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역사의 의미
배우는 자의 기도/소고(小考)
2012-10-03 00:25:21
하나님은 천지와 만물을 지으시고 맨 마지막에 인간을 지으셨는데 인간은 다른 만물과는 달리 자신의 형상을 따라 지으신 특별한 존재였다. 하나님은 이 인간에게 자신이 지으신 만물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심으로써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목적이 바로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이 지으신 만물을 다스리게 하기 위한 것임을 보여주셨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첫사람 아담에게 주신 선악과 금령은 인간이 어떻게 하나님이 지으신 만물을 다스릴 것인가를 가르쳐 주시기 위한 것이었다. 그것은 인간은 하나님께 순종함으로 만물을 다스려야 한다는 중대한 계시였던 것이다. 인간에게 만물을 다스리는 엄청난 권세가 주어졌지만 그 권세는 임의로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하나님에게 순종함을 통하여 사용되어야 한다는 것을 선악과 금령은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아담은 선악과 금령을 통하여 이것을 배워야 했는데 실패하고 말았다. 아담의 실패는 결국 인간의 특별한 위치 및 주어진 권세의 상실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하나님은 반드시 죽으리라는 말씀을 통하여 이것을 미리 경고하셨다. 그러므로 인간의 육체적인 죽음의 현상은 바로 인간이 창조된 특별한 지위와 권세를 상실하였음을 보여주는 증거인 것이다. 성경은 바로 이것을 죄라고 부르며 이 죄로 인하여 죽음이 왔다고 말한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아브라함으로 부터 시작된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셨고 아브라함에게 특별한 두가지 약속을 하셨는데 그것은 그의 자손이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한다는 것과 그의 자손이 아브라함이 거하는 가나안 땅을 차지하게 될 것이라는 약속이었다. 이 두가지 약속은 당시의 아브라함이 처한 현실에서는 상상할 수 도 없는 매우 비현실적인 약속이었다. 약속이 주어진 당시에 아브라함에게는 단 한명의 자식도 없었으며 가나안 땅에는 아브라함에게 하락된 한 뼘의 땅도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지시를 순종하여 가나안 땅에 왔지만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기근과 죽음의 위협뿐이었다. 이런 상황에 처한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은 이런 두가지 약속을 하시고 그 약속을 반복하여 말씀하시며 아브라함에게 믿음을 요구하셨다. 비록 넘어진 적도 있지만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고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믿음을 의로 여기셨다. 결국 아브라함은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는 하나님의 역설적인 시험을 통과함으로써 믿음의 조상이요 이스라엘의 조상이라는 영예를 얻게되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그의 고향을 떠나 멀고 먼 가나안 땅으로 가라고 하신 것일까? 이스라엘의 역사는 출애굽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신 시점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아브라함이 없다면 이스라엘도 없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신 시점은 노아의 홍수 사건이후이며 이어진 바벨 사건을 통하여 보듯이 인간들이 하나님의 창조목적에서 멀어진 시대였다. 그러므로 우리는 당연히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택하시고 부르신 이유를 하나님의 창조의 맥락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은 당신의 창조목적을 회복하시려고 아브라함을 부르신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어떻게 아브라함을 통하여 창조목적을 회복하시려고 하신 것일까? 우리는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하신 두가지 약속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어떻게 창조목적을 회복하시려고 하셨는지 살펴볼 수 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가나안 땅으로 가라고 하셨다. 당시의 가나안 땅은 하나님없이 사는 족속들도 가득한 땅이요 하나님의 창조목적에서 멀어진 어둡고 추악한 삶으로 얼룩진 땅이었다. 한마디로 그곳은 더럽혀진 땅이요 창조목적을 상실한 땅이었던 것이다. 물론 이런 현실은 당시에 가나안 땅만이 아니요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땅들이 동일한 상황이었을 것이다. 이런 상황속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셨고 그에게 두가지 약속을 하셨는데 그 약속은 눈에 보이는 현실만 바라본다면 도저히 믿을 수 없는 황당한 약속이었다. 그것은 첫째, 자식하나 없는 아브라함의 자손이 바다의 모래같이, 하늘의 별처럼 셀 수없게 번성할 것이라는 "씨의 약속"이었다. 그 다음은 아브라함 소유의 땅 한 뼘없는 가나안 땅을 아브라함의 자손들이 전부 차지하게 될 것이라는 " 땅의 약속"이었다. 이 두가지 약속은 구약성경에 기록된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보듯이 전부 성취되었다. 사실 이스라엘의 역사는 이 두가지 약속이 성취되는 역사라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면 이 두가지 약속과 하나님의 창조목적의 회복이 무슨 관련이 있는 것인가?
먼저 씨의 약속은 하나님에게 불순종함으로 창조목적에서 떠난 인간들로 가득한 세상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심으로 그를 통하여 하나님에게 순종하는 백성들을 만드시겠다는 약속을 하신 것이었다. 과연 아브라함의 후손인 이스라엘 백성은 독특한 여호와 신앙을 가진 유일한 민족으로서 온 세상의 다른 민족과 구별된 역사를 살았던 것이다. 하나님은 그들의 역사를 주관하셨으며 세상 다른 민족에게는 하신 적이 없는 특별한 일을 하셨다. 하나님은 그들과 언약을 맺으셨는데 이는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 되시며 그들을 하나님의 친 백성으로 만드시려고 하신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통하여 하나님의 특별한 백성,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백성을 만드시려고 하신 것이다. 첫 사람 아담의 실패가 불순종으로 인한 것이었듯이 창조목적의 회복은 순종하는 백성으로 부터 출발하여야 하는 것이었다. 순종하는 백성이 없이는 하나님의 창조목적은 이루어 질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통하여 순종하는 백성,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된 백성을 만드시려고 한 것이다. 두번 째, 땅의 약속은 하나님의 창조목적을 떠난 인간들로 더럽혀진 땅을 새롭게 하시겠다는 약속인 것이다. 하나님은 세상 만민 중에서 특별히 이스라엘을 택하셨듯이 세상의 모든 땅 중에서 특별히 가나인 땅을 택하여 더럽혀진 그 땅을 깨끗게 하시려고 하신 것이다. 그렇다면 어떯게 그 땅이 새롭게 되고 깨끗하게 될 것인가? 그 땅이 더럽혀진 이유는 불순종하는 인간들이 하나님의 뜻과 상관없이 살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그 땅이 깨끗하게 되는 것은 순종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 땅에서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살게될 때 이루어지는 것이다. 바로 이 목적을 위하여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신 것이고 가나안 족속들을 쫓아내고 그 땅에 들어가게 하신 것이다. 그래서 성경에는 이스라엘 백성이 만일 그 땅에 들어가 가나안 족속에게 물들어 산다면 그들도 동일하게 그 땅에서 내어쫓길 것이 경고한 것이다. 만일 이스라엘이 하나님에게 불순종하는 삶을 산다면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택하시고 그들을 가나안 땅에 들여보내신 목적이 상실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의 존재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에게 순종하여 그 뜻대로 가나안 땅에서 사는데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이스라엘이 존재하여야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출애굽 1세대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를 거부하였을 때 그들이 광야에서 소멸된 역사나, 이스라엘이 불순종함으로 앗수르와 바벨론에 의하여 그 땅에서 뽑혀져 나간 역사는 바로 이 진리를 명확히 보여준다.
우리는 여기서 이스라엘 역사의 의미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아브라함으로 부터 시작된 이스라엘은 출애굽을 거쳐서 가나안 땅에 들어가 그곳에서 나라를 이루어 살게되지만 결국 그 땅에서 쫒겨나 포로로 잡혀가는 신세가 된다. 비록 이스라엘이 고토로 돌아오게 되었지만 이전의 독립된 나라를 이룬 적은 없이 열강의 식민지로서 겨우 명맥을 유지하며 살게된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이스라엘의 이런 역사의 의미는 무엇인가? 아브라함에게 하신 하나님의 약속은 그들의 역사에서 분명히 성취되었지만 그 이후의 지리멸렬한 이스라엘의 역사의 자취를 우리는 어떻게 이해하여야 하는 것인가? 이스라엘의 역사를 구성하는 두가지 요소는 이스라엘 민족 그리고 그들이 살았던 영토인 가나안 땅인데 바로 하나님은 이 두가지 요소를 통하여 하나님의 창조목적이 어떻게 회복되는지를 계시하신 것이다. 결론적으로 이스라엘 역사는 창조목적을 회복하시는 하나님의 경륜의 도구였던 것이다. 첫째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의 형성을 통하여 장차 하나님의 창조목적을 이룰 하나님의 백성을 전세계적으로 형성하실 것을 보여주신 것이다. 둘째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의 가나안 정복을 통하여 장차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이 지으신 만물을 새롭게 함으로 창조목적을 이루게 될 것을 보여주신 것이다. 그러니까 이스라엘의 역사는 장차 하나님이 이루실 하나님나라 역사의 샘플이었던 것이며 하나의 모판과도 같은 것이었다. 이스라엘의 역사 가운데 하나님이 약속하셨던 예수 그리스도가 오심으로써 이스라엘의 역사는 그 모판 구실을 다한 것이며 그 사명이 성취된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야 말로 바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그 진정한 후손이었으며 그를 통해 형성되는 신약적 하나님나라 백성이야 말로 아브라함의 진정한 후손인 것이다. 아브라함에게 하셨던 씨의 약속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그리고 그를 통하여 일어난 신약적 하나님나라 백성으로 비로서 성취된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이 부활후 하신 "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는 대 사명의 말씀은 바로 아브라함에게 하신 땅의 약속이 실현된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하나님나라 백성을 대표하는 예수님에게 주어진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는 이제 만물을 하나님의 뜻대로 다스리는 권세, 즉 원래 창조시에 인간에게 주어졌던 권세의 회복이 성취돤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렇게 아브라함에게 하신 하나님의 두가지 약속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완전히 성취되었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는 하나님나라 백성들의 사명은 바로 예수님이 성취하신 창조목적의 회복을 역사와 이 땅 가운데 드러내는 일인 것이다. 바로 이것이 예수님이 대사명 명령을 통하여 우리 모두에게 명하신 분부이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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