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약의 조건성과 무조건성
2015-10-21 17:12:01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언약은 조건적이기도 하고 무조건적이도 하다.
이것은 논리적으로 모순이 듯 하지만
언약의 상대방이 사람이 아닌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사람간의 모든 언약은 조건적일 수 밖에 없다.
즉 언약의 일방이 언약조건에 충실해야 한다는 조건으로 그 언약은 맺어지고 유지되는 것이다.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언약에도 이런 조건성이 당연히 있고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은
당연히 이스라엘에게도 그 언약에 신실할 것을 요구하신다.
그리고 이스라엘이 언약에 신실하지 여부는 언약의 조건으로 주어진 율법에 대한 순종을
근거로 판단된다.
하나님은 언제나 언약에 신실하시므로 이스라엘이 언약에 신실하기만 하다면
언약으로 맺어진 그 관계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언약의 한 편인 이스라엘이 언약에 신실하지 못하다는데 있다.
언약의 조건성만 생각하면 이 경우에 언약은 당연히 파기되어야 한다.
그러나 또 다른 문제는 하나님은 언제나 언약에 신실하시다는데 있다.
하나님의 언약적 신실하심은 인간의 언약적 불신실함에 의해서 죄우되지 않는다.
만약 좌우된다면 하나님의 언약적 신실함은 인간에 의해 좌우되는 그런 제한적인 신실함일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언약적 신실함은 제한받지 않는다. 이것이 하나님의 자유이다.
그래서 언약의 무조건성이 등장하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언약적 신실함이 제한받지 않으려면 하나님과 이스라엘이 맺은 언약은
이스라엘의 불신실함에도 불구하고 유지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언약의 조건성이나 언약의 무조건성은 모두 하나님의 언약적 신실하심에서
나오는 언약적 특징인 것이다.
그래서 성경에는 이스라엘의 언약배반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언약을 배반한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위로와 소망도 함께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나 그 위로와 소망은 무조건적이지만 무차별적은 아니다.
이 말의 의미는 하나님이 언약을 배반한 자를 무조건 용납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회개와 순종을 통해서 용납하신다는 것이다.
만일 하나님이 화개와 순종없이 언약을 배반한 자를 용납하신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언약적 신실하심에 위배되는 것이다.
그래서 회개와 순종의 마음을 주시는 새언약이 필요한 것이다.
하나님의 언약적 신실하심이 찬란하게 드러난 것이
바로 이스라엘을 대표한 이스라엘의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이었다.
그것은 새언약을 위한 죽음이었고 부활이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은 언약을 배반한 이스라엘의 죽음을 의미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언약을 배반한 이스라엘의 부활을 의미했다.
예수 그리스도가 오신 것은 언약을 배반한 이스라엘을 대표하여
죽고, 다시 살아나기 위한 것이었다.
하나님의 언약적 신실하심으로 인하여
그리스도는 죽었고 다시 살아나셨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그리스도 안에서 죽었고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살아났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안에서
이제 영원히 깨지지 않는 새 언약이 맺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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