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약성경/베드로전서

베드로전서 3장 선을 행하며 고난을 받으라

베드로전서 3장 선을 행하며 고난을 받으라

Tolle Rege/베드로전서

2013-10-29 22:27:55


 

  신자가 인간 통치자에게 순종하고 종은 주인에게 순종하듯이 아내도 남편에게 순종하여야 한다. 여기서 순종은 언제나 자발성을 전제한다. 왜냐하면 자발성이 결여된 순종은 이미 순종이 아니라 굴종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오직 자발성을 통해서만 증거될 수 있는 것이다. 특별히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남편을 둔 경우 아내의 행실(남편에 대한 자발적인 순종과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정결한 행실)로 말미암아 남편이 구원을 얻을 수도 있다. 특별히 여자들은 외모를 꾸미는 화려한 단장 대신에 온유하고 안정된 마음으로 단장하라고 권면한다. 이는 결국 남편에게 온유하고 단정한 마음으로 순종하라는 것이다. 또한 남편은 아내가 자신보다 더 연약한 그릇이지만 생명의 은혜(부활)와 하늘의 유업을 함께 받을 자인 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남편들도 지식을 따라 아내와 동거하고 그를 귀하게 여겨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들의 기도가 막힐 것이라고 경고한다.

 

  인간 통치자이든지 주인이든지 남편이든지 이것들은 영원한 것은 아니지만 이 세상에서 하나님이 세우신 질서이다. 그러므로 신자는 이 질서를 존중하고 순종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그 질서가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진다는 조건이 있는 것이지만 설사 그렇지 않다고 하더러도 그 질서를 바로잡는 일은 그 질서를 세우신 하나님게 의탁하여야지 신자가 스스로 나서서 바로 잡으려고 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인간 혁명을 반대한다. 물론 이 경우에는 신자가 잘못된 질서( 질서를 세우신 하나님의 뜻에 반하는 질서)에 순종해야 할 의무는 없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언제나 하나님의 뜻을 섬기는 일에 사용되어야 한다.

 

 베드로는 다시 형제 사랑의 교훈으로 돌아간다. 왜냐하면 통치자와 백성, 종과 주인, 남편과 아내의 관계보다 신자에게 가장 근본적인 관계이며 영원한 질서는 형제 관계이기 때문이다. 다른 질서는 이 세상에서만 필요한 것이지만 그리스도안에서 형성된 형제 관계는 영원한 질서이기 때문이다. 형제를 사랑하며 불씽히 여기며 겸손히 대하여야 한다. 심지어는 형제에게 악이나 욕을 당했다라도 악이나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어야 한다. 이런 태도는 이 세상의 어떤 관계에서도 찾아 볼 수 없는 하나님나라의 톡특한 질서이다. 신자들은 바로 이런 하나님나라의 질서를 위하여 부름을 받은 자들이고 그들은 하늘에 간직하 복을 유업으로 받을 자들인 것이다. 베드로는 구약의 시편을 인용하여 자신의 이런 교훈이 새로운 것이 아니라 이미 구약에서 하나님이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신 것임을 논증하고 있다.

 

  열심으로 선을 행한다면 누가 해치겠는가? 그러나 복 있는 자는 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는 자이다. 그러므로 위협하는 자들을 두려워하거나 근심하지 말고 마음속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우리 속에 있는 소망의 이유를 묻는 자들에게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여야 한다. 신자들이 가진 선한 양심으로 인하여 그리스도 안에있는 신자의 선행을 욕하는 자들이 수치를 당하게 될 것이다. 베드로는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확언하면서 다시금 그리스도가 받으신 고난을 언급한다. 왜내하면 그리스도가 받으신 고난은 모습은 언제든지 신자들이 따라야 할 본으로 제시되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 단번에 죄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신 것은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다. 그리스도의 고난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진 것 처럼 하나님의 뜻은 신자들의 고난을 통하여 이루어진다. 그래서 바울은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은 자기 육체에 채운다고 말하였을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았다는 표현은 그리스도의 부활이 육체의 부활이 아니라 영의 부활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그리스도가 육체로 죽임을 당하셨는데 성령이 그를 다시 살리셨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그리스도가 영으로 가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선포하였다고 말하면서 옥에 있는 영들이란 노아의 홍수 사건으로 전멸당한 자들이라고 설명한다. 이 말의 의미는 여러가지 분분한 해석이 있고 그리스도께서 죽으신 후 음부에 내려가시어 음부에 갇힌 영혼들에게 복음을 전파하신 것을 의미한다는 해석도 있지만 문맥에 어울리는 분명한 해석은 없는 실정이다. 그리고 이런 해석을 지지하는 다른 성경 구절도 없다. 그런데 왜 베드로는 신자의 순종하는 삶, 선한 행실을 가르치다가 갑자기 이 말을 한 것일까? 이는 아마도 무슨 새로운 계시를 제시한 것이 아니라 노아 시대에 불순종한 자들이 홍수로 진멸당한 것을 예로 들면서 순종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강조하려고 한 것이 아니었을까?  그들은 물로 심판을 받았다 그런데 이제 신자들은 물로 구원의 세례를 받았다. 동일한 물이지만 이제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심판의 물이 구원의 물이 된 것이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전에는 사망의 권세를 벗어날 길이 없었는데 이제 부활로 말미암아 사망의 권세에서 구원을 받았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세례란 육체의 더러운 것을 씻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의 응답이다. 즉  세례는 신자들이 복음을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부르심에 믿음으로 응답하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사망의 권세를 깨뜨린 사건일 뿐 아니라 이제 하늘에 오르사 하나님 우편에 계시면서 천사들과 권세들과 능력들을 다스리시는 권세를 획득하신 사건인 것이다. 이것이 복음이고 세례는 복음에 대한 믿음을 표시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