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람산 강화(마태복음 24-25장)
2018-09-10 21:24:51
예수께서 성전의 파괴를 예언하였을 때 제자들은 그날이 곧 세상의 끝날이며 메시아가오시는 날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때의 징조가 어떤 것일지를 물었다. 당시 유대인들은 성전의 파괴는 곧 세상의 종말을 의미하는 것이었고 그때에 메시아가 강림하여 이방을 심판할 것이라고 믿었다. 예수는 이런 저런 두려운 징조에 대하여 말한 후에 그러나 그 날과 그 시간은 아무도 모름을 강조했다. 제자들은 그날이 임박함을 분별할 수 있는 징조를 물었고 예수는 몇가지 징조들을 대답했지만 정작 그날을 아무도 알 수 없다면 그런 징조들은 그날을 알아채리는데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예수는 깨어있으라고 분부한다. 그날이 언제일지 알지 못하기 때문에 잠들지 말고 깨어 있어아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예수처녀 비유는 깨어있는다는 말의 의미를 이어지는 몇 가지 비유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그 비유들은 슬기로운 종의 비유, 열 처녀 비유, 달란트 비유, 양과 염소 비유가 그것들이다. 그러니까 그날이 언제인지를 아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날이 오기까지 깨어서 준비하는 일이 중요하다.
첫번째 비유인 신실하고 슬기로운 종의 비유는 주인이 밑긴 일, 즉 자기 집 하인들을 통솔하고 제 때에 양식을 내어주는 일을 잘 수행하는 것이 바로 주인이 올 때를 잘 준비하고 깨어있는 것임을 알려준다. 주인이 언제올지 모르지만 이렇게 일상을 주인의 뜻대로 잘 수행한다면 주인이 언제올지 몰라도 전혀 문제될게 없다. 결국 이 비유는 깨어있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대로 일상을 충실하게 살아가는 것임을 가르쳐준다. 두번째 비유인 열처녀 비유도 마찬가지 의미를 보여준다. 신랑을 맞으로 나간 처녀가 등불과 함께 기름을 준비해 가는 일은 너무도 당연하다. 기름을 준비해가지 않은 처녀가 이상할 지경이다. 여분의 기름을 준비해야 하는 이유는 신랑이 언제 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깨어 있는다는 것은 그날을 대비하여 일상을 사는 것을 의미한다. 이어지는 달란트 비유는 종들에게 자기 재산을 맡기고 여행을 떠난 어떤 주인에 대한 이야기다. 주인이 재산을 맡긴 이유는 그 재산을 잘 관리하여 재산을 불리기를 바랬기 때문이다. 오랜 뒤에 주인은 돌아왔고 종들과 셈을 하게 되었다. 두 종들은 각기 자신이 밑은 재산을 잘 관리하고 운영하여 칭찬을 받았지만 남은 한 종은 전혀 그렇지 못함으로 주인의 책망을 들었다. 이 비유 역시 첫 비유와 마찬가지로 주인의 다시 돌아올 때르 준비하는 것은 바로 주인이 부탁한 일을 신실하게 수행하는 것임을 보여준다. 결국 이 세 비유는 모두 종말을 대비하여 깨어있는 삶이란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그 뜻에 따라 신실하게 일상을 사는 일임을 반복하여 가르쳐준다.
마지막 비유인 양과 염소의 비유는 앞의 세 가지 비유와는 다소 다른 관점에서 종말을 준비하는 깨어있는 삶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준다, 종말의 날에 인자가 올 때에 모든 민족을 불러모아 목자가 양과 염소를 가르듯이 심판하게 될 것이다. 양은 그의 오른쪽에 염소는 그의 왼쪽에 세울 것이다. 인자는 오른쪽에 선 자들에게 너희는 내가 주릴 때에 먹을 것을 주었고 내가 목마를 때에 마실 것을 주었으며 나그네로 있었을 때 영접하였고 헐벗을 때에 입을 것을 주었으며 병들어 있을 때 돌보아 주었고 감옥에 갇혀 있을 때 찾아주었다고 칭친한다. 그러나 이런 칭찬은 그들에게 뜻밖이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다시오신 인자에게 그렇게 대접해드린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때 임금은 이렇게 대답한다. "너희가 여기 내 형제자매 가운데 지극히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다" 이와 반대로 왼쪽에 선자들은 언제 자신들이 주님을 그렇게 대접하지 않았냐고 반문한다. 그때 임금의 대답도 동일하다. 여기 이 사람들 가운데 지극히 보잘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하지 않은 것이 곧 내게하지 않은 것이라고. 이 비유는 인자가 오는그 종말의 때를 준비하며 깨어 있는 것은 어떤 종교적 행위에 몰두하는 일이 아니라 일상에서 보잘 것 없는 약자들을 대접하는 지극히 평범한 일임을 알려준다. 이 일은 평범하지만 어려운 일이며 바로 주님이 원하시는 일이다. 결국 앞의 세 비유와 마지막 비유의 교휸은 이뤟게 요약할 수 있다. 세상의 종말, 곧 메시아가 오실 그날은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준비하고 깨어있어야 한다. 그런데 준비하고 깨어있는 삶이란 다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그 뜻에 따라 일상을 신실하게 사는 일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이란 종교적 열심을 내는 그런 행위가 아니라 보잘 것 없는 사람에게 자비를 베풀고 대접하는 그런 평범하면서도 어려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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