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사색, 시편 한권으로 읽기- 왕대일
2014-12-27 17:43:14
[내용 요약]
시편을 읽는 독법
시편에는 기도, 탄원, 감사, 고백 등 다양한 형식이 있지만 그 바탕은 찬양이다. 그런데 이런 시편의 특징은 하나님이 주신 말씀이 아니라 하나님에 관한 우리의 묵상이라는 점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시편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읽힐 수 있었을까? 그것은 시편의 하나님에 관한 묵상이 시인이 임의로 터득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시로 주어진 묵상이고 그래서 시편이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말씀이 된다. 그래서 시편은 우리에게 기도를 가르쳐 주며 특별히 하나님이 원하시는 기도가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시편의 기도는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사다리이며 하늘을 향해 걸어가는 길이다. 이 길을 가리켜 토라라고 한다. 시편을 읽으면서 주목해야 할 것이 표제어이다. 이 표제가 시편에 대한 해석학적 시야를 제공하면서 시편을 보는 창을 열어준다. 시편이 오늘날 형태로 정리되고 편집된 시기는 제2성전 시기로 본다. 시편은 다섯권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것은 오경을 본떠 편집된 것으로서 시편을 모세의 토라로 읽으라는 지침이 새겨져 있는 것이다. 오경의 모세의 토라라면 시편은 다윗의 토라인 셈이다. 그래서 하나님께 드리던 사람의 말(기도와 찬양)이 사람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토라)으로 받아들여진 것이다. 이런 점에서 시편을 한 권의 책으로 보고 그 전체 구성의 미학을 살피려는 시도가 주목을 끈다. 시편은 이스라엘의 이야기를 다시 쓰면서 왕국시대 부터 바빌론 포로기를 거쳐 유대공동체로 다시 등장하기 까지를 풀어가고 있다.
시편의 서시(시편 1편과 2편)
시편 1편은 제1권의 서시이자 시편 전체의 들머리이다. 시편1편은 우리가 가야할 길에 대한 토라이다. 시편 1편은 시편 전체를 토라로 보게 한다.시편1편은 복있는 사람이 가야 할 길에 대해 가르친다. 그 길은 토라가 가르키는 길이다. 그래서 복있는 사람은 토라를 읆조리고 즐거워한다. 시편2편은 1편과 함게 시편의 들머리이다. 시편1편이 시편의 길인 토라에 들어선 자들에게 걸음새의 자세를 잡아준다면 시편2편은 그 걸음새의 방향을 알려준다. 시편2편은 악한자들이 횡행하는 현실속에서 세상은 하나님의 통치를 드러내는 무대라고 일러주면서 주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기를 바라고 있다.
시편1편이 하나님의 말씀인 토라를 찬양하는 토라시라면 시편2편은 하나님의 통치를 바라는 제왕시인데 주목할 것은 시편에서 제왕시로 간주되는 시가 토라시 옆에 나란히 놓여 있다는 사실이다. 토라시와 제왕시가 더불어 시편의 뼈대를 이루고 있다는 것은 토라가 제시하는 길은 다른 사람이 아닌 왕 된 자가 걸어가야 하는 길이라는 관점은 제시한다. 이런 식으로 시편은 토라를 따르는 신앙과 하나님의 통치를 바라는 소망을 짝으로 소개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시편1,2편은 서로 하나로 뭉쳐 전체 시편을 조망하게 하는 서시 역할을 한다. 이 두 시편을 하나로 읽으면 시편의 서시는 의도적으로 "복있는 사람"으로 시작해서 "복있는 사람"으로 끝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복있는 사람이 누구인가하면 시편1편에서는 토라를 따라 사는 자이고 2편에서는 하나님이 세우신 왕이다. 토라를 따라 사는 자가 하나님이 세우신 왕이고 하나님이 세우신 왕은 토라를 따라 다스려야 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시편 제1권
시편에는 이스라엘의 과거를 기억하고 현재를 진단하며 미래를 조망하는 소리가 담겨있다. 시편은 왕국 시대이후 바빌론 포로기를 거쳐 새로운 신앙공동체로 다시 부상하기까지 이스라엘이 다져야 했던 믿음이 무엇이었는지를 시어로 듣게 한다. 시편 제1권에서 하나님의 백성은 약속의 땅에 들어가 잘 닦여진 왕국시대를 살고 있는 주인공이다. 시편 제1권의 바탕시인 탄원시 단원마다 그 복판에 찬양시가 버티고 있는 생김새는 이스라엘 신앙의 주춧돌이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 신앙임을 일깨워준다. 시편1권은 창조주이신 하나님이 구원의 은총을 베풀어주시기를 바라는 신앙을 시적 언어로 노래하고 있고 그 지평에서 이스라엘의 왕은 하나님을 높이고 백성을 위하는 사람이어야 함을 공표한다.
시편 제1권의 시작인 3편은 2편에서 세상의 모든 대적을 이기고 다스리라는 약속을 받았던 왕이 세상의 대적에게 쫒기며 탄식하는 소리로 시작된다. 시편 1권이 묘사하는 인생살이는 분노와 고통 가운데 탄식으로 가득하다. 시편 1권의 세계는 탄식의 능선에 오르는 길이다. 시편1권이 펼치는 ㅌ탄식의 능선은 천지창조의 으뜸자리에 앉은 사람이 창조주 하나님에게서 느끼는 거리감에 주목하게 한다. 그러나 탄식하는 자라는 어두운 현실이지만 그 암담한 현실에서 외치는 탄원은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새롭게 하는 통로가 된다. 시인은 탄원하고 토로하며 간구한다. 시인의 기도에는 내면적인 갈등이 배어있고 분노가 서려있다. 시인의 탄원에는 의로우신 재판장을 향한 절규가 담겨있다. 하나님만이 시인의 삶에 새로운 지평을 창조해낼 수 있기에 시인은 하나님께 부르짖는 것이다. 그래서 시인의 탄원하는 기도는 기도는 어두운 현실속에서도 하나님의 구원을 신뢰하는 찬송과 감사로 바뀐다.
시편 제2권과 제3권
시편 2권(시42-72편)은 제3권(73-89편)과 함께 생각해야 한다. 시편 2, 3권은 다윗의 시 모음집을 가운데 두고 그 앞 뒤에 고라의 시와 아삽의 시를 대칭적으로 배치해 놓고 있다. 시편 2권은 1권과 더불어 다윗이 수립한 왕조를 향한 간구로서 1권처럼 탄원의 기도를 이어간다. 특별히 2권은 시편 가운데서도 구원과 해방을 바라는 기도를 하고 있다. 기도 중에 시인은 하나님이 이루셨던 출애굽의 역사를 떠올리며 하나님의 과거의 구원이 오늘의 구원으로 이루어지는 것을 확신한다. 시편 2권의 시들은 다윗이 세운 나라가 하나님과 백성 앞에서 정당하게 유지될 것을 기대하고 있다.
시편 2권과는 달리 시편3권의 시들은 다윗 왕조가 패망한 뒤 움튼 성전을 향한 간구와 소망, 기대와 열정으로 채워져 있다. 다윗 왕조에 대한 기대가 제3권부터는 다윗왕조에 대한 실망으로 바뀌면서 다윗왕조가 아닌 하나님의 직접통치를 기다리는 소망으로 옮겨가고 있다. 시편의 전체 생김새가 그렇듯이 인간의 왕권에 대한 기대에서 야훼 하나님의 직접 통치를 대망하는 소망으로 변화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3권에서 두드러진 장소는 하나님의 통치가 나타나는 시온에 있는 하나님의 성소이다. 3권은 천지창조에서 출애굽 거쳐 예루살렘의 패망에 이르는 긴 역사를 회고하면서 하나님이 역사의 주인이심을 고백한다. 이렇게 3권은 이스라엘의 절망과 이스라엘의 희망을 함께 노래하고 있다.
시편 제4권과 5권
시편 4권과 5권은 시편 1,2,3권이 하나로 이어지듯 하나로 연결된다. 이때 시편 1,2,3권이 질문 역할을 한다면 제4,5권은 그 질문에 대한 해답 구실을 한다. 여기에 수록된 시들의 시대적 배경은 모두 다윗시대보다 훨씬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이는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맺은 언약이 다윗 언약보다 훨씬 앞서 이루어진 것인을 떠올린 것이다. 그래서 시편 4권은 탄원과 찬양의 이중주를 연주하면서 그속에서 미래를 향한 비전을 제시하며 다윗왕조의 멸망과 종말의 때에 누릴 기쁨사이에서 구원을 기다리는 신학을 요약해 놓고 있다.
시편 4권 역시 3권과 마찬가지로 다윗왕조가 패망한 이후의 역사적 정황을 배경으로 삼으면서 이스라엘의 희망이 창조주 하나님에세서 온다는 사실을 노래한다. 다시 말하면 창조주 하나님과 이스라엘이 어떤 관계를 맺고 사는지에 이스라엘의 미래가 달려있다고 고백한다. 시편 4권에서는 다윗보다 모세가 크게 부각되는데 그 이유는 4권의 상황이 왕국이 없고 자기 땅이 없고 성전이 없던 시대에서 모세 시대를 회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세를 통하여 광야에서 인도하시던 하나님이 광야와 같은 그 시대에도 인도하신다는 믿음을 고백하는 것이다. 그래서 4권에 소개되는 이스라엘의 조상들은 모두 다 신실하게 광야 여정을 헤쳐나갔던 주인공들이었다. 이처럼 시편 4권의 시들은 조상의 신앙의 모티프를 이스라엘의 정체성을 파악하는 참조점으로 활용하여 당시의 신앙 공동체가 이스라엘의 청사진을 다윗시대가 아닌 족장 시대, 모세시대에서 구하고 있는 것이다. 시인은 자기 시대의 희망을 다윗이 아닌 아브라함이나 모세의 여정에서 찾아내려 한 것이다. 그래서 4권에서 단연 돋보이는 주에는 인간왕이 아니라 주님이 다스리신가는 선언인 것이 이 때문이다. 다윗 왕정의 회복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이 이 땅에서 실현될 것을 바라본 것이다.
시편 제5권은 주님께 구원받은 사람들이 외치는 감사와 찬양으로 시의 근본으로 삼는다. 시의 시작과 끝에 할렐루야가 등장하므로 할렐루야 시모음집이라고도 한다. 이 시들은 대체로 바빌론 포로살이에서 구원받은 사람듫의 정서를 드러낸다. 5권에는 다양한 형식의 시들이 있지만 그 공통점은 새 역사의 현장에서 듣는 옛노래라는 형태를 띠고 있다는 사실이다. 또한 다윗왕국에 대한 기대와 비전을 종말론적인 지평에서 재해석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시편 5권의 여정은 혼란스런 역사의 한복판에서 하나님의 구원을 체험한 자들이 온 누리를 다스리시는 시온의 하나님을 찬양하는 시로 채워져 있다. 시편 4권의 시들이 무너진 다윗왕국에 대한 대안으로 야훼 하나님이 통치하실 왕국을 제시했다면 5권의 시들은 종말의 날에 실현된 메시아(다윗의 후손)의 통치를 기대한다.
시편과 예수 그리스도
기원전 1세기 당시 유대인 사회의 정신적 풍토는 메시아 오심을 대망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모세의 토라 못지 않게 다윗의 토라인 시편을 애독하였다. 기독교 공동체는 시편을 예수 그리스도가 오셔서 걸어거실 왕되신 메시아에 대한 예언으로 읽었고 그래서 시편의 예언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취된 것으로 믿었다. 시편의 서시인 1편과 2편에서 보듯이 시편의 두 주인공은 의인와 왕이다. 그래서 시편의 시들은 한편으로는 고난당하는 의인을 다른 한편으로는 악을 정복하고 세상을 이긴 왕을 기리고 있다. 기독교 공동체는 시편의 이 두인물을 예수 그리스도의 이미지로 읽었다. 그러므로 시편은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께 드린 기도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시편으로 기도하셨고 우리도 시편에서 기도를 배워야 한다. 혼란스런 우리의 말로 거짓된 우리의 마음으로 드리는 기도가 아닌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주신 시편의 언어로 드리는 기도를 배워야 한다.
[독후 소감 및 평가]
오경이 모세의 토라라면 시편은 다윗의 토라라는 저자의 말이 인상 깊다. 시편이 오경을 본떠 5권으로 편집되었다면 오경이 가진 신학을 시편 역시 가지고 있을 것이며 그 공통점은 하나님의 말씀인이 토라를 중심으로 한 신학일 것이다. 시편을 그 동안 다양한 시들의 모음집 정도로 알았는데 시들이 각 권마다 특징적인 메시지가 있고 각 권들은 또한 시편 전체와 연결되어 있으므로 오경을 한권으로 읽어야 하듯이 시편도 한 권으로 읽어야 한다는 저자의 주장은 공감이 간다. 시편이 독립된 시들의 모음집이 아니라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있으며 또한 각 권이 서로 유기적 내러티브를 가지고 통일된 신학적 메시지를 말하고 있다는 관점은 주목할만 하다. 역사적이고 공동체적 맥락에서 시편을 읽으며 각 권의 유기적 상호 관계속에서 시편의 전체 내러티브를 이해하려는 시편 독법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저자는 시편의 역사적 배경을 알기위해 표제어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시편이 사람의 묵상이지만 그것이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이 되기도 하는데 저자는 그 이유는 그 묵상이 하나님의 계시로 주어진 묵상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하나님의 계시가 인간의 묵상을 통해 주어진 것이 시편이라는 관점은 흥이롭다. 그러나 그 묵상은 그저 개인의 경건의 산물이 아니라 역사 현실과의 치열한 공동체적 씨름의 결과라는 사실을 간과하면 안되겠다. 시편은 다윗 왕국의 수립부터 왕국의 멸망, 바빌론 포로기와 포로귀환 까지의 역사적 격변기를 배경으로 하면서 역사에 대한 해석을 시도하고 있다. 저자는 시편 1, 2권은 다윗왕조를 위한 구원과 해방을 기도하지만 3권부터는 다윗왕조에 대한 실망과 하나님의 직접통치에 대한 소망이 나타나고 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아마도 3권의 역사적 정황은 다윗왕조의 멸망이후 포로기였을 것이다.
이어서 4, 5권은 1,2,3권과는 사뭇 다른 시들이 등장하는데 이는 아마도 포로귀환기의 역사적 정황 때문일 것이다. 저자는 1,2,3권이 질문이라면 4,5권은 이에 대한 대답이라고 말한다. 하나님이 세우리라 약속하신 다윗 왕조가 왜 멸망했는가? 라는 질문에 4,5권은 무엇이라고 대답하는가? 그 대답은 아마도 다윗왕조는 멸망했지만 하나님의 약속은 폐하여 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4, 5권에서는 다윗 시대를 훨씬 거슬러 올라가 모세시대로 돌아간 것인데 그 이유는 4권의 상황이 왕국이 없고 자기 땅이 없고 성전이 없던 시대에서 모세 시대를 회상하고 있기 때문이며 모세를 통하여 광야에서 인도하시던 하나님이 광야와 같은 그 시대에도 인도하신다는 믿음을 고백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스라엘의 진정한 소망은 인간에게 있지 않고 언약에 신실한 하나님께 있다는 만고불변의 진리를 선포한 것이다. 그러기에 5권은 당연히 하나님께 대한 찬양의 소리가 울려퍼지는 할렐루야 시 모음이 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저자는 시편 전체의 서사가 시편 1, 2편이라고 말하면서 또한 시편 1, 2편은 독립돤 시가 아니라 하나의 시로 읽어야 한다고 제안한다. 시편 1편이 토라시라면 시편 2편은 제왕시인데 언듯 보면 이 두 시는 서로 관련이 없어 보이지만 저자는 '복있는 자'라는 연결고리로 이 두 서시는 긴밀히 연관된다고 말한다. 시편1편이 토라를 따라 사는 자가 복이 있다고 말하다면 시편 2편은 토라를 따라 다스리는 왕에게 복종하는 자가 복이 있는 자라고 말한다. 그러니까 결국 서시 2편의 메시지는 토라에 따라서 살고 또 다스리는 자가 복있는 자임을 말하는 것인데 이것이 또한 시편 전체의 메시지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 오경이 토라 자체를 말했다면 시편은 토라를 따라 사는 삶을 말한 것이라 볼 수 있지 않을까?.
왕대일의 시편 한권으로 읽기
2017-06-28 23:00:35
시편1권의 세계는(시편의 서론격인 1,2편을 제외하고) 전반적으로 탄식의 능선에 오르는 길이다. 주목할 점은 시편1권의 바탕인 탄원시 단원마다 그 복판에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찬양시가 놓여있다는 것인데 이는 이스라엘 신앙의 기초가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신앙임을 보여준다. 이렇게 시편 1권이 이스라엘 신앙의 정초를 세우면서도 그 밑바탕에 하나님을 향한 탄원이 있다는 것은 이 탄원시들이 단순한 틴식이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을 향한 호소임을 시사한다. 시편 2권에도 탄식시들이 이어지지만 여기서 시인은 탄식 가운데서도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으신 하나님을 기억하고 소망하고 있다. 시편 3권의 시들은 역시 대부분 다윗왕조의 패망을 애도하는 분위기를 그 배경으로 하고 다윗왕조의 후손이 대대로 왕좌를 이어갈 것이라는 하나님의 언약이 수포로 그치고 만 현실에서 느끼는 좌절과 슬픔을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다윗 왕조와 성전을 이스라엘 신앙의 양 축으로 삼는 시편 1, 2권과는 달리 시3권에는 천지 창조에서 출애굽을 거쳐 예루살렘 패망에 이르는 역사를 더듬어 보는 역사회고의 시들이 주로 등장한다.
시편4권의 시들의 배경은 다윗 시대보다 훨씬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이는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맺은 언약이 다윗 언약보다 훨씬 앞서 이루어져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시편4권은 다윗 왕조가 패망한 이후의 정황을 배경으로 삼는데 그 비전은 단순히 잃어버린 땅을 되찾는 것에 머무르지 않고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이 새롭게 탄생되는 부활을 꿈꾸고 있다. 그래서 4권에는 다윗 왕조의 멸망(3권의 마지막 시89편)과 종말의 때에 누릴 기쁨(5권의 첫번째 시107편) 사이에서 구원을 기다리는 신학을 요약해 놓고 있다. 시4권에는 다윗보다 모세가 더 부각되고 있는데 그 이유는 시4권의 정황이 왕국이 없고 자기 땅이나 성전이 없던 시대이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거칠고 암울한 시절에 시편 기자는 이스라엘이 모세의 인도로 광야를 걷던 시절을 회고하면서 애굽을 떠나 가나안으로 가던 그 시절에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주셨던 말씀과 약속을 떠올리고 있다. 4권에는 모세의 이름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아론, 사무엘, 비느하스 등이 등장하는데 이들은 모두 이스라엘 신앙의 증인들로서 신실하게 광야 여정을 헤쳐 나갔던 주인공들이다. 이렇게 시4권의 시들은 이스라엘 조상들의 신앙 모티프를 이스라엘의 정체성을 파악하는 레퍼런스로 사용하여 이스라엘의 소망을 다윗 시대보다 훨씬 이전의 족장 시대, 출애굽 시대에서 찾았다. 다윗의 자리를 아브라함이나 모세로 대체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제 다윗이 우리를 다스린다는 소리는 흘러간 옛 노래이다. 이제부터 이스라엘이 불러야 할 새노래는 주님이 우리를 다스린다이다. 다윗 왕 이전에 이스라엘에는 이미 왕이 있었는데 그 왕이 바로 야훼 하나님이셨다. 창조의 주이신 야훼가 본래 이스라엘의 왕이셨다. 그러니까 주님이 우리를 다스리신다고 노래하는 것은 이스라엘의 근본을 되찾자는 소리다. 시4권의 왕을 위한 노래들은 이스라엘이 가질 희망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준다. 시4권에서 단연 돋보이는 주제는 주님이 다스리신다는 선언이다. 이것은 다윗 왕정의 회복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이 이 땅에 실현된다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시온의 회복을 노래하는 시102편에는 역사의 마지막 때에 이루어질 시온의 회복을 강하게 표현하며 온 세상이 혼돈에 빠진 것처럼 보이는 때에도 하나님의 현존을 긍정하는 드넓은 안목을 보여주고 있다.
시5권에는 주님께 구원받은 사람들이 외치는 감사와 찬양의 시들이 주조를 이루고 있다. 시5권의 시들은 대체로 바벨론 포로살이에서 구원받은 사람들의 정서를 드러내는데 중요한 것은 이 시들이 새 역사의 현장에서 듣는 옛 말씀의 형태를 띠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뿐 아니라 시5권의 시들은 앞서 1-4권에서 펼쳤던 다윗 왕국에 대한 각각의 기대와 비전을 종말론적인 지평에서 재해석하고 있다. 시5권의 전체적은 틀은 혼란스런 역사의 한복판에서 하나님의 구원을 체험한 자들이 온 세상을 다스리는 시온의 하나님에 감사하고 찬양하는 여정이다. 여기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시인의 목소리에 종말과 메시아에 대한 비전이 담겨 있다는 사실이다. 이제 의로운 자들이 영원히 하나님의 이름을 송축하게 될 것이며 온 천하가 하나님 중심으로 재편될 것이다. 이런 종말론의 지평이 이어지면서 시인은 마침내 "할렐루야"의 찬양의 세계로 우리를 인도한다,. 거기엔큰 메시아를 향한 이스라엘의 소망이 강하게 드러나고 하나님이 기름부어 세우실 메시아가 장차 하나님의 나라를 온 세상에 세우게 된다는 비전이 대담하게 새겨져 있다. 시4권의 시들이 무너진 다윗왕국에 대한 대안으로 야훼 하나님이 세우실 왕국을 제시했다면 5권의 시들은 종말의 말에 실현될 다윗의 후손으로서의 메시아의 통치를 기대한다.
이상의 저자의 핵심 주장을 요약하자면 시편을 한권으로 읽자는 것인데 이것은 시편을 개인적이고 영적인 차원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역사를 배경으로 하고 읽어야 한다는 제안이다. 저자의 주장을 언약의 관점에서 본다면 1권은 언약백성인 이스라엘의 비참한 현실에 대한 탄식시들이 주를 이룬다. 2권은 다윗 왕조를 배경으로 하여 언약을 배반하여 패망한 다윗 왕조에 대한 탄식시들이 이어진다. 3권은 비록 다윗 왕조는 패망했지만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를 기대하는 희망을 노래한다. 4권은 다윗 왕조 이전의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하나님의 왕되심을 기억하고 소망한다. 5권은 하나님이 세우실 메시아를 통해 도래할 하나님의 통치를 감사하고 찬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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