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54장 이스라엘의 회복
Tolle Rege/이사야
2011-07-27 15:43:42
이스라엘은 잉태하지 못하며 출산하지 못한 자 홀로된 여인으로 표현된다. 그만큼 이스라엘은 미래의 희망이 없는 절망적 처지에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들의 장막터와 처소의 휘장이 넓어질 뿐만 아니라 그 자손이 열방을 얻으며 황폐한 성읍이 사람살 곳이 될 것이라는 놀라운 희망이 주어진다. 이제 다시는 그들이 이전처럼 수치를 당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을 지으신 만군의 여호와가 그들의 남편이 되시며 온 땅의 하나님이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가 그들의 구속자가 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잠시 그들을 버리셨으나 큰 긍휼로 모으실 것이요 넘치는 진노로 얼굴을 가리우셨으나 영원한 자비로 그들을 긍휼히 여기실 것이다. 마치 노아시대 홍수로 전멸케 한후에 다시는 홍수로 범람치 않게 하리라 맹세한 것과 같이 다시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책망하지 않으실 것이다. 산들이 옮겨질지라도 여호와의 자비는 옮기지 않으며 이스라엘과 맺은 하나님의 화평의 언약은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곤고하며 광풍에 요동하는 것 처럼 안위를 받지 못한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은 보석으로 성읍을 만들어 주실 것이라 약속하신다. 그들의 모든 자녀들도 여호와의 교훈에 순종하여 평안할 것이며 이스라엘은 공의로 설 것이다. 그들에게 이방의 학대가 멀어지고 공포도 가까이 하지 아니할 것이니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이방의 침략이 있을지라도 그것이 여호와게서 일으키신 것이 아니므로 반드시 이길 것이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을 대적하는 모든 대적들은 반드시 패망할 것이다.
이사야 54장
닥치고 성경/이사야
2019-11-15 01:53:30
이사야 54장
임신하지 못하고 아기를 낳지 못하는 너는 물론 바벨론 포로생활을 하는 이스라엘을 가리킬 것이다. 그들은 마치 아이를 못 낳아 버림받은 여인처럼 비참하고 아무 소망이 없는 처지에 있다. 그러나 아이를 못 낳아 버림받은 여인이 남편과 함께 사는 여인보다 더 많은 자녀를 볼 것이라는 참으로 믿기 어려운 약속이 주어진다. 마찬가지로 바벨론 포로생활을 하는 이스라엘에게 전해진 복음은 참으로 기쁜 소식이긴 하지만 믿겨지지 않는 비현실적인 소식이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주님이 하신 말씀이다. 지금 바벨론에 포로로 사는 이스라엘의 자손이 이방나라들을 차지할 것이고, 황폐한 성읍들마다 주민들이 가득할 것이다. 이제 이스라엘은 이방에 포로로 잡혀가는 수치를 다시는 당하지 않을 것이므로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을 지으신 하나님이 남편이 그 아내를 잊지 않고 지키듯이 이스라엘을 구속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으신 하나님은 만군의 주님이시며 온 세상의 하나님으로 불리실 것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만의 하나님이 아니라 온 세상의 하나님으로 불리시기 위하여 이스라엘을 구속하실 것이다. 하나님이 잠시 이스라엘을 이방의 압제아래 버리신 것은 사실이지만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잊거나 포기하신 것은 아니다. 그래서 이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큰 긍휼로 다시 불러들이신다. 주님은 이스라엘의 죄악에 분노하여 잠시 그 얼굴을 가리셨지만 이제 영원한 사랑으로 이스라엘에게 긍휼을 베풀며 이스라엘을 속량하실 것이다. 노아 때에 땅을 홍수로 멸망시키셨듯이 주님은 이스라엘이 멸망하여 이방의 압제를 받게 하셨다. 이스라엘의 멸망은 노아 때에 땅이 홍수로 멸망한 것에 비견될 정도로 주님이 보시기에 심각하고 엄청난 사건이었다. 그러나 다시는 땅을 홍수로 멸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신 것처럼 주님은 다시는 이스라엘을 꾸짖거나 벌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신다. 주님의 은총은 이제 이스라엘을 떠나지 않을 것이며 평화의 언약(하나님과 언약백성인 이스라엘 사이의 샬롬)이 파기되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일방적인 약속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언약적 신실하심에서 기인한다. 노아 이후에 땅이 홍수로 멸망당하지 않은 것이 사람들이 죄악이 없어서가 아니듯이 이제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지 않는 것은 이스라엘의 죄악이 사라져서가 아니라 전적으로 창조목적을 이루시려는 하나님의 언약적 신실하심 때문이다. 처음부터 하나님은 자기 형상대로 지으신 사람을 통하여, 특별히 자기와 언약을 맺은 이스라엘을 통하여 창조목적을 이루시길 작정하셨기에 결코 사람을 포기하시거나 이스라엘을 멸하시지 않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신실하심이고 하나님의 의로우심이다. 그동안 예루살렘은 고난을 당하고 광풍에 시달려도 위로를 받지 못했다. 그러나 이제 주님은 예루살렘 성을 중건하시되 보석으로 벽을 쌓고 기초를 놓으실 것이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공의의 터 위에 굳게 설 것이므로 이방의 억압이 멀어지고 대적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질 것이다. 주님이 예루살렘 성을 보석으로 중건하신다는 말이나 이스라엘이 공의의 터 위에 굳게 선다는 말은 주님이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다스리신다는 의미일 것이다. 이렇게 주님이 다스리실 때 이스라엘은 모든 대적의 억압에 벗어나며 더 이상 이방을 두려워하지 않게 된다. 이는 이스라엘에 이방의 압제를 당하며 대적을 두려워한 것은 이방이 강하거나 주님이 무능해서가 아니라 이스라엘이 주님을 왕으로 모시고 그 통치를 받는 것을 거부했기 때문에 생긴 일임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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