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의와 사람의 의
2017-08-11 22:08:54
성경에서 말하는 "의"의 개념은 단순히 정의나 옳음이 아니라 언약 관계를 전제한다.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으신 하나님이시고 이스라엘에게 의를 행하시는 분이시다. 의를 행한다는 것은 언약 상대방은 이스라엘에게 언약에 합당한 신실함으로 대한다는 뜻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이름 "여호와"가 의미하는 바이다. 그러니 여호와란 단순히 이스라엘의 신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으신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신실하신 분이시란 의미이다.
그런데 언약관계란 일방적이 아니고 쌍방적이기에 의라는 개념도 쌍방적일 수 밖에 없다. 이 말은 언약의 양 당사자는 서로 언약 상대방을 향해 신실함으로 행해야 함을 의미한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신실하게 행하신다면 이스라엘도 하나님에게 신실하게 행해야 한다. 물론 그 행동은 하나님으로부터 먼저 시작된다. 그러나 하나님의 신실하신 행동은 또한 이스라엘의 신실한 반응을 요구한다. 일방이 신실하게 행했는데 그에 대해 신실하게 반응하지 않는다면 이것은 언약을 배반한 것이고 불의한 짓이 된다. 결국 '의'란 언약에 신실하게 행하는 것이고 불의란 언약에 신실하지 않게 행하는 것이 된다.
문제는 하나님은 언제나 이스라엘에게 신실하게 행하시는데 이스라엘은 그렇지 못하다는데 있다. 여기서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의 관계에 위기가 발생한다. 이 위기는 일차적으로는 이스라엘이 신실하지 못하기 때문에 발생하지만 동시에 하나님이 신실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발생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신실하심은 언제나 이스라엘의 신실한 반응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하나님의 은혜라고 부른다면 하나님을 향한 이스라엘의 신실함은 이스라엘의 믿음이라고 부를 수 있다.
우리는 여기서 우리가 일반적으로 흔힌 사용하는 은혜나 믿음이란 말의 개념을 언약적 차원에서 해석할 수 있다. 먼저 하나님의 신실함을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신실하심이라고 할 때 성경에 의하면 그 신실함은 한편으로는 사랑이나 자비로 다른 한 편으로는 정의나 공의로 나타난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신실함은 두 가지 측면으로 나타날 수 있다. 사랑이나 자비는 사람의 언약적 신실함에 대한 긍정적 반응이라면 정의나 공의는 상대방의 언약적 배반에 대한 부정적 반응이라고 할 수 있다. 긍정적 반응이든 부정적 반응이든 이 두 가지 반응은 보두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의 속성에 기인한 것이다. 그런데 부정적 반응조차도 우리가 은혜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그런 부정적 반응이 언약 상대방에 대한 단순한 징벌이나 보복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그런 부정적 반응은 언약에 실패한 사람이 회개하고 돌아오게 하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언약적 신실함은 반드시 언약 상대방인 사람에 대해서도 언약적 신실함으로 반응을 요구한다. 왜냐하면 신실함이란 언약 관계를 전제한 것이고 언약 쌍방 모두가 지켜야 할 덕목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신실함이 요구하는 사람의 신실함이 믿음이라면 그 믿음은 어떻게 나타날 것인가? 하나님의 신실함이 사람에게 사랑과 공의로 나타난다면 하나님을 향한 사람의 신실함은 어떻게 나타날 것인가? 성경에 의하면 그것은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뜻에 대한 순종으로 나타나야 한다. 그래서 이스라엘 역사를 관통하는 일관된 교훈은 하나님의 뜻에 대한 순종이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향한 사람의 신실함인 믿음은 추상적이거나 관념적인 것이 아니라 대단히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행동으로 나타나야 한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에 대한 순종이다.
하나님이 사람을 자기 형상으로 지으셨다는 것은 하나님이 사람을 하나님을 대신하여 세상을 다스리는 권세를 가진 존재로 지으셨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선악과 이야기는 이런 권세를 가진 사람은 반드시 그 권세를 위임하신 하나님에 대한 순종을 통해 그 권세를 사용해야 함을 보여준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이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 다스리는 권세를 주신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대한 반응으로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행동을 의미한다. 사람에게 언약적 신실함으로서 순종이 요구되는 이유는 사람이 하나님을 대리하여 세상을 다스리는 권세를 가진 존재라는 관계를 하나님과 맺고 있기 때문이다. 주어진 그 권세는 반드시 순종을 요구한다. 왜냐하면 그 권세는 순종을 통해서 사용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는 반드시 사람의 의를 요구한다. 은혜는 순종으로 나타나는 믿음을 요구한다. 은혜는 거저 주어지지만 합당한 반응으로서 믿음을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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