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책임
2012-11-04 23:11:33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책임에 대한 신학적 혼란은 교회사에서 4세기 펠라가우스 논쟁과 17세기 알미니우스 논쟁에서 보듯이 신학적 논쟁의 큰 주제였다. 교회 회의에서 펠라기우스와 알미니우스가 정죄됨으로 말미암아 그들의 외침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그 결과 종교개혁의 전통을 이어받은(왜곡된 계승)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하지만 인간의 책임에 대해서는 소홀한 신학에 익숙하게 되었다. 사실 하나님을 절대적인 주권자로 규정하게 될 때 인간의 책임이 설 자리는 없어지고 만다. 하나님의 절대주권 앞에 인간의 책임은 먼지와도 같은 존재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은 절대주권자로만 계시된 것이 아니라 인간의 책임있는 반응을 요구하고 기대하는 하나님으로 더욱 많이 계시된 것을 우리는 주목하여야 한다.
하나님은 천지를 만드시고 인간을 만드시는 역사의 출발점에서 부터 인간과 주고받는 쌍방적 관계를 맺는 하나님으로 자신을 계시하셨다. 하나님이 다른 피조물과는 달리 인간을 하나님 자신의 형상으로 따라 만드셨다는 계시는 이런 의미에서 의미심장한 것이다. 하나님이 인간을 자기 형상으로 만드신 것은 인간을 다른 피조물과는 달리 하나님과 상호관계하며 교제할 수 있는 특별한 존재로 지으 신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더우기 하나님이 인간에게 자신이 지으신 창조세계를 다스리도록 위임하신 것은 하나님 앞에서 인간의 지위가 얼마나 대단한 것이었는가를 실감하게 한다. 하나님을 절대적 주권자로만 규정하는 신학은 사실 그것이 성경에 근거를 둔 것이라고 하더라도 성경의 신적 계시의 일부분만을 반영한 매우 사변적인 신관이 아닐 수 없다.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은 인간과의 쌍방적 관계로 처음부터 인간을 자기와 닮은 꼴로 지으셨을 뿐만 아니라 자신을 대신하여 천지를 다스릴 특별한 지위를 부여하였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사변적으로 자신을 계시하신 것이 아니라 역사 특별히 아브라함으로 시작된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하여 역사 가운데 말씀하시고 행동하시면서 자신이 어떠한 하나님이신지를 계시히셨고 특별히 구약 성경의 핵심적 사상인 언약을 통하여 자신과 이스라엘 백성을 쌍방적인 주고받음의 관계로 설정하신 것이다. 사실 역사를 통한 하나님의 자계시와 언약 사상의 기초가 없이는 하나님 아들의 성육신 사건이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사건은 설명될 수 없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교회사에서 많은 신학적 논쟁을 일으켰고 아직까지도 신학적 혼란으로 남아있는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책임이란 주제는 신관과 인간관의 빈곤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성경에 풍성하게 계시된 신관에 충실하였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책임이라는 이분법적 접근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문제는 하나님을 절대주권자로만 이해하려는 사변적인 신관이 문제인 것이고 하나님과의 떨레야 뗄 수 없는 관계속에서의 인간이 아닌 하나님과 독립적인 인간관이 문제인 것이다. 이런 신학적 혼란을 치료하는 유일한 길은 종교개혁의 선배들이 외쳤던 바 "오직 성경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성경을 통하여 우리는 사변적인 아닌 살아있는 하나님의 풍성한 자계시를 만날 수 있으며 동시에 하나님과 분리되어 생각할 수 없는 인간존재에 대한 근본적 인식에 이를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될 때 우리는 더 이상 하나님의 주권과 그에 대응하는 인간의 책임을 논하는 잘못된 이분법적 사고방식으로 접근하지 않고 처음부터 자신의 형상으로 인간을 지으신 하나님과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인간이라는 유일무이하게 독특한 관계속에서 하나님과 인간의 긴밀한 상호 교제와 주고받음의 신학을 정립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의 절대 주권과 인간의 책임
2014-01-28 22:17:48
하나님의 절대주권과 인간의 책임은 서로 충돌되지 않는다는 것이 정통 칼빈주의의 가르침이다. 그것은 비유컨데 물과 물고기의 관계이다.
물고기는 물을 떠나 살 수없지만 물이 물고기의 자유를 억압하지는 않는다.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신 것을 보아도 인간은 하나님 앞에 자유로운 존재로 창조되었고
선악과 금령을 주신 것을 보아도 하나님은 인간의 자발적 순종을 요구하신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은 자기 의지로 타락하였고
인간은 전적으로 무능력하고 전적으로 부패한 존재가 되었다.
그러나 인간의 전적 무능력과 전적 부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셨고 그를 통하여 이스라엘이라는
언약백성을 만드셨으며 그들에게 율법을 주시고 그 율법에 순종할 것을 요구하셨다.
물론 이스라엘은 울법을 순종하는 일에 궁극적으로 실패하였고
그 결과 역사 가운데 멸망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역사는 무의미했던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로 말이암아 새롭게 시작되는 하나님나라의 모판이 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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