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21장 내 양을 먹이라
Tolle Rege/요한복음
2013-02-09 17:03:18
그 후에 예수께서 디베랴 호수에서 또 제자들에게 자기를 나타내셨다. 이것은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살아나신 후에 세번째로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것이다. 예수님이 돌아가신 후에 제자들은 아마도 자기들의 생업이었던 물고기 잡는 일로 소일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 날 밤에는 아무 것도 잡지못하였는데 날이 새어갈 때에 예수께서 나타나사 그 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잡으리라 하시니 이에 던졌더니 물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 없을 정도였다. 제자들이 작은 배를 타고 물고기가 든 그물을 끌고 육지에 올라보니 숯불이 있는데 그 위에 생선도 놓였고 떡도 있었다. 예수님이 준비해 놓으신 것이었다. 예수님은 떡을 가져다가 그들에게 주시고 생선도 그와같이 하셨다. 이 일은 제자들이 먹고사는 일에 전념하며 살 사람들이 아니고 예수님이 주실 사명을 위하여 살아야 되며 그 대신 그들의 먹고사는 문제는 예수님이 책임져 주실 것을 보여주신 것이다.
조반을 먹은 후에 이어지는 예수님과 제자들과의 대화는 이 사실을 분명히 보여준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고 세번이나 물으시면서 "내 양을 먹이라"고 하셨다. 이 말씀은 제자들의 사명이 예수님의 양을 먹이는 일이며 예수님을 사랑한다면 이 일을 해야 할 것을 가르치신 것이다. 이것은 제자들이 자신들이 원하는 바를 따라 사는 것이 아니라 예수의 보내신 자로서 살게 될 것이고 자신들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자의 삶을 살게될 것을 보이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예수를 따르는 길이다. 하나님이 예수를 보내신 것 처럼 예수님은 신자들을 세상에 보내시는 것이다. 이제 요한은 이 일을 증언하고 기록한 제자가 자신임을 밝히고 자기 증언이 참된 것을 주장한다. 그리고 자신이 이것을 기록한 목적은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임이라고 증거하고 있다.
[추기] 2017년 8월 26일
요한복음 21장이 과연 부록일까? 부록이라면 21장이 없어도 요한복음의 메시지는 완결된다. 21장이 있든 없든 요한복음의 메시지에 영향을 미치지 않게 된다는 말이다. 그러나 나는 21장이 없다면 요한복음의 메시지는 완결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21장을 부록으로 보는 근거는 요한복음의 기록목적을 언급한 20장 30-31절을 요한복음의 결론으로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이 구절은 요한복음 전체의 결론이라기 보다는 20장의 도마 이야기의 결론으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생각한다. 도마는 부활하신 예수를 보고도 믿지 못했는데 이런 도마를 향해 예수는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너는 나를 본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라고 말했다. 이런 도마의 이야기의 맥락에서 20장 30-31절은 예수의 부활이 바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보여주는 표적중의 표적임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런 관점이 맞다면 21장을 부록으로 보는 근거는 상실된다.
그렇다면 21장의 왜 요한복음의 메시지를 완결하게 되는가? 그것은 20장 21절에서 그 근거를 찾을 수 있다. 이 구절은 부활하신 예수가 제자들에게 나타난 목적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나는 21장이 바로 "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낸다" 는 말씀의 의미를 밝혀준다고 생각한다.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를 목도했고 부활하신 예수가 그들에게 "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낸다" 는 말씀을 하셨지만 막상 무엇을 할지 알지 못했던 것같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의 생업인 물고기 잡는 일로 돌아갈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그들이 어부 생활도 돌아간 것을 믿음을 떠난 일로 보는 것은 맥락을 떠난 관점이다. 어부가 생업인 그들이 밤새도록 애썻지만 아무 것도 잡지 못했다는 것은 이제 그들이 할 일이 생업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님을 암시한다. 또한 그들이 예수의 말을 따라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졌을 때 고기가 그물을 들 수 없을 정도로 잡혔다는 것은 이제 그들의 먹고사는 문제가 그들의 생업이 아니라 전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에게 달려있음을 암시한다. 그러니까 이 장면은 이제 제자들은 먹고사는 문제에 골몰하지 말고 예수가 시키는 새로운 일에 골몰해야 함을 의미한다.
이제 예수는 고기잡는 일이 아닌 다른 일에 그들을 보내시려고 한다. 제자들과 조반을 먹으면서 하신 대화는 바로 예수가 제자들을 보내어 하시려는 일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준다. 그것은 하나님의 어린 양을 치고 먹이는 일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나라 왕으로서 예수는 그 나라 백성을 돌보는 일에 제자들을 보내시려고 하신다. 이제 제자들은 물고기 잡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나라의 백성들을 돌보는 일에 보냄을 받는다. 그들은 하나님나라의 왕의 사신들인 셈이다. 그들은 왕의 사신으로서 그 나라의 백성들에게 보냄을 받은 자들이다. 예수는 내 양을 먹이라는 사명을 주기 전에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세 번이나 물으신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하나님을 사랑하다는 것은 바로 그가 보내시는 일을 하는 것이고 하나님나라 왕이신 예수의 통치에 순종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추기] 2019-11-06 17:44:28
요한복음 21장
대부분의 학자들은 요한복음은 20장에서 끝나고 21장은 나중에 편집과정에서 덧붙어진 부록이라고 본다. 이런 주장의 이유는 요한복음 20장의 마지막 구절이 요한복음을 마무리하고 있는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20장의 마지막 구절을 반드시 요한복음 전체의 마무리 구절로 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이 구절은 20장을 마무리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부활하신 예수가 제자들에게 나타났고 그것은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나타내는 표적중의 표적인데 도마로 대표되는 제자들은 그 표적을 오히려 믿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요한은 자신이 이 책에 기록한 표적들이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는 표적들임을 강조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이렇게 생각하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요한복음의 기자가 21장으로 요한복음을 마무리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21장이 중요한 이유는 20장에서 예수가 제자들에게 ‘아버지가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낸다.’ 는 가장 중요한 메시지와 관련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21장은 20장의 가장 중요한 메시지인 제자들의 사명에 관해 보다 선명한 그림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제자들이 자신들의 본업인 물고기를 잡으러 가겠다고 한 일은 부활하신 예수가 나타나서 제자들에게 가르친 사명에 대해 제자들이 아직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있을 보여준다. 이제 제자들은 물고기 잡는 일로 살아갈 사람들이 아니라 하나님나라의 증인으로 살아야 할 사람들이다. 그래서 부활하신 예수는 다시 한 번 제자들에게 나타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직업이 어부임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은 밤이 새도록 애썼지만 그 날 밤에 아무것도 잡지 못했다. 제자들에게 다시 나타난 부활한 예수는 그물을 들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물고기를 잡게 하시고 그들에게 아침까지 준비하여 먹으라고 하셨다. 이 장면은 하나님나라를 증언할 제자들이 먹고사는 문제를 걱정할 필요가 없으며, 오히려 만일 제자들이 사명을 저버리고 먹고사는 문제에 골몰하다면 아무리 애써도 그들이 먹고살지 못할 것임을 보여준다. 조반을 먹을 후에 이어지는 대화는 부활한 예수가 제자들에게 나타난 이유가 무엇인지를 잘 드러낸다. 그것은 내 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는 예수의 명령이다. 제자들의 사명은 예수의 양으로 비유된 하나님나라 백성들을 돌보고 섬기는 일이다. 예수가 자기 양을 위해 목숨을 내어주었듯이 이제 제자들은 예수의 양, 곧 예수를 왕으로 섬기는 하나님나라 백성들을 돌보고 섬겨야 한다. 그것이 바로 예수가 제자들을 택하고 가르치신 목적이요 자신이 십자가에 죽고 다시 살아난 목적이다. 이것을 떠나서 제자들의 존재 이유는 없다. 예수는 내 양을 치라고 명하면서 내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세 번이나 묻는다. 제자들이 예수의 양을 치는 일은 곧 예수를 사랑하는 일이다. 예수 사랑은 추상적이고 감성적인 것이 아니라 예수가 세우신 하나님나라 예수가 왕으로 다스리는 그 나라의 백성들을 돌보는 일로 나타나야 한다. 그러므로 예수를 사랑한다는 것은 예수가 하나님나라 왕으로서 그 나라를 다스리심을 깨닫고 순종하는 것이다. 하나님나라 왕이신 예수의 통치는 세상나라와 달리 강압적으로 지배하는 나라가 아니라 그 나라 백성들이 그 나라 왕을 사랑하여 자발적으로 순종함으로 이뤄진다. 그리고 그 순종과 사랑은 죽음으로도 막지 못하는,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믿음으로 나타날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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