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구약성경/이사야

이사야 8장 임마누엘의 복

이사야 8장 임마누엘의 복

Tolle Rege/이사야

2011-07-19 16:52:27


하나님이 아하스에게 주신 징조는 이사야가 자기 아내에게서 낳은 아들로서 나타났는데 그  아들의 이름이 임마누엘이 아니라 마헬살랄하스바스 곧 노략을 당한 다는 의미였다. 그렇다면 징조는 이루어졌지만 임마누엘의 계시가 이루어질 날은 아직 도래하지 않은 것이다. 이 아이기 내 아빠 내 엄마라 부를 줄 알기 전에 다메섹과 사마리의 두 왕이 앗수르 왕에게 노략을 당할 것이 예언되었다. 흉용하고 창일한 큰 하수와 같은 앗수르의 위력은 그들을 뒤덮을 것이며 유다에 까지 흘러 목에 까지 미칠 것이다. 앗수르의 위력에 유다까지 고통을 받을 것이 예언된 것이다.

 

그러나 임마누엘의 펴는 날개가 유다 땅에 는 가득할 것이라는 놀라운 언약적 자비의 약속이 주어진다. 유다는 흉용한 하수와 같은 앗수르의 세력으로 부터 임마누엘의 날개로 보호를 받을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 유다를 대적하는 모든 민족들이 아무리 애를 써도 이루지 못할 것이며 끝내는 패망할 것이다. 이는 하나님이 유다와 함께 계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유다는 이 백성의 길로 가지 말아야 하며 앗수르를 두려워 하지 말고 놀라지 말고 오직 여호와만을 두려워하며 무서워 할 자로 여겨야 한다. 그러나 임마누엘의 복이 아무에게나 임하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에게는 그들을 만나주시는 성소가 되실 것이지만 대부분의 이스라엘의 두 집에게는 걸리는 돌과 부딪히는 바위, 함정과 올무가 되실 것이다.

 

이사야는 자신이 선포한 이 증거의 말씀과 율법을 인봉하라고 한다. 왜냐하면 지금은 여호와께서 야곱의 집에 대하여 얼굴을 가우리시지만 이 증거의 말씀과 율법을 이루실 하나님을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다. 이사야는  자신과 여호와께서 자신에게 주신 아이가 이 일이 이루어질 징조가 될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은 마땅히 하나님이 주신 이 말씀과 징조를 믿고 따라야 한다. 만일 헛되이 신접한 자나 마술사에게 묻는 다면 이는 산자를 대신하여 죽은 자에게 묻는 것과 같다. 이스라엘이 율법과 증거의 말씀을 따르지 아니하면 이 땅은 헤메고 곤고하며 굶주릴 것이며 환란과 흑암과 고통이 임할 것이다.

 

이사야 8장

닥치고 성경/이사야

2019-09-22 20:40:31


이사야 8장

 이사야가 둘째 아들을 낳았을 때, 주님은 그 아이의 이름을 '마헬살랄하스바스'라고 하라고 명하셨다. 노략이 속히 올 것이란 의미를 가진 이 이름은 시리아와 북이스라엘의 멸망이 속히 이루어질 것을 보여주는 징조였다. 주님은 앗시리아로 말미암아 시리아와 북이스라엘이 먼저 멸망할 것이고, 그 다음에 유다가 앗시리아에게 엄청난 재난을 당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그러나 이사야는 이런 재앙의 선포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노래한다. 왜냐하면 임마누엘의 하나님께서 날개를 펴서 그 남은 자들을 보호하실 것이므로 유다는 고난을 당하지만 멸망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사야는 유다의 고난이 끝난 후 주님이 유다를 괴롭힌 앗시리아를 벌하실 것이고 망하게 하실 것이므로 그들이 아무리 전략을 세우고 계획을 말해도 실패할 것임을 안다. 왜냐하면 이사야는 주님이 남은 자들과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의 하나님이심을 확신하기 때문이다. 주님은 힘센 손으로 이사야를 붙드시고 이 백성의 길을 따라가지 말라고 경고하신다. 주님은 이사야에게 백성들이 두려워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만군 주 하나님만을 두려워하라고 명하신다. 만일 그렇게 하지 않을 때, 이스라엘이 섬기는 성소에 계시는 주님은 오히려 이스라엘에게 거치는 돌과 바위가 되신다. 

 

  이렇게 보면 이하스에게 주신 징조는 결국 이사야에게 주신 계시가 되는 셈이며, 주님이 듣지도 않고 깨닫지도 못하는 백성들에게 이사야를 보내신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음을 알게된다. 주님은 이사야가 이 중대한 계시를 듣고 깨닫고 잘 간직하여 후대에 전달하기를 바라신 것이다. 그래서 이사야는 자기가 깨달은 이 계시를 증언 문서로 밀봉하고 자기 제자들도 읽지 못하게 (아마도 제자들도 이 계시를 깨닫지 못할 것이기 때문에) 하겠다고 말한다. 이제 이사야는 분명한 확신에 이르렀기에, 그는 주님이 비록 야곱의 집에서 얼굴을 돌리셔도 주님을 기다리고 의지하겠다고 말한다. 이사야는 주님이 자기에게 주신 아이들이 주님이 이스라엘에게 보여주시는 살아있는 징조와 예표임을 깨달았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유다의 백성들은 신접한 자와 무당에게 물으며, 산 자의 문제에 교훈과 지시를 받으려면 죽은 자에게 물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들에게 고통과 흑암, 무서운 절망이 선고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