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전도와 사회운동- 로날드 사이더
2014-06-28 22:56:46
8장 왜 우리는 사회운동을 해야 하나?
구제, 개발, 구조변화에 대한 성경적 근거
a. 가난한 자들, 약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특별한 관심
b. 세상과 사람들 돌보라는 창조명령
c. 사람은 영과 육을 가진 공동체적 존재로 지어짐
d. 죄는 사회구조적 악으로 나타남
e. 개인의 변화가 모든 문제를 해결하지 못함
f. 그리스도는 말씀선포와 육체적 돌봄을 모두 중시함
g. 구원은 죄의 대속만이 아니라 악한 세력의 정복임
h. 구약은 개인적인 죄만큼 사회적인 죄도 고발함
I. 신약은 세상(cosmos)를 구조적 악의 개념으로 묘사
2. 구제, 개발만 아니라 사회구조 변화가 필요한 이유
a. 구제, 개발보다 더 효과적이고 근본적이다.
b. 구제, 개발보다 도덕적으로 더 탁월하다.(열등감, 의존감 배제)
c. 구제, 개발보다 덜 임의적이다.
d. 악한 사회구조는 사람의 존엄, 자유를 억압함
3. 예수 그리스도와 정치
a. 예수 그리스도의 정치적 선택은 사회의 변화를 불러일으킬 새로운 공동체를 형성하는 것이었다.
b.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나라 가르침에서 사회적 구조적 악에 대항하는 것은 내적, 영적 주제만큼이나 중요한 부분이었다.
c. 예수 그리스도의 메시아적 임무가 정치적이지 않다고 하면 하나님나라의 복음을 영적 측면에만 국한하는 잘못을 저지르는 것이다.
d. 예수 그리스도의 대사명은 삶의 전 영역을 복종하는 제자를 만들라는 것이다. 이것은 예배나 기도만큼, 정치 경제적인 부분을 복종시킨다는 의미이다.
10장 분리될 수 없는 협력
복음전도가 사회운동과 분리되지 않는 이유
a. 복음에서 요구하는 회개는 개인적 죄만 아니라 사회적 죄도 포함
b.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한다는 것은 삶의 모든 영역에서 순종을 의미
c. 죄에서 돌이켜 새 삶을 산다는 것은 하나님의 통치에 반하는 개인적 사회적 불의와 싸우는 것임
2. 복음전도와 사회운동의 관계
a. 사회운동은 복음 전도의 결과이다. 왜냐하면 복음은 사회변화를 일으키도록 새로운 사람을 창조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회심자들이 복음의 사회적 의미를 배우지 않는다면 사회에 적극적 영향을 거의 끼치지 못한다.
c. 사회운동은 복음전도의 목표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음을 받았기“ 때문이다.(엡 2:10)
d. 사회적 관심은 복음전도를 촉진하나 불의에 대한 침묵은 복음전도를 침식한다.
e. 사회운동은 복음전도의 열매를 보호한다.
3. 교회의 삶이 사회 변화를 형성함
a. 교회가 자신들이 전하는 복음의 가시적인 증명이 될 때 사회는 교회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b. 신약성경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교회는 불의한 세상에 강력하고 매력적인 대안을 제공함
c. 이것은 단순한 “흘러넘침”이상으로 소금, 누룩, 빛으로 세상에 침투해 들어가는 것
부록: 사회정의는 구원의 일부인가?
구원의 범주
a. 좁은 의미: 개인적 차원
구원의 의미는 그리스도 안에서 산 믿음을 가지고 이로 인한 결과를 가리킨다. 이 관점에서는 구원이란 용어가 교회를 넘어 정의로운 사회구조를 포함하지 않는다. 창조와 구원을 구분하여 일반은총으로 창조세계가 보전되고 특별은총으로 구원의 은혜가 주어진다고 주장. 교회에서 사회로 ‘흘러넘침“을 인정하나 이것이 구원은 아니다.
b. 넓은 의미: 사회적 차원
구원의 의미는 하나님과 개인의 화복된 관계의 전 영역을 가리킨다. 구원을 하나님의 창조질서의 회복으로 보고 구원의 범주에 교회와 사회를 모두 포함. 창조와 구속사이의 구분을 거부한다.
2. 좁은 의미의 구원에 대한 반대
a. 죄의 사회적 측면을 망각하고 인격적 측면만을 본다. 사람은 공동체적 존재이므로 악한 사회구조의 변화 없이 구원을 온전히 누릴 수 없다.
b. 구원을 개인의 영혼구원으로만 보는 것은 육과 영의 통일체로 인간을 보는 성경적 인간관을 왜곡한 것이다.
c. 인격적 회심이 사회에 영향을 미치지만 사회구조가 사람들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심오한 방식을 간과한다.
d. 기독교 신앙의 종말론적 차원에 무지하여 억압을 바로잡기 보다는 체제의 보수적 수호자가 된다.
e. 영적 영역이 사회적 구조의 세속적 영역보다 중요하다는 이원론을 가진다.
f. 하나님의 구원 목적을 향한 변화를 교회에 국한함으로 복음전도와 사회적 관심사이의 관계에 대한 혼동의 원인이 된다.
3. 좁은 의미의 구원에 대한 옹호
a. 좁은 의미의 구원이 반드시 영과 육의 이원론은 아니고 다만 교회 밖에 사회의 개선을 구원이 아니라 정의라고 주장한다.
b. 신약 성경은 구원이란 언어로 교회를 넘어 사회의 환경, 경제개선을 지칭하지 않는다.
c. 그리스도의 구원과 보전, 현존과 주권은 구별되어야 한다.
d. 구원의 전통적 범주가 제한적인 결과들을 구원이 아닌 정의라고 부른다고 해서 사회운동에 대한 헌신을 감소시킨다는 필연성은 없다.
e. 창조/구속의 이원론이 필연적으로 또 다른 해로운 이원론을 초래하는 것은 아니다.
f. 구원이 교회에만 임한다고 해도 사회적 변화가 교회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고 그리스도인들의 변화된 삶은 사회로 ‘흘러넘치는“ 효과를 가지고 있다. 그리스도인의 사회, 정치 활동으로 불신자들이 누리는 혜택은 ‘흘러넘침“이지 구원은 아니다. 그것은 구원이 아닌 다른 용어로 표현되어야 한다.
g. 창조와 구속은 밀접하게 상호 연관되지만 동일하지는 않다. 만일 창조와 구속을 구분하지 않는다면 신자와 불신자의 신약적 구분은 유지되지 못하며 기독교와 문명은 융합되어 버린다.
h. 넓은 의미를 선호하는 사람들이 주장하는 많은 것을 좁은 의미를 선호하는 사람들이 동일하게 지지할 수 있다.
i. 로잔언약은 복음주의가 사회운동을 등한시 한 것을 회개하고 그것의 중요성을 확인했지만 구원과 정의를 같은 것으로 여기는 것을 거부하였다.
'서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복음주의와 공공신학 세미나> 최경환 (0) | 2023.05.04 |
---|---|
대안 공동체의 ‘르상티망’(ressentiment) - 최경환 (0) | 2023.05.04 |
신앙생활의 즐거움- 매튜 헨리 (0) | 2023.05.04 |
사랑의 성경 해석학- 한병수 (0) | 2023.05.04 |
성령과 일반은총- 이은성 (0) | 2023.05.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