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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소고

새 하늘과 새 땅

새 하늘과 새 땅

2016-08-03 01:09:50


1. 어젯밤 꿈 속에 뇌리를 떠나지 않고 계속 맴돌던 단어가 하나있는데 바로 "소저너스"란 단어다. 유한한 인생에서 이 세상을 나그네 삶으로 느끼는 것은 자연스런 일이다. 영원히 살 수 없고 잠시 후면 떠나야 할 뿐 아니라 거주하는 그  세월도 행복과 안정보다는 고통과 슬픔 그리고 불안정이 더 본질적이니 말이다. 소저너스!  그렇다. 이 세상은 인간에게 소저너스의 삶이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가 이 세상의 소저너스라고 말할 때 죽어서 가는 어떤 세계를 상정하고 그곳이 본향인 것처럼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고 약속하는 본향은 죽어서 가는 어떤 피안의 세상이 아니라 지금 우리가 나그네로 살아가는 세상이다. 그  세상이 새롭게 되어 더 이상 우리가 나그네가 되지 않는 세상이 바로 성경이 약속하는 새 하늘과 새 땅이다.


2.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신 후 두 가지 약속을 하시는데 그것은 씨의 약속과 땅의 약속이다. 씨의 약속은 아브라함의 후손을 하늘의 별처럼 바다의 모래처럼 번성하게 하신다는 약속이고 땅의 약속은 아브라함이 소저너스로 우거하던 가나안 땅을 아브라함의 후손에게 기업으로 주신다는 약속이다. 아브라함은 이 두 가지 약속중 어느 것도 이뤄지는 것을 보지 못하고 죽었다.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모세는 씨의 약속이 성취된 것을 보았지만 가나안에 건너가지 못함으로써 땅의 약속이 이뤄지는 것을 보지 못했다. 신약의 신자들에게는 새 하늘과 새 땅의 약속이 주어졌다. 그것은 우리가 사는 세상이 새롭게 되어 우리가 이 세상에서 더 이상 소저너스로 살지 않는 세상일 것이다. 그 약속은 분명히 주어졌지만 그 약속이 언제 성취될지 우리는 모른다. 아브라함과 모세가 그 약속의 성취를 보지 못했듯이 우리는 아직 그 약속의 성취를 보지 못했다. 그러나 아브라함과 모세가 그 약속을 믿고 소망했듯이 우리도 그 약속을 믿고 기다린다.

3. 그렇다면 언제일지 모르는 그 약속이 성취되기 까지 인간 역사의 긴 여정의 의미는 무엇이란 말인가. 인류의 장구한 역사는 차치하고라도 나 개인의 삶의 의미는 무엇이란 말인가? 영혼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지만 만일 영혼이 없다면 우리의 존재는 소멸되었다가 새 하늘과 새 땅의 약속이 성취될 때 다시 존재하게 될 것이고, 만밀 영혼이 있다고 하다라도 그 영혼이 기다리는 것도 다시 몸을 입고 살아야 할 새 하늘과 새 땅의 약속일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잠시 살다가 떠나는 이 세상의 삶은 사후의 세상을 위한 준비도 아닐 것이고 결국은 새 하늘과 새 땅을 믿고 바라보다가 가는 삶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약속을 소망하는 이 세상에서의 삶의 구체적인 모습은 무엇일까? 우리는 모세오경에 나타난 이스라엘의 역사를 이런 질문에 대한 예표로서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4. 이스라엘에게 약속된 가나안 땅을 신약의 새 하늘과 새 땅의 약속의 예표로 본다면 출애굽한 이스라엘의 광야 생활은 오늘날 신약 신자들의 세상에서의 삶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의 광야 생활과 가나안 땅은 어떤 관계를 가진 것인가?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가나안 땅을 주시마고 약속하신 것은 이스라엘로 하여금 가나안 족속들의 죄악으로 더렵혀진 가나안 땅에서 새롭게 하나님나라를 건설하게 하시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광야생활은 가나안 땅에서의 새로운 삶의 준비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시간이었다. 무엇보다도 이스라엘은 광야에서 하나님과 언약을 맺었고 성막과 제사 제도를 통해서 하나님과의 언약적 삶의 체계를 세웠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십계명을 비롯한 정교한 율법을 통하여 하나님의 언약백성으로서 어떻게 하나님께 순종하며 살 것인지를 배우고 훈련했다. 그러니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하나님의 언약백성으로서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해서는 광야 생활은 반드시 필수적이었을 것이다. 만일 이스라엘이 출애굽 즉시 광야를 거쳐서 가나안에 들어갔다면 이스라엘이 가나안 족속과 달리 하나님의 백성다운 삶을 사는 것을 기대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5. 이렇게 생각해보면 새 하늘과 새 땅이란 우주적 약속이 성취되기까지 우리에게 이 세상에서의 삶은 반드시  필요한 시간임이 틀림없다.  새 하늘과 새 땅이 도래하기 위해서는 그곳의 주인공인 사람이 새롭게 되는 일이 반드시 선결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새 하늘과 새 땅은 결코 새로운 세상이 아닐 것이다.  새 하늘과 새 땅은 반드시 그에 걸맞는 새 사람, 새  삶, 새 질서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장구한 인류의 역사나, 길다면 길다고 볼 수 있는 개인의 삶의 시간들은 새 하늘과 새 땅에 걸맞는 사람이 준비되고 훈련되는데 필요한 시간이라고 보아야 한다. 그렇다면 이 세상은 허무한 세상, 나그네로 있다 가는 세상이 아니라 참으로 중대하고 의미있는 세상이 아닐 수 없다. 하나님의 영원한 약속이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살기에 적합한 사람으로 준비되고 훈련되는 시간이 바로 우리의 인생이라면 말이다. 칼빈의 말대로 이 세상은 그리스도인의 학교요 훈련장인 셈이다. 이것이 아니라면 인류의 장구한 역사나 한 인간의 유한한 삶은 허무, 무의미 그 자체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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