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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소고

출애굽 역사와 예수 그리스도

출애굽 역사와 예수 그리스도

2015-04-13 15:28:45


출애굽의 역사

 

   본격적인 이스라엘 역사는 출애굽으로 부터 시작한다. 그것은 이스라엘이 출애굽을 통해 민족적 단위를 형성하였기 때문만이 아니라 이스라엘이 경험한 출애굽 역사의 중요성 때문이다. 출애굽 역사는 단순히 이스라엘이 노예 상태에서 해방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언약 백성으로서 그 정체성이 확립된 사건이다.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건지신 하나님의 행동은 대단히 언약적인 행동이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고통중에 부르짖을 때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을 기억하셨다. 그러므로 출애굽 사건은 우연한 사건이 아니라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의 언약적 행동이었다. 이뿐만 아니라 출애굽 사건의 보다 중요한 목적은 출애굽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과 하나님이 맺은 언약에 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기 위하여 그들을 애굽에서 건져내신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이 시내산에서 이스라엘과 맺은 언약도 우연히 맺은 것이 아니라 그 언약의 뿌리는 아브라함에게 거술러 올라간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면서 그 언약이 아브라함 대대후손 사이의 영원한 언약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시내산 언약은 바로 이 약속에 근거하여 이루어진 것이다. 그러니까 출애굽 사건도, 시내산 언약도 모두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의 언약적 행동이리고 볼 수 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시내산 언약을 맺기전에 자신이 어떻게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원하여 인도하여 내었는지를 이스라엘이 똑똑히 경험하였음을 말씀하신다. 이것은 하나님과 이스라엘이 맺는 언약이 하나님의 선행적인 언약 행동이 기초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이미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건지셨으며 이러한 하나님의 선행적인 언약 행동에 기초하여 이스라엘에게 언약적 요구를 하고 계신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언약을 지킬 것을 요구하신다. 그리고 이러한 언약의 목적이 무엇인지도 분명히 하시는데 그것은 이스라엘이 열방 중에서 하나님의 특별한 소유가 되는 것이며 제사장 나라가 되고 거룩한 백성이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어서 십계명이 주어지는데 십계명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언약을 지키는 것이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제시한 것이다. 즉 이스라엘이 십계명을 지키는 것이 바로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고 언약을 지키는 것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스라엘이 언약을 지킬 때 언약의 목적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언약을 맺은 직후 부터 이스라엘은 십계명을 어김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고 언약을 지키지 않았다. 그래서 약속의 땅을 눈 앞에 두고도 이스라엘은 40년을 광야에서 유리 방황하는 험악한 세월을 보내게 된다. 물론 이 세월은 불순종한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였지만 동시에 약속의 땅에 들어갈 출애굽 2세대가 성장하기를 기디리는 훈련의 시간이기도 했다. 그래서 모세는 비록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했지만 출애굽 2세대를 앞에 두고 시내산 언약의 의미를 상세하게 다시 설명하면서 언약을 지킬 것을 간곡하게 당부한다. 출애굽 1세대의 실패는 약속의 땅은 비록 약속된 것이지만 순종이 없이는 받을 수 없다는 엄중한 진리를 보여준다. 하나님은 언제나 언약에 신실하시지만 문제는 언제나 언약의 상대방인 이스라엘이었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은 일방적이 아니라 언제나 쌍방적이다. 하나님이 신실하시다고 해서 그 약속이 자동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약속은 언제나 이스라엘의 신실함을 요구하며 그 신실함이 없이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신실하심은 언제나 이스라엘과 관계된 언약적 신실하심이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

 

   약속의 땅에 들어간 이스라엘의 이후의 역사는 이스라엘의 철저한 실패를 보여준 역사였다. 결국 그들은 약속의 땅에 쫒겨나게 되는데 이는 땅의 약속은 언약에 신실함으로써만 누릴 수 있는 것임을 보여준다. 땅은 그 자체로 의미를 갖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이 언약에 신실하게 살아가는 공간으로서 의미를 갖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이 언약을 배반할 때 그 땅은 이스라엘을 토하여 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불순종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언제나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이시다. 그래서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다고 말하는 것이다. 복음에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다는 말은 복음에 하나님의 언약적 신실하심이 나타났다는 의미이다. 그러니까 복음은 하나님의 언약적 행동인 것이다. 구약의 출애굽 사건이 그러했듯이 신약의 복음도 하나님의 언약적 행동이다. 복음은 당연히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로 요약된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 바로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의 언약적 행동이란 말이 된다. 

 

  그렇다면 왜 복음이 하나님의 언약적 행동이 되는 것인가? 그것은 언약에  불순종한 이스라엘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신 하나님의 언약적 행동이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의 언약적 신실함이 없이는 하나님과 이스라엘이 맺은 언약의 목적이 이루어질 수 없다. 그러므로 언약의 목적이 이루어지기 위하여 이스라엘의 불순종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안된다. 그래서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불순종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준비하신 것이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는 이스라엘을 대표하여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나님께 순종하신 것이다.  그리스도는 불순종한 이스라엘을 대신하여 순종하심으로 언약을 지키신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이스라엘의 불순종의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되었다. 그의 죽음은 이스라엘의 죽음이었고 그의 부활도 이스라엘의 부활이었으며 그의 순종 역시 이스라엘의 순종이 되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죽음이 바로 기쁜 소식, 즉 복음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죽음은 이스라엘 뿐 아니라 온 인류의 불순종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한 사건이다. 이스라엘을 통하여 이루시려던 하나님의 뜻이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하여 이루어진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죽음이 복음의 유일한 요소는 아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죽음은 부활이 없이는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부활은 인류를 짓누르던 사망의 권세가 깨어진 것을 의미하며 사단의 종노롯을 하던 사람들이 해방된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로 요약되는 복음은 새로운 출애굽의 소식인 것이다. 이스라엘을 애굽의 노예에서 해방시키신 하나님은 이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세상을 사망의 권세와 사단의 종노릇한데서 해방시키신 것이다. 그러니까 그리스도의 복음은 출애굽의 복음이요 해방의 복음인 것이다. 하나님이 구약의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해방시키셨듯이 이제 신약의 이스라엘을 사단의 종살이에서 해방시키신 것이 바로 복음의 사건인 것이다. 그리고 이 사건은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의 언약적 행동이신 것이다. 그래서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다고 말한다. 옛 언약이 하나님의 출애굽 사건에 기초하고 있듯이 새 언약은 그리스도의 출애굽 사건에 기초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복음에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다는 것으로 끝이 아니라 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는 사람들에게 믿음을 요구한다. 그래서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에서 믿음에 이르게 한다고 말한 것이다. 하나님의 언약적 행동인 복음은 사람의 언약적 반응인 믿음을 요구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신 하나님의 언약적 행동에 신실하게 반응하는 것이 바로 믿음이고 이것이 바로 새언약이다. 이런 점에서 새언약이나 옛언약이나 본질적인 성격은 동일하다. 구약의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언약적 행동인 출애굽 역사에 신실함으로 반응해야 했듯이 신약의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언약적 행동인 복음 역사에 신실하게 반응해야만 한다. 그 신실한 반응이 바로 믿음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복음을 믿는다 혹은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바로 복음과 예수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언약적 신실하심을 받아들이고 신뢰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자신을 사단의 종살이에서 해방시키셨으며 사망의 권세에서 풀어주셨음을 믿는 것이다. 이스라엘이 출애굽하여 시내산에서 언약을 맺음으로 언약백성으로서 정체성을 갖게된 것과 마찬가지로 이 믿음으로 우리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우신 세언약에 참여하게 되는 것이며 새언약의 백성이 되고 새 이스라엘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출애굽의 역사가 보여주듯이 출애굽하고 시내산에서 언약을 맺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제 중요한 것은 언약을 지키는 일이 남았다는 점이다. 이스라엘이 언약 백성이 되고 약속의 땅을 눈 앞에 두고 있었지만 언약을 지키지 않음으로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였듯이 우리가 새언약에 참여한 백성이 되었다는 것이 자동적으로 하나님의 궁극적인 축복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새언약에 참여하였다면 이제 믿음을 따라서 삶으로서 언약을 지키는 일이 남아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의 믿음의 내용이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로 사단의 종살이와 사망의 권세에서 해방된 것이라면 우리의 믿음의 삶이란  해방된 자로서의 실제를 드러내는 삶이 되어야 할 것이다. 사망에 매인 자 처럼, 사단의 종인 것 처럼  세상을 따라서 살아서는 안되는 것이다. 그리스도 사건으로 말미암아 출애굽하였다면 이제 우리는 광야에서 성령의 인도하심에 순종하여 약속의 땅을 바라보고 걸어가야 한다. 그 약속의 땅은 성부 하나님의 심판으로 우리에게 최종적으로 주어질 것이다. 그러나 그 땅은 약속되었지만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니라 언약에 신실한 자들의 것이다. 출애굽하여  새언약에 참여한 자들만이 그리고 광야같은 이 세상을 성령에 순종하여 걸어가는 자들만이 그리고 성부의 심판으로 이루어질 약속의 땅을 기다리는 자들만이, 요약하여 말한다면 오직 믿음으로 사는 자들만이 그 땅을 상속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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