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주의와 공공신학- 최경환
2014-06-20 15:00:10
복음주의 소장파 윤리학자 데이비드 거쉬는 복음주의가 사회윤리에 대한 이론적 근거를 제시하지 못했다고 한탄한다. 로마 카톨릭과 에큐메니컬 진영에서는 기독교사회윤리를 발전시켜 왔는데 복음주의는 전혀 준비하지 못했음을 지적한 것이다1. 복음주의가 사회적 참여나 실천을 전혀 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들의 행동과 실천을 추동시키는 이론적 근거인 사회참여 신학이 있었는냐는 질문이다. 20세기 미국의 복음주의가 적극적인 사회참여에 미온적 태도를 보인 이유는 첫째가 이론의 부재, 둘째가 롤 모델의 부재이다. 그러나 1960년 이후 복음주의권에서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는데 그것은 아브라함 카이퍼의 영향을 받은 신킬빈주의자들2과 시카고 선언과 1974년 로잔언약에 기초한 복음주의 그룹3(new evangelical or evangelical left group)이 그들이다.
미국의 복음주의자들은 시민권 운동과 반전운동, 그리고 사상적으로 실존주의와 비판이론, 신학적으로 해방신학이 보급되면서 내적 갈등과 사화적 모순에 직면하게 된다. 분명 사회적으로 뭔가 문제가 있는데 교회는
이 문제에 침묵하고 있고, 자신의 신앙과 신념은 사회적 이슈와 어떻게 연결되는지 몰랐던 것이다. 진보적인 에큐메니컬 진영에서는 1968년 WCC 웁살라 총회에서 선교에 대한 그진적인 견해를 채택하여 '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 라는가 '선교는 곧 인간화이다.(Mission is Humanization)' 이르는 급진적인 견해를 채택하고 사회참여에 대한 신학적 근거를 마련하고 기독교가 정치 투쟁의 전면에 나서게 된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복음주의자들은 '빵이 먼저냐 복음이 먼저냐?" 라는 논쟁을 하게 되었고 결국 1974년 로잔언약을 통해 빵과 복음이 둘다 중요하다는 결론에 합의한다.
1973년 로날드 사이더는 칼헨리, 짐윌리스, 사무엘 에스코바 등과 함께 주말 집회를 열어 사회적 이슈들을 집중적으로 다루었으며, 마침내 '복음주의적 사회참여를 위한 시카고 선언'을 탄생시켰는데, 이 선언은 1974년 로잔대회에서 복음전도와 사회참여는 동등한 그리스도인의 의무임을 분명히 하는데 기여한다. 이후에 사이더는 WCC에도 관여하게 되지만 WCC가 지나치게 사회적 이슈에 함몰되는 한계를 지적하고 복음주의의 기본적 정서를 확실하게 고수하면서 사화적 참여를 하는 방안을 추구한다. 다음은 이와 관련된 시카고 선언의 한 대목이다.
" 우리는 하나님이 정의를 요구하심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불의한 미국 사회에 대하여 그분의 정의를 선포하거나 보여주지 않았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가난한 자들과 억눌린 자들의 사회적 경제적 권리를 옹호하라고 요구하심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거의 침묵으로 일관해 왔다. 우리는 역사적으로 미국교회가 인종차별에 개입해 왔으며 인종의 피부색에 따라 그리스도의 몸을 분리한 개인적인 태도와 제도적 구조를 지속해 온데 대해 복음주의 공동체의 분명한 책임을 통감한다. 우리는 동료 복음주의 기독교인들에게 우리 국가의 사회적, 정치적 불의에 직면하여 그리스도의 제자도 안에서 회개할 것을 요구한다."
사이더의 "총체적 복음(wholistic gospel) 개념을 가장 체계적으로 서술한 책인 [복음전도와 사회운동, Good News and Good Works]은 복음주의 진영에서 사회참여의 신학적 근거와 성경적 전거를 파악할 수 있는 교과서적인 책이다. 사이더는 이 책에서 기독교 진영안에 있는 네가지 서로 다른 양상을 개인주의적 복음전도, 급진적 재세례파, 주류교회 일치운동, 세속적 기독교로 분류하고 각각의 신학적 특징과 쟁점을 비교 설명하면서 복음전도와 사회참여를 동시에 그리고 함께 강조하는 "총체적 선교" 혹은 "총체적 복음"을 제시한다. 그는 죄와 복음은 개인적이면서 동시에 사회적이고 구조적인 것이며 그리스도인의 내적인 소명과 부르심은 동시에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소명으로 연결된다고 말하며 둘 사이의 조화와 균형을 강조한다. 사이더는 지속적으로 성경을 통해 자신의 총체적 복음의 신학적 정당성을 제시하며 다양한 사역과 운동을 통해 실제를 변화를 일으키고 있는데 특히 짐 윌리스는 사이더의 신학적 토대위에서 미국 사회에 새로운 정치적 움직임을 일으키고 기독교가 정치에 새로운 변화를 일으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게 만들었다.
그렇다면 공공신학(Public Theology)은 무엇이며 어떤 위상을 가지고 있나? "공공성"(Public)이란 말은 사회학이나 정치학 그리고 행정학과 철학에 이르기 까지 다양한 의미로 사용되고 있는데 공공신학의 가장 큰 약점은 "공공성" 이라는 말이 가진 다양한 함의로 인해 스스로를 규정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인은 공공신학의 정체성을 규명하는 두 가지 길을 제시하려고 한다.
첫째는, 기존의 기독교 사회윤리가 가지고 있는 문제의식이나 주제들을 전유하면서 동시대적인 사회적 이슈들과 문제들을 풀어나가는 방식이다. 공공신학에서 공공성의 개념이 사용되는 첫번째 용례는 복음, 교회, 신학이 항상 세상과 관련이 있다는 통찰이다. 즉 복음은 창조, 역사, 문화, 사회 전체를 포괄한다는 이런 보편적인 인식은 전통적으로 신학에 많은 주제와 이슈를 불러 일으켰다. 따라서 이런 관점에서 공공신학이란 공적인 삶 속에서 교회의 위치와 사회적 형식, 그리고 사회속에서 교회의 역할을 다루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공공신학을 이렇게 이해할 경우, 기독교의 복음은 다양한 방식과 형식으로 인류의 보편적인 가치와 세상을 섬기기 위한 것으로 기능하게 된다. 그러나 이런 방식으로 공공신학을 정의하면 공공신학이 기존의 사회윤리 신학, 정치신학 그리고 기독교 세계관과 무엇이 다른지 설명하지 못하고 실천에서도 다소 모호하게 된다.
둘째는 공공신학을 보다 엄밀하게 사회과학적이고 정치철학적은 언어로 규명하는 방식이다. 공공신학은 기본적으로 민주주의 이후 시민사회의 등장으로 말미암아 발생되는 신학의 제반문제들을 다룬다. 따라서 공공신학의 정체성을 규명하려면 근대적인 시민사회의 출현과 자유롭고 평등한 시민의 탄생, 그리고 이들이 광장에 모여 토론과 비판을 통해 정치적 주체로 재탄생되는 일련의 과정에 대한 학제간 연구가 이루어져야 한다.
이렇게 공공신학 개념의 복합성은 공공성이라는 개념의 다양한 의미나 사용에 상응한다 그러므로 공공신학에 대한 단일한 의미나 권위있는 개념규정은 존재하지 않으며 공공신학으로 향하는 단일한 규범적인 접근도 존재하지 않는다. 만약 공공신학이 다양한 사람들에게 다양한 방식으로 받아들여진다면 그들은 공공신학이 관여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어떻게 결정할 수 있을까? 사회학적 관점에 의하면 어떤 사람들이 공공신학의 어떤 특정한 형식을 취하는 것은 그들이 처한 사회구성체의 상황, 맥락 등이 작용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개별적인 사회적 위치의 실재는 신학이 작동할 때, 어떤 특별한 것을 강조하기 위한 "선택적 친화성"을 만든다는 것이다. 반대로 공공성에 대한 개념을 선택할 때, 신학적 관점이나 신앙적 확신이 작용하기도 한다. 이것은 왜 같은 조건속에서 그리고 동일한 역사적 사회적 환경속에서 서로 다른 공공신학을 말하는지 설명해준다. 공공신학의 필요성과 당위성에 동의한다고 할지라도 구체적으로 복음이 시민사회에서 어떻게 작동되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대답을 하지 못하고 있는데 이는 사회과학적 분석과 정치철학에 대한 깊은 이해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이 부분에 있어서는 신킬빈주의 영향을 받은 리차드 마우, 니콜라스 월터스토프, 제임스 스킬런과 같은 학자들이 탁월한 성과를 보여주고 있다.
1980년대 한국 기독교 학생운동에서 진보그룹은 총기독학생회를 중심으로 농촌선교, 빈민 봉사, 공부방교사, 통일운동 들을 통해 사회변혁에 중요한 역할을 감당했다면, 보수진영에서는 기독교 세계관에 관심을 기울였다. 기독교 세계관 운동은 교회와 개인적 신앙생활에만 치중되던 대다수 보수적 기독청년들에게 새로운 시각을 심어주고 사회에 대한 관심을 끌어내는데 어느정도 기여하였다. 하지만 20년이 지난 지금, 두 진영은 모두 자신들의 한계를 드러냈다.
한 때 사회운동와 변혁에 열심이던 총기독학생회는 회원수의 격감으로 현재 거의 아사 상태이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주된 신학적인 이유는 이들이 교회와 성서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기독교세계관 운동 역시 한계를 드러냈는데 그 이유는 진보진영과 마찬가지로 성서를 통한 세계관 훈련의 부재, 그리고 세속학문에 대한 이론적 담론 투쟁에서의 실패를 이유로 들 수 있다. 기독교세계관은 성서에 근거한 그리스도인들의 사회참여와 문제의식을 이끌어 내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진보그룹이나 보수진영 모두 기독교 고유의 언어이자 세계관이 성서에 대한 깊은 이해와 통찰이 부족했다는 점이 실패의 원인이라는 것이다. 성서를 통한 마음의 변화와 행동의 번화를 이끌어 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대목이다.
그런 점에서 사이더의 '총체적 복음' 은 수많은 복음주의자들의 가슴에 불을 붙여 주었다. 해방신학과는 신학적 출발점이 다르고 전제다 다르다 할지라도 그들과 유사한 사회적 참여와 행동을 이끌어 낼 수 있었던 강력한 힘은 바로 성서를 새롭게 읽어내는 능력에 있었다. 복음주의라는 정체성을 고수하면서도 충분히 사화참여와 변혁에 대한 성서적 근거와 자료들을 제시한 것에 복음주의자들이 크게 반응한 것이다.
각주 1
복음주의가 사회윤리에 대한 이런적 근거를 제시하지 못한 이유에 대한 충분한 신학적 반성이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
각주 2
흔히 신칼빈주의로 분류되는 일군의 학자들은 신학적으로는 보수적이지만 정치적으로는 진보적 입장을 지닌 문화적 칼빈주의자들이다. 주로 이들은 리폼드 저널의 편집인들, 칼빈대학 교수들, 미국 개혁교단 학자들이 주축을 이룬다. 데이빗 모버그, 리차드 마우, 나콜라스 월터스토프, 루이스 스미즈, 스티븐 몬스마, 폴 헨리 그리고 공공정의 협의회의 제임스 스킬런과 캐나..
각주 3
존 스토트, 빌리그래함, 로날드 사이더, 짐 윌리스 등이 중심이 됨
- 복음주의가 사회윤리에 대한 이런적 근거를 제시하지 못한 이유에 대한 충분한 신학적 반성이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 [본문으로]
- 흔히 신칼빈주의로 분류되는 일군의 학자들은 신학적으로는 보수적이지만 정치적으로는 진보적 입장을 지닌 문화적 칼빈주의자들이다. 주로 이들은 리폼드 저널의 편집인들, 칼빈대학 교수들, 미국 개혁교단 학자들이 주축을 이룬다. 데이빗 모버그, 리차드 마우, 나콜라스 월터스토프, 루이스 스미즈, 스티븐 몬스마, 폴 헨리 그리고 공공정의 협의회의 제임스 스킬런과 캐나다 기독교학문연구소의 리차드 미들톤, 브라이언 왈쉬, 폴 마샬 등이 개혁파에 근거한 정치철학과 사회참여를 구축하고 있다. [본문으로]
- 존 스토트, 빌리그래함, 로날드 사이더, 짐 윌리스 등이 중심이 됨 [본문으로]
공공신학의 기원과 갈래- 최경환
2016-04-09 16:49:20
공공성과 공공신학
공공성(publicity)이란 대중들이 공론장에서 합의를 통해 공동선(common good)을 추구하는 것을 말한다. 공론장의 중요한 2가지 요소는 개방성(openness)와 접근성(accessibility)이다. 오늘날 공공신학의 지형도는 세가지 모델로 볼 수 있는데 폭로의 모델(model of disclosure), 보편신학의 모델 그리고 사회학적 모델이 그것이다. 폭로의 모델은 기독교의 특수성에 기반하여 폭로하고 계시하며 드러내는 모델이라면 보편신학 모델은 기독교의 특수성을 가급적 배제하고 정의, 평화, 인권 등의 보편적 가치를 통해 세상과의 접점을 만들어 내려는 모델이다. 공공신학은 신앙공동체의 모든 당사자들이 자유롭고 평등한 의사소통을 통해 공공선을 도모하는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공공신학의 기원에 대한 6가지 이야기
1. 공공신학의 기원은 1960년대 벨라(Rpbert N. Bellah)가 제시한 시민종교에 대한 논의로 부터 시작된다. 벨라는 시민종교는 미국적인 가치를 공유하면서, 기독교에 동조하거나 거부하지 않으면서 어떤 미국적 신념체계와 상징, 의례를 만들어 주었다고 말한다. 이런 시민종교의 한 형식으로 마틴 마티는 공공신학이란 말을 처음 사용했다. 마티는 리처드 니버와 루터 킹 목사를 공공신학의 모델을 제공한 공공신학자로 본다. 뉴하우스는 종교와 정치적 삶 사이에 어떤 분리의 장벽이 존재한다는 기존의 통념은 무너지고 벌거벗은 공론장이 시민종교의 중요한 특징이 되었고 이후 공공신학의 기원과 발전에 중요한 토대가 되었다고 말한다.
2. 마티가 공공신학이란 용어를 사용한 시점과 비슷하게 시카고에서 데이빗 트레이시는 한 잡지에 "공적담론으로서의 신학"이란 글을 게재했다. 거기서 그는 신학이 다른 학문과 어떤 방식으로 연결되고 대화를 할 수 있는지, 신학이 어떤 의미에서 공적 담론에 기여할 수 있는지를 질문했다. 그가 내린 대답은 신학은 공적담론의 한 형식으로서 적절한 패러다임이 될 수 있으며 이 물음을 계속적으로 묻는 것이 오늘날 가장 중요한 신학적 아젠다라는 것이다. 특별히 트레이시는 교회, 학문, 사회라는 신학의 3가지 공적 영역을 유형화하고 모든 신학은 이 3가지 영역에서 유의미한 담론을 제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트레이시는 신학의 공공성은 보편성에 기반해야 하며 신학이 이런 보편성을 갖추기 위해서는 진리를 변호한다는 명목으로 개인적인 신념에 호소하지 말고 철학적인 논증의 형태를 취해야 한다고 말한다. 물론 트레이시가 신학의 고유한 전통과 역사를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는 역사와 전통이 오늘날의 언어와 해석의 과정을 저쳐서 실천적인 효과를 발휘해야 한다는 것이다. 트레이시의 비전은 모든 신학이 반드시 공적 담론을 공유하고 모든 공적 관심들을 포괄하는데 있다.
3. 독일에서는 미국과 다른 방식으로 공공신학이 발전했는데. 볼프강 후버는 1972년에 교수자격 취득 논문으로 " 교회와 공공성"이란 책을 발표했다. 이 책에서 후버는 칸트와 하버마스 그리고 요나스를 통해 책임윤리와 사회적 실천에 대한 철학적 명제를 제시하고 본회퍼의 신학을 통해 자신의 신학적 사회윤리를 구체화했다. 후버는 개별 그리스도인들이 민주적인 방식과 절차에 따라 공론장에서 적극적으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는 것은 건강한 시민사회를 위해 중요하고 필요한 일이라고 말한다. 그는 또한 교회는 공론장에 참여함으로서 다양한 시민사회의 요구와 목소리를 경청하고 나아가 비판의 목소리를 겸허히 수용해야 한다고 말한다.
4. 일반적으로 공공신학은 세속화 이후 민주사회를 살아가는 시민들이 서로 합의와 협력을 통해 공적 가치를 보존하고 만들어 가는 서구적 기독교 윤리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제3세계 공공신학자들은 신앙과 공적인 삶의 관계를 투쟁과 갈등으로 이해하기도 한다. 이들이 제시하는 공공신학은 합리적이거나 토론을 통한 합의 과정이 아니라 권력과 갈등, 다양한 투쟁과 관련되어 있다. 윌리엄 스톨라는 공적영역에서 배제된 자들과 소외된 자들이 정당한 대우를 받고 자신들의 목소리를 되찾기 위해 끊임없이 투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만 투쟁의 방식과 형식은 비폭력적이고 민주적인 절차를 통해 공적 분노를 정당하게 표현해야 한다고 말한다. 남아공 신학자 말루레케는 복지와 분배, 통합과 조화를 말하는 서구의 공공신학은 억압과 핍박으로 고통당하는 제3세계 민중들에게 대안이 되지 못한다고 비판한다.
5. 점증하는 세계화에 대한 인식은 공공신학이 다루는 주제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스텍하우스나 헤인스웨스, 패스 등은 거부할 수 없는 하나의 보편적 현상으로 나타난 세계화와 다원화된 종교, 문화, 사회 속에서 공공신학은 보편적인 가치와 규범을 찾아야만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세계화가 진행되면서 각각의 국가와 지역에 전파된 정치 경제 시스템은 지역의 독특한 문화적 양식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변형되어 적용되었다. 이 과정에서 공공신학은 하나의 동일한 신학적 범주로 묶어 낼 수 없을만큼 다원화되었고 각 지역의 상황과 문화에 맞는 자신들만의 독특한 공공신학을 만들어내었다.
6. 롤즈나 하버마스와 같이 자유주의 정치체제를 옹호하는 이들은 그동안 종교가 포괄적 교의나 종교적 신념을 가지고 공론장에 나오는 것을 반대했다. 하지만 최근의 정치적 다원주의와 정체성의 정치로 말미암아 종교는 자신의 가치와 신념을 가지고 다시금 광장에서 외칠 수 있게 되었다. 그동안 자유주의 공론장은 어떤 이데올로기나 종교로부터 초연하게 중립성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그동안 공론장은 다양한 욕구와 신념의 각축장이 되어버렸고, 이러한 다양한 인정 욕구가 사실은 정치의 근원적 의지이자 뿌리였다는 주장이 대두하게 된 것이다. 그래함은 전통적으로 신앙과 이성, 종교와 세속화 사이에는 타협할 수 없는 간극이 존재한다고 생각했는데, 이는 모두 공론장이 당연히 중립적일 것이라는 잘못된 신화에서 나온 것이라고 지적하면서 실제로 공론장은 철저하게 신학적이고 신념에 의해 좌우되는 의지의 각축장이라고 말한다. 오늘날 유럽의 저명한 정치철학자들인, 아감벤, 바디우, 지젝, 이글턴 등이 정치와 종교의 상관관계를 직접 다룸으로써 공론장으로의 "종교의 귀환"이 가속화되고 있다.
공공신학 다시 정의하기
공공신학은 다양한 방식으로 전개되며 그 의미와 강조점도 역시 다양하다. 또한 공공성이란 개념도 학자들마다 다양하게 사용하며 공통의 합의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공공신학이 도대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제대로 대답을 할 수 없는 것이 공공신학의 가장 큰 약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 오르호트는 각각의 상황 속에서 전개된 서로 다른 공공신학의 공통점들을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첫째, 그는 공공신학은 사회의 다원화와 세속화의 경험 속에서 발생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공적영역에서 종교의 자리가 축소되고 목소리가 박탈당하는 사회적 분위기, 세계화와 다원주의에 직면하여 전통적인 신앙양식들이 개인적이고 내면적인 차원으로 붕괴되는 경험, 이런 상황에 어떤 방식으로든 대응을 해야 했는데 여기서 공공신학이 그 역할을 해주었다는 것이다. 둘째로 그는 공공신학은 민주주의 사회 속에서 신학이 어떻게 건설적이면서 비판적으로 공론장에 참여할 수 있는지를 다룬다고 말한다. 그래서 공공신학은 절차적 민주주의와 다양한 공론장을 통한 여론수렴과 협의와 토론을 중시하는 민주주의는 교회의 사회참여 방식을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고 새로운 사회적 조건 속에서 교회의 역할이 무엇인지 고민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공공신학의 이런 공통점에 기반하여 공공신학은 다음 3가지 특징을 공유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첫째 공공신학은 모든 사람들이 지적으로 동의하고 인지할 수 있는 보편성을 추구한다. 공공신학이 제기하는 아젠다는 타종교와 세속화된 시민사회 속에서도 충분히 소통이 가능하고 이들이 인식할 수 있는 합리성과 보편성을 담지해야 한다. 둘째, 공공신학은 신앙의 사사화와 개인주의에 반대하고 성도들의 삶이 교회 내적 윤리로 환원되는 것을 반대한다. 그리스도인들의 소명은 타자와 세상을 향한 책임으로 확장되어야 하고 교회는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정의와 평화가 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도록 적극적으로 세상에 참여해야 한다. 셋째, 공공신학은 사회참여의 당위성뿐 아니라 그 방법의 정당성을 진지하게 고민한다. 공공신학은 공론장의 규범적이고 합리적인 소통과정에 참여하기 위해 민주주의의 질서와 원리를 존중해야 한다.
톰슨은 그동안 다양하게 제시되었던 공공신학에 대한 정의가 필요조건만을 제시했을 뿐 충분조건은 만족시키지 못했다고 지적한다. 따라서 톰슨은 이제 공공신학에 대한 소극적인 개념규정을 넘어서 보다 적극적으로 그 내용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말하면서 그동안 기독교 역사가 만들어낸 각각의 신학 전통과 예전 그리고 그 속에서 배양된 신앙관습과 성서해석들이 공공신학의 구체적 내용으로 채워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시 말하면 그는 공공신학이 가지고 있는 형식적이고 규범적인 틀을 통해 최소한의 필요조건을 확보하면서도 각각의 신학전통들이 만들어낸 사회윤리적 특징들을 충분조건으로 보충하자는 것이다.
공공신학의 최근 이슈들
전통적으로 기독교 윤리의 과제는 복음이 가지고 있는 특수성과 보편성을 적절하게 설명해내는 것이었다. 최근에 공적 담론 속에서 종교의 역할이 무엇인지 질문하면서 이 논쟁은 다시 부각되기 시작했다. 결국 공공신학의 가장 중요한 과제는 어떻게 복음의 독특성과 신학의 전통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세상과 소통하고 기독교의 진리를 대중들에게 합리적으로 제시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따라서 공공신학이 말하는 복음의 공공성은 특수한 상황과 맥락 속에서 구체적으로 적용가능하면서도 동시에 기독교 전통에 뿌리를 내리고 고유한 내적논리를 가지고 있어야 함을 강조한다. 반면에 트레이시나 스텍하우스는 공공성을 보편성이란 말과 거의 동의어로 사용하면서 종교의 특수성을 가급적 배제하려고 한다. 여기에 공공신학의 델레마가 존재한다. 공공신학은 자신의 고유한 기독교 전통과 언어를 상실하면서까지 세상과의 소통과 보편성을 추구해야만 하는가? 결국 문제는 기독교 신앙과 윤리적 지침들이 구체적인 현장의 필요와 목소리를 외면하지 않으면서도 어떻게 보편적인 담론 속에 편입될 수 있느냐로 귀결된다. 남아공의 신학자 드 그루시는 공공신학을 보편적인 관념으로 이해하는 것에 주의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공공신학의 실체는 특수한 지역공동체에 속한 공적인 영역과 관련이 있어야 한다는 의미에서 보편적인 공공신학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한편 푸리에는 공공신학이 보편성에 지나치게 치우치는 것을 우려하다보니 반대로 특수성에 함몰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앞으로 공공신학은 철저하게 지역적인 문제에 대한 신학적 고민으로 출발하면서도 이를 어떻게 보편적인 이슈와 연결해서 초국가적인 담론으로 만들어야 할지를 진지하게 생각해야 한다.
여러 학자들이 기존의 해방신학은 새로운 세계를 맞이해서 다른 모습으로 전환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남아공의 신학자 빌라 벤센치오는 교회의 사명이 투쟁과 갈등이 아닌 새로운 인간성의 회복과 민족들의 재건을 돕고 공동체적 연대와 개인적 성취를 이루는 긍정의 신학으로서 재건 신학을 주장했다. 브라질의 공공신학자 폰 시너는 가장 대표적인 정치신학이라 알려졌던 해방신학이 실제로는 정치학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고 지적하면서 해방신학자들은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지도 못했고 행정 및 입법제도의 개선에도 관심이 없었다고 말한다. 페트렐라는 사회주의 몰락이후 해방신학의 새로운 과제는 가난한 자들에 대한 우선적 선택이란 명제의 재설정, 일상생활과 시만사회에 대한 재규정, 우상화된 자본주의에 대한 폭로라고 제시한다. 세계화와 신자유주의의 도전 앞에서 이전에는 이념적 갈등과 정치적 속박으로부터 시작된 해방으로의 부름이 이제는 경제적 속박과 이에 따른 문화적 종속으로부터의 해방을 요청받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해방신학도 공공신학과 문제의식을 공유하면서 새로운 변혁을 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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