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10장 죽음과 부활- 세번째 告知
Tolle Rege/마가복음
2013-04-29 23:40:11
여전히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에게 도전하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그들은 이혼의 문제를 가지고 예수님을 시험하였는데 그들은 모세가 이혼 증서를 써주고 이혼을 허락하엮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예수님은 유대인들이 내세우는 이혼에 관한 모세의 교훈은 일시적인 것이고 상대적인 것이지 하나님의 영원한 규례가 아니라고 하신다. 오히려 모세의 교훈은 이스라엘의 완악함을 인하여 이혼증서를 통하여 이혼의 피해를 최소화 하려는 임시적인 조처였다. 이혼의 문제에 대하여 예수님은 창조 규례를 가르치시는데 그것은 하나님이 창조 때로 부터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지으시고 한 몸이 되게 하셨으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눌 수 없다고 이혼의 부당성을 지적하셨다. 그리고 이혼을 한 후에 다른 재혼을 하는 것은 간음을 행하는 것라는 놀라운 말씀을 하신다.이혼이 하나님의 창조 규례를 범하는 것이라면 재혼은 간음하지 말라는 계명을 범한 것이다. 예수님의 이런 교훈은 당시의 유대인들에게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가르침이었을 것이다. 예수님은 다시금 어린아이를 가지고 하나님나라의 성격을 계시하셨는데 하나님의 나라가 바로 어린아이들의 것이라고 하신다. 그것은 하나님 나라를 어린아이와 같이 받드는 자가 그 나라에 들어간다는 의미이다. 이는 하나님나라의 도래에는 그 백성된 자의 순종과 헌신을 요구됨을 분명히 계시한 것이다.
예수께서 길에 나가실 때 어떤 사람이 달려와서 무릎을 꿓고 예수님을 선한 선생님이라고 부르며 자기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을 수 있느냐고 여쭈었다. 아마도 그는 예수님을 위대한 랍비로 알고 존경하는 마음으로 이런 질문을하였을 것이다. 그에게 예수님은 십계명의 5게명 이후를 지키라고 말씀하셨고 그는 그것은 자신이 어려서 부터 다 지켰노라고 대답한다. 그의 대답은 사실일 것이다. 그는 율법을 지키는 일이 진실한 자였을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를 사랑하사 그에게 아직 부족한 것을 지적하여 주신 것이다. 예수님이 지적하신 그의 부족함은 그가 재물을 사랑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재물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는 말씀은 그에게 자신이 하나님보다 재물을 더 사랑하는 자임을 깨닫게 하시려는 것이었다. 그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자신이 하나님보다 재물을 사랑하는 자이며 자신이 율법을 지킨 것이 아니라 사실은 율법을 범한 자임을 깨닫고 회개하여야 했지만 그는 근심하며 떠나갔다. 여기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재물을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단정하신다.. 그러나 인자와 복음을 위하여 자기 재물과 가족이라도 포기하는 자는 그 백배를 받고 내세에 영생을 얻지 못할 자가 없다고 하신다. 이는 돈을 숭상하는 오늘날 자본주의 시대를 내려치는 말씀일 것이다
이제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는데 그 길은 고난과 죽음을 향해가는 길이었다. 이에 예수님은 세번째로 자신의 죽음과 부활을 말씀하신다. 이제 에루살렘에 올라가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 곧 그시대의 종교권력자들에게 넘겨져 능욕을 받고 죽임을 당하 것이나 삼일 만에 살아날 것이다. 예수님은 제자들 앞에서서 이 길을 향해 성큼 성큼 걸어가시나 제자들은 놀라고 따르는 자들은 두려워하였다.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님에게 주의 영광중에서 자신들을 주님의 좌우편에 앉게해 달라고 청한 것은 아마도 이제 예루살렘에 올라가 예수님이 메시야로서 영광스런 자리에 앉을 것을 기대하였음을 반영한다. 예수님은 그들이 구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지못한다고 지적하시며 자신이 당할 고난과 죽음을 자신이 마시는 잔과 자신이 받는 세례라고 표현하신다. 제자들은 지금은 예수님의 이 고난과 죽음에 참여하지 못하지만 나중에는 참여하게 될 것이다. 다시금 예수님은 자신의 죽음과 부활로 이루어질 하나님나라의 질서에 대하여 가르치시는데 그것은 세상의 질서와는 반대되는 것이다. 하나님나라에서는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한다는 진리였다. 이는 예수님이 친히 보이시는 모범이었고 예수를 따르는 모든 자들이 보여야 할 태도이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신 것이다.
예수님의 이런 중대한 말씀에 대한 제자들의 반응은 눈먼 소경과 같은 것이었다. 여리고에서 맹인 거지 바디메오가 눈을 뜨는 사건이 나타난다. 이 사건은 본다고 하지만 사실은 눈 먼 소경과 같이 예수님이 비추시는 계시의 빛을 보지 못하는 제자들의 모습과 좋은 대조를 이룬다. 제자들은 자신들이 예수님의 중대한 계시의 빛을보지 못하는 소경임을 알지 못하였지만 바대메오는 자신이 소경인 것을 알고 간절히 보기를 원하였고 결국 그는 보게되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바디메오를 고치신 일은 장차 제자들의 눈을 열어 주시어 그들이 하나님나라의 진리의 빛을 보게될 것을 암시하는 사건일 것이다.
[추기] 2018년 10월 14일
부자 청년 이야기의 앞에는 어린아이를 축복하는 이야기가, 뒤에는 야고보와 요한의 이야기가 놓여있다. 일련의 이 세가지 이야기는 서로 상관되며 하나의 일관된 의미를 제시하고 있다고 본다. 먼저 어린아이를 축복하는 이야기에서 예수님은 하나님나라를 어린아이와 같이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거기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말씀하신다. 이 이야기와 관련해 본다면 부자 청년 이야기나 세베대의 두 아들 이갸기는 모두 하나님나라를 어린아이와 같이 받아들지 않는 사람의 이야기라고 생각해 볼 수 있다.
부자청년은 영생을 얻으려면 무엇을 해야하느냐고 물었는데, 이 물음은 곧 하나님나라에 들어가려면 어떻게 해야하느냐는 것이었다. 예수가 네가 알고 있는 계명을 지키라고 했을 때 청년은 이 모든 것을 어려서 부터 지켰다고 말한다. 그러나 예수는 그에게 한가지 부족한 것이 있다고 지적하며 네가 가진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라 그리고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는 청년이 계명을 모두 지켰다고 한 대답에 이의를 제기하는 대신에 한가지 부족한 것이 있다고 지적하셨다. 그러면서 재물을 다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라고 하신다. 그렇다면 예수가 말한 한가지 부족한 것이 무엇인가? 청년이 재산이 많으므로 근심하여 떠나갔다는 말로 미루어 보아 예수가 지적한 한가지 부족한 것이란 바로 이 청년이 재물을 사랑한다는 사실로 보인다. 그러니까 이 청년은 하나님보다 재물을 더 사랑한 사람이었고 그 감추어졌던 사실이 예수님이 재물을 다 팔아서 주라는 말로 인해 드러나게 되었다. 이 청년이 하나님보다 재물을 더 사랑했다면 하나님의 계명을 어려서부터 모두 지켰다는 그의 말은 결국 헛된 말이 되고 만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사랑함이 없이 그의 계명을 지키는 일은 불가능하며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예수는 이 청년의 감추어진 정체를, 아마도 청년 자신도 인식하지 못하던 그 실체를 폭로하였다. 이 청년은 예수와의 대화를 통해 자신이 하나님보다 재물을 더 사랑하는 자임을 깨닫고 돌이켜야 했는데 그 기회를 놓쳐버렸다. 그래서 예수는 부자가 하나님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더 쉽다고 말씀하신다.
이어지는 세베대의 두 아들 이야기 역시 어린아이와 같이 하나님나라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로 보인다. 그들은 예수에게 선생님이 영광을 받으실 때, 즉 예수가 왕으로서 다스리는 하나님나라가 임할 때 자신들을 예수의 좌우편에 각각 앉게 해달라고 요구했다. 다른 열 제자들은 이 말을 듣고 다른 분개했다. 이때 예수는 이방 나라에서 다스린다고 자처하는 자들은 백성들을 마구 내리누르고 고관들은 백성들에게 세도를 부리지만 너희끼리는 그렇게 해서는 안 되다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이어서 하나님나라의 귀중한 진리를 가르치셨는데 그것은 너희 가운데 누구든지 위대하게 되고자 하는 사람은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너희 가운데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이었다. 예수의 이 교훈은 하나님나라의 질서는 이 세상나라의 질서와 전혀 다른 질서임을 가르친다. 그러면서 예수는 인자는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으며 많은 사람을 구원하기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주러 왔다고 말한다. 이는 죽음을 앞둔 예수가 자신의 죽음이 바로 하나님나라의 질서에 따른 죽음임을 암시한다. 이 세상에서는 왕은 군림하고 백성을 지배하지만 하나님나라에서 왕은 자기 백성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어준다. 이렇게 예수의 죽음은 하나님나라의 질서를 세우는 죽음이었다.
이렇게 세 이야기를 연관시켜 보면 하나님나라를 어린아이와 같이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있다. 부자 청년 이야기에서 그것은 하나님보다 재물을 더 사랑하는 것이며 세베대의 두 아들 이야기에서 그것은 이 세상 질서를 따라 남보다 자신을 높이는 것이다. 어린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허락하고 막지 말아라. 하나님나라는 이런 사람들 것이다. 누구든지 어린아이와 같이 하나님나라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거기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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