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섭리에 대하여
2014-12-27 14:29:26
하나님의 천지 창조 이것이 기독교 신앙의 근본이며 출발이다. 기독교는 하나님의 천지 창조를 고백하여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신앙한다. 그러므로 창조를 떠나서 기독교는 성립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창조와 함께 반드시 잊지 말아야 할 것이 바로 섭리이다. 섭리는 창조를 떠나서 생각활 수 없으니 이는 섭리란 창조히신 만물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통치 행위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만물을 창조하실 뿐 아니라 창조하신 만물을 다스리시는 분이시다. 그러므로 기독교는 창조주 하나님을 신앙할 뿐 아니라 또한 섭리주 하나님을 고백한다. 기독교의 하나님은 이신론자의 하나님처럼 만물을 창조만하고 다스리지는 않는 분이 아니라 창조하신 만물을 적극적으로 다스리시는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창조주이시므로 당연히 섭리주이신 것이며 창조와 섭리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것이다.
그런데 창조와 섭리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는 사실은 창조의 목적과 관련이 있다. 하나님의 창조는 맹목적이 아니라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있다.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하신 후 제 7일에 안식하셨다는 계시는 창조의 목적지는 영원한 안식임을 암시한다. 그리고 그 안식이 단순히 일을 마치고 휴식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만물이 영원한 샬롬에 들어감으로 말로 다할 수 없는 기쁨과 평안을 누리는 것임을 요한계시록은 잘 보여준다. 그러니까 섭리란 단순히 창조하신 만물을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창조하신 만물이 창조의 목적에 이르도록 이끄시는 하나님의 다스리심이라고 보아야 한다. 요약하면 섭리란 하나님이 지으신 만물이 창조목적에 이르도록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다스림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어떻게 섭리하시는가? 하나님의 섭리는 이신론자들이 생각하듯이 하나님이 창조시에 만물에 부여한 창조질서나 창조규칙이 아니다. 창조시에 정하신 창조질서가 섭리의 한 방편이긴 하지만 그것이 곧 섭리는 아닌 것이다. 이신론자들은 섭리를 질서나 규칙으로 대치하여 하나님은 창조이후에 만물을 다스리시는 것이 아니라 만물이 창조시에 부여한 질서나 규칙에 따라 돌아가도록 할 뿐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성경은 창조 질서나 규칙은 하나님의 섭리의 한 방편일 뿐이지 그 자체가 하나님의 섭리는 아니며 하나님은 필요하다면 그런 질서나 규칙을 초월하여 섭리하심을 말하고 있다.
하나님의 섭리와 관련하여 주어진 중대한 계시는 하나님의 인간 창조에서 나타난다.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신 이유는 하나님이 지으신 만물을 하나님 대신 인간이 다스리게 하시려는 것이었다. 이것은 하나님의 섭리의 방식이 인간을 통한 다스림임을 보여준다. 하나님의 섭리는 직접통치가 아니라 인간을 통한 간접통치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셈이다. 이 말은 하나님의 창조목적이 인간을 통한 간접통치의 방식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인간은 하나님의 창조목적을 이루는 일꾼으로 세워진 것이며 바로 여기에 인간 존재의 의미가 있다. 그래서 성경은 인간을 창조목적을 이루는데 하나님의 동역자라고 부르는 것이다.
인간이 창조목적을 이루는데 하나님의 동역자라는 계시가 함의하는 중대한 의미는 인간은 늘 하나님의 뜻을 살펴 그 뜻에 적극적으로 순종하여야 할 책임이 있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인간을 통한 간접통치란 인간의 다스림을 통해 하나님의 뜻이 실현되는 것을 전제하기 때문이다. 인간을 창조한 이후에 주어진 선악과 금령은 하나님의 간접통치를 실현할 인간이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고 그 뜻에 순종하여야 한다는 중대한 진리를 계시한다. 결국 하나님은 인간의 자발적인 순종을 통하여 만물을 다스리심으로 만물이 창조의 목적에 이르도록 섭리하신다는 것이 섭리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인 것이다.
여기에 바로 인간 역사의 의미가 있다. 역사란 창조목적에 이르는 과정으로서 인간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다스리는 기간이다. 역사란 인간들이 만들어 내는 삶의 직조물이다. 그러므로 인간을 떠나서 역사는 존재하지 않지만 또한 창조 목적을 떠나서 역사의 의미는 발견되지 않는다. 그러나 역사는 창조목적을 향하여 곧바르게 가기 보다는 우여곡절을 겪으며 무의미하고 고통스럽게 표류할 때가 더 많다. 그것은 인간이 하나님의 뜻을 떠나 불순종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사는 인간의 불순종에도 불구하고 창조목적을 향하여 나아갈 것이다. 비록 그것이 더디고 표류하는 일이 많을지라도 반드시 하나님의 창조목적에 도달할 것이다. 바로 이것을 위하여 하나님은 자기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역사 가운데 보내신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창조목적은 인간의 순종을 통하여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사람이 되신 하나님의 아들의 순종을 통하여 역사는 창조목적을 향하여 나아갈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적 오심이 자동적으로 창조목적을 이루는 것은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은 이 사실을 잘 보여준다. 그의 죽음과 부활의 목적은 단순한 죄용서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새 백성을 만들기 위한 것이다. 이 새로운 백성의 출현과 그들의 순종을 이 만들어 내는 역사가 이제 창조목적을 향하여 곧바르게 나아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 그리고 죽음과 부활은 하나님의 섭리의 역사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순종하는 새 백성을 만들어 내시고 그들의 순종을 통하여 하나님은 창조목적을 이루시려는 것이다.
인간 역사의 의미는 무엇이며 우리는 어떻게 살 것인가? 이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답은 하나님의 창조와 창조목적을 이루시는 섭리에서 찾아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창조목적을 이루는 하나님의 동역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고 살피며 그 뜻에 순종하여야 한다. 하나님의 뜻을 연구하고 가르치고 준행하는 일, 이것을 떠나서 우리는 역사의 의미와 인간 삶의 목표를 어디에서 발견할 수 있겠는가?
하나님의 섭리
2015-05-03 01:45:13
세상을 움직이는 원리에 대한 다양한 생각들이 존재하지만 크게 두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는 이신론(Deism)인데 이것은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시면서 일정한 법칙에 따라 우주가 움직이도록 정해놓으셨고 우주의 운행과 세상의 역사에는 관여하지 않으신다는 생각이다. 다른 하나는 운명론인데 이것은 하나님에 의해 세상의 미래는 이미 필연적으로 결정되어 있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성경은 이런 두가지 생각을 모두 반대한다. 성경은 하나님은 세상의 창조주이시며 동시에 주권자라고 말한다는데, 이는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셨을 뿐 아니라 창조 세계를 그냥 내버려주시는 분이 아니라 세상을 다스리고 이끌어 가시는 분이시라는 의미이다. 이러한 하나님의 역사를 섭리(Providence)라고 하는데 이는 하나님이 자신의 창조물과 협력하면서 창조세계를 보전하고 자신의 목적대로 통치하시는 지속적인 행동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섭리의 범위는 우주적이다. 무생물, 생물, 자연, 역사, 인간 등 하나님의 섭리가 미치지 않는 영역은 없으며 하나님은 이 모든 것을 창조하신 이후 지금까지 다스리고 계신다. 신자이든 불신자이든 하나님의 섭리에세 배제되지 않는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섭리는 세상을 창조하신 목적을 이루기 위한 것으로서 하나님은 창조세계를 통하여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하여 세상을 섭리하시는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섭리의 구체적인 내용은 무엇인가? 첫째는 보존(preservation)인데. 이것은 피조세계가 하나님의 창조 목적에 이르도록 그 존재를 유지시키시는 하나님의 활동이다. 만물이 존재를 지속하는 것은 하나님의 보존 활동때문이다. 만물은 그 존재의 지속을 그 존재의 원천이신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존하는 것이다.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세상이 죄로 오염되었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은 세상을 심판하여 소멸시키지 않으시고 종말의 때까지 세상을 보존하신다. 그리고 종말은 세상의 소멸이 아니라 세상이 하나님의 창조목적이 도달하는 하나님의 정하신 때를 의미한다.
섭리의 두번째 차원은 통치인데, 이것은 하나님이 세상을 향한 자신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하여 모든 것을 주관하고 다스리신다는 것이다. 우주와 자연이 어떤 질서와 법칙대로 움직이는 것도 하나님의 통치를 받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통치는 그 질서와 법칙에 매이지 않고 필요하다면 그 질서와 법칙을 초월하여 나타나기도 한다. 인간역사의 흐름과 국가의 흥망성쇠도 하나님의 통치 아래 있다. 역사 가운데 나타나는 수많은 역사적 사건 이면에는 하나님의 통치의 손길이 미친다는 것이다. 인간은 역사의 흠름과 사건들의 원인과 결과를 놓고 다양한 분석을 시도하지만 역사의 거대한 흐름은 커녕 개별 사건들의 궁극적인 인과관계도 정확히 알지 못한다. 그러나 인간 역사가 하나님의 통치 아래 있다고 해서 하나님이 인간 역사의 모든 사건들이 하나님의 승인과 인정하에 일어았다는 의미는 아니다. 하나님이 역사를 섭리하신다는 것은 그 어떤 역사적 사건들도 하나님의 섭리밖에서 일어나지 않는다는 의미이지 하나님의 뜻을 거스리는 일이 일어날 수 없다는 말이 아니다. 인간은 자신들의 악행으로 수많은 불행한 사건들을 자초하고 하나님의 뜻을 거스리는 일들을 일으킨다. 그러나 그런 모든 일들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자신의 목적을 성취해 나가시는데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섭리이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는 말이 피조물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이 모든 것을 마음대로 하신다는 뜻은 아니다. 피조물의 어떤 선택이나 행동에 관계없이 하나님이 모든 결과를 미리 정하시는 것도 아니다. 하나님인 인간이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는 존재로 만드셨고 자신의 선택에 대해 책임을 지는 존재로 만드셨다.그렇지 않다면 하나님이 인간의 악행에 대해 책임을 묻고 심판하실 수 없을 것이다. 하나님의 통치는 사람의 판단과 행동에 적절히 반응하면서 그들의 행동을 활용하시고 또 그것에 상응하시면서 다스리신다. 하나님의 통치는 사람에게 죄우되지 않지만 사람을 무시하지도 않는다. 일반적으로 하나님은 사람을 통하여 다스림을 나타내시는데 사람의 악행과 불순종에 대하여는 진노와 거스림으로 나타나고 사람의 선행과 순종에 대하서는 기뻐하심으로 나타난다. 특별히 하나님은 신자들의 자발적 순종을 원하시며 그들의 순종을 통하여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세상이 나타내시길 기뻐하신다. 그러나 불신자들의 악행이나 불순종조차도 사용하시어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는 분이시다. 이것이 하나님의 섭리의 탁월성이요 신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