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 대속론- 차재승
2015-09-30 17:37:39
대속이란 개념은 십자가 이해의 한 부분일 뿐이며 오히여 십자가에 대한 전체 맥락에서는 좁은 부분이다. 그래서 최근에는 대속론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그 주된 비판들은 대속론이 십자가 신학의 발전 가능성에 한계를 가져온다는 것이고 특히 형벌적 대속론은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또한 제사를 중심으로한 제례적 대속론이 가진 원시성도 폭력성도 지적되고 있다. 전통적 개혁주의는 형벌적 대속론을 주장하는데 재임스 팩커는 형벌적 대속론을 기독교 복음의 심장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스티브 홀름스는 형벌적 대속론을 거부하는 논문을 Scottish Journal of Theology에 발표하기도 했다.(2005년) 대신 죽는다는 의미의 형벌적 대속론을 신학자들이 거부하는 주된 이유는 이것이 하나님을 잔인한 신으로 만들고 인간성을 말살하며 모순된 정의를 함의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형벌적 대속론은 십자가에 대한 편협한 이해이며 십자가 신학의 다양성을 수용하지 못한다고 비판한다. 형벌적 대속론에 대한 비판은 이미 18세기 부터 대두되었는데 그 주된 주장들은 형벌적 대속론은 인간의 도덕성을 훼손하며 폭력을 조장한다는 것과 죄없는 자가 대신 심판을 받는 다는 것은 논리적 모순이라는 것이다. 나아가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에서 심판과 희새잉란 그림은 모순이고 하나님의 본성을 폭력적으로 만든다는 것이다.
대속론에는 제례적 대속론도 있는데 이것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을 제사제도의 희생제물로 바쳐진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형벌적 대속론과의 차이점은 그리스도는 수동적인 희생제물이 아니라 스스로 희생하신 분으로 이해하면서 그리스도의 희생을 '누구에게 드려진' 희생이란 관점보다는 '누구를 위하여 드려진' 희생이란 관점으로 바라본다. 제례적 대속론은 형벌적 대속론과 달리 하나님이 객체가 아니라 주체가 되며 하나님의 심판과 아울러 사랑, 용서, 의가 함께 드러난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일부 학자들은 십자가를 희생화(victimization)시키는 제례적 개념은 위험하다고 지적한다. 왜녀하면 제사제도의 본질은 물질성이나 외형성에 있지 않은데, 제례적 대속론은 물질에 의해 전가되는 물질성이 있고 신과 인간의 관계가 외형적인 제례로 표현됨으로써 타자성과 소외가 발생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형벌적이든 제례적이든 대속론 자체를 폐기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현대의 신학자들은 역사적 예수 연구를 바탕으로 십자가를 도덕적 모범론으로 이해하려고 한다. 그들은 십자가는 하나님의 사랑이 표현된 것이므로 용서의 모범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런 주장에는 왜 죽음이 사랑이나 용서의 모범이 되어야 하는냐는 질문이 발생한다. 십자가 신학의 유형론의 초점은 죄, 죽음, 관계, 희생, 제사, 거래, 승리, 도덕, 총괄갱신 등 다양한데 성경에 특히 바울서신에 나타난 모티프는 매우 다양하고 포괄적이다. 너무 단순화되긴 했지만 구스타프 아울렌은 십자가론을 세 가지 유형, 즉 전통적 대속론, 충족론(하나님의 정의와 질서의 충족-안셀름의 견해), 도덕적 모범론으로 구분했다. 안셀름의 충족론은 왜(why) 십자가 죽음이 필요한가를 중심으로 설명한 것이라면 루터의 교환론은 십자가 죽음을 통해서 무엇이 교환되는가를 중심으로 사고한 것이었다.
아무튼 대속은 십자가에 대한 한 부분에 불과함이 강조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대속론이 아니라 십자가론이어야 하며 대속론은 다만 십자가론의 한 가지 메타포로 보아야 한다. 마가복음 10: 45절과 마태복음 20:28절에는 신약성경에서 유일하게 '대속물'이란 표현이 나온다. 그 개념은 죄/채무/의무들을 대신함으로 그것들로부터 구원을 얻게한다는 뜻이다. 대신이란 일반적인 의미는 교환이나 대체라는 개념인데 이것을 그리스도에게 적용하면 기계적인 교환이 되어 버린다. 그러나 성경적인 의미에서 "대신"은 희생과 연합의 개념인데 이 성경적인 '대신'의 개념은 일반적인 '대신'의 의미와 달리 기계적인 교환과는 정반대의 의미가 있다. 그것은 우리도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게에 죽어야 한다는 개념인데 이것은 놀랍고 생소한 이야기이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은 우리를 죽음으로 초대하여 함께 죽게한다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대신'이란 대신하는 자가 대신 당하는 자가 할 수 없는 것을 대신하는 것이다. 기계적 '대신'은 대신하는 자가 대신 당하는 자를 기계적으로 대체하므로 대신하난 자와 대신 당하는 자가 시공의 동일한 차원을 함께 공유할 수 없다. 따라서 대신당하는 자는 배제된다. 그런데 성경적 '대신'에는 이 기본 개념에 덧붙여 대신하는 자가 대신 당하는 자와 자기 자신을 함께 나누며, 대신 당하는 자를 짊어진다는 개념이 있는데 이것이 성경적 '대신' 개념의 독특성이다. 그러므로 성경적 '대신'에 따르면 대신하는 자와 대신 당하는 자는 함께 죽었으며 따라서 대신 당하는 자는 자신을 십자가에 못박아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십자가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이면서 동시에 강력한 영적 도덕성을 요청한다. 이렇게 십자가에는 쌍방적 차원이 있다. 십자가는 하나님이 다 하셨다는 주장을 지지하지 않는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은혜와 그 은혜에 따른 인간의 반응을 요구한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으로 말미암아 인간은 그리스도와 신비한 연합 가운데 들어가며 그러므로 십자가는 가장 강력한 영적 도덕적 종교적 요청으로 인간을 초대한다. 다시 말하면 십자가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으로의 요청이며 초대이다. 그러므로 이 연합의 상징인 세례와 성찬의 원형은 십자가이다. 십자가의 연합을 성례로 나타낸 것이 세례와 성찬인 것이다. 그동안 전통신학은 구원론을 칭의론으로 십자가론을 대속론으로 대체해 왔는데 이제 칭의론은 구원론의 한 부분일 뿐이며 대속론도 십자가론의 한 부분임을 인식해야 한다. 칭의론이나 대속론은 하나님의 일방성만 강조하고 인간의 참여, 연합, 요청의 측면을 간과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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