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15장 부활의 비밀과 소망
Tolle Rege/고린도전서
2013-10-04 17:46:35
바울은 자신이 이미 전한 복음을 다시 고린도 교회의 마음에 새겨주기를 원하였다. 그 복음은 새로운 것이 아니라 그들이 이미 받고 그 위에 선 것이다. 문제는 복음을 듣는 것만이 아니라 그 복음을 헛되이 믿지 말고 굳게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바울은 자신이 전한 복음이 자신이 만들어 낸 것이 아니고 자신도 받은 것을 그들에게 전한 것임을 천명한다. 그 복음이란 무엇인가하면 성경에 기록된 예언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무덤에 묻히셨다는 것이고 다시 성경의 예언대로 사흘 만에 살아나시어 게바와 열두 제자 그리고 오백여 형제에게 보이셨으며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자신에게도 나타나셨다는 것이다. 이렇게 복음의 중요한 핵심 두 가지는 그리스도의 죽음 그리고 부활이다.
그런데 문제는 고린도 교인 중에 어떤 자들이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고 전하였는데 어찌하여 죽은 자의 부활이 없다고 하느냐고 반문하였다. 아마도 교린도 교인들 중에는 그리스도의 죽음은 받아들이면서도 헬라 사상의 영향을 받아서 죽은 자의 부활은 부인하거나 의심하는 자들이 있었던 것 같다. 바울은 이것이 복음을 헛되이 믿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복음을 전해준대로 믿지 않고 자기 생각으로 바꾸어 나간 것이다. 바울은 복음을 전해준대로 믿고 굳게 지켜야 복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는다고 강조하는 것이다.
바울은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다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을 것이고 그렇다면 자신이 전파하는 복음도 헛것이고 그들의 믿음도 헛된 것일 수밖에 없을 것이며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는 자신의 증언이 거짓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다면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지 아니하였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는 그리스도의 부활이 신자의 부활을 보증하는 사건임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부활은 이미 움직일 수 없는 명백한 역사적 사실이므로 신자의 부활도 명백히 이루어질 것이다.
바울은 만일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일이 없다면 우리의 믿음은 헛되며 우리는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며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들은 이미 멸망하였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렇다면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바라는 것이 이 세상의 삶뿐이 되므로 모든 사람 가운데 더욱 불쌍한 자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이 말은 그리스도의 부활의 중요성을 두 가지 점에서 가르쳐 준다. 첫째로 그리스도의 부활은 신자들의 부활의 보증이며 부활의 소망이야 말로 신자들에게 최상의 위로라는 점이다. 두 번째는 그리스도의 부활은 신자들의 죄 사함의 증거라는 점이다. 그리스도의 죽음이 우리의 죄를 위한 것이라 할지라도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지 않았다면 우리의 죄는 그대로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죽으신 그리스도가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고 다시 살아나지 않는다면 우리의 죄의 문제는 아직 해결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죄의 문제가 해결되었다면 죄의 결과인 사망의 권세로 부터의 해방이 있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바로 인간 실존을 억누르는 사망의 권세가 깨어진 것을 의미하고 우리가 사망의 권세로 부터 해방된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제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 다시 살아나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다고 선언한다. 이는 분명히 그리스도의 부활이 신자들의 부활의 신호탄임을 말하는 것이다. 여기서 바울은 중대한 진리를 계시하는데 그것은 아담과 그리스도를 대비한 진리인 것이다. 사망이 한 사람 아담으로 말미암은 것처럼 부활도 한 사람 그리스도로 말미암는다는 것이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살게 된다는 것이다. 이 말은 아담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주어진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고 사람들을 사망의 권세에서 해방시키시는 분이 바로 그리스도이심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부활에는 순서가 있다.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이시고 그 다음에는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에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들이며 마지막에는 그리스도께서 모든 통치와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께 바치실 것이다. ( 모든 원수를 발아래 두고 나라를 아버지께 바치실 때까지는 그리스도는 그 나라의 왕 노릇을 하실 것이다. 이 말은 종말의 때 이전의 인간 역사 가운데 진행되는 하나님나라의 왕이 그리스도이심을 의미할 것이다. 그러나 종말의 때에는 그리스도는 자신의 왕권을 아버지께 바칠 것이다.) 여기서 마지막으로 그리스도께서 멸하신 통치와 권세와 능력이란 마귀의 통치와 권세와 능력을 말할 것이고 이는 곧 마귀를 굴복시키실 것을 의미할 것이다. 마귀가 굴복될 때 사망의 권세도 깨뜨려질 것이고 그러므로 맨 나중에 멸망 받을 원수가 사망이라고 한 것이다. 사망이 멸망할 때 모든 죽은 자들이 부활할 것이다. 사실 인간의 궁극적인 문제는 죽음이다. 인간이 어떤 삶을 살고 누렸다고 하더라도 죽음은 이 모든 것을 허무하게 만든다. 그리고 어떤 인간도 죽음에 무릎 꿇지 않은 자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죽음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는 인간의 문제는 해결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사망의 권세를 잡은 자 마귀를 없이하지 않고는 죽음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바로 사망의 권세가 깨뜨려진 것을 선포하는 것이며 인간의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죽은 자의 부활의 소망이 없다면 신자들이 세례를 받고 위험을 감수하고 복음을 전하는 모든 일들이 무슨 의미가 있겠냐고 반문한다. 바울은 이 부활의 소망이 있기에 자신이 날마다 죽는 것 같은 위험을 감수하여 복음을 전한다고 말한다. 만일 부활의 소망이 없다면 내일 죽을 것인데 먹고 마시며 즐기자고 할 것이다. 바울은 부활이 없다하는 악한 자들에게 속지 말라고 경고한다. 그런 자들은 선한 행실을 더럽히는 자들이다. 부활의 소망을 가진다면 깨어 의를 행하고 죄를 짓지 말아야 한다. 그래서 바울은 부활이 없다하는 자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이라고 단언한다.
그런데 부활이 없다하는 자들은 사람이 다시 살아날 때 어떻게 살아나느냐 즉 어떤 몸으로 오느냐고 질문한다. 바울은 육신의 소멸을 씨가 죽는 것에 비유한다. 즉 씨가 죽어서 거기서 씨와는 전혀 다른 열매가 나오는 것처럼 지금 우리가 입고 있는 육신은 죽어서 소멸되지만 부활할 때는 지금 육신과는 전혀 다른 몸을 입게 된다는 것이다. 창조하신 만물에게 하나님이 그에 적합한 형체를 주시듯이 부활하는 우리에게도 그에 맞는 형체를 주신다는 것이다. 죽은 자의 부활도 마찬가지로 지금 육체는 죽으면 썩을 것이지만 우리는 썩지 않을 몸으로 다시 살아난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가 가진 형체는 썩는 것, 천한 것, 약한 것이지만 부활의 몸은 썩지 않는 것, 영광스러운 것, 강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지금 우리의 형체는 육의 몸이지만 부활의 몸은 영적인 몸이라는 것이다.
바울은 다시금 첫 사람 아담과 그리스도를 대조하여 설명을 한다. 첫 사람 아담은 살아있는 영(생명을 가진 영)이었다면 마지막 아담은 그리스도는 살려주는 영( 생명을 주는 영)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아담은 육적 몸을 가진 자라면 그리스도는 영적 몸을 가진 자이다. 첫 사람(아담)은 땅에서 나고 흙에 속한 자리면 둘째 사람(그리스도)은 하늘에서 나신 분이시다. 우리가 아담처럼 흙에 속한 형상을 입은 것과 같이 우리는 부활할 때에 그리스도처럼 하늘에 속한 형상을 입을 것이다.
바울은 혈과 육 곧 우리의 육신은 썩을 것이지만 하나님나라는 썩지 않고 영원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나라를 상속할 때에 우리가 썩을 육신으로 그 나라를 상속할 수가 없는 것이고 그러므로 썩지 않을 몸으로 부활하여 그 나라를 유업으로 받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죽는 것이 아니라 잠자는 것이며 마지막 나팔소리에 홀연히 부활의 몸으로 변화할 것이다. 썩을 몸이 썩지 않는 몸을 입겠고 죽을 몸이 죽지 않는 몸을 입을 것이다. 그 때에 “사망을 삼키고 사망을 이기리라.” (이사야 25:8) 그리고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호13:14) 는 기록된 말씀이 성취될 것이다. 죄로 말미암아 사망의 권세가 왔고 율법은 우리의 죄를 드러내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여야 한다.( 그 승리란 두 가지일 것이다. 하나는 율법의 정죄로 부터의 승리요 둘째는 죄의 결과인 사망의 권세로 부터의 승리일 것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우리의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하며 복음에 굳게 서서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힘쓰는 자가 되라고 권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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