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말론- 마이클 호튼
2016-12-24 16:13:02
1. 최초의 급진적 천년왕국 운동은 3세기 몬타누스주의자들에게서 나타났다1. 이후 박해의 시기가 지나고 교회는 로마제국의 비호를 받으면서 승리주의적인 무천년설적 입장으로 전환되어갔다. 물론 5세기의 아우구스티누스는 무천년설적 입장을 취하면서도 로마의 함락이란 시대적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도성과 세상의 도시라는 두 가지 도시를 분명하게 구별함으로써 승리주의적 유형을 반대했다. 하지만 중세 내내 교회가 실현된 하나님나라로서 점진적으로 진보한다는 지배적인 종말론은 승리주의적이었고 이것은 제의와 문화가 연합된 크리스텐덤 사상으로 나타났다. 이렇게 무천년설은 로마제국을 하나님나라의 실현으로 보았고 로마의 멸망 이후에는 교회를 실현된 하나님나라로 보는 보수적 방향으로 왜곡되었다.
2. 반면에 급진적인 (전천년설적인) 천년왕국 운동은 그리스도의 왕국을 묵시적이고 반체제적인 현실로 이해하면서 현 체제에 대한 급진적인 비판을 독려했다. 비록 기독교 초기의 몬타누스 운동은 사라졌지만 천년왕국에 대한 급진적인 열망은 교회사 전체에 걸쳐 다양한 시기에 다시 살아나곤 했다. 중세 시대에 주목할 만한 묵시적인 천년왕국 운동은 피오레의 요아힘(1132-1202)에 의해 주도되었다.2 요아힘은 역사를 아버지의 시대, 아들의 시대, 성령의 시대로 나누고 미래의 새 시대를 성령의 시대로 보았다. 그는 성령의 시대에 모든 사람은 하나님을 직접적이고 즉각적으로 알게 되며 인류는 완전한 영적 일치를 이룰 것이라고 주장했다. 요아힘의 종말론 사상은 이후 시대에 영향을 미쳤으며 특히 르네상스 인물들에게 유토피아적 영감을 주었다. 폭력혁명으로 급진적 천년왕국을 세우려던 재세례파의 토마스 뮌처나 레이든의 요한도 요아힘의 영향을 받았다.
3. 종교개혁자들은 대체로 세상의 왕국과 그리스도의 왕국이라는 두 왕국의 구분을 선호했는데 전자가 정의와 질서의 유지를 위해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권능의 왕국이라면 후자는 설교와 성례전이 베풀어지는 교회를 통해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은혜의 왕국이었다.3 종교개혁자들의 이런 입장은 전통적인 무천년설과 유사하지만 중세의 승리주의적이고 물질적인 유형과는 달리 분리주의적이고 영적인 유형이라고 볼 수 있다. 종교개혁자들의 이런 입장에서 볼 때, 중세의 크리스텐덤이나 급진적인 천년왕국 운동은 모두 영적인 하나님나라를 지상적 왕국으로 변개하려는 시도에 불과했다. 종교개혁자들은 이 두 가지 모두가 그리스도의 왕국에 대한 종말론적 오해에서 나온 것으로 보았다. 하지만 크리스텐덤의 신화는 가톨릭은 물론 개신교에서도 제국주의의 식민지 팽창정책 안에서 지속되었다. 독립전쟁 당시 미국의 교회들은 요한계시록의 예언들이 전쟁의 승리를 통해 실현되고 있는 것으로 생각했으며 나아가 자신들이 세우는 새로운 세속 질서가 기독교적 원칙에 입각한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진보의 중심이며 세계 선교의 중심이 될 것이라고 믿었다.
4. 칸트 이후 독일의 관념론이 등장하면서 종말론은 역사 안으로 동화되었는데, 이것은 크리스텐덤이라는 실현된 종말론의 세속화된 변형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헤겔과 슐라이어마허는 하나님나라를 정신이 역사와 문화 안에서 신비롭고 점진적으로 발전하는 것으로 보았다. 이 모든 서술 방식에서 마지막 일들로서의 종말이라는 종말의 본래적 의미는 상실되었다. 이렇게 하나님나라와 역사적인 진보를 동일화하는 사상은 19세기 자유주의 개신교의 확고한 특징이었는데 특별히 리하르트 로테와 알브레히트 리츨의 사상이 그러했다4. 그러나 자유주의뿐 아니라 19세기 미국의 부흥주의적인 복음주의도 크리스텐덤의 신화를 미국적으로 변형시켰다. 미국의 부흥사 찰스 피니는 교회를 도덕적이고 사회적인 개혁자들의 모임으로 보는 후천년설적 입장을 취했는데 당시에 후천년설은 미국의 주류 개신교에서 아예 기본적 설정이 된 것 같은 상태였다. 19세기 미국의 전천년주의 운동들도 그리스도의 보편적 왕국이 그 운동의 기원이 된 도시에 건설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제1,2차 세계 대전은 하나님나라에 대한 이러한 세속적이고 자유주의적인 변형뿐 아니라 보수적인 후천년설적 견해에 결정적인 타격을 주었다. 이제 인류의 미래는 낙관할 수 없게 되었고 무디(1837-1899)는 세상을 “파선된 배”라고 결론을 내리고 개인들을 회심시키는 영혼의 구원에 온 힘을 쏟았다. 아일랜드 교회 출신인 존 넬슨 다비(1800-1882)는 계시록이 예언이 교회와 완전히 구별되는 미래적인 왕국을 가리킨다고 말하며 대환란 이전의 비밀휴거, 그리스도의 재림, 그리고 이후에 천년왕국의 도래를 주장하는 세대주의적 전천년설을 주장했다. 후천년설자들이 미래에 대한 보다 점진적인 낙관론을 취한 반면에 세대주의적 전천년설자들은 묵시적인 대재앙과 더불어 임박한 종말로 대표되는 역사적 비관론을 취했다.
5. 수세기 동안 그리스도의 왕국을 세속문화의 진보와 동일시해온 자유주의 개신교는 알버트 슈바이처의 철저종말론에 의해 내부로부터 흔들렸다.5 불트만은 슈바이처의 철저종말론에 반대하면서 역사와 종말론을 시간과 영원의 이원론으로 설정했다.6 이후 2차 세계대전의 여파로 독일 하이델베르크 대학을 중심으로 역사에 대한 새로운 관심이 대두되었는데 볼프하르트 판넨베르크1928-2014)는 종말론을 역사와 관련지으려고 시도했다. 하이델베르크 서클의 일원인 위르겐 몰트만(1926-)은 현재를 변화시키는 그리스도의 미래적 능력에 급진적인 기대를 가지고 있었다. 바르트가 종말론을 영원과 시간의 이원론 안에서 역사 너머 혹은 역사 초월적 희망으로 보는 반면에7 몰트만은 종말론을 우리를 미래로 내모는 희망, 곧 역사 안에 있는 희망으로 보았다. 몰트만은 아마겟돈과 같은 묵시적 파국을 통과할 필요가 없는 그리스도의 천년왕국을 추구하면서 천년왕국의 희망이 없다면 저항하는 기독교 윤리와 그리스도의 일관성 있는 제자도는 강력한 동력을 상실한다고 주장했다8. 우리는 피오레의 요아힘이 몰트만의 종말론에서 다시 등장하는 것을 본다. 몰트만은 자신의 책 “삼위일체와 하나님나라”에서 이렇게 말한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주권성에 대한 유일신론적인 해석을 하나님나라의 삼위일체론적 이해를 통해 극복하려면 우리는 피오레의 요아힘으로 되돌아가야 하며 역사에 대한 그의 삼위일체론적 견해를 회복시켜야 한다.” 몰트만이 특별히 요아힘으로부터 계승하려고 했던 것은 묵시론적인 기대였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대리적인 행동을 통해 성령이 만물을 갱신할 때가 임박했다는 기대였다.
각주 1
본래 초대교회는 임박한 재림의 기대를 가지고 있었는데 재림이 지연되면서 종말에 대한 기대가 차츰 약화되고 윤리생활이 해이해졌다. 이런 상황 속에서 몬타누스와 그의 추종자들은 임박한 종말을 주장하며 엄격한 윤리와 금욕적 생활을 통해 교회를 개혁하고자 하였다. 요약하면 몬타누스 운동은 임박한 그리스도의 재림과 세계종말 신앙에 근거하여 세속화되어 가는 교회를 개..
각주 2
기독교가 로마제국의 국가종교가 되면서 종말론의 메시아적, 세계사적 차원은 점차 망각되고 종말론은 주로 각 개인의 죽음과 개별적 심판, 그리고 먼 미래에 일어날 죽은 자들의 부활과 최후심판의 문제로 간주되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종말론의 메시아적, 세계사적 차원을 부활시킨 중세기의 대표적 인물이 요아힘 폰 피오레였다. 그는 로마제국이나 교회를 하나님나라 현실..
각주 3
개신교의 종말론은 중세기 스콜라 신학의 종말론의 틀을 벗어나지 못했다. 여기서 종말론은 자연과 세계의 미래와 관계없는 개인적이고 영적인 미래와 관계된 것으로 나타난다. 그리하여 재세례파의 천년왕국설과 만유회복설을 거부했고 영육 이원론적 인간 이해와 영혼불멸의 신앙을 강조했다.
각주 4
자유주의적 종말론은 천년왕국의 꿈을 기독교 신앙의 바탕을 떠나 인류와 역사 자체의 발전을 통해 혹은 하나님이란 전제와 작업가설 없이 실현하고자 했다. 맑스의 공산주의 사상은 기독교 종말론의 세속화의 극단적인 형태라고 볼 수 있다. 그것은 헤겔의 역사철학의 신학적 전제들을 거부하고 기독교와 하나님 없는 인류의 유토피아를 추구한다.
각주 5
슈바이처에 의하면 예수는 임박한 종말을 기대했지만 예수의 죽음과 함께 종말론은 폐기된다. 그의 철저종말론은 종말론의 폐기, 혹은 탈종말론화를 의미했다. 슈바이처에 의하면 이천년 동안 계속된 재림의 지연을 고려할 때 종말은 불가능하고 불필요했다. 역사의 수레바퀴는 계속 돌아가고 세계사는 계속될 것이다. 이리하여 슈바이처에게 중요한 것은 종말이 아니라 예수의 ..
각주 6
불트만에서 참된 역사는 세계사가 아니라 개인의 실존적 역사이며 따라서 세계사는 개인의 실존적 역사로 대체되어야 했다. 따라서 그에게 종말은 역사의 먼 미래에 일어날 우주적 사건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만나 신앙이냐 불신앙이냐를 결단하는 현재의 순간 속에 있다. 불트만에게는 현재의 순간이 실존의 탈세계화 속에 있는 역사의 실현된 종말이기 때문에 미래에 올 역사의..
각주 7
바르트에 의하면 종말은 역사의 마지막 시간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순간 속에 있는 영원을 말한다. 그래서 그는 순간 속에서 영원을 경험하는 사람은 역사의 종말을 경험한다고 말한다. 따라서 종말은 언제나 우리 앞에 있으며 현재의 순간 속에서 경험될 수 있다. 종말에 대한 바르트의 이런 생각 속에는 20세기 실존주의 철학, 특히 키엘케골의 영향이 숨어있다..
각주 8
몰트만에 의하면 종말론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건 속에서 계시되는 그리스도의 미래와 그의 미래 속에 포괄되어 있는 세계의 매래에 대한 기독교의 희망에 대한 이론이다. 그는 기독교는 철저히 종말론적이며 그것은 희망과 앞을 향한 지향으로서 현재의 출발과 변화라고 말한다. 몰트만은 교의학의 마지막 부분인 종말론을 교의학 전체 대해 가지는 의미와 연관성으로 확장했다...
- 본래 초대교회는 임박한 재림의 기대를 가지고 있었는데 재림이 지연되면서 종말에 대한 기대가 차츰 약화되고 윤리생활이 해이해졌다. 이런 상황 속에서 몬타누스와 그의 추종자들은 임박한 종말을 주장하며 엄격한 윤리와 금욕적 생활을 통해 교회를 개혁하고자 하였다. 요약하면 몬타누스 운동은 임박한 그리스도의 재림과 세계종말 신앙에 근거하여 세속화되어 가는 교회를 개혁하려는 일종의 교회개혁운동이었다. [본문으로]
- 기독교가 로마제국의 국가종교가 되면서 종말론의 메시아적, 세계사적 차원은 점차 망각되고 종말론은 주로 각 개인의 죽음과 개별적 심판, 그리고 먼 미래에 일어날 죽은 자들의 부활과 최후심판의 문제로 간주되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종말론의 메시아적, 세계사적 차원을 부활시킨 중세기의 대표적 인물이 요아힘 폰 피오레였다. 그는 로마제국이나 교회를 하나님나라 현실과 동일시하는 모든 신학적 해석을 거부하고 하나님나라를 다가올 미래의 역사로 제시하며 이 하나님나라를 향하여 세계와 교회의 현실이 변화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에게 하나님나라는 이 세계가 도달해야 할 구체적이며 물질적 현실이다. 그리고 하나님나라의 궁극적 완성은 역사 내에서 이루어질 것이다. 이리하여 요아힘은 종말론의 내면화, 영성화, 피안화를 거부하고 종말론의 차안적, 물질적, 현실적 차원을 강조했다. [본문으로]
- 개신교의 종말론은 중세기 스콜라 신학의 종말론의 틀을 벗어나지 못했다. 여기서 종말론은 자연과 세계의 미래와 관계없는 개인적이고 영적인 미래와 관계된 것으로 나타난다. 그리하여 재세례파의 천년왕국설과 만유회복설을 거부했고 영육 이원론적 인간 이해와 영혼불멸의 신앙을 강조했다. [본문으로]
- 자유주의적 종말론은 천년왕국의 꿈을 기독교 신앙의 바탕을 떠나 인류와 역사 자체의 발전을 통해 혹은 하나님이란 전제와 작업가설 없이 실현하고자 했다. 맑스의 공산주의 사상은 기독교 종말론의 세속화의 극단적인 형태라고 볼 수 있다. 그것은 헤겔의 역사철학의 신학적 전제들을 거부하고 기독교와 하나님 없는 인류의 유토피아를 추구한다. [본문으로]
- 슈바이처에 의하면 예수는 임박한 종말을 기대했지만 예수의 죽음과 함께 종말론은 폐기된다. 그의 철저종말론은 종말론의 폐기, 혹은 탈종말론화를 의미했다. 슈바이처에 의하면 이천년 동안 계속된 재림의 지연을 고려할 때 종말은 불가능하고 불필요했다. 역사의 수레바퀴는 계속 돌아가고 세계사는 계속될 것이다. 이리하여 슈바이처에게 중요한 것은 종말이 아니라 예수의 윤리적 가르침이었다. [본문으로]
- 불트만에서 참된 역사는 세계사가 아니라 개인의 실존적 역사이며 따라서 세계사는 개인의 실존적 역사로 대체되어야 했다. 따라서 그에게 종말은 역사의 먼 미래에 일어날 우주적 사건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만나 신앙이냐 불신앙이냐를 결단하는 현재의 순간 속에 있다. 불트만에게는 현재의 순간이 실존의 탈세계화 속에 있는 역사의 실현된 종말이기 때문에 미래에 올 역사의 종말에 대해 더 이상 질문할 필요가 없다. 종말론에서 개인의 실존이 중시되어야 하며, 성서의 신화적 세계관에서 유래한 종말의 묘사들이 새롭게 해석되어야 한다는 불트만의 주장은 타당하지만, 종말을 단순히 개인의 결단의 순간 속에 있는 것으로 보고 세계사와 자연의 역사를 종말론에서 배제하는 것은 잘못이다. [본문으로]
- 바르트에 의하면 종말은 역사의 마지막 시간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순간 속에 있는 영원을 말한다. 그래서 그는 순간 속에서 영원을 경험하는 사람은 역사의 종말을 경험한다고 말한다. 따라서 종말은 언제나 우리 앞에 있으며 현재의 순간 속에서 경험될 수 있다. 종말에 대한 바르트의 이런 생각 속에는 20세기 실존주의 철학, 특히 키엘케골의 영향이 숨어있다. 그는 문화개신교와 근대 진보주의가 약속하는 인간과 이 세계의 무한한 가능성을 불신하고 역사의 모든 의미를 의심하면서 하나님과 인간, 하나님과 세계, 영원과 시간을 철저히 구별한다. 몰트만은 바르트가 말하는 영원의 현재적 순간 속에서 세계사의 모든 불의와 갈등과 고난과 죽음 그리고 새로운 미래에 대한 기다림은 망각되며 객관적 역사의 과정은 사유 안에서 정지된다고 비판한다. [본문으로]
- 몰트만에 의하면 종말론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건 속에서 계시되는 그리스도의 미래와 그의 미래 속에 포괄되어 있는 세계의 매래에 대한 기독교의 희망에 대한 이론이다. 그는 기독교는 철저히 종말론적이며 그것은 희망과 앞을 향한 지향으로서 현재의 출발과 변화라고 말한다. 몰트만은 교의학의 마지막 부분인 종말론을 교의학 전체 대해 가지는 의미와 연관성으로 확장했다. 그에게 기독교 신앙은 하나님나라에 대한 종말론적 신앙이며 그의 신학체계 전반은 종말론적 신학이다. 그의 종말론은 전통적인 종말론의 개인주의, 심령주의, 피안주의를 극복하고 세계와 역사를 변화시키는 종말론의 메시아적 차원과 역동성을 회복시키는 장점을 갖고 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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