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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소고

세상나라와 하나님나라

세상나라와 하나님나라

2017-08-26 19:35:03


  하나님나라가 어떤 나라인지 그리고 세상나라와 어떻게 다른지 알려면 우리는 먼저 하나님나라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알아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말은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믿는다는 말이고 이것이 나아가 예수가 하나님나라의 메시아 곧 하나님나라 왕이심을 믿는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나라가 어떤 나라인지 알려면 먼저 그 나라의 왕이신 예수가 어떤 분이신지를 알아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왜냐하면 하나님나라 곧 하나님의 통치는 곧 그 나라의 왕이신 예수를 통해 구현되기 때문이다.

  원래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란 표현은 예수가 메시아라는 표현과 동일하게 그가 하나님나라의 왕이라는 역할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러나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란 표현은 그가 선재하는 신적 존재로서 하나님과 유일한 관계를 가진 분이심을 가리키는 말로 발전되었다. 그래서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말은 역사적 인물인 나사렛 예수가 바로 하나님의 유일한 아들이신 신적 존재가 사람이 되어 이 세상에 오신 분이라는 고백을 의미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예수가 단순한 인간이 아니라 성육신하신 하나님이란 고백은 기독교의 핵심적인 신앙의 내용이 되었다. 

 

  이리하며 그리스도라는 기능론적 호칭과 하나님의 아들이란 존재론적 호칭은 역사적 인물인 예수안에서 결합하게 되어, 역사적 인물인 나사렛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이 되신 분으로서 하나님나라의 왕으로 세워지셨다는 기독론이 형성되었다. 하나님나라의 왕이신 예수는 바로 이런 분이시다. 하나님이신 그가 사람이 되셨고 그가 십자가에서 죽으셨고 다시 살아나셨다. 그런데 바로 이 예수가 그리스도, 곧 하나님나라 왕이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가 사람이 되고 십자가에서 죽고 다시 살아난 모든 일들은 하나님나라 왕으로서 하신 일, 다시 말하면 하나님나라를 위해 하신 일리라고 보아야 한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나라의 성격을 보게되며 그 나라가 세상 나라와 얼마나 다른지 알게된다. 하나님이시나 사람이 되신 분, 사람이 되어 비참하게 죽으신 분, 그리고 다시 살아나신 분, 이 분이 바로 하나님나라 왕이신 예수이시다.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나라 왕이 하신 일들이 세상 나라의 왕과는 매우 다름을 알 수 있다. 그는 근본 하나님과 동등하신 분이심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낮추어 사람이 되신 분이시다. 그리고 그가 십자가에 죽으신 일이야 말로 가장 낮아진 모습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성경은 이런 낮아짐이 불기피하게 일어난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의 자발적 순종이라고 말한다.

 

  이 세상의 왕들은 백성들을 지배하고 군림하며 폭력으로 복종을 강요한다. 그러나 하나님나라의 왕은 그렇지 않다. 그 반대로 자기 백성들을 위해 자신을 낮추어 사람이 되었고 자기 백성의 죄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어주었다. 그가 다시 살아난 것은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이 아니라 죽기까지 순종한 그의 순종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이었고 동시에 그의 살아남은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기 백성을 위한 것이었다. 하나님나라의 왕은 자기 백성의 죄를 위해 죽었고 자기 백성을 의롭다 하기 위해 살아났다.

 

 그래서 예수는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기 위함이라고 말했다. 하나님나라의 왕은 자기 백성을 위해 자기 목숨을 주는 왕이다. 이것이 하나님나라 왕의 통치 방식이라면 하나님나라는 세상나라와 얼마나 다른가? 하나님나라와 세상나라가 다른 것은 이렇게 그 나라의 왕이 다르기 때문이다. 하나님나라의 왕은 죽기까지 하나님에게 순종한 왕이고 자기 백성을 위해 자기 목숨을 내어준 왕이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나라의 성격을 규정짓는다.

 

   하나님나라의 왕이 이렇기에 그 나라에서는 높은 자가 낮아지고 낮은 자가 높아진다. 누구든지첫째가 되려면 말째가 되어야 하고 작은 자가 큰 자가 되고 큰자는 작은 자가 된다. 누구든지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자가 하나님나라에서는 가장 큰 자가 된다. 이 세상나라에서는 어떤가? 누구든지 서로 높아지려고 하고 남을 무시하고 압제하려고 하며 대접하기 보다는 대접받으려 하지 않는가? 그래서 가진 자는 못가진 자를 멸시하고 압제하며 못가진 자는 가진 자를 미워하고 부러워한다. 가진 자와 못가진 자의 이런 갈등은 이 세상이 영원히 풀 수 없는 문제 아닌가?

 

  이 문제를 계급투쟁을 통해, 못가진 자들의 폭력혁명을 통해 해결하려고 한 것이 바로 공산주의다. 그러나 공산주의는 또 다른 계급을 만들었고 계급 갈등의 문제를 결코 해결하지 못했다. 사람이 존재하는 한 계급은 언제나 존재하며 소멸되지 않는다. 그리고 계급으로 인한 갈등도 어떤 정책이나 제도로도 해결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높은 자가 높아지고 낮은 자는 낮이지는 것이 세상이 돌아가는 질서이기 때문이다. 이 질서가 깨어진다면 세상은 더 이상 유지되지 못한다. 그래서 세상은 게급 갈등을 완화는 하려고 할지언정 해소하려고 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하나님나라의 질서는 세상 질서와 다르다. 계급은 존재하더라도 그 나라에서는 계급 갈등은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나라의 질서는 낮은 자가 높아지고 높은 자가 낮아지는 이상한 질서이기 때문이다. 예수는 자신이 하나님나라 왕으로서 자신의 성육신과 죽음으로써 이런 하나님나라 질서를 몸소 보여주셨고 동시에 제자들에도 하나님나라 질서를 따라 살아야 함을 가르치셨다.

예수는 제자들의 발을 씻기면서 내가 주와 선생이 되어 너희들의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고 가르치셨다. 그리고 이어서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는 새 계명을 주셨다. 

 

  그러니 여기서 서로 사랑이라는 새 계명은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자신을 낮추고 남을 섬기는 하나님나라의 질서를 의미하는 것이다. 하나님나라 왕이신 예수가 그리하셨듯이 왕이신 예수는 그 나라의 백성들에게 하나님나라 질서에 따라 살기를 요구하신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나라 왕이신 예수의 통치방식이다. 그래서 요한은 누구든지 하나님을 안다고 하면서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라고 말한다. 보이는 형제는 사랑하지 않는 자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다는 것이다. 

 

  세상은 계급 갈등과 갑질의 문제로 조용할 날이 없다. 세상은 결코 계급으로 인한 갈등을 해결할 길이 없다. 계급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계급으로 인한 갈등이 문제다. 서로 잘난체 하고 남을 업신여기는 그런 세상 질서에서 계급으로 인한 갈등은 해결할 길이 없다. 그러나 하나님나라에서는 세상이 결코 상상하기도 흉내낼 수도 없는 하나님나라의 질서가 있다. 그 나라의 백성은 바로 이 질서를 따라 사는 자들이다. 이 질서를 따라사는 자들을 통해 하나님나라는 이 세상에 드러나고 하나님나라 왕이신 예수의 통치가 구현된다. 교회가 존재하는 이유는 바로 세상에 하나님나라를 드러내고 하나님의 통치를 구현하는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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