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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

아나뱁티즘의 신학

아나뱁티즘 신학과 교회

2016-12-24 16:28:18


아나뱁티즘 신학과 교회

 

1. 재세례파 명칭

·Anabaptist: ana(다시)+baptism(세례), 재세례 신자, ‘다시 세례받은 사람들’(rebaptizers).

·아나뱁티스트 유아세례를 반대하고 본인의 신앙고백을 근거로 성인세례를 받은 신자들에게 붙여진 이름. ‘재세례 신앙 정신을 가진 크리스천을 지칭한 표현이다.

 

2. 역사적 기원과 분류

· 종교개혁 운동에서 파생된 프로테스탄트(개신교)의 한 유형이다.

· 주류 종교개혁 / 군주후원적 종교개혁(magisterial Reformation)과 다른 비주류, 소종파형 종교개혁의: 루터, 칼빈의 종교개혁은 군주들의 후원과 협력에 힘입어 진행된 종교개혁으로 이 역시 가톨릭교회의 콘스탄틴주의적 국가교회, 제국종교의 틀안에서 재구성된 교회개혁운동이라는 점에서 재세례파에게 거부된 흐름이다.

·3의 종교개혁: 급진 종교개혁, 종교개혁 좌파

 

2). 아나뱁티스트의 분류

· 후터라이트(Hutterites)

후터파로도 불리우는 후터라이트는 재세례파의 한 분파로, 오스트리아의 재세례파 신자인 야콥 후터(Jacob Hutter)가 창시했기 때문에 후터파라고 부른다. 후터는 1529년 후터라이트라고 불리는 개신교 공동체를 결성했고, 박해를 피해 모라비아로 피신하여, 교육, 의료, 금속산업, 공예품 생산에 종사하였다. 그러나 30년 전쟁으로 추방령이 내려졌고, 루마니아, 우크라이나로 이주했다. 우크라이나 재세례파인 메노나이트의 도움을 받아 공동체의 신앙전통을 재개하였다. 1874년에는 미국으로 이민하였지만, 1차 세계대전당시 양심적 병역거부를 실천하면서 미국정부와 대립했다. 더구나 1차대전 당시 독일은 적성국가였기 때문에 독일어를 사용하는 후터라이트 신자들은 언어사용에서도 제한받았다. 결국 이들은 캐나다로 이주하여 공동체 생활을 재개했으며, 지금도 사도행전 2:44-45에 근거한 기독교공동체 생활을 유지하고 있다. 신앙생활은 평일예배와 주일예배로 하느님을 경배하면서 실천하고 있다.

 

형제회: 로날드 사이더

메노나이트(Mennonite): 요더

아미쉬(Amish)

 

3. 아나뱁티즘의 주요 인물

1525 1 21 - 콘라드 그레벨, 조지 블라우락, 펠릭스 만츠, 마이클 잣틀러, 한스 뎅크, 발타자르 후브마이어, 메노 시몬스

 

4. 아나뱁티스트 운동의 핵심 이슈 및 가치

- 신앙고백 Christian Confession

- 반성직주의 Anti-clericalism

- 반성례주의 Anti-sacramentalism

- 성서의 권위 Authority of Scripture: 교황, 신학자의 권위에 의존하지 않고 모든 신자들의 성경해석과 설교를 실행한다.

- 칭의: 믿음을 통한 은혜의 구원(Salvation by Grace through Faith)을 넘어 성화의 강조.

- 제자도 Discipleship - 믿음과 실천(믿음과 행위가 아닌 믿음과 삶으로 이해)

- 항복 Gelassenheit - 혁명적 순종

- 죄와 자유의지 Sin and Free will

- 국가와 교회 State and church: 제한적 순종

- 교회론 Ecclesiology

- 세례 Baptism

- 주의 만찬(Lord's Supper): 기념설 입장. 성례 자체의 신비화나 예전화를 반대.

- 상호책임, 징계, 훈계: 18.

- 상호 부조(Mutual Aid)

- 고난과 피의 세례(Suffering and Martyrdom): 순교는 제3의 세례

 

5. 아나뱁티즘의 신앙고백, 핵심가치

1). 개신교 신앙고백의 공유

거룩하시고 은혜로우신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으며, 회개와 믿음을 통한 구원의 은혜를 믿으며, 예수의 신성과 인성, 성경의 권위와 영감, 성령의 능력,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교회를 믿는다.

 

2). 아나뱁티즘의 독특한 신앙고백

Herold S. Bender, 재세례신앙의 비전, 한국아나뱁티스트 출판사(KAP), 2009(The Anabaptist Vision, Scottdale: Herold Press, 1944).

1. 기독교는 제자도이다(Christianity is Discipleship): 이것은 매일의 삶에서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것을 말한다.

2. 교회는 형제됨(Brotherhood) 혹은 가족(Family)이다: 교회 멤버는 그리스도께 자신을 헌신해야 할 뿐 아니라, 개인적으로 기꺼이 서로에게 헌신해야 한다.

3.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은 무저항과 사랑의 윤리(ethic of love and nonresistance)를 실천해야 한다. 변화의 주체로서 그들은 전쟁과 분쟁, 폭력을 거부하는 사랑의 윤리를 실천하고 화해를 추구한다.

 

아나뱁티스트의 3가지 가치: 믿음(Believing), 소속감(Belonging), 행동(Behaving)

1. 예수는 우리 신앙의 중심이시다(Jesus is the Center of our Faith).

2. 공동체는 우리 삶의 중심이다(Community is the Center of our Lives).

3. 화해는 우리 사역의 중심이다(Reconciliation is the Center of our Work).

 

1. 예수는 우리 신앙의 중심이시다: 예수에 대한 태도

그들은 예수를 일상생활의 모범으로 따르고자 한다. 반콘스탄틴, 반어거스틴

콘스탄틴 기독교는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 모범, 부활을 통한 변화된 삶을 강조하는 대신, 신조를 강조하고 외적으로 드러나는 외부적인 신앙 표현을 강조하였다.

초대교회의 신앙과 달리 점차 교부시대로 이전하면서 기독교 신앙의 중심은 예수는 우리 신앙의 중심이다라고 고백하면서, 그리스도의 삶과 사역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그리스도의 죽음에 신앙고백의 중심을 두었다고 비판한다.

특별히 어거스틴주의 기독교로 인해 원죄론과 예정설이 강조되어 유아들은 죄인으로 태어나고, 인간들은 선을 행할 수 없으며, 천국과 지옥은 이미 결정된 것이라는 신앙고백이 주조를 이루었다. 교회의 성례전과 예전을 중시하였으며, 교회는 주교, 사제들, 교황의 가르침에 이끌려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와 가르침,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 <삶의 모범이신 예수>를 따르기보다 교리와 신조를 지적으로 승인하고 고백하는 기독교로, 그리고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한 속죄론을 강조하여 기독교를 구원의 종교, 즉 죄사함의 교리로 남게 되었다고 비판한다.

 

·예수님은 매일의 삶속에서 자신을 따라오도록 요구하신다.

- “매일의 삶속에서 예수를 따르지 않으면서 참된 그리스도를 알 수 있는 사람은 없다”(Hans Denck, 16C 아나뱁티스트). 그리스도는 삶속에서 뒤따름의 주님이다.

-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죽으셨을 뿐만 아니라(속죄의 주님만이 아니라) 우리와 함께 삶의 모범으로(생활의 모범이신 주님) 살아계심을 강조한다. 구원을 죄용서에 머물러 있음을 비판하고, 구원 이후 아무런 변화된 삶을 살지 않음을 비판한다.

- 그들은 성령의 능력으로 구원이 한 사람의 도덕, 사회 및 경제생활에도 분명한 변화를 가져와야 한다고 주장한다. ? 예수는 우리 신앙의 중심이므로..

 

·예수님은 우리의 구세주(Savior)이자 주님(Lord)이시다.

예수를 구세주로는 받아 들이지만, 매일의 주님으로는 받아들이지 않는다.

국가에 대한 아나뱁티스트의 태도: 그리스도인들의 궁극적인 충성의 주님은 그리스도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세상의 악을 다스리고 선을 행하도록 세속정부를 위임하였으므로, 우리도 모범적인 시민으로 제자도가 허용하는 한도안에서 정부에 복종한다(제한적 복종). 정부에 충성이란 무조건적인 충성이 아니다. 우리는 사람의 권위가 아닌 하나님께만 복종해야 한다. 우리가 복종해야 할 최고의 권위와 충성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다.

아나뱁티즘 교회론의 특징

 

1. 신자들의 교회

- 교회는 예수를 믿는 자들, 곧 신자들의 공동체이다. “진정한 마음으로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원하고 또 복음을 행함과 말로 고배하는 이들의 교회(루터).

- 회중주의(congregation) 교회론: 교황제 교회, 감독교회, 장로교회와 대비되는 교회론.

- 사제가 중심에 서 있고, 사제에 의해 이끌려지는 전례중심의 교회가 아니라 장로교회처럼 대의체제같은 당회중심의 교회가 아니라, 신자들의 모임에 기초한 교회

그들은 기도하고, 성서를 읽고, 침례를 베풀고, 성찬을 받고, 또 그리스도인에게 속한 여러 다른 사역을 하기 위하여 그들 이름으로 서명하고, 그들만이 한 건물에 따로 모여야 한다. 이러한 규칙에 의하면, 그리스도인 삶을 살지 않는 이들은 마태복음 18:15-17에서 그리스도께서 명령하신 것을 따라서 공개되고, 훈계를 받고, 질책을 당하고, 겨나가거나 출교되어야 한다. 또한 이 모임에서는 고린도후서 9장에 나오는대로 성 바울이 가르친 예를 따라 구제헌금을 요청할 수도 다. 이 모임에서는 너무 많이 힘들여 찬양할 필요도 없게 된다. 또 침례식과 성찬식을 집행하기 위하여 간략하고 순서에 따라 예배할 수 있고, 모든 예배는 말씀과 기도와 사랑에 중점을 두게 된다”(진정한 그리스도인만의 예배에 대한 루터의 글, 신자들의 교회, 20).

 

교회관의 변질: ·콘스탄틴과 어거스틴 이래 성경공부, 나눔과 기도를 위한 가족으로서 교회 대신, 콘스탄틴은 건물과 조직으로서의 대교회(바실리카 교회)를 만들었고, 어거스틴은 그리스도의 몸에 속한 사람들과 그 몸에 속하지 않는 사람들이 함께 섞여 있는 교회(알고과 가라지의 교회)를 만들어냈다. 이제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교회가 아니라 그것을 포도주와 빵에 재현된 미사를 강조하게 되었고, 성례전적 신앙이 발달하여 원죄를 씻기 위한 세례예식과 죄를 용서받기 위한 반복적인 미사가 필요했다.

· 세상을 거스르는 대안문화로서 교회 대신에, 세상과 교회간의 구분이 사라지게 되었고, 신자들의 공동체를 섬기는 목회자 대신에, 정부를 대변하는 변호인이 되거나 정부의 행사를 인도하는 성직자가 필요하게 되었다. 일상생활에서 그리스도를 따르기를 원하는 사람들과 공동체를 이루며 살기 원하는 사람들은 수도사나 수녀가 되어야 했다. 소그룹 공동체의 공동생활은 수도원이나 수녀원안에서만 가능하게 되었다. 일상생활에서 그리스도를 따르며 살아가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 되었다.

· 가톨릭교회이든, 칼빈, 루터교회이든, 결국은 조직을 위해서는 콘스탄틴적 방식으로, 신학을 위해서는 어거스틴적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이것은 교회의정책이 국가교회의 모습으로, 교회의 구조가 대성당의 모습으로, 교회의 예식이 유아세례로, 교회의 훈련이 정부를 위한 권력 및 무력사용의 도구로 되돌아가게 되었다.

 

2. 전적으로 구별된 교회, 새로운 방식의 삶의 방식

· 크리스천이 된다는 것은 예수를 믿는 것(believing) 교회에 속하는 것(belonging) 새로운 방식으로 행동하는 것(behaving)을 말한다.

· 콘스탄틴은 기독교를 인정하고 세례와 성찬에는 참여하지만, 그 자신이 생활속의 신념과 관계와 행동은 변하지 않았다. 폭력, 무력사용, 전쟁옹호

· 아나뱁티스트는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는 것은 변화된 사람을 사는 것을 말한다. 예수를 받아들이는 것은 우리의 생각, 우리의 친구관계, 우리의 삶의 방법에 변화를 일으킨다.

· 회심은 변화된 삶으로 인도한다. 그들은 삶의 모든 영역에서 평화를 위해 일해야 한다.

· 전적으로 새로워진 공동체는 세상과 다른 경제적 삶의 방식을 가시적으로 드러내 준다: 희년을 살아가는 삶의 방식, 재화공동체. 모든 것을 공유하는 삶의 양식.

 

 

재세례파 교회론

 위와 같은 재세례파의 공동체적 성서읽기를 살펴 볼 때, 장로교의 교회구조는 가톨릭의 국가교회적 구조를 완전히 탈피하지 못했다. 가톨릭의 교회구조가 주교와 사제중심의 성직주의 교회론의 정점이라면, 장로교의 교회구조는 사제주의 교회구조에서 목사와 장로가 중심이 되는 당회원 중심의 교회구조를 지니고 있다. 여기서 장로는 평신도를 대변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준성직자계급적 특징을 띠는 경우가 허다하다.

칼빈과 루터를 비롯한 종교개혁 전통의 프로테스탄트 교회론은 <말씀의 선포>가 교회됨의 주된 본질로 규정되어 있어(물론 말씀의 선포와 성례의 집행으로 요약되지만) 궁극적으로 말씀의 선포, 즉 설교권을 보유하고 있는 목사가 교회의 정점에 서 있고, 교회의 표지에서 가장 두드러진 요소는 목사라는 직책과 목사 개인의 캐랙터로 수렴되어 있다는 점이다.

장로교 헌법에 따르면 강도권(講道權)은 오직 안수받은 목사에게 있다. 칼빈도 목사의 가르침(강도권)은 일반 평신도와 구별되게 성서를 해석하는 자격을 지닌다고 말한다. 그런 점에서 프로테스탄트 교회론은 가톨릭 교회론의 핵심인 오직 사제만에 의해 집례되는 전례의 수행, 다시 말해 성례전전 교회론에 있다면, 개신교 교회론은 <말씀의 교회론>,  <설교직의 교회론>에 있다고 할 때, 아나뱁티스트 교회론의 핵심에는 <평신도 교회론>의 본질을 구현하고 있고, 그것은 말 그대로 종교개혁의 근본원리인 전신자사제주의(全信者司祭主義)와 교회의 민주적 구조를 구현하고 있는 형태가 아닌가? 더 나아가 가톨릭이 <성례전적 교회>, 다시 말해 <전례중심의 교회>, <사제주의 교회>라면, 개신교는 <말씀 선포의 교회>를 강조함으로 목사직의 주된 기능이 <설교직>에 있고, 교회됨의 본질이 <설교를 듣는 교회>에 위치설정하게 되었다. 개신교 교회론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서말씀을 <듣는 신자들의 교회>, <설교 청취의 교회>가 됨으로써 신자의 삶과 행위에서 성서적 가르침을 실천하는 <수행적修行的 교회>, <수덕적修德的 교회>가 되지 못했다(가톨릭 교회는 말씀을 듣는 교회, 설교직의 교회가 아니라, 성례전적 교회이고, 믿음과 함께 사랑을 강조하고, 신앙과 함께 행위를 공로로서, 선행으로 강조함으로 이런 요소가 보존되어 있다).

그에 비해 재세례파 교회는 예수를 믿음의 대상이나 신앙고백의 대상으로 이해하지 않고, 예수의 제자들의 삶속에서 재현되어야 할 모범의 대상이요, 그리스도 뒤따름(Following Christ), 즉 추종의 대상이 됨으로써 교회란 예수의 가르침과 삶의 방식을 철저하게 따르는 <제자직의 교회>, <순종하는 교회>를 구현하고자 한다.

(가톨릭은 미사(전례)와 성례전에서 예수가 재현, 혹은 현존되고, 개신교 주류 교회에서는 말씀 선포속에서 그리스도가 현재화한다면, 재세례파 교회에서 그리스도는 신자의 삶속에서, 무엇보다 공동체안에서 가시적으로 재현된다)

 

첫째로, 아나뱁티즘에는 탁월한 교회론을 보유하고 있다.

아나뱁티즘에는 소위 '관료후원적 종교개혁'(magisterial reformation)으로 불리우는 주류 종교개혁이 온전하게 극복하지 못한 <가톨릭적 성직주의 교회론>을 뛰어 넘는 진정한 <평신도주의 교회론>을 간직하고 있다. 왜냐하면 재세례파교회는 만인사제직의 종교개혁의 원리를 구현하기 위해 목사의 설교권의 독점을 넘어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을 현실교회에서 문자적으로 적용하는 것은 고려할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다.

 

둘째로, 아나뱁티즘은 '콘스탄틴적 기독교',  '기독교의 콘스탄틴주의'를 넘어서려고 한다.

그들은 콘스탄틴 황제에 의한 기독교의 종교공인을 기독교의 절호의 기회가 아니라, 예수의 제자직의 교회됨을 포기하고 기독교가 <제국의 종교>, <황실종교>, 그리고 <국가교회>로 변신하게 만든, 기독교의 절대절명의 위기로 간주한다. 여기서부터 교회의 신학은 국가신학이 되었고, 교회는 산상수훈적 비폭력과 평화주의 교회가 아니라 폭력을 정당화하고 전쟁신학을 후원하는 신학이 되었다. 그들은 교회와 국가의 협력과 유착을 참된 예수의 길을 포기하는 타협으로 간주하고 그 둘사이의 결탁을 끊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세째로, 아나뱁티즘에는 일종의 <사회적, 정치적 교회론>이 보존되어 있다.

아나뱁티즘 전통에서 생성된 메노나이트 신학자 요더(J.H. Yoder)와 그와 맥을 같이 하는 로핑크(G. Lohfink)에 따르면, '교회는 종교기관도, 그렇다고 국가기관'도 아니라, <교회 그 자체가 일종의 정치적 사회다>라는 관점을 피력한다. 그리하여 교회란 세상의 어떤 사회질서와 구별된 <대조사회>, <대항사회>라는 탁월한 '사회적 교회론'(social ecclesiology)을 보여주고 있다(사실 가톨릭의 성직자 교회론이나 장로교의 당회중심의 집단지도체제 교회론은 진정한 사회적 교회론을 구현할 수 없다).

그들의 교회론은 교회가 세상속으로 침투하는 원심적 형태의 사회참여적 교회론이나 세계변혁적 교회론이 아니라, 오히려 <교회의 교회됨>을 구심적으로 구현하는데 집중한다.

 

네째, 아나뱁티즘에는 <철저 제자도Radical Discipleship> 유산이 간직되어 있다.

라인홀드 니이버의 기독교현실주의는 성경의 가르침을 적절하게 조율하려는 일종의 절충윤리이다. 그러나 요더의 '성서적 현실주의' '기독교현실주의'의 한계를 넘어서 성경의 급진적 가르침을 현실사회의 공적 삶에서 온전하게 순종하는 것을 견지하고자 한다.

그들은 예수님을 믿음의 대상이나 고백의 대상으로 보지 않고 삶의 모범으로 따르고자 하는 예수 추종(Following Jesus)의 정신, 예수의 제자도의 윤리가 간직되어 있다. 디트리히 본회퍼의 <나를 따르라 Nachfolge)에는 다름 아닌 재세례파의 급진 제자도 윤리가 생생하게 복사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본회퍼는 독일 루터교 출신으로 국가교회의 신학자였지만, 3제국 시기의 투쟁기를 거치면서 산상수훈을 철저 제자도의 맥락에서 풀어가는 것을 보면서 경탄을 금할 수 없다.

아마도 한국개신교는 복음의 언어적 선포나 윤리적 행동주의를 넘어서 복음을 삶의 존재방식으로 가시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근본적인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Anabaptism의 성경관: 철저한 제자도를 추구하는 해석 공동체

 

- 성서주의(biblicism): 재세례파는 성서는 성서 스스로(자체가) 해석한다라는 원칙에 기초하여, 성서는 성서안에서, 성서에 의해, 성서만으로 충분하다. 성서의 의미는 명확하기 때문에 교회의 전통에 의존하거나 교회의 권위있는 해석이나 교도권을 필요로 하지 않다. 성서는 성서로 충분하다. 따라서 재세례파는 성서를 교리와 전통으로부터 자유롭게 하여 성서의 학문적 접근을 무시하고 문맥에 벗어난 해석도 있었지만, 그리스도인 누구나 성서를 이해할 수 있다는 확신을 제공했다.

재세례파는 성서의 사람들로 불리워졌으며, 성서를 개인과 가족, 특히 교회공동체안에서 읽고, 암송하고 성서본문을 교인들 스스로 토론하고, 삶에 적용하려 했다. 그들은 성서에서 교리나 학문적 체계를 정립하기보다 성서에 대한 단순한 사랑과 열정에 의해 관주적 방식으로 성서를 연구하였다.

- 그리스도중심적 성서: 성경은 그리스도중심으로 해석해야 한다.

- 두 언약의 성서관: 그리스도중심적 성경주의로 인해 재세례파는 구약보다 신약에 중점을 두며, 구약을 신약을 위한 이차적 말씀으로 간주한다. “예수의 가르침이 이전의 가르침보다 우위에 있다“(1:1-3).

·성경과 예수의 관계: “예수는 성경 말씀위에 계신 주님이다. 물론 성경이 예수님에 대한 궁극적인 정보의 원천이지만, 그럼에도 예수님은 하나님에 대한 가장 충분한 계시이며, 일상생활의 최종적인 권위이다”. 그래서 아나뱁티스트 크리스천들은 근본적인 인도하심과 윤리적 근거를 구약의 율법에서 찾지 않고 예수에게서 찾는다.

그리하여 구약은 율법적이며, 계시의 미완성이며, 제의적(의식적) 특징을 지니고 있으며, 신약이 복음에 기초하여 비폭력적 산상수훈적 가르침을 담고 있는 것에 비해 구약은 폭력과 전쟁을 용인하는 경향을 띠고 있다고 본다. 따라서 구약은 신약처럼 직접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성경이 아니라고 본다. 재세례파는 구약과 신약을 그림자와 빛’, ‘그림자와 실제모양’, ‘형태와 진실’, ‘시작과 준비’, ‘목적과 성취 등으로 이원화하여 구약과 신약의 통일성과 연속성보다 불연속성을 강조한다. 따라서 그들은 예수의 영안에서 성경을 해석하라고 말한다.

 

성서에서 발견되는 구원자 그리스도는 단지 교리나 고백의 대상이 아니라 그리스도인들이 추종해야 할 삶의 모범이라는 점을 중시한다. 재세례파가 중시하는 예수는 그리스도와 주님으로 고백되는 교리적 대상으로서 예수가 아니라 윤리적 실천의 전범(paradigm)인 역사적 예수이다. 그들은 역사적 예수에 근거한 예수적 윤리(Jesuic Ethics)를 발견했다.

 

- 성령에 의한 말씀: 재세례파들은 성서주의자들이지만, 성서에 대한 지성적이며, 교리적 관심보다 영적 조명 내적 광명 등의 성령체험을 중시한다. 그들에게 문자주의(literalism) 신령주의(spiritualism)라는 두 측면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반교권주의 혹은 반성직자주의에서 출발하여 한편으로는 교리와 전통에 의한 권위있는 해석이 아니라 성령에 대한 경험이 성경을 해석할 수 있다고 생각하여 신학자나 전통이나 국가교회의 공식적인 대표자들의 가르침보다 성경을 직접적으로 문자 그대로 이해하는 문자주의라는 방식과 성령의 내적 임재와 성령의 경험을 중시하는 신령주의라는 특징을 지닌다.

그들은 믿음으로 의롭게 됨을 법정적 칭의개념보다 성령의 내적인 역사에 의해 영적인 삶의 변화를 가져오는 거듭남 회심을 더 선호했다(“내면의 그리스도가 마음에서 태어날 때, 진정한 신앙은 실제적으로 태어나는 것이다”).

그들은 성경을 가감없이 액면 그대로 문자적으로 받아들여 순종하였고, 예언(예언자적 말투나 예언자적 진행), , 환상에 의존하여 과감하게 행동하기도 하고, 노래와 춤을 추거나 기쁨에 이끌려 사형장으로 끌려가기도 하여 열광주의라는 칭호를 듣기도 했다.

- 공동체가 함께 하는 성서해석: 재세례파는 성서해석의 개인주의를 탈피하여 모든 성도가 함께 성경을 읽고 함께 해석하는 권리를 지닌다. 그들은 해석의 공동체를 특징을 띤다. 그들은 성서보다 교회의 권위를 우위에 두는 가톨릭도 반대했지만, 성서의 설교, 즉 성서해석과 적용의 권리가 설교자에게 독점되는 주류 종교개혁의 관점도 거부했다. 그들은 성서해석에서 신학적 전문성과 학문성에 의존하는 것을 거절했다. 설교자의 성서해석의 독점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성서의 해석의 권리를 빼앗아 갔으며, 무엇보다 가톨릭교회의 사제들의 독재가 프로테스탄트에서 설교자들의 독재로 대체되었다고 주장했다.

 

사람들속에 있는 모든 판단과 모든 것이 국가교회의 설교자와 그의 가르침에 묶여 있으며, 그 가르침이 좋은 것이든 잘못된 것이든 관계없이 비판했다. 아무도 말할 수 없고, 다만 설교자만 말한다. 그래서 회중들은 영혼의 문제에 대한 모든 판단의 권리를 박탈당하고 오직 설교자들과 하나님의 말씀과 반대되는 그들의 이해에 종속된다”(스위스 형제단의 소책자).

 

그들은 한 명의 설교자가 모든 것을 점령하고 있는 국가교회에 대해 비판했다.

어떤 사람이 교회에 와서, 끊임없이 한 사람이 말하는 것을 듣기만 하고, 모든 청중들은 침묵하고 어떤 말이나 어떤 예언도 하지 않는다면, 누가 영적인 공동체로 간주할 수 있다고 고백할 것인가”.

 

형제, 자매들이 함께 모였을 때, 그들은 함께 읽을 무엇인가를 집어든다. 하나님께서 가장 좋은 이해력을 주신 사람이 그것을 설명하고 다른 사람은 조용히 듣는다.”(초기 아나뱁티스트 공동체의 질서, 스위스의 질서 1527).

그들이 함께 모였을 때, 하나님의 말씀을 서로에게 가르쳤고, 한 명은 다른 사람에게 이렇게 질문한다: 당신은 어떻게 이것을 이해할 수 있는가?”.

이런 교회의 질서에서 우리는 대표 말고도 모든 성도가 차례 차례 일어나서 성서를 읽거나 공동체적인 글을 읽고 대화하고 예언하는 것을 이 예배에서 볼 수 있다”.

이들의 성서에 대한 회중의 해석원리는 지도자가 모임을 지배하기보다 인도하는 것이라는 것과 혼자만의 참여가 아닌 공동체에 속한 멤버 전체가 (성서해석에) 참여하도록 돕는 임무를 그들에게 주었다는 것이다. 츠빙글리(Zwingli)의 공헌: 성서의 말씀을 설명하는 것은 한 명 또는 두 명의 기능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사람들의 기능이다.

- 순종의 해석학

a) 올바른 성서해석은 순종에서 나온다: 재세례파는 성서 해석에 그치지 않고 적용에 강조점을 두었고, 성서에 대한 해석의 필수조건은 순종임을 강조했다. 삶속에서 예수를 따르지 않고는 어느 누구도 그리스도를 알 수 없다.” 그들은 주님에 대한 순종으로서 제자도의 삶은 성서 해석을 위한 필수조건이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가르침이나 교육이 아니라 순종이 성서에 대한 바른 이해에 도달한다고 말한다. 성서에서 배운 것을 순종하려는 자세없이, 성령의 도우심을 기대할 수 없고, 결과적으로 성서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b) 가난한 사람들의 해석학적 특권: 성서 해석자들은 세속적인 힘과 기득권의 영향에서 자유로워야 한다. “설교자들은 보통 사람들을 잘못 인도하는 죄인이다. 그들은 가르침을 통해 좋은 열매도 맺지 않으며, 돈을 받는 유급 성직자들이기 때문에 진리를 설교할 수 없는 자들이다”. “먹고 살려고 자신들의 설교를 파는 자들 이윤을 좇고 쾌락을 추구하고, 야망이 있고 위선적인 돈을 위해 설교하는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즐거움과 배를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시킨다.

c) 십자가 고난의 해석학: 성서를 해석할 수 있는 자는 고난을 받아들이고, 십자가를 짊어지고 예수를 따르는 제자도의 댓가를 감수할 수 있는 자라야 한다. “오직 순종과 포기를 통해서만 사람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경험할 수 있다. 오직 그렇게 함으로 사람은 성서에 대한 이해를 얻게 될 수 있다”. 모든 신자들은 고난과 십자가를 지라고 부르셨으나, 국가교회의 편안한 신학자들은 기득권을 가졌고, 박해받기보다 박해를 가하는 사람들이다. 고난은 참된 교회의 표지(nota ecclesiae)이며, 이 고난이 신자로 하여금 그리스도와 교제에 들어가게 하며, 그것이 성서를 이해하는 열쇠가 된다.

d) 그리스도와 세상, 하나님나라와 세상의 이중구조아래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왕국으로 부르심을 위해 체포되고 처벌받는 위험을 감수하면서 예수 따름의 순종과 철저 제자도의 삶을 살아간다.

 

평가

-재세례파 신학과 그들의 성경해석은 희년의 선교, 예수 뒤따름의 철저 제자도(radical discipleship), 십자가로 체현되는 형성윤리, 세상구조에 대한 불순응과 그리스도의 주되심에 대한 순교적 복종을 특징으로 한다.

-재세례파에게는 성경말씀을 문자 그대로 단순하게 순종하려는 문자주의적 성경정신(이것은 서구 기독교가 엄밀한 학문성을 이유로 성경을 교리화, 이론화, 사변화하여 신자의 실천적 삶과 유리된 경향과 다른 방향이다)과 성령과의 내밀한 친교를 중시하는 생활신앙적 영신적 신앙, 그리고 성경을 공동체안에서 공유함으로써 종교개혁의 만인사제직의 정신을 철저히 구현하려는 평등 제자직 공동체 정신이 녹아있다.

-루터-칼빈적 주류기독교 신학은 로마교회와의 대결신학에만 머물렀을 뿐, 현실국가와의 체제순응적인 콘스탄틴적 국가교회의 한계를 넘지 못했다. 재세례파는 크리스텐돔(christendom)이라는 기성체제를 거절하고 불순응하는 전적으로 새로운 공동체 구현을 추구하였다.

-그러나 재세례파의 대안교회적 비전은 그들이 소홀히 했던 구약의 사회-경제윤리와 결합하고,(U. Duchrow의 성서적 대안경제, W. Brueggmann의 대항공동체), 칼 바르트의 신학, 본회퍼의 제자직의 윤리와 타자를 위한 교회론, 몰트만의 십자가신학, 로핑크의 대조사회론, 짐 월리스의 참여적 대안주의 등 다양한 대안적 신학그룹과 제휴함으로써 풍부한 결과를 가져 올 수 있다.

 

 

종합정리

1. 아나뱁티즘은 소종파형 혹은 분파주의 교회(sectarian church)일 뿐인가?

 

2. 악한 권력에 저항하는 대항권력은 대형교회의 힘을 바탕으로 가능하지 않을까?

 

3. 세상 문화에 대한 반문화적 경향과 국가의 존재의미의 박탈, 일반계시와 일반은총의 사고의 결핍, 그리스도의 통치를 구속의 영역에 국한하는 것 등은 보편성과 일반성에 대한 사고의 결핍을 초래하지 않는가? 그리고 보편적 교회론은 될 수 없지 않는가?

 

재세례파 신학과 교회 관련 참고문헌

 D. 로스, 믿음: 메노나이트의 신앙과 실천, 김복기 역, 대장간, 2016

김동춘, “아나뱁티스트적 대안주의 기독교”, in, 전환기의 한국교회, 대장간, 193-222.

파머 베커, 아나뱁티스트 크리스천(What is an Anabaptist Christian?), 김복기, 김경중 역, 한국아나뱁티스트 출판사(Korean Anabaptist Press), 2009.

헤럴드 벤더, 재세례 신앙의 비전, 한국아나뱁티스트 출판사, 2009

메노나이트신앙고백편찬위원회, 메노나이트 신앙고백, 김경중 역, KAP

아놀드 스나이더, 재세례신앙의 씨앗으로부터, 김복기 역, KAP

Stuart Murray, 이것이 아나뱁티스트다, 대장간, 2011.

Stuart Murray, 아나뱁티스트 성서해석학, 대장간,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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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더, 교회, 그 몸의 정치, 김복기 역, 대장간, 2011

존 하워드 요더, 급진 제자도(RADICAL CHRISTIAN DISCIPLESHIP), 2015

그리스도와 권력,

국가에 대한 기독교의 증언(The Christian Witness to the State), 대장간, 2013

요더, 제자도, 그리스도인의 정치적 책임, 김기현 역, KAP

 

Thomas N. Finger, Christian Theology: An Eschatological Approach, Vol.1,2, Scottale, Herald Press, 1985, 1989.

Marlin E. Miller(autor), Richard A. Kaufmann, Gayle Gerber Koontz(ed.), Theology for the Church, Institute of Mennonite Studies, Indiana, 1997.

 

엘렌 & 엘레노르 크라이더, 평화교회는 가능한가?, KAP

John Driver, Understanding the Atonement for the Mission of the Church, Herald Press, Scottale, 1986.

13인의 기독교 지성, 아나뱁티즘을 말하다, 문선주 역, 대장간, 2015.

홍지훈, 마르틴 루터와 아나뱁티즘, 한국구약학회, 2000.

로이스 바렛, 하나님의 전쟁, 대장간, 2012.

스티븐 모트, 복음과 새로운 사회, 이문장 역, 대장간, 2008

스탠리 하우어워스, 윌리엄 윌리몬, 하나님의 나그네 된 백성(Resident Aliens: Life in the Christian Colony), 복있는 사람들, 2008

 

아나뱁티즘의 교회론

2016-12-24 16:30:32


 1. 키워드로 보는 아나뱁티스트

급진적(철저한) 제자도 예수 그리스도 산상수훈 / 신약성경
공동체 평화 삶으로 실천
비폭력 대조사회 분리주의자?

 

2. 최초의 아나뱁티스트들은 누구인가?[1]

1525, 개신교의 종교개혁이 시작된 지 8년이 지나기 전에, 스위스 취리히에 있던 소수의 그리스도인들이 비밀리에 모여서 함께 기도하며 대화를 나누었다(콘라드그레벨Conrad Grebel, 조지 블라우락George Blaurock, 펠릭스만츠Felix Manz). 이들은 취리히의 가장 큰 성당의 사역자이자 도시와 교회의 개혁을 동시에 시도했던 울리히쯔빙글리를 한때 열렬히 따르던 자들이었다. 이들은 쯔빙글리와 함께 성경을 연구했으며, 그의 설교를 경청하였다. 또한 그의 개혁에 대한 신념들을 공유하였고 그의 개혁 시도들을 지지하였다. 하지만, 이들은 점점 쯔빙글리가 자신이 가르치고 설교하는 바들을 실천하기를 꺼려하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인식했다. 특히 신자의 침례와 같이 여려 성경적 가르침들이 분명한 것에 대해서도 미온적 태도를 보이자 깊이 갈등했다.

쯔빙글리는 전 도시에 걸친 개혁을 꿈꾸었기에 도시 의회의 지지자가 필요했다. 그는 성경에 입각한 개혁을 주장했으나, 어떤 방식으로 그리고 언제 그러한 개혁을 단행할 지에 대해서는 시 의회가 결정해야 한다고 믿었다. 게다가 쯔빙글리는 도시의 권력자들을 강압적으로 그리고 너무 성급히 움직이도록 강요하길 거부했다. 그의 추종자들 중 일부는 그처럼 느린 속도로 개혁을 진행하는 것을 반대했으며, 또한 개혁을 위한 시 의회의 승인이 필요한지 의문을 제기했다. 2년이 넘는 시간 동안, 이들은 더 신속하며 더 급진적인 개혁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시 의회는 대중 토론을 통해 이러한 급진적인 주장을 공론화 했으며, 결국에는 쯔빙글리에 의해 제안된 점진적 개혁 프로그램에 당연한 듯이 손을 들어 주었다.

하지만, 급진주의자들은 이런 결정에 순복하지 않았으며, 시 의회를 따르는 것과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 사이에서 선택해야 할 때가 이르렀음을 확신했다. 1 21일에 있었던 회동은 여러 달 동안의 성경 연구와 토론의 정점이었으며, 침례의 이슈가 부각되었던 때였다. 그 모임에 참석한 어떤 이들은 이미 그들의 갓난아기들에게 세례 주기를 거부함으로써 처벌받을 각오를 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 급진적을 개혁을 시행하기로 작정하였다. 그들은 성경이 가르치고 있는 침례를 베풀어야 함을 주장하였고, 자신들이 받은 유아세례를 비성경적이며 무익한 것으로 여겼다. 그래서 그곳에 모인 남녀들은 예수의 제자가 되기로 기꺼이 결정하고, 제자도의 대가를 귀중히 여기는 신자로서 침례를 받기 원했다. 이러한 급진적인 행동은 커다란 희생을 수반했다. 자신들이 받은 유아세례의 효력을 도외시하자, 도시 권력자들은 이들이 하는 행동을 재침례’(re-baptism)을 베푸는 것으로 여겼으며 이는 사형에 처해져야 할 죄목이었다.

왜 재침례를 베푸는 것이 그토록 중한 형벌을 수반했을까? 그 이유는 그러한 행동이 크리스텐덤 체제의 핵심에 타격을 주고, 태어나면서부터 모든 시민들이 속하게 되는 영역교회(territorial church) 체제를 뒤흔들면서 사회 분열을 조장하기 때문이었다. 이것은 이교도적이었으며 또한 사회의 반역 행위였다. 아나뱁티스트들은 자신들의 행동이 두 번째 침례를 받는 재침례’(re-baptism)가 아니라, 처음으로 진정한 침례를 받는 것이라고 주장하였으며, 이 때문에 처벌을 피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그 당시에 기존의 세례에 대한 인식에 반기를 드는 것은 감히 쉽게 취할 수 있는 행동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1 21일에 모인 이들은 마음을 감찰하면서 뜨거운 기도의 시간을 가진 후에, 조지 블라우록은 그들 가운데 일어서서 콘라드그레벨에게 자신의 믿음과 마음을 살펴보고서 진정한 그리스도인에게 주는 침례를 베풀어주기를 요청했다. 그리고 그가 간절한 마음으로 무릎을 꿇자, 그레벨은 그에게 침례를 주었다. 후터라이트형제파의 연대기는 종교개혁 시대에 있었던 신자의 침례에 대한 가장 첫 번째 일화를 담고 있으며, 바로 이것이 후에 아나뱁티스트재침례rebaptising/anabaptist 운동의 시작이 되었다. 스위스 형제회(Swiss Brethren)

 

아나뱁티스트 무리들 가운데서 첫 번째 침례식이 있은지 2년이 채 지나기 전인 1527 1월에 펠릭스만쯔가 처형되었는데, 이는 도시의 권위자들이 더 이상 급진적인 운동을 좌시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아나뱁티스트들이 어디를 가든지 박해가 뒤따랐다. 하지만, 이 운동은 이미 도시 너머의 지역으로까지 퍼져나갔으며, 시골 지역에서도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그 이유는 취리히에서 모이던 사람들이 다른 지역에서도 복음 전도를 하기로 결정했고, 또 도시에서 추방당한 아나뱁티스트들이 가까운 시골 마을로 옮겨갔기 때문이다. 몇 개월이 지나서 이 운동은 스위스의 곳곳으로 뻗어나갔고, 할라우 지역에서 아나뱁티스트들은 농민 운동가들을 지지하며 아나뱁티스트 운동이 농민봉기와 교차하였다. 이 두 운동 사이에는 공통된 관심이 있었고 서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1525년 말기에 농민 봉기가 봉쇄되면서, 권력자들은 추가적인 농민 봉기의 도발을 원천봉쇄하고 아나뱁티즘의 기세도 완전히 꺾기로 작정했다. 더 이상 아나뱁티스트들의 도시를 만들어 가는 일이 불가능한 것처럼 보였고, 엄청난 핍박 속 대부분의 아나뱁티스트들은사느나 죽느냐의 현실 앞에서, 세상과 분리되어 비밀리에 활동하는 공동체를 만들어서 그 안에서 자신들의 비전을 추구하는 것이 유일하게 남겨진 방법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1527 2, 흩어진 아나뱁티스트 공동체의 대표자들은 스위스와 독일의 국경지역에 있는 슐라이트하임에서 회합을 가지고, 그 결과 스위스 형제회의 독특한 신념들을 피력한 7개의 조항들로 이루어진 슐라이트하임 신앙고백서를 발표하였다. 그 당시의 상황을 감안할 때, 이 조항들이 단호한 분리주의적 색채를 띠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들은 철두철미하게 평화주의자들이었다.

아나뱁티스트로 살아가는 것도 위험한 일이었지만, 아나뱁티스트 지도자로 살아가는 일은 더욱 위험했다. 아나뱁티스트 진영에서 오래 활동하는 지도자는 거의 없었다. 그레벨과만쯔는처형당했고, 후브마이어는 고문당하다가 불태워졌다. 그 어디에도 안전한 곳은 없었다. 가톨릭과 개신교 지도자들 모두 같이 앞장서서, 아나뱁티스트들을 구금하고 고문하고 처형시켰다. 가톨릭 쪽에서는 주로 태형을 실시했고, 개신교도 쪽에서는 수장하거나 목을 베었다.

 

몇몇 스위스 아나뱁티스트들은 지하로 숨거나 먼 시골지역이나 깊은 산 속으로 피신하여 살아남았으며, 아주 소수의 그룹들이 지금까지 존속하여 스위스 메노나이트로알려져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아나뱁티스트들은 결국 더 안전한 곳을 찾아 도피하였다. 많은 이들은 동쪽 모라비아로 도망하였으며(후터라이트), 또다른 이들은 독일과 네덜란드 지역에 정착하여 그곳에서 자신의 믿음을 전하였다. 이들 지역들은 단지 일시적인 피난처였고, 결국 미국 펜실베니아와 그 외 북미 다른 지역으로 이주하고 나서야 스위스 형제단은 자유로이 자신들의 신앙을 펼칠 수 있게 되었다. 이들 중 대부분은 메노나이트들로 알려져 있으며, 17세기 말에 보수적인 이들은 창시자 야콥 암만JakobAmmann의 이름을 따서 아미쉬(Amish)파를 형성했다.

 

이 운동은 유럽의 전 인구 중 아주 일부분의 사람들에 의해 일어났고, 그들마저 유럽 전역으로 흩어져야 했다. 그리고 수세기동안아나뱁티스트가 된다는 것은 신학적인 오류나 사회적 일탈죄가 있는 것처럼 폄하 및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가장 최근까지도 역사학자들은 아나뱁티스트를 반대했던자들의 주장을 지지했었다. 역사학자 중에서 아나뱁티스트들이 무엇을 주장하고 어떤 기록을 남겼는지, 또 그들이 실제로 어떻게 살았는지에 대해 연구한 사람은 거의 없다. 따라서 최근까지 교회사를 공부하는 학생들도 종교개혁의 주류 이야기가 담긴 교과서의 각주 속에서만 아나뱁티스트의 이름을 볼 수 있었다.

아나뱁티스트들에 관한 진지한 연구는 지난 반세기에 와서야 이루어졌다. 역사학자들은 아나뱁티즘을 현시대를 위한 중요한 메시지를 담고 있는 하나의 급진적 갱신운동으로 진지하게 다루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메노나이트 역사학자들이 자신이 가진 역사의 가치를 재발견하고, 책자와 논문을 번역하였고, 아나뱁티스트의 재판 기록을 수집하며 역사 속 아나뱁티스트의 신실한 제자도 가르침을 현대의 메노나이트에게 적용하기 시작했다.[2]

 

3. 오늘날의 아나뱁티스트들[3]

오늘날의 아나뱁티스트들은다음 4개의 공동체로 나눠볼 수 있다.

 

1) 초기아나뱁티스트들의 후예- 후터라이트, 메노나이트, 아미쉬

2) 이 후에 시작된 아나뱁티즘에서 영감 받은 이들- 다양한형제파 그룹들[4], 브루더호프 운동[5] 

3) 메노나이트와 선교사들의 활동으로 말미암은 전 세계 아나뱁티스트 교회들

4) 새로운 아나뱁티스트들- 다른 기독교 전통에 뿌리를 두지만 자신들의 삶과 신앙 형성 과정에 아나뱁티즘의 영향을 받았음을 인정하는 사람/그룹들[6]

 

이들 각 공동체들은 아나뱁티스트 전통을 각기 나름대로 해석한다. 어떤 그룹은 이 전통에 대한 확고한 확신을 가지고 있으며, 다른 이들은 이 전통의 현대적 적용을 놓고 계속 고민하고 있다.

 

4. 16세기 아나뱁티스트의 공유된 믿음[7]

16세기 말까지 활동했던 아나뱁티스트 사이에 널리 공유되었던 확신들은 다음과 같다.

 

1) 그리스도인들은, 어떠한 결과가 기다리든지 예수의 모범을 따르고 그의 가르침에 순종한다.

2) 성경은 신학뿐만 아니라, 윤리와 교회의 문제들에 대해서도 권위를 가진다.

3) 교회와 국가는 모두 신성하게 제정된 기관들이지만, 이 둘은 지속적으로 분리되어야 한다.

4) 교회는 침례받은 제자들의 공동체이며, 이들은 공동체 안에서 서로에 대한 책임을 다해야 한다.

5) 출교를 포함한 교회의 징계(치리)는 교회의 순수성과 특색을 유지하는데 필수적이다.

6) 예수를 따르는 자들은 자신들이 가진 소유물을 자유롭게 서로 나누어야 한다.

7) 비폭력과 진실을 말하는 것은 제자도의 본질적 면모이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싸우거나 맹세를 하지 말아야 한다.

8) 핍박/고통을 당하는 것은 신실한 제자들에게 통상적인 것이며 진정한 교회의 표식이다.

 

하지만, 위의 모든 신념들이 모든 첫 세대 아나뱁티스트들의 지지를 받았던 것은 아니다. 많은 초기 아나뱁티스트들은 위의 사항들 외에도, 교회 안에서의 성령의 역사, 개별적인 성경 해석보다는 공동체 안에서의 성경 해석의 필요성, 복음 전도의 긴급성, 그리고 그리스도의 재림의 임박성을 강조하였다. 어떤 그룹들은 상호부조보다는 재산의 공유를 실천하였고, 다른 그룹들은 세족식을 예배와 공동체 생활에 중요한 한 요소로 실천하였다. 이 전통이 발전해 가면서, 어떤 요소들은 버려지고, 어떤 요소들은 재해석되고, 그리고 본질적인 것으로 여겨졌던 것들이 다시 강조되기도 했다.

 

 

5. 오늘날 아나뱁티스트 사이에서공유되고 있는아나뱁티즘의 본질[8]

다음의 일곱가지 신념은 영국과 아일랜드에 있는 현시대 아나뱁티스트(Anabaptist Network)가 아나뱁티스트 전통으로부터 배운 것을 현시대적 상황에 적용해 보고자 하는 시도에서 나왔다. 이 신념은 현대의 많은 신흥 아나뱁티스트들이 전통과 일체감을 느끼는 부분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예수 따름

1)예수님은 우리 삶의 모범이요, 선생이요, 친구이자, 구원자이며, 주님이시다. 그는 우리 생명의 근원이며, 우리의 믿음과 삶의 방식과 참다운 교회 모습과 사회 참여에 대한 기준을 제시하시는 분이다. 우리는 예수님을 예배의 대상으로 믿을 뿐 아니라, 그분을 따르기로 작정한다.

 

아나뱁티스트가 예수 중심성을 강조하는 것은, 자신들만이 예수 중심적으로 산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최초의 아나뱁티스트들이 모범으로 삼은 교회의 모델은 초대교회였다. 이들은 예수의 삶과 가르침에 대해 집중적으로 가르쳤으며 세상에 순응하지 않고 세상을 거스르는 제자도가 무엇인지 가르치고 행했다. 하지만 4세기에 나타난 크리스텐덤 시대의 도래가 예수를 기독교 안에서 소외시키기 시작했다. 기독교가 황실 종교가 되면서 교회가 사회의 주변부에서 중심부의 대지주, 국가의 협력자, 도덕적, 사회적 가치의 감독자 역할을 하게 되었다. 아나뱁티스트들은 그것이 기독교 믿음을 심각하게 변질시킨다고 확신했다. 지금의 우리가 보기에도, 사회 외곽에서 중심부로 들어오는 기회를 얻은 대가로, 교회가 예수를 신앙의 중심에서 변두리로 몰아버리는 오류를 범했다.

이런 상황에서 제국 교회가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었겠는가? 교회가 그의 창시자인 예수를 제거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들은 예수의 삶과 가르침을 재해석하고, 일부는 제거하여, 자신과 다른이의 입맛에 맞게 변화 시켰다. 그 예로 산상수훈을 해석하는 방식을 들 수 있다. 크리스텐덤 시대에 교회는 산상수훈을 성직자나 수도사에게 주어진 명령이며 일반 그리스도인들은 실천할 수 없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다른 이들은 산상수훈이 앞으로 다가올 미래의 하나님 나라의 삶을 표현한 것이라고 가르쳤다. 다른 해설은, 이 가르침이 우리가 말씀에 전적으로 순종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 앞으로 더 가까이 가도록 이끌어 주는 역할을 한다고 주장했다.

위와 같은 교묘한 해석은, 예수의 가르침이 높임을 받을 수도 있고 또한 동시에 무시될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예수를 멀리 동떨어진 존재로 제국적인 이미지를 지닌 존재로, 그리고 그의 인성 보다도 신성에 더 무게를 두는 방식으로 예수의 이미지를 변질시킬 수 있다. 이처럼 제국 교회는 예수의 가르침과 삶의 방식은 따르지 않으면서도, 그를 높이고 경배했다. 즉 예수의 체면을 손상시키지 않는 범위 내에서, 예수를 효과적으로 소외시켰던 것이다.

16세기 아나뱁티스트들은, 예수 중심적 방식이 제자도의 모든 면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믿었다. 예수만으로는 그리스도인이 직면한 세상을 대처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크리스텐덤 전통을 향하여, 아나뱁티스트들은 도전장을 내밀었다. 이들은 16세기 당시 팽배했던 중세시대의 경건주의, 즉 예수를 영적인 존재로 부각하며 개인적인 신앙의 대상으로만 여겼던 기조를 비판했다. 또한 이들은 예수님을 삶으로 따르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했던 당시 종교개혁자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 아나뱁티스트들에게는 예수 중심으로 살아가는 것이 궁극적인 충성의 표현이었지만, 다른 개혁자들은 정치적 권위자의 눈을 의식하여 예수의 가르침을 사회와 경제적 쟁점에 적용하기를 주저했다. 이런 전통을 따르는 아나뱁티스트 작가와 많은 이들은 예수의 가르침을 사람이 원하는 방식으로 변화시키기를 거부했다. 그들은 오히려 예수의 가르침이 어떻게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문제에 적용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일례로 존 하워드요더가 쓴 『예수의 정치학』은, 그리스도인들이 복음서를 새롭게 이해할 수 있도록 깊은 영향을 끼쳤다.[9]

 

예수 중심적 성경 해석

2)예수님은 하나님의 중심적 계시이다. 우리는 성경을 읽고 해석할 때에 예수 중심적인 접근법Jesus-centered approach을 사용할 것이다. 우리에게 있어서 믿음의 공동체는, 성경을 읽고 함께 분별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며, 제자도에 대한 가르침을 적용하여 실천하는 현장이다.

 

16세기 당시 종교개혁자들도 일반 사람들에게 가르치기를, 교황과 교회 공의회의 의견에 의존하지 말고, 스스로 성경을 해석하고 읽도록 격려했다. 하지만 이 종교개혁자들 모두가 자신이 주장하던 대로 행하지 않았다. 당시 아나뱁티스트들이 어떻게 성경을 읽고 해석 했는지에 대해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 신학적 훈련이나 공식적인 인가를 받지 않았지만, 성령의 음성에 주의를 기울일 줄 아는 평범한 그리스도인도 성경을 책임있게 해석할 수 있다.

- 신학교나 설교가의 연구를 통해서가 아니라, 회중 가운데서 성경이 해석되고 검증되어야 한다. 즉 성경을 이해하는 것은 공동체적 행위에 속한다.

- 성경의 의미를 바르게 해석하는 것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그 성경의 가르침을 실제적으로 제자도에 어떻게 적용하느냐 하는 부분이다.

-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가르침과 죽음과 부활의 조명 아래에서 해석되어야 한다. 예수가 성경의 핵심이며, 구약과 신약의 성경이 오직 예수를 지목하기 때문이다.

 

초기 아나뱁티스트들은 성경해석자들이 자신이 해석해 놓은 본문 말씀을 스스로 실천하지 못한다면 다른 이에게 아무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다고 확신했다. 뿐만 아니라 성경이 말씀하는 바가 무엇인지 확신한 것을 실천함으로써만, 성경 해석이 바르게 되었는지 아닌지를 분별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반드시 믿는 이들의 공동체, 회중 안에서 이것을 실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동체에 의해 평가 및 검증되도록 솔직하게 공개되지 않은 개인주의적 해석은 합리적이지 않으며 위험한 것으로 간주되었다.

오늘날의 새로운 아나뱁티스트는 초기 아나뱁티스트의 성경 해석에 대한 접근 방법이 가진 단점이 무엇인지 점차 인식하고 있다. 학자들을 신뢰하지 않는 아나뱁티스트 성향이나 성경해석에 있어 성령의 역할을 강조하는 것만으로는 성경 본문의 의미가 즉시 해석되는 것은 아니다. 또한 복음서를 중요시 여긴다고 하여 구약 성경의 가치를 배제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전문적인 해석자에게 과도하게 의존하거나, 개인적인 성경 해석을 여과없이 수용하거나, 설교자와 교사에게 과도한 복종과 경의를 표할 때, 믿음의 공동체의 역할은 축소된다. 따라서 현대의 새로운 아나뱁티스트들은 초기 아나뱁티스트들이 전해준 이러한 도전을 받아들이도록 교회를 격려한다. 일례로 이들은 한 사람이 설교하는 방식에서 함께 말하기 방식speaking together의 설교나, ‘상호 소통하는 설교interactive preaching, 즉 회중들도 설교 중 참여하는 설교방식을 추구해왔다.

 

크리스텐덤 이후

3)서양 문화는 서서히 크리스텐덤의 영향으로부터 벗어나고 있다. 이 크리스텐덤이란 거의 모든 사람이 그리스도인이라고 가정했던 시대를 말한다. 이 크리스텐덤이 사회의 가치와 제도에 얼마나 많은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는지를 떠나서, 이것이 복음을 심각하게 변질시켰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즉 예수님을 복음의 중심에서 소외시켰으며, 교회로 하여금 포스트-크리스텐덤을 위한 선교적 사명을 감당할 수 있도록 준비시켜주지 못했다. 우리가 이런 문제점을 인식했기에, 크리스텐덤의 가치를 고스란히 따르고 있는 주류 기독교 전통을 대신할 수 있는, 즉 우리에게 새로운 생각과 행동 양식을 가르쳐 줄 수 있는 전통으로 아나뱁티즘을 택하였다. 이 아나뱁티즘은크리스텐덤을 따르기를 거부하며 대안적 사고방식과 행동 양식을 추구하였던 사람들이 남겨 놓은 전통이다.
 
4)교회가 세상적 지위, , 권력과 습관적으로 결탁하는 것은, 예수를 따르는 자에게는 부적절할 뿐 아니라 증인된 삶을 살아가지 못하게 한다. 우리는, 예수를 믿는 제자의 삶 그 자체가 가난하고 힘없으며 박해받는 이에게 좋은 소식이 되기를 갈구한다. 나아가서 그러한 제자도의 삶이 우리의 믿음을 반대하는 자의 마음이 열리게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순교나 다른 고통도 줄 수 있음을 인정한다.

 

크리스텐덤이 지배적이었던 수세기 동안, 이 체제에 반대하던 아나뱁티스트들과 또 다른 무리의 사람들이 제일 먼저 한 것은 비성경적이며 비기독교적이라 생각되는 교리들과 행동양식을 거부하는 것이었다. 이들은 이 체제의 문제점을 지적하였으며, 결국에는 이 크리스텐덤이 근본적으로 결함을 가진 체제로 보았고 동참하기를 거부했다. 나아가 이들은 참 제자도를 위한 대안적 방법을 시도하는 가운데, 자신만의 새로운 공동체들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크리스텐덤이 쇠퇴해가는 오늘날, 서구 사회의 많은 그리스도인은 아나뱁티스트 전통으로부터 배워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기독교와 그리스도인이 더 이상 사회 속에서 지배력과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현시대적 상황 가운데, 어떻게 하면 예수를 진정으로 따르는 자가 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의 답을 아나뱁티스트 전통에서 찾고 있다.

아나뱁티스트들이 남겨준 전통은 크리스텐덤 시대에 소외된 소수의 사람들의 것이었기에, 이 전통은 서구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크리스텐덤의 종말을 고하는 포스트-크리스텐덤[10]의 도래를 축하하는 자리로 이동할 수 있게 도와준다. 이에 아나뱁티스트의 전통이 어떠한 기여를 할 수 있는가?

 

반체제 활동 거의 5세기 동안, 아나뱁티스트들은 예수를 믿고 따르는 길과 크리스텐덤의 전제에 예속되지 않은 그리스도인 공동체를 세우는 방법을 탐구해고 실천해 왔다.

뜻밖의 통찰력크리스텐덤이라는 눈가리개를 제거하고 나면, 신학적, 윤리적, 교회적, 선교적 등 모든 분야의 문제점을 새로운 시각으로 접근할 수 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아나뱁티즘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 아나뱁티즘이 전통적인 사고방식에 도전을 주면서 창조적인 생각을 고무시키기 때문이다.

소외된 자의 경험 이전에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하며,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를 차지하고, 문화의 중심 역할을 했었던 기독교 전통은 이 크리스텐덤의 끝이 온다는 사실을 고통스럽고 비관적인 것으로 받아들인다. 반면에 아나뱁티스트들은 항상 가장자리의 소외된 자들이었기에, 이 크리스텐덤과 그 영향력이 소멸되는 상황으로 인한 혼란을 훨씬 덜 받는다. 아나뱁티스트들은크리스텐덤의 종말이 오히려 성경의 소외된 곳에 임하시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이야기에 재연결 될 수 있는 기회를 더 많이 준다는 사실에 기뻐한다.

평화를 사랑하는 증인 포스트 크리스텐덤 사회에서 그리스도인들은 다양한 집단이 존재하는 다원주의 사회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해야 한다. 그 어느 전통보다 아나뱁티즘은 우리에게 평화를 추구하면서 증인된 삶을 사는 것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말과 행동이 통합되며, 개인의 간증과 공동체의 증인됨에 조화가 있으며, 자신의 말을 하면서도 다른 이들의 말을 경청할 줄 아는 삶을 말한다.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딤후 3:12)는 말씀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16세기 아나뱁티스트들이크리스텐덤 체제에 핍박을 받은 것처럼, 포스트-크리스텐덤 시대가 서구 그리스도인들을 핍박과 순교의 길로 이끌어 갈 것인가? 그러한 핍박이 현대 서구 사회 속에서 있을 수 있는지의 여부를 논하기 보다는, 우리가 핍박을 받지 않는 이유에 대해 먼저 자문해봐야 한다. 우리가 여전히 쇠퇴해가는 크리스텐덤의 보호막 아래 있기 때문인가? 아니면 우리가 신실한 제자로서의 삶을 살지 않아서, 박해 받을 일이 없는 것인가? 이 질문이야말로 초기 아나뱁티스트들이 우리에게 심사숙고해 보라고 던져주는 숙제이다.

 

공동체와 제자도

5) 교회란, 제자도, 선교, 친교, 상호 책임성, 다양한 목소리가 어우러진 예배를 위해 헌신된 공동체를 일컫는다. 우리가 주님의 살과 피에 동참하면서 음식도 함께 나누듯이, 하나님나라를 향한 희망도 함께 가진다. 젊은 세대와 노인 세대가 모두 존중 받으며, 협의의 과정을 거치는 지도력을 추구하며, () 구분이 아니라 은사에 근거한 역할분담을 하며, 믿음을 고백하는 자에게 침례를 베푸는, 그러한 교회들을 발전시키고 양육하기를 원한다.

 

선교. 종교개혁 당시 교회는 사람들이 주기적으로 다니는 거룩한 건물, 유아시절부터 속해 있던 기관을 의미했다. 그리고 필요가 있을 때마다 도움을 요청하는 곳이었다. 교회의 회원자격과 시민권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었다. 이 시대에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이미 그리스도인이었기에 선교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교회를 선교적 공동체로 인식한 이들은 초기 아나뱁티스트들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사는 유럽을 선교지로 여겼다. 그들의 친구들과 이웃이 회심하고 개종할 필요가 있다고 보았고, 그들의 사회는 복음의 능력에 의해 변화되어야 했다. 이 공동체들은 전도자들을 둘씩 짝지어서 새로운 교회 개척을 위해 파송했고, 돌아다니며 물건을 파는 장사꾼들은 가는 마을마다 복음을 전파했다. 아나뱁티스트는 모든 믿는 이들이 예수의 제자로서 삶을 살아야 함을 말했고, 이로써 새로운 수도사라는 별명도 얻게 되었다.

 

상호 책임성. 상호 책임성은 훈계, 교회 훈육, 제명, 그리스도의 규범, 상호 돌봄과 같은 다양한 용어로 설명된다. 상호 책임성을 따르기로 결단하고 특히 마태복음 18 15-17절의 예수의 가르침에 충실하고자 했던 아나뱁티스트는 상호 책임성을 진정한 교회의 중요한 표지라고 주장했다. 종교개혁자들의 교회들이 신실한 제자 공동체가 되지 못한 것은, 바로 상호 책임성의 부재였다. 즉 건전한 교리만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지 않았다. 현대의 아나뱁티스트는 상호 책임성을 이해하고 실천하며 그 가치를 인정하는 교회를 세우고 양육하기를 원한다. 상호 책임성은 험담과 중상모략에 대한 해독제 역할을 하며, 파벌과 분열에 대한 방어 역할을 해주며 영적 성장을 촉진시켜 준다. 우리는 실패하지 않으려고 고군분투하는 자리에 혼자 버려져 있지 않다. 관계가 무너질 때 치유와 회복을 위한 일련의 방법이 있다. 불완전한 제자들과 불완전한 교회들은 이 상호 책임성을 실천할 필요가 있다.

 

친교. 어떤 이들이 아나뱁티스트 전통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 중 하나가 이 전통이 공동체, 환대, 그리고 우정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이 손님을 환대하는 모임이나 음식을 함께 먹는 모임을 아나뱁티즘과관련지어 생각하는 것도 우연이 아니다. 초대회들이 그러했듯 초기 아나뱁티스트들도 성찬식을 주로 가정집에서 행하였기에, 식사의 맥락에서 빵과 포도주를 나누었다. 이들에게 성찬식은 심오한 신학적 표현이 아니라 매일의 제자도와 공동체 안에서의 나눔의 삶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이들은 빵과 포도주를 나누기 전에 모든 지체들이 다 같이 일어서서 하나님을 향한 헌신과 서로를 향한 헌신을 새롭게 하는 시간을 가졌다. 현대의 아나뱁티스트 공동체는 함께 먹고 나누는 교회를 상상하게 한다. 한 아나뱁티스트 교회는 먹지 않으면 모임도 없다!’라는 표어를 가지고 있고, 다른 교회는 밥상 교회들’(table churches)에 관여하며, 예수를 기억하며 빵과 떡을 떼며 설거지를 같이 하는, 새로운 밥상 예배’(table liturgies)를 전개하고 있다.

 

다양한 목소리. 상호 책임성을 실천하는 과정을 교회의 징계로 자주 인식하는 이유는 교회 지도자들이 이 과정을 주도하며 큰 영향력을 행사하기 때문이다. 아나뱁티스트는 공동체 안에서 문제가 발생한 경우, 그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어느 누구나 앞장서도록 격려한다. ‘단일화된 목소리가 지배하는 체제는 교회의 본질을 유지하고, 신학적으로 교육받은 전문 지식으로부터 유익을 얻으며, 바른 질서를 유지하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그로 인해 야기된 문제점은 유익보다도 컸다. 공동체는 영향력을 잃고, 성령의 역사하심은 무시되고, 지도자에 대한 의존도는 더 커지고, 예언자적 목소리에 대해 침묵하고, 교회 지도자들에게 과도한 짐이 지워졌다. 아나뱁티스트 교회들은 모든 목소리가 청종되고 모든 관점이 참작될 수 있는 정교한 방법들을 찾아내었다. 이것은 인상적이기는 하지만, 소모적이며 많은 시간을 요하며 진행 과정이 매우 느리다. 하지만 이와 같은 주의 깊은 청종과 협의의 과정은 아나뱁티스트 전통이 가진 특별한 은사이며, 소수의 권력자들의 목소리에 지배되거나 논쟁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교회에게 도움을 준다.

 

종말론. 아나뱁티스트는 예수의 재림이 눈앞에 있는 마지막 때를 사는 사람들처럼 살았다. 그들은 예수의 재림이 눈앞에 있는 마지막 때를 사는 사람들처럼 살았다. 그들은 역사의 절정기를 기쁘게 살았으며, 하나님나라의 도래를 기다리며 행복해 했다. 이 아나뱁티스트 운동이 평화주의를 추구했고, 자신들을 핍박하던 자들을 기꺼이 하나님의 심판에 내어 맡기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고통 후에 있을 영원한 하나님나라에 들어가길 고대했다. 오늘날의 아나뱁티스트들도 당시 핍박과 좌절된 패기 속에서도 유지되었던 희망의 코드를 읽어 내고자 노력한다. 초기 아나뱁티스트들에게는 그들의 공동체가 바로 이 희망의 증거였다. 그들은 서로의 단점들이 무엇이었든지, 서로 용기를 주며 비전을 굳게 지켰다. 그들은 믿음의 간증을 서로에게 들려주었고, 믿음을 지키도록 서로 격려했으며, 함께 찬송하고 기도했다. 그러면서 사회 문화적 경향에 거슬러 살아가는 법을 찾아냈고, 그런 믿음을 다음 세대에게 물려주었다.

 

정의

6) 영성과 경제는 상호 연관되어 있다. 개인주의와 소비지향적 문화, 경제적 불평등이 만연한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우리는 단순한 삶, 관대하게 나누는 삶, 창조경제를 돌보며, 정의를 위해 일하는 삶을 추구한다.

 

아나뱁티스트 전통은 내면의 영성만을 강조하며 교회/공동체 중심적이며 사회 변혁에는 무관심하다고 종종 비난을 받는다. 일부 아나뱁티스트 그룹에게는 맞는 말이다. 그들은 핍박 때문에 침묵하고, 강제이주 때문에 분열하고, 최근에 들어서는 점점 더 축적되어가는 경제적 부로 인해서 사회 통념들과 타협하였다. 그래서 초기 아나뱁티스트가 목숨을 걸면서까지 지키려고 했던 확신을 저버리기도 했고, 때로 그 확신들을 타인들 앞에서 주장하기 보다는 조용히 자신의 공동체 안에서만 실천하였다. 하지만 실제로 많은 초기 아나뱁티스트는아나뱁티스트 운동에 동참하기 이전부터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정의의 실현을 위해 폭넓게 활동했었다. 그들은 사회 전반에 깊이 퍼져있는 경제적 강탈에 대해 신랄한 비판을 가했으며 농민 봉기를 지지하고 도왔다. 이들은 현상 유지에 급급하지 않았으며, 크리스텐덤에 대한 강한 의문을 품었다. 또한 이들은 예수의 가르침과 초대 교회들의 선례들을 중요한 모범으로 여겼다.

모라비안후터라이트는공동 재정 제도를 실천하는 공동체를 이루었다. 이 공동체에서는 최소한의 소유물을 제외하고는 개인의 모든 재산을 공동 소유로 관리하였으며, 사유 재산의 개념을 복음과 대치되는 것으로 이해했다. 후터라이트 공동체와 오늘날 브루더호프 공동체는 공동 재정의 공동체이다. 하지만 다른 대부분의 아나뱁티스트들은재산 공유가 아니라 상호 부조를 실천하였다. 즉 그들은 자신들의 개개인 재산과 소유를 가지고 있지만, 언제든지 어려움과 궁핍에 처한 사람들을 만날 때면 자발적으로 기꺼이 나누어주었다. 그리고 이런 방식의 경제관은 대부분의 아나뱁티스트 공동체의 특징이다.

경제와 영성은 정의의 관점에서 서로 연결되어 있다. ‘누가 이 세상의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줄 마음을 막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할까보냐’(요일3:17)의 말씀을 따라 아나뱁티스트의 상호부조에 대한 헌신은 궁핍에 처한 이들의 필요에 우선순위를 두는 것으로, 나눔의 동기가 자비의 실천보다는 정의의 실천,  경제영역에서의 제자도와 깊은 연관이 있다. 또한 현대 사회의 우리가 소비주의에 쉽게 굴복하며, 광고 회사에 의해 조장된 혼란(필요함과 원함의 혼란)에 빠진다. 아나뱁티스트 공동체는 기성 문화와 가치관을 거부하며, 단순함과 자족함이라는 두 가지 특징적 가치관을 추구한다. 역사적으로 아나뱁티스트는 빌려준 돈에 대한 이자를 받는 것, 심지어 정당한 방법으로 부를 축적하는 것, 가치 창출을 위한 어떠한 노력도 없이 수익을 올리는 것이 그리스도인에게 정당한 삶의 방식인지에 의문을 제기해왔다. 부와 안전의 추구가 개인 및 조직의 영적 성장을 저해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러한 생각들은 현대의 경제 개념과 방식에 근본적인 도전을 준다. 단순함과 자족함의 영성이야 말로 우리를 기성 문화와 가치관의 족쇄로부터 자유케하는()문화적인 것이다.

 

평화

7) 평화는 복음의 핵심이다. 이 세상에서 비록 분열과 폭력이 난무한다 할지라도, 우리는 예수를 믿고 다르는 자로써 개인 간에, 교회 간에, 사회 간에, 그리고 국가 간에 평화를 만들어가는 비폭력적인 대안을 찾는 일에 전념한다.

 

경제적인 부분에서의 강조점들(공동재정과 상호 부조)이 동시대 그리스도인들의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처럼, 전쟁에서 무기를 들고 싸우기를 거부하는 대부분의 아나뱁티스트들의 행동도 마찬가지로 골칫거리로 비춰졌다. 이들이 전쟁에 반대했던 이유는 예수의 가르침에 비추어 사랑과 살인하는 것이 양립할 수 없다는 일반적인 인식 때문이었다. 모든 유럽 국가의 시민들에게는 가정과 사회를 보호하고 전쟁에 동참하며, 다른 이주자들을 쫓아내야 할 의무가 있었다. 또한 교회는 치명적인 폭력의 사용을 지지하고, 전쟁에 사용될 무기를 축복하고, 선교사들을 싸우러가는 군대와 함께 보내는 등 서구 교회의 지배적인 목소리는 폭력의 사용을 정당화하고 지지하였다. 아나뱁티스트 평화주의는 그런 통상적인 폭력적 행동방식을 거부할 때 비겁자와 배신자로 치부된다는 것까지도 예상하고 선택하는 것이었다. 신약 성경의 가르침을 순수하게 따랐던 첫 세대들의 공동체들은 평화가 복음의 중심이라고 믿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소수의 공동체만이 이 신념을 지속적으로 유지한다.

비폭력에 대한 아나뱁티스트들의 헌신은 사람들이 서로에게 친절해지도록 설득하는 정도가 아니다. 우리는 분열되고 폭력이 난무하는 세상 가운데서 예수를 따라가는 자들이다. 우리는 악의 존재에 대해 인식하고 있으며, 그것이 우리와 사람들의 마음 속에 잠복해 있기도 하고, 또한 극악한 폭력의 행동으로 드러나게 하는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평화의 왕이신 예수를 따르는 자들이며, 폭력을 행하는 것보다도 예수의 비폭력적인 사랑을 행하는 방식이 더 현실적이라는 것을 안다. 이러한 비폭력적 대안들이 효과적인가 아닌가를 떠나서, 평화교회들은 도래하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표징이다. 현대 아나뱁티스트들은일에 전념하고 있다.[11]

 

이 일곱가지 신념은 그저 신념일뿐아나뱁티스트신조(creed)는 아니다. 일반적으로 아나뱁티스트는 고정된 진술의 형태로 믿음을 표현하는 것을 경계해 왔다. 그 이유는, 그런 한정적인 진술이 다른 이들의 의견에 귀 기울이거나 지속적으로 성경과 씨름하는 것이 더는 필요하지 않음을 내포하기 때문이다. 신조는 믿음에 관련된 것이지만, 아나뱁티스트들은 믿음과 함께 행함도 동일하게 중요시했다. 따라서 이러한 믿음의 고백은 잠정적으로 사용되며, 언제든지 새로운 영감의 조명 아래에서 자유롭게 재검토 및 수정이 가능하다.

 

6. 아나뱁티즘은 분파주의인가?[12]

현재도 여전히 분리주의적인 성향을 지니고 사회로부터 단절되어 있는 여러 아나뱁티스트 공동체가 있다. 특히 아미시와후터라이트 공동체는 분리적인 성향을 신실한 제자도를 위한 필수적 요소로 본다. 그들이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이 공동체에 속한 사람은, 사형제 철폐와 같은 사회정의 운동에 적극 참여한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의 최고 부르심을, 매일의 삶 속에서 복음을 실천하며 어느 누구에게든지 복음의 증인이 되는 것이다.

아나뱁티스트의 후예나 스스로 아나뱁티스트 전통과 일체감을 느끼는 현대 그리스도인들은, 아미시나 후터라이트 공동체게 보여주는 선교에 대한 이해와 분리주의적 성향에 동의하지 않는다. 시대적 상황을 고려함 없이 아나뱁티스트를 분리주의자로 몰아세우는 것은 정당하지 못하다. 박해 아래 놓여있는 공동체라면,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고립되고 분리되는 것 이외에는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초기 아나뱁티스트들은 사회정의, 경제 문제, 공동체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 하지만 수년간의 박해는 결국 아나뱁티스트들을 잠잠해지도록 만들었는데, 이때부터 몇 세기 동안 외부에 맞서 대항하거나 타협하기 보다는 피하여 물러나는 방법을 택했기에, 이 분리주의적 성향이 마치 그들의 원래 비전인 것으로 왜곡되었다.

현대의 아나뱁티스트는 세상으로부터의 분리를 다른 방법으로 표현한다. 어떤 이들은 일반 대중 문화 속으로 동화되기를 택하면서도 국교를 신봉하지 않는 유산은 유지하고, 여러 다른 문화 속에 들어가서 자신들만의 독특한 신념을 표현할 창조적인 방법을 물색한다. 많은 사람이 사회, 경제, 정치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도 하고, 복음 전도와 교회 개척을 위해 활동한다. 따라서 분리주의라는 부정적인 명칭은 더 이상 아나뱁티스트들에게 적합하지 않다.

 



[1]스튜어트머레이, 이것이 아나뱁티스트다, 대장간, 197-219.

[2]대표적인 아나뱁티스트 연구로는 헤롤드밴더(Harold S. Bender) 『아나뱁티스트 비전Anabaptist Vision, KAP역간, 아놀드스나이더(C. Arnold Snyder) 『아나뱁티스트의 역사와 신학Anabaptist History and Theology이 있다.

[3]스튜어트머레이, 이것이 아나뱁티스트다, 대장간, 221-222.

[4]예수 형제회(the Brethren in Christ), 형제회 교회(the Church of Brethren)

[5]브루더호프 운동(the Bruderhof movement) 1,2차 세계대전 사이에서 독일에서 일어났으며, 역사적으로는 후터라이트 운동과 연관이 있다. (현시대의 브루더호프 일원들은 이 연관성을 강조하지 않는다)

[6]만약 신학이나 윤리학에 관심이 있다면, 스탠리하우어스(Stanley Hauerwas), 제임스맥클랜던(James McClendon), 존 하워드요더(John Howard Yoder)의 책이나 논문을 읽어봤을 수도 있다. 하우어스는 감리교 대학에서 가르치는 성공회 교인이고, 맥클랜던은 침례 교인이며, 요더는메노나이트이지만, 이 세사람 모두 아나뱁티스트 전통에 대해 깊이 심취해 있으며, 많은 책을 저술했다.

[7]스튜어트머레이, 이것이 아나뱁티스트다, 대장간, 219-220.

[8]스튜어트머레이, 이것이 아나뱁티스트다, 대장간, 68-191.

[9]이 외에도 도널드크레이빌(Donald Kraybill)은 자신의 책 『예수가 바라본 하나님 나라The Upside-Down Kingdom에서, 수세기 동안 잘못 이해되었던 산상수훈을 부드럽고도 통렬하게 분석했다. 마커스보그(Marcus Borg), 브라이언맥클라렌(Brian McLaren), 월터윙크(Walter Wink), 쉐인클레어본(Shane Claiborne), 톰라이트(Tom Wright), 스티브 초크(Steve Chalke), 마이클 프로스트(Michael Frost), 그리고 앨런허쉬(Alan Hirsch), 우리의 시선을 예수의 삶으로 다시 향하게 하고, 예수의 가르침 속에서 신선한 면을 발견하도록 돕는다. 이들 중 어떤 이들은 아나뱁티즘에 의해 깊이 영향을 받았다.

[10]포스트-크리스텐덤(post-Christendom)이란 하나의 문화를 뜻하는 말로써, 기독교 이야기들이 근간을 이루었던 한 사회 안에서 기독교 믿음이 그 사회와 밀착된 관계성을 잃어갈 때 나타나는 새로운 문화이다. 또한 기독교 신념을 가르치고 표현하기 위해서 만들어졌던 기독교 기관이 그 영향력을 잃어갈 때에 나타나는 문화를 의미하기도 한다.

[11]Christian Peacemaker Team은 전세계 분쟁지역에 가서 그 공동체 안에서 평화와 정의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을 조직적으로 돕고 있다. 또한 Peace Building 프로그램을 통해 갈등을 다루는 갈등전환 전문가들을 양성하고 있으며, Peacemaker는 지역 공동체에서 어린이들의 화해와 평화를 만드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회복적 정의(restorative justice) 프로그램은 죄와 형벌에 대해 응보적인 접근이 아닌 건설적인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12]스튜어트머레이, 이것이 아나뱁티스트다, 대장간, 62-65.

 

아나뱁티즘에 대한 소고

2017-01-12 23:25:28


1. 크리스텐덤(Christendom)과 포스트 크리스텐덤(Post- Christendom)

  아나뱁티즘을 이야기할 때 빼 놓을 수 없는 단어가 크리스텐덤이다. 왜냐하면 16세기에 시작된 아나뱁티즘은 크리스텐덤에 대한 반대로부터 촉발되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크리스텐덤을 근본적으로 비성경적 비복음적 체계로 간주했고 그 속의 비성경적, 비기독교적인 교리들과 행동양식들을 거부했다. 그들은 크리스텐덤이 예수를 신앙의 중심에서 변두리로 몰아냄으로써 기독교 신앙을 심각하게 변질시켰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크리스텐덤이 교리와 신조를 강화하고 예수의 삶과 가르침을 누락시켰다고 비판한다. 왜냐하면 크리스텐덤 세계에서 예수의 삶과 가르침은 비현실적이고 부적절한 것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크리스텐덤 교회가 산상수훈을 영적 비유적으로 해석하여 실제로 실천될 수 없는 것이며, 특정한 수도자들이나 미래의 하나님나라에 해당하는 삶이라고 가르쳤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아나뱁티스트들은 크리스텐덤 교회들은 예수를 단지 구원자로만 높이고 예수의 삶과 가르침은 따르지 않음으로써 예수를 신앙의 중심에서 소외시켰다고 말한다. 그들은 종교개혁자들도 예수의 속죄사역만을 강조하고 예수의 삶과 가르침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고 비판한다. 또한 그들은 종교개혁이 크리스텐덤을 개혁하지는 않았다고 본다. 종교개혁은 단지 중세의 거대한 통일된 크리스텐덤을 여러 개의 작은 크리스텐덤들로 나누어놓았을 뿐이라고 말한다. 종교개혁의 주류 분파들이 국가교회의 형태를 취한 것이 사실이고 이 작은 규모로 분리된 크리스텐덤들 사이의 정치적, 종교적 갈등이 한 세기에 걸친 종교전쟁으로 촉발된 것이다.

 

  이제는 교회와 국가가 분리되는 포스트 크리스텐덤 시대가 왔고 크리스텐덤 세계에서 세상을 지배하던 교회는 세상에서 소외되고 있다. 교회는 이제 더 이상 크리스텐덤에 의존할 수 없는 시대다. 포스트 크리스텐덤 시대에 기독교는 중심부에서 주변부로, 주류에서 비주류로 몰려났다 .그러나 포스트 크리스텐덤의 도래는 기독교가 새롭게 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이제 기독교회는 크리스텐덤의 부정적 유산을 인식하고 거부해야 한다. 최근의 역사적 예수 연구는 크리스텐덤의 껍질을 벗기고 예수를 새롭게 발견하려는 시도로 평가할 수 있다. 그 연구방법에 문제가 많은 것도 사실이지만 예수의 역사적 삶 자체가 논쟁의 중심에 세게된 것은 긍정적이라고 본다. 최근의 이머징 처치들도 예수를 믿음의 대상만이 아니라 본받고 따라야 할 삶의 기준으로 본다. 이제 신조와 교리 속의 예수가 아니라 복음서 속의 살아있는 예수를 발견해야 할 시대다. 예수 따름(Jesus following)은 아나뱁티스트 전통의 중심 주제다. 16세기 아나뱁티스트의 지도자인 한스 뎅크는 삶으로 예수를 따르지 않는다면 예수를 진정으로 모르는 것이라고 말했다. 영적 경험이나 교리적 전통은 실천적인 제자도를 통해 검증되어야 한다. 이런 전통이 종종 행위 구원으로 비난받기도 했지만 아나뱁티스트들에게 예수는 예배의 대상인 동시에 따라가야 할 대상이며 신자의 삶의 근원이었다.

 

2. 성경 해석의 전통

 

  첫째는 아나뱁티스트들은 예수가 하나님의 중심계시라고 믿기에 예수 중심적 접근법(Jesus oriented approach)으로 성경을 해석하려 한다. 그들은 신구약 성경을 모두 예수중심으로 해석하고 예수의 가르침과 모범의 관점에서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구약은 앞으로 오실 예수를 가리키고 신약은 이미 오신 예수를 회고한다고 보았다. 그래서 그들은 성경은 오직 예수를 통해서만 이해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들의 이런 성경해석 태도는 구약성경에 대한 경시나 신구약 성경의 조화에 대한 무관심을 초래하기도 했다.

 

  둘째는 공동체가 함께 성경을 읽고 해석한다는 것이다. 아나뱁티스트 운동은 성경이 일반 사람들에게 널리 보급되는 16세기에 일어났기에 그들은 개인의 성경해석의 자유를 옹호했고(물론 그들은 개인주의적 해석을 경계했고 공동체의 평가와 검증을 중시했다.) 또한 그들은 바울 서신보다는 예수의 삶과 가르침이 나타난 복음서의 예수 이야기를 중시했다. 그들은 성경연구를 신학자나 설교자에 의존하기 보다는 회중의 공동체적 행위로 간주한다. 이런 태도가 가진 단점도 있는 그것은 학자들에 의존하지 않으므로 성경에 대한 더 나은 이해를 돕는 자료나 전통의 도움을 얻지 못한다는 것이다. 종교개혁자들은 개인의 성경해석의 자유를 인정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실제적으로는 이 자유를 회수했다. 그러나 아나뱁티스트들은 이 자유를 견지했고 그 결과 성경해석과 적용에 대한 견해차이로 분열을 경험하기도 했다.

 

  셋째는 성경 해석과 함께 실천하는 제자도를 중시한다는 점이다. 그들에게 성경 해석은 성경적 실천을 위한 것이었다. 아나뱁티스트 전통의 핵심은 제자도를 강조한 것인데 그들은 종교개혁자들이 성경해석은 중시하면서도 제자도를 경시한다고 비판했다. 그들은 제자도는 성경해석과 실천을 통합해준다고 믿는다. 초기의 아나뱁티스트들은 성경해석자들의 무실천을 비판하면서 성경적 가르침의 실천여부가 성경해석의 정당성을 부여해준다고 주장했다.

 

3. 교회 공동체

 

  아나뱁티스트들은 크리스텐덤에 저항하면서 대안 공동체를 형성한 전통을 가지고 있다. 아나뱁티즘의 이런 전통은 포스트 크리스텐덤 시대에 필요한 공동체가 무엇인지를 제시해 줄 수 있다. 아나뱁티스트들에게 교회란 그 무엇을 위해 헌신된 공동체였다. 그 무엇이란 바로 예배, 제자도, 선교, 친교, 상호책임 등이다. 교회란 바로 이것을 위해 존재하는 공동체이기에 그들은 상호합의와 은사에 근거한 지도력을 중시했다. 그들이 보기에 크리스텐덤의 전통을 지닌 교회들은 보수적, 독재적, 가부장적인 지도력을 가지고 있으며 그 구성원들도 자신들을 제자도와 선교를 위한 하나님의 동역자로 여기기보다는 단순히 교회 다니는(churchgoing) 사람들로 여긴다고 비판한다. 종교개혁자들과 아나뱁티스트들 간에는 교회의 본질과 제자도에 중요한 신학적 차이점이 존재한다. 아나뱁티스트들은 은혜가 단순히 의인이 아니라 신자를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해한다. 또한 그들은 예정론을 부인하고 행위와 믿음을 분리하는 것을 거부한다. 그들에게 교회는 가라지와 알곡이 공존하는 혼합사회가 아니라 오직 헌신된 자들로 구성된 공동체였다. 16세기에 유아세례를 거부한 것은 엄청난 저항이었다. 유아세례를 거부한 사건은 사람이 태어나면서 자동적으로 교회의 구성원이 되는 것이 아니라 믿고 헌신하는 결단을 선택을 통해 신자가 된다는 자유교회 운동의 시작이었다. 세례가 신자들을 위한 것이라는 확신은 아나뱁티스트들의 교회에 대한 이해와 밀접하게 관련된다. 그들에게 교회란 예수를 믿고 따르기로 작정한 자들로 이루어지는데, 세례란 바로 이런 작정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유야세례를 크리스텐덤의 유산으로 본다. 그들은 유아세례는 크리스텐덤 체제에서 목회적, 정치적 이유로 합법화되었을 뿐이고 성경적 근거도 없다고 본다.

 

  아나뱁티스트들에게 상호책임성은 진정한 교회의 중요한 표지중의 하나였다. 그들은 종교개혁자들과 마찬가지로 복음의 신실한 선포 그리고 성례전의 바른 집행을 교회의 표지로 받아들였지만 이에 더하여 상호책임성을 3번째 표지로 간주했다. 그들은 종교개혁교회들의 실패는 상호책임성의 부재로 본다. 그들은 상호책임성이 크리스텐덤의 부정적 유산을 극복하는 대안이라고 본다. 크리스텐덤 체제에서는 상호책임성을 실천하는 과정이 성직자의 권위의 이행으로 왜곡되었지만 아나뱁티스트들은 상호책임성이야 말로 진정한 친교의 근간이며 이는 사랑과 신뢰를 바탕으로 실천이 가능하다고 여겼다.

 

  아나뱁티스트 전통에서 합의에 기초한 공동체적 리더십과 은사를 따른 역할 분담이 중시된다. 그들이 보기에 크리스텐덤 교회에서 리더십은 성직자들에 의해 독점되었고 종교개혁자들이 만인제사장을 주장했지만 실질적으로는 여전히 성직자 중심의 리더십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아나뱁티스트 전통에서 공동체 안의 다양한 목소리와 구성원들의 참여는 매우 중요하다. 이것은 지도자의 모범과 행동이 협의에 따른 양식이어야 함을 의미한다. 그들은 독재적 지도력은 공동체에 부적당하여 예수의 삶과 가르침에 상반된다고 믿었기에 공동체 안에 남녀노소의 평등한 권리를 중시했다.

 

  아나뱁티스트들은 성찬식의 신학적 의미를 츠빙글리를 따라 예수의 죽음을 기념하는 행위로 이해한다. 그러나 그들은 성찬식에 독특한 의미를 추가했는데 그것은 성찬을 매일의 제자도와 공동체 안에서 나눔의 삶과 밀접한 관계를 가진 행위로 보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식사와 성찬을 분리하기 않고 공동체 식사의 맥락에서 성찬을 나눴다.

 

4. 제자도와 사회정의

 

  아나뱁티스트 전통은 역사적 상황으로 인해 내면적 영성과 교회중심이라는 오해를 받아왔지만 그들을 초기부터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정의의 실현을 위해 폭넓게 활동했다. 초기의 아나뱁티스트들은 사유재산을 부인하고 폭력을 거부했다. 크리스텐덤 체제에서 십일조는 혁신적 제도로 도입되었고 이로 인해 교회는 극도로 부유한 기관이 되었지만 가난한 자들의 경제적 고통은 가중되었다. 16세기 농민운동은 복음의 참 의미에 영감을 받은 자들이 교회와 사회 속에 만연한 경제적 사회적 악습에 대한 저항이었다. 모든 아나뱁티스트들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모라비안 후터라이트들은 공동재정의 전통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사유재산 제도를 복음과 대치되는 것으로 이해하여, 최소한의 소유만 개인소유를 인정하고 나머지는 공동체의 공동소유를 실천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아나뱁티스트들은 공동재정보다는 상호부조를 실천한다. 그들이 실천하는 상호부조는 자선기부와는 다르다. 자선은 가난한자들에게 자비를 베푸는 것이지만 불공정한 사회를 개혁하지는 못한다. 상호부조는 자비의 실천이 아니라 공동체 안에서 정의를 실현하는 것이다. 아나뱁티스트들에게 영성과 경제정의는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그들에게 상호부조는 서구의 자본주의와 개인주의에 대한 대안이며 저항이다. 그들은 사유재신이나 개인주의라는 세상의 문화적 규범들을 교회가 따르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상호부조는 이런 문화적 규범에 대한 저항이며 경제영역에서 실천되는 제자도이다. 그러므로 상호부조는 일방적인 베풂이 아니라 상호의존과 인격적인 유대관계를 바탕으로 이뤄진다.

 

  아나뱁티스트들은 평화를 복음의 핵심으로 여기고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비폭력적 대안들을 추구했다. 16세기 중반에 평화주의는 아나뱁티스트 전통의 핵심 가치로 확고하게 자리 잡았다. 선교를 중시하는 그들은 타 종교인들과의 평화적 공존을 위해 종교의 자유를 주장했다. 크리스텐덤 시대에 평화주의는 전적으로 비현실적이었고 반체제적이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정의로운 전쟁 교리를 주창했고 크리스텐덤 교회는 이 교리를 거리낌 없이 수용했지만 이 교라는 성경이나 초대 교회의 가르침에 근거하지 않았다. 그들의 평화주의는 인본주의나 자유주의의 가치에서 유래된 것이 아니라 예수의 가르침과 모범에서 나온 것으로서 아나뱁티즘 전통의 확고한 뿌리가 되었다. 그들에게 평화는 복음의 핵심이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선교적 사명은 온 창조세계에 진정한 샬롬을 가져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정의와 평화주의는 미래에 도래할 하나님나라의 표징이었다.

제자도를 중시하며 일반적 도덕기준보다 더 놓은 기준을 성경에서 찾아내어 실천하려는 아나뱁티스트 운동을 16세기 종교개혁자들은 행위로 말미암는 의를 추구하는 자들이라 비난하며 그들에게 새로운 수도자들이란 별명을 붙였다. 종교개혁자들은 종교개혁의 핵심 슬로건인 오직 은혜로 구원받는다는 원리를 아나뱁티스트들이 심각하게 손상시킨다고 생각했다. 이후에 제자도를 문화적 보수주의로, 성경문자주의를 율법주의로 간주되면서 아나뱁티스트들은 율법주의자들로 비난을 받았다. 그러나 아나뱁티스트들은 왜 종교개혁자들은 예수를 구원의 규범으로 삼으면서 제자도와 교회생활의 규범으로 삼지 않는가라는 의문을 제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