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죽음과 속죄
2014-09-19 12:14:26
기독교의 상징이 십자가가 된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한 종교에서 종교를 창시한 사람의 죽임이 그 종교의 상징이 된 것은 매우 비상식적이고 납득하기 어렵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최고의 사역은 십자가의 죽음이다. 바로 이것을 위하여 하나님은 성육신하셔서 오신 거이다. 하나님의 뜻은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죽는 것이었다. 예수님은 자신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고 이 땅에 왔다고 말슴하셨다.(히10:4-7) 또한 자신이 죽는 것이 자신의 할 일이라고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었다.(요12:27, 막 10:45, 8:31) 그러므로 성육신 자체가 궁극적인 목적이 아니다. 성육신은 대속의 죽음을 위해서 거쳐야 할 과정이다. (히10:10)
예수님의 죽음은 인간의 죄를 대속한 것이었다. 이것은 인간의 죄의 심각성을 보여준다. 죄는 하나님에 대한 반역이요 하나님에 대한 적대감이다. 거룩하고 공의로운신 하나님은 인간의 죄에 대하여 진노하신다. 죄에 대해 진노하시고 죄인을 심판하시는 것은 거룩하신 하나님의 본성이다. 이 심각한 죄의 문제를 해결하는 유일한 길은 하나님의 아들의 죽음뿐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죄인들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이다. 그러므로 심자가 죽음은 죄에 대한 형벌이며 하나님의 진노의 결과이다. 그러나 그 죽음이 대속적 죽음이라는 사실 때문에 십자가는 무한한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낸다. 하나님인 인간의 죄를 해결하시려고 아들을 내어주신 사랑을 보이신 이유는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자기 형상으로 지으신 인간의 포기하지 않으신다.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에는 하나님의 진노와 사랑이 동시에 충만하게 나타났다. 십자가에는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가, 십자가에는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이 충만하게 나타난다. 공의없는 사랑이 사랑이 아니고 사랑없는 공의가 공의가 아니듯이 하나님의 행하심에는 사랑과 공의가 항상 함께 나타난다. 그래서 하나님의 심판은 곧 구원을 위한 것이요 구원은 곧 심판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그러므로 우리가 받은 구원이 값없다는 것은 우리가 값을 치르지 않았다는 것일 뿐, 그것은 그리스도의 죽음이라는 값으로 칠 수 없는 막대한 대가를 지불하고 얻은 고귀한 것이다(벧전 1:18-19) 그리스도의 죽음은 우리를 사망의 권세에서 해방시킨 속전(ransom)이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유일한 것이지만 그 십자가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리스도의 죽음은 그리스도인의 죽음을 요구한다. 이것을 바울은 신자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죽음에 참여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도 자기 십자가를 지고 그리스도를 따라야 한다고 말씀하신다.(마16:24) 그것은 죄에 대하여 죽는 것이요 자기의 중심성을 포기하는 것이며 때로는 고난의 삶을 감수하는 것이다.(히12:2, 마5:10-11)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은 하나님께 대한 절대적인 순종이었다. . 하나님을 향한 삶을 살기 위해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 순종이다. 그러므로 십자가를 지는 삶은 하나님을 위해 사는 삶이다. 그리고 하나님을 위해 사는 삶은 또한 이웃을 위한 사랑과 희생의 삶이다. 우리가 져야 할 십자가는 이웃을 향한 적극적인 삶을 산다는 것을 의미한다.(엡 5:2) 사랑은 구체적으로 이웃에게 친절하고 귱흉히 여기고 용서하는 것이다.(요일 3:17-18, 엡 4:32, 갈6:10) 이것이 바로 하나님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 삶이 아닌가?
[참고 사항 ] 그리스도의 속죄론
1.배상설(The ransom to Satan theory)-Irenaeus. Origen = 그리스도의 죽음이 사탄에게 지불된 속전(贖錢)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인류를 마귀로부터 석방시킬 때 일정한 대가를 지불해야 했다. 마귀는 예수의 생명을 요구했다. 그래서 예수는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서 마귀에게 값을 지불했다는 설.
2.만족설(객관설)-Anselm = 11세기 영국의 남쪽 캔터버리(Kenterbery) 대주교 안셀름이 주창한 것으로 아담의 범죄로 사람에게는 죽음을 가져왔고 하나님께는 결정적인 명예의 손상을 끼쳤고 하나님은 인간에 대한 노여움을 가지고 계셨다. 이러한 하나님의 명예를 회복하고, 노여움을 풀어드리기 위해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께서 사람이 되셨고 그리스도가 인류를 대신해서 십자가에서 벌을 받으심으로, 하나님께서 명예를 회복하시고 노여움을 푸시고 만족해 하셨다는 것이다. 그리고 죄는 벌을 받았으며, 그 결과 인류는 구원을 받게 되었다. 하나님은 자기의 의를 학립하고 인류의 죄를 벌하고 인류를 구원하는 길을 택하셨다.
3. 도덕 감화설(주관설. 도덕설)-Abelard = 「아베라르」라는 중세신학자는 만족설을 철저히 반대하면서 도덕설을 주장했다. 하나님의 만족을 위해서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다고 하면 그 하나님은 무정하고도 냉혹한 신이라고 하면서 우리의 하나님은 그런 신이 아니라는 것이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것은 독생자를 아끼지 아니하실 정도로 인류를 사랑하신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의 표현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십자가상의 그리스도를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도덕적 감화를 받아 자기도 경신애인의 생활을 하도록 하신 사건이라는 것이다.
4.형벌 만족설 -Luther & Calvin = 루터와 칼빈 같은 개혁 신학자들이 안셀름의 만족설을 따르면서, 거기에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을 포함시켰다 십자가는 죄에 대한 하나님 심판이라는 것이다. 인류의 죄를 그대로 벌하면 모든 사람이 죽게 되니까 그리스도께서 그 모든 죄를 대신 지시고 벌을 받으심으로 죄의 문제를 해결한 것이다(갈 3:10). 죄는 반드시 벌을 받아야 한다는 것과 사람은 반드시 구원받아야 한다는 하나님의 사랑이 함께 나타난 것이다.
5.통치론(The Government) -Grotius = 무너진 인간이 피조된 본질에서 이탈하여 죄를 범함으로 신의 세계통치에 차질을 초래했다. 통치권을 재확립하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셨다. 하나님의 무너진 통치권을 재확립하기 위해서 죄를 벌하셨는데 그 길은 십자가의 길밖에는 없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만이 그 일을 감당할 수 있었다는 주장이다.
6. 고전설(classical theory)-Aulen = 십자가 사건은 신과 마귀의 세력의 투쟁이다. 결과 신의 승리로 끝났다. 이러한 사상은 초대교회로부터 발견되는 사상이다. 즉, 고대로부터 현재까지 강조된 설이라는 것이다.
7. 모범론(The example theory)-Socius = 17c 소시아누스의 주장으로서 그리스도는 사람에게 자기 생활과 죽음으로 참된 순종의 모범을 보이심으로 그들도 이와 같은 삶으로 인도하고 그런 생활을 고취시킴으로서 구원으로 인도하셨다.
그리스도의 부활
2014-09-19 14:07:05
부활은 상식적으로 믿기 힘든 이야기인데 부활신앙이 기독교의 핵심이 된 이유는 무엇인가? 왜 기독교는 이런 비상식적인 얘기를 전면에 내세운 것인가? 바울 당시에도 고린도 교회안에 부활을 부인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부활의 반대자들은 예수의 부활이 역사적인 사건이 아니라 제자들이나 후대 기독교가 만들어 낸 신화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성경은 예수님의 부활이 단지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은밀하게 알려진 것이 아니라 500명이 넘는 많은 사람들에게 공공연히 알려진 사건이라고 기록한다.(마 28:9-10, 17, 막 16:14, 눅 24:30-31) 또한 예수의 죽음으로 뿔뿔이 흩어진 제자 공동체가 다시 모여서 초기 기독교 공동체로 성장하게된 이유는 부활 사건을 빼놓고는 설명할 수 없다. 부활신앙이야말로 기독교라는 종교의 진정한 출발점이었다. 부활을 목격한 사람들의 변화된 삶의 모습은 예수님의 부활의 사실성을 중거하는 강력한 근거이다. 그들은 죽음을 불사하고 신앙을 위해 살았는데 만일 부활이 그들이 지어낸 거짓말이라면 누가 거짓말에 목숨을 걸겠는가? 제자들의 삶의 극적인 변화는 부활을 빼놓고 설명할 수 없다.(고전 15:3-12)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여러번 자신이 죽고 다시 살아날 것을 말씀하셨지만 제자들은 그 말인 무슨 뜻인지 알지 못했고 듣기도 두려워하였다. 아마도 제자들은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에야 이 말을 기억하고 그 말의 의미를 깨달았을 것이다. 바울도 부활하신 예수를 만나고 삶이 변화되었으며 부활의 증인이 된 것이다. 부활이 역사적 사건임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예수 그리스도애 대한 신앙의 핵심이 된다. 왜냐하면 부활은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이신자 그리고 그의 죽음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밝는 계시적 사건이기 때문이다. 만일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하지 않았다면 예수의 죽음은 무의미하게 된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그의 죽음이 진정으로 속죄의 죽음이었으며 죄의 형벌인 죽음을 이긴 승리의 시건임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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