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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살로니가전서의 내러티브

데살로니가전서의 내러티브

2017-01-18 18:42:58


데살로니가전서 1장

편지의 발신자는 바울과 디모데 그리고 실루아노이다. 그들은 데살로니가 교회에 편지를 쓰면서 언제나 그렇듯이 먼저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들에게 은혜와 평화가 있기를 빈다. 당시 로마세계에서 은혜와 평화는 오직 로마 황제만이 그 신민들에게 줄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편지에서 바울은 은혜와 평화는 로마 황제가 아니라 하나님 아버자와 주되신 예수 그리스도가 주시는 것임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바울이 기도 가운데 항상 데살로니가 교회를 말하며 감사하는 것은 그들의 믿음의 행위, 사랑의 수고, 그리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소망의 인내를 알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바울은 그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자들이며 또한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자들임을 안다고 말한다. 그리고 바울은 이런 결과는 자신이 그들에게 복음을 전할 때 말로만 전한 것이 아니라 능력과 거룩한 영과 큰 확신으로 전하였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화가 많은 환난에도 불구하고 성령이 주시는 기쁨으로 말씀을 받고 자신과 주를 본받는 자들이 되었으며 나아가 마게도니아와 아가야 지방의 모든 성도들에 모범이 되었다고 칭찬한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가  바울의 말을 듣고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 돌아와 살아계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긴 것, 그리고 그들이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 살리신 그 분, 즉 임박한 진노에서 그들을 건지실  하나님의 아들이 하늘로 부터 오시기를 기다리는 것을 말한다.

 

데살로니가전서 2장

그러므로 바울은 자신이 빌립보에서 고난과 모욕을 당했고 데살로니가에서도 심한 반대를 받았지만 하나님의 복음을 담대하게 선포한 것이 헛되지 않았다고 말한다. 바울은 자신이 전한 복음이 결코 불순한 마음이나 속임수로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인정하시고 맡겨주신 것을 전했다고 말하면서 자신의 복음 전파는 사람의 환심을 사려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그렇기에 바울은 자신이 어느때든지 아첨하는 말이나 구실을 꾸며 탐욕을 부린 일이나 사람에게 영광을 구한 일이 없다고 단언하며 이 일은 하나님이 중인해 주신다고 말한다. 바울은 자신이 데살로니가 교회를 마치 어머니가 자녀를 돌보듯이 유순하게 대한 것은 자신이 그리스도의 사도로서 권위를 주장할 수 없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을 깊이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바울은 자신의 사랑은 그들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나누어 줄 뿐만 아니라 목숨까지도 나누어 줄 수 있는 그런 사랑이라고 말한다. 그렇기에 바울은 자신이 데살로니가 교회에 경제적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스스로 밤낮으로 일하며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고생과 수고를 했다고 말한다. 바울이 말하는 사랑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상대를 위하여 수고하고 고생으로 나타난 구체적인 사랑이었다. 로마 세계에서 사랑이란 개념은 황제가 신민들에게 그들의 필요를 채워주는 행위로서 대단히 공적이고 구체적인 것이었다. 이뿐 아니라 바울은 자신이 데살로니가 교회에게 흠잡힐데 없이 경건하고 올바르게 처신했으며 또한 부모가 자녀에게 하듯이 진심과 사랑으로 그들을 대했다고 말한다.    이제 바울은 편지의 본론으로 들어가면서 그들에게 무엇인가를 권면하고 격려하고 있다. 그것은 그들이 하나님나라와 영광으로 부르신 하나님께 합당하게 살라는 것이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 사람의 말이 아니라 실제 그대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았고, 그 결과 하나님의 말씀이 그들 가운데 역사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바울은 증거는 그들이 유대에 있는 교회와 마찬가지로 그들의 동족에게 동일한 고난을 받고 있는 것이 그 증거라고 말한다. 바울은 그들이 고난을 받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그들 안에서 역사하고 있는 증거라고 말하는 것이다. 유대인들이 하나님과 유대에있는 교회를 적대하고 이방선교도 방해했듯이, 데살로니가 교회도 동일한 고난을 그들의 동족으로부터 받고 있는 것이다. 바울은 데살로니가에서의 큰 반대로 인해 잠시 아덴으로 피신할 수 밖에 없었지만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를 다시 보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었다. 그러나 사정이 여의치 않았고 그로 인해 바울은 안타까워했다.  바울은 주 예수께서 다시 오실 때 그 분 앞에서 데살로니가 교회가 자신의 희망, 기쁨, 자랑, 면류관이라고 말한다. 바울에게 그들이야 말로  바울의 영광이요 기쁨이었다.

 

데살로니가전서 3장

그래서 바울은 자신은 지금 아덴에 있지만 디모데를 데살로니가에 보내 그들을 굳게하고 믿음을 격려하길 원했다. 환란을 당하는 그들이 환란 가운데 흔들리지나 않을가 염려했던 것이다. 그러면서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에서 환란을 당하는 것은 당연한 운명이라고 말한다. 바울은 자신이 그들과 함께 있을 때, 이미 장차 그들이 환란을 당하게 될 것을 미리 말했는데 과연 그렇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바울은 그들이 환란 가운데 넘어질까 노심초사했다. 바울은 유혹하는 자가 그들을 유혹함으로 말미암아 자신의 수고가 핫되게 될까 두려워했다.  그런데 데살로니가에서 돌아온 데모데가 바울에게 그들에 관한 기쁜 소식을 전해주었다. 그들이 믿음과 사랑가운데 있으며 바울을 간절히 보고싶어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바울은자신이 모든 곤경과 환란을 당하지만 그들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위로를 받았다고 말한다. 바울은 그들이 주님 안에 굳게 서있다는 소식을 들었으니 이제야 살겠다고 말한다. 바울은 그들로 인해 하나님께 큰 기쁨으로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바울은 그들을 위해 밤낮으로,  다시 그들을 만나서 그들의 믿음의 부족한 것을 보충해줄 그런 길을 열어주시길, 또한 주께서 그들의 사랑을 풍성하게 하고 넘치게 해주시며 그들의 마음을 굳세게 하셔서 주 예수께서 다시 오실 때 거룩함과 흠이 없게 해주시길 기도한다고 말한다.

 

데살로니가전서 4장

이제 바울은 마지막으로 그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어떻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것인지 배운대로 하라고 권면한다. 이미 그들은 잘하고 있지만 계속해서 잘하라는 것이다. 첫번째 권면은 거룩하게 살라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바울은 음행을 멀리하라고 말한다. 바울은 각 사람은 자기 몸을 거룩함과 존중함으로 다스릴 줄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바울은 이방인과 같이 색욕에 빠지지 말 것과 이런 일로 다른 교우들을 해치거나 잘못을 하지말라는 것이다. 바울은 하나님이 이런 모든 일을 징벌하실 것이라고 경고한다. 바울은 하나님이 우리를 부리신 것은 더러움이 아니라 거룩하게 살게하시려는 것이라고 말하며 그러므로 이 경고를 저버리는 자는 사람을 저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생명을 주신 하나님을 저버리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두번째 권면은 조용하게 살고 자기 일에 전념하여 자기 손으로 일하라는 것이다. 이것은 데살로니가 교회가 교회밖의 외인들을 향하여 품위있게 살며 그들에게 신세를 지지말고 살기 위한 것이다.  이어서 바울은 주 안에서 이미 죽은 자들의 문제를 언급하면서 임박한 종말 이전에 죽은 형제들로 인해 소망없이 슬퍼하지 말라고 권면한다. 바울은 죽었다고 살아난 예수께서 다시 오실 때 죽은 자들을 데리고 오시므로 살아있는 자들도 그들보다 앞서지 못할 것이라고 말하며 이것은 자기 생각이 아니라 주의 말씀이라고 확언한다. 바울은 주께서 오실 때 믿고 죽은 자들이 먼저 살아나 주를 영접하고 그 다음에 살아남은 자들이 주를 영접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하여 죽은 자와 산 자가 항상 주와 함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오신다는 말(파루시아)와 영접한다는 말(에피파네아)는 로마세계에서 전문용어로서 황제가 도시를 방문할 때 그 백성들이 황제를 마중나가 환영한다는 의미이다. 바울이 이 전문 용어를 예수의 다시 오심에 대해 사용한 것은 예수의 다시 오심이 왕으로서 자기 백성을 다스리려고 오시는 왕적 오심이란 사실을 잘 보여준다. 여기서 바울은 주께서 오시는 모습을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소리 가운데 하늘에서 내려오신다고 묘사하고 있으며, 신자들이 주를 영접하는 모습을 구름 속으로 이끌려 올라가서 공중에서 주를 만난다고 묘사하고 있는데 이런 묘사는 문자적인 의미가 아니라 묵시적인 표현으로 보아야 한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그러나 바울은 예수가 오시는 그 때와 시게에 대해서는 다시 말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이것은 이미 말했고 그 시기를 아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는 의미일 것이다. 왜냐하면 주님이 오시는 그 날은 밤에 도둑처럼, 해산의 진통처럼 전혀 예상치 못한 가운데 갑자기, 특히 사람들이 평안하다 안전하다 말할 때(로마가 주는 로마의 평안과 안전을 가르치는 전문 용어)에  오겠지만 데사로니가 성도들에게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빛의 자녀이고 낮의 자녀이므로 어둠 속에 있지 않기 때문에 그들에게 주님이 오시는 일은 예상치 못하게 갑자기 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밤이나 어둠에 속한 자처럼 잠자지 말고 깨어어서 정신을 차리고 있어야 한다고 권면한다.  바울은 밤에 속한 자들은 밤에 잠자고 밤에 술취하지만, 낮에 속한 우리는 정신을 차리고 믿음과 사랑으로 흉배를 붙이고 구원의 소망으로 투구를 써야 한다고 말한다.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신 것은 우리를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에서 구원을 얻게 하시려는 것이라고 말한다. 바울은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자든지 깨든지(죽든지 살든지) 그리스도와 함께 살게하시려고 한다고 말한다.   이어서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서로 격려하고 서로 세워주며 그들을 지도하고 훈계하는 자들을존중하고 서로 화목하라고 권면한다. 또한 바울은 게으른 자들을 훈계하며 마음이 약한 사람을 격려하고 힘이없는 자들을 도와주고 이 모든 자들에게 오래 참음으로 대하라고 말한다. 그리고 아무도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도리어 서로에게 모든 사람에게 항상 선한 일을 힘쓰라고 권한다.  이 모든 권면들이 지향하는 것은 바로 데살로나가 교회를 바르게 세우는 일에 관한 것이다. 또한 바울은 항상 기뻐하고 끊임없이 기도하며 모든 일에 감사하라고 명하면서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들에게 바라시는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한다. 이어서 바울은 성령을 소멸하지 말고 예언을 멸시하지 말며 모든 것을 분간하고 좋은 것을 굳게 잡으며 갖가지 악을 멀리하라고 말한다. 이것은 단순한 신앙윤리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거룩하게 살 것인가의 문제에 관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바울은 평화의 하나님께서 데살로니가 교회를 거룩하게해 주시고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에 그들을 흠이 없이 지켜주시길 기도하며, 그들을 부르신 하나님이 신실하시므로, 이 일을 또한 이루실 것을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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