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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

범재신론(Panentheism)- 존 쿠퍼

범재신론(Panentheism)- 존 쿠퍼

2016-09-22 17:28:16


1. 범재신론과 고전적 유신론의 쟁점들

a. 성경적 관점

b. 교리적 입장

c. 철학적, 신학적 시각

 

그러나 열린 자세도 필요하다.

-. 고전적 유신론도, 범재신론도 모두 기독교적이기도 비기독교적이지도 않다.(?)

-. 시간 및 변화와 하나님의 관계, 피조물에 영향 받는 하나님: 범재신론자들의 도전을 인정

-. 고전적 유신론을 성경+신앙고백에 일치하게 수정할 자세

-. 삼위일체적 범재신론은 기독교신학으로 인정가능

 

2. 성경적 관점

전제: 기독교 신학은 성경이 하나님에 관해 계시하는 바를 충실하게 표현해야 한다

 

a. 하나님 안에 있음:

성경은 만물이 하나님 안에 있음을 말한다. 문제는 신의 내제성을 이해하는 방식. 범재신론이 주장하는 존재론적인 안에 있음을 비성격적이다. 관계론적 관점은 수용 가능

 

b. 응답하시는 하나님

고전적 유신론도 하나님이 세계와 관련을 맺고 응답하심을 긍정. 다만 영원하고 부동적인 하나님이 어떻게 역사 가운데 순차적으로 행동하며 피조물과 상호작용하는지 설명하는데 약점은 있다.

 

c. 하나님과 세계의 관계

세계를 하나님의 일부나 몸으로 유비하는 범재신론의 주장은 성경적 근거가 없다. 성경의 신인동형론적 표현은 오히려 하나님과 세계의 타자성을 강조한다.

 

d.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가르침은 반드시 삼위일체적이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몰트만 판넨베르크는 옳다. 그러나 후기 헤겔주의식 삼위일체 범신론자들(뵈메, 셀링)이 가능태들의 변증법적 통일의 맥락에서 삼위일체를 설명하는 것은 성경계시를 넘어선 철학적 사변이다.

하나님을 시간화하는 현대범재신론자들도 하나님의 실질적인 존재론적 삼위일체를 설명하지 못한다. 판넨베르크나 몰트만에게 하나님의 실존성은 역사가 종말에 접근해 가면서 더욱 완전한 삼위일체가 되어간다., 이들에게 존재론적 삼위일체는 아직 완벽하게 현실적이 아니다.

 

2. 교리적 신학적 관점

 

a. 하나님의 자충족성과 창조할 자유

고전적 유신론은 하나님의 자존성 혹 자충족성을 강조한다. 따라서 하나님의 세계 창조는 수많은 가능성 가운데 나온 순전히 자유로운 선택이다.

그러나 신플라톤주의자들과 과정신학자들은 하나님이 본성적으로 불가피하게 창조한다고 주장한다. 어떤 범재신론자들은 하나님의 창조는 사랑에서 나오는 자유행위하고 말하지만 그들은 거의 언제나 하나님의 의지에 대해 자유와 필연이 병립가능하다는 입장을 견지한다.

 

b. 하나님의 초월성과 내재성

-. 고전적 유신론은 하나님이 창조세계를 초월하여 충만한 생명을 누리고 계심을 주장한다

그러나 현대 범재신론자들은 초월성과 내재성을 균형을 주장하면서 사실은 내재성쪽으로 크게 기울고 있다. 범재신론은 하나님의 실존성을 세계 안에서의 하나님의 내재성과 강력하게 연결짓는다.

- 고전적 유신론에서 삼위일체 하나님은 창조를 하든 안하든 충만하게 실질적이다. 그래서 존재론적 삼위일체는 경륜적 삼위일체와 무관하게 존재한다.

그러나 범재신론자들은 하나님은 창조를 선택하셨기 때문에 라너의 규칙대로 존재론적 삼위일체는 곧 경륜적 삼위일체가 된다고 주장한다. 하나님의 실존성을 세계와 존재론적으로 연결시키는 후기 헤겔주의식 삼위일체 범재신론자들은 창조를 떠나서는 삼위일체의 충만한 현실태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 결과 그들은 존재론적 삼위일체의 충만한 현실태를 경륜적 삼위일체가 세계를 자체 안에 통합시키는 활동에 의존하게 만든다.

-. 고전적 유신론은 만물이 하나님 안에 내재함을 인정한다. 그러나 만물이 하나님의 본성이나 실존성을 구성하는 것은 반대한다. 고전적 유신론이 하나님의 내재성을 부정하거나 무시한다는 말은 거짓이다. 범재신론에서 하나님은 오직 상대적으로만 내재적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오로지 상대적으로만 초월적이기 때문이다.

- 범재신론은 세계의 발생을 하나님의 본성에 본유적인 것으로 이해함으로써 하나님을 존재론적으로 창조세계에 대해 상대적으로 만든다. 그들에게 시공과 우주에너지는 피조세계의 양상아 아니라 하나님의 존재나 권능의 차원들이다.

-범재신론자들은 자신들이 하나님과 세계와의 상호작용을 고전적 유신론보다 더 쉽게 설명한다고 주장하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내재성의 전망과 힘을 축소시키고 그 내재성을 동참/공유 존재로 제한시킨다.

 

c. 영원과 시간

-현대 범신론자들은 시간과 영원을 존재의 정반대 양태로 본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이 시간 안에서 행하신다는 고전적 유신론을 일관성이 없다도 비판한다. 그러나 시간은 영원에 대한 모순이 아니라 가능한 어떤 세계에 대한 하나님의 영원한 지식의 연속적인 펼침이다.

- 하나님은 자신의 영원한 의지에 따라 피조물들에 반응하고 상호작용하신다. 물론 하나님은 영원 전부터 그 일이 일어날 것을 알고 의지하신다. 그러나 그들이 일어날 때 그 일을 하나님이 직접 임재하여 행하신다.

 

d. 하나님의 거룩성

-하나님의 거룩성은 하나님의 전적인 선하심과 도덕적 완전성을 가리킨다. 범재신론은 하나님이 존재론적으로 세계를 내포한다고 주장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완전한 거룩성을 인정하지 못한다.

-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하나님을 대립적 잠재력들의 영원한 변증법적 통일로 보는 범재신론이다. 그들은 흑암, 혼돈, 마귀적 권세들도 하나님의 영원한 본성의 한 요소로 여긴다.

 

e. 하나님의 감정

-고전적 유신론은 하나님이 피조물에게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물론 성경이 하나님에게 인간적 감정이 있는 것처럼 신인동형론적으로 의인화를 하지만

-고전적 유신론은 하나님의 감정이 피조물을 원인으로 해서 발생하게 된 결과로 보지 않고 하나님이 피조물을 향해 갖기로 선책하신 의도적인 정서적 태도로 본다.

-고전적 유신론은 관계적 신학보다 하나님의 감정에 대해 더 견실하고 긍정적인 진술을 할 수 있다.

 

f. 인간의 자유의지

-. 고전적 유신론은 인간의 방임적 자유를 인정하지만 그 자유로운 선택이 무엇이든지 간에 영원 전부터 하나님이 알고 계신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이 다르게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을 하나님의 지식과 의지가 은밀하게 압도해 버린다는 의미에서 인과적으로 필연적이지 않으며 결정되어 있지 않다.

- 인간은 하나님의 동시적인 작용과 더불어 그 행위를 자유롭게 선택하고 수행하는 작인자(agent). 이런 식으로 고전적 유신론은 인간 자유와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을 둘 다 긍정할 수 있다. 그러나 현대 범재신론자들은 방임적 자유를 어떤 식의 불가피성과도 심지어 하나님에게 알려져 있는 것과도 양립할 수 없는 것으로 정의한다.

 

g. 초자연적 기적

- 고전적 유신론은 초자연적 기적의 발생을 긍정한다. 이것은 하나님의 초월적 실존성과 세계 안에서의 하나님의 전지전능한 내재성에 대한 고전적 유신론의 긍정에서 나온다,.

- 고전적 범재신론은 초자연적 기적을 허용하기에 충분한 하나님의 초월성을 상정하는 반면에 현대 범재신론은 초자연적 기적들에 대해서 계몽주의의 회의론을 공유하고 있다.

 

h. 악의 문제와 하나님의 권능

- 악의 문제에 대한 고전적 유신론의 답변에 불만을 가진 대부분 범재신론자들은 하나님의 권능에 대한 제한적 견해를 선호한다.

- 고전적 유신론은 세계에 내포된 악에도 불구하고 이 세계를 창조하시는 하나님의 선택은 하나님의 선하심과 일치한다고 믿는다. 왜냐하면 세상을 구속하시는 하나님의 선택이 하나님의 영원하고 더 큰 선으로 끝나기 때문이다.

- 고전적 범재신론은 하나님은 전능하지만 악을 불가피하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현대 범재신론은 악을 최종적으로 처리하시는 하나님의 권능을 제한한다. 그들은 하나님을 악에 대한 책임에서 면제시키려고 하나님의 권능을 존재론적으로 제한하려고 한다.

 

3. 세계관의 관점

 

a. 세계 안에 하나님의 내재성을 강조하는 범재신론은 이원론이나 신령주의적 기독교애 대한 매력적 대안을 제공한다. 범재신론은 창조와 구속 가운데 활동하는 하나님의 행위를 강조한다. 그러므로 구원사는 세계사에 필수적이며 창조세계 전체의 구속이 성경의 주제이며 성경적 세계관이라고 말한다.

 

b. 고전적 유신론 역시 세계사 안에서 구속을 위한 하나님의 임재/현전을 긍정하며 내세의 삶과 함께 이 세상에서 하나님나라를 추구한다. 그 좋은 사례가 신토마스주의나 신칼빈주의이며 이 두 운동은 모도 아우구스투스의 신국론에 뿌리를 박고 있다.

 

c. 범재신론을 택한 그리스도인도 아우구스투스주의 그리스도인들도 모두 창조-구속-완성을 성경의 하나님나라 기본 주제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둘 사이에 중대한 차이점은 죄와 악의 성격에 대한 것이다. 아우구스티누스적 기독교는 죄와 악을 존재론적으로 우연적인 사건 즉 세계의 근본구조에 본성적이거나 불가피하지 않은 결과로 본다. 그러나 범재신론은 플라톤주의를 따라 타락이 존재론적으로 피할 수 없는 일이라는 전형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구속사에 대한 성경 내러티브를 창조-소외-화해-완성의 변증법적 과정으로 본다. 범재신론의 구속사는 성경적이라기보다는 플로티누스의 만물의 일자로부터 유축과 일자로의 회귀에 가깝다.

 

4. 결론

 

a. 변형된(완화된) 고전적 유신론

- 몇몇 고전적 유신론자들은 시간 속에 하나님의 참여를 인정하도록 전통신학을 수용한다.

(; 윌리엄 크레이그- 하나님 자신은 영원하지만 세계를 창조하신 이래로 시간적으로 바뀌신다. 니콜라스 월터스토프- 하나님 자신은 영원하시지 않고 영속적이다)

이런 완화는 하나님의 자존성, 삼위일체, 창조, 성육신을 포함하는 고전적 기독교, 개혁주의 신론과 일치할 수 있다.

-. 하나님은 지상적 시간에 속한 피조물에 반응하시는 영원/영속적 예지와 예정을 가지고 그렇게 하신다. 이 입장도 하나님의 시간내적 응답을 긍정하면서도 전통적 신앙고백과 일치한다. 단 하나님이 피조물에 의해 인과적으로 영향을 받는다는 입장을 배제한다면..

-. 변형된 고전적 유신론은 하나님이 어느 정도는 시간 안에 계심을 인정함으로써 역사 가운데 일어난 하나님의 행동들에 대한 성경의 내러티브를 전통적 유신론이 설명하는 것 보다는 더 단도직입적으로 덜 신인동형론적으로 읽어내는 유익이 있다.

 

b. 고전적 유신론의 잘못된 변경

- 어떤 변형은 그 견해가 더 이상 역사적 신앙고백에 부합하지 않는 결과를 가져온다. 그것은 하나님이 어느 한도 내에서 시간적이실 뿐 아니라 하나님이 시간 질서 안에 개입하심으로 그 개입에 의해 인과적으로 영향을 받고 제한도 받는다는 주장이다. 이런 입장이 열린 유신론 혹은 자유의지 유신론이다.

- 이런 식으로 고전적 유신론을 변형하는 것은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지식과 권능, 하나님의 약속들의 확실성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과 상충한다. 이렇게 변형된 고전적 유신론은 결국 관계적 범신론으로 변질될 위험이 있다

- 역사적 기독교 신앙을 표현함에 있어서 적절하게 조율된 고전적 유신론이 그 어떤 범재신론보다 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