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육신 관점에서 본 성경영감설(Inspiration & Incarnation)-피터 엔즈
2015-06-19 08:02:55
1장 방향잡기
저자는 이 책의 목적이 지난 150년 동안 구약학에서 논의된 몇 중요한 주제들이 복음주의적 성경관에 미치는 영향을 다루는데 있다고 말한다. 저자는 복음주의적 성경관의 통찰이 정확하며 유지되어야 한다는 사실은 분명히 하지만 다만 그 성경관을 교리로 표현했을 때, 그 교리적 언어는 잠정적인 성격을 갖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성경에 대한 새로운 증거가 나타나서 기존의 증거가 재조명될 때 기꺼이 그 증거를 수용하고 그에 따라 교리적 언어도 조정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저자는 중세 교회에서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성경 밖의 증거가 성경을 보는 시각을 변화시킨 사례로 들면서 이것은 우리에게 성경을 해석할 때 성경 저자들의 세계관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는 교훈을 준다고 말한다. 저자는 복음주의적 성경관에서 우려되는 것은 특별계시를 너무 중시한 나머지 일반계시의 증거들에 대해 너무 방어적인 태도를 취하는 경향이라고 지적한다. 저자는 이 책에서 복음주의와 자유주의의 양 진영을 뛰어넘는 사고의 패러다임을 제시하고자 한다. 즉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성경관을 견지하면서 동시에 성경 외적인 증거와 자료들을 설명해 내기에 적합한 패러다임을 갖자는 제안이다. 저자는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믿음과 학문적 증거 사이의 괴리감은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믿음을 표현하는 우리의 교리적 언어가 효과적이지 못해서 오는 것이라고 언급하면서 실제 성경에 대하 우리가 느끼는 문제들은 성경 자체와 관련이 있기 보다는 성경에 대한 우리의 선이해와 관련이 있다고 지적한다.
저자는 복음주의적 성경관에 영향을 미치는 지난 150년 동안 구약학에서 논의된 중요한 주제들 3가지를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첫째는 구약성경과 고대 근동문학과 성경의 유사성의 문제, 둘째는 구약성경에 나타나는 신학적 다양성의 문제, 셋째는 신약성경 저자들의 구약성경 인용방식의 문제이다. 저자는 이 세 가지 주제들이 저마다 다른 각도에서 복음주의 성경관에 도전하고 있다고 말한다. 저자는 이런 문제들을 접근해 가는 출발점으로 성육신적 성경이해를 명제로 제시한다.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이신 동시에 인간이신 것처럼 성경도 그렇다는 것, 다시 말하면 우리는 예수님을 이해하는 방식으로 성경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말은 구약성경은 고대근동의 문화가운데 생산된 책이므로 성경이 가진 문화적 요소는 우리가 성경의 핵심인 영원한 진리를 발굴하려 할 때 적당히 페기해도 좋을 액세서리가 아니라는 의미이다. 저자는 성경의 인간적 특징들이 성경을 성경이 되게 한다고 말하면서 성경의 인간적 특징들이 성경의 독특함이나 유일성을 사라지게 만든다고 생각하는 선입견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그래서 저자는 성경이 인간의 일상적이고 평범한 언어로 기록되었다는 사실은 하나님이 당시의 문화적 관습을 사용하셔서 자신의 뜻을 드러내신 성육신의 한 예라고 말한다. 나아가 저자는 성경이 주변국가의 문화를 반영하는 것은 계시의 성격상 필수적인 요소라고 강조한다. 왜냐하면 제한된 존재인 사람에게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하나님이 말씀하시고 역사하신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자유주의자들이나 보수주의자들은 서로 다른 성경관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성경에 대한 그들의 전제는 동일한데 그 전제란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평범하거나 인간적이지 않고 특별해야 한다는 생각이라고 말한다.
2장 구약성경과 고대근동 문학
저자는 19세기 아카드어 토판의 발굴로 알려진 바 고대근동의 종교문서들이 구약성경과 매우 유사한 이야기를 많이 담고 있다는 사실이 전통적 성경관을 가진 기독교인들에게 충격적인 이야기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런 사실이 우리의 성경관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복음주의 신학에서는 아직 충분히 논의되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저자는 바벨론의 창세기로 알려진 에누마 엘리쉬, 홍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아트라하시스와 길가메쉬, 그리고 이스라엘 족장 이야기인 누지문서, 율법에 관한 함무라비 법전을 구약성경에 대한 고대근동의 병행문학의 대표적 사례로 든다. 저자는 이런 사례들은 성경이 고대 근동 문화의 영향권 아래서 기록되었음을 보여주는데 그렇다면 어떻게 우리가 성경이 독특한 책이라고 주장할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한다. 이외에 다른 고대근동 문헌들도 구약성경과 매우 유사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저자는 그 사례로 신명기와 닮은 히타이트 종주조약문서, 다윗이야기를 담은 텔 단 비문, 히스기야 이야기를 담은 실로암 터널 비문, 오므리 이야기를 담은 메사 비문을 든다.
저자는 구약성경과 유사한 내용을 담은 이런 고대근동 문헌들은 결국 성경은 정말 하나님의 말씀인가? 라는 질문을 제기한다고 말한다. 저자는 고대근동 문헌이 세상에 알려졌을 때 교회는 그 새로운 증거에 대한 준비다 전혀 되어 있지 않았다고 말한다. 근대 성서학의 주요 쟁점은 성경의 원래 본문을 복원하는데 있었는데 이 문헌의 발견으로 이 본문의 원래 문맥이 어떤 의미를 가졌는가라는 질문이 대두되게 되었다는 것이다. 저자는 발견된 고대근동 문서들이 성경의 유일성 나아가 성경의 계시와 영감의 개념, 또한 성경의 역사적 정확성도 의심하게 만들었고 결국 현대성서학자들은 성경은 순수하게 인간의 책이라고 결론지었다고 말한다. 저자는 현대성서학이 증명한 것은 성경이 고대근동의 규범들과 세계관을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인데 이것은 엄격하게 말한다면 성경 자체에 성경을 특별하게 만드는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미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이것은 전통적인 영감의 개념 즉 하나님이 성경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신다는 믿음과 일치하지 않게 된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성경의 문화적 배경에 대한 최근의 증거를 보고 성경의 본질이 그런 문화적 요소들에 의해 정의된다고 결론지었다. 보수주의자들은 이런 결론에 반대했지만 그들도 자유주의자들이 했던 전제를 암묵적으로 받아들었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그 전제는 성경은 역사적으로 정확해야 하고 그 배경에 있어서 독특해야 한다는 가정이다. 자유주의자들은 역사적 문맥이 기독교 교리에 미치는 영향은 상관없이 오직 역사적인 문맥만을 중시하고 보수주의자들은 교리에 도전을 주는 성경의 역사적 문맥은 아랑곳하지 않고 오로지 교리만을 붙잡고 있는 셈이다. 저자는 결국 문제의 핵심은 최근의 고고학적 발견이 성경을 어떻게 입증하느냐 혹은 반증하느냐가 아니라 그 증거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대해 논쟁하는 양 진영이 모두 암묵적으로 인정하는 일련의 가정들이라고 지적한다.
저자는 믿음은 역사성을 갖기 때문에 성경을 역사적 문맥에서 뽑아내는 것은 자가당착의 모순이므로 고고학이나 문헌학의 성경 외적인 증거들이 우리의 성경 이해에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인가에 대하 진술하려는 우리의 신학적 시도들은 필연적으로 잠정적인 성경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이제 성경 외적인 증거들을 우리는 피할 수 없게 되었고 그 결과 우리는 교회사에 있어서 처음으로 우리의 성경 이해가 얼마나 잠정적이고 불완전한 것인가를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저자는 고대근동 문서와 유사한 내용을 갖는 창세기는 신화인가 역사인가라는 질문을 제기하면서 이 질문이 가진 잘못된 전제는 신화는 고대인들이 스스로 꾸며낸 이야기라는 생각 그리고 성경은 고대근동 문학과 완전히 대조되는 것이라는 생각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고대세계에서 신화란 신화는 인간과 우주의 기원에 대한 고대인들의 세계관을 이야기 형식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저자는 성경은 고대근동의 신화들보다 늦게 기록된 것이므로 고대 이스라엘의 이야기는 처음에는 고대근동의 공통적인 문화를 따라 구전문학의 형태로 만들어졌고 이것이 후대에 문자로 기록되었다고 추정한다. 이 말은 창세기의 이야기는 후대에 꾸며진 이야기가 아니라 당시 고대인의 세계관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창세기가 고대근동의 신화들과 다른 이유는 창세기는 아브라함과 그의 자손들과 언약을 맺으신 하나님, 그들을 애굽에서 민족으로 불러내신 하나님은 그들 주변의 어떤 신과도 같지 않다는 것을 주장하기 때문인데 이것은 당시 위계적인 다신교 세계인 고대근동에서 대단히 도발적이고 급진적인 주장이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저자는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새 민족의 조상으로 선택하고 받아들이셨으며 동시에 아브라함이 속한 고대 세계의 신화적 사고방식도 받아들이셨지만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단순히 신화적 세계에 머물게 하신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고대인의 신화를 변화시켜 이스라엘의 이야기가 참된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도록 하신 것이라고 설명한다. 저자는 창세기는 고대근동의 세계관을 바탕으로 쓰였고, 그러므로 창세기의 이야기들이 이해되었던 당시의 문맥은 현대 과학이 아니라 고대 신화였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그러므로 성경이 현대과학과 부합한다는 것을 증명함으로 성경을 변증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말한다. 창세기는 세계의 기원에 대한 과학적 설명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야훼가 누구이신가를 설명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창세기가 고대신화에 근거하고 있다고 해서 창세기가 영감으로 기록되었다는 측면이 약화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하면서 창세기와 고대 신화와의 연관성은 우리가 감수해야 할 양보조항도 아니고 우리의 진정한 성경이해에 방해도 아니며 오히려 창세기가 당시의 문화에 뿌리내리고 있다는 사실은 하나님이 그분의 백성에게 말씀하신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보여준다고 주장한다. 그것은 하나님은 그 백성들의 세계로 들어가셔서 그들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말씀하시고 역사하신다는 의미이다. 하나님은 낮아지셔서 인간의 문화를 수용하시고 인간들이 존재하는 그곳에서 그들을 만나시는데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자신을 계시하시는 방식이다. 하나님의 말씀이란 표현은 주변 환경과의 단절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본다면 하나님의 말씀은 주변과의 단절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이다. 하나님은 고대의 사고방식과 세계관을 기꺼이 수용하시는데 우리가 그것을 곤란하게 여기면서 그렇게 되면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고 주장한다면 말이 되는가? 저자는 하나님이 인간 문화의 옷을 입는 것을 하나님답지 못하다고 주장하는 견해를 반대하면서 인간의 문화를 수용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시는 방법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누지문서, 히타이트 조약문서, 함무라비법전 아메네모페의 교훈 등은 고대 이스라엘의 관습과 윤리적 기준이 이스라엘 고유의 독특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준다고 말한다. 그런데 오히려 저자는 이스라엘 율법과 지혜문학의 독특성은 다른 문화와의 근본적인 유사성을 바탕으로 할 때 돋보인다고 말한다. 저자는 이스라엘의 율법이 계시인 이유는 그것이 전에 없던 새로운 것이나 율법이 주변 국가들의 윤리에 정반대되는 윤리이기 때문이 아니라 바로 그 율법을 지킴으로서 이스라엘이 신적인 공동체로 만들어져 가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저자는 이스라엘 율법은 그 세부적 내용은 주변국의 법전과 상당한 유사점이 발견되지만 그 동기와 그 역사적 조건에 있어서 그 주변국의 법전과 구분된다고 말한다. 저자는 하나님의 법과 지혜가 고대근동의 문화와 딱 맞아떨어지는 것은 하나님의 법과 지혜가 고대근동의 세계 속에 성육신한 것을 의미한다고 말한다. 출애굽기, 잠언서, 그리고 함무라비 법전, 아메네모페의 교훈들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것은 이 세계에는 하나님이 정해 놓으신 원리가 있고 이 원리가 모든 사람들 속에 각인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율법과 지혜문학의 독특성은 그 내용이 아니라 그들이 율법과 잠언을 통해 참되고 유일하신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다는 이스라엘의 주장에 있다고 말한다.
저자는 메사 비문, 델 단 비문, 실로암 터널 비문은 이스라엘 역사서술에 관한 우리의 이해에 영향을 주지만 성경 자체도 역사문서로서의 성경에 대한 우리의 선이해에 도전을 준다고 말한다. 이 문제가 복음주의의 주된 관심사가 된 것은 현대 성서학이 성경 내외의 증거를 동원하여 성경의 역사성을 공격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자는 역사서술은 사건에 대한 단순한 사실적 보고가 아니라 사건에 대한 해석 작업, 즉 어떤 목적을 위해 사건을 기술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한다. 이는 역사 서술은 역사적 사건과 분리되는 것은 아니지만 역사적 사건들을 합목적적으로 재구성한 것이란 의미이다. 이런 주장에 대한 성경내적 증거로 저자는 동일한 역사적 사건에 대하여 열왕기서와 역대서가 전혀 다른 관점에서 역사 서술을 했다는 사실을 제시한다. 그래서 저자는 모든 역사서술에 해당하는 진리는 성경의 역사서술에도 해당한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저자는 성경의 역사서술이 우리가 생각하는 바람직한 역사서술에 대한 기대와 일치하는가의 여부는 중요한 것이 아니며 중요한 것은 성경이 생성된 역사적인 배경을 통해 성경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최선을 다해 관찰함으로써 성경에 대한 우리의 잘못된 기대들을 고쳐나가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결국 저자가 강조하려는 것은 역사서술은 언제나 특정한 목적을 위해 역사적 사건을 재구성하는 작업이며 성경에서 어느 정도로 역사적 재구성이 이루어졌으며 그 목적이 무엇인가 하는 문제는 계속 탐구되어야 할 주제라는 것이다.
저자는 고대근동학적 발견을 통해 복음주의가 배워야 할 점을 다음 세 가지로 요약한다. 첫째 오늘날의 복음주의 성경관은 반드시 구약성경을 고대근동의 문서로 인식하고 그 사실에 비추어 성경관을 조정해 나가야 한다. 성경의 성육신적 차원을 숙고하지 않는 성경관은 발견된 증거들에 비추어 볼 때 부적합한 것이 된다. 둘째, 성육신적 차원에서 형성된 성경관은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성경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에 대한 함의를 가져야 한다. 이 말은 만약 구약성경이 고대 문화의 산물이라면 그것이 전혀 다른 문화에 살고 있는 우리를 규제하는 규범으로 작용할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이다. 저자는 구약성경의 규범성과 성경의 성육신적 차원을 떼어서 생각하면 안 된다고 강조하면서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삶의 규범이 시대를 초월하여 우리의 삶의 규범이 된다는 주장은 충분치 않다고 말한다. 결국 저자는 구약성경은 우리가 따라야 할 규칙을 기록한 책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하신 더 위대한 이야기의 일부분이라고 말한다. 셋째 성육신적 요소는 오늘까지도 지속된다고 말한다. 이 말은 정경의 미완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이 그토록 철저하게 문화적 옷을 입고 있다면 우리의 신학적 사고도 우리 문화의 옷을 입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 필요는 없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저자는 성경은 시간과 상황을 초월하여 우리 세계에 적용해야 하는 추상적 안내서가 아니라 오히려 복음이 문화적 측면과 절대로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말한다. 이 말은 복음의 의미가 문화적 시류에 의해 변한다는 것이 아니라 복음이 그 시대의 세계와 어떻게 관계되는지를 고민하면서 복음의 메시지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3장 구약성경과 신학적 다양성
저자는 성경해석에 관한 유대인의 주요 저작인 미슈나, 탈무드, 미드라쉬를 보면 유대인들은 성경을 해석할 때 성경 안의 갈등과 모호성을 해결하는데 상당한 에너지를 쏟아 붓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그들은 문제들을 깔끔하게 일소시키기 보다는 오히려 창조적인 에너지를 가지고 성경과 대화하는 것 그리고 그런 대화를 장려하였다고 말한다. 그런데 현대복음주의의 성경해석의 역사를 보면 성경 내의 갈등과 모호성에 대하 강한 불안감을 찾아볼 수 있는데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성경은 어떤 갈등도 내포해서는 안 된다는 전제라고 지적한다. 그래서 현대복음주의는 성경에 갈등이나 모순처럼 보이는 것에 대해서는 직접적인 해결을 시도하거나 아니며 그 문제 자체를 회피하였다는 것인데 이것은 유대교와 기독교가 성경의 다양성에 대한 입장에 있어서 서로 다름을 보여준다고 말한다. 성경의 다양성이란 구약성경 안에 동일한 주제에 대해 다른 관점들이나 의견들이 존재함을 의미하는데 성서에 대한 비평학적 접근 방법이나 복음주의적 접근 방법 모두 공유하고 있는 전제는 사실 관계나 신학적 관점에서 다양성은 하나님의 말씀과 공존할 수 없다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성경은 이러이러 해야만 한다는 잘못된 전제가 비평학적 관점이나 복음주의적 관점 뒤에 숨어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저자는 성경에 대한 복음주의 교리는 구약성경에 뚜렷이 나타나는 다양성이라는 현상을 인정해야 하며 이 다양성이 성경 자체의 중요한 역동성이라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다양성은 하나님의 말씀의 특징을 나타내는 것이며 구약성경 문학 안에 면면히 엮어진 핵심요소임을 인정하면서 다양성이 혼돈이나 오류를 암시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한 주제에 관해 서로 다른 의견이 없어야 한다는 사고에 속아 넘어가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어떤 책이 다양성을 핵심요소로 기록되었다면 그 책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지어진 것이 아니라는 유혹에 넘어가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구약성경의 다양성을 존중하는 것은 하나님이 구약성경을 우리에게 주신 모습 그대로를 인정하는 것이라는 말이다. 성육신 유비를 사용한다면 하나님이 개입하시는 인간 드라마가 다양하므로 성경이 그 다양성을 반영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구약성경의 다양성이 일관성의 결여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구약성경의 부분들 간에는 일관성이 있지만 그러나 그 일관성은 단순한 어구나 명제의 수준을 넘어서며 그 일관성은 이스라엘과 세상의 드라마가 전개되는 과정 속에서 찾아진다고 말한다. 저자는 다양성을 받아들이는 것은 오히려 구약성경을 정직하고 진지하게 읽는 것이며 그 다양성이 구약성경에 있어 그렇게 지배적인 현상이라면 그 다양성을 단지 문제로 인식하고 회피하거나 방어하는 것을 옳지 않다고 지적한다. 저자는 하나님이 왜 그런 식으로 계시하셨는지를 물어야 하며, 물론 이 질문에 대한 궁극적인 정답은 없지만 그 다양성이 외부로부터 성경에 부여된 것이 아니며 최근의 세대가 처음으로 그것을 발견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다양성은 성경 자체의 특징이며 이천년 유대교외 기독교 해석 역사가 이를 증거해 준다는 것이다.
저자는 현대 복음주의는 성경의 증거를 다루는데 방어적이고 변증적인 경향이 있는데 그런 태도는 다양성은 오류의 증거이며 그러므로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이 아니라는 근대주의의 세계관을 수용한 결과라고 지적한다. 기독교인들이 복음주의적 성경관을 유지하면서도 동시에 성경 자체가 제기하는 질문들에 정직하게 대답하는 것을 방해하는 것이 바로 근대주의적 세계관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성경의 다양성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것은 성경에는 피상적은 통일성이 없다는 것이며 성경의 여러 부분들은 서로가 긴장관계에 있다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물어야 할 것은 왜 그런 긴장들이 존재하며 그것들이 성경의 본질에 대해 나아가 하나님의 본성에 대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무엇인가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그런 긴장들이 우리에게 보여준 한 가지는 하나님이 얼마나 역사에 철저히 참여하시는가 하는 점이며 따라서 이스라엘 이야기의 역사적 측면과 하나님이 그 역사에 참여하셨다는 사실을 심각하게 받아들인다면 복잡한 역사의 구조가 구약성경의 구서구석에 그대로 반영되어 있음을 이해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역사적 배경, 저술목적, 장르에 있어 나타나는 구약성경의 다양성을 인정한다면 그 내용의 다양성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저자는 성경은 하나님으로부터 왔으므로 성경만은 예외이며 성경에는 일관성과 통일성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이런 주장은 구약성경과 그곳에 계시된 하나님을 본래의 문맥, 즉 그들이 배경으로 삼았던 그 세계에서 분리하려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하나님은 자신을 이해시키기 위하여 자신의 계시의 대상인 사람들의 관습과 조건들로 몸을 낮추어 적응하셨고 그러므로 인간 역사의 복잡한 드라마와 유리될 수 없는 하나님의 말씀은 인간 역사의 극적인 복잡성을 그대로 반영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그러나 기독교인들이 성경의 통일성에 대해 의미있게 말할 수 없는 것은 결코 아니라고 하면서 성경의 통일성은 문맥과 유리된 몇몇 구절이나 단어들의 표면적 의미에 근거한 피상적 통일성이 아니라 보다 섬세하며 동시에 보다 깊은 성격의 것이며 궁극적으로 살아계신 말씀인 그리스도 그분에게서 찾아져야 하는 통일성이라고 강조한다. 이것은 구약성경의 모든 구절에서 예수를 찾는 그런 피상적인 통일성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성경 사이의 유비에 근거한 보다 넓고 근본적인 신학적 고백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성경이 글로 남겨진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그리스도는 인간의 형상을 입은 하나님의 말씀이며 이런 신앙고백은 글로 쓰인 말씀은 성육신한 말씀에 대해 증거한다는 사실을 암시한다고 주장한다. 글로 쓰인 말씀에 통일성을 주는 것은 성경본문 상의 단어들이 아니라 성경의 모든 부분의 합보다 더욱 크신 성육신한 말씀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경을 포함한 이 세상의 모든 것이 창조되었고 그분 안에서 이스라엘의 이야기가 절정에 이르렀으므로 성경은 그리스도에 의해 그리스도를 증거하도록 의도된 책이라고 말한다. 비록 성경이 그분에 대해 증거하는 부분 자신의 말씀이지만 그분은 성경보다 크신 분이며 그 너머에 존재하시면 그것과 구별되는 분이시라는 것이다. 저자는 그러므로 기록된 말씀이 궁극적 통일성을 찾는 것은 육화된 말씀 즉 그분 안에서이며 결국 그리스도는 이스라엘 이야기의 지향점이며 성경 전체가 그리스도를 증거한다고 말한다. 저자는 이것이 모든 신학이론의 출발점이며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성경의 일관성을 발견하며 그리스도는 우리가 성경내의 갈등을 인정하고 주목하는 적절한 출발점이 된다고 강조한다. 하나님이 어떻게 인간의 복잡한 역사 속에 들어오셔서 그의 백성을 구원하셨는지에 대한 궁극적인 증거가 그리스도이며 그분은 멀리 계시지 않고 우리 중 하나가 되셨는데 이것은 육화된 그리스도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성경에도 해당된다는 것이다. 성경의 다양성과 그로인해 생기는 갈등은 하나님의 계시를 입증하는 것이지 계시에 손상을 주는 것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4장 신약성경 저자들의 구약해석
저자는 많은 기독교인들이 신약 저자들의 구약 인용방식에 문제점을 느끼는 이유는 그들의 인용방식이 우리의 상식적 직관에 위배되는, 다시 말하면 신약성경 저자들은 구약성경의 문맥과 저자의 의도를 존중하고 있는 것 같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저자는 우리의 눈에는 그다지 설득력이 없어 보이는 누가복음 29장 39-40절에 나오는 예수님의 성경 인용방식이 당시 청중들에게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던 것을 보는데 이것은 예수님의 구약 해석 반식이 당시의 관습과 일치하였다는 증거라고 강조한다. 저자는 그러므로 우리는 신약 저자들의 구약해석에 대해 이해하기 위해 그 시대의 해석학적 습관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저자는 복음주의 학자들은 신약성경 저자의 구약해석 방식을 변호하려는 여러 가지 설명을 시도했지만 그다지 설득력이 없다고 비판한다. 저자는 신약성경 저자들은 구약성경 본래의 문맥과 본 저자의 의도와 일치하려는 노력을 기울이며 구약성경을 해석한 것이 아니라 그들이 보여준 해석학적 태도는 그리스도의 초림에 비추어서 구약성경의 의미를 설명한 것이며 이것은 신약성경 저자들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당시의 다른 해석가들도 비슷한 방법으로 해석했다는 점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런데 복음주의 학자들의 문제점은 신약성경 저자들이 살았던 해석학적 세계를 배경으로 하지 않고 신약성경에 접근했다는 점이라고 지적한다.
저자는 오늘날 어떤 문서를 연구하는데 복음주의자를 포함한 현대 학자들 사이의 공통적 출발점은 그 문서의 본래적 문맥에 대한 이해인데, 이런 역사적 문맥을 존중하는 해석방법에 종종 붙여지는 이름이 문법적-역사적 접근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저자는 이런 접근 방법이 일반적인 경우에는 어떤 문서를 이해하는데 건전한 방법이지만 이 방법을 엄격하게 사도들의 해석학에 적용하면 우리는 곧 신학적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고 말한다. 본래적 문맥이 중요하다는 해석학적 원리는 문법과 역사에 국한하여 적용해서는 안 되며 신약성경 저자들의 해석학에도 적용하여, 신약저자들이 구약성경을 다른 방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그들의 성경해석의 배경이 되었던 제2성전기의 해석학적 문맥을 이해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제2성전기의 성경해석가들이 성경에 접근하는 방법은 근대 해석가들의 기준과는 매우 다르고 그들은 본래 인간저자가 의도한 의미를 재생산하는데는 관심이 없었다고 말한다. 신약성경의 문서들은 모두 당시의 해석 전통을 증거하는데 이는 신약성경에는 기록된 성경뿐 아니라 그것에 대한 해석전통도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신약성경 저자들의 구약성경 해석 방법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우리의 해석학적 기준을가지고 그들을 판단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우리에게 이상하게 여겨지는 해석들은 신약성경 저자들이 살았던 시대의 해석학적 문맥을 고려하면 쉽게 설명될 수 있으며 신약성경과 그것의 역사적 배경인 제2성전기를 철저하게 분리한다고 해서 신약성경의 독특성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저자는 신약성경 저자들의 성경해석 방법과 그들이 수용한 해석전통들은 분명 신약성경 저자들이 그 당시 문화의 일원이었음을 보여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도들의 해석학을 독특하게 만들어주는 어떤 것이 있다면 그것은 신약성경 저자들이 왜 구약성경을 제2성전기의 해석방법과 전통을 통해 접근하였는가를 물을 때 비로소 파악될 수 있다고 말한다. 저자는 신약저자들의 구약성경 해석의 이면의 동기는 이 땅에 오셔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하나님, 즉 나사렛 예수를 믿는 그들의 신앙이었으며 사도들의 해석을 제2성전기의 해석전통과 구별시키는 것은 종말이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었다는 그들의 확신이었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저자는 사도들의 해석학은 죽으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성령을 통한 교제에 근거하여 구약성경 전체를 그리스도를 절정으로 하여 해석한 것이었으며 구약성경을 문맥에 따라 해석하여 그리스도가 주라는 결론에 도달한 것이 아니라 이미 진리로 확신하고 있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사건에서 출발하여 그것에 기초하여 구약성경을 새롭게 읽은 것이라고 주장한다. 신약성경 저자들은 구약성경을 탈문맥화시켜 자의적으로 읽은 것이 아니라 새로운 문맥, 즉 이스라엘의 역사가 지향하는 최종적인 목표를 반영하는 그런 문맥에 위치시켰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 종말론적 해석학을 설명하기 위하여 그리스도목적적(christotelic)이라는 용어를 즐겨 사용한다. 저자는 기독론적 혹은 그리스도중심적이라는 용어보다 이 말을 선호하는데 그 이유는 기독론적이나 그리스도중심적이라는 말은 구약성경의 모든 구절을 그리스도에 관해 말한다는 관점을 동의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구약성경을 그리스도목적적으로 읽는 것은 그리스도가 구약성경 이야기가 지향하는 바, 즉 이야기의 종착점이라는 사실을 주시하고 구약성경을 읽는 것이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구약성경은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구약성경은 구약 이야기의 완성인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로부터 유리되어 이해되거나 해석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장구한 세월에 걸쳐 편집된 구약 이야기는 그리스도라는 목표를 향해 가고 있는데 사도들은 이런 구약 이야기의 흐름을 보여주려고 노력했다고 말한다. 전체로서의 구약성경 특히 굵직한 주제들을 중심으로 흐르는 구약성경은 그리스도 안에서 그 목적에 이르고 완성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저자는 구약성경의 텔로스 즉 목표를 하나님이 자신의 언약을 완성시키기로 작정한 그 사건 즉 그리스도 사건에서 찾는 것은 사도적 권위에 기초한 것이므로 구약성경을 기독교적으로 해석한다는 것은 이런 종말론적 읽기이며 그리스도목적적 읽기인데 사도들은 바로 이런 읽기의 본을 보였다고 강조한다. 저자는 사도들의 해석학의 다른 측면은 구약성경의 이야기가 그리스도 안에서 뿐 아니라 하나님의 새 백성 공동체 안에서도 성취되었다는 사실에 근거한다고 말한다. 인류 역사 전체에 중심적인 사건인 그리스도 사건은 하나님의 새 백성의 형성으로 이어지며 이 백성의 출현으로 하나님의 새 세계가 도래했다는 것이다. 저자는 그러므로 사도들의 해석학에는 그리스도목적적 차원뿐만 아니라 교회목적적 차원도 있으며 교회목적적 차원은 그리스도목적적 차원의 연장성상에 있다고 말한다. 그리스도가 아브라함 이야기를 먼저 성취하였기 때문에 아브라함 이야기는 교회 안에서 그 텔로스를 발견하게 되는 것이며 그리스도가 아브라함의 씨이기 때문에 우리도 아브라함의 씨가 되었다는 것이다. 저자는 그러나 그리스도목적적 차원과 교회목적적 차원이 신약저자들의 구약성경에 대한 해석을 완전히 설명하는 것은 아니며 사도들이 구약성경을 다룬 방법에는 많은 다양성이 있음을 인정해야 하지만 사도들의 해석학적 전체 윤곽은 그들의 역사적 배경인 제2성전기를 염두에 둠과 동시에 예수가 구약성경의 텔로스라는 근본적인 확신으로 가장 잘 설명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저자는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성경을 해석해야 하는가? 라는 질문을 제기한다. 지금까지 살펴본 신약저자들의 구약성경 해석이 오늘날 교회에서 구약성경 해석에 어떤 역할을 하는 것인가? 저자는 여기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신약성경 저자들의 구약성경 해석 방법은 그들의 독특한 사도적 권위와는 상관없는 그 시대의 산물이라는 점이며 그들의 해석학적 방법이나 그들이 받아들인 해석 전통 모두가 제2성전기 다른 문서들에도 공통된다는 점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그렇다면 우리는 사도들의 구약성경 해석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물으면서 해석학적 목적과 해석학적 방법을 구분할 것을 제안한다. 저자는 사도들의 해석학적 목적인 그리스도 사건은 우리의 해석학적 목적이 되어야 하는데 이는 우리도 그들과 동일한 종말론적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 말은 우리가 구약을 문법적-역사적 읽기에 국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문법적-역사적 읽기가 독자들을 그리스도목적적 읽기로 인도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구약을 그리스도목적적으로 읽는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 구약 이야기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물으며 읽는 것이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부활후의 종말론적 시기에 살고 있는 우리의 특권적 입장을 구약성경 읽기에 반드시 반영해야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저자는 구약성경을 본래적 문맥에서만 읽는 것은 구약성경 이해가 종말이전의 시간에 머물러 있는 것이며 사도들이 본으로 보여준 구약읽기에 대한 기독교적 이해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저자는 우리는 사도들이 살았던 제2성전기에 살고 있지 않기 때문에 그 당시의 해석방식이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것은 아니라고 인정한다. 결론적으로 저자의 입장은 우리가 사도들의 해석학적 목적은 본받아야 하지만 해석학적 방법까지 본받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문법적-역사적 주해를 궁극적인 기준으로 삼을 때 우리는 사도들의 그리스도목적적 해석학과 거리를 두어야만 하거나 아니면 사도들의 해석학이 구약성경의 역사적-문법적 의미에 기초하고 있다고 주장해야 하는 딜레마가 있다고 지적한다. 그러면서 이 딜레마를 극복하는 길은 우리도 신약성경의 저자들처럼 목적을 먼저 생각하고 그 목적에 부응하는 방법들이 존재한다고 인정하는 것이라고 제안한다. 저자의 강조점은 사도적 해석의 본질은 방법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라는 결정적 사건이 먼저 있었고 이 사건은 신약저자들로 하여금 구약을 새로운 관점에서 보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사도들의 구약해석을 보면 기독교의 성경해석에는 단지 구약성경의 역사-문법적 의미를 발견하는 것 이상이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며 다시 말하면 신약저자들은 그리스도에 심취한 나머지 그리스도 사건 이전의 역사에 대한 이해를 그리스도 사건이 일어난 현재의 권위 아래 둔 것이며 그래서 하나님의 계획과 의도 아래 있었지만 구약저자들에게는 숨겨진 그것을 신약저자들은 볼 수 있었다고 말한다.
저자는 사도들의 해석활동이 그들이 살았던 시대의 산물이라는 사실은 하나님이 복음을 추상적인 교리로 주신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시대적 문맥 안에서 주셨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하며 하나님의 계시는 필연적으로 인간의 문맥을 전제한다고 강조한다. 하나님은 인간의 역사 안에서 말씀하시고 행동하시므로 하나님의 계시는 특정한 시대와 장소에서 그 시대와 장소의 모든 문화적 내용을 입고 표현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저자는 우리는 구약성경과 복음에 대한 이해가 특정시대와 장소의 문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성경저자들의 역사적 문맥이 하나님의 계시의 형태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면 마찬가지로 우리의 역사적 문맥도 성경해석에 결정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성경해석을 그것의 장구한 역사를 통해 상고하면 할수록 성경해석에는 본문의 의미를 발견하는 것 이상이 있음을 확신하게 된다고 하면서 비록 구약성경을 그리스도목적적으로 숙고해야함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표현하는 방법은 다양할 수 있다고 인정한다. 저자는 이런 이유에서 성경해석은 과학의 산물이라기보다는 예술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으며 따라서 성경해석에는 창조성, 직관, 대담성, 사명감이 필요하며 이 모든 것은 그리스도가 주님이시라는 선포에 대한 헌신에 기초한다고 말한다. 저자는 나아가 성경 해석은 개인의 작업이라기보다 공동체적 작업이므로 성경해석은 한 개인이 자신을 공동체의 일원으로 인식하는데서 시작한다고 말한다. 저자는 공동체는 역사적으로 아주 오랜 시대까지를 아우르며 오늘날 세계의 많은 다른 문화들을 포함하므로 우리는 해석의 섬들이 아니며 역사상 교회의 증거와 우리 시대의 교회의 지혜에 의존하며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성령의 직접적 간섭을 통해 이루어진다고 강조한다. 성경해석은 단순히 개인의 작업이 아니라 가장 넓은 의미에서 하나님의 가족에 참여하는 것에서 우러나온다는 것이다.
5장 큰 그림 보기
저자는 성육신의 유비 안에서 생각한다는 것은 우리의 성경에 대한 기대들이 자신의 문화적 편견이 아니라 성경 자체가 말하는 것과 상호 대화하는 가운데 형성되어야 함을 의미한다고 말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성경을 그것이 쓰인 문화로부터 분리시킨 채 이해하려고 할 위험, 다시 말해 비성육신적인 성경 이해를 가지고 성경에 접근하게 될 위험이 있다고 지적한다. 저자는 우리는 성경이 인간의 언어라는 보다 구체적이고 통제 가능한 수단으로 쓰였다 해서 그것이 덜 신비로운 것이라 생각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우리는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우리의 신앙고백을 표현하는 방법들이나 용어들이 어디까지나 잠정적인 것임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믿음으로 교회는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고백하지만 그 말이 실제로 어떤 의미이며 어떤 교리적 언어가 그 의미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지를 고민하는 일은 각 세대가 속한 기독교인들의 몫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성경의 독특성은 인간의 문화를 멀리함으로써 생겨지는 것이 아니라 성경이 하나님이 성육신적으로 말씀하신 유일한 책이라는 믿음 안에서 생겨나는 것이며 그리스도와 마찬가지로 성경도 신성과 인성의 결합이라는 사실이 성경을 다른 모든 것과 구별하게 만든다고 강조한다.
저자는 하나님이 기꺼이 그리고 열심을 가지고 인간의 역사에 개입하신다는 사실을 우리는 숙고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하며 만약 하나님도 성경을 통해 자신을 계시하실 때 특정한 인간의 상황들 가운데 계시하신다면 오늘날 우리들의 신학적 발언들에도 문화적인 한계가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저자는 모든 진리가 같고 성경은 더 이상 신앙의 표준이 아니라는 문화상대주의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특정한 역사와 문화적 순간을 사는 인간들이라면 우리의 모든 신학적 작업은 시간 제한적이고 잠정적이고 더 나아가 타락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우리의 문화적 문맥을 모두 벗기고 성경을 해석하도록 하는 그런 절대적인 참고 점은 존재하지 않으므로 우리는 문화적 문맥을 벗어던지거나 문화의 노예가 되는 두 극단을 지양해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우리가 시공간의 문화적 존재라는 사실과 모든 문화를 그리스도의 복음 아래 복종시키는 선지자적 존재라는 사실 사이의 긴장을 헤쳐 가는 방법을 배워야 하는데 그것은 우리가 세상을 멀리함으로써가 아니라 하나님이 창조하신 그 세계, 우리를 살게 하신 그 세상에 참여함으로써 이 사명을 이룰 수 있다고 말한다. 저자는 우리의 신학함은 필연적으로 한계를 내포하고 잠정적이기 때문에 우리는 다른 문화의 기독교인들에게 귀를 기울이는 열린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저자는 성육신 유비는 하나인 동시에 여러 측면을 가진 복음을 다양하고 풍성하게 표현하는 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임을 설명해 준다고 말한다. 저자는 신학적 다양성이 존재한다는 것은 일관성이나 신뢰성이 결여되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으며 우리가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 것은 성경 안에 다양성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성경을 주신 하나님을 우리가 신뢰하기 때문이라고 강조한다. 저자는 성경이 이러이러 해야 한다는 우리의 선입견과 전제가 아니라 우리에게 성경을 주신 하나님을 신뢰할 때 과거와 현재에서 하나님이 그의 백성들의 삶 속에 얼마나 깊이 개입하시는지를 깨닫게 된다고 말한다. 성경에는 역동성이 있고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의 삶과 교회의 삶에 역동적으로 살아 역사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우리가 신약저자들로부터 본받아야 할 것은 그리스도가 구약 이야기의 텔로스라는 확신이라고 강조한다. 그리스도는 기독교의 구약해석에 있어 절대적인 초점이며 전체로서의 구약성경의 지향점은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되므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구약성경을 읽으며 그것이 어떻게 일관성을 가지고 신뢰할 만하며, 어떻게 서로 상이한 부분들이 연결되는지를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구약성경의 일관성은 구약 안의 흩어진 파편들을 긁어모아 억지로 맞춘다고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갈등들을 그대로 인정하고 성육신 유비가 우리가 구약성경을 이해하는데 어떤 의미가 있는가는 질문하는 가운데 얻어진다고 말한다. 저자는 교회를 위한 은혜의 수단이라는 성경의 일차적인 목적은 성경해석의 가능성을 닫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성경해석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는데 이는 성경해석에 있어 우리의 임무는 불변하는 복음을 다른 문맥에서 다른 방식으로 표현한 메시지를 존중하고 나아가 그런 다양성을 염두에 두고 복음을 전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우리가 성경을 공부하는 이유는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완성하신 그의 나라에서 그의 동역자로 일하기 위함이므로 언제나 우리의 성경공부의 동기를 살피는데 게으르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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