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의 도(the way of Yahweh)란 무엇인가?
2016-05-05 17:46:03
아브라함은 강대한 나라가 되고 천하만민은 그로 말미암아 복을 받게 될 것이 아니냐? 내가 그로 그 자식과 권속에게 명하여 여호와의 도(the way of Yahweh)를 지켜 의(tzedakah)와 공도(mishpat) 를 행하게 하려고 그를 택하였나니 이는 나 여호와가 아브라함에게 대하여 말한 일을 이루려 함이니라 (창세기 18:18-19)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을 택하신 목적은 그의 후손이 위대하고 강력한 나라를 이룸으로써 모든 나라가 그로 말미암아 복을 받게 하려는 것이었다. 아브라함의 후손인 이스라엘이 크고 강한 나라가 될 때 모든 나라는 이스라엘을 보고 놀라며 이스라엘을 다스리시는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려는 것이 바로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택하신 목적이었다. 아브라함에게 대해 여호와께서 말하신 이 일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 이스라엘이 "여호와의 도"를 지켜야 한다. 그들이 여호와의 도를 지킬 때 그들은 크고 강대한 나라가 될 것이며 그들로 말미암아 천하만민이 하나님의 복을 받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관건은 이스라엘이 여호와의 도를 지키는 것이다. 그렇다면 "여호와의 도"란 무엇인가? 이어지는 구절은 여호와의 도를 지킨다는 것을 "의와 공도" 를 행하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여기서 "의"란 히브리어 체다카(tsedakah)를 번역한 것으로서 신약성경에서는 헬라어로 디카이오쉬네(dikaiosuvnh)로 번역되었고 영어로는 righteousness로 번역되었다. 체다카라는 것은 하나님과 이스라엘이 맺은 언약관계를 전제로 한 관계적 의 개념인데 그 의미는 언약을 맺은 쌍방이 언약 상대방에게 언약에 신실하게 행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체다카의 정확한 의미는 "언약적 의" 혹은 "언약적 신실함"이라고 번역할 수 있을 것이다. 이스라엘 역사 가운데 하나님은 언제나 이스라엘을 향하여 언약적으로 신실하셨다. 이스라엘이 언약에 신실할때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지키시며 그들이 언약에 신실하지 못할 때도 인내와 자비를 베푸셨다. 이렇게 하나님의 신실하심은 언약적 자비로 나타났다. 반대로 이스라엘이 언약에 신실하지 못할 경우,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시며 징벌하셨는데 이것은 이스라엘을 미워하시거나 그들과 맺은 언약을 파기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회개하고 언약에 신실함으로 돌아오게 하시려는 것이었다. 이 경우 하나님의 언약적 신실하심은 언약적 공의로 나타난 것이다. 결국 하나님의 체다카는 이스라엘의 언약적 신실과 불신실 여부에 따라서 언약적 자비(chesed) 혹은 언약적 공의(emet)로 나타났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의 "체다카" 즉 언약적 신실함은 어떻게 나타나는가? 그것은 하나님이 그들에게 명하신 율법에 대한 순종으로 나타난다. 이스라엘이 율법을 지켜 행하는 것이 하나님을 향한 그들의 언약적 신실함이며 그 반대가 그들의 언약적 불신실함인 것이다. 결국 이스라엘의 체다카는 하나님이 그들에게 명하신 율법에 대한 순종 여부에 달린 것이다. 하나님의 체다카가 헤세드와 에메트로 나타나듯이 이스라엘의 체다카도 헤세드와 에메트로 나타난다. 이스라엘의 헤세드는 하나님의 율법적 요구를 넘어선 자발적인 감사와 헌신을 의미할 것이고 이스라엘의 에메트는 하나님의 율법적 요구에 대한 충성을 의미할 것이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향하여 언약적 헤세드와 언약적 에메트를 행할 때 다시 말하면 체다카를 행할 때 하나님의 통치가 그들 가운데 임할 것이며 그 결과 이스라엘은 크고 강대한 나라가 되며 천하만국이 이런 이스라엘을 보고 이스라엘의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미쉬파트(mishpat)란 무엇이며 체다카(tzedakah)와는 어떻게 다른가? 미쉬파트는 체다카의 하위개념으로서 체다카에 토대를 둔 구체적인 행동 양식을 가리킨다. 특히 미쉬파트는 재판관(shofet)의 판결을 의미한다. 그래서 영어 성경은 체다카를 righteousness로 미쉬파트를 justice로 번역하여 구별하고 있다. 그러니까 미쉬파트는 하나님과의 관계적 의로움인 체다카에 기반한 정의로운 판결을 가리키는 것으로서 권력 사용과 관련된다고 볼 수 있다. 하나님의 율법에 따라서 정의롭게, 공평하게 재판하고 판결하는 것, 이것이 바로 미쉬파트인 것이다. 고대 근동에서 재판은 현대의 사법적 판결이라기 보다는 일반적인 통치를 의미했다. 그러니까 권력을 가진 자가 하나님의 율법에 충성하여 그 율법이 요구하는 바를 따라서 권력을 사용하고 다스리는 것이 바로 미쉬파트인 것이다. 결국 미쉬파트를 행한다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통치가 그 통치자나 권력자를 통해서 실현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이스라엘이 체다카를 행하고 체다카에 근거한 미쉬파트를 행하는 것, 이것이 바로 여호와의 도를 지키는 것이고 이렇게 그들이 여호와의 도를 지킬 때 그들은 크고 강대한 나라가 되어 그들을 통해 천하만국이 하나님께 돌아오고 하나님의 복이 찬하만민에게 임하게 될 것이다. 바로 이런 목적을 위하여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이스라엘을 택하신 것이다. 이스라엘을 통해 이루시려던 하나님의 목적은 바로 이스라엘의 왕으로 오신 예수 메시아를 통하여 드디어 실현됨으로 이제 천하만민에게 복음이 퍼져 나가게 된 것이고 천하만민이 회개하고 하나님의 나라로 들어오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이스라엘의 왕이신 예수는 체다카와 미쉬파트를 완전하게 행하신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크고 강대한 하나님나라를 이 땅에 세우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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