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이란 무엇인가- 김세윤
2011-07-25 21:57:34
1. 우리가 구원받아야 할 이유
구원이란 모든 악과 고난에서 해방되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 삶에 나타나는 모든 악과 고난은 죽음의 증상이다. 우리가 악과 고난에 짓눌리고 있다는 것은 우리가 지금 죽음의 힘 아래 놓여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의 육신의 죽음은 이것을 확인하는 것이다. 그래서 성경은 악과 고난에 짓눌려 있는 인생을 "죽은 자" 라고 말한다. 우리가 구원을 받아야 할 이유는 우리가 이렇게 죽음의 권세에 놓여있고 그 증상인 악과 고난에 짓눌려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왜 우리는 죽음의 권세에 놓이게 된 것인가? 성경은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임하였다고 답한다. (죄의 삯은 죽음-롬6:23) 그렇다면 죄가 도대체 무엇이길래 죽임이 주어진 것인가? 성경에서 말하는 죄의 개념은 인간이 창조주 하나님의 피조물이라는 것이 전제되어있다. 죄의 본질은 피조물인 인간이 창조주이신 하나님에 대하여 갖는 옳지 못한 태도이다. 인간은 자기 힘으로 스스로 존재하는 자가 아니라 창조구 하나님에게 생명을 받은 존재이다. 따라서 인간이 창조주 하나님에게 의존하는 태도가 인간의 올바른 태도이다. 하나님에 대한 의존이란 곧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께 대한 의존은 순종으로 표현되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죄의 본질은 바로 하나님께 대한 인간의 올바른 태도를 버린 결과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진 것이다. 죄는 인간의 자기 주장 의지( SELF ASSERTIVE WILL)의 발로이다. 즉 창조주 하나님으로 부터의 독립을 선언한 것이다. 이 자기주장 의지는 하나님의 통치를 거부한 것이요 스스로 하나님같이 되고자 한 것이다.
이렇게 인간이 하나님의 통치를 거부한 결과 사단의 지배를 받게되었으며 하나님으로 부터 공급되는 무한한 하늘 자원에 문을 닫아 버리고 자기속의 극도로 제한된 자원에 갇히게 된 것이다. 결국 인간의 악과 고난은 인간이 제한된 자기 자원에 스스로를 가둔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은 자신의 제한된 자원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다른 사람을 굴종시켜 상대의 자원을 착취하려고 한다. 그 결과 인간 사회는 치열한 생존 경쟁, 약욱강식, 적자생존의 세계가 되어버린 것이다. 인간사이의 갈등과 그로 인한 모든 고난이 여기서 나오게 된다. 그래서 죄는 삼중적인 소외, 즉 하나님으로 부터의 소외, 자신으로 부터의 소외 그리고 이웃으로 부터의 소외를 가져온다. 구원이란 이런 삼중적 소외로 부터 해방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2. 스스로 구원할 수 있는가
인간에게 스스로 구원할 수 있는 힘이 있다면 애초부터 구원받아야 할 이유가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인간이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모순이고 환상이다. 그러나 세상종교와 낙관론자들은 인간의 힘으로 모든 악과 고난에서 해방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모든 악과 고난의 문제는 인간의 제한된 자원으로 인해 발생하는 것이므로 악과 고난을 제한된 인간 자원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은 논리적 모순이다.
그러므로 구원은 우리 밖에서(EXTRA NOS) 우리를 위해서(PRO NOBIS) 와야만 하는 것이다.
3. 예수의 삶과 죽음과 부활은 구원의 사건이다
우리는 예수의 삶과 죽음과 부활의 세 단계를 통하여 예수가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구원자라는 것을 알게된다. 우리는 먼저 예수의 자신에 대한 가르침에 주목하여야 한다. 마가복음 10:45[ 인자가 온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함이니라] 에는 예수의 자신에 대한 이해와 자기 사역에 대한 이해가 잘 요약되어 있다. 이 말씀은 구약의 두 예언, 다니엘 7장과 이사야 53장을 반영하고 있다.
여기서 人者라는 표현은 다니엘 7:13 이하를 반영하고 있는데 인자 곧 그 사람의 아들이라는 예수님이 독특하게 사용하신 이 칭호가 무슨 뜻인지를 알아야 한다. 다니엘서의 문맥에서 인자란 신적존재임을 의미한다. 다니엘 7장의 인자 예언은 종말에 신적 존재인 하나님의 아들이 오셔서 하나님의 진정한 백성을 창조하고 대표할 것을 가리킨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하나님의 진정한 백성을 종말에 창조하는 사명을 가졌는데 그는 이 사명을 고난 받는 종의 역할을 감당하여 대속적 죽음으로 새언약을 세움으로써 성취할 자로서 자신을 이해한 것이다.
예수의 부활사건은 예수의 자신에 대한 가르침이 진리임을 하나님이 증명하신 사건이다. 부활로 인해 예수님은 하나님의 진정한 아들로 인정되셨고 그의 죽음은 하나님의 저주가 아닌 대속적 죽음인 것이 증명된 것이다. 이와같이 세 사건 ,즉 예수의 가르침과 죽음과 부활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예수의 가르침과 그의 죽음은 부활 사건을 통하여 인간을 위한 하나님의 구원사건으로 확인된 것이다.
4. 예수의 구속적 죽음에 대한 해석의 성경적 범주들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은 그의 십자가 죽음에서 일어났다. 신약성경은 크게 4가지 그림언어(METAPHOR)인 "제사, 화해, 구속, 새 언약" 을 사용하여 십자가에 나타난 구원을 설명하고 있다.
구약의 속죄방법인 제사는 죄 자체를 덮는 것과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를 풀어버리는 것의 두가지 기능이 있는데 예수님의 대속적 죽음을 바로 우리의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제사의 목적의 궁극적 실현으로 설명한 것이다. 그 다음에 和解는 예수의 죽음으로 우리 죄가 덮어지고 하나님의 진노가 풀어진 결과,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가 평화롭게 된 것을 설명한다. 救贖은 노예시장에서 온 그림언어인데 노예를 해방시키기 위하여 그 값을 치르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의 죽음을 우리를 사망의 권세에서 해방시키기 위하여 지불된 속전으로 설명한 것이다. 새 언약은 구약의 언약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갱신됨으로 새로운 하나남의 언약백성이 탄생하였음을 의미한다. 새 언약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그의 무한한 자원을 누리며 그나라의 상속자가 되는 특권을 누리게 된 것이다.
5. 하나님의 구원의 주관적 적용
그렇다면 십자가에서 일어난 "객관적인 구원사건"이 어떻게 나 개인에게 효력을 발생하는 것인가? 즉 주관적인 구원사건은 어떻게 일어나는 것인가? 그것은 선포된 복음(kerygma)을 받아들임으로 일어난다. 선포된 복음(kerygma)을 받아들이는 것이 믿음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셨다는 것이 선포된 복음인데 이것을 받아들임으로 하나님의 객관적인 구원사건이 나 개인에게 효력을 발생하게 된다.
"우리를 위해" 라는 말의 의미는 "우리를 대표해"와 "우리를 대신해" 라는 두 개념을 포함하고 있다. 예수님의 죽음의 "대신적 성격"은 예수님이 우리 죄가 초래한 죽음을 우리 대신 죽으셨다는 것을 의미하며 그의 죽음의 " 대표적 성격"은 우리의 죽음이 그의 죽음안에 내포되어 있다는 의미이다.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죽음이 대신적이요 대표적 죽음임을 인정할 때 그의 죽음이 우리 개인에게 효력을 발생하게 된다. 믿음으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에 내포되고 연합되는 것이다. 믿음으로 이루어진 이 연합을 劇化한 것이 세례이다. 그러므로 믿음이 없는 세례는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지만 믿는 자는 반드시 세례를 받아서 자기 믿음을 공적으로 확인하여야 한다.
성경은 이 주관적인 구원사건을 네가지 그림ㅡ 즉 의인됨(JUSTIFICATION), 화해(RECONCILIATION), 아들됨(ADOPTION), 새 피조물(NEW CREATION)- 로 표시했다.
의인됨(JUSTIFICATION)이란 말은 법정적 용어인데 하나님에게 순종하고 의존하는 올바른 관계속에 들어간 것을 의미한다.화해(RECONCILIATION)는 인간관계에서 온 그림인데 이것은 하나님과의 적대관계가 해소되고 평화스러운 친구관계로 회복된 것을 나타낸다. 그 다음에 아들됨(ADOPTION)은 가족관계에서 온 그림으로 믿는 자에게 하나님을 아빠라 부르는 독특한 지위가 주어진 것을 의미한다. 마지막으로 새 피조물(NEW CREATION)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통해 죄에 대하여 죽고 새로운 삶으로 부활했다는 구원의 실재를 나타낸다. 이러한 그림들로 표현되는 구원의 실재(REALITY)는 무엇인가? 그것은 자기의 제한된 자원속에 갇혀 죽는 인생이 아니라 하나님에세 의존하고 순종하는 바른 관계속에서 하나님의 무한한 자원에 동참하여 신적인 삶에 참여하는 삶, 이것이 이 그림들이 나타내려는 구원의 실재이다.
6. 구원의 종말론적 구조
구원에는 과거 현재, 미래의 세가지 시제가 있다. 이것은 기독교의 독특한 종말론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다. 예수의 부활로 하나님나라가 이미 시작되었다. 즉 구원의 세상인 " 오는 세상" 이 이미 시작된 것이다. 예수의 부활은 사단의 권세인 죽음을 꺾은 사건이다. 이것은 사단에 대한 결정적 승리의 사건이다. 그러나 사단이 완전히 죽은 것은 아니고 예수의 재림까지는 최후의 발악을 할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 부활로 이루어진 구원은 구원의 첫열매에 해당하고 예수의 재림으로 구원의 추수가 이루어질 것이다
구원의 첫 열매에 대한 증거로 주어진 것이 성령이다. 성령은 구원의 첫 열매의 증거로 구원의 추수의 보증인 것이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윤리의 출발점이다. 그리스도인의 윤리는 구원을 얻는 조건이 아니라 구원받은 자로서 사는 것이다.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다면 구원받은 자로서 믿음으로 살아야 한다. 한국 교회의 문제는 믿음에 윤리를 내포하지 않은 것이다. 윤리를 내포하지 않은 믿음은 구조상 헛것이다. 믿음으로 하나님을 의존하는 바른관계에 들어갔다고 한다면 하나님을 순종하는 구체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 하나님을 의존한다고 하면서 순종하지 않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나님에 대한 의존은 반드시 순종으로 표현된다. 그러므로 순종없는 믿음은 거짓 믿음이며 윤리가 포함되지 않은 믿음은 미신인 것이다.
구원의 첫 열매를 받은 자로서 "오는 세상" 곧 하나님의 나라 시민으로 살려면 이 세상의 도 곧 자기 주장의 의지를 버리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순종하며 살아야 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삶에는 고난이 필연적으로 따라온다 (그러나 이 고난은 자기의 제한된 자원에서 오는 고난과는 다르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 살면서 이 세상의 도, 곧 자기 주장의 의지를 따르지 않고 십자가의 도, 곧 순종의 삶을 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의 고난은 그리스도의 죽음이 실제화 되어가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그리스도인의 고난은 자기 주장의 옛사람이 실제로 죽어가는 과정인 것이다. 이와같이 이세상에 살지만 이 세상에 동조하지 않고 오는 세상 곧 하나님나라의 시민으로 사는 삶을 "제자도" 라고 한다. 예수의 십자가 죽음의 시건이 우리 안에서 실재화된다는 것은 자기 부인을 의미한다. 자기 주장이 옛사람의 특징이라면 자기 부인은 새 사람의 특징이다. 제자도의 삶은 우리가 예수님의 아들된 그 영광의 형상을 점점 닮아가는 과정이다. 이것을 그리스도인의 성화라고 할 수 있고 이것이 구원의 현재이다. 제자도의 고난은 동시에 우리 속사삼이 새로워지고 강해지는 과정이다. 이 과정은 예수의 재림으로 우리가 영광스런 형상으로 변화될 때 종결될 것인데 이것이 구원의 미래일 것이다.
7. 구원과 예정 교리
우리는 구원을 논할 때 태초라는 시점부터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일어난 구원사건부터 논해야 한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건이 역사의 중심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이것은 그리스도 이전의 역사가 그리스도를 준비한 과정이고 그리스도 이후의 역사는 그리스도 사건이 의미를 성취해 가는 과정이라는 의미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관점에서 과거와 미래의 역사를 바라보아야 한다. 그런데 하나님의 계시의 불빛은 역사의 중심에서 양쪽 끝으로 갈수록 희미해진다. 태초와 종말에 대한 계시의 불빛은 우리에게 아직 가려지고 희미한 것이 많은 것이다. 그로나 역사의 양쪽 끝에 대하여는 신비의 요소가 많지만 우리의 믿음의 현재와 구원의 소망에 필요한 지식은 계시의 불빛에 의해 필요한 정도로 다 주어졌다. 그러므로 예정교리는 역사의 중심의 관점으로 보아야 이해할 수 있다. 예정교리는 태초의 예정을 논하려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구원과 믿음이 하나님의 은혜이며 선물이라는 사실을 설명하는 교리인 것이다. 나아가 예정교리는 미래에 나의 구원과 믿음이 유지되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라는 사실을 알려주는 것이다. 즉 예정교리는 현재의 나의 믿음을 통하여 나에 대한 하나님의 구원의지를 확증시켜 주는 위로의 교리이지 나의 구원을 의심케 하는 불안의 교리가 아닌 것이다. 이와같이 예정교리는 태초의 시점부터 시작하는 교리가 아니라 복음에 반응하는 현재 믿음의 시점에서 시작하는 교리인 것이다. 예정교리의 교훈의 핵심은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는데 실패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요약하면 예정교리는 구원은 온전히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으므로 하나님이 나의 구원을 반드시 이루실 것이라는 확신과 위로의 교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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