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빙크 개혁파 교의학의 특징- 이동영
2016-01-06 12:47:11
헤르만 바빙크(Herman Bavinck)는 개혁파 정통주의의 마지막 세대에 속하는 신학자이며 이 전통이 낳은 가장 위대한 신학자 가운데 한 명이다. 바빙크는 자신의 주저 개혁파 교의학(Gereformeede Dogmatiek, 1-4, 1906-1911)에서 칼뱅으로 대변되는 역사적 개혁신학의 신학적 근거와 뿌리를 공교회의 스승들인 고대 동서방 교부들과의 관계 속에서 치밀하게 해명해 주고 있다. 그리고 중세신학, 로마카톨릭 신학, 루터신학, 경건주의 신학 및 계몽주의 이래로 자신의 당대에까지 흥기했던 개신교자유주의 신학을 포함한 거의 모든 신학 학파들과 폭넓게 대화한다. 또한 철저하고 엄정한 성경주석의 근거위에서 각 신학 학파들의 장단점을 공정하고 엄밀하게 분석하여 비평적으로 해설함으로써 개혁신학의 방법론을 치열하게 관철시키고 있다. 당시 캄펜 신학교에서 교의학을 가르쳐 온 바빙크는 1893년 카이퍼로 부터 자유대학교 구약학 교수직을 제의 받았다. 그는 그 제의를 수락하면서 자신이 오래 준비해온 개혁파 교의학 저술을 부득이 간단히 개요만 다루는 핸드북으로 축소하여 만들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의 자유대학교 전직이 백지화되면서 그는 본격적으로 개혁 교의학 집필에 몰두하게 되었고 이렇게 탄생한 것이 해르만 바빙크의 기념비적인 저작이 바로 전4권으로 구성된 개혁파 교의학(Gereformeerde Dogmatiek ; Reformed Dogmatics)이란 대작이다.1
1. 바빙크의 교의학은 성경적 신학이다.
바빙크는 오직 성경으로라는 원리를 따라 성경을 신학의 객관적 원리로 천명함. 그는 자신의 교의학의 성경적 적합성과 정합성을 치밀하게 추구했다. 모든 신학은 성경 본문에서 도출되어야 하며 특정 이데올로기를 전제하고 성경본문을 짜맞추면 안된다는 것이 개혁파 신학의 원리다. 바빙크는 교부이후의 성경주석에 기초하여 자신의 교의학을 구성함 그는 휼륭한 신학은 성경의 적합성과 정합성을 치밀하고 치열하게 추구하여야 한다고 말함
2. 바빙크는 역사적 신학을 추구함.
그의 교의학은 고대의 신경에 기초하면서도 종교개혁 신조들에 잘 부합된다. 신학이 역사성을 부인할 때 그 신학은 한 신학자의 신학은 되어도 공교회의 신학이 될 수도 없고 올바른 개혁신학이 될 수도 없다. 역사에 기초하지 않은 성경해석은 공적 성격을 갖지 못한다. 성경 해석의 정당성을 판단하는 시금석이 역사성이다. 그래서 2천년 교회의 성경주석의 역사가 중요하다. 바빙크는 역사에 기초하지 않은 성경 해석은 공적 성격을 못 가진다고 지적하면서 역사성이 없는 신학은 공교회의 신학이 될 수 없다고 말한다.
3. 바빙크는 선별적 비평의 방법을 사용함.
그의 학문 진술방식은 공정, 신중, 객관적이다. 그는 고대와 당대의 신학, 철학 사조들을 선별적 비평 방법으로 평가했다. 그는 열린 자세로 경청하고 장단점을 분별하며 성경에 베추어 공정히 비평하고 성경적 대안을 제시함. 바빙크의 선별적 비평의 객관적 원리는 성경이다. 특정인을 절대시하는 신학은 개혁파 신학이 아니다. 성경에 비추어 선별적으로 비평하여야 한다. 바빙크는 적에게도 배우려는 겸손한 자세를 가짐. 바빙크는 레이든 대학에서 공부하면서 당대의 자유주의 신학의 대가들에게 배웠다.2 그는 자유주의 신학의 전제들을 수용하지는 않았지만 합리적이고 조직적 체계를 세우는 훈련을 받았다. 바빙크는 역사비평을 성경에 적용하는 것은 명백히 반대했지만 교회사, 신학사, 교리사 연구에는 역사비평을 수용했다. 그는 자유주의 신학의 스승들에게 학문연구의 역사비평적 안목을 배움. 바빙크는 개혁파 교의학도 교조적으로 추종하지 않았다. 그는 당대 교회와 사회에 기여하기 위하여 신학을 했다.
4. 바빙크는 이론과 실천의 유기적 통합을 추구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지향하는 신학을 했다. 18세기 계몽주의 이후 서방신학의 폐해는 이성의 원리가 지나치게 학문을 주도한 것. 계몽주의 이후 유럽 인문학의 주된 담론은 이론(Theorie)이 먼저냐 실천(Praxis)이 먼저냐는 것이었다. 학문이 이론학이냐 실천학이냐는 논쟁이 계몽주의 이래 계속되었고 신학도 이 담론에 편승하였다. 그러나 바빙크는 개혁파 신학 신학의 궁극적 목적은 이론도 실천도 아니고 하나님의 영광을 지향하는 송영(Doxology)이라고 믿었다. 이론과 실천은 모두 송영을 지향한다. 바빙크는 이론과 실천의 지평이 아닌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제3의 지평을 제시했다. 18세기 계몽주의 이래, 특히 칸트의 영향으로 신학에 대한 윤리학의 독립성과 자율성이 주장되었다. 그들은 종교를 윤리학으로 환원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개혁파 신학은 교의학과 윤리학의 분리를 반대한다. 왜냐하면 신학은 이론과 살천이 유기적으로 통합된 학문이기 때문이다. 개혁파 신앙의 전통은 믿음과 행위를 구분하지만 분리시키지 않는다. 바빙크에게 교의학이 하나님에 대한 지식 체계라면 윤리학은 하나님에 대한 봉사 체계이다. 이 두 체계는 독립적으로 마주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유기체로 통합되어 있다. 그러므로 신학과 윤리는 항상 상호의존적이어야 한다. 신학과 윤리는 구분되지만 분리되지 않는다. 교의와 윤리가 분리되면 참된 개혁파 신학이 아니다.
5. 바빙크의 신학은 교회일치를 추구하는 신학이다.
바빙크는 성경을 통해 기독교의 보편성과 우주적 차원을 사유한 신학자이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보편성을 강조하며 복음은 인간의 삶의 모든 영역과 전 피조세계를 한 기쁜 소식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그는 그리스도 교회의 보편성을 강조하고 편협한 분파주의를 비판했다. 특히 그는 자신이 속한 분리파(압스케이딩; Afschading)3의 편협한 분파주의를 경계했다. 헤르만 바빙크는 분리파 교회에서 최초로 국가개혁교회의 레이든 대학교에서 신학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그후 그는 분리파로 돌아와 캄펜 신학교에서 가르치면서 분리파의 편협성을 경계하면서 교회의 보편성을 추구했다. 바빙크는 분파주의적 사고가 경건함으로 여겨지는 한 교회의 분열은 정당화되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는 교회의 보편성을 다양성 속의 일치라고 천명하면서 자신의 집단을 그리스도의 유일한 교회로 여기고 진리를 독점한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그리스도라는 나무에서 잘려진 가지라고 비판했다. 1886년에는 아브라함 카이퍼의 주도로 애통파(돌레안치; Doleantie)가 네델란드 국교회에서 이탈하였고 이후 분리파와 통합 논의를 거쳐 1892년 두 분파는 하나로 통합하게 된다. 그러나 각 분파의 신학대학인 자유대학교와 캄펜 신학교는 통합되지 못하고 남겨된다4 바빙크는 교회의 보편성과 공교회성을 추구했다. 그의 신학은 단순히 개혁파적이지만 않고 보편성을 추구한 공교회적 신학이다.
6. 결론
바빙크라는 거인의 어깨위에 서서 개혁신학을 계승하는 것은, 위에서 논의한 그의 신학적 특징을 따라서 신학을 해 나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바빙크의 신학의 특징은 곧 개혁주의 신학의 특징이어야 한다.
각주 1
바빙크는 그가 개혁파 교리의 여왕이라고 부른 순수신학통론(synopsis purioris theologia)을 저본으로 삼으면서도 이 책을 교조적으로 인용한 것이 아니라 현실에 적합한 교의학을 세우기 위해 창의적 사고로 저술했다 .
각주 2
바빙크는 레이든의 자유주의 신학의 대가 스콜톤에게서 이성주의적 방법론을 통해 학문의 체계와 논리를 세우는 것을 배웠다.또 다른 스승은 아브라함 쿠에넨은 당시 벨하우젠과 더불어 문서설을 제창한 구약학의 선두주자 였다. 바빙크는 쿠에넨에게 역사비평방법을 배웠다. 바빙크는 레이든의 스승들의 신학적 전제는 거부했지만 그들의 인격과 삶은 존경했다.
각주 3
분리파는 정통개혁신앙을 고수하기 위해 헨드릭 드 콕(Hendrik de Cock)목사가 주도하여 네델란드 국가교회에서 분리된 교파다. 이들의 지지기반은 주로 하층 농민과 노동자들(kleine leiden)이었다. 헨드릭 드 콕 목사는 이들 하층민들이 바록 무식했지만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신앙고백을 가지고 있는 것에 놀라게 되었다. 그들의 신앙과 경건의 배후에..
각주 4
학교통합이 실패하면서 바빙크는 마음에 큰 상처를 받게된다. 그는 세속정치는 가끔 더럽지만 교회정치는 항상 더럽다는 말로 자신의 실망을 신랄하게 표현했다.
- 바빙크는 그가 개혁파 교리의 여왕이라고 부른 순수신학통론(synopsis purioris theologia)을 저본으로 삼으면서도 이 책을 교조적으로 인용한 것이 아니라 현실에 적합한 교의학을 세우기 위해 창의적 사고로 저술했다 . [본문으로]
- 바빙크는 레이든의 자유주의 신학의 대가 스콜톤에게서 이성주의적 방법론을 통해 학문의 체계와 논리를 세우는 것을 배웠다.또 다른 스승은 아브라함 쿠에넨은 당시 벨하우젠과 더불어 문서설을 제창한 구약학의 선두주자 였다. 바빙크는 쿠에넨에게 역사비평방법을 배웠다. 바빙크는 레이든의 스승들의 신학적 전제는 거부했지만 그들의 인격과 삶은 존경했다. [본문으로]
- 분리파는 정통개혁신앙을 고수하기 위해 헨드릭 드 콕(Hendrik de Cock)목사가 주도하여 네델란드 국가교회에서 분리된 교파다. 이들의 지지기반은 주로 하층 농민과 노동자들(kleine leiden)이었다. 헨드릭 드 콕 목사는 이들 하층민들이 바록 무식했지만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신앙고백을 가지고 있는 것에 놀라게 되었다. 그들의 신앙과 경건의 배후에 있는 책인 바로 칼빈의 기독교강요였다.이 책은 당시에 이미 네델란드에서 잊혀진 책이었지만 그들은 자기 조상들을 통한 구두전승을 통해 정통개혁주의 신앙을 보존하고 있었던 것이다. 분리파 운동은 이들을 지지기반으로 해서 일어나게 된 것이다. [본문으로]
- 학교통합이 실패하면서 바빙크는 마음에 큰 상처를 받게된다. 그는 세속정치는 가끔 더럽지만 교회정치는 항상 더럽다는 말로 자신의 실망을 신랄하게 표현했다. [본문으로]
바빙크의 신학 방법론과 원리- 이동영
2016-01-11 23:43:02
1. 신학도 학문인 이상 방법론이 있다. 바른 방법론 위에서 바른 신학도 가능하다. 바빙크는 그의 교의학1 전 4권의 제1권 전체를 할애하여 자신의 신학방법론을 제시하고 있다. 공교회의 교의학은 서론과 6개의 체계(Loci;로찌)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6개의 Loci가 신론, 인간론, 기독론, 구원론, 교회론 그리고 종말론이다. 서론은 신학의 원리와 방법론을 논하는데 이것을 신학 서론(프로레고메나 테올로기에; Prolegomena Theologiae)이라고 한다. 바빙크는 그의 교의학 전 4권에서 제1권을 신학방법 및 원리에 대한 논증에 할애한다. 그리고 나머지2-4권에서 6개의 Loci를 논하고 있다. 방법론과 원리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바빙크 교의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제1권에 대한 이해가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제1권을 이해하려면 18-19세기 신학사와 철학사에 대한 선지식이 반드시 필요하다.
2. 그렇다면 바빙크 신학의 방법과 원리는 무엇인가? 바빙크는 다음 3가지로 말하고 있다. 첫째 주관적 방법론(Methodologia Subjectiva), 둘째, 전통적 방법론(Methodologia Traditionis, 셋째, 성경적 방법론(Methodologia Scripturae) 바빙크는 이 세 가지 방법론 중 어느 하나만 택하면 위험하다고 경고한다. 바빙크는 이 세가지 방법 중 어느 하나만 극단적으로 몰고가면 진리의 전체를 볼 수 없다고 경고한다. (극단은 진리의 전체를 보지 못한다.) 그는 교의학 1권 405쪽에서 이렇게 말한다. " 성경은 교회의 빛이다. 그리고 교회는 성경의 삶이다. 교회 밖에서 성경은 하나의 수수께끼이고 하나의 걸림돌이다. 거듭나지 않으면 누구도 성경을 바르게 깨달을 수 없다." 바빙크는 성경해석을 바르게 하려면 교회 공동체 안에서만 가능하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신학은 교회 공동체적 작업이며 신학은 언제나 교회를 섬기기 위한 작업이다. 바빙크는 바른 교의학을 세우기 위해서 이 세가지 방법의 종합을 주장한다.
주관적 방법론
칸트는 이성은 시공이란 형식체계 안에 있는 대상만 인식이 가능하다고 말하면서 신은 시공적 체계 안에 있지 않으므로 이성의 인식대상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래서 칸트에게 이성적인 신학탐구의 대상은 예수 그리스도의 윤리만 남게 된다. 그래서 그는 신학을 윤리학으로 환원시키게 되었다. 칸트에 반발하여 하나님은 이성으로 인식되지 않지만 경험과 체험을 통해 알 수 있다는 주관적 의식의 신학을 주장한 사람이 슐라이허마흐다. 이 두 사람은 신 인식의 문제에서 서로 대립했지만 두 사람 모두 주관적 방법론을 사용했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계몽주의 이래 유럽에 퍼진 신학적 방법론은 주관적 원리였다. 그러나 주관적 신앙이 객관적 표준에 기초하지 않으면 신학은 윤리학이나 종교 심리학으로 환원되고 만다.그래서 바방크는 객관적 원리로서의 계시가 인정되고 확보되어야만 교의학은 신학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전통적 방법론
전통적 방법론은 교회적 방법론(Methologia Ecclesiae)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방법론은 바빙크 교의학의 두번 째 특징인 역사적 신학과 관련된다. 로마교회는 이 방법론을 극단화시킨 예이다. 신앙 체험의 옳고 그릇됨을 누가 판단하는가? 그 판단 기준은 교회의 신조, 신앙고백이다. 로마교회는 이 방법론을 극단화하여 교화의 무류성을 주장하고 교회가 판단의 최종적 권위를 갖는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교회의 역사는 교회가 결코 오류에서 자유롭지 않음을 보여주었다. 이 방법론이 극단화되면 인간 교권을 절대시할 위험이 있다.
성경적 방법론
바빙크는 이 방법론은 대단히 절대적이고 확실한 방법이지만 이것 역시 극단화하면 대단히 위험하다고 말한다. 그는 성경적 방법론만으로는 교의학을 바르게 세우기 힘들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성경 해석에도 경험이나 전제에 따른 주관성이 배제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바빙크는 성경 본문의 해석은 다양할 수 있지만 그 해석의 수용가부는 교회의 해석 역사에 비추어 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3. 바빙크는 신학의 원리를 3가지로 제시하는데 그것은 신학의 기초(근본)원리와 거기서 흘러나오는 객관적(외적)원리 그리고 주관적(내적) 원리이다. 바빙크에게 신학의 근본원리(principium fundamentum)란 삼위일체 하나님이다. 그리고 이 신학의 근본원리에서 도출되는 신학의 객관적 원리(principium objectivium)는 성경과 성경해석의 전통이며 신학의 주관적 원리(principium subjetivium)는 말씀과 더불어 역사하는 성령의 내적 조명으로서의 신앙이다. 신학의 객관적 원리는 방법론적으로는 성경적 및 전통적 방법론과 관련이 되며 주관적 원리는 주관적 방법론과 연관이 된다. 바빙크는 신학의 객관적 원리와 주관적 원리는 구별되지만 분리될 수는 없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이 두원리는 모두 신학의 근본 원리로 부터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두원리를 붐리하여 양지 택일로 가려고 하면 신학은 극단에 빠지게 되고 극단은 진리의 전체를 보지 못한다.
객관적 원리를 극단적으로 강조하여 신학을 세우려고 한 분파가 개신교 정통주의 혹은 개신교 스콜라주의이다. 이렇게 되면 그 신학은 사변적 경향을 띠게 되고 냉냉하고 바리새적인 교회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 신학과 신앙은 구분되나 분리될 수 없다. 신학의 고백이 신앙이라면 신학은 신앙의 논리적 서술이다. 반면에 신학의 주관적 원리에만 집착하면 신비주의, 열광주의에 빠질 위험이 있다. 교회사에서 교리주의를 혐오하고 개신교 스콜라주의를 반대한 분파가 경건주의이다. 18세기에 정통주의와 경건주의 사이에 일어난 유명한 신학논쟁이 있는데 그 논쟁의 내용은 신학의 주체가 중생자에게만 가능한가 아니면 비중생자도 신학을 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였다. 경건주의는 오직 중생자만이 신학이 가능하다고 했고 정통주의는 신학은 객관적 학문이기 때문에 비중생자도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물론 정통주의도 중생자가 신학을 제대로 할 수 있음을 부정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이 두 진영의 주장은 나름대로 진리의 일면을가지고 있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극단은 진리의 전체를 보지 못한다.
정통주의 주장에는 간과할 수 없는 중요성이 있다. 당시에 계몽주의자들은 국립대학의 신학부를 폐지할 것을 주장했는데 그 이유는 신학은 신앙을 전제한 것이므로 엄밀하게 말해 학문이라고 볼 수 없으니 국립대학고에 학문 분과로 남아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에 반대하여 정통주의는 신학의 학문성에 대한 논쟁을 제기하며 신학도 엄밀한 학문임을 주장하여 국립대학에서 신학부를 지켜냈다. 물론 경건주의적 논법으로는 국립대 신학부를 지켜낼 수 없었을 것이다. 정통주의가 간과할 수 없는 진리를 가지고 있다면 경건주의 역시 배척할 수 없는 진리를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객관과 주관의 원리가 함께 견지되어야 바른 신학이 가능하다. 이 두 원리는 구별되지만 분리될 수 없다. 왜냐하면 이 두 원리는 모두 심위일체 하나님이라는 신학의 근본원리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바방크는 이 두 원리의 종합을 추구하여 개혁파 교의학을 개진해 나갔고 그래서 3가지 신학방법론을 종합하려 한 것이다.
각주 1
바빙크 당시 사용된 교의학(Dogmatics))이란 용어는 오늘날 통상적으로 조직신학(systematic theology)이란 용어로 대체되었다. 왜 교의학은 조직신학이라고 말하는가? 그것은 교의 서술방식이 체계적이고 조직적이기 때문이다. 교의를 이렇게 기술하는 이유는 그래야 파악하고 습득하며 가르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조직신학이란 교의를 서술하..
- 바빙크 당시 사용된 교의학(Dogmatics))이란 용어는 오늘날 통상적으로 조직신학(systematic theology)이란 용어로 대체되었다. 왜 교의학은 조직신학이라고 말하는가? 그것은 교의 서술방식이 체계적이고 조직적이기 때문이다. 교의를 이렇게 기술하는 이유는 그래야 파악하고 습득하며 가르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조직신학이란 교의를 서술하는 방식면으로 본 것이고 교의학이란 교의학의 내용이 교의이므로 그렇게 부른 것이다. 다시 말하면 교리의 원리적 국면을 강조한 용어가 교의학이라면 교리의 적용적국면을 강조한 표현이 조직신학이라고 말할 수 있다. [본문으로]
바빙크의 신학 개념- 이동영
2016-01-19 15:46:41
모든 신학은 모사의 신학이다.
개혁파 정통주의는 신학을 원형의 신학(theogia acretypa)과 모사(모방)의 신학(theologia ectypa)으로 구분했다. 원형의 신학이란 삼위 하나님의 자기 의식 속에 존재하는 신학, 즉 하나님 자신이 자기 자산에 대해 가지고 있는 신학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원형의 신학을 절대 알 수 없다. 이 원형의 신학이 계시의 형태로 인간에게 주어진 것이 바로 모사의 신학이다. 원형의 신학은 계시 사건으로 말미암아 성경 안에서 모사의 신학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이 모사의 신학이 성령의 내적 증거로 조명될 때 인간에게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그래서 바빙크는 성경을 신학의 도구적 유효원인 혹은 도구적 말씀이라고 불렀다. 그러니까 우리가 소유한 하나님의 말씀은 계시를 통해 묘사된 것이므로 간접적 말씀이다. 모든 지상의 신학은 모사의 신학이다. 지상에 다양한 신학이 존재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므로 특정 신학을 절대화하여 원형의 신학이라고 주장하면 안된다. 개혁파 신학이라 할지라도 마찬가지다. 개혁파 신학은 어떤 신학에도 절대적 권위를 부여하지 않는다. 오직 그 신학이 얼마나 하나님의 말씀에 부합하느냐를 가지고 판단한다. 그러므로 개혁신학은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는 탁월한 방편인 것은 사실이지만 이것을 원형의 신학이라고 주장하는 순간 타락하게 된다.
지상의 모든 신학은 모사의 신학이므로 나그네 신학이며, 과정의 신학 즉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기 위한 방편적 신학이다. 지상의 모든 신학이 본향의 신학이 아니라 나그네 신학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명심해야 한다. 바빙크는 언제나 이 점을 강조하고 경고했다. 공교회의 모든 신학은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기 위한 방편으로 모사의 신학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개혁신학은 스스로 가장 탁월한 방편이라는 자부심을 가질 만 하지만 그러나 지상의 모든 신학은 겸손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모사의 신학, 방편의 신학이기 때문이다. 개혁신학의 교부들인 칼빈이나 쯔빙글리는 지상의 신학이 모사의 신학임을 강력히 강조하며 모든 영광은 하나님께만 귀속된다는 사실을 명백히 말했다. 모든 신학자는 원형의 신학에 대한 유혹이 있다. 그러나 원형의 신학을 탐하는 자는 그 결과가 비참할 것이다. 스스로 교주 노릇을 하려는 자는 자기 무덤을 파는 것이다.
신학의 궁극적 목적은 삼위 하나님을 향한 송영이다.
바빙크는 그의 교의학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 그러므로 신학은(교의신학)은 따분하고 무미건조한 학문이 아니다. 그것은 신정론(theodicy)이고 하나님의 모든 덕과 완전성에 대한 송영(doxology)이며 경배와 감사의 찬송이고 지극히 높은 곳에서 하나님께 영광이다.(눅2:14) 신학은 하나님에 대한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송영의 목소리를 반영하지 않을 수 없다. "
이것은 신학의 개념에 대한 대단히 정확한 통찰이다. 우리는 바빙의 이러한 신학 개념의 넓이와 깊이를 깨달아야 한다. 신학(theologia)이란 용어의 기원은 고대 그리스에서 나왔다. 당시에 폴리스를 돌아다니며 신에 대한 신화를 말하는 방랑시인들이 있었는데 이들이 말하는 이야기를 신화적 신학이라고 불렀다. 당시에 플라톤은 이들의 신화적 신학은 폴리스 시민들을 혹세무민하는 것이라고 비판하며 본성적 신학을 주창하기도 하였다. 이것이 신학이란 용어가 사용된 기원이다. 초대 기독교 교부들은 고대 희랍철학자들이 사용하던 신학이란 용어를 빌려와서 기독교 사상의 총체를 표현하였던 것이다. 그들에게 신학이란 하나님에 대해서(향해서) 말하는(찬양하는) 학문이었다. 신학이란 용어를 삼위일체적 관점으로 확장한 사람들이 동방교회의 갑바도기아 교부들이다. 이들은 신학이란 삼위일체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 곧 삼위일체론이라고 정의하였다. 동방교회 전통에 따르면 신학은 삼위일체론이고 삼위일체론 외에 모든 학문 구원론, 교회론, 기독론 종말론, 인간론 등은 신학이 아니라 하나님의 경륜에 대한 학문으로 분류하였다. 심지어 인문학이나 의학, 건축학 등 모든 학문도 경륜에 관한 학문으로 간주되었다.
경륜 곧 오이코노미아는 오이코스(집)과 노모스(법)의 합성어인데 그 의미는 하나님이 자신의 집(창조세계)를 이끌어 나가는 규범이란 의미이다. 고대동방교들의 학문 분류법에 따르면 삼위일체론 외의 모든 학문은 경륜에 관한 학문이다. 이 사상의 이면에는 이 세상의 모든 영역이 하나님의 경륜에 속한다는 사고가 있다. 그들에게 하나님의 경륜에 해당되지 않는 삶의 영역은 없었던 것이다. 이것은 단순하지만 대단히 탁월하고 심오한 학문 분류법이다. 어쩌면 신칼빈주의의 영역주권 사상의 뿌리는 고대동방교부들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계몽주의 이래 서방교회는 슐라이어마허의 학문 분류법을 따랐는데 그것은신학을 이론신학과 실천신학으로 분류한 것이었다. 이론(theorie)과 실천(praxis)
이라는 분류법은 계몽주의의 산물이다. 계몽주의 이래 학문에서 이론이 먼저냐 실천이 먼저냐는 논쟁이 제기되어 왓고 이 논쟁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동방교부들에 의하면 신학의 궁극적 목적은 이론도 아니고 실천도 아니며 오직 삼위 하나님에 대한 송영(doxologie)이다. 이론과 실천은 모두 궁극적 목적인 송영을 위한 수단이나 방편일 뿐이다. 서방교회는 계몽주의의 이론과 실천이라는 프레임에 갇혀 신학의 궁극적 목적을 상실했다. 그러나 이론과 실천은 서로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신학의 궁극적 목적인 송영 안에서 서로 만난다. 그러므로 이론과 실천은 양지택일의 문제가 아니다. 이런 점에서 21세기 조직신학에서 송영과 이론의 관계 혹은 송영과 실천의 관계를 규명하는 것이 중요한 방법론적 테마로 대두되고 있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바빙크의 신학 이해는 신학의 궁극적 목적이 무엇인지를 발 반영하고 있다. 사람의 제일되는 목적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그를 영원히 즐거워하는 것이라고 가르치는 소요리문답 1문도 신학이 송영이라는 가장 통찰력 있는 이해를 반영하고 있다. 신학은 논쟁하고 싸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이다. 칼빈도 기독교강요에서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Soli Deo Gloria)라는 말을 했는데 이것도 고대 동방교부들의 신학 이해에 기초하고 있는 것이다. 이론과 실천은 모두 송영을 지향한다는 엄중한 사실을 신학하는 자는 명심해야 한다. 신학의 목적이 송영이라면 신학의 과제는 교회와 세상을 섬기는 것이다. 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우스는 그의 신학강론에서 신학을 위하여 성부는 우리를 기뻐하셔야 하며 성자는 우리를 도우셔야 하고 성령은 우리에게 영감을 주셔야 한다고 말했는데 이것은 신학의 궁극적 목적이 삼위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하는 것임을 잘 보여준다. 교부 폰티우스 에바그리우스는 "그대가 기도(찬양)하는가? 그렇다면 그대는 신학자이다. 그러나 그대가 기도(찬양)하지 않는다면 그대는 신학자가 아니다." 라고 말했다. 신학은 삼위 하나님애 대한 찬양으로 시작하여 삼위 하나님에 대한 찬양으로 마친다.
바빙크의 신학 이해는 교부신학을 꿰뚫은 자의 통찰에서 나온 명언이다." 그러므로 신학은(교의신학)은 따분하고 무미건조한 학문이 아니다. 그것은 신정론(theodicy)이고 하나님의 모든 덕과 완전성에 대한 송영(doxology)이며 경배와 감사의 찬송이고 지극히 높은 곳에서 하나님께 영광이다.(눅2:14) 신학은 하나님에 대한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송영의 목소리를 반영하지 않을 수 없다. " 신학에서 하나님 찬양이 먼저고 학문은 다음이다. 하나님 찬양이 전제되지 않은 학문은 신학이 아니다. 하나님을 2인칭으로 말하지 못하고 3인칭으로 말하는 자는 종교학자이지 신학자가 아니다. 신학의 학문성만 강조하면 사변적 논쟁적 신학자가 된다. 하나님 찬양이 전제될 때 학문도 의미를 갖게 된다. 바빙크는 이 엄중한 사실을 간파한 참된 신학자였다.
바빙크의 성서론- 이동영
2016-02-03 19:46:31
성경은 어떤 의미에서 하나님의 말씀인가? 이 주제와 관련하여 성서 영감론에 대한 이해가 중요하지만 영감론보다 정경론이 먼저 다루어져야 한다. 성경이 영감된 것이기 때문에 정경이 된 것인가? 아니면 정경이기 때문에 영감된 것인가? 이런 논쟁과 관련하여 바빙크는 성서의 정경론을 먼저 다룬다. 왜냐하면 성경의 정경화가 성경 영감론 이전에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구약성경이 경우 유대교에서 이미 정경화된 것이므로 그것을 역사적 기독교회가 정경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큰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신약 성경의 경우는 다르다. 신약시대의 많은 문서들이 정경에서 배제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역사적 기됵교회의 정경 선별 기준은 무엇인가? 첫째는 문서가 가진 역사적 정통성으르서의 사도성이며, 둘째는 그 문서의 기독론, 셋째는 교회의 실질적인 사용여부이다. 이런 기준을 가지고 신약의 문서는 정경화 과정을 거쳤고 교회는 정경화된 문서들을 영감된 것으로 고백하였다. 그러니끼 정경화가 먼저 이루어졌고 영감교리는 정경화된 책에 대한 신앙고백으로 등장한 것이다. 그러나 영감교리는 단순한 신앙고백이 아니라 성경본문을 통해 자증된 교리로 수립된 것이다.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계시가 없다면 인간은 스스로 하나님을 알 길이 없다.1 쯔빙글리는 유한은 무한을 수용할 수 없다.(Finitum non capax infiniti)고 말하며 하나님을 알기 위하여 계시(revelatio; Apocalypsis)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계시란 하나님의 말씀이 역사 안으로 들어온 것이며 인간의 언어로 낮아진 것이다. 하나님의 로고스가 성육신으로 낮아지신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말씀이 성경 안에서 인간 언어로 낮아진 것이다. 바빙크는 성경을 성육신에 비견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이 인간 언어로 낮아진 것이 바로 성경이라고 말했다. 그러므로 특별계시와 성경은 분리될 수 없다 왜냐하면 특별계시가 육신을 입은 것이 성경이기 때문이다.2 하나님의 말씀이 계시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이 역사 가운데 들어와야 하고 시공의 제약을 받는 인간의 언어로 낮아져야 한다. 성경은 특별계시가 종의 형태를 취한 것이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계시의 총화이다.
바빙크는 영감교리는 심리학적 개념이 아니라 신학적 개념이라고 강조한다. 하나님이 성경의 원저자이고 인간은 2차 저자라는 전제하에, 원 저자와 인간 저자의 상호 관계를 신학적으로 설명한 것이 바로 영감 교리이다. 바빙크는 영감 교리가 황홀경이나 격정과 같은 심리학적 의미로 환원되어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그래서 바빙크는 기계적 영감론을 반대하고 유기적 영감론을 주장한다. 바빙크는 성경의 원저자와 인간저자의 관계를 기계적 관계로 보지 않고 유기적 관계로 본다. 바빙크는 기계적 영감론은 위험하고 이단에 빠질 위험이 크다고 경고하면서 성경 자체가 유기적 영감을 자증한다고 말한다. 왜나하면 성경에는 인간 저자의 역사적 배경, 환경, 능력, 지삭 등이 반영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유기적 영감론은 성경본문이 자증하는 영감교리이다.3 성경의 원저자이신 하나님은 인간을 결코 강요하지 않고 이성적이고 도덕적인 존재로 대우히신다. 그래서 성경에는 인간 저자들의 문체와 다양한 문학적 장르들이 존재하는 것이다. 바빙크는 유기적 영감론은 성경 자체의 증거로 부터 도출된 교리임을 강조하며 교부들도 유기적 영감론을 지지한다고 말한다. 그러니까 유기적 영감론은 성경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이며 동시에 전적으로 인간의 말이라는 의미이다. 이것은 기독론의 그리스도의 두 본성 교리와 정확하게 일치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의 인격 속에 신성과 인성이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있듯이 성경에는 하나님의 말씀과 인간의 말이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유기적 영감론이 본문 비평의 길을 열어놓는 것은 아니다. 슐라이어마허는 범신론적 견해를 가지고 역동적 영감론을 주장했는데 이는 성경의 기록, 편집, 표현이 부분적인 오류가 있음을 인정하는 부분 영감론이다. 역사비평을 주장하는 학자들은 성경의 원저자와 인간 저자의 관게를 이신론적으로 파악하고 있다. 유기적 영감론은 역사비평(이신론적)이나 부분 영감(범신론적)의 양 극단을 모두 배격한다. 유기적 영감론은 전제를 가지고 본문을 파악하여 나온 교리가 아니라 성경 본문 자체가 자증하는 교리이다. 기계적 영감론이 성경의 인적 요소를 부인한 것이라면 역사비평은 성경의 신적요소를 배제한 것이다. 이것은 마치 고대의 이단인 에비온파와 영지주의가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 어느 하나만 주장한 것과 마찬가지다.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을 함께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듯이 성경의 신적요소와 인적요소를 함께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렇게 성경의 영감교리는 기록론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축자영감과 기계적 영감을 동일시하는 것을 잘못이다. 축자영감이란 성경의 전체(창세기-요한계시록)가 영감되었다는 이른 바 영감의 범위에 대한 교리인 반면에 기계적 영감론은 영감의 방법에 대한 설명이다. 그러므로 축자영감은 유기적 영감론을 전제한 것이다. 성경의 신적요소만을 주장하는 기계적 영감론이라면 당연히 축자영감이라는 말이 필요없게 된다. 전체 성경이 동일하게 유기적으로 영감되었다는 설명이 바로 축자영감론이다. 그렇다면 성경을 영감된 책이라고 고백하는 의미는 무엇인가? 소요리 문답 제2문은 다음과 같이 고백한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즐거워하는 것을 지도하시려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준칙(準則)은 무엇입니까? 답: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즐거워하는 것을 지도하시려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유일한 준칙은 구약과 신약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또한 한국 장로교 12신조의 첫번째 신조는 다음과 같다. 신.구약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니 신앙과 본분(本分)에 대하여 정확무오(正確無誤)한 유일(唯一)의 법칙이다. 이 두 신앙고백은 모두 영감된 성경을 우리의 믿음과 행동에 관해 하나님이 주신 유일한 준칙으로, 정확무오한 유일의 법칙으로 고백한다. 영감교리의 의미는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을 뿐 아니라 우리가 살아냐야 할 유일한 준칙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의 영감교리를 믿는다면서 영감된 그 말씀대로 살지 않는다면 사실상 영감 교리를 부인하는 않는 것이다.
각주 1
바르트는 자연신학 및 개신교 자유주의를 반대하면서 인간의 노력으로 하나님에게 도달하려는 모든 시도를 종교라고 규정하고 모든 종교는 자기 기만적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바르트는 특별계시를 극단적이고 과도하게 강조하였고 그의 자연계시 및 일반계시에 대한 이해는 극단적이었다.그러므로 특별계시에 대한 바르트의 강조점은 그가 처한 상황 속에서 이해되어야지 일반화하..
각주 2
일반계시와 특별계시의 관계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독일교회(Deutsche Christen)는 일반계시의 관점에서 나찌정권을 정당화하고 아리안 민족을 선민으로 히틀러를 메시아로 추앙했다. 이에 반대하여 칼 바르트는 일반계시를 부인하고 특별계시만을 주장했다. 그는 오직 특별계시를 통해서만 신학을 정립하려고 한 것이다. 바르트의 경우는 시대의 비극이 신학적..
각주 3
바빙크는 성경본문 주석의 귀결로서 유기적 영감론을 주장한다. 그는 다른 영감론은 성경본문의 지지를 받지 못한다고 말한다.유기적 영감론은 성경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이면서 동시에 전적으로 인간의 글이라고 말한다. 성경의 역사성을 고려하면서 동시에 성경이 영감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이 바로 유기적영감론이다. 유기적 영감론은 신성과 인성을 동시에 가진 그리스..
- 바르트는 자연신학 및 개신교 자유주의를 반대하면서 인간의 노력으로 하나님에게 도달하려는 모든 시도를 종교라고 규정하고 모든 종교는 자기 기만적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바르트는 특별계시를 극단적이고 과도하게 강조하였고 그의 자연계시 및 일반계시에 대한 이해는 극단적이었다.그러므로 특별계시에 대한 바르트의 강조점은 그가 처한 상황 속에서 이해되어야지 일반화하는 것은 위험하다. 바르트의 주장은 과도하고 투쟁적이다. 바르트는 영감과 조명을 구분하지 않고 동일시 함으로써 일반계시와 특별계시 사이의 균형을 잃어버렸다. [본문으로]
- 일반계시와 특별계시의 관계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독일교회(Deutsche Christen)는 일반계시의 관점에서 나찌정권을 정당화하고 아리안 민족을 선민으로 히틀러를 메시아로 추앙했다. 이에 반대하여 칼 바르트는 일반계시를 부인하고 특별계시만을 주장했다. 그는 오직 특별계시를 통해서만 신학을 정립하려고 한 것이다. 바르트의 경우는 시대의 비극이 신학적 결핍과 불균형을 초래하기도 한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판넨베르크(Wolf Pannenberg)는 일반계시가 거부되면 특별계시의 역사성이 부인되고 이는 나아 창조교리가 무너짐으로 구속역사가 가현설화될 위험에 빠지게 된다고 바르트를 비판했다. 이미 30년전에 스킬더도 일반계시가 거부되면 창조론이 거부되고 특별계시는 가현화된다고 지적했다. [본문으로]
- 바빙크는 성경본문 주석의 귀결로서 유기적 영감론을 주장한다. 그는 다른 영감론은 성경본문의 지지를 받지 못한다고 말한다.유기적 영감론은 성경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이면서 동시에 전적으로 인간의 글이라고 말한다. 성경의 역사성을 고려하면서 동시에 성경이 영감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이 바로 유기적영감론이다. 유기적 영감론은 신성과 인성을 동시에 가진 그리스도의 두본성 교리와도 정확하게 일치한다. 한국교회는 대체로 기계적 영감론의 정서를 가지고 있는데 이는 교리교육의 부재와 성경에 대한 이해부족에 기인한다. [본문으로]
바빙크의 신학과 유기체 철학- 이동영
2016-02-16 12:15:48
1. 바빙크는 그의 교의학에서 유기체론 혹은 유기체 철학이란 용어를 즐겨 사용했다. 유기체 철학이란 데 데카르트나 뉴튼의 기계론적 세계관에 반대하여 18세기에 등장한 유기체적 세계관의 산물이다. 유기체적 세계관은 다윈의 진화론에 의해 힘을 얻게 된다. 이런 유기체적 세계관을 유신론적 관점에서 수용한 신학자들이 Jacob Boehme, Oetinger, Bengel 등이다. 이들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에는 질서와 조화가 있으며 전체와 부분은 유기체적으로 결합되어 있다고 주장했다. 바빙크도 이 유기체적 세계관을 사용해서 하나님의 구속사와 창조경륜을 설명하였다. 개혁파 구원론의 핵심은 그리스도와의 신비한 연합(unio mystica cum Christo)에서 오는 이중적 은총(Gratia Duplex)이다. 성령의 감동으로 인간의 내면에 신앙이 조성되며 인간은 이 신앙으로 그리스도를 붙듦으로 그리스도와 신비한 연합을 이루게 된다. 그리고 그리스도와의 신비한 연합으로부터 두개의 은총이 흘러나오는데 그것이 칭의(justiatio)와 성화(sanctificatio)이다. 이 두 은총은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영화(glorificatio)를 지향한다. 오직 믿음은 홀로 믿음이 아니라(sola fides nun quvar sola) 선행을 수반하는 믿음이다. 그러므로 칭의없이 성화가 없으며 성화없이 칭의가 없다는 것이 개혁주의 구원론이다.1 바빙크는 그리스도와 신비한 연합을 유기적 연합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니까 이 연합은 100% 하나님의 은혜이면서 동시에 100% 인간의 의지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성경이 100% 하나님의 말씀이면서 동시에100% 인간의 글이듯이 그리스도와의 연합도 그렇다는 것이다. 바빙크는 성경영감론이나 신비한 연합교리를 모두 유기체 철학의 언어로 설명한 것이다. 바빙크는 구원의 서정(Ordo Salutis)도 유기적 세계관을 사용하여 구원의 서정이 가진 재창조를 향한 목적지향성을 설명한다. 그러니까 바빙크는 유기체적 철학이란 당시의 언어를 사용해서 창조-타락-구속-재창조라는 목적론적 경륜을 설명한 것이다. 어거스틴이 당시의 철학체계인 신플라톤 신학을 신학의 도구로 사용했듯이 바빙크도 자기 시대의 철학체계인 유기체 철학을 사용하여 복음을 소통적으로 설명한 것이다. 신학의 역사는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하지만 시대는 변하고, 변하는 사조 속에서 어떻게 하나님을 말씀을 소통적으로 설명할 것인지 고민해 왔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철학 자체가 가진 문제와 한계가 있으므로 이것을 복음 소통을 위해 도입할 때 조심해야 한다.
2. 신학에는 세 가지 기능이 있는데 그것은 교회적 기능, 보존,재생적 기능, 그리고 생산적 기능이다. 신학의 교회적 기능이란 신학은 교회 안에서 교회에 의해 교회를 위한 작업을 의미한다. 신학작업은 교회의 일원으로서 신앙인으로서 가능하다. 신앙이 없는 신학작업은 의미가 없다. 그래서 Johannes Coccejus는 말하길 " 신학자는 하나님에 관해 말하길 하나님으로부터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말하는 자"라고 했다. 두번째는 보존,재생적 기능인데 하나님의 말씀을 교리의 체계로서 보존하고 재생하는 기능이다. 신학작업에서 현실적합성만 추구할 때 신학은 이데올로기화될 위험이 있다. 세번째 기능인 생산적 기능은 현실적합성을 추구하는 것이다. 이것은 신학의 보존,재생적 기능만큼 중요한 것이다. 그래서 신학은 보수적이면서 동시에 진보적이어야 하며 이론적이면서 동시에 실천적인 학문의 성격을 띠게 된다. 사실 신학의 생산적 기능은 보존,재생적 기능에 비해 과소평가된 면이 없지 않다. 슐라이허마하는 교의학은 교리의 역사적 측면에 집중하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이것은 신학의 보존,재생적 기능을 강조하지만 생산적 기능을 간과한 것이다. 신학의 생산적 기능이 소홀하게 되면 교리적 무관심을 초래하게 된다. 그동안 교의학은 교리의 역사와 개념정리에 치중했고 그 결과 교회의 교리불감증을 초래한 면이 있다. 신학은 오늘날의 질문애 응답해야 한다. 그래서 철학의 사용문제가 대두되는 것이다. 신학의 역사를 보면 각 시대의 신학자들은 그 시대의 주류의 철학을 신학의 도구로 사용했다. 오리게네스나 어거스틴이 신플라톤 철학을, 토마스 아퀴나스는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을, 슐라이허마하는 스피노자 철학을, 리츨은 칸트 철학을 이용했다. 이들은 모두 자신의 시대의 주류의 철학을 사용하여 시대와 소통하려고 했던 것이다.
3. 그렇다면 과연 신학이 철학을 사용하는 것이 정당한 것인가? 만일 정당하다면 어떤 방식으로 철학을 사용해야 하는가? 신학의 역사를 보면 신학에 철학이 사용됨으로 철학에 내재된 어두움이 하나님의 말씀에 그림자을 드리운 경우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령은 은총의 빛으로 복음을 드러내시고 그림자를 제거해오셨다. 시대의 철학을 사용하는 것은 세상과 소통하기 위해 필요하다. 다만 반성적으로 사용해야 한다. 신학의 역사를 보면 신학은 철학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 왔고 신학작업에 철학을 도구로 사용해 왔다. 그러므로 철학을 무조건 이단시하거나 신학역사를 철학에 오염된 것으로 보는 것은 잘못이다. 신학이 그 시대 언어로, 그 시대와 소통하기 위해 철학이 필요하다. 그러나 신학에 철학을 사용할 때 문제가 되는 것은 철학이 질문자가 아니라 답변자로 자처할 때이다. 철학이 신학의 상위규범과 원리로 작동되면 안된다. 신학이 질문하고 철학이 그 질문에 답면하게 된다면 신학은 철학의 하부 이데롤로기로 전락하게 된다. 리츨의 문화개신교가 그 좋은 예이다. 그들은 신학을 질문의 도구로 삼고 칸트의 윤리철학을 이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사용함으로써 하나님나라를 유럽문화와 동일시하는 우를 범했다. 하나님의 말씀이 질문으로 전락하고 철학이 대답으로 등극하면 안된다. 철학은 그 시대의 문제를 제기하고 질문하는 수단으로 사용되어야 하고 신학은 그 질문에 대답하고 그 문제에 해법을 제시해야 하는 것이다. 철학은 하나님의 말씀을 시대와 소통하는데 좋은 수단이지만 그 철학이 문제 제기와 질문이 아니라 답변으로 작용할 때 신학은 철학의 하부 이데올로기로 전락하게 된다. 신학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그 시대의 문제와 그 시대의 질문에 답변하는 것이고 철학은 단지 그 시대의 문제를 분석하고 문제를 제기하며 그 시대와 소통하는 도구로 국한되어야 한다. 마가복음2장 22절을 주석한 다음 구절은 바빙크가 자신의 신학에서 철학을 어떻게 사용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 마음으로부터 어리석음이 나온다.(막2:22) 우리 생각은 우리 존재속에 뿌리박고 있다. 행동이 존재를 뒤따른다(쇼펜하우어) 2우리가 어떤 종류의 철학을 선택하느냐 하는 것은 우리가 어떤 종류의 인간이 되느냐에 달려있다. 우리의 사고체계는 종종 단지 우리 마음의 역사일 뿐이다.(피히테)" -헤르만 바빙크 개혁파교의학 1권 337쪽-
각주 1
언약적 신율주의는 은혜로 언약에 들어가지만 언약에 머무르려면 율법을 지켜야한다고 말하는데 개혁파 구원론은 언약에 들어가는 것도 언약에 머무르는 것도 오직 은혜로 말미암는다고 말한다. 개혁파 구원론은 윤리적 방종주의나 반법주의를 반대한다.
각주 2
존재론적으로는 존재가 행동을 앞설지라도 인식론적으로는 행동이 존재에 앞선다. 그래서 우리는 그 사람의 행동을 보고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인식한다.
바빙크 기독론의 특징- 이동영
2016-03-01 12:59:36
1. 기독론은 그리스도의 인격에 관한 논의인데 개혁파는 언약론적 관점으로 기독론을 전개한다는 것이 특징이다. 그래서 바빙크는 기독론을 창세전에 이뤄진 삼위 하나님간의 구원협약(pactum salutis trinitatis)에서 시작한다. 이 구원협약이 시간 속에서 집행되어 나타난 것이 바로 은혜언약(faedus gratiae)이다. 은혜언약이란 아담과의 행위언약(faedus operatium)의 실패 이후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인데 이 은혜언약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아믄 새언약으로 그 정점에 이른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성육신의 당위성은 바로 이 은헤언약에 근거하는 것이다. 기독론을 성육신이 아니라 구원협약으로 시작해서 그리스도의 인격을 기술하는 것이 개혁파 기독론의 독특한 서술방식이다.
2. 칼라너는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은 하나님의 자기전달이고 이것이 하나님의 은총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자기 전달 곧 하나님의 은총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인간의 교제가 가능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칼 라너의 이러한 ㅎ나님의 자기 전달 사상은 이미 바빙크가 그의 교의학에서 갈파한 사상이다. 바빙크는 삼위일체의 토대 위에서 하나님의 자기전달을 설명하면서 하나님의 자기 전달의 절정인 성육신은 삼위하나님의 공동사역이라고 말했다. 바빙크는 하나님의 자기전달을 인정한다면 성욱신도 인정하게 되며 나아가 하나님과 인간의 교제의 가능성도 인정하게 된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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