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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이야기는 하나님 이야기다. - 마이클. F. 버드

예수 이야기는 하나님 이야기다. - 마이클. F. 버드

2016-10-19 19:19:49


 

     바트 어만이 예수의 신격에 대한 믿음의 역사적 기원에 접근하는 방식은 본질적으로 진화론적이다. 즉 예수 신앙은 다양한 안팍의 영향을 받으며 시간의 흐름과 함께 변이 과정을 겪었다는 것이다.  사실 나사렛 예수가 정말 하나님인지는 결국 성서의 나타난 초대교회의 증언을 믿을 것인가 말 것인가의 문제로 귀결된다.  그러나 정확히 언제 어디서 왜 기독교인들이 예수의 천상적 기원과 신적 속성을 관해 고양된 주장을 하기 시작했는지는 역사적 문제이며 증거의 종합적 검토를 통해서만 답할 수 있는 문제다. 어만을 위시한 일각에서는 예수를 완전한 신적 존재로 규명한 고기독론은 하나의 진화론적 발전의 산물이었다고 주장한다. 와와 대조적으로 고기록론에 속한 일군의 학자들은 완전한 신적 기독론의 기원에 대해 빅뱅설을 주장한다. 예수를 초기에 그리고 상대적으로 강력하게 하나님과 동일시하는 패러다임을 주창하는데 가장 큰 공헌을 한 일군의 학자들을 초기 고기독론학파로 분류하는데 마틴 헹엘, 래리 허타도, 리처드 보컴 등이 이에 속한다.

 

      헹엘은 예수의 죽음과 가징 초기의 기독교 문서인 바울 서신에서 발견되는 매우 완성된 형태의 기독론 사이에는 시간적 간극이 매우 짧다고 말하며 만일 발전이 일어났다면 매우 이른 시기에 짧은 시간에 고기독론이 형성되었다고 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구종교사학파는 예수를 신적인 주로 고백한 것은 그리스도 신앙이 헬라 종교 및 찰학과 조우한 결과, 진화된 것으로 본다. 그러나 행엘은 대부분 50년대 에 기록된 바울서신에는 예수의 정체성과 신적 위상에 대해 이미 정형화된 표현이 나타난다고 말한다. 그는 바울서신에는 예수의 선재성, 신적 속성, 창조와 구원의 중재 등을 망라하는 예수에 관한 현격하게 고양된 주장이 담겨 있다고 말한다. 물론 헹엘은 기독론의 발전이 일어났다는 것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1세기 말 요한복음이나 2세기 중엽 유스티누스이 후기 기독론은 예수의 신적 기능을 구체화하고 헬라 형이상학에서 공감할만한 방식으로 설명하려는 시도였고 그런 점에서 이것은 진정한 발전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이미 형성된 고기독론이 발전된 것이지 없던 것이 이때 생겨난 것이 아니다. 헹엘은이러한 발전은 예수의 선재적 아들됨과 유대 지혜 전승의 논리적 융합에 근거한 것이지 이방 원자료와의 상호접촉에서 파생된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헹엘에 의하면 초기 교회의 예수 신앙에 핵심적인 영향을 미친 것은 헬레니즘적 신비주의 종교나 영지주의적 대속 신화가 아니라 체험과 시편2편과 110편, 성서 주해의 결합이었다. 결론적으로 헹엘은 예수가 제자들에게 미친 영향, 예수의 부활 체험과 성령 체험, 이 두가지 요인이 제자들로 하여금 예수를 새롭게 이해하려는 고유하고도 역동적이며 창의적인 충동을 불러 일으켰고, 이 충동은 예수를 승귀된 주와 하나님으로 섬기는 모습으로 표출되었다고 주장한다.

 

     래리 허타도는 초기 기독교인의 예배 관행이 기독론 발전에 토대가 되었다고 논증한다. 그래서 허타도는 신약에서 발견되는 주요한 기독론적 칭호연구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초대교회의 예배양식과 이것이 예수의 신성에 관해 시시하는 바를 주로 다룬다.  그는 초기 기독교인의 예배가 예수를 인간의 형체로 온 이스라엘의 하나님으로 경외했음을 분명하게 보여준다고 말한다. 허타도는 이 예수 섬김 현상을 유대 유일신론의 맥락 안에 차리매김한다. 그는 유대 유일신론에서 신성의 핵심 지표는 예배를 받는가 아닌가에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허타도는 초기 교회의 예수 예배는 그들이 예수를 구약의 하나님의 신격과 무리없이 동일시하였음을 가리키는 지표라고 말한다.

 

     리처드 보컴은 예수에 관한 초기 기독교의 주장에 유대 유일신이 그 배경으로 자리잡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유대 유일신 사상의 핵심적인 요소는 두 가지인데  첫째는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관계를 맺은 유일한 한 분 하나님이라는 것,, 또한 만유의 창조주이자 주권자로 세상과 관계를 맺은 유일한 하나님이라는 것이라고 말하면서 신약에서 예수 역시 이스라엘과 만물에 대해 비숫한 방식의 관계를 맺었기 때문에 신적 존재로 간주되었다고 주장한다. 보컴은 이런 유대 신학의 맥락을 염두에 두고 신약 기독론을 독해하면 초기 기독교인이 부활 이후 가장 초기부터 예수를 이스라엘 한 분 하나님의 고유한 정체성 안에 정확하고 명백하게 포함시킨 것이 분명하다고 단언한다.  보컴은 예수의 신성을 이해하는 선례로 중간적 존재에 집중하는 노력은 실패할 것이라고 보았다 왜냐하면 신약에서는 예수의 신적 정체성을 창조에 참여한 자, 신적 이름을 가진 자, 하나님의 보좌를 공유하고 경배를 받는 자로 분명하게 강조하기 때문이다. 보컴은 이 신적 정체성에 관한 기독론은 예수 그리스도가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고유하며 영원한 정체성에 본원적인 존재로 간주되었음을 보여준다고 강조한다.

 

    바트 어만은 고대 유일신론은 특별히 엄격한 것이 아니었다고 본다. 그는 고대 텍스트에서 피조물도어느 정도 신격을 공유할 수 있었고 신과 인간의 영역을 가르는 절대적 영역도 없었다고 말한다. 어만은 천사가 인간이 된다거나 강력한 인간 왕이 신적 존재가 되는 것 같은 중간적 존재에 관한 고대 신화속의 많은 이야기들은 초기 기독교인이 예수를 신으로 간주한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할 방도를 제공한다고 말한다.  또한 어만은 예수 생전에 그 누구도 예수를 하나님으로 간주하지 않았고 예수 자신도 스스로를 하나님으로 간주하지 않았으며 단지 예수는 하나님이 이 세상에 극적으로 간섭할 것을 앙망하던 종말론적 선지자였다고 주장한다. 특히 그는 요한복음에 나타난 예수의 신성에 대한 명시적 주장은 예수 전승에 대한 이차적, 창작적 부연설명을 예수의 공생애에 재투사한 것이라고 말한다. 더욱이 그는 예수의 부활에 관한 복음서의 기술은 상당히 모순되며 역사적으로 부정확하다고 말한다. 다만 제자들은 부활 체험을 했고 아 채험이 그들로 하여금 예수를 하늘로 들리워진 고양된 인간을 이야기 하게 만들었고 이후에 다른 이들은 예수를 인간이 된 선재적 존재로 생각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어만은 초기교회가 예수를 신성화한 두 가지 중요한 방식을 규정한다. 첫째는 승귀 기독론(exaltation Christology)인데, 여기서 예수는 부활 또는 세례 때 신적 존재가 된 인간이었다. 두 번째는 성육신 기독론(incarnation Christology)인데, 여기서 예수는 인간이 된 선재적 존재였다. 이 패러다임에 의하면 마가 복음은 승귀 기독론의 관점이고 요한 복음은 성육신 기독론 관점으로 예수를 이해한 것이다.

 

바트어만에 대한 핵심 반론

 

1. 어만은 중간적 존재에 대한 고대의 견해와 예수를 신적 존재로 기독교의 견해 간의 여러 확연한 차이점을 간과하면서 유사성만 과도하게 강조한다. 그러나 예수를 신적 존재로 보는 기독교의 믿음은 중간적 존재에서 유래한 것이 아니라 기독론적 유일신론에 근거한 것이다. 초기 기독교는 엄격한 유대 유일신론을 희석하지 않으면서 예수를 하나님 자신의 정체성의 일부로 간주했다.

 

2. 예수는 자신을 신적 전권을 독보적으로 공유하며 하나님의 주권을 구현하는 신적 대행자로 여겼을 개연성이 높다. 또한 예수의 등장 배경에 주가 시온으로 돌아오시길 염원하는 유대인의 미래 회복에 대한 소망이 있었다면 예수는 자신의 위격 안에서 주의 귀환이 실제로 실현되었다고 믿었을 개연성이 크다.

 

3. 어만은 예수가 알려진 무덤에 매장되었다는 스토리는 허구이며 예수의 제자들은 어떤 무덤도 발견하지 못했을 개연성이 높으며 따라서 빈 무덤이 초기 기독교의 예수 부활에 대한 인식 혁성이 어떤 역활도 못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예수 시대 사형수의 매장은 허용되었다는 강력한 문헌적 고고학적 증거가 있다. 또한 만일 예수의 시신이 무덤에 남아있었다면 예수의 제자들은 결코 부활에 관해 이야기 하지 않았을 것이다.

 

4. 기원후 30-50년 사이의 문헌 이전 터널기의 기독론적 주장을 뒷받침하는 증거들이 있다. 공관 복음서에는 강력한 의미의 신적 정체성뿐 아니라 선재성에 대한 기독론이 들어있다. 로마서 1:4과 사도행전 2:36  본문에 있는 터널기의 증거는 예수가 자신의 존재와는 다른 무언가로 변화되었다는 증거를 제공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 증거는 예수가 성육신 이후 승귀된 상태에서 그의 신적 위격에 적합한 새로운 역할 속으로 들어갔음을 보여준다. 예수의 승귀시 일어난 변화는 교회와 세상에 대한 예수의 관계의 변화이지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의 관계의 변화가 아니다.

 

5. 어만이 제시하는 유일신론 이해, 승귀와 성육신이라는 두 대안적 기독론 제시 등, 이런 해석적 판단은 인위적이고 억지스럽다,

 

6. 어만은 바울 서신에 성육신적 기독론이 나타난 것으로 이해하는데 사실 바울이 기독론은 그리스도가 이스라엘의 유일신의 초월적 고유성을 공유한다는 의미에서 완전한 신적 존재였음을 보여준다. 어만의 바울 서신의 본문 분석은 특정 단락에 편중되어 있고 학계의 방대한 연구 결과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그 결과 어만은 바울의 기독론을 오독했으며 이로 인해 그의 전체적인 주장 자체가 위태로워졌다.

 

7. 어만의 에비온파, 양태론파, 터툴리안에 대한 주장들은 의심스럽다. 어만의 기독론적 발전의 연대기는 역사적 연구의 결과가 아니라 미리 역사적 연구의 결과물을 상정한 결과임이 드러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