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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경/마가복음

마가복음 8장 죽음과 부활- 첫번째 告知

마가복음 8장 죽음과 부활- 첫번째 告知

Tolle Rege/마가복음

2013-04-23 22:42:09


 

  이미 예수님은 6장에서 오병이어의 이적을 행하사 오천명을 먹이신 적이있다. 이번에도 주님은 생선 7마리와 떡 2개로 사천명을 먹이는 이적을 행하셨다. 오병이어의 이적을 행할 때도 예수님은 큰 무리들이 목자없는 양 같음으로 불쌍히 여기셨고 이번에도 에수님은 무리를 불쌍히 여기사 이런 이적을 행하신 것이다. 이런 이적들을 행하신 것은 단순히 무리들의 먹는 문제를 해결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나라의 위대한 계시인 것이다. 예수님의 모든 언행은 그 자체가 계시이기 때문이다. 이런 이적들이 드러내는 하나님나라의 진리는 두가지로 생각된다. 첫째는 하나님나라는 먹고사는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된다는 진리일 것이다. 더 이상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염려하지 않아도 되는 나라가 하나님나라일 것이다. 이것은 첫 사람 아담이 먹고 사는 문제로 부터 자유했을 것이고 이스라엘도 광야 사십년의 세월동안 이적적인 만나를 먹고 살았던 것이다. 둘째는 이런 이적들은 말씀과 진리에 굶주린 하나님의 백성들을 하나님이 풍성하게 먹이신다는 진리일 것이다. 백성들의 선생으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있었지만 그들은 백성들을 진리로 먹이지 못하기 때문에 백성들은 늘 굶주리는데 하나님이 이들을 진리로 채워주신다는 것을 이 이적들은 드러내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이적을 보고도 바리새인들은 오히려 하늘로 부터 오는 표적을 구하였다. 예수님은 마음속으로 깊이 탄식하시며 하나님께 이 세대에는 표적을 주지 아니하시리라고 하신다. 사실 표적을 주시지 않은 것이 아니라 예수님은 수많은 이적들을 행하셨고 그 이적들은 분명히 하나님나라를 계시하는 표적들이었지만 바리새인들은 귀머거리요 소경이라 그 계시를 듣지도 보지도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주님은 제자들에게 바리새인들과 헤롯의 누룩 곧 그들의 교훈을 주의하라고 경고하신 것이다. 그들의 교훈은 사람으로 하나님의 계시에 귀멀게 하고 눈 멀게 만들기 때문이다. 제자들은 누룩이라는 말에 떡을가져오기를 잊었다고 수군거리자 주님은 아직도 알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느냐 왜 그렇게 마음이 둔하냐고 책망하신다. 제자들 역시 아직은 마치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자같은 처지에 있었던 것이다. 제자들도 하늘로 부터 오는 표적을 보고도 그 표적이 가르치는 진리를 알지 못한 것이다. 이어지는 벳세다 맹인 치유 사건은 주님이 장차 제자들의 눈을 뜨게 하시여 하나님나라의 진리를 보게하실 것을 계시하신 것이다.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주님은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고 물으셨다. 그러나 정작 주님의 질문의 촛점은 제자들이 주님을 누구라고 하는냐는 것이었다. 베드로는 주는 메시야이시라고 대답하였다. 이것은 주님이 기대하신 대답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주님은 이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경계하신다. 주님이 제자들에게 이 질문을 하신 이유는 자신 고난을 받고 죽으실 날이 가까웠기 때문이었다. 주님은 자신이 고난을 당할 것과 죽으실 것 그리고 사흘 만에 살아나실 것을 드러내 놓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예수님이 처음으로 자신의 죽음과 부활에대 하여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때이었다. 그러나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는 무능한 메시야는 제자들의 메시야관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래서 베드로는 예수를 붙들고 항변을 하였다. 그러나 베드로의 태도는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않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 것 곧 사탄적인 태도였다. 메시야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며 다시 살아나는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일을 이루는 것이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고 하신다. 이것은 자기 생각 자기 판단을 하나님의 뜻 앞에 내려놓는 순종이 없이는 주님을 따를 수 없다는 진리를 의미한다. 주님은 몸소 절대적인 순종의 위대한 모범을 보이실 것이니 그것이 바로 고난과 죽음인 것이고 부활은 순종의 열매가 생명인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자기 목숨을 구원코자  하는 자는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는 말씀 역시 인간 생명의 근본은 하나님께 순종하는데 있음을 의미할 것이다. 한 사람 아담의 불순종으로 인하여 사망이 세상에 들어왔듯이 한 분 예수님의 순종으로 사망의 권세가 깨어질 것이다. 사람이 자기 뜻대로 하여 온 천하를 얻을지는 모르나 순종없이는  자기 목숨을 구하지 못하는 법이다.

 

[추기] 2013. 6. 7

 

예수님의 두가지 질문,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그리고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이 질문 다음에 예수님은 자신의 죽음과 부활을 처음으로 제자들에게 고지하셨다.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라고 대답하였을 때 주님은 자기가 그리스도인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경계하셨다. 그리고 자신을 인자라고 표현하면서 인자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며 사흘만에 살아날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예수님이 자신의 죽음과 부활의 고지에 앞서 자신을 누구라 하느냐고 제자들에게 물어보신 이유는 무엇일까? 제자들은 예수를 그리스도라 고백했지만 고난을 받고 죽으며 부활하는 그리스도는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고지는 제자들의 메시야관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베드로는 예수를 붙들고 간곡히 만류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배드로의 그런 만류는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 사단적 생각이었다. 그러므로 주님을 따르는 길은 자기 생각을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만 갈 수 있는 길이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