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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소고

복음이란 무엇인가? - 예수 왕의 복음

복음이란 무엇인가? - 예수 왕의 복음

2016-10-08 21:37:54


  복음서가 말하는 복음이란 무엇인가? 예수의 공생애에 대해 증언하고 있는 복음서는 모두 세례요한의 세례를 통하여 예수가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예수가 요한에게 세례를 받을 때 복음서는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예수에게 임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기뻐하는 자라는 소리가 하늘로 부터 있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니까 예수는 요한의 세례를 통하여 그가 하나님이 세우신 하나님의 아들, 곧 이스라엘의 메시아로서 등극한 것이었다. 이제 예수가 이스라엘의 왕으로 보내심을 받은 자라는 신적 인준이 요한의 세례를 통하여 이뤄진 것이다. 그러나 예수는 요한의 세례를 통하여 비로서 이스라엘의 메시아가 되신 것이라기 보다는 그는 이스라엘의 메시아로 탄생하였는데 이제 공적으로 그의 메시아 직분이 요한의 세례를 통해 공적으로 확인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복음서는 이렇게 이스라엘의 메시아이신 예수가 행하신 말과 행동들에 대한 증언이고 기록이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이스라엘의 왕이신 예수가 자기 백성인 이스라엘을 향하여 감당하신 왕적 사역을 의미한다. 예수가 행하신 모든 일들과 말들 그의 십자가 죽음과 그의 부활 그리고 승천 그리고 미래의 재림, 이 모든 것이 바로 예수가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행하신 왕적 사역이며 왕적 통치 행위라고 보아야 한다. 이것은 다시 말하면 예수를 통하여 나타난 구약의 여호와 하나님의 언약적 행동인 것이다. 예수가 공생애를 시작하면서 처음으로 하신 말씀은 그 유명한 선언, 곧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다는 말이다. 이스라엘은 회개해야 한다 왜냐하면 천국이 가까이 욌기 때문이다. 천국이 가까이 왔다는  것은 당시에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이스라엘을 포로상태에서 구원하여 회복할 메시아가 온다는 것을 의미했다. 당시에 이스라엘은 자신들을 로마의 압제에서 해방시키고 이스라엘의 국권을 회복한 메시아를 고대했다. 그렇기에 천국이 가까왔다는 말은 이제 이스라엘을 회복할 메시아가 온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스라엘은 오랜 포로생활을 통해서 자신들이 국권을 잃고 포로상태에 놓인 것은 자신들이 언약을 배반함으로 하나님이 떠나셨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은 언약에 신실하신 분이시므로 비록 그가 잠시 이스라엘을 떠나셨지만 언젠가는 반드시 돌아오실 것을 믿었고 그 일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메시아를 보냄으로 이뤄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니 천국이 가까왔다는 것은 메시아가 곧 오신다는 말이고 이것은 이스라엘을 떠났던 하나님이 다시 이스라엘에게 돌아오신다는 의미인 것이다.  그러니 이스라엘의 왕이신 하나님이 다시 이스라엘로 돌아오신다, 이것이 바로 천국이 가까왔다는 선포의 핵심 메시이였던 것이다. 천국이 가까이 왔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은 회개해야 한다.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으신 하나님, 영원토록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 이스라엘이 언약을 배반함으로 이스라엘을 잠시 떠났던 그 하나님이 이제 이스라엘에게 돌아오신다. 이것이 바로 천국이 가까이 왓다는 것이고 이것은 이스라엘을 다스릴 이스라엘의 왕인 메시아의 등장으로 나타날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이 다시 이스라엘에게 돌아오신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스라엘도 하나님께 돌아와야 한다. 자신들의 언약 배반의 죄악들을 자복하고 하나님의 언약으로 돌아와야 한다. 이것이 바로 이스라엘이 회개다. 세례요한은 하나님이 메시아를 통해 이스라엘에게 돌아오심을 알았기에 이스라엘에게 회개를 요청했으며 회개하는 자들에게 회개의 징표로 세례를 배푼 것이다. 요한이 이렇게 회개의 세례를 배푸는 것은 메시아의 오실 길을  준비하는 것이며 하나님이 오실 길을 곧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지금 돌아오고 계신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은 회개를 통하여 그가 오시는 길을 준비하고 곧게 해야하는 것이다. 이스라엘이 먼저 하나님께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먼저 이스라엘에게 돌아오고 계신다. 그러니 이스라엘그 하나님이 오시는 길을 준비해야 한다 .그것은 이스라엘이  돌아오시는 하나님을 영접하는 것, 곧 이스라엘이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이다. 세례요한은 바로 이스라엘로 하여금 회개하게 함으로써 주의 길을 준비하는 바로 그런 임무를 띠고 온 구약의 최후의 선지자였던 것이다.

 

이렇게 복음서가 말하는 복음은 이스라엘을 떠났던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다시 돌아오신다는 소식이고 이것은 이스라엘을 다스릴 메시아의 등장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복음서가 말하는 복음의 주인공은 바로 예수이다.  왜냐하면 예수는 이스라엘을 다스릴 왕으로서 오시는 메시아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가 요한에게 세례를 베풀 때 나타난 일은 예수가 바로 그 메시아라는 신적인 인준이었던 것이며 메시아 예수가 이스라엘의 왕으로 공적으로 취임하는 순간이었던 것이다. 다시 한번 강조하건데, 복음은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으신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이제 돌아오신다는 것이며 이 일은 예수가 메시아로 역사 가운데 등장함으로써 이뤄졌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예수의 출생으로부터 그의 공생애, 죽음, 부활, 승천 이 모든 것이 바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언약적 행동으로 이뤄진 것이다. 그리고 특히 예수가 세례를 받고 이스라엘의 메시아로 신적인 인준을 받은 것은 그가 비로서 공적으로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이스라엘을 다시리는 왕적 사역을 시작함을 의미한다.

 

그러니 이후 복음서에 기록된 예수의 모든 행적은 그가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행하신 왕적 사역인 것이다.이스라엘의 왕으로서 예수의 목표는 무엇보다도 이스라엘을 회복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예수가 목표한 이스라엘의 회복은 제자들이 기대하던 그런 것이 아니었다. 제자들은 예수의 부활 이후에도 예수님을 이스라엘을 로마의 압제에서 해방시킬 그런 정치적 메시아로 생각했다. 예수는 제자들의 기대를 부인하지 않았다. 예수는 정녕 이스라엘을 회복할 이스라엘의 메시였다. 그러나 예수에게 이스라엘은 민족적 이스라엘 국한되지 않았으며 이스라엘의 회복은 정치적 회복에 제한되지 않았다. 이제 예수에게 이스라엘은 민족적 이스라엘을 넘어선 이방민족을 포함한 우주적 이스라엘이었으며 그 이스라엘의 회복은 정치적 회복을 넘어선 세상 창조 목적의 회복이었다. 그러므로 예수는 단지 민족적 이스라엘의 메시아가 아니라 온 인류를 포괄하는 우주적 이스라엘의 메시아였으며 그의 왕적 사역의 목표는 단지 민족적 이스라엘의 정치적 회복이 아니라 하나님이 지으신 창조세계 전체의 회복이었던 것이다. 예수가 의도한 이스라엘의 회복이 언제 이뤄질지는 모른다 그러나 성령이 임하시고 제자들이 권능을 받고 온 세상에 이르러 예수가 이스라엘을 회복하실 메시아라고 증거하는 증인노릇을 통해 이스라엘의 화복은 시작될 것이다.

 

그러므로 복음서가 말하는 복음은 천국이 가까이 왔다는 기쁜 소식, 바로 이것이다. 성경이 말하는 복음은 삽자가 복음으로 축소될 수 없다. 복음은 단지 예수의 십자가 죽음으로 말미암아 인간들의 죄의 문제가 해결되고 죄인이 심판을 면한다는 그런 차원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돌아오심이고 하나님나라의 도래이고 하나님의 세상 창조 목적이 회복된다는 소식이다. 바로 이 복음을 위해 예수님은 세상에 오셨으며 요한의 세례를 통해 왕적 사역을 시작하신 것이다. 예수의 모든 가르침, 그의 수고와 눈물, 그의 고난과 죽음, 그의 부활과  승천 그리고 그의 재림은 모든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기 위한, 곧 하나님의 창조 목적를 이루 기 위한  이스라엘의 메시이로서 행한 왕적 사역, 왕적 통치인 것이다.  그러니 세례 요한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고 말한 것은 바로 하나님이 돌아오시는 길을 준비하는 자로서의 선포였다면 예수가 한 동일한 말은 이제 하나님이 돌아오심이 자신을 통해 이뤄지고 있음을 선포하는 것이었다. 하나님이 예수를 통해 이스라엘의 왕으로 돌아오신다. 그러므로 이스라엘도 하나님께 돌아감으로 오시는 왕으로 영접해야 한다. 이렇게 우주적인 복음이 개인의 죄사함으로 축소되어서는 안된다. 십자가는 하나님나라의 도래라는 복음을 이루기 위해 예수님이 행하신 왕적 사역이지 그것 자체가 복음은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십자가 중심주의를 벗어나야 하며 복음을 십자가로 환원하는 일을 그만두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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