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20장 아비멜렉 사건
Tolle Rege/창세기
2011-05-10 23:27:38
아브라함이 거기서 남방으로 이사하여 그랄에 우거하였다 그리고 그랄 왕 아비멜렉이 사라를 취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성경은 12장에서 아브라함이 애굽으로 내려간 것은 기근 때문이었지만 이번에는 왜 아브라함이 남방으로 이사하여 그랄에 우거하였는지 말하지 않는다. 아무튿 12장의 애굽에서와 동일한 사건이 발생을 한 것이다. 그런데 성경은 12장에서와 마찬가지로 20장에서도 이사를 하고 아내를 누이라고 속인 아브라함의 행위에 대한 하나님의 책망을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두 곳에서 모두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아내를 취한 이방 왕을 책망하시고 아브라함을 위기에서 보호하신다.
여기서 성경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아브라함의 행위의 옳고 그름의 여부가 아니라 아브라함이 처한 환경의 어떠함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리라. 아브라함이 아비멜렉에게 한 대답은 그러한 환경을 여실히 보여준다 " 아브라함이 가로되 이곳에서는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으니 내 아내를 인하여 사람이 나를 죽일까 생각하였음이요" 아브라함이 처한 주변환경은 그야말로 풍전등화와 같은 위험이 둘러싼 곳이었다. " 하나님이 나로 내 아비 집을 떠나 두루 다니게 하실 때에 내가 아내에게 말하기를 이후로 우리의 가는 곳 마다 그대는 나를 그대의 오라비라 하라 이것이 그대가 내게 베풀 은혜라 하였었노라" 이것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난 것은 곧 목숨을 건 행위였음을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그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순종의 중요한 성격을 보여준다. 즉 하나님에 대한 순종은 전 존재적인 것, 다시 말하면 목숨까지도 담보하는 것이라는 의미이다. 어떤 조건을 붙이거나 절대 포기하지 못한 어떤 것을 남겨두는 그런 순종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것은 분명히 아브라함의 순종이 하나님에 대한 전적인 신뢰와 자기포기를 보여주는 것이다.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없이는 한 순간도 살 수 없는 지독하게 위험한 삶의 정황속에서 아브라함은 매일의 삶을 믿음으로 돌파해 나갔던 것이다.
추기 2011. 11. 28
18장에 이어서 기록된 19장의 소돔의 멸망 사건 그리고 20장의 아비멜렉 사건은 18장에서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약속이 어떻게 구체적으로 실현되는지는 보여준다. 소돔의 멸망 가운데 롯과 두 딸이 죽음을 면한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인자를 베푸신 것이니 아브라함을 인하여 천하만민이 복을 얻으리라는 약속의 전조이며 그랄 왕 아비멜렉이 가나안 땅에서 우거하는 아브라함에게 굴복한 모습은 아브라함이 강대한 나라가 될 것이라는 약속이 성취될 징조인 것이다. 어쩌면 이후에 이루어지는 성경 역사는 아브라함에게 하신 이 약속이 성취되어 가는 과정일 것이며 그 약속의 완전한 성취는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것이다. 18장과 20장 사이에 끼여있는 소돔성의 멸망 사건은 하나님께 순종하여 하나님나라를 세워나가는 아브라함의 모습과 하나님께 불순종하여 실패한 하나님나라의 모습을 보여주는 롯의 비참한 말로를 극명하게 대조하여 보여준다. 하나님나라는 인간의 순종을 통하여 이 땅에 임한다는 만고불변의 진리를 아브라함과 롯을 통하여 창세기는 웅변적으로 증거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가르치시려고 했던 바로 그 순종을 이제 아브라함에게 가르치고 계신 것이다.
창세기 20장
닥치고 성경/창세기
2019-10-10 21:01:57
창세기 20장
아브라함은 12장에서 가나안에 도착한지 얼마 안 되어 그 땅에 기근이 들어 애굽에 내려갔다가 그곳에서 바로에게 아내를 빼앗길 위험을 당한 적이 있는데, 이번에도 네게브 땅의 아비멜렉에게 동일한 일을 당할 위험에 처한다. 12장에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아내 사래의 일로 바로의 집에 큰 재앙을 내리셨듯이 이번에도 아비멜렉에게 현몽하시어 아브라함의 아내 일로 인하여 아비멜렉에게 재앙을 경고하신다. 아브라함을 축복하는 자는 복을 받을 것이지만 아브라함을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는 약속대로 하나님이 행하신 것이다. 롯이 아브라함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다면 애굽의 바로나 네게브의 아비멜렉은 아브라함으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을 뻔한 것이다. 그렇다면 천하 만민이 아브라함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는 약속은 무조건인 약속이 아니라 아브라함을 축복하는 천하 만민에게 국한될 것이며 아브라함을 저주하는 자는 천하에 누구든지 저주를 받게 될 것이다.
[추기] 애굽과 네게브에서 아브라함이 당한 일은 가나안에서 나그네로 사는 아브라함의 삶이 얼마나 위태한 삶인지를 보여준다. 오직 하나님의 약속만을 믿고 가나안 땅에 왔지만 그곳은 언제 죽음을 당할지 모르는 무법천지의 폭력이 난무하는 곳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그들의 손에서 건져내셨으며 아브라함을 위협한 그들에게 사망의 경고를 하셨다. 이 두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저주하는 자를 또한 저주하신다는 약속을 지키시는 분이심을 아브라함에게 분명하게 보여주셨다. 하나님의 약속을 따라 가나안에 왔지만 현실은 언제나 위태로웠으며 하나님의 약속이 언제 어떻게 이루어질지는 알 수 없는 암담한 현실에서 아브라함이 붙들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약속뿐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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