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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경/로마서

로마서 2장 하나님의 심판

로마서 2장 하나님의 심판

Tolle Rege/로마서

2012-09-16 19:23:05


 

 그런데 더 심각한 문제는 불의로 진리를 막는 자들의 특징이 남을 판단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남을 판단하는 것을 사실 자신을 정죄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판단하는 자신이 같은 악행을 행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이 풍성함을 멸시하는 자들이며 하나님의 진노를 쌓는 자들이다.

하나님은 각 사람에게 그 행한대로 보응하시는 분이시다. 선을 행하는 자에게는 영광과 존귀와 평강으로 보응하시고 악을 행하는 자에게는 환란과 곤고로 보응하실 것이다. 하나님은 유대인이든지 헬라인이든지 외모로 사람을 판단하시지 않고 각 사람의 행위로 판단하신다. 율법이 주어진 유대인들의 행위는 율법으로 판단을 받을 것이며 율법이 없는 이방인들은  그 본성의 양심이 증거가 되어 판단을 받을 것이다. 여기서 바울은 복음을 말하면서 하나님의 심판을 먼저 말한다. 바울이 복음에는 이렇듯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람들이 은밀하게 행한 것을 심판하신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사실 심판이 없다면 복음은 더 이상 복음이 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복음을 말하면서 하나님의 심판을 먼저 말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바울은 주로 이방인들에 대하여 말했다면 이제 바울은 유대인에 대하여 말하기 시작한다. 유대인들은 율법을 의지하면 하나님을 자랑하며 스스로 율법의 지식과 진리의 모본을 가진 자라고 스스로 믿지만 그들의 실상은 율법을 따라 행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도둑질 하지말라고 선포하면서 자신은 도둑질을하고 간음하지 말라 말하면서 자신은 간음을 한다는 것이다. 바울은 이렇게 유대인은 율법을 자랑하면서도 울법을 범하므로 하나님을 욕되게 한다고 지적한다. 이것은 유대인들의 위선을 책망하는 것이다. 그들은 겉으로는 율법을 지키는 것 처럼 보일 뿐 실제로는 율법을 범하는 행위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바울은 이방인으든지 유대인이든지 그들이 모두 하나님의 의에서 떠나 불의로 진리를 가리우는 죄인들임을 통렬하게 지적하고 있다.

 

추기 2014. 4. 24 하나님의 심판

 

하나님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자들 곧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는 자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셨고 그 결과 그들은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되었다. 여기서 합당하지 못한 일이란 곧 하나님의 뜻을 어기고 대적하는 불법하고 불의한 일이다.

 

그런데 기가막힌 일은 이 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한다고 하나님이 정하심을 알고도 그들은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런 일을 행하는 자를 옳다고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그들의 마음이 상실된 증거이다. 그런데 이들은 자신이 같은 일을 행하면서도 남을 판단한다. 마음이 상실된 자들은 남을 판단하면서도 자신을 판단할 줄을 모른다. 이런 자들을 하나님이 판단하실 것이니 곧 그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하지 못할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 그리고 길이 참으심이 풍성함을 멸시하는 자들이며 자기 고집과 회개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진노를 쌓는 자들이다.

 

하나님은 각 사람에게 행한대로 보응하시는 분이시다. 영광과 존귀와 썩지않음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보응하시고 불의를 구하는 자에게는 진노와 분노로 보응하신다. 그러므로 악을 행하는 각 사람의 영에는 환란과 곤고가 있을 것이며 선을 행하는 각 사람에게는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있을 것이다.

하나님은 외모로 사람을 판단하시지 않고 오직 그 행위로 판단하신다. 하나님은 행위로 판단하신다는 말은 영원한 진리이다. 우리가 은혜로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 하나님은 행위로 판단하지 않으신다는 의미가 아니다. 우리는 행위로 구원을 받지 못하지만 행위에 따라 심판을 받을 것이다. 하나님은 은혜로 우리를 구원하시지만 행위를 따라 심판하실 것이다.

 

그래서 율법없이 범죄한 자 곧 이방인은 율법이 없더라도 망할 것이요 율법이 있고 범죄한 자, 곧 유대인은 울법으로 심판을 받을 것이다. 여기서 이방인에게 율법이 없다는 것은 유대인처럼 명시적인 율법이 주어지지 않았다는 의미이지 그들이 율법과 무관하다는 의미가 아니다. 왜나하면 이방인들에게도 본성적으로 양심에 율법의 요구가 새겨져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율법과 무관한 자는 아무도 없고 율법의 요구로 부터 자유로운 자는 아무도 없다. 왜냐하면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져 하나님과 특별한 관계를 가진 존재로 창조되었으며 율법이란 바로 이 관계로 부터 나오는 관계법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는 이방인이든, 유대인이든 이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하심을 얻는다.

 

하나님이 정하신 날이 이르면 하나님은 사람들의 은밀한 것, 즉 은밀하게 행한 모든 불법과 불의를 심판하실 것이다. 하나님이 사람을 심판하시는 것도 결국 하나님과 사람사이에만 존재하는 특별한 관계때문이다. 하나님은 사람외에 어떤 피조물에게도 율법을 주시지 않았으며 또한 심판하지도 않으신다.

그런데 바울은 하나님의 심판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어진다고 말한다. 이는 심판하는 주권이 예수 그리스도에게 위임되어 예수 그리스도가 심판을 대행하시다는 것이다. 그리고 바울은 이것이 자신이 전하는 복음이라고 말한다. 그러니까 바울이 말하는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구원만이 아니라 그 분을 통해서 행해질 심판도 포함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구원과 심판, 이 두가지가 모두 복음에 포힘된 내용이라는 말이다. 사실 구원과 심판은 동전의 양면처럼 하나님의 한 행동의 두 동작이다. 구원과 심판은 모두 하나님이 창조목적을 이루시는 행위인데 하나님의 그 행위가 의로운 자에게는 구원으로 나타나며 불의한 자에게는 심판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추기 2014. 4. 22 마음의 할례
 
유대인이 이방인과 다른 점은 그들에게 율법이 명시적으로 주어졌다는 점이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율법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자랑한다 그리고 자신들이 율법의 교훈을 받아 하나님의 뜻을 알고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한다고 생각한다. 나아가 그들은 맹인의 길을 인도하는 자요 어둠에 있는 자들의 빛으로서 남을 가르치는 선생이라고 자부한다. 물론 그들에게는 이방인에게는 없는 명시적인 율법이 있으니 그렇게 자랑하고 자부할 만하다.
 
그런데 문제는 유대인들이 율법을 지켜 행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은 율법을 의지하고 그 율법을 주신 하나님을 자랑하면서도 정작 율법의 요구를 저버렸다. 이것은 정말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지만 유대인들에게 실제 일어난 일이요 사실 오늘도 일어나고 있는 역설이다. 그래서 바울은 구약의 선지들의 책망을 인용하여 하나님의 이름이 유대인들 때문에 이방인 중에서 모독을 받는다고 책망한다. 울법을 자랑하는 유대인들이 울법을 범하므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기 때문이다.
 
그란데 바울은 율법을 행하면 할례가 유익하지만 만일 율법을 범하면 할례는 무할례가 된다고 말한다.
울법을 행하지 않는다면 할례가 무가치하고 무의미하게 된다는 것이다. 사실 할례는 율법이 있기 이전에 있었다. 할례는 아브라함부터 시작되었고 율법은 모세때 주어졌기 때문이다. 여기서 할례와 율법의 관계를 생각해 보게 된다. 아브라함의 자손에게 할례를 행하는 것은 아브라함의 자손이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언약 백성임을 표시한 것이었다. 그리고 나중에 아브라함의 자손이 이스라엘 백성이 다시 하나님과 시내산에서 언약을 맺으면서 받은 것이 율법이다. 그러니까 할례는 하나님과 이스라엘이 언약관계에 있음을 표시하는 증거라면 율법은 이 언약관계를 규율하는 언약법이다. 할례가 언약 혹은 언약관계를 나타낸다면 율법은 이 관계를 규율하는 언약법인 셈이다. 
 
그래서 바울은 율법을 행하면 할례가 의미가 있지만 만일 율법을 범하면 할례는 무할례나 마찬가지고 된다고 말한다. 바울은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고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라고 한다.
그러면서 이면적 유대인이 진짜 유대인이고 마음에 하는 할례가 진짜 할례라고 결론을 내린다. 왜냐하면 할례는 영에 있고 율법 조문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는 마음의 관계이고 영의 관계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마음과 뜻과 목숨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을 바라지 말고 하나님의 칭찬을 기대하여야 한다.
 
[추기] 2015. 2. 7
 

하나님을 떠난 인간을 하나님은 부끄러운 욕심에 내어버려 두셨는데 인간의 모든 악이 바로 여기에서 나온다. 그러니까 인간의 모든 문제가 하나님을 떠난데 있고 하나님으 그들을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어버려 두신 연고이다. 인간은  악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알고도 그 악을 행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그 악을 행하는 자들을 옳다고까지 한다. 그리고 악을 행하는 자가 남을 판단하기 까지 한다. 그들은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길이 참으심을 멸시하는 자들이며 하나님의 진노를 쌓는 자들이다.

 

하나님은 이방인이든 유대인이든 각 사람에게 행한대로 보응하신다. 율법으로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람들의 은밀한 것을  심판하실 것이다.

유대인이라 할지라도 율법을 범하면 할례가 무할례가 된다. 표면적인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다. 할례는 마음에 할찌니 신령에 있고 의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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