에 대한 암시만이 아니라 예수가 세상에 온 선재하는 신적 존재로서 하나님과 동등하다는 과감한 진술이 나타난다. 이 관점은 예수가 천사와 같은 존재였다가 더욱 높은 신성한 지위로 고양되었다는 바울의 관점과도 달랐다. 요한의 기독론은 지극히 높은 고기독론이다. 따라서 요한복음에서 고양은 바울처럼 이전보다 더 높은 상태로 고양되는 것이 아니다. 요한에게 예수는 이미 신적 존재로서 육화 이전에 하나님이었고 하나님과 함께 있었다. 예수는 빌립보서에 나오는 것처럼 부활 후 고양되었을 때 모든 이름위에 뛰어난 이름을 받은 것이 아니라 그가 세상에 있는 동안 이미 그 뛰어난 이름을 갖고 있었다. 초기의 고양 그리스도론은 결국 육화 그리스도론에 길을 내주었고 결국 최후에 육화 그리스도론은 기독교 전승에서 주류가 되었다. 기독론의 이런 발전에서 등장한 첫 번째 쟁점은 만일 그리스도가 하나님이고 성부도 하나님이라면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한 분 하나님을 주장할 수 있었는가? 라는 질문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두 분이 아닌가? 그리고 성령도 하나님이라면 하나님은 세 분이 되는데 만일 그렇다면 그리스도인들은 일신론자라기 보다는 다신론자가 아닌가? 신약성서 시대 이후 많은 논쟁들은 바로 이 문제를 두고 벌어졌다. 문제에 대한 다양한 해결책들이 나왔고 그중 일부는 거짓과 이단으로 비난을 받았다.
8장 신약성서 이후 길이 막힌 2-3세기 기독론들
2-3세기에는 그리스도에 대한 다양한 관점이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는 인간이지만 신은 아니라고 생각했고, 또 어떤 사람들은 그가 신이지만 인간이 아니라고 여겼으며, 다른 사람들은 그가 한 인간과 한 신이라고 생각했다. 이 논쟁에서 승리한 사람들은 예수가 인간이자 신이며 둘이 아니라 한 분이란 관점을 주장했다. 이 관점이 승리한 것은 기독교의 초기부터 정해진 결론이 아니었지만 승리한 관점이었기에 기독교 신앙의 주류가 되었다. 초기 기독론 논쟁의 가장 흥미로운 특징은 처음에는 올바른 것이라 생각한 관점들이 결국 틀린 것으로 결정되었다는 사실이다. 그, 첫 번째 사례가 예수의 신성을 부인한 관점이었다. 첫 그리스도인들은 인간 예수가 부활 시에(혹은 세례나 출생 시에) 신적 지위와 권위를 가진 상태까지 고양되었다고 믿은 고양기독론을 유지했다. 이 관점은 예수는 본성상 하나님이고 항상 하나님이란 확신을 강조했던 2세기경에 이단으로 정죄되었다.
2세기에 몇몇 집단은 그리스도가 세례 시에 하나님에게 입양된 인간이라고 이해하는 아주 초기의 기독론을 주장했는데, 그런 집단 중 하나가 에비온파였다. 일부 학자들은 에비온파의 신학적 혈통이 예수의 가장 초기 제자들인 유대계 그리스도인들에게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주장했다. 에비온파는 실제로 첫 번째 그리스도인들의 관점을 수용하는 것처럼 보인다. 또 다른 집단은 그리스도가 본성상 하나님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로 입양되었다는 양자설을 주장했는데 이들을 데오도투스파 혹은 로마의 양자설파라고 부른다. 그들은 그리스도가 다른 인간들과 달리 동정녀에게서 태어났다고 생각했고 세례 시나 혹은 부활 시에 하나님의 아들로 입양되었다고 주장했다. 데오도투스파는 예수는 신이 아니라 완전한 인간이지만 하나님의 아들로 입양되었다는 자신들의 관점이 사도들의 가르침이고 2세기 말 교황 빅토르 시대까지 로마 교회의 다수가 가르친 교리라고 주장했다. 어쨌든 확고하게 그리스도를 본성상, 인간이 된 선재하는 신성한 존재로 이해한 육화 기독론으로 넘어온 2-3세기 정통 신학자들은 이 양자설적 관점을 배척했다.
그리스도가 본성상 하나님이 아닌 인간이라고 주장한 양자설과 반대로 그리스도는 완전한 신이며 본성상 인간이 아니라는 주장이 등장했는데, 이것을 가현설이라고 한다. 이 관점에 의하면 그리스도는 실제로느 인간이 아니었고 단지 인간으로 나타났을 뿐이다. 요한1서에는 이 가현설을 그리스도의 적이라고 비난하는 대목이 등장한다. 요한복음에 나오는 육화기독론은 신약성서에 나오는 기독론 중 가장 높은 관점인데, 가현설은 이 보다 더 높은 기독론이라고 할 수 있다. 가현설을 주장하는 자들은 그리스도는 너무 높아서 완전히 하나님이지 절대 인간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가현설을 강하게 비판한 사람 중 하낙 안티오키아의 주교 이그나티우스이다. 그는 그리스도가 육체적으로 고통당하고 죽은 진짜 인간이 아니었다는 모든 인해에 강하게 반대했다. 이그나티우스에게 그리스도는 진짜 인간이면서 확실히 하나님이기도 했다. 2세기의 유명한 가현설자는 마르키온이다. 이단 연구자 테르툴리아누스는 마르키온에 반대하여 5권의 책을 저술했는데 이 책이 마르키온에 대한 정보를 주는 주요 원천이다.
양자설은 그리스도가 인간이지만 본성상 하나님은 아니라고 주장했고, 가현설은 그리스도가 하나님이지만 본성상 인간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대다수 영자주의자들은 그리스도를 인간이 아닌 완전한 신이라고 생각하기보다는 예수 그리스도가 두 존재였다고 생각한 일종의 분리기독론이었다. 그들에게는 예수와 그리스도 사이에 어떤 분리가 있었다. 그들은 창조에서 참 하나님을 분리시켰고, 인간 영혼에서 인간 몸을 분리시켰으며, 그리스도에서 예수를 분리시켰다. 정통신학들은 영지주의자들의 분리주의적인 신학적 관점을 비판했다. 2세기 말의 주류 기독교는 양자설, 가현설, 영지주의를 모두 이단시하고 그리스도는 본성상 하나님이고 동시에 본성상 인간이라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리스도는 하나님이면서 동시에 인간이 될 수 있는가? 이 질문을 둘러싸고 다시 논쟁이 벌어졌다. 이것은 기독교 신학자들에게 신학적 난제였으며, 이 문제가 해결되는데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 문제의 해결책으로 3세기 초반에 대다수 그리스도인들이 수용한 관점이 오늘날 이른바 양태설이라고 부르는 관점이다.
9장 니케아 공의회, 예수 완전히 하나님이 되다.
니케아 공의회에서 기독론과 관련하여 그리스도는 하나님 아버지와 구별된 존재이고 항상 하나님과 함께 있었으며, 항상 하나님과 동등했고, 하나님으로서의 지위와 능력을 지니면서도 부분적으로만 아니라 완전히 인간이 되었다는 주요 사항들이 결정되었다. 이 관점은 내적으로 상반되고 모순되어 보인다. 하나님이 오직 한 분뿐이라면 어떻게 그리스도가 하나님이 될 수 있으며 하나님 아버지도 하나님이 될 수 있는가? 그리고 그리스도는 어떻게 온전히 하나님인 시에 온전히 인간일 수 있는가? 부분적으로는 인간이고 부분적으로는 신이어야 하지 않을까? 이 진술들은 사실 본래부터 있던 모순이기보다 그리스도의 존재에 대한 논쟁이 낳은 역설이다. 정통 기독교의 역설들은 두 가지 사실에서 출현했다. 첫째로 성서의 일부 구절들은 완전히 다른 관점을 지지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정통 신학자들은 서로 조화를 이루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모든 구절을 동시에 긍정해야할 필요가 있었다. 둘째로, 다양한 이단 집단들이 서로 반대 관점을 주장했는데 그 반대되는 관점들이 모두 틀리거나 모두 옳지 않기에 정통관점들을 이단 관점들을 반대하면서 각 관점의 일부는 수용하고 일부는 거부해야만 했다. 니케아 공의회에서 채택된 신경이 의미하는 바는 보편적이고 사도적인 교회의 관점을 제시했다는 것이다. 아리우스파는 정죄되었고 당분간 알렉산더파는 승리했으며 콘스탄티누스는 일치된 교회를 이루었다고 믿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 아버지와 영원히 공존하며 하나님 아버지와 동일본질이며 영원히 참된 하나님으로 선포되었다. 그러나 니케아의 그리스도는 역사적 예수와는 전혀 다르다. 니케아 공의회에서 예수는 이제 완전히 하나님이 되었다.
맺음말- 역사적 예수에서 신으로, 그 여파
초기 교회의 기독론은 인간 메시아에서 부활 때 신성한 지위로 고양된 하나님의 아들로, 인간으로 세상에 육화한 선재하는 천사적 존재로, 모든 시간 이전에 존재했고 세상을 창조한 하나님 말씀의 육화로, 하나님 아버지와 동등하고 항상 그분과 공존하는 하나님 자신으로 옮겨갔다. 현재 불가지론자인 나는 예수는 뛰어난 통찰을 지닌 진정한 종교적 천재였다고 생각한다. 예수는 그 시대의 인간이었고 1세기 유대교의 묵시론적 열정을 공유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예수는 악이 지금 시대를 통제하지만 하나님이 개입하여 모든 악을 물리치고 승리할 것이라고 가르쳤다. 그때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것이고 예수는 그 나라의 왕이 되어 그를 섬기는 열두 제자와 함께 그 나라의 통치자가 될 것이며, 이 일은 당대에 신속하게 일어날 것이라고 보았다. 이 묵시론적 메시지를 나는 문자적으로 믿지 않지만 나는 특별히 예수의 윤리적 가르침에 많은 감화를 받는다. 그러나 역사가로서 나는 예수의 윤리적 가르침이 내가 받아들이지 않는 묵시론적 형태로 전달되었음을 실감한다. 예수의 윤리적 가르침은 단순한 도덕적 교훈이 아니라 그 위에 하나님나라가 있다. 예수의 제자들이 그 윤리적 원칙을 따라 살 때 그들을 일끌어간 삶의 형태는 전쟁도, 증오도, 폭력도, 억압도, 불의도 없는 장차 하나님나라에서 경험하게 될 삶이 될 것이다. 그래서 예수는 오직 이러한 삶의 방식을 통해서만 하나님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가르쳤다. 나는 하나님이 악의 세력을 파괴하기 위해 세상에 우주적 심판관을 보낼 것이라고 믿지 않지만 예수가 선언한 윤리적 원칙들은 우리 시대에도 여전히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예수를 이해하기 위래 그를 재맥락화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기독교 역시에서 예수는 계속하여 재맥락화되어 왔다고 생각한다. 예수 부활을 처음 믿었던 가장 초기 신앙인들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를 믿거나 그의 가르침을 받아들인 모든 사람이 예수를 재맥락화했고 앞으로도 영원히 그렇게 할 것이다.
니케아 공의회 이후 기독교 지도자들과 사상가들이 그리스도의 본성과 삼위일체의 특성에 대해 기본적 합의를 이루었다는 것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니케아는 이야기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니케아에서 아리우스파가 패배했다고 해서 그들의 관점이 근절된 것이 아니다. 니케아 이후 교회는 일치되지 못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니케아의 승자 편을 지지했지만 이는 그가 니케아의 기독론을 실제로 믿어서라기보다는 그것이 합의된 의견이라는 이유에서였다. 콘스탄티누스 이후 로마 황제들 다수가 아리우스파적 기독론에 호의를 가지고 있었고 아리우스파가 그 반대파보다 더 많던 때도 있었다. 이 신학적 논쟁의 외부자 들이 보기에는 아리우스파와 아타나시우스파의 공통점이 차이점보다 더 커보였다.
아우구스투스 황제 이후 로마세계에서 황제는 신으로 이해되고 공경했다. 반면에 예수의 첫 제자들은 예수의 부활을 믿은 후 예수를 참된 신으로 경배했다. 로마세계에서 로마황제와 예수는 모두 하나님의 아들로서 신으로 경배되었다. 이것은 그 당시에 로마황제가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 자리를 놓고 서로 경쟁했음을 의미한다. 그런데 4세기 초 콘스탄티누스의 회심으로 로마황제는 예수와 경쟁하는 신의 자리에서 예수의 종의 위치로 전락했다. 일단 황제가 그리스도인이 되자 그리스도인과 이교인의 관계 및 로마정부와 관계된 모든 것이 변했다. 그리스도인은 이제 황제숭배를 거부함으로 억압받는 소수가 아니라 황제와 더불어 이교를 억압하는 주류가 되어가고 있었다. 예수의 죽음이 유대인들의 채임이라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었기 때문에 예수가 하나님이라는 기독교의 기독론은 고대 유대교와 기독교의 관계에 대단히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로마세계에서 기독교는 하나님을 죽였다는 혐의를 받고 오랫동안 적대해 오던 유대인을 억압하며 추악하게 권력을 사용했다. 황제가 회심하면서 그리스도인들 사이의 담론도 변했다. 니케아 이후에도 새로운 논쟁들이 연이어 일어났고 초기에는 정통 가운데서 수용되던 입장들도 가장 하찮은 세부항목에서 도전을 받았다. 그러나 어떤 입장도 예수가 하나님이라는 것을 문제 삼지는 않았다. 논쟁에 참여한 모든 이가 그리스도에 대한 니케아적 이해를 갖고 있었다. 그러나 예수에 대한 기독론은 예수 사후 20년 사이의 아주 초기에 엄청나게 발전했다고 보인다. 이 시기의 전승으로 보이는 빌립보서의 그리스도 시에는 예수가 하나님의 모습을 지녔던 선재하는 신성한 존재로서 인간이 되었고 죽기까지 순종했기 때문에 신성한 지위로 고양되고 하나님과 동등하게 되었으며, 세상 모든 사람이 무릎 꿇고 주님이라 고백하는 분으로 묘사된다. 마르틴 헹엘은 기독론은 수 세기에 걸쳐 교리가 발전된 후대의 시기보다 처음 20년 안에 더욱 중요한 일이 일어났다는 유명한 주장을 했다. 기독론의 첫 도약은 첫20년 사이에 이루어졌다. 이 하나님인 그리스도는 역사상 예수가 아닐지 모른다. 그러나 그는 정통 기독교 교리의 그리스도이며 몇 세기에 걸쳐 믿음과 경배의 대상이 되었으며 오늘날 그리스도인들도 세계 전역에서 그를 여전히 하나님으로 경배하고 공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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