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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경/창세기

창세기 27장 이삭의 축복

창세기 27장 이삭의 축복

Tolle Rege/창세기

2011-05-14 14:18:00


  이삭은 에서가 장자로서 합당치 못함을 알면서도 그에게 언약자손으로서의 축복을 하려고 하였던 것 같다. 이것은 이삭이 하나님의 언약에 예민하지 못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 아닐까?  하나님은 이미 에서가 태어나기 전 부터 큰 자가 어린자를 섬기리라 하셨고 결국 에서는 장자권을 가볍게 여겼으며 급기야는 이방여인과 결혼하는 일까지했는데 이삭이 이것을 몰랐을리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삭이 에서에게 마지막 축복을 하려던 것은 육신적인 장자권에 집착을 했던 것이 아닌가?  이삭이 야곱에게 축복한 내용은 과연 에서가 받을 만한 것이 전혀 아니었다. 특히 29절에 네 어머니의 아들들이 네게 굴복하며,,, 라는 내용은 만일 에서가 이 축복을 받았다면 이것은 큰자가 어린자를 섬기리라는 하나님의 계시의 내용에 완전히 반하는 것이 아닌가?

 

에서는 이 일로 인하여 야곱을 원수처럼 여기게 된다. 그는 야곱이 자신을 속여서 장자의 명분도 빼앗았고 이제는 자기 복도 빼앗았다고 원망한다. 에서는 자신이 얼마나 약약백성으로서 정체성을 스스로 포기한 자인 줄 알지 못하는 자인 것이다. 결국 야곱은 에서를 피하여 멀리 하란으로 피하게 되는데 이 모든 것이 언약을 이루시려는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인 것이니  바로 야곱을 통하여 이스라엘 12지파의 초석이 놓이게 된 것이다. 에서와 야곱은 둘 다 하나님의 언약백성으로 자격을 가지고 태어났지만 에서는 그 자격을 스스로 내어버림으로 언약백성의 축복에서 제외된 것이다. 여기서 드러나는 것은 하나님의 언약은 분명히 자재하고 반드시 성취되지만 언약의 당사자인 사람을 통하여 성취되는데. 언약의 상속자는 단순히 혈육이 아니라 언약백성으로서  정체성을 가진 자를 통하여 이루어진다는 진리이다.

 

 

[추기] 2012. 1. 1. 주일

 

큰자가 어린자를 섬기리라는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에 대한 반응의 관점에서 이삭의 축복사건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에서와 야곱이 태어나기도 전에 주어진 이 게시의 말씀을 리브가와 이삭은 물론 알고 있었을 것이며 아마도 에서나 야곱도 알고 있었을지 모른다. 에서가 이 계시를 알고 있었다면 에서의 심기는 매우 불편했을 것이고 아마도 억울한 심정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에서가 장자권을 가볍게 여긴 것을 보면 이런 계시에 대하여 아예 관심도 가지고 있지 않았으며 또한 나중에 가나안의 헷 여인을 아내로 삼은 것을 보면 언약백성으로서 정체성도 없었던 것 같다. 한편 이삭의 경우 그는 분명히 이 계시를 알고 있는 사람이었지만 죽기전에 에서를 축복하겠다고 작정한 것을 보면 하나님의 계시에 대하여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음에 틀림없다. 그렇지 않다면 이삭이 이 문제에 대하여 하나님께 묻지도 않고 스스로 에서를 축복하기로 작정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 다음에 리브가의 경우를 보면 리브가야 말로 이 계시를 받은 당사자로서 에서가 이삭의 축복을 받는 것을 부당하게 생각했을 것이고 그래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 축복을 야곱에게 돌리려고 하였던 것 같다. 그러나 리브가가 속임이라는 인간적인 수단으로 하나님의 계시를 성취하려고 한 것은 문제가 있는 것 같다. 만일 리브가가 하나님의 계시를 믿었다면 자기의 인간적 방법을 동원하기 전에 이 문제에 대해서 하나님에게 먼저 물었어야 할 것이다. 그랬다면 하나님의 리브가의 꾀가 아니라 하나님의 방식으로 자신의 계시를 이루셨을 것이다. 야곱의 경우는 어떠한가? 이미 앞장의 팥죽 사건에서 보듯이 야곱은 인간적인 꾀로 에서의 장자권을 빼앗으려고 했던 사람이다. 아마도 야곱은 하나님의 계시를 리브가에게 들었기 때문에 자신이 실제적이 장자라는 의식을 가지고 있었을지 모른다. 그래서 그가 그렇게 장자권에 집착하였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삭의 축복사건에서 야곱이 취한 태도는 적극적으로 리브가의 속임에 동참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야곱 역시 하나님의 계시를 자신의 꾀라는 인간적인 방법으로 이루어 보겠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이렇게 볼 때 비록 성경은 에서에 대해서만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지만 이삭, 에서, 리브가 ,야곱 이 네사람은 모두 하나님의 언약과 계시에 대하여 정당한 반응을 하지 못한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 

 

 

[추기] 2012. 1. 21 토

 

큰 자가 어린자를 섬기리라는 하나님의 계시는 분명 고대 근동의 전통적인 장자권에 대한 도전이었을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언약이 생물학적 장자권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택으로 진행된다는 하나님나라의 진리였지만 이삭에게는 납득하기 힘들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는 이 계시에도 불구하고 에서를 축복하려는 생각을 포기하지 않았던 것 같다.  이삭은 자신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계시에 대하여 믿음으로 반응하지 못한 것이요 순종하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창세이래 인간에게 최대의 문제는 순종의 문제인데 이 순종의 걸림돌은 무엇보다도 인간의 자기 중심성인 것이다. 인간은 늘 자기를 중심으로 생각하고 판단할려고 하며 하나님의 말씀 조차도 자기 생각과 판단아래 두려고 한 것이다. 이것은 최초의 인간 아담과 하와가 보여준 선악과 금령에 대한 태도에서 선명하게 나타난다. 하와가 그 나무를 보았을 때 보기에 아름답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러운 나무라고 한 것을 보면 인간은 자기가 납득하지 못하면 하나님의 명령도 어길 수 있다는 무서운 진리를 보여준다. 이삭도 결국 하나님의 계시를 납득하지 못했고 그 결과 순종하려고 하지 않은 것이다. 이에 반해 성경이 믿음의 조상이라고 내세우는 아브라함은 자신의 뜻을 철저하게 하나님의 뜻에 복종시킨 사람임을 보게된다. 처음에 하란을 떠나 가나안으로 행하는 것 부터 시작하여 마지막에 이삭을 번제로 드리는 장면에서 아브라함의 믿음은 절정에 이르게 된다. 사실 선악과 금령이나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는 명령이나 큰자가 어린 자를 섬긴다는 계시의 공통점은 사람이 납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납득을 통하여 순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자기의 생각과 판단을 하나님에게 굴복시킬 때에만 순종이 가능한 것이다. 바로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믿음의 실체일 것이다. 믿음이란 하나님께 대한 전적인 신뢰요 그 신뢰로 말미암은 전적인 순종인 것이다.

창세기 27장

닥치고 성경/창세기

2019-10-10 21:05:20


창세기 27장

이삭은 장자 상속의 전통을 따라서 에서에게 축복하려고 하였지만 결국 이삭의 축복은 야곱에게 주어지게 된다. 아마도 이삭은 에서와 야곱이 태어날 때 주어졌던 여호와의 계시에 주목하지 못한 것 같다. 리브가는 이삭을 속여서라도 야곱이 이삭의 축복을 받게 하였는데 이는 야곱을 편애하였기 때문만이 아니라 아마도 그 계시를 기억했기 때문일 것이다. 더구나 에서가 헷족속의 딸 두 명을 아내로 맞이하여 그들이 이삭과 리브가의 근심이 되었던 것을 보아도 그는 언약 백성이라는 자각을 갖지 못한 자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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