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어떻게 예수가 되었나? -마이클 버드 외
2017-01-10 12:51:39
서문- 마이클 버드
9. 어만의 저서들은 널리 받아들여진 종교적 신념들이 실은 조야한 역사적 속임수나 신화의 혼합임을 주장한다. 그래서 어만은 종교를 대중의 아편이자 신에 관한 모든 것은 그저 하나의 큰 오류에 지나지 않는다고 단언한다.
10. 어만은 예수의 신성에 대한 믿음은 승귀와 성육신 사이를 오가는 역사적 프로세스를 거쳐 서서히 발전했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예수의 신성을 정당성을 얻기 위한 인간적 프로세스의 산물로 만들어 버린다.
1장 마이클 버드
13 어만은 단지 인간이었던 예수가 이스라엘의 하나님과 동등한 신적 존재라는 지위로 격상된 것은 예수 사후에 일어난 제자들의 종교적 헌신에서 비롯되었다고 주장한다.
14. 어만이 예수의 신성에 대한 믿음의 역사적 기원에 접근하는 방법은 본질적으로 진화론적이다. 즉 예수의 신성에 대한 신앙은 다양한 안팎의 영향을 받으며 시간의 흐름과 함께 변이과정을 겪었다는 것이다.
15. 나는 예수의 신적 정체성에 관한 요한복음의 주장은 종교적 헌신의 산물이며 신앙 공동체의 신학적 주장에 의해 정당화된 신앙고백적인 것임을 전적으로 수긍한다. 역사적으로 온갖 부류의 기독교인이 주장한 것처럼 나사렛 예수가 정말 하나님인지는 신앙의 문제로 답할 수밖에 없다. 이 문제는 결국 성서에 증언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초대교회의 증언을 믿을 것인가 말 것인가로 귀결된다.
16. 다만 언제, 어디서, 왜 기독교인들이 예수의 천상적 기원과 신적 속성에 관한 주장을 하기 시작했는가는 역사적 문제이며 증거의 종합적 검토를 통해서만 답할 수 있는 문제다. 어만은 예수를 완전한 신적 존재로 규명한 고기독론은 하나의 진화론적 발전의 산물이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초기고기독론(EHCC: Early High Christology Club)을 지지하는 학자들(마틴 헹엘, 리처드 보컴, 래리 허타도)은 예수의 신적 기원에 대해 빅뱅설을 주장한다. 어만은 예수의 죽음과 가장 초기 기독교 문서인 바울서신에서 발견되는 완성된 형태의 기독론 사이에는 시간적 간극이 너무 짧기 때문에 만일 그 기간 내에 기독론이 형성되었다면 경이로운 일이라고 언급한다.
17. 구종교사학파는 유대 기독교인, 헬라 기독교인, 이방 기독교인으로 구성된 각각의 기독교 공동체들은 예수 신앙이 형성되는 과정상의 개별 발전 단계를 나타낸다고 말한다. 이 발전 과정은 예수가 인자라는 유대 공동체의 관점에서 출발하여 헬라어를 구사하는 신비주의 유사 종교의 영향을 받아 이방 기독교의 신성화된 주라는 관점으로 이동하여 나아갔다는 것이다. 그러나 헹엘은 가장 초기의 증거들은 아람어와 헬라어를 구사하는 기독교 공동체들은 처음부터 나란히 공존했음을 보여준다고 지적하면서 예수를 신적인 주로 고백한 것은 기독교 신앙이 헬라 종교 및 철학과 조우한 결과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헹엘은 또한 바울 서신에 등장하는 예수의 신성에 대한 전통적이며 이미 정형화된 표현들은 고기독론이 매우 초기에 형성되었음을 보여준다고 말한다.
19. 헹엘에 의하면 교회의 예수 신앙에 핵심적인 영향을 미친 것은 헬레니즘적인 영향을 미친 것은 헬레니즘적 신비주의 유사종교나 영지주의적 대속자 신화가 아니라 체험과 성서 주해의 결합이었다.
20. 래리 허타도는 초기 기독교인의 예배 관행이 기독론 발전의 토대가 되었다고 논증한다. 그래서 허타도는 신약에서 발견되는 주요한 기독론적 칭호 연구보다는 초대교회의 예배 양식과 이것이 예수의 신적 위상에 관해 시사하는 바를 다룬다. 그가 도달한 결론은 초기 기독교인의 예수 예배는 초기 기독교가 예수를 인간의 형체로 온 이스라엘의 하나님으로 경외했음을 분명하게 보여준다는 것이다. 허타도는 초기 기독교의 예수 섬김 현상을 유대 유일신론의 맥락 안에 자리매김한다. 그는 유대 유일신론은 엄격했으며 신성의 핵심 지표는 예배를 받는가 여부에 있다고 논증하면서 예수 예배는 예수의 신적 위상을 확실하게 가리키는 지표라고 주장한다.
21. 리처드 보컴은 예수에 관한 초기 기독교의 주장에 유대 유일신론이 그 배경으로 자리 잡고 있다고 주장한다. 보컴은 유대 성서 기자들은 하나님의 고유성을 규명하기 위해 몇 가지 핵심적인 요소에 관심을 집중했다고 말한다. 그 첫째 요소는 이스라엘과 맺은 관계를 통해 유일한 하나님으로 신적 이름인 야웨의 계시자라는 것이며 더 중요한 둘째 요소는 만유에 대한 하나님의 관계를 통해 유일한 창조주이자 만물을 다스리는 지고의 주권자로 알려진 것이다. 보컴은 초기 기독교에서 예수도 이 두 가지 요소를 가진 신적 존재로 간주되었다고 주장한다. 보컴은 이런 맥락에서 초기 기독교인이 부활이후 가장 초기부터 줄곧 예수를 이스라엘의 한 분 하나님의 고유한 정체성 안에 명백하게 포함시킨 것이 분명하다고 단언한다. 보컴은 예수의 신성을 이해하는 선례로서 중간적 존재에 집중하는 노력은 실패할 것이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중간적 존재들은 신적 정체성과는 구분되는 피조물이거나 하나님의 의인화내지 신적 정체성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그는 신약 기독론 텍스트에서는 예수의 신적 정체성을 창조에 참여한 자, 신적 이름을 가진 자, 하나님의 보좌를 공유하고 경배받는 자로서 분명하게 강조하고 있으며, 그러므로 신적 정체성에 관한 기독론은 예수 그리스도는 이스라엘 하나님의 고유하고 영원한 정체성에 본원적인 존재로 간주되었음을 보여준다고 말한다.
23. 어만에서 고대 유일신론은 특별히 엄격한 것이 아니었다. 어만의 고대 텍스트 독해에 의하면 피조물도 어느 정도 신격 권세의 피라미드를 공유할 수 있었고 신과 인간의 영역을 가르는 절대적 구분도 없었다. 또한 어만은 예수 생전에는 그 누구도 예수를 하나님으로 간주하지 않았다고 보았다. 심지어 예수 자신도 스스로를 하나님으로 생각하지 않았다고 본다.
24. 그는 요한복음에 나타난 예수의 신성에 대한 명시적 주장도 전승에 대한 이차적, 창작적 부연 설명을 예수의 공생애에 재투사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어만은 예수의 부활에 관한 복음서의 기술도 상당히 모순되며 역사적으로 부정확하다고 주장한다. 그는 예수는 매장되지도 않았고 빈무덤이 발견된 것도 아니며 단지 예수의 제자들이 예수의 살아있음에 대한 시각적 체험을 했고 이로 인해 예수의 신적 고양을 주장했고 이후에 예수를 인간이 된 선재적 존재로 생각하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이렇게 어만은 초대교회가 예수를 신성화한 두 가지 주요한 방식을 규정하는데 그것은 승귀 기독론과 성육신 기독론이었다. 승귀 기독론에서 예수는 부활 또는 세례시에 신적 존재가 된 인간이었고, 성육신 기독론에서 예수는 인간이 된 선재적인 신적 존재였다. 어만은 이 패러다임을 신약에 적용해서 마가복음과 바울 문서를 승귀 기독론으로 보고 요한복음을 성육신 기독론으로 보았다.
25. 나아가 어만은 이 패러다임을 가지고 이후 수세기 동안 교회에서 등장하여 4세기 니케아 신조에서 절정에 다다른 기독론 논쟁을 설명한다. 어만은 이 기독론 논쟁에서 기독론의 가장 초기 형태인 승귀 기독론은 2세기 교회에서 이단 또는 비정통으로 간주되었다고 주장한다. 어만에 의하면 니케아 신조의 기독론은 나사렛의 역사적 예수와는 아주 거리가 멀다.
어만에 대한 반론 요약(25-31)
2장 어만에 의하면 중간적 존재의 신성화에서 사람들이 예수를 하나님으로 묘사하기 시작한 의미를 이해할 단초를 얻는다. 어만은 중간적 존재에 관한 고대의 견해와 예수를 신적 존재로 보는 기독교 견해 간의 확연한 차이점을 간과하고 유사점만을 지나치게 강조한다. 그러나 예수를 신적 존재로 보는 기독교의 믿음은 이런 중간적 존재에 관한 착상에서 근거한 것이 아니라 기독교적 유일신론에 근거한 것이다. 초기 기독교는 유대의 엄격한 유일신론을 희석하지 않으면서 하나님 자신의 정체성의 일부로 간주했다. 초기 기독교에서 중간적 존재들은 하나님과 통치를 공유하지 않았고 하나님처럼 예배의 대상도 아니었지만 예수는 그러했다. 어만은 예수에 관한 초기 견해의 전형인 기독론적 유일신론이 달성한 진정한 혁신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다.
3장. 어만은 신성에 대한 예수의 자기 이해를 부인하지만 예수는 자신을 신적 권세를 가지고 하나님의 주권을 구현하는 신적 대행자로 이해했을 개연성이 높다. 또한 예수의 등장 배경에 주가 시온으로 귀환하기를 염원하는 유대인의 미래 회복에 대한 소망이 있었다면 예수가 자신의 위격 안에서 주의 귀환이 실제로 실현되었다고 믿었을 가능성이 크다. 이런 막락에서 우리는 예수가 하나님을 위해, 심지어 하나님으로서 말하고 행한다고 표현한 여러 어록과 상징적 행동을 이해할 수 있다.
4장. 어만은 예수가 알려진 무덤에 매장되었다는 스토리는 허구이며 그러므로 예수의 제자들은 어떤 무덤도 발견하지 못했을 개연성이 높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실제로 로마의 법 관행은 십자가형을 당환 이들을 포함한 사형수의 매장을 허용했고 더욱이 로마정부는 모든 죽은 자를 사망 당일 일몰 전 매장하는 유대의 매장 전통을 존중했다는 강력한 문헌적 고고학적 증거가 있다. 만일 예수의 시신이 무덤에 남아있었다면 예수의 제자들이 부활에 관해 이야기 하지 않았을 것이다.
5장. 공관복음서와 대략 기원후 30년에서 50년 사이의 문헌 이전 터널기에는 초기 기독론적 주장을 뒷받침하는 증거들이 나타난다. 공관복음서에는 강력한 의미의 신적 정체성뿐 아니라 선재성에 관한 기독론이 들어있다. 또한 로마서1:4과 사도행전2:36에 등장하는 터널기의 증거는 예수가 자신이 존재와는 다른 무엇가로 변화되었다는 증거를 보여주지 않는다. 오히려 이 증거는 예수가 성육신 이후 승귀된 상태에서 그의 신적 위격에 적합한 새로운 역할 속으로 들어갔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예수의 승귀 시에 일어난 변화는 교회와 세상의 대한 예수의 관계에 대한 변화이지 하나님 아버지에 대한 예수의 관계의 변화가 아니라고 보아야 한다.
6장, 7장. 어만의 유일신론 이해, 승귀와 성육신이라는 기독론의 패러다임 제시, 갈라디아서 4:14 같은 텍스트가 천사 기독론을 뒷받침한다는 주장 등에 대한 그의 해석적 판단은 인위적이고 억지스럽다. 또한 어만은 바울의 기독론이 천사 기독론 혹은 승귀 기독론이라고 주장하지만 바울의 그리스도는 이스라엘의 유일신의 초월적 고유성을 공유한다는 의미에서 완전한 신적 존재였다는 것을 보여준다. 어만은 바울의 기독론을 오독했고 학계의 방대한 연구결과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8장, 9장.. 신약성서가 기록된 이후 초대교회에 일어난 기독론 논쟁에 대한 어만의 주장은 의심스럽다. 어만의 기독론 발전의 연대기는 역사적 연구의 결론이 아니라 미리 역사적 연구의 결과물을 상정한 결과임이 드러난다.
2장 하나님 천사 인간에 관하여 - 마이클 버드
어만은 고대에는 원래 지상생물과 분리되어 천상에 존재하는 유일하고 지고한 주권자로서의 하나님 개념이 없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니까 배타적이고 절대적인 신격으로서의 하나님이란 착상은 예수가 죽고 300년이 지난 4세기 교회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어만은 그의 책 첫 두 장에서 인간이 된 신적 존재나 신적 존재가 된 인간을 묘사하는 그리스-로마와 유대문헌을 논하면서 초대 교회가 어떻게 예수를 신적 존재로 여기게 된 것에 대한 자신의 논증의 단초를 제시한다. 어만이 보기에 예수가 신이라는 것은 로마 황제가 사후 신격화된 것이니 에녹2서에서 에녹이 천사로 변한 것, 필로의 저술에서 모세가 신으로 선포된 것과 같은 의미였다. 다시 말하면 예수가 신이라는 것이 예수가 세상으로부터 무한 분리되고 모든 지상의 실체를 완전히 넘어선 절대적이고 고유한 신적 실체의 일부가 된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어만에 의하면 예수는 신적 영역과 인간의 영역을 넘나드는 차상위 존재라는 폭넓은 의미에서 신이었지 무한한 의미의 전능한 하나님은 아니었다.
어만은 기독교의 기독론을 설명하기 위해 고대문헌과의 병행성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다. 예수에 관한 기독교의 주장과 신적 존재에 관한 그리스-로마의 주장 간에 언어적, 개념적 유사성이 있다고 해서 그것이 기독교가 이교도의 문헌을 원용했다는 증거가 되는 건 아니다. 기독교 기원에 대해 올바르게 기술하려만 다른 문학과의 유사성과 차이점 모두에 동일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초대교회의 신앙은 역사적 진공상태에서 표현된 것이 아니기에 기독교의 선포와 예배에 담긴 예수에 대한 담론은 그 시대적 환경에서 널리 통용되던 유대와 로마와 헬라의 경구로 표현되었다. 기독교는 현실 세계의 삶으로서 다양한 철학과 종교와 상호작용했으므로 기독교의 하나님에 대한 주장과 동시대의 지적 사조 안에 대응점이 있는 것을 불가피한 일이었다. 다른 한편으로 예수에 대한 기독교위 주장을 자체의 맥락과 조건 안에서 이해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이를 다양한 유사성을 핑계로 대충 넘겨서는 안 된다. 당시에 십자가에 못 박히고 부활한 예수를 예배한다는 것은 유대인이건 헬라인이건 받아들이기 힘든 충격적은 스캔들이었음에 틀림없다. 신약성경의 저자들이 예수와 하나님에 관해 이야기하는데 그렇게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은 이유는 그들이 말하는 하나님이 유대인과 이교도들이 생각하는 하나님과 너무나 많이 달았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고유성(uniqueness)의 견지에서 보자면 예수에 관한 초기 기독교인의 믿음은 유대 유일신론의 개정판이라고 보아야 한다. 기독교의 예수 경배는 유대 유일신론으로부터의 일탈이나 유대 유일신론과 그리스-로마 종교 사상의 혼합주의 실험의 결과가 아니라 예수가 그의 제자들에게 미친 영향과 하나님과 메시아와 성령에 대한 새로운 믿음에 비추어 그리고 종교적 체험에 의해 추동된, 유대 유일신론의 재구성에 가깝다. 다시 말하면 초기 기독교인은 한 분 하나님에 대한 유대교의 믿음을 견지하면서 이 한 분 하나님을 하나님 아버지, 주 예수, 그리고 (종국에는) 성령으로 이해한 것이다. 그러므로 초기 기독교에서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에 초점을 맞춘 선명한 이위일체론적 표현이 등장한 것은 당연한 것이다. 이런 이유로 학자들은 기독교적 유일신론을 거론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주 예수 그리스도 속에서, 예수를 통하여, 심지어 예수로서 계시되었다고 이해한 것이다.
어만은 엄격하고 절대적인 유일신론은 로마제국의 기독교화의 결과로서 4세기에 일어난 후대의 산물이라고 생각하면서 당시에 유대인을 제외하고는 모드 다신론자였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기독교 이전의 이교도들에게도 유구한 유일신 전통이 있었다. 고대세계에서는 하나의 하나님에 여러 다른 이름을 부여함으로써 다중적 유일신론자가 되는게 가능했다. 더구나 유대 유일신론은 일반적으로 엄격하다는 사실이 확증되었다. 유대 유일신론은 다른 모든 것을 배제하고 한 분 참된 하나님만을 예배하는 유일신 숭배를 수반한다. 이런 유대교의 유일신론적 맥락을 감안할 때, 예수의 이름에 영예로운 지위를 부여하며 그리스도를 창조주와 동일시하며 예배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신학적 모험이며 사회적 파격이며 역사적 선례가 없는 일이었다. 어만은 예수의 신성을 개정된 유일신론으로 보기보다는 인간 형태를 취한 막강한 천사 또는 신으로 승귀된 인간 존재라는 현상으로 보려고 한다. 그러나 초기 유대교에서 천사 숭배는 일반적이 아니라 특별한 맥락에서 표출되었고 더구나 천사 숭배가 하나님 경배의 대체로 여겨지지 않았다. 그러나 예수는 하나님에게는 바쳐지지만 천사에게는 금지된 경배를 받았다. 요한계시록에서 예수에게 드려진 경배는 천사 경배가 아니라 하나님 경배였다. 계시록에는 예수 경배와 함께 한 분 하나님에 대한 배타적 경배라는 유대적 유일신론의 개념이 나란히 등장하고 있다. 어만이 신적 존재로 간주했던 중간적 존재들의 좋은 사례는 에녹1서에서 발견되는 인자일 것이다. 어만은 에녹1서에 등장하는 인자가 하나님 자신의 지위로 고양되었고 지상에서 하나님의 심판을 수행하는 신적 존재의 역할을 감당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예수가 신적 존재하는 것이 에녹1서의 인자가 신적 존재라는 것과 같은 의미인가? 그러나 하나님의 천상 어전회의에 참석하는 천사적 피조물들이 유대교에서 제의적 예배를 받기에 합당한 대상으로 취급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유대교 예배에서는 하나님의 고유성을 보존하려는 의식이 강했으며 특히 제의적 예배에서는 거의 강박적으로 배타성에 대한 집착을 고수했다. 따라서 제2의 신이나 천사로서가 아니라 한 분 하나님에 대한 신앙의 표현으로서 예수를 경배한 것은 가히 충격적이라 할 만큼 이례적이다. 보컴이 잘 설명했듯이 유대교에서 중간적 존재들(천사나 승귀된 족장들)은 반신적 존재들이 아니라 어느 모로 봐도 하나님의 위격과 하나님의 주권과 하나님 경배로부터 구별된 명백한 피조물들이었다. 유대교 사상은 중간적 존재들을 수용하였으며 그들에게 영예로운 칭호들을 주었지만 중간적 존재들을 숭배하는 것과 유일한 한 분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을 날카롭고 엄격하게 구분하였다. 보컴에 의하면 이런 구분의 근거는 중간적 존재는 하나님의 신적 정체성의 일부가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따라서 어만의 논증과는 상반되게, 유대 유일신론과 신약 기독론의 연속성은 중간적 존재가 아니라 기독론적 유일신론에서 비롯된다. 어만은 1세기에는 절대적 유일신론이 존재하지 않았으므로 예수가 신적 존재라는 것은 신격화된 왕이나 천사 같은 피조물이란 의미였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어만은 다양한 중간적 존재들과 그리스도가 신적 존재라는 기독교 개념 간의 유사성에 지나치게 몰두한 나머지 양자 간의 심각한 차이를 도외시하고 있다. 엄격한 유일신론은 초대교회의 발명품이 아니라 유대교로부터 상속받은 유산이었다. 그러나 오직 한 분인 하나님이 이제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그 안에서 그로서 알려진다는 기독론적 유일신론은 초대교회의 창조물이었다. 고대에는 이교도들 중에서도 유일신론자들이 존재했고 더구나 유대의 유일신론은 엄격했고 다양한 중간적 존재들로 인해 약화되지 않았다. 중간적 존재들은 하나님에 대한 배타적 경배나 하나님의 고유한 정체성을 공유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예수는 확실히 하나님과 그런 속성들을 공유했다. 실제로 초기 교회에서 유대 유일신론을 재구성하려는 움직임이 즉각적으로 일어났고 이를 통해 이스라엘의 한 분 하나님이 이제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로 알려지고 경험되기 시작한 것이다.
3장 예수는 자신이 하나님이라고 생각했는가? 마이클 버드
예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부활 이전 시기에 시작되었음을 환기할 필요가 있다. 예수의 생전에 예수의 추종자와 비판자들은 모두 예수가 누구인가라는 그리고 예수는 스스로를 누구라고 생각하는가에 관한 질문에 부딪혔다. 그리고 이 물음은 초기 교회부터 교부 시대에 이르기까지 꾸준히 계속되었다. 기독교인들은 초기교회 이후 400년의 대부분의 기간을 예수가 제자들에게 던진 질문, 즉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라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 부심했다. 이 질문에 대한 최종적인 답은 니케아 신조의 진술대로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온 하나님, 빛으로부터 온 빛, 창조되지 않고 나신 아버지와 일체된 존재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예수 자신은 그가 하나님임을 알았는가? 어만은 예수는 단지 자신이 악한 현세의 종말과 다가올 미래의 이스라엘 왕에 관한 예언을 하는 예언자라고 생각했을 뿐이라고 말한다. 비록 요한복음은 예수가 하나님과 동등하다고 말하지만 어만은 요한복음의 예수는 역사적이기 않다고 반박한다. 어만은 우리가 예수에 대해 알 수 있는 바는 그의 공적 사역과 선포이지 그의 신성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나는 예수가 고유한 권세와 이스라엘 하나님에 대한 고유한 관계를 가진 신적 대행자로서의 자기 정체를 밝혔다고 생각한다. 예수는 말씀을 전할 때 직접적인 의미에서 자신이 하나님을 대변하는 자로 말했으며 자신이 이스라엘을 새롭게 하고 회복시키는 사역에서 바로 하나님의 위격 자체를 자기 안에 구현한 존재라고 믿었다. 초대 교회는 분명 이렇게 주장했다. 주목할 점은 예수가 그의 제자들에게 자신을 계시한 내용은 그 이후 결과로 이어진 제자들의 예수 섬김과 그 발전 방식을 형성하는데 가장 중요한 단일 요소였다고 볼 수 있다.
어만은 신약 필사본이 워낙 변질되고 왜곡되어 현실적으로 최초 원본의 복원을 거론하기조차 어렵다는 주장을 하면서도 그는 이 오염되고 변질된 전승을 주된 원자료로 사용하여 역사적 예수의 공생애를 재구성해낸다. 만약 어만의 주장대로 이 신약 필사본들이 그렇다면 그의 예수 탐구는 방법적으로 불가능해진다. 또한 어만은 복음서가 예수가 말하고 행한 바에 대한 역사적으로 신뢰할 만한 기술이 아니므로 액면 그대로 수용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는 복음서의 주관심사는 예수에 관한 진실한 역사 전달이 아니라 예수 전파이므로 복음서를 읽으려면 허구와 사실을 가려가며 선별적으로 읽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복음서가 기본적인 윤관 면에서 신뢰성을 갖고 있지 않다면 예수에 대한 탐구는 무의미할 것이다. 우리는 예수의 초기 제자들이 예수에 관한 복음을 전파하기 시작할 때, 그들이 역사적 인물로서의 예수에 대한 관심과 기억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수용하지 않는다면 복음서를 통한 역사적 예수 연구를 포기해야 한다. 나는 복음서가 역사적 예수 연구에 일반적으로 신뢰할만하며 일관성을 가진 원자료라고 주장한다. 초대교회가 주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한 자와 동일 인물로 알았다는게 사실이라면 교회 신앙의 토대는 언제나 역사적 예수에 있다고 보아야 한다.부활 이전에 예수가 말하고 행한 바는 부활 이후에 교회가 예수에 관해 믿고 말한 바의 중요한 요체다. 물론 복음서가 믿음을 창출하기 위해 쓰인 신학적 성격이 다분한 문서라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복음서는 그리스-로마 세계의 독자들을 위해 예수에 대한 기억을 해석하고 적용한 것이다. 복음서 기자들의 의도는 하나의 스토리를 내러티브화 하여 이스라엘의 메시아이자 이 세상에 합당한 주, 즉 예수라고 불리는 자의 유의미성을 일깨우는 것이었다. 어만은 복음서에 실린 예수 스토리의 진정성을 정립하기 위해 어떤 전승이 예수에게로 소급되는지 가려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마 나는 그런 기준들이 예수에 대한 객관적 역사로 가는 길을 제시하지 못한다고 확신한다. 무엇보다도 진짜 전승과 그렇지 않은 전승을 가려내는 것은 매우 어렵다. 왜냐하면 예수의 역사는 초대교회의 예수 선언과 모든 지점에서 완벽하게 용접되어 있기 때문이다. 복음서에서 신학과 역사를 분리해 내는 것은 대단히 어려울 뿐 아니라 진정성을 구별하는 기준의 다수는 비판적 검토를 통해 복음서의 주어진 부분의 역사성 또는 비역사성을 정립하는데 부적합한 것으로 밝혀졌다.
어만은 예수는 자신을 선지자와 메시아로만 생각했지 인자는 하나님과 동등한 존재로 생각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예수는 어만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고양된 방식으로 자신에 관해 말했을 수 있다. 예수의 하나님나라 메시지 안에는 항상 암시적인 자기 지칭이 있었다. 하나님나라는 예수의 권능과 축귀와 치유와 말씀 선포를 통해 임했던 것이다. 이것은 예수는 단지 하나님나라 도래를 선포한 전달자가 아니라 그 나라가 임하는 그 때에 그 자리에 있는 선구자요 주인공이었다. 예수가 스스로를 하나님으로 알았다는 말은 이스라엘과 맺은 언약을 새롭게 하고 새로운 출애굽에 관한 약속을 성취하기 위해 마침내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자신 속에 있다는 것을 예수가 인식하고 있었다는 의미다. 마태19:28과 누가22:28-30의 어록은 예수가 이스라엘의 재건을 자신의 사역 목표로 삼고 있음을 보여준다. 당시의 이스라엘에게는 구약의 선지자에게로 거슬러 올라가는 소망이 있었는데 그것은 언젠가는 하나님이 열두 지파를 회복시켜 규합하고 이스라엘 유수의 원인이 된 죄를 사하시며 이스라엘의 대적을 물리치시고 새로운 다윗의 왕이 임하게 하시며 새 언약을 실행하시며 새 성전을 지으시리라는 소망이었다. 그때 열국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 시온으로 몰려올 것이다. 이 소망의 핵심은 이스라엘을 떠났던 야웨 자신이 시온으로 돌아오신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1세기에 유대에서 일어난 다양한 선지자 운동과 저항운동이 하나님 나라가 임할 때 수반된 하나님의 임하심을 앙망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1세기 유대인들에게 하나님나라는 국가나 장소가 아니라 말세에 하나님이 그의 백성 이스라엘을 다스리기 위해 권능으로 임하는 역동적 사건 자체였으며 이것이 뜻하는 바는 새로운 출애굽, 이스라엘의 죄 사함, 언약의 갱신, 새 성전, 악에 대한 하나님의 승리를 동반하는 신적 방문이었다. 왕으로 임하시는 하나님에 관한 소망의 불을 밝히게 했던 구절은 바로 이사야 40-55장이었다. 야웨의 왕 되심에 대한 이사야의 선언은 야웨가 시온으로 돌아오며 이스라엘의 원수를 심판하는 새로운 출애굽을 통해 유배가 종식되며 야웨는 그의 백성과 함께 거하게 될 것을 의미했다. 이런 모티브는 이사야서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다른 예언서에도 풍성하게 발견된다. 에스겔34:22-24에는 야웨가 그의 백성의 목자가 되기 위해 오실 것이지만 그 다음은 실제 목자노릇을 할 이는 “내 종 다윗”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다윗과 같은 왕적 인물이 야웨가 유배된 백성들에게 되기로 약속한 것과 같은 존재, 즉 목자가 될 것이란 의미다. 유대인의 회복을 소망하는 이 내러티브는 예수 자신의 말과 행동의 배경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의 대본이 되었다. 예수는 하나님나라의 도래를 선포하면서 하나님이 왕으로 오심을 말하고 있었다. 예수가 열두 제자를 선택한 것은 그의 제자들과 함께 마침내 이스라엘의 회복이 시작되었음을 상징적으로보여준 것이었다. 예수가 행했던 다양한 치유와 축귀 사역은 구원의 날이 가까웠으며 하나님이 마침내 왕이 되실 것임을 보여주는 가시적 표적이었다. 예수는 자신을 다가오는 왕국의 왕인 메시아로 생각할 뿐 아니라 자신의 사역과 그의 위격 안에서 야웨가 마침내 시온으로 돌아오신다고 믿었다. 복음서에서 예수는 시온으로 귀환하시는 야웨에 대한 절정의 소망을 실현하고 상징하고 구체화하려는 의도로 예루살렘에 귀환했다. 이스라엘이 오랫동안 기다려온 왕의 귀환은 나사렛 예수 안에 잇는 하나님이 찾아오신 날에 백성에게 임하였다. 신적 기독론(a divine Christology)은 부활 하나만으로 창출된 것이 아니다. 부활 신앙은 예수를 부활 이전의 존재와 다른 무엇으로 변화시키지 않았다. 예수는 자신의 부활 이전에 자신의 권능, 사명, 기원에 관해 놀랄만한 주장을 했으며, 부활은 이런 주장이 합당하다는 신적 확증이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신적 위상에 대한 예수의 자기주장은 부활로 말미암아 창출된 것이 아니라 확대되고 확인된 것이다. 다시 말하면 예수와 하나님과의 고유한 관계에 대한 믿음은 부활로 말미암아 시작된 것이 아니라 강화된 것이다.
어만은 예수에 관한 원재료로 요한복음을 저평가한다. 그 이유는 요한복음이 전하는 예수는 공관복음에 병행본문이 없으며 진정성 기준에 부합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한복음과 공관복음 사이에는 많은 유사성이 있을 뿐만 아니라 요한복음은 그 자체로 독창적이며 하나의 범주를 형성한다. 요한복음은 그 자체로 독특한 관점, 차별화된 시각, 뚜렷한 일련의 목표를 가지고 있다. 요한복음은 나름의 역사적 전승을 가지고 있고, 그 전승을 고유한 신학적 렌즈를 통해 훌륭하고 진실하게 해석하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예수에 관한 참된 원재료라는 사실은 변함없다. 예수가 하나님과 동등하며 예수와 아버지는 하나라는 요한의 주장은 사실 공관복음서에서 이미 전제된 내용을 명료하게 언어화한 것일 뿐이다. 또한 요한의 사상은 헬라 철학을 밑거름으로 삼은 게 아니라 이 세상 속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유대인의 개념에 견실하게 뿌리내리고 있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요한의 성육신 신학은 헬레니즘과의 조우에서 부상한 것이 아니라 유대 사상에서 흘러나온 것이다. 사실 이후의 수 세기동안 헬레니즘과 기독교의 조우를 통해 드러난 바는 헬레니즘의 상상력은 성육신을 가현설로 몰아갔다는 사실이다. 요한의 신학이 어떤 면에서 독특한 것은 사살이지만 공관복음과 분명히 양랍 가능하며 상응한 전승들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므로 요한의 고기독론은 헬레니즘의 영향으로 나온 것이 아니라 나름의 유대적 스토리에 기반을 둔 요한의 증거로 확증된 예수 생애에 대한 참된 해석에서 나온 것이다.
5장 초기 기독교인의 예수관- 사이먼.j. 게더콜
어만은 마태와 누가 두 복음서는 어느 것도 선재하는 예수를 담고 있지 않다고 본다. 다시 말하면 두 복음서는 모두 예수는 지상에서 존재하던 출발점부터 신적 존재로 그리고 있다고 본다. 어만이 심혈을 기울여 강조하는 바는 마태와 누가복음에 개념 정의된 예수는 신조에 나타난 예수와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복음서의 예수의 “나는 왔노라” 어록에는 예수가 필생의 과업을 완수하기 위해 어딘가로 부터 왔다는 인식이 분명히 나타난다. 어만은 마태나 누가복음에는 예수의 선재성이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고 주장하지만 그러나 그 복음서를 유대적 배경에 비추어 면밀히 독해한다면 그리스도가 잉태 전부터 존재했으며 지상 사역에 착수하고자 이 땅에 오기 전부터 존재했다는 내용에 전적으로 부합함을 알게 될 것이다. 어만은 마가복음의 예수도 선재적으로 보지 않았다. 어만은 마가복음에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로 인식된 것은 마태나 누가복음보다 이후 시점은 세례 때로 본다. 어만은 마가복음에서 예수는 세례 시에 비로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마가복음에는 변화산에서 세례 시와 동일한 선포가 재현되는데 그렇다면 하나님이 이 시점에서 예수를 아들로 재입양한 것이란 말인가? 어만은 공관복음이 예수를 신적 존재로 묘사한다고 말하지만 그가 의미하는 신적 존재한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정체성을 공유한다는 의미의 신은 아니다. 어만에 의하면 예수는 신적 위계 상 일정한 자리를 차지하지만 분명 정상에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공관복음에 나타난 예수의 언행은 단지 구약의 하나님의 언행과 중첩되는 수준을 넘어선다. 예수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에게만 고유한 특권에 해당되는 언행을 했다. 예수가 이런 언행을 했을 때 돌아오는 반응은 한편으로는 놀라움이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신성모독이란 비난이었다. 가장 경이로운 예수의 언설은 공관복음에 모두 나오는 죄 사함의 권세에 대한 것이다. 죄 사함은 오직 한 분인 참 하나님의 고유한 전권에 해당한다. 죄를 사하는 권능은 천사나 선자지나 심지어 신이 아닌 메시아나 다른 어떤 존재에게도 없는 것이다. 어만은 당시 로마 세계에서 통용된 신적 개념은 상당히 유연한 개념이었고 소수이지만 일부 유대 텍스트에도 일정 정도의 유연성이 있었음을 강조한다. 그러나 공관복음을 통해 엿볼 수 있는 예수 당대의 유대사회의 분위기는 하나님과 피조물의 구분이 엄격했다는 사실이다. 신약의 저자들에게 창조주와 피조물 간에는 분명한 구분이 있으며 예수는 그 너무 창조주 편에 있었다. 바울이 저술에서도 창조주와 피조물 간에는 절대적으로 굽힘이 없는 경계가 존재한다. 바울 저술의 중요성은 바울이 터널기가 시작될 바로 그 무렵에 활발하게 활동하던 바리새인이라는 사실에 있다. 창조주와 피조물을 엄격하게 구분하는 바울의 그런 사상은 예수와 부활 이후 가장 초기의 제자들이 활동하던 당대의 사회적 분위기를 반영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는 우리가 예수의 신적 정체성의 실체를 규명하는데 매우 중요한 함의를 지닌다. 즉 공관복음에서 예수가 구약에서는 하나님만이 가질 수 있는 전권에 해당하는 언행을 하는 이유는 그가 이스라엘 하나님의 정체성을 공유하기 때문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결론적으로 공관 복음의 예수가 후대의 신조에서 고백하는 선재적, 신적 예수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어만의 주장은 잘못이다. 예수의 선재성은 어만이 생각하는 것 보다 더 깊이 복음서에 뿌리내리고 있다. 더 중요한 점은 복음서가 예수에게 부여하는 신적 정체성은 단지 낮은 수준의 신적 정체성이 아니라는 점이다.
6장 기독론에 대한 어만의 해석 범주의 문제점 - 크리스 틸링
어만은 초기 기독론의 본질과 발전을 이해하는데 형편없는 해석 렌즈 또는 범주를 제시했다. 어만의 전체 프로젝트를 여는 열쇠는 그의 승귀 기독론과 성육신 기독론의 구분이다. 어만은 가장 초기의 기독론은 그리스도를 단순히 인간으로 이해했으며 그는 나중에 그의 세례 혹은 부활 시점에 일종의 신적 존재인 하나님의 아들로 승귀되었고 시간이 흐르면서 기독교인은 점차 예수를 인간의 육신을 덧입기 위해 하늘에서 온 신적 존재로 이해하게 되었다고 말하는데 이것이 그가 말하는 승귀 기독론이다. 이어서 어만은 성육신 기독론은 교회 초기에 아마도 기원후 50년 이전에 비롯되었다고 추축하면서 바울 서신에는 이 두 유형의 기독론 간의 이행이 일어나는 것이 발견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어만은 가장 초기의 기독론인 승귀 기독론은 훗날 부적합 것으로, 그리고 결국에는 이단적인 것으로 간주되었다고 말한다. 어만에 의하면 신약성서 안에는 예수 자신의 소박한 기독론에서 출발하여 승귀 기독론을 거쳐 성육신 기독론으로 귀결되는 발전과정이 있으며, 이 기독론들이 후대의 정통 기독교 신조와 흡사한 예수 인식으로 대체된 것은 한참 후의 일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어만의 이런 구분은 신약 본문 자체의 데이터를 설명하지 못한다. 복음서뿐 아니라 바울서신에는 승귀 기독론과 성육신 기독론이 병행하여 공존한다. 따라서 어만이 두 가지 기독론을 연대기적으로 배열한 것은 인위적이다. 어만은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예수의 개인적 존재와 시간의 관계에 의거해, 즉 기독론이 예수의 선재성을 제시하는가 여부에 따라서 기독론의 순서를 배치하려고 한다. 그러나 문제는 신약 기독론 언어의 압도적 다수가 선재성에 방점이 찍혀 있지 않다는 사실에 있다. 신약 증인들의 주관심사는 선재성이 아니다. 신약의 언어는 더 근본적인 무언가에, 명시적으로는 그리스도가 이스라엘의 한 분 하나님의 초월적 고유성을 공유하는 방식에 달려있고 그리스도가 이 초월적 고유성을 공유하는 정도만큼 또한 선재한다는 논리가 파생된다.
비울이 예수를 인간이 된 천사로 보았다는 어만의 주장은 바울의 기독론을 오독한 것이다. 어만이 이 주장을 위해 갈라디아서 4:124의 독해를 바울의 전체 기독론에 대한 해석적 열쇠로 사용한다. 그러나 바울 기독론에 대한 이런 해석적 접근은 바울의 텍스트가 의도한 결과가 아님이 자명하다. 그러므로 어만이 제기한 두 유형의 기독론 간의 구분만 이상한 것이 아니라 바울의 기독론을 이해하는 그의 해석적 열쇠도 이상하다. 그리고 이로 인해 해석 범주의 수준에서 어만의 프로젝트에는 두 가지 의미심장한 문제가 가중되는데, 그것이 바로 그의 신이라는 단어 사용과 유대 유일신론에 대한 이해다. 신약 기독론, 특히 예수와 하나님 관계를 탐구하는 프로젝트라면 한 분 하나님에 대한 유대 신앙의 본질을 제대로 파악하는데서 출발하는 것이 당연하다. 물론 어만은 유대 유일신론을 논의선상에 올려놓았지만, 그의 프로젝트의 핵심은 가장 초기 기독론의 본질을 성육신이 아니라 단순한 사람의 승귀로 규정하고 후대에 지리한 발전과정을 거쳐 정통 기독교의 기독론으로 형성되었다는 주장이었다. 어만은 신이라는 용어를 주후1세기 유대 유일신론의 본질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주장하기 위해 수사학적으로 배치된 만능 용어로 사용한다. 어만은 신이라는 명제 아래, 대부분의 신약 기독론 언어와 하나님, 천사, 귀신, 그리고 온갖 형태의 영적 존재를 배치하고는 이것을 포괄적 유일신론의 증거하고 주장한다. 어만은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신적 인간 분석을 통해 고대인인 신적 영역과 인간 영역 사이에 예리하고 확고한 구분을 두기 않았다고 논증한다. 그러나 어만이 제2성전기 유대교와 관련하여 신이라는 단어를 이런 식으로 유연한 방식으로 사용할 때 나아가 유대교의 신을 그 범주 안에 포함시킬 때 몇 가지 중요한 문제가 발생한다. 어만은 유대인들도 신성을 지닌 존재들이 인간이 될 수 있고 인간이 신적 존재가 될 수도 있다고 믿었다고 말한다. 문제는 어만이 사용하는 신이라는 물이 너무 폭넓은 범주라는데 있다. 어만은 어떻게 예수의 제자들은 예수를 그 용어의 의미가 무엇이든 신적 존재라고 이해하게 되었는가? 이것이 모든 기독론적 물음의 핵심이라고 제시한다. 그러나 이 질문이 유의미한 것이 되려면 어떤 의미로 신적 존재로 이해했는가라고 물어야 한다. 그러므로 기독론적 물음의 핵심은 기독교인들은 어떤 의미에서 예수가 하나님이라고 생각했는가라고 수정되어야 한다. 어만이 신 혹은 신적 존재라는 단어를 통해 드러내려는 기독론적 함의는 무엇인가? 어만은 하나님과 천사와 귀신과 예수 모드를 나름의 의미에서 신적 존재로 여겼고 그런 맥락에서 예수의 승귀를 논하려고 했다. 그러니까 어만에게 예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는 의미에서 신이 아니라 그저 신일 따름이다. 그러므로 어만은 이 신이라는 단어를 배치함으로써 자신의 논증에 결정적인 해석적 공백을 만들어냈다.
어만은 문제 많은 이른바 포괄적 유일신론이라는 구조물을 긍정하고 있다. 포괄적 유일신론을 주장한 최근의 학자는 윌리엄 홀베리인데 그는 이렇게 말한다. “ 유대교를 엄정한 유일신론으로, 다른 신적 존재의 존재를 부정한다는 의미에서 배타적 유일신론으로 해석하면 헤롯 시대의 신비주의적, 메시아주의적 경향의 중요성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한다. 이런 경향은 종종 지고의 신격이 다른 여러 영들과 권세들의 연계 속에서 그들 위에 있다는 포괄적 유일신론과 불가분의 관계이기 때문이다.“ 어만도 이와 비슷하게, 예수와 그의 제자들이 살던 시대에 대다수 유대인이 거의 확실하게 유일신론자였던 것은 사실이지만 유대인은 오직 한 분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다른 신적 존재들도 있다고 보았으며 신적 영역과 인간 영역 간에 불연속성과 함께 연속성도 있다고 보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초기 기독론 분야의 가장 독창적이고 뛰어난 학자인 리처드 보컴은 홀베리의 배타적 유일신론 개념은 시대에 뒤쳐진 것이라고 비판한다. 보컴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 엄격한 또는 배타적 유일신론이 하나님 이외의 모든 초자연적 또는 천상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이라면 이런 유일신론은 근대 이전에는 존재한 적이 없었음이 분명하다. 유대교와 기독교, 이슬람교 전통 속의 전통적 유일신론은 엄청난 수의 초자연적 존재가 있다는 것을 항상 받아들였다. 그러나 이런 존재는 하나님에 의해 창조되어 하나님에게 종속된 피조물로 간주되었고, 지상 피조물의 존재가 유일신론을 제한하는 조건이 아닌 것처럼 이들도 유일신론을 제한하지 않았다.“ 어만이 한 일이라고는 문제있는 포괄적 유일신론의 개념에 신, 하나님 등의 용어를 쓰는 부정밀한 언어유희의 옷을 덧입혔을 뿐이다. 하나님과 그 외 모든 것 간의 존재론적 분리는 어만이 주장하듯이 후대 교회의 발명품이 아니다. 보컴은 이점을 다음과 같이 바르게 고찰한다. ”유대 유일신론을 유일신론답게 만드는 요소는 여러 다른 신들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야웨의 고유성을 이해하는 것이다. 이것은 야웨를 다른 천상의 존재 또는 초자연적 존재와는 완전히 다른 부류에 놓는 것이다. 나는 이것을 야웨의 초월적 고유성이라고 칭하고자 한다.“ 신이라는 모호한 개념에 의해 추동된 어만의 유일신론 이해는 그가 하나님과 신약의 예수의 관계에 관해 말하고자 하는 모든 것의 해석적 근간을 이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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