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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경/야고보서

야고보서 2장 행함이 없는 믿음

야고보서 2장 행함이 없는 믿음

Tolle Rege/야고보서

2013-10-22 20:05:22


 

  교회내 빈부의 차이로 인한 갈등을 극복하는 첫번째 원리는 이미 1장에서 제시되었다. 그것은 가난한 자는 자신의 높아짐을 자랑하고 부한 자는 자신의 낮아짐을 자랑하는 것 즉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진정한 자기 정체성을 발견하는 것이었다. 이제 2장에서는 다시 빈부의 문제를 거론하면서 두번째 원리를 제시하는데 그것은 차별하지 말라는 것이다. 야고보는 교회에서 빈부로 사람을 차별하는 것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 반하는 것이며 악한 생각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것이라고 경고한다.

 

  그러니까 자신에 대하여 바른 정체성을 갖는 것, 이것이 빈부 갈등을 극복하는 제1원리라면 제2원리는 남을 빈부의 차이로 차별하지 않는 것이다. 첫째가 자신에 대한 정체성의 발견이라면 두번째는 남에 대한 정체성의 발견이니 사실 이 두가지는 다른 것이 아니라 동일한 것이다. 자신에 대한 이해와 남에 대한 이해는 서로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야고보는 하나님이 세상에서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약속하신 나라를 상속하게 하신 것을 생각해보라고 말하면서 너희는 도리어 가난한 자를 업신여겼다고 지적한다. 가난한 자를 업신 여기는 것은 그들을 택하시고 부르신 하나님의 뜻에 반하는 것이다.

 

  야고보는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는 법이 최고의 법(the royal law)인데 사람을 차별하는 것은 바로 이 최고의 법을 범하는 것이므로 율법의 정죄를 받을 것이라고 말한다. 다른 계명을 다 지켰다고 하더라도 한 계명이라도 범하면 모든 율법을 범한 것과 동일하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율법을 명하신 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야고보는 그리스도인은 자유의 율법으로 심판을 받을 사람들이니 그렇게 말도 하고 행하라고 권면한다. 자유하는 율법이란 말은 율법이 이제는 정죄하는 기능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유를 주는 기능을 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이전에는 정죄를 피하려고 율법을 지켰다면 이제는 자유를 누리려고 율법을 지킨다는 것이다. 이제 그리스도인에게 율법은 정죄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죄로 부터의 자유를 주는 기능을 하게 되었다. 그러니까 이웃 사랑이란 법도 남을 긍휼이 여기는 마음으로 부터 지키라는 것이다.

 

  야고보는 믿음이 있노라 하면서 행함이 없으면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고 반문하면서 행함이 없는 믿음의 실례로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양식이 없는데 말만하고 돌보지 않는 경우를 제시한다. 그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단언한다. 왜냐하면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이고 행함으로 나타나는 것인데 행함이 없다면 믿음의 유무를 어찌 알겠느냐는 것이다. 하나님이 한 분이심을 믿는다는 그런 믿음은 귀신들도 믿고 떠드는 그런 믿음이라고 말한다. 이는 믿음이 지식의 동의로 끝나는 것이 아님라는 의미이다.  그래서 야고보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헛것인 줄 알지 못하느냐고 반문한다. 야고보는 아브라함의 이삭을 제단에 바친 사건을 예로 들면서 아브라함이 행함으로 의롭다함을 받았다고 말한다. 아브라함의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야고보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성경의 기록이 이렇게 행함으로 이루어졌다고 말한다. 야고보의 결론은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만으로는 아니라는 것이다. 또 기생 라합의 예를 들면서 그가 정탐꾼 들을 접대하여 다른 길로 보낸 것이 행함으로 의롭다함을 받은 것이라고 말하며 영혼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고 단언한다.

 

  야고보가 예로 든 아브라함이나 라합의 행위는 물론 믿음에서 나온 것이다. 믿음이 없다면 그런 행동을 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니까 야고보는 믿음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행함이 없는 믿음을 반대하는 것이다. 이 구절은 종교개혁의 이신칭의의 교리를 반대하는 것으로 오해되어 왔다. 그러나 야고보는 이신칭의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칭의를 받는 믿음이 어떤 믿음이냐를 문제삼는 것이다.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지만 그 믿음은 죽은 믿음이 아니라 산 믿음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산 믿음이란 행함으로 나타나는 믿음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야고보는 "오직 믿음으로" 대신에 "오직 산 믿음으로" 를 주장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