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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경/창세기

창세기 23장 막벨라 굴

창세기 23장 막벨라 굴

Tolle Rege/창세기

2011-05-12 22:06:25


   아브라함이 사라의 매장지를 헤브론에서 돈을 주고 산 기록이 이어진다. 아브라함도 나중에 이 막벨라 굴에 장사될 것이다. 헤브론에서 매장지를 샀다는 것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약속의 땅이 자신의 후손의 땅에 될 것에 대한 믿음의 표시일 것이다. 아브라함은 그 곳에 자기와 자신의 후손이 뿌리를 박고 살아야 할 땅으로 생각하였기 때문에 매장지를 그곳으로 정한 것이니 이것은 하나님이 약속하신대로 이 땅을 아브라함의 후손에게 주실 것을 기대하는 믿음의 표현인 것이다. 그래서 성경은 "막벨라 굴이 헷족속으로 부터 아브라함의 소유지로 확정되었다" 는 말을 반복함으로써 하나님께서 이 땅을 헷족속에게서 빼앗아 아브라함의 후손에게 주실 것을 분명히 암시하고 있다. 과연 가나안 족속의 죄악이 관영하였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땅을 빼앗아 이스라엘 민족에게 주신다. 그러므로 출애굽이후에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정복할 때 이미 그들은 아브라함이 돈 주고 산 권리를 회복한 셍이된다. 이렇게 막벨라 굴을 돈을 주고 산 아브라함의 행동은 하나님의 땅의 약속에 대한 믿음의 표현이었던 것이고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믿음을 따라서 그 언약을 지키신 것이다. 하나님의 약속이 자재할지라도 그 언약의 실현은 이렇게 인간의 믿음을 통하여 실현되는 것이다. 아니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실현되지만 그 실현은 그 약속을 진실로 믿는 자를 통하여 실현하기를 하나님은 기뻐하시는 것이다.

 

 

추기 2011. 11. 19

 

  22장에서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는 하나님의 명령은 씨의 약속에 대한 아브라함의 믿음을 시험한 것이었고 이브라함은 성공적으로 이 시험을 통과하였다. 그 다음에 아브라함이 헤브론의 막벨라 굴을 매장지로 산 것은 땅의 약속에 대한 아브라함의 믿음의 행동이었다. 고대 근동에서 매장지는 단순히 죽은 자를 매장하는 곳의 의미를 넘어 그것에서 대대후손의 삶의 뿌리를 박는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이 사라의 매장지로서 막벨라 굴을 산 행동은 하나님이 주신 땅의 약속이 반드시 성취될 것에 대한 아브라함의 믿음의 표시인 것이 분명하다.

창세기 23장

닥치고 성경/창세기

2019-10-10 21:04:06


창세기 23장

사라가 죽자 아브라함은 매장할 소유지를 헷족속에게 사려고 한다. 이 말은 지금까지 아브라함은 가나안 땅에 와서 거주한지 오래지만 자기 소유의 땅 한 뙤기도 없었다는 얘기가 된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사라를 매장할 땅을 사려고 한 것이다. 하나님은 가나안 땅 전체를 아브라함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지만 아직도 아브라함에게는 사라를 매장할 땅 한 뙤기도 없는 상태였다. 하나님은 약속하셨지만 그 약속은 아직 이루어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믿음이 필요한 것이다. 믿음으로 그 약속을 기다릴 때 그 믿음을 통하여 약속이 성취된다는 것을 이 경우는 잘 보여준다. 그래서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사람의 믿음을 요구한다. 그래서 믿음이란 약속의 성취에 대한 믿음이 동시에 약속하신 하나님에 대한 전적인 신뢰를 의미하는 것이다. 아브라함이 사라를 매장할 땅을 헷족속에게 산 것은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에 대한 법적 소유권을 확보한 것을 의미하기도 할 것이다.

 

[추기] 이삭의 출생을 통해 씨의 약속은 일차적으로 이루어졌고 아브라함은 자기 생전에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를 눈으로 경험하였다. 그러나 땅에 대한 약속은 이미 하나님이 15장에서 말씀하셨듯이 400년 후에나 이루어질 먼 훗날의 이야기였다. 아브라함은 결코 그 약속이 성취되는 것을 볼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가나안 온 지경을 주신다고 약속하셨지만 지금 아브라함은 사라를 매장할 땅 한 뙈기도 없는 현실이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사라를 매장할 막벨라 굴을 헷족속에게 돈을 주고 사며 사라를 거기에 매장할 뿐 아니라 나중에 자기도 거기에 매장된다. 가나안 땅에서 매장지를 사는 아브라함의 행동은 장차 가나안 온 땅을 주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붙드는 믿음의 표현일 것이다. 비록 그 약속의 성취를 눈으로 보지 못하지만 자신과 사라가 거기에 뼈를 묻고 그 약속을 기다리겠다는 결연한 믿음의 행동이었을 것이다. 믿음의 조상이라는 아브라함에게서 보듯이 믿음은 하나님의 약속과 그 약속이 이루어질 조각구름조차 보이지 않는 현실 속에서 부단히 현실을 넘어 약속을 붙들려는 몸부림이고 고민인 것이다. 그래서 성경은 보이는 것(현실)으로 행치 아니하고 보이지 않는 것(믿음)으로 행하는 것이 믿음이라고 말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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