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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

초기 기독교 이단의 등장

기독교 영지주의(Gnosticism)

2013-10-18 15:32:59


    주후 130-160년 사이에 기독교 공동체 안에는 영지주의자 라고 부르게 된 집단과 교회 교리 전승의 상식적 해석을 옹호하는 자들 사이에 벌어진 논쟁이었다. 이 논쟁은 악의 본질, 하나님의 의미, 구속의 성격과 같은 특정한 문제뿐 아니라 교회와 교리 교육의 용어를 해석하는 방법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를 일으켰다. 그 결과 이 논쟁으로 기독교 신학 전통의 범위와 깊이와 정확성 그리고 그 전통을 형성하고 전달한 제도에 의미심장한 발전이 생기지 않을 수 없엇다. 

 

  영지주의에 대한 중요한 자료는 대부분 2-3세기초반, 영지주의에 반대하는 그리스도인들과 비판자들인 이레니우스, 클레멘트, 오리겐, 터툴리안, 하폴리투스의 책들이다.이 저작들로 부터 영지주의의 가르침에 대한 요약된 내용과 영지주의 저술에서 인용된 내용을 발견하게 된다. 영지주의(노스틱파)는 신비한 지식(영지-그노시스)을 통해서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다양한 종교적 운동이었다.  노스틱파는 기독교의 이단이거나 아니면 독립적인 집단이었을 것이다.

 

  영지주의(그노스티시즘) 사상에는 철저한 이원론이 존재한다. 그들은 구약의 유대교의 하나님위에 더 초월적인 신을  설정하면서 창조세계는 소피아 즉 지혜의 타락의 결과라고 보고 모든 물질적 창조를 악한 것을 간주하였다. 그래서 두개의 세상이 있는데 충만(플레로마)이라고 하는 영의 세계와 공허(케노마)라고 하는 열등하고 물질적인 세계이다. 이 두 질서 사이의 대립을 강조하는 것이 영지주의적 사고의 특징이다. 빛의 세계는 영(프뉴마)으로 어둠의 세계는 혼(프쉬케)과 물질(휠레)로 이루어져 있는데 열등한 물질적 세계의 조성자가 바로 유대교의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유대교의 하나님은 스스로 유일한 신이라고 주장하지만 영의 세계에 속한 구성원이 아니며 그저 혼의 재료로 이루어져 사물의 참된 원천과 근거인 영의 세계를 알지 못한다고 말한다.

 

  그들은 신적인 계시를 통하여 영적 세계에 대한 지식(영지)이 주어지는 데 이 영지를 통하여 인간은 구원을 받는다고 한다. 영지를 받은 자들은 자기들의 내면적이고 참된 자아가 영이며 고향이 영적 세계인 것을 깨닫고(자신들이 구원을  받도록 선택된 선민인 것을 깨닫고) 자신들이 이질적인 우주에서 길을 잃어 참된 본성과 운명을 모르도록 저주받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래서 자신들이 유대교의 창조주 하나님보다 월등하며 이 창조주 하나님이 다스리는 압제적인 세계의 속박으로 부터 해방되어야 할 존재임을 인식하게 된다는 것이다.이 영지를 통해서 구원을 받는다. 영지를 통해서 영적인 자들은 육체의 감옥을 탈출하여 악마가 지배하는 이 세상을 안전히 통과하여 하나님과 재결합한다는 것이다. 대개의 노스틱파들은 성과 결혼에 대하여 극단적 금욕주의적 태도를 가졌다. 인간은 보래 단성이며 여자를 창조한 것은 악의 원천이고 자녀출산은 어둠의 세력에 속박당하는 영혼들을 증가시킨 것이라고 믿는다.

 

 2세기 기독교 영지주의자들은 사실상 3등급의 인간을 상정하고 있다. 이 인간 등급들은 세가지 종류의 우주적 '재료'에 상응한다. 첫째는 물질적 세계에 사로잡혀 궁극적으로 멸망할 운명을 가진 이교도들, 둘째는 유대교의 신을 좋아하는 기독교 신자들은 혼의 세계에 속한 자들인데 이들은 멸망이 아니라 일종의 2등급의 구원을 얻는다. 마지막으로 영지주의자들은 영적인 세계의 충만에 속하게 될 것이다. 기독교 영지주의자들은 스스로를 그리스도와 더불어 구원의 계시를 가진 자로 간주하였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둘로 나누어 '혼으로 온 그리스도'(유대교 하나님이 약속한 메시야)와 영으로 온 그리스도로(영지를 계시하는 구속자)로 구분하였다.

 

마르키온 이단

2013-10-18 16:07:07


  마르키온은 소아시아 시노페(Sinope)에서 감독의 아들로 태어난 부유한 그리스도인이었다. 그는 139년경 로마에 와서 로마 교회에 가입하였으며 복음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가르치기 시작하였다. 결국 교회는 그를 출교시키고 마르키온은 자기를 따르는 자들을 모아 구별된 교회를 세웠다. 그가 세운 공동체는 넓은 지역에 신속하게 퍼졌고 5세기에 이르러는 시리아에서 정통신앙파의 교회와 겨룰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하였다.그들의 사상은 이탈리아 전역에 퍼져나갔고 멀리 아라비아와 아르메니아 그리고 이집트까지 전파되었다.

 

  그는 바울의 서신을 통하여 사랑의 하나님의 복음과 유대교의 율법 종교 사이에는 대립과 모순이 있다고 추론하였다. 그는 모세 언약의 하나님과 예수와 바울의 하나님은 전혀 다른 존재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후자의 하나님은 사랑과 자비의 하나님이지만 전자의 하나님은 자의적이고 독재의 하나님이었다. 그의 책[ 대조= Antithesis]에서는 유대교 성경과 기독교  신앙 사이의 모순이라고 보았던 것을 발전시키고 명확히 하면서 그의 영지주의적 사상들이 나타난다. 그는 그리스도의 아버지이신 하나님은 예수가 나타나기 전에는 알려지지 않았다 따라서 유대교의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하나님과 다른 부차적이고 열등한 신이라고 보았다. 나아가 그는 영지주의 교사인 케르도(Cerdo)의 영향을 받아 엄격한 이원론을 채택하였다. 유대교의 하나님의 창조는 파멸된 운명을 가진 악한 활동이었다. 반면에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사랑의 하나님을 대신하여 그리스도가 나타났는데 그는 인간의 몸을 가지지 않고 나타났다고 주장한다.(가현론자의 입장과 유사) 그는 창조가 신약의 선한 하나남의 사역이 아니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은 세상을 거절하여야 하고 영혼만이 구속을 받으므로 육체는 포기되고 부인되어야 한다는 극단적인 금욕주의를 택하였다. 결과적으로 그는 육체 부활의 사상도 거부하였다.

 

  마르키온의 가르침은 교회에 위협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유대교와 기독교의 연속성에 대한 문제 그리고 하나님이 다스리는 구원 역사의 통일성 대한 문제를 일으켰다. 저스틴과 터툴리안은 미르키온을 기독교 교리의 무서운 적으로 간주하였다. 마리키온은 자신이 기독교 저술의 정경을 제정하였는데 구약 전체와 유대인 독자를 편드는 신약의 책들을 모두 제거하고 예수 탄생 기사를 삭제한 누가복음과 데모데 전후서, 디도서를 제거한 10개의 바울서신만을 남겨놓았다. 이것은 후대에 교회가 성경 정경을 채택하는 일에 자극제가 되었을 것이다.

 

몬타누스 주의(Montanism)

2013-10-18 16:37:17


  마르키온의 가르침은 기독교 신앙과 영지주의의 혼합으로 기독교의 자기 이해의 위기를 교회안에 일으켰다. 이 위기는 2세기 마지막 수십년 동안에 일어난 제3의 운동에 의하여 더욱 심각하게 되었다. 그것은 소위 몬타누스가 시작한 '새로운 예언' 운동이었다. 몬타누스는 서부 소아시아 지역인 브루기아에서 주후 172년부터 예언자로서  주목을 끌기 시작하였다. 그는 여 선지자라는 두 여자 브리스길라와 막시밀라와 함께 성령의 대언자라고 선포하면서 모호한 신탁을 전달하면서 자신들을 받아들이는 지역교회를 얻었다. 이 운동은 기독교 공동체의 지도자들로 부터 끊임없이 반대를 받았다. 그들은 이단은 아니었지만 광신자였으며 그들의 환상과 방언 그리고 강렬한 종교적 열광은 의심을 받았다.

 

  몬타누스의 '새로운 예언'은 묵시적 영의 부활을 상징했으며 세계의 다가올 종말을 선언했다. 몬타누스를 따르는 자들은 자신들을 세상과 완전히 고립된 존재로 보았고 순교가 소명이라고 생각하였다. 종말을 예비하는 일로 그들은 스스로 정결하게 하였고 세상에 속한 모든 것들로 부터 단절하였다. 부부관계를 포기하였고 금식이 늘어났으며 맛이 없는 음식을 먹었다. 가장 뛰어난 몬타누스파 신도는 카르타고의 터툴리안인데 그는 생애의 말년에 참여하였다. 그는 보혜사(성령)에 의해 주어진 예언들이 교회의 권징을 완성한다고 믿었다. 그 예언이란 세례후에 지른 중한 죄를 용서하지 않는다는 것과 재혼하거나 박해를 피하여 도망하는 것을 금지하는 내용이었다.

 

이 운동은 소아시아를 거쳐 시리아와 안디옥에 퍼졌고 수 십년만에 로마와 서방에도 알려졌다. 아프리카에서는 5세기까지 존속하였고 부르기아에서는 더 오래 지속되었다. 교회는 그들을 이단시 함으로써 많은 신자를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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