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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경/로마서

로마서 3장 하나님의 의

로마서 3장 하나님의 의

Tolle Rege/로마서

2012-09-16 19:44:01


 

  비록 바울은 이방인에 이어서 유대인들의 위선을 정죄하였지만 유대인의 나음과 할례의 유익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 이는 유대인들을 변호하려는 것이 아니라 유대인들을 통하여 나타난 하나님의 언약적 신실하심을 말하려는 것이었다. 비록 유대인들은 신실하지 않았지만 그들의 불신실함 때문에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폐하여진 것이 아니요 사람은 다 거짓될지라도 오직 하나님은 참되시다는 것이다. 그래서 오히려 유대인의 불의가 하나님의 의를 드러내는 역설이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이 말은 사람의 불의에 대하여 진노하시고 심판하시는 방식으로 하나님의 의가 드러난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 말을 비방하여 사람의 거짓말로 하나님의 참되심이 더 풍성하여 그의 영광이 되었다면 어찌 죄인처럼 심판을 받겠느냐 그리고 선을 이루기 위하여 악을 행하자는 것 아니냐고 하는 자들이 있는데 바울은 이런 자들이야 말로 정죄받는 것이 마땅하다고 책망하고 있다.

 

   이제 바울은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결론에 이르렀는데 그것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모두 죄아래 있다는 선언이었다. 바울은 구약의 예언을 인용하여 자신의 선언을 증거하고 있는데 의인 곧 깨닫는 자, 하나님을 찾는 자가 없는데 그 결과 그들은 모두 치우쳐 무익한 자, 불의를 행하는 자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들이 행하는 불의는 주로 인간 상호간의 모든 속임, 저주, 악독이며  그래서 평강을 알지 못하고 파멸과 고생뿐이라는 것이다. 이 모든 근원은 그들이 하나님을 두려워 하지 않는다는데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자들에게 율법은 그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아래 있다는 것을 알게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율법아래 있는 자들이란 율법을 통하여 정죄를 받는 자들을 의미하는 것이다. 바울은 이어서 매우 중대한 진리를 진술하는데 그것은 율법의 행위로 하나님 앞에 의롭다 함을 얻을 사람이 없고 율법으로는 죄를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율법 자체를 부정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율법의 행위를 통하여 하나님 앞에 의롭다 함을 얻을 수 없는 인간의 무능을 지적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바울이 율법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다고 말하는 것은 율법을 통하여 하나님 앞에 의롭다함을 얻을 수 없는 무능한 인간의 문제를 해결하시는 하나님의 의가 율법과 다른 방식으로 나타났다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율법외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를 의롭다하시는 하나님의 의이다. 모든 사람이 범죄하여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는 것이 인간의 비참한 실존인데 그리스도 예수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얻을 길이 열렸다는 것이다. 이것은 모든 믿는 자들에게 값없이 주어지는 하나님의 은혜인 것이다. 여기서 속량이라는 중요한 표현이 사용되었는데 이것은 죄의 종노릇하여 스스로 그 멍에에서 벗어날 힘이없는 인간의 무능을 표현하는 것이요 동시에 예수님을 통하여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는 단순히 의롭다고 인정하는 것만 아니라 죄의 종노릇하는 자들을 실제적으로 해방시키는 하나님의 능력을 표현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리스도 예수 안의 속량은 거저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속량이라는 말 자체가 의미하듯이 그 값을 치루고 이루어진 것인데 바울은 이것을 예수의 피로써 세우신 속죄제물이라고 셜명한다. 다시 말하면 죄의 종노릇하는 자들을 해방시키기 위하여 값을 치루었는데 그것이 바로 예수의 피로 세운 속죄제물이라는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하나님은 자신이 정의로우심을 나타내면서도 동시에 예수믿는 자를 의롭다신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다시 앞에서 진술한 진리를 다시 반복하면서 사람이 의롭다함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아니하고 믿음으로 된다고 결론을 내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바울은 자신의 이 선언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파기한다고 오해하는 자들에게 오히려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굳게 세운다는 말을 첨언하고 있다.

 

추기 2014. 4. 25  하나님의 의

 

유대인들은 율법을 자랑하면서도 율법을 지키지 않았지만 유대인의 존재 자체가 무가치한 것은 아니ㅐ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맡기셨기 때문이다.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아니하였을지라도 즉 그들이 신의를 저버렸을 지라도 하나님의 신실하심은 변치아니하신다. 사람은 다 거짓되지만 오직 하나님은 참되시다. 하나님과 사람과의 관계에서 사람은 항상 거짓되지만 하나님은 언제나 신실하시다는 말이다. 결국 사람의 불의가 오히려 하나님의 의를 드러나게 한 것이다. 그러므로 진노를 내리시는 하나님이 불의하신 것이 아니다. 여기서 바울은 하나님의 진노가 사람의 불의를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의라고 말한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진노나 심판은 하나님이 신실하시기 때문에 불의한 사람에 대하여 나타난다는 것이다. 

 

결국 바울의 결론은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모두 다 죄아래 있다고 선언한다. 모든 사람은 율법아래 있는데 율법은 그들의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아래 있게 만든다. 이 말은 율법이 죄 아래 있는 모든 사람으로 핑게하지 못하게 하고 심판에 합당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래서 율법의 행위로 하나님 앞에 의롭다 함을 얻을 사람이 없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이 죄아래 있기 때문이다. 이제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을 뿐이다. 이렇게 죄 아래 있는 모든 사람은 율법의 행위로 의롭다함을 얻을 수 없는 처지에 있다는 것이고 율법으로는 단지 죄를 깨달을 뿐이라고 말한다. 

 

이렇게 절망적인 사람에게 하나님은 기쁜 소식을 마련하셨으니 그것이 곧 복음이다. 복음에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그것은 구약에서 이미 증거를  받은 것이다. 그러니까 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는 갑자기 나타난 것이 아니라 구약에서 오랜전부터 준비된 것이란 말이다. 그런데 율법외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이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므로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게 되었다. 죄를 범하기 전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는 사람이 율법을 지키므로 하나님 앞에 의롭다함을 받는 것이었다. 그런데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므로 율법으로 하나님께 의롭다함을 얻을 길이 막혀버렸다. 이것인 인간의 절망적 상태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복음을 준비하셨는데 그것은 율법이 아닌 다른 길로 하나님 앞에 의롭다 함을 받을 길을 마련하신 것이다. 절망적 인간에게 새로운 희망이 주어진 것이다.

 

그렇다면 율법외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란 무엇인가?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곧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하시는 것이다. 그런데 그리스도 안에 있는 속량이란 무엇인가? 그것을 바울은 하나님이 그리스도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심으로 사람의 죄를 용서하시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것은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를 회복하는 화목제물의 성립조건은 그리스도의 피만이 아니라 그 피를 믿는 믿음이 함께 해야한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복음은 믿음을 요구하며 복음을 믿음으로 받아들일 때 그 복음이 믿는 자를 구원하는 하나님의 능력이 되는 것이다.

 

결국 이 복음을 통하여 하나님은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신 것이며 동시에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고 하시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다시금 사람이 의롭다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율법외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를 믿음으로 된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하나님은 유대인뿐만 아니라 이방인의 하나님도 되시므로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모두 믿음으로 의롭다하심을 얻는다고 말한다.

 

그런데 이 말후에 바울은 즉시 믿음으로 율법을 파기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운다는 말을 덧붙인다.이것은 아마도 믿음을 율법폐기로 오해할까봐 경계하려는 듯 하다. 바울은 자신이 율법의 행위가 아니고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는다는 말이 이제 율법은 필요가 없다는 의미가 아님을 강변하는 것이다. 오히려 율법을 굳게 세운다고 말한다. 바울이 믿음과 율법을 대조하여 의롭다함을 받는 길이 율법을 지킴으로는 불가능하고 믿음으로만 가능하다고 말한 것였지만 이것이 율법을 부정한 것은 아니고 오히려 율법을 더 굳게 세운 것이라 말한다.

 

[추기] 2015. 2. 7

 

결론은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다 죄 아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의인은 하나도 없고 깨닫는 자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한기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가 하나도 없다. 그러므로 율법은 이들의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게 한다. 이렇게 하나님을 떠나 악해진 인간들은 율법의 행위로 하나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고 다만  율법으로 죄를 깨달을 뿐이다.

 

그런데 율법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는데 이것은 구약에서 증거를 받은 것이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자에게 차별없이 미치는 하나님의 의이다. 모든 사랑이 범죄하여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는데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길이 나타난 것이다. 하나님은 그리스도 예수를 그의 피로 인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몰로 세우심으로 하나남의 의로우심을 나타나셨다.  이것이 율법외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인데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하는 것이다.

 

율법 외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란  무엇인가? 원래 율법이란 하나님이 인간에게 요구하시는 언약적 의무이다. 그러므로 인간이 율법을 지킴으로 언약적 의무를 다하게 되며 그 언약관계가 유지되는 것이다. 율법은 하나님의 언약적 요구이며 인간의 언약적 의무이다. 그런데 문제는 인간이 타락함으로 율법을 지킬 능력이 없다는데 있다. 그러므로 언약적 요구인 율법은 인간을 "불의"하게 만들고 정죄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모든 인간은 율법을 행함으로 의롭다함을 얻는 것, 곧 언약 관계를 회복할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율법외에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으니 그것이 바로 복음에 나타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