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약성경/베드로전서

베드로전서 1장 하늘에 간직한 유업

베드로전서 1장 하늘에 간직한 유업

Tolle Rege/베드로전서

2013-10-29 19:00:00


 

  베드로는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라고 간단명료하게 소개한다. 이 편지의 수신자는 소아시아에 흩어져 살고있는 유대인과 이방인 그리스도인이었다. 베드로는 이들은  택하심을 받은 자들인데, 그 택하심이 성삼위의 공동사역, 즉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 예수 그리스도의 피뿌리심으로 이루어졌다고 말하고 있다. 우리는 여기서 베드로가 구원을 삼위 하나님의 공동사역으로 말하고 있음을 보게된다. 통상 예수 그리스도를 구원자로 특정하는 것과는 다른 독특한 표현이다. 그만큼 구원에 관한 이런 시각은 총체적이며 구원이 하나님의 창조사역의 일환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또한 피뿌림이란 표현은 구약의 제사제도에서 희생 제물의 피를 제단에 뿌리는 것을 연상하게 하는데 이는 구약의 제사 제도가 그렇듯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이 언약적 사건임을 의미하는 것이다.

 

  베드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이 신자의 궁극적 소망의 근거이며 보증임을 강조하고 있다. 신자의 거듭남과 생생한 소망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 말미암은 것이라고 말한다. 이는 그리스도의 부활이 신자의 부활을 보증하는 것일 뿐 아니라 부활이 신자들의 소망의 출발임을 보여준다. 신자들의 궁극적 소망은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않는 유업을 받는 것인데 이는 신자들을 위하여 하늘에 간직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부활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궁극적 소망인 하늘의 유업을 받기 위한 과정인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부활은 신자들이 하늘에 간직된 유업을 받기 위하여 부활할 것을 예표하는 신호인 셈이다.

 

  그런데 이 일은 종말에 나타날 것이고 그 때가 이르기까지 하나님은 신자들을 능력으로 보호하실 것이다. 그러므로 신자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믿음이다. 여러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시 근심할 수도 있겠지만 이 소망을 인하여 크게 기뻐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여러가지 시험을 당하지만 그 가운데 증명된 믿음의 순전함은 불로 연단한 금보다 더 귀한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시는 종말의 때에 칭찬과 존귀와 영광을 얻을 것이다. 그러나 이 믿음은 예수를 봄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 보지 못했지만 사도들이 전하여 준 복음을 들음으로 생긴 믿음이다. 여기서 우리는 믿음은 봄으로 말이암은 것이 아니라 들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라는 진리를 발견한다. 이는 믿음의 출처가 신자에게 있지 않고 하나님께 있음을 의미한다. 믿음은 예수로 말미암아 주어진 하나님의 약속을 소망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믿음에는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이 있는 것이다.

 

  믿음의 결국은 곧 영혼의 구원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영혼의 구원이란 말을 그저 죽어서 영혼이 천당간다는 식으로 이해해서는 안되고 이미 베드로가 말한 신자들의 궁극적인 소망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하여야 한다. 그것은 하늘에 간직된 영원한 유업을 받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나타난 이 구원은 갑자기 나타난 것이 아니라구약의 선지자들이 연구하고 부지런히 살폈던 것이다. 선지자들 속에 그리스도의 영이 계시며 장차 그리스도가 받으실 고난과 영광을 미리 증언하게 하신 것이다. 구약의 선자자들의 그리스도에 대한 증언은 신약의 신자들을 위하여 계시로 주어진 것인데 바로 이것이 신자들에게 전하여진 복음인 것이다. 성령께서 구약의 선지자들에게 그리스도를 예언하게 하신 것 처럼 오늘날도 동일하신 성령께서 복음을 전하게 하신 것이다. 베드로는 여기서 구약의 계시와 신약의 복음의 동질성을 강조하며 동일하신 성령의 역사임을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베드로는 신자들에게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가져다 주실 은혜(영원한 하늘의 유업)를 온전히 바라라고 권면한다.이는 하늘의 유업을 받을 약속을 가진 신자들이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함을 말하는 것이다.알지 못할 때에 따르던 사욕을 본받지 말고 그들을 부르신 거룩하신 하나님처럼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어야 한다. 이것은 새로운 명령이 아니라 구약에 이미 기록된바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는 명령과 동일한 것이다. 신자들이 거룩해야 하는 이유는 오직 하나 하나님이 거룩하시기 때문이다. 거룩하신 하나님은 사람을 외모로 보시지 않고 행위대로 심판히시는 분이시다. 이 분을 아버지라 부른다면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에 두려움으로 지내야 한다. 특별히 신자들은 자신들이 받은 구원이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여기서 베드로는 그리스도를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에 비유하고 있는데 이는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 흘림이 대속적 희생제사이었음을 의미하고 있다.

 

  그런데 베드로는 그리스도는 창세전에 알린 바 되신 분이신데 말세에 나타내신 바 되었다는 놀라운 말을 하고 있다. 이는 그리스도가 인간의 범죄이후에 비로서 등장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 경륜가운데 이미 예비되신 분임을 말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역을 인간의 죄의 문제 해결에 국한시킬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사역의 차원으로 확대하여야 한다. 즉 그리스도는 창조전에 이미 예비되신 분이시며 말세에 나타나셨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여기서 말세란 단순히 종말의 때라는 의미가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경륜이 성취되는 하나님이 정하신 때인 것이다. 이 그리스도를 하나님은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영광스럽게 하신 것이다. 신자들은 바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믿게된 것이고( 이 말은 신자들이 믿은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 살리시고 영광스럽게 하신 분이시라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신자들의 믿음과 소망은 하나님께 있는 것이다.( 이 말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에게 하신 동일한 일을 신자들에게도 하신다는 의미이다.)

 

  베드로는 형제 사랑을 말하면서 거짓이 없이 마음으로 뜨겁게 사랑하라고 권면한다.그런데 형제 사랑은 진리를 순종함으로 영혼이 깨끗하게 된 자들에게 나타나는 것이라고 말한다. 지금까지 베드로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신자들에게 주어진 영광스러운 약속에 대한 소망을 이야기 했는데 이 약속과 소망은 개인적으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 신자들의 공동체에 주어진 것이다. 그러므로 베드로는 형제 사랑을 강조하는 것이다. 형제들은 동일한 유업을 함께 받을 자들일 뿐만 아니라 그 유업을 함께 누려야 할 자들인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이 주시는 유업은 개인이 홀로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가 함께 받아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런 맥락에서 베드로의 형제 사랑의 권면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특별히 베드로는 신자들의 거듭남이 썩지 아니할 씨, 곧 살아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음을 강조한다. 이 말은 신자들이 바로 이 거듭남으로 인하여 형제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꽂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라는 이사야의 예언은 인용한다. 이는 영원한 말씀의 열매가 영생이며 부활이라는 것이며 신자들은 함께 이 영광스런 약속에 참여한다는 말이다. 신자들이 듣고 믿은 복음이 바로 이 영원한 말씀인 것이다.

 

[추기 2016. 3. 20 춘분]

 

1. 베드로는 1-2절에서 소아시아에 잇는 교회들이 택하신 자들임을 말하면서 그 택하심을 삼위일체적 관점으로 서술하는 점이 흥미롭다. 그 택하심은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아심,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으로 이루어진 것인데 그 택함의 목적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순종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받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이 초역사적이라면 성령의 거룩케 하심은 지극히 역사적이다.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신 지들을 성령이 거룩케 하심으로 택하신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런데 주목할 것은 그 택함의 목적이 예수 그리스도에게 순종하는 것 그리고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받는 것이라고 말하는 대목이다. 그리스도의 피뿌림을 받는다는 것은 시내산 언약에서 언약을 맺은 후 피를 뿌린 장면을 연상케 하는데 이는 아마도 새 언약에 참여한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그러니까 새 언약을 통해 그 나라에 들어오고 그 나라의 왕이신 예수의 다스림에 순종하는 것, 이것이 바로 택함의 목적이라는 말이 된다. 그렇다면 이 본문은 에수가 왕이신 그 나라에 들어와 그의 통치를 받는 일이 없이 택함을 자랑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2. 예수의 부활에 대해 언급하는 3-4절은 하나님 아버지가 예수의 부활을 통해 택한 자들에게 생생한 소망을 주기 위해 그들도 다시 태어나게했다고 말한다. 그러니까 베드로는 예수의 부활이 택한 자들의 궁극적 소망이 아니라 예수의 부활을 통해 그 소망이 주어졌다는 의미로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 소망은 무엇인가? 베드로는 그것은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않는 유업이라고 말한다. 그것은 택한 자들을 위해 하늘에 간직된 유업으로서 마지막 날에 그들이 받을 궁극적 구원이다. 이 구원이 택한 자들에게 주어지기 위해서는 그들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받아야 하며 동시에 그들은 작신들의 믿음을 지켜야 한다. 그들의 구원은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보호하심에 달려있지만 하나님의 보호는 그들의 구체적인 믿음을 통하여 나타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